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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1.08 몇 달만에 비틀즈..
  2. 2022.11.04 samba pa ti 1
  3. 2022.10.22 근조 정태인
  4. 2022.10.21 아디오스 정태인 10
  5. 2022.09.22 안녕, 이인표.. 1
  6. 2022.09.08 사랑이란.. 1
  7. 2022.09.06 사랑에 대하여..
  8. 2022.09.05 책 일정 정리.. 1
  9. 2022.09.01 인생의 스승..
  10. 2022.08.31 사회적 경제를 위하여.. 2

 

몇 달만에 비틀즈를 틀었다. 별 이유는 없고, 클래식 기타로 편곡한 비틀즈 연주를 며칠 계속 듣다보니, 원래 노래가 듣고 싶어져서. 생각해보면 내가 날 위해서 하는 유일한 일이 음악 듣는 것밖에 없다.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음악을 좀 더 듣기로 했다. 

오늘 막내 동생하고 통화했다. 짧게 통화했는데, 며칠 전에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났고, 어제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실로 옮겼다. 아버지 병실에서 무리했던 후유증이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수술도 하기 힘들다고 그럴 때에는 좀 난감했다. 

몇 주 전에 병가 내고 좀 쉬라고 그랬는데, 그딴 거 없다고 들은 척도 안 했드랬다. 먹고 사는 게 뭔지. 

갑자기 회의를 해야 한다고 연락이 두 군 데서 왔는데, 사정상 나는 어렵다고 그랬다. 두 개 다 취소 되고, 다시 날자를 잡는다고 한다. 적당히 좀 하지.. 

큰 애는 손가락 욕을 해서 태권도장 관장님에게 크게 혼났고, 아직 반성문 쓰는 중이다. 둘째는 결국 비만 클리닉에 갔다. 다음 번 병원은 내가 데리러 가기로 했고. 다음 주에 합병증 검사를 하기로 했는데, 운동 많이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건 없는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비틀즈 앨범 한 장이 다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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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ba pa ti

책에 대한 단상 2022. 11. 4. 03:12

산타나는 지난 10년 동안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애 키우면서 산타나 들을 형편은 아니다. 저녁 때 어머니랑 잠시 통화하고 나서, 하이고.. 막내 동생은 병원에서 의식은 돌아오기는 했는데, 아직 자발 호흡은 못하고, 말은 못 한단다.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알려드렸다. 위급한 상황은 넘어갔고, 이제 중환자실에 있어서 한시름은 놓았다고. 어머니랑 같이 사는 바로 밑의 동생은 막내 쓰러졌다는 얘기 듣고 아프다고 누워서 아까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는 아내가 응급실에 갔다왔고.. 다음 주에는 둘째 병원에 검사가 있어서.. 이래저래 올해는 병원에서 사는 것 같다. 

20대에는 산타나 정말 좋아했다. 카를로스 산타나, 이름만 들어도 그냥 좋았다. 유학 중에 너무 돈이 없을 때가 있어서, 가지고 있던 cd랑 비디오들 중고로 판 적이 있었다. 정말 팔기 싫었던 게 산타나 공연 실황 비디오였는데, 그게 그래도 꽤 괜찮은 가격을 받았던 기억이 얼핏. 그렇게 좀 버티다가, 방학 때에는 식당에서 서빙 알바도 하고 그랬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 시절에 알바했던 경험이 사실 인생에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간만에 산타나 음악을 듣는데, samba pa ti, 아련하게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Super natural 나온 뒤에 산타나는 세계적으로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비디오 테이프 판 뒤로는 이상하게 산타나 음악을 많이 듣지는 않았다. 가끔 듣기는 했는데, 그냥 수많은 음악 중에 하나처럼 잠시 들었을 뿐이다. 

내가 살고 싶던 삶이 산타나 같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그래서 눈물이 잠시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생각하면 나도 참 먼 곳으로 왔다. 정말 너무 먼 곳으로 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맑스나 레닌을 인생의 모델로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굳이 인생의 모델이라면, 산타나와 이브 몽땅을 훨씬 더 감성적으로 좋아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땀 뻘뻘 흘리면서 얌전하게 눈 감고 음악을 음미하면서 연주하는 산타나의 모습이 너무 좋았었다. 도대체 삼바 파티라는 그 열정적인 상황에서 이 침착한 정열이란 뭘까 싶었다. 오랜만에 samba pa ti 들으면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잠시 그런 생각을. 

