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나는 가끔 확 열 받는 일이 생긴다. 아직도 인간이 좀 덜 되었다. 

어제도 사소한 일로 잠시 열 받았는데, 그냥 잠이나 자자고, 그냥 누워 버렸다. 

영화 <여배우들>에 윤여정이 지나가면서 하는 대사가 하나 있다. 개런티나 출연료 깎겠다고 하면 좀 마음이 그랬다가, “내가 피부가 좀 그렇지”, 하면서 속으로 삼킨다는 얘기다. 그게 좋은 자세인 것인지, 논리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마음 속 깊이 남았다. 그게 2009년 영화다. 

<여배우들>에 보그 편집장으로 나온 기자가 요즘 인터뷰 기사로 탑을 찍은 김지수다. 김지수 기자 얘기는 패션지 관련된 곳에서 몇 번 듣기는 했는데, 얼굴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윤여정의 대사는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대사인데, 그게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래서 dvd도 사고, 가끔 보고, 또 본다. 그때 당대 최고라고 하는 여배우들 중에서, 10년이 넘게 지났을 때, 가장 성공한 사람은 윤여정이 되었다. 윤여정이 그렇게 성공하고 싶어서 발버둥쳤을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그냥 충실히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윤여정도 그렇게 “내 피부가 좀 그래” 하면서 속상한 순간들을 넘겼는데.. 몇 년 전부터 누가 내 인생의 스승이 누구냐고 하면 주저 없이 윤여정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 대사가 아니었으면, 나는 혼자 열폭하고, 벌써 내 화를 못 참고 쓰러져서 완전 망했을 것 같다. 삶이나 어려움을 더더욱 잘 참게 되었다. 

30대에 윤여정을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 집에 같이 놀러가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안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얼굴을 많이 타서, 유명한 사람들 가능하면 잘 안 보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윤여정이 지금처럼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봤다면? 아마 마음이 강퍅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 같다. 

최근에 새로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성동일이 그렇다. 원래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바퀴 달린 집>을 보고 나서, 계속 보고 또 보고 그러는 중이다.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요즘 성동일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해본다. 봐도 잘 모르겠는데, 어른이 되는 건 어떤 것인가, 그런 생각을 성동일의 <바퀴 달린 집>을 보면서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내가 아는 어른들은, <바퀴 달린 집>의 성동일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들이었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는 중이다. 

인생의 스승이란 뭔가, 오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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