'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16건

  1. 2021.12.21 에세이집에 대한 생각 정리 1
  2. 2021.12.20 중학교 시절..
  3. 2021.12.17 mz 세대, 개념 유감..
  4. 2021.11.30 대학교 학생상담실 강연.. 2
  5. 2021.11.19 lonely night 3
  6. 2021.11.05 오늘도 둘째는 조퇴..
  7. 2021.11.04 disse alguem
  8. 2021.10.26 중앙민주연합.. 1
  9. 2021.10.13 이것저것 잡생각..
  10. 2021.10.02 둘째 병실에서.. 1

1.
에세이는 가벼운 미셀러니와 좀 더 무거운 에세이로 나뉜다는 게 고전적 구분이다. 나는 이렇게 좀 더 무거운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몽테뉴의 <수상록>, 이 해골 복잡하게 만드는 이 책이 원래 제목이 에세이다. essais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시도다. 해보지 않은 글의 시도를 한다는 의미 정도인데, 기존의 글의 형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던 것을 담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의미다. 

처음 냈던 에세이는 <1인분 인생>이다. 40대를 지나면서 40대를 소재로 쓴 글들인데, 그게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에세이라는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쓴 좌파 에세이까지, 에세이는 몇 번 썼는데, 그 중에는 괜찮게 간 것도 있고, 헤맨 것도 있다. <아날로그 사랑법>은 포토 에세이였는데, 결국 에디터가 회사를 그만두게 될 정도로, 별 거 없이 헤맸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고양이들과 지내던 시절의 얘기를 정리한 건데, 내 삶에는 큰 영향을 남겼다. 그 책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졌던 감성들이 변했고, 결국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도 그 책을 보고 인생이 좀 변했다고 소위 독자 팬레터 같은 게 가장 많이 왔던 책이다. 

에세이는 1년에 한 권씩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워낙 글을 많이 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공개하는 글도 있고, 전혀 공개하지 않고 그야말로 비망록 같이 나에게만 남는 글도 있다. 어차피 많이 쓴다. 그래서 좀 주제를 정해서 그렇게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매년 내는 건 무리다.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살지는 않는다. 

2.
누군가의 삶을 보면서 그 사람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는 <바퀴 달린 집>의 성동일이다. 시즌 2까지는 몇 번을 봤고, 시즌 3는 아직 초반밖에 보지 않았다. 게스트들이 오면 보통의 경우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캠핑카에 있고 나이 어린 순으로 바깥에 나가서 텐트를 칠 것 같은데, 성동일의 경우는 반대였다.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성동일의 삶과 요즘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불어보니까, 성동일하고 아주 친한 사람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장기 계획으로.. 지금 당장 만날 건 아닌 것 같고. 성동일이 만약 에세이집을 내면 아마 나는 1착으로 보게 될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에는 그가 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좀 그랬다. 

나이를 처먹고 나니까, 보수니 진보니, 그렇게 걸치고 있는 옷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일종의 언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쓰든, 일어를 쓰든 혹은 또 다른 말을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더 중요하지. 

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말로 질풍노도 같은 삶을 살았다. 30대 중반이 되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몇 개의 사건이 더 있었지만, 그야말로 그 또한 지나가리라… 

최근 두 번에 걸쳐서 삶을 아주 단촐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 아이들 보기로 하면서 대부분의 사회 생활과 방송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2019년에 내 주변도 아주 단촐해졌다. 2019년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도 했거니와, 인생일대의 위기이자, 대전환점 같은 것이 되었다. 그 뒤로는 작업을 위해서 인터뷰를 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하다 못해 출판사 가서 에디터 만나는 일도 거의 안 하게 되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아니면 이제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것도 어지간하면 피한다. 극한의 미니멀리즘과 비슷하다. 

집에 오거나 집 근처에서 만나는 거의 식구급으로 친한 사람들 몇 명이 있다. 그들이 힘들 때나, 내가 힘들 때나, 술이나 같이 마시면서 그 시간을 지내고 버텼던 사람들이다. 