 

https://youtu.be/pqJXVvK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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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선배가 결국 떠났다. 하이고, 그간 일도 참 많았다. 

술도 많이 마셨고, 담배도.. 그 시기에 나는 술을 좀 줄이려고 하던 시기였고, 태인이 형은 술 말고는 달리 재미를 못 찾던 시기기는 했다. 태인이형이 술을 좀 줄인다고 하던 시기에는 와인을 주로 마시려고 했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와인바에는 절대 안 가던. 나 대신에 이재영하고 둘이 와인바에 갔었다는데, 둘 다 이제 떠나간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종일 선배는 암을 한 번 호되게 겪고, 그 뒤로는 아주 살살. 이재영은 벌써 떠났고, 너무 많은 일을 같이 했고, 너무 많은 것이 엉킨 삶을 살았는데, 정태인 선배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정말 한 시대가 넘어간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태인이형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그 날도 여의도에서 둘이서 같이 낯술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 얘기도 참 많이 들었는데. 

한 때 많은 사람들이 방배동 근처로 이사가는 게 유행이었다. 조국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 근처 일대에 살았다.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안 그래도 강남 좌파라는 소리 듣는데, 별로 그렇게는 안 가고 싶다고 했었드랬다. 그리고 나는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그 뒤로는 술 좀 덜 마실까 했는데, 뭐 크게 차이는 없이 한동안 계속. 

칼 폴라니 연구소 만들 때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나도 살아야겠다, 한 방에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을 거라서, 형도 그거 하지 마시라.. 그랬다.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잘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데 힘을 쓰는 것도 그렇고. 박원순 너무 믿지 말라는 얘기도 했던 기억이다. 전폭적인 연구 지원, 그런 건 아마 없을 거다.. 하이고, 이 사람도 벌써 떠났네. 그 뒤로도 기회 닿을 때마다 연구소에서 적당히 물러나고 본인 삶도 좀 챙기시라고,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다. 연구소 앞에 카페가 있을만한데 없다고, 카페를 꼭 내고 싶다는 얼척 없는 소리만. 

태인이형 쓰러지기 직전에 저녁 때 술 약속이 있었다. 까먹고 있었다고 나중에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쓰러지신 것 같다. 좀 지나지 않아 우리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나도 아버지 상 치루고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게 된. 

보수 쪽 인간들 중에는 이렇게 일찍 죽는 사람을 별로 잘 못 봤다. 죽어라고 돈만 벌어야겠다고 더러운 일 치사한 일 피하지 않던 교수들 중에서 좀 일찍 암으로 죽은 사례들을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참 많이들 죽었다. 

정치경제학으로 모인 사람들이 한 때 꽤 많았는데, 김수행 선생 떠나신 이후로는 태인이 형이 가장 유명하지 않았나 싶다. 그 시대도 이제 마지막인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태인이 형이 하자고 한 것들을 나는 다 싫다고 했고, 형도 내가 하지 말라는 것만 했던 것 같다. 그 시대가 그렇게 끝나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정태인과 자리를 주선하려고 했었는데, 얼굴이 급 어두워져서 결국 추진하지 못했던 기억이.. 그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오고 갔는지는 잘 모르겠고. 

마지막 통화하던 기억들은, 이젠 술 끊었다고 하면서 결국 전화 말미에는 나와서 낯술 마시자고. 애들 어린이집 다닐 때 하원하기 위해서는 낮에 시간이 있어도 술을 마실 수가 없다. 내가 술 마셔서 운전 못한다고 나자빠지면 우리 집은 비상 사태다.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내가 낮술이라도 몇 번 못 마시게 해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사신 거 아니냐는. 

정태인과의 시대, 참 술 많이 마셨고, 낮술도 진짜 많이 마셨다. 애들 좀 크면, 그렇게 적당히 낮술 같이 마시면서 노년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태인이형은 노년이 되자마자 떠나가버렸다.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학위 마처 챙겨서 하라고 내가 달달 볶았었다. 생의 마지막에 결국 학위를 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내가 말렸었다. 건강도 메롱이고, 학위 꼭 안 받아도 되는데, 뭐하러 힘들 게 그런 걸 하냐고 말렸었다. 선배는 선배인데, 하여간 말은 더럽게 안 들어 처먹은.. 북한 연구 같이 하자고 해서 그때도 한칼에 싫어요, 했드랬다. 태인이형이 말을 안 들은 건지, 내가 안 들은 건지, 지금 와서는 그것도 좀 모호하다. 

