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지나갔고, 미세먼지 흔적도 없는 청명한 하늘이 나왔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날씨 좋은데 학교 안 간다고 느무느무 좋아한다. 나도 저 나이 때에는 홍수 때 비 더 와서 학교 안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21세기 들어와서 한국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학교 급식이 아주 튼튼해졌다는 것 그리고 암 환자 치료가 너무 재앙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아닐까 싶다. 애들 점심 해주려면 학교 급식 수준은 가야 심통 안 낸다. 돼지 불고기 왕창 해줬다. 엄청 먹는다. 나도 저 나이 때 무지무지하게 먹었다. 그때는 공기가 지금보다 더 큰 고봉으로 먹었는데, 두 공기는 기본 먹었고, 반찬이 조금만 맛있으면 세 공기도 먹었다. 그래도 그때는 살이 안 쪘었다. ‘우갈비’가 별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애들은 나랑 하루에 몇 번씩 칼싸움을 한다. “아빠, 밥 먹고 칼쌈 한 판?” 둘째가 요즘 칼싸움을 너무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까 둘 다 실력이 좀 늘었다. 이제 애들하고 캐치볼 해주고 싶은데, 코로나 이후로 학교 운동장이 문을 닫아서 아직도 글러브로 공 잡는 걸 가르쳐주지 못했다. 

우리의 미래는 노동 시간이 더 줄어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랑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프로이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물론 20세기 감성에는 그 얘기가 잘 안 맞았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같이 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후로 ‘코디보스’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격리 때문에 부부가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니까 이혼이 늘게 되었다는 얘기다. 21세기 감성에는 맞을까? 통계로 알기는 어렵다. 사내 결혼이나 동업자 사이의 결혼, 이런 것을 알기는 어렵다. 의사들한테 의사와 간호사들의 결혼은 점점 줄었고, 의사들끼리의 결혼이 늘어났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그런 지는 모른다. 

미동초등학교 5학년 9반 선생님과 10반 선생님이 결혼을 했는데,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부부끼리 한 학교에 있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다른 학교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법칙일까? 출산율이 지금처럼 줄어들면 사내 연애도 권장하고, 동종 업계끼리의 결혼도 더욱 권장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출산에 인센티브를 더 많이 줄 것이 아니라 연애에 인센티브를 더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잠시. 

‘사랑’이 기조인 그런 정부가 어쩌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우리는 싸우는 것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었고, 잘 싸우는 것이 최고인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다. 윤석열, 이재명, 둘 다 잘 싸우는 사람들이다. 정치나 통치를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움만은 정말 시대의 싸움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원 펀치 있는 인간들이다. 이 시대가 지나고 서로 잘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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