가끔 외국에 갔었는데, 팬데믹 이후로 그것도 좀 어렵게 되었다. 내 삶이라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루틴의 연속이다. 큰 사건이라고 해봐야, 20년 가까이 한 쪽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죽어가던 앰프나 스피커를 지난 여름에 수리하고 손질해서 살려낸 일, 뭐 그 정도다. 애들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내 인생에서는 지나갔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해금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한 것, 그래서 코로나가 좀 편해지면 연주자들을 만나볼 계획이 생겼다는 것, 그런 정도다. 원래도 해금에 관한 책은 지영희 평전처럼 애초의 계획에 있었다. 여러 사건이 생겨서 그 책은 쓰기가 어렵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젊은 연주자들의 얘기로 다시 한 번 시도해볼까, 그런 정도의 변화다. 

음악하는 사람들을 안 보게 된 건 10년 좀 넘는 것 같다. <문화로 먹고 살기> 준비하던 시절에는 붕가붕가 레코드 사장 등 그 시절의 연주회나 뮤지컬 기획자들을 좀 만났었다. 그때만 해도 뮤지컬 정말 초창기였다. 드라마 피디들도 꽤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내가 힘이 넘쳤다. 

3.
지금의 내 삶은 아주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변화가 적은 삶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한 해에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특별히 생겨나는 일은 거의 없다. 새로운 변화라고 해봐야 예전에 해놓은 일들이 이제 뭔가 성과가 되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 내린 결정 중에 가장 큰 거를 꼽자면, 진짜 별 거 아니다. 내년 대선에는 심상정에게 투표하기로 했다. 별 이유는 없다. 오랫동안 그야말로 우정으로 지냈던 심상정의 마지막 대선에서 그에게 표 하나 주는 게 별 사건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게 거의 기억할만한 유일한 사건일 정도로,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애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하루 종일 애들을 봐야 한다거나,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큰 일이지만, 그건 누구나 겪는 거고. 

경제인류학자인 마샬 살린스가 <석기 시대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want not, lack not이라는 얘기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적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삶은 그런 살린스의 얘기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뭐 크게 바라는 게 없으니까, 크게 결핍한 것도 없다.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크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도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조물닥 조물닥, 여전히 뭔가 작게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한다. 그래봐야 대부분 찻잔 속의 태풍이다. 내가 만든 것들은 찻잔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건 태풍의 눈이야, 그래서 조용한 거야”, 그런 마음으로 또 매일 뭔가를 조물닥 조물닥. 

그런 마음으로 매번 에세이집 준비를 한다. 잘 산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좀 다르게 산 것 같기는 하다. 차관 안 한다고 돌아서면서, 좀 많이 다르게 된 것 같기는 하다. 그 결정으로 인생 어려워진 사람들이 좀 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걸로도 사실 안 된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냥 마음 속의 무게로 담아 놓고 세상을 살아간다. 

나도 많은 결정을 내리고, 많은 사물에 대해서 좋음과 싫음, 그런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런 걸 되도록이면 유쾌하고 경쾌하게 하려고 하고, 조금은 더 중층적이며 다면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많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 과정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나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과정은 의미가 없고, 결과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정이 의미가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삶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결과는 같다. 뭘 많이 남겨놓고 죽든, 아무 것도 없이 간소하게 죽든, 죽는 것은 같다. 결과만 보면 삶은 다 똑같이 결국은 태어나고 죽고, 딱 두 장면만 남는다. 삶은 과정이다. 죽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삶이다. 결국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은, 삶의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판단 아니겠나 싶다. 삶 자체가 과정이다. 과정의 의미가 없으면 삶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4.
좌파 에세이는 이제 마무리를 했고, 다음 번 에세이의 주제는 죽음으로 정했다. 최근 자살과 우울증, 이런 얘기를 많이 다루었다. <어느 중산층의 죽음>, 이 정도로 가제를 정했다. 원래는 책에 관한 에세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책이 워낙 인기도 없고, 나는 더더욱 인기가 없어서.. 죽음에 대한 얘기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책 얘기는 몇 년 더 있다가 하기로 했다. 소나기는 피해가라고 했다고. 별 수가 없다. 

삶에 대해서 조금은 밝고,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는 일들을 조금씩 한다. 그렇게 해서 좋아진 게 있다면? 내 삶은 확실히 편안해졌고, 더 밝아졌다. 풍요로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풍성하기는 하다. 냉장고에 먹을 게 꽉 차 있기는 하다. 그래도 버리는 것 없이, 아이들이 죽어라고 먹어댄다. 삶이 한 순간이 이렇게 지나간다. 