아마 내가 전격적으로 아이를 보게 되지 않았다면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태인이형과 별 특별한 의미도 없는 얘기 하면서 낮술 마시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 인생이 그렇게 풀려나가지는 않았다. 

상가에는 내일 저녁 때 가보기로 했다. 토요일, 간만에 우리 집 어린이들 데리고 같이 갈 생각이다. 상가집에 어린이들 데리고는 잘 안 가는데,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대의 사람이 아닌가 싶은.

아디오스 정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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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학도와 한참 방송하던 시절, 같이 어울리던 친구 한 명이 이인표였다. 재주가 너무 아까운 친구였다. 책을 출간할 수 있게 주선을 했던 적도 있었다. 김학도랑 셋이 같이 술 마시러 다니던 시절,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 젊었었다.


암 치료 시작한다는 얘기를 몇 년 전에 들었고, 조만간 한 번 보자고 했는데..


오늘 부고장이 왔다. 


마음 속에 또 한 명의 친구를 묻는다. 이제 51세인데, 고생만 하다가 한 번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그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한데.

안녕, 이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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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시절, 매주 나꼽살을 녹음하고, 아주 바쁘게 살았다. 좋은 세상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건강이 별로였는데, 그냥 이를 악물고, 이런 시대는 곤란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런 어느 날, 그때 살던 집 마당에 고양이들이 태어났고, 식구를 이루고 살기 시작했다. 결국 열 마리 넘는 고양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계속 태어났고, 며칠이면 몇 마리는 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또 새로운 고양이가 태어나고는 했다. 

시간은 MB 후반기로 향했고,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으로 모양을 바꾸어 한참 추진되던 그런 시점이었다. 그때 나를 가득 채운 감정이 증오라는 생각을 했다. 증오하고, 또 증오하고, 그렇게 과연 세상이 좋아질까, 그런 질문을 문득 했다. 조국 선배랑 일을 하기 시작한 것도 대략 그 시점 언제였던 것 같다. 

대선에서는 박근혜가 이겼다. 그때부터 몇 년간, 문재인과 아주 뜨거운 몇 년간을 보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세균이 국회의장이 될 즈음부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이후로 뭔가 해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애들 보면서 이제는 단촐하게 집에서 살던 고양이 한 마리만 남게 된 후, 더 이상 더 많은 고양이를 돌보지는 않게 되었다. 전세로 살던 이전 집은 마당이 아주 크고 넓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동네에 민원도 너무 많았었다. 

이재명과는 성남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 시절에도 일을 같이 했었다. 경기도지사가 된 이후 초반에 곤란한 문제들에 그가 부딪혔을 때, 좀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혼동스럽던 시절, 도와준 적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일일 뿐이다. 

나의 40대는 뜨겁게 지나갔지만, 어떻게 보면 증오 속에서 지나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좌파 에세이를 쓰면서, 혼동스럽던 나의 삶도 한 번은 정리가 되었다. 한국에서 좌파에게 주어진 자리는 거의 없거나, 아주 희박하다. 그냥 그렇게, 밥이나 먹고 살다가 죽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지키고 싶은 것, 도서관이나 지역 경제, 그런 얘기들을 조그맣게 해보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양성의 시대이고, 사람들이 조금은 더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삼각형을 그려 놓고 그 꼭지점을 향해서 모두가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사회, 그건 지옥과도 같다. 마름모꼴 사회가 쉽게 얘기하면 중산층이 많은 사회인데, 삼각형 사회보다는 이 사회가 긴장도가 조금 더 낮다. IMF 경제 위기를 경계로, 한국은 매우 빠르게 삼각형 사회로 전환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환 과정 속에서 온갖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진다. 

