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한가정학회 등 몇 개 학회가 공동으로 하는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 발표를 했다. 가끔 이런 기조강연을 하는데, 이번에는 공을 좀 들였다. 요즘 한참 쓰고 있는 저출생에 관한 책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끝나고 나서 고맙다는 연락이 좀 왔다. 나름 생각할 거리가 좀 있었던 것 같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학회에서 하는 일들은 당장은 변화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구에겐가 영향을 준다. 그 영향은 물론 아주 작을 수도 있지만. 그런 점에서 학자들이 하는 일과 기자들이 하는 일은 다르다.
처음 학회에서 발표할 때, 맨 앞 줄에 돌아가신 김수행 선생을 비롯해서 당시 원로들이 많이 앉아 계셨다. 전원 재웠다. 학회에서 참 많은 사람들 재웠다. 한번은 환경 관련된 발표를 했는데, 앞줄에 앉은 사람들은 물론 사회자까지 재웠다. 거의 기록적으로 많은 사람들 재웠다.
권영길도 재웠고, 단병호도 재웠다. 책 내기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 나는 너무 날카롭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지만, 발표할 때면 원로들 재우는 걸로도 유명했다. 당황스럽기는 한데, 어쩔 방법이 없었다.
분명 나는 김수행 선생 깊이 주무시는 걸 봤는데, 나중에 인상 깊게 들었다고 연락이 오기는 했다. <청년을 위한 경제학 강의>에 맨 마지막 글을 그렇게 쓰게 되었다. 그게 커지고 커져서, 결국 50권 가까운 책을 쓰게 되는 단초가 된 거 아닌가 싶다. 짧은 글이었는데, 연락이 참 많이 왔었다.
돌아보면, 결국에는 경제학자로 평생을 살게 되었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그 너머의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몇몇은 좀 더 많은 돈을 위해서, 또 몇몇은 좀 더 나은 대우를 위해서 움직였다. 나는 그냥 돌고 돌아서, 적당히 살아도 되는 삶을 선택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적당히만 한다. 아직은 우리 집 어린이들 돌보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나머지 시간에 적당히… 그러면서 조금은 배우는 것도 있고, 몸 안에 잔뜩 배어있을지도 모르는 근성 같은 게 빠져나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근성, 그딴 건 필요 없다는 걸 배우는 데에 몇 년이 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