그냥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또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가려고 하는 정도인에, 생각할 게 의외로 많다.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는 정말 판단 없이 그냥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생겨난 뒤로는 이것저것 내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습관이 만들어놓은 것, 관습이 만들어놓은 것, 내가 판단하지 않은 채 따라왔던 것들이 이제 점점 더 불편해진다.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이유는 좀 알고 하고 싶다는 작은 생각에, 이것저것 결국 따져보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결국 변명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변명해야 하는 게 그렇게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는 것보다도 그게 더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할 때 많은 시간을 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나 선생님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내 삶인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도 내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삶에는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뭔가 한다는 게 큰 결정이고 삶을 바꾸게 되는데, 나는 뭔가 하지 않는 게 큰 결정인 인생이 되어버렸다. 생활인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생활인에 더 가까워졌다. 

이제 나에게 큰 얘기는 없다. 그래도 작은 얘기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좌파로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도 큰 얘기가 아니다. 하거나 말거나, 그런 얘기다. 그렇지만 그게 같이 나눌 의미가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가 의미 없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생각하고, 하나씩 판단을 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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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참 책을 많이 읽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허리가 안 좋아서 집에 누워있던 시절이 잠시 있었는데, 그때 대만 무협지인 ‘군협지’를 읽었다. 서원평, 자의 소녀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는 노화자, 주인공들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자의 소녀의 아버지인 역천행이라는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나는.. 

그게 너무 재밌어서, 세익스피어를 싹 다 읽고, 그냥 추운 방에서 이불 쓰고 뒤집어져서 그냥 책만 읽었다. 엄청나게 읽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벌하게 소설들을 읽었다. 한국 소설들은 아주 야한 얘기가 많았는데, 진짜로 재미있었다. 그 시절에만 해도 국한문 혼용체인데다가, 세로 쓰기로 된 책들이었다. 스탠드도 변변치 않아서, 원래도 안 좋은 눈이 그 시절에 아작이 났다. 

그때 막연하게 책 읽으면서 한 평생 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강연을 아주 좋아하기도 하고, 방송은 더더욱 좋아하기도 하는데.. 이건 성격차이다. 나는 그냥 쓰는 건 그런대로 좋아하는데, 남들 앞에 서는 건 정말 별로다. 애들하고 시간 보내다가 가끔 여유 되면 글 조금 쓰고, 이렇게 사는 지금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내년도 계획을 세우면서, 일정과 고정된 일들을 더 줄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별 할 일도 없는데, 괜히 바쁜 요 몇 달 동안의 삶이 좀 아닌 것 같다 싶었다. 

코로나 정부 대응하는 걸로 봐서는, 내년 겨울에도 마스크 벗는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미룰 수 있는 것들은 다시 더 미루면서. 미국도 갔다와야 하고, 일본도 갔다와야 하는데, 언제가 될지 모른다. 

이전에 쓰던 책은 이미 손을 떠나갔고, 다음 번 책은 아직 손에 잘 잡히지가 않아서 주저주저하며 사람들과 차 한 잔 하면서 며칠을 보내는 중이다. 문득 돌아보면 소소하게 글 쓰면서 지내는 삶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중학교 때 얼핏얼핏 생각했던 그 모습에 훨씬 더 가까워져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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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에서 청년에 관한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양이 좀 되는 원고라서, 간만에 생각을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원고 청탁 받으면서 조건은 딱 하나 걸었다. mz 세대라는 표현은 안 씁니다.. 이게 좀 불투명한 개념인데, 20대와 30대를 한 곳에 놓고는 분석이 좀 어렵다. 미국 맥락에서 나온 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좀 안 맞기도 한다. 20대와 30대를 같이 넣고 분석하는 것이 실익보다는 손실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x세대가 대표적으로 미국이랑 한국이랑 상황이 달랐던 개념이다. 미국은 68년부터, 우리는 70년생 이후, 대략 90학번 정도로 끊는다. 미국식 기준으로는 내가 x세대에 해당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38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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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교 상담실에서 조그맣게 특강 부탁이 하나 왔다. 학교 상담실에 오는 학생들에게 해주는 방학 프로그램 같은 건데, 경제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해줄 수 있느냐고 정말 조심스럽게 부탁이 왔다. 