초기 자본주의는 철저한 피라미드 즉 삼각형 사회였는데, 자본주의가 변화하고 또 적응하면서 마름모꼴 사회를 만들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연령 구조에서 극단적인 역 마름모꼴 형태로 가는 중이다. 농가들이 먼저 만난 이 현상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문제에 해법이 없을까? 기술적 해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사회적으로 도달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시스템의 의사 결정, 이건 어려운 일이다. 대중의 결정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이게 반드시 옵티멈으로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고, 장기적으로 그게 꼭 효율적이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가 의사 결정을 독점으로 가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는 것은, 소수 독점에 의한 사회적 비용이 결국 더 크게 되기 때문이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쓰면서 다른 조건은 다 같고 내가 만약 지금 여대생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내가 지금 20세 여대생이라면 나도 결혼하지 않는 편을 선택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오늘부터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나는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성격과 조건은 다 똑같고, 사회적 조건만 바꾼 상황에서의 질문이다. 그 시절에도 짝사랑만 하고 연애는 거의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대학교 3학년 때 서울민중연합, 서민련의 반상근 간사가 되면서 내 인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도 그런 선택을 할 것일 것?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자본론>은 읽었을 것 같다. 20대 내내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으니까 아마 그건 나의 개성이 아닐까 싶다.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사랑, 여전히 미래에 대한 중요한 고민이다. 

아내랑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새만금 방조제에 올라가기 전에 삭발을 했을 때였다. 아마 지금 대학생이라도, 그렇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서 과감히 움직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책은 여전히 많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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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지나갔고, 미세먼지 흔적도 없는 청명한 하늘이 나왔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날씨 좋은데 학교 안 간다고 느무느무 좋아한다. 나도 저 나이 때에는 홍수 때 비 더 와서 학교 안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21세기 들어와서 한국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학교 급식이 아주 튼튼해졌다는 것 그리고 암 환자 치료가 너무 재앙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아닐까 싶다. 애들 점심 해주려면 학교 급식 수준은 가야 심통 안 낸다. 돼지 불고기 왕창 해줬다. 엄청 먹는다. 나도 저 나이 때 무지무지하게 먹었다. 그때는 공기가 지금보다 더 큰 고봉으로 먹었는데, 두 공기는 기본 먹었고, 반찬이 조금만 맛있으면 세 공기도 먹었다. 그래도 그때는 살이 안 쪘었다. ‘우갈비’가 별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애들은 나랑 하루에 몇 번씩 칼싸움을 한다. “아빠, 밥 먹고 칼쌈 한 판?” 둘째가 요즘 칼싸움을 너무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까 둘 다 실력이 좀 늘었다. 이제 애들하고 캐치볼 해주고 싶은데, 코로나 이후로 학교 운동장이 문을 닫아서 아직도 글러브로 공 잡는 걸 가르쳐주지 못했다. 

우리의 미래는 노동 시간이 더 줄어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랑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프로이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물론 20세기 감성에는 그 얘기가 잘 안 맞았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같이 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후로 ‘코디보스’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격리 때문에 부부가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니까 이혼이 늘게 되었다는 얘기다. 21세기 감성에는 맞을까? 통계로 알기는 어렵다. 사내 결혼이나 동업자 사이의 결혼, 이런 것을 알기는 어렵다. 의사들한테 의사와 간호사들의 결혼은 점점 줄었고, 의사들끼리의 결혼이 늘어났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그런 지는 모른다. 

미동초등학교 5학년 9반 선생님과 10반 선생님이 결혼을 했는데,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부부끼리 한 학교에 있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다른 학교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법칙일까? 출산율이 지금처럼 줄어들면 사내 연애도 권장하고, 동종 업계끼리의 결혼도 더욱 권장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출산에 인센티브를 더 많이 줄 것이 아니라 연애에 인센티브를 더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잠시. 

‘사랑’이 기조인 그런 정부가 어쩌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우리는 싸우는 것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었고, 잘 싸우는 것이 최고인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다. 윤석열, 이재명, 둘 다 잘 싸우는 사람들이다. 정치나 통치를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움만은 정말 시대의 싸움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원 펀치 있는 인간들이다. 이 시대가 지나고 서로 잘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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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년 뒤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빠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면, 한국 사람들은 정치 일정에 맞춰서 미래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5년에 한 번 대선, 4년에 한 번 총선, 이때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맞다. 그리고 미움과 증오 혹은 희망과 같은 많은 감정이 동원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세상이 선거를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엄청난 변화가 생겨날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꼭 그게 다인 것도 아니다. 

