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게 내가 하는 일이 되었다. 물론 작년에는 책이 아예 안 나오기도 했다. 

어느 집이나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재작년 겨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후, 6개월 정도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연이어 막내 동생이 쓰러졌었다. 그런 건 큰 일이다. 

지난 가을에도 둘째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 건 작은 일이다. 그리고 또 큰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머님 생신이셨는데, 움직일 형편이 안 되어서 그냥 간장게장 선물 보내고 넘어갔다. 원래는 멍게장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평소에 드시던 음식이 아니라서 어떨지 