보통 때 같으면 어렵다고 할 일인데, 이번에는 좀 고민을 시작했다. 

내년 후반기에 10대를 위한 경제학을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미래 전망과 경제 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전에 쓰던 책들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불황 10년>의 흐름을 이어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거시경제에 대한 책을 한 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아예 10대 버전으로 바꾸고, 거시 보다는 진짜 마이크로의 마이크로 같은 얘기들을.. 피케티의 사회주의에 관한 책에 추천사를 달면서, 자산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원래 일정에는 없던 일인데, 내년에는 학생들하고 청년에 관한 책을 한 권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벌써 10년도 더 되었다. 학생들하고 실험적인 일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 태어나기 전이라서 그런 것도 가능했던. 그 시절의 비교적 후반부에 합류했던 친구 증의 한 명이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이다. 세상 일이라는 건 진짜 모른다. 

나도 최근의 대학생들하고 작업을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래저래 행정적으로도 그런 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성결대학교에서 벌써 세 학기째 수업을 하는 중이다. 시작하자마자 계속 코로나 기간이라서 새롭게 해본 게 아무 것도 없다. 내년에는 그래도 좀 모일 수도 있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도 세 학기째 하니까 이제 약간 익숙해지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될 건지 약간 느낌이 오기도 했다. 나도 이제는 애정이 좀 생겼다. 시간이라는 게 그렇다. 

최근에 청년 얘기들을 조금 살펴봤는데,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애정이 없다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회과학에서 대상을 연구할 때 너무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좀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애정이 아예 없으면 그 연구를 끌어가기가 그렇다. 의무감만으로 하는 연구는 너무 매말랐고, 정의감으로만 하면 끝까지 끌고 가기가 어렵다. 학위 받고 초반에 어버니즘의 연장선에서 도시빈민 연구를 좀 시도했는데, 그게 너무 의무감만으로 하려고 하다 보니까.. 내가 지쳐서 결국 손을 놓은 적이 있다. 그렇게는 오래 하기가 어렵다. 

청년을 너무 표로만 보거나, 아니면 화난 눈으로 보거나.. 보수 쪽에서 나오는 청년 얘기도 그렇고, 민주당 계열에서 나오는 청년 얘기도 그렇고, 애정이 너무 없다. 청년들이 쓴 것도 좀 읽어봤는데, 정치에 대한 환멸과 실망이 너무 커서 그런지, “너네들 다 나빠”, 이런 증오 가득한 얘기가 좀 많은 것 같다. 

애정은 연구의 기본인데, 학문이 너무 분화되다 보니까, 이런 기본에 관한 것들을 다들 잠시 깜빡깜빡 하는 것 같다. 서민이 기생충 한참 연구할 때, 기생충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었다. 예전에 방송할 때 서민이 박사 과정 준비하던 연구실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실험실에 열심히 연구했던 예전 학샣들 사진이 몇 개 붙어있었는데, 거기에 서민 사진도 있었다. 요즘처럼 서민이 유명해지기 이전의 일이다. 물어보니까 진짜 열심히 하던 선배라는 전설이 있다는.. 그가 “기생충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이 어떤 건지, 그때 약간 느낌이 왔었다. 

애정이 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들여다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온도감은 물론 결과에도 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청년을 너무 기계적으로 표로만 보고 분석을 하면, 그야말로 아나토미 방식으로 보게 되는데.. 생물학 처음 공부할 때, vivant, 살아있는 것의 속성에 대해서, 생명현상의 실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직도 잘 모른다고 얘기했던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해부학적으로 모든 것을 밝힌다고 해도 생명현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게 알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특강 부탁 하나 온 것에 대해서 한다고 할지, 어렵다고 할지, 계속 생각 중이다. 아버지가 암이라는 것은 지난 주 금요일날 알게 되었다. 아직 암 진단서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아버지는 계속 집에 가시겠다고 하시는데, 아마 집에 가시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언제 뭔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나도 일정 잡기가 아주 어렵다. 내가 병원에 가야 해서, 장모님이 요즘 아주 고생이시다. 