길게 흐름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은 한국 자본주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새로 생겨나는 문제, 오래된 문제에 대해서 이 시스템이 어떻게 적응하거나 혹은 실패하거나, 그렇게 보는 방식이다.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냥 경제라는 눈으로 한국을 보고, 세상을 본다. 그게 제일 편해서가 아니라, 그 방법 외에는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면 세 끼 걱정은 안 하고 살아도 되는 나라다. 파리에 있던 시절, sdf라고 불렀는데, sans domicile fix, 영어로 홈리스가 꽤 많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부자들이 잘 사는 나라는 만들기 쉽다. 그건 정말 최빈국 아니면 어지간하면 다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중산층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는 아마 케인즈가 아니었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여파인지, 아니면 케인즈의 영향인지는 역사 속에서 모호하다. 아마 이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크루그먼이 ‘대압축 시대’라고 부르는 기간, 많은 선진국이 여기에 갔다. 

우리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 가기는 했던 것 같은데, IMF 경제위기와 함께 전혀 다른 형태의 위기가 왔다. 중산층의 삶은 어느 정도는 만들었는데, 이제 중산층의 재생산에 위기가 왔다. 자본주의 초기에 그랬듯이, 중산층은 아주 위태로운 계급이고, 정치적으로도 특정한 방향성이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방향성들을 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상대적 빈곤 문제와 함께 후기 자본주의가 갖게 된 안정성의 근간인 중산층 재생산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이고 오래 갈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내 주변에는 그야말로 온통 보수 쪽 인간들이 그득했다. 대기업 사람들, 공기업 인간들,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가득 있었다. 나는 결국 그곳에서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2.
2016년은 내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원래도 약했던 둘째가 연이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아내는 결국 다시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결국 하던 일들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애들 보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되었고, 그냥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좀 다른 가능성이 몇 번 있었는데, 차관급 자리를 한 번 고사했고, 공기업 사장도 몇 번 안 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게 그렇게 좋았더라면 진즉, DJ 때 청와대에 갔었을 것이다. 아침에 일찍 나와야 된다고 해서, 되었다고 했드랬다. 높은 자리에 가거나, 사장이 될 기회는 그 전에도 많았다. 새벽에 나와야 되는 게 싫어서 청와대 안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돌았다고 그랬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뒤에도 청와대 갈 기회는 몇 번 더 있었는데, 그게 내 인생의 행복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결국 청와대 대신 총리실로 가게 되었다. 그때 내가 행복했었나? 앞에서 하는 얘기와 뒤에서 하는 얘기가 다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그리고 나에 대한 판타지도 그때 다 사라졌다. 

그 시절에 대인 기피증이 심해졌다. 건강도 안 좋아졌다. 내가 행복한 것, 그건 혼자 조용히 처박혀서 생각하는 순간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 시절에 내 성격이 변한 것인지, 원래 그랬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배신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냥 사람은 원래 그런 거다,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이재영과 노회찬과 뜨거운 몇 년을 보낸 것은 그 후였다. 회사는 그만두고, 아직 책은 내지 않았던 시절, 내 삶은 가난하지만 즐거운 시절로 변했다. 그 시절에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녹색당 당원으로서의 내 정체성은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 

시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났고, 20년 가까이 지났다. 내 인생의 친구라고 할 이재영은 벌써 떠났고, 오재영도 떠나고, 노회찬도 떠났다. 뜨거웠던 한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이 사라진지 몇 년이 지났다. 

올해 아버지가 떠나셨다. 긴 시간은 아닌데, 병실에 있던 동안 나도 건강이 안 좋아졌다. 막내동생은 결국 입원을 했다. 아마 나도 그때 병원 갔으면 입원해야 한다고 그랬을 것 같다. 나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혼자 남은 어머니가 많은 어려움의 근원인 것 같다. 원래도 좀 그러셨는데, 치매가 본격 시작되면서, 어머님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 지난 주에는 같이 살던 둘째 동생이 집을 나갔다. 어머니 보고 싶어하는 며느리가 없다. 아버지 집도 정리를 하고, 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아파트로 옮기기는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남겨 주신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버지의 집을 팔면, 적당한 집으로 옮길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택도 없다. 

애들 보는 건 점점 더 쉬워지고 있지만, 방학 때는 정말 헬.. 지옥 같다. 그리고 그 방학이 지난 주에 끝났다.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다. 

