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금리의 시대가 이제는 끝나간다. 미국의 연준은 대략 3.5%에서 4.5% 사이 어딘가를 적정 금리로 보는 것 같다. 돈을 빌렸으면 응당 지불해야 하는 이자율. 

아담 스미스 등 고전학파에게 자연 금리라는 개념이 있었다. 특별한 외부 효과가 없는 안정된 균형 상태에서 발생하게 되는 이자율 같은 것..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오랫동안 돈을 빌리면 이자를 어느 정도는 내는 것이 상식이었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는 2008년 이후,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로 금리,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금리인 상태가 계속 되었다. 돈을 빌리는 것이 별로 무섭지 않은 시대가 전개되었고, 돈을 빌려서 더 많은 수익률을 찾는 것이 개개인의 삶에도 중요하다는 시대가 전개되었다. 

지난 주에 상암동에 있는 누리꿈 스퀘어에 갔었다. 오마이뉴스가 이 건물에 있어서 처음 와봤던 곳이었다. 나중에 ytn과 mbc가 옮겨오면서 상암동 방송가 한 가운데 있는 건물이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여기서 밥을 먹게 되었다. 시간상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들렀는데, 맙소사! 문 연, 아니 살아남은 가게가 몇 개 안 된다. 코로나 자가격리 한참 때 홍대 앞에 일부로 조사 차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점심 시간에 연 곳이 몇 군 데 안 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건 휴업이 많았지, 완전 망한 곳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코로나 경제의 여파로 아주 긴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과 고이자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두 가지 충격이 동시에 오는 것인데, 하나는 코로나 극복을 위한 재정 지출의 여파다. 또 하나는 장기간 제로 금리가 만들어 놓은 과잉 생산의 위기다. 돈 빌리는 것에 대한 위기가 별로 없으니 재화든 서비스든, 과잉 공급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이게 조절되는 과정이 아주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70년대 석유파동이 경제위기가 되는 과정에서도 과잉 생산이 조건으로 존재했었다. 그 시절과 비슷하다. 

지금의 20대와 30대는 고금리 시절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다. IMF 경제위기가 끝나고,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한국은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잡은 나라가 되었고, 자본 과잉의 조건이 생겨나면서 이자율도 제로 금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늦은 상황이 되었다. 이 시기가 이제 끝나고, 꽤 긴 기간 동안 이어질 적정 금리 – 느끼기에는 고금리 – 상황이 진행될 것 같다. 

그럼 고금리는 얼마나 오래 전개될 것인가? 여기에는 또 다른 장파동이 하나가 변수로 작동한다. 미국의 강달러 정책, 이 기조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것인가, 혹은 그 후폭풍이 어디까지 갈 것인 것, 그런 또 다른 질문이 같이 있다. 90년대 이후 동구의 붕괴와 함께 형성된 세계화 국면이 전환되는, 그야말로 30년짜리 사이클이 개입하게 된다. 

트럼프의 정치는 많이들 얘기하지만, 경제는 거의 안 보는 것 같다. 트럼프는 외국에 간 기업들 다시 미국으로 오라고 했고,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다시 회복하려고 했다. 이게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오바마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다. 차이점은 오바마는 말만 그렇게 했는데, 트럼프는 흔히 슈퍼 301조라고 불리던 공법 301조 같은 것들을 다시 총동원하다시피 한.. wto, 그딴 건 난 모른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했다. 그게 지금의 연준의 인플레이션 논쟁의 뿌리에 있다고 본다. 

바이든 역시 그런 ‘제조업 미국’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고금리와 강달러 그리고 풍부한 고용을 제공해줄 제조업 강국, 그런 게 현재의 국제 상황을 만드는 세 축이다. 방향은 다 한 뱡향이다. 다른 나라야 죽든 살든, 미국에 풍부한 일자리를 만드는 “영광의 미국 경제”… 이걸 뭐라고 하겠나? 이 새로운 조건에 살 나라 살고, 죽을 나라 죽고.. 엄청난 구조 변화가 진행 중이다.

미국이 달러를 마구마구 찍어대며 약달러 정책을 할 때는 유태인이 장악한 연준 등 음모론도 꽤 나왔었다. 지금 딱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는 중인데, 사실 미국의 힘을 회복하기 위한 음모적 배경도 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음모론 얘기는 거의 안 나온다. 미국이 자기네 상황부터 먼저 챙기겠다는 데야..  

연준의 기준금리 상승이 끝나면 금방 이자율이 내려갈 것 같이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마 적정 금리 혹은 자연이자율 같은 논쟁이 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고전학파가 만개하던 시절과 비슷한 논의구도가.. 정책적 개입이 없고 평온한 시기, 얼마의 이자율이 과연 자연 이자율인가? 이런 논쟁들을 하게 될 것 같다. 

이자율을 낮추면 자본주의적이고, 이자율을 올리면 그렇지 않은 것이냐? 아니다. 자본주의의 내부 조절 과정의 연장이다. 재화와 서비스 그리고 화폐 사이의 균형 과정이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고, 여기에 정치가 얹히는 것 아니겠는가?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머지 일들이야 거의 법칙처럼 진행될 것이기는 한데, 한국에서는 그 충격이 더욱 클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국민 경제의 상당 부분이 빚으로 버티는 걸 너무 오래 했다. 이자율이 낮을 때 생겨난 구조인데, 이 정도 극적인 변화가 생기면 내부적으로도 또 다른 흐름이 생겨나게 된다. 

90년대 세계화 국면부터 따지면 그야말로 30년짜리 장파동을 지금부터 겪게 될 것이다. 코로나가 이러한 변화를 격발시킨 것이지만, 더욱 더 압축적으로 폭발적으로 발생했을 뿐이지, 어차피 한 번은 생겨났을 변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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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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