고양이 돌보기 시작해서, 그 뒤로 아이들 태어나고, 이제 아버지, 내 시간을 내가 결정하지 못한 게 그럭저럭 10년 가까이 된다. 많은 여성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 싶다. 

간단한 강연 하나 한다, 어렵다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날은 추운데, 비가 내린다. 오후에는 은행연합회에서 강연하기로 한 게 있다. 아주 오래된 친구가 거기에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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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night

책에 대한 단상 2021. 11. 19. 09:38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애는 목, 금이 원격 수업하는 날이다. 어제는 집에 있었다. 오늘은 내가 오전에 집에 있을 수 있어서 학교 돌봄수업 가려고 하는데, 그냥 집에 있어도 된다고 했다. 좋아한다. 집에서 하면 뭐가 좋냐고 물어보니까, 잠시 생각하다가.. 집에서 하면 마스크 안 써서 좋다고 한다. 그렇구나. 

다음 주에는 국회에 발표가 하나 있고, 하종강 선생 수업에서 강의해주기로 한 게 있다. 그것말고도 크게 써야 할 게 있는데, 이것저것 시간을 쪼개면서 꾸역꾸역. 

한 평생 사는데, 내 삶은 왜 이렇게 질척질척, 늘 힘든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사실 맘 편히 쉬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한 사람이 할 분량이 아닌 일을 이래저래 떠맡아서 했던 것 같은데, 대부분 결과도 중요한 상황이라서, 살 떨리는 살얼음판을 지나듯이 지내온 것 같다. 긴장 풀고 좀 멍하니 있어도 되는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애들 태어나고 나서는 정말 휴식이라고 할 게 거의 없다. 뭔가 하고 있거나, 애들 보고 있거나. 조금 강도가 높거나, 조금 강도가 낮거나. 

너무 긴장해서 이렇게는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없으니까 영화를 틀어놓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집중도를 조금 낮춘다. 별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틈틈이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보는 중이다. 권진아의 ‘lonely night’을 듣고, 마음 한 켠이 아련해지는 느낌이 문득. 부활의 질펀한 그루브 느낌에 익숙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https://www.youtube.com/watch?v=75ZHBcaIh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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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둘째는 학교에서 조퇴를 하였다. 학교 보건실에서는 장염일 것 같다고 했는데, 병원에 갔더니 가스가 가득 차기는 했는데, 장염은 아니랜다. 얹힌 것 같다고. 

동네에 소아과가 없다. 아니, 딱 하나 있는데, 여기가 약간 돌팔이성이라.. 여기에 갔다가 어김없이 병이 커져서 입원을 하고는 했던. 심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당장 아프다고 해서 약국이라도, 그랬더니 12살 미만은 병원 처방 없으면 약을 못 주게 되어있다고.. 별 수 없이 먼 데 병원까지 갔다. 

마침 오늘은 둘째도 대면학습인데, 집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집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하고 약 타고, 근처 시장에서 순대랑 떡볶이 사고, 배 아픈 둘째는 죽을. 오후에 큰 애는 방과후에서 로봇 실습이 있는 날이다. 그건 또 가고 싶다고 해서, 다시 큰 애 학교 데려다 주고. 

NHK에서 유전자 편집하는 걸 몇 년 전에 방영했었고, 그걸 방영한 팀에서 책을 냈다. 금방 읽을 것 같아서, 읽는 김에 마저 읽으려고 했는데, 제대로 손에 집지도 못 했다. 

그 사이에 전화가 많이는 아닌데, 딱 애들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는. 

11월은 이래저래 너무 많은 일이 몰려 있는, 지옥의 11월이다. 과연 해야 할 일들을 제 시간에 끝낼 수 있을지, 일정표 보고는 한숨이 푹 났다. 국회의장하고 식사가 잡혀 있다.. 아, 안 가고 싶다. 지금 밥 처먹고 돌아다닐 시간이 아닌데. 

술 마시자고 모임 약속이 두 개가 왔는데, 두 개 다, 이번에는 어렵겠습니다.. 

아내는 일하러 나가고, 둘째는 입원한 이후로 일주일에 두 번은 아프다고 조퇴를 하는 것 같다. 학교 보건실에서도 입원한지 얼마 안 되어서 조금만 아파도 그냥 집으로 보낸다. 