나는 원래도 특별한 욕망이나 그런 게 없는 스타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바라는 게 있다면, 60살 되기 전에 지금 쓰고 있던 50권을 마무리해서, 더는 특별하게 뭘 해도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던 학교를 그만둔 것은, 나도 시간 관리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 그냥 버티면 정년까지 있을 수는 있는데,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랑 비슷한 사이클로 살아가던 친구들이 대부분 먼저 떠나갔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해서,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긴장도가 너무 높은 삶을 살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이를 먹는다. 아직까지는 생각이 좀 나기는 하지만, 평생 이럴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60이 넘으면 뭘 하고 지낼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된다. 여백이 많은 삶, 그렇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정도가 작은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3.
원래 2~3년 출간 계획을 잡아 놓고, 그렇게 움직이는데, 지난 몇 년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있으나 마나한 계획이 되었다. 계획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 것도 있지만, 나도 그냥 하기로 했으니까 일단 이 일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제일 먼저 쓸 책은, 이재영을 위한 책이다. 출판사 레디앙이 요즘 많이 어렵다. 이재영이 민주노동당에서 나온 후, 먹고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 만든 출판사가 레디앙이었다. 레디앙이 문을 닫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저출생 문제를 다루는 책을 하나 하기로 했다. ‘노동 희소’라는 개념에 대해서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이걸 10대로 관점을 확 옮겨서 분석해볼 생각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그야말로 “띠끌 모아 태산”, 그런 심정으로 기회 닿는 대로 고등학교 강연도 많이 갔고, 중학생들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늘려왔다. 그래도 충분치는 않지만, 그래도 좀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미 많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도서관 경제학이 다음 차례다. 도서관 얘기는 먼저 하나 뒤에 하나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윤석열 정부가 도서관에 아무 관심 없는 지금이 딱 이 책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윤석열도 그렇고, 윤석열 주변 사람들은 정말 책 안 보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 흔적이 좀 남는데, 그런 흔적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책은 안 보고 사교에는 능통한 사람들, 그게 윤석열 정부의 고위직 특징이 아닐까 싶다. 고위직 중에서 도서관에 가장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권양숙 여사였다. 그 시절에는 ‘여사님 관심 사업’이 도서관이었다. 나에게 도서관에 관한 걸 좀 다루어보면 어떻겠냐고 얘기해준 사람도 권양숙이었다. 이 얘기는 책에 좀 자세하게 넣을 생각이다. 도서관 관련된 일을 하면, 나중에 나이 먹고 한적해져도 책을 여기저기서 계속 보내준다고.. 나름 감동적인 얘기였다. 유명하거나 높은 사람들 만나면 20분, 길어야 20분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낸다. 권양숙의 경우는 1시간이 좀 넘기는 했지만, 몇 사람 같이 만난 거라서.. 그 시간 동안에 도서관 얘기를 가장 열정적으로 한 경우였다. 한참 된 일이지만,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된 게 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원래는 필라델피아에 가서 처음 몇 페이지를 쓰는 걸로 일정을 잡았었다. 실제 계획도 세웠는데, 그 후에 바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택도 없게 되었다. 현대식 도서관의 역사와 근대식 소방서의 역사가 같다. 도시가 형성되면 제일 급한 것 중의 하나가 소방서다. 그런 얘기가 나는 너무너무 재밌었다. 가정에 비치하는 소화기가 소방서를 대치할 수 있나? 도서관은 그런 것이다. 

도서관 경제학보다 젠더 경제학을 먼저 하는 게 나을 거라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그 뒤로 순서를 바꾸었다. 제일 큰 건 인터뷰 작업을 좀 할 필요가 있어서, 절대 시간이 좀 필요하다. 사실 여기에 배치하려고 했던 많은 것들을 직장 민주주의와 좌파 에세이 등에서 많이 빼서서, 새롭게 내용을 재구성할 필요가 생겼다. 내용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좀 더 디테일을 살리려면 결국은 인터뷰 작업을 좀 해야 한다. 올 겨울 방학까지는 애들 보느라, 택도 없고.. 내년 봄은 되어야 최소한의 여건이 될 것 같다. 내년까지만 애들 학교 하는 거 도와주면, 길고 길었던 육아도 이제 끝나간다.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나도 해방이다! 

아주 오래 전에 약속해 놓은 책이 두 권이 더 있는데, 그건 젠더 경제학까지 정리하고 다시 생각해볼 생각이다. 