잠시 돌아보는데, 나한테 도움을 주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고, 온통 내가 돕거나 손을 보태야 하는 일 투성이다. 

내년 초에는 도서관 경제학을 마무리지을 생각이고.. 대선 지나고 나면, 거시경제에 대한 책 대신, 10대를 위한 경제학 책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출판부에 몇 년 전에 계약된 책 중의 하나다. 그냥 우리 집 애들한테 경제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은 왜 이런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자산이라는 건 뭔가.. 기대확률과 행위의 결정, 그런 얘기들을 담담하게 써보려고 한다. 시민에 대한 얘기를 그런 형식으로라도 좀 담담하게 써보고 싶다. 

며칠 동안 인공지능에서 유전공학까지, 몇 권을 내리 읽었더니, 시민단체는 근본주의자들이고, 암 것도 모르면서 언론이랑 붙어서 온갖 지랄들이다, 이런 얘기들을 너무 많이 읽었다. 나도 지식이 필요하니까 그냥 참고 읽기는 하는데.. 유전공학 얘기 하다 말고, 마르크스는 베를린 담벽과 함께 끝난 거다, 이런 얘기들이 툭툭 튀어나는 걸 너무 며칠 동안 참고 읽었다. 

아마 내년 여름이면, 누군지는 몰라도 대통령은 결정되어 있을 것이고, 거시경제의 기본 기조도 어느 정도는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 시점에는 내 삶도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을 것 같다. 

내년이면 둘째가 2학년이 되고, 이제 나도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해도 될 때인 것 같다. 3학년 되면 더 이상 애들 하교 그런 거 안 챙겨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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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se alguem

책에 대한 단상 2021. 11. 4. 00:45

유전자 관한 책 잡고 오늘 밤에는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커피 받아놓고 밤샐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로라 피기 25주년 앨범을 틀었다. 지난 주에 처음 한 번 들었는데, 다른 일 하면서 건성건성 듣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 없이 책장 넘기다가, 목소리 하나가 콱 귀로 들어와서, 어 잠시. 이 꽉 찬 목소리는 뭐지? 

disse alguem. 뭐지? 불어도 아니고, 스페인어도 아니고. 독일언가?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이런 포루투칼어다. 브라질.. (어쩌지 작년부터 포루투칼어를 기초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ㅠㅠ.)

아주 오래 전에 세종문화회관에 로라 피기가 왔었고, 그때 갔었다. 햐, 진짜 오래 전 일이다. 그 뒤에 내 삶은 그냥 아주 지 맘대로 튀는 용수철 같은 인생이 되었다. 나도 내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니 당장 다음 달에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그런 엉망진창의 인생이 되었다. 로라 피기 공연에 갔을 때에는 에너지관리공단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 뒤로 하도 많은 일이 생겨서, 그것도 굴직한 것 없이 고만고만한 일들로, 정리도 쉽지 않고, 기억도 잘 안 나는. 

disse alguem, ‘all of me’라는 재즈 스탠다드로 다 아는 노래다. 브라질 노래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고.

로라 피기가 걸그룹 출신인 것도 처음 알았다. 이게 약간 로맨틱한 얘기다. 유럽 순회 공연 중 오느날 바에서 로라 피기가 재즈 밴드에게 이 노래를 반주해달라고 하고, 나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자기 팀 매니저가 “이제 네 솔로 CD를 낼 때가 되었네.”, 그렇게 말했단다. 그리고 첫 CD를 내면서 데뷔를 하였단다. 

나도 몰랐었다. 이 배음 가득 찬 목소리는 대체 뭔가, 뭔가 몽롱한 느낌이 들어서 갑자기 찾아본. 아, 로라 피기가 이 노래로 데뷔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구나.. 

책 읽어야 되는데, 야 밤에 갑자기 내가 살아온 삶이 끈적끈적하게 되살아났다. 

 

https://youtu.be/ikKPrD4SY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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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극우파 정당 이름이 민주당이다. 그걸 안지도 얼마 안 되었다. 민주당이 맨날 나와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게 극우파다. 

스위스의 극우당 이름도 끝내준다. 영어로는 민중당. people’sparty라고 간편하게 번역하는데.. 정식명칭은 UDC, 번역하면 중앙민주연합 정도 된다. 영어로 하면 Union of Democratic Centre 정도 된다. 이걸 표기하려다 보니, 악상을 찍어야 한다. 컴 바꾸고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불어 언어팩 안 깔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깔게 되었다. 까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영어에서 언어가 하나라도 늘어나게 되면 나중에 전환할 때 좀 복잡해진다. 방법 없어서 그냥 깔았다. democratic 할 때 e에 악상이 붙는다. 

원래의 오래된 계획으로는 올해에는 실용 독일어라도 좀 해서, 뜨문뜨문 조각난 독일어를 좀 제대로 해서 소시지라도 좀 제대로 시켜먹을 수 있는 상황까지 해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밀려서 이것저것 다 꽝이다. 독일어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몇 년 전에 독일어 공부 다시 한다고 ‘서부전선 이상없다’ 영한대역본을 사다 놓은 적이 있었다. 버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디 처박혔는지도 모르겠다. 

일어랑 독일어 조금만 더 잘 하면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울 것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게을러져서 도통 접근을 못 한다. 이제 환갑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니까 환갑 전에 해야 할 일로 일어와 독일어를 올려놓았다. 사실 필요하기는 스페인어가 더 필요한데, 이건 엄두도 못 내겠다. 60이 넘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아무래도 과한 욕심인 것 같고.. 하루에 한 시간씩만 내면 되는데, 한 시간 낼 형편이 안 되는 삶을 살았나 싶다. 한 시간 낼 형편이 되면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주째 밀려 있는 시간을 지내다보니..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없는 거다. 

지금 쓰는 글만 끝내고 한다고 하는데, 한 번도 시간에 맞춰서 글을 끝내지를 못했다. 그러면 그때 하려고 했던 일이 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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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차를 바꾸면서 하이브리드에서 갑자기 전기차로 바뀌었다. 지출이 커져서 내가 타던 아반떼를 같이 팔았다. 덕분에 통장이 달랑달랑 하는 상황은 피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내의 빨간 모닝으로 돌아왔다. 조금만 타고 금방 바꾼다고 하던 게,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전기차 타다가 모닝 타면, 차가 좀 너무 안 나간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여기저기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기는 한다. 

모닝이 좀 묘하다.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도 왠지 성실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사야지, 그러면서 700만 원짜리 스피커랑 500만 원짜리 앰프를 보면서, 딱 이거야 그러는데. 30대 초반에는 이런 거 턱턱 샀는데, 몇 십년만에 바꾸는데, 이제는 좀 더 좋은 거 사야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차 살 때에는, 정말 손이 달달 떨린다. 

<모피아> 쓰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것도 벌써 10년 전이다. 그 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생겼고, 참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피아> 내던 즈음에 큰 애가 태어났다. 큰 애 낳고 복직하면서 아내가 모닝을 샀었다. 원래는 그랜저 하이브리드 살 생각이었는데, 막상 대리점에 가면서 아내가 마음이 바뀌었다. 그 돈 그냥 달라고.. 나중에 둘째가 아프고, 아내도 복직을 못 하게 되면서 사실 그 돈 유용하게 잘 썼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그랜저 샀다가 나중에 곤란한 일이 벌어질 뻔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차 덜컥 사려면 손이 벌벌 떨린다. 

아내 차는 니로를 샀는데, 차는 이거면 되었다 싶은 생각이. 기능적으로는 더 필요한 게 없다. 오히려 더 뒤에 나온 차들은 기능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내년에 그냥 같은 거로 하나 더 사면어떻겠냐고 했더니 아내가 웃는다. 미친 넘 보는 것처럼.. 해보는 생각이다. 전기 차 두 대 살 형편은 아니다. 그래도 전기 차 사고, 이것저것 관련된 일들 처리하다 보니까, 이건 정책적 배려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뭔가 무슨 본부 같은 거 있어서 부처끼리 겹치거나 한전 독점으로 생기는 문제들 해결할 좀 더 높은 단위의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한테 필요한 차는 카니발 같은 사람들 많이 타는 차다. 아버지도 내년에는 더 이상 운전하기가 어려우실테니까, 어머니, 아버지, 장인, 장모, 여기에 애들 둘까지, 우와.. 사고 싶은 차는 아반떼 n 수동, 나만 생각하면 딱 이 정도면 충분한데. 그랬는데 전기차 한 달 정도 운전해보니까, 200마력이든 300마력이든, 전기차 앞에서는 다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속력이 상대가 안 된다. 근데 좀 비싸다. 