처음 데뷔할 때에 비하면, 책의 힘이 사회적으로 엄청 약해졌고, 한 명 한 명 버티는 것들도 다들 힘들어하는 것 같다.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으면서 글 쓰고, 보고 싶은 것 살펴보면서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대단히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은 든다. 사회과학 저자 중에서 몇 명이나 그냥 책 쓰면서 삶이 대단히 고통스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60년대 후반, 경제인류학의 길을 열었던 마살 살린스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말이 있었다. “want not, lack not”, 원하지 않으면 부족한 것도 없다.. 나의 넉넉함도 이런 것과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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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나는 가끔 확 열 받는 일이 생긴다. 아직도 인간이 좀 덜 되었다. 

어제도 사소한 일로 잠시 열 받았는데, 그냥 잠이나 자자고, 그냥 누워 버렸다. 

영화 <여배우들>에 윤여정이 지나가면서 하는 대사가 하나 있다. 개런티나 출연료 깎겠다고 하면 좀 마음이 그랬다가, “내가 피부가 좀 그렇지”, 하면서 속으로 삼킨다는 얘기다. 그게 좋은 자세인 것인지, 논리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마음 속 깊이 남았다. 그게 2009년 영화다. 

<여배우들>에 보그 편집장으로 나온 기자가 요즘 인터뷰 기사로 탑을 찍은 김지수다. 김지수 기자 얘기는 패션지 관련된 곳에서 몇 번 듣기는 했는데, 얼굴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윤여정의 대사는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대사인데, 그게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래서 dvd도 사고, 가끔 보고, 또 본다. 그때 당대 최고라고 하는 여배우들 중에서, 10년이 넘게 지났을 때, 가장 성공한 사람은 윤여정이 되었다. 윤여정이 그렇게 성공하고 싶어서 발버둥쳤을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그냥 충실히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윤여정도 그렇게 “내 피부가 좀 그래” 하면서 속상한 순간들을 넘겼는데.. 몇 년 전부터 누가 내 인생의 스승이 누구냐고 하면 주저 없이 윤여정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 대사가 아니었으면, 나는 혼자 열폭하고, 벌써 내 화를 못 참고 쓰러져서 완전 망했을 것 같다. 삶이나 어려움을 더더욱 잘 참게 되었다. 

30대에 윤여정을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 집에 같이 놀러가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안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얼굴을 많이 타서, 유명한 사람들 가능하면 잘 안 보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윤여정이 지금처럼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봤다면? 아마 마음이 강퍅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 같다. 

최근에 새로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성동일이 그렇다. 원래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바퀴 달린 집>을 보고 나서, 계속 보고 또 보고 그러는 중이다.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요즘 성동일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해본다. 봐도 잘 모르겠는데, 어른이 되는 건 어떤 것인가, 그런 생각을 성동일의 <바퀴 달린 집>을 보면서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내가 아는 어른들은, <바퀴 달린 집>의 성동일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들이었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는 중이다. 

인생의 스승이란 뭔가, 오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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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강연을 하고 돌아왔다. 요즘 강연 거의 안 하는데, 꽤 전에 약속한 거라서. 

세종시 정도면 만만하게 갔다올 줄 알았는데, 난 데 없이 비가 내려서 길이 엄청 막혔다. 점심 먹을 시간까지 넉넉하게 잡고 갔는데, 길이 밀려서 그럴 형편이 안 되었다. 이게 올해 마지막 강연이 아닐까 싶다. 요즘 시간 관리가 너무 어려워서 학교도 그만 둔 형편이라서, 다른 건 더 하기가 어렵다. 

사회적 경제 책 내면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흐름과 세계적 흐름을 한 번 정리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지는 않는데, 이래저래 기본에 해당하는 교양 강연 같은 부탁은 많이 온다. 다들 어렵고 형편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어지간하면 도와주고는 싶은데, 나도 비상 상황이라. 

비가 오락가락, 길은 겁나게 밀리는 경부 고속도로에서 이것저것 생각을 좀 해보다가..

문득 지금 정도 시점이면,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에서 결정적인 티핑 포인트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난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을 맞을 수 있는 전환점에 온 것 같다. 

생협,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이런 새로운 시도들만 가지고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얘기들도 만들어내는 그런 방송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익도 공익이지만, 고용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 자치의 일환으로 학생 생협과 매점, 그런 것들도 의미가 있는 활동일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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