부산을 배경으로 이승만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마음 먹자마자 바로 코로나 사태라, 부산에는 별로 가지도 못 했다. 이것저것 생각만하고 줏어담지 못한 것들이 많다. 여력이 되면 이 얘기도 마무리할 생각은 있는데, 모닝으로 부산 왔다갔다 하기는 좀 무리일 것 같다. 

이제 내가 움직여봐야 길어야 10년이다. 50권까지는 일단 쓰기로 했는데, 그것도 2~3년 내에 마무리될 것 같다. 그 뒤에는 뭐하고 살지 아직 생각해둔 것이 없다. 그렇게 멀리까지는 생각하기 어렵고, 일단 하기로 한 것부터 무난히 마무리하는 게 소원이다. 책이 점점 더 인기가 없어지면서, 책 쓰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맞춰야 할 것도 많아지고. 

토요일부터 일주일간 스위스에 간다. 그 기간에 끼어 있는 칼럼도 미리 써놓아야하고,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은데, 꼭 이럴 때면 잡생각이 더 많이 난다. 사실 꼭 읽어야 할 책도 한 권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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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병원에서, 호흡기 치료 끝나고 그림 그리며 노는 중. 병원에 약 타러 갔다가 바로 입원하게 된. 몇 년만에 다시 병원 생활이기는 한데, 어렸을 때 폐렴으로 계속 입원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때는 진짜 심각했다. 

2년만에 카메라를 고쳤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있다가 마침 할 일도 없어서. 카메라 휠 나간 김에 새 거 산다고 그러다가, 도니가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얼마 전에 고쳤다. 병실에서 할 일도 없어서 카메라 만지고 놀았다. 

이제 애들도 조금은 커서, 음악도 다시 듣기 시작하고, 사진도 다시 찍으려고 한다. 

포토 에세이는 한 번 냈었는데, 엄청나게 팔린 건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그 책 보고 인생이 변했다고 하는 연락을 가장 많이 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이전 살던 집 마당에서 고양이 사진 몇 년간 찍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내 인생도 가장 많이 변했다. 고양이들 돌보고 고양이 사진 찍으면서 결혼하고 9년만에 애들도 태어나게 되었고. 

50권 마무리 짓기 전에 포토 에세이 한 권 하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그냥 생각만 그렇고.. 뭘 찍을지는 아직 깊이 생각해둔 것이 없다. ‘깊은 심도’를 모티브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 

카메라 새로 사고 책으로 본전만 나올 자신이 있으면 벌써 했다. 그게 만만치가 않다. 

둘째 3학년 되면, 나도 이제 애들 보는 일에서는 좀 자유로와도 된다. 그때 제일 먼저 했으면 싶은 것은 국악 하는 사람들 인터뷰집. 아름다움에 대한 얘기를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져서. 틈 날 때마다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중인데, 7~8명 정도는 나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들은 거의 모를 사람들이기는 한데, 나름 음반 내면서 활동하는 젊은 현역들 만나서, 시대가 변한 것들 것 대한 모티브를 좀 잡아보고 싶다. 여건이 되면 음악 다큐도 같이 만들고, 그러면서 포토 에세이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참 나도 성격 지랄맞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한참 유명하고, 뭔가 잘 나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아무 관심이 안 간다. 꼭 정의를 위한 길, 그런 거 아니라도 뭔가 지키고 버티고, 그렇게 뭐라도 만들어 보기 위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주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나도 참 대중적인 것과는 정말로 먼 길에서 살았고,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인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옳은 것과 아름다운 것, 아마 그 축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산 것이 내 삶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돈 안되는 데에도 아름다운 것, 그것들은 진짜로 아름다운 것들이다. 치명적 유혹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하여간 간만에 파인더 뷰를 들여다보면서, 자고 있던 세포 몇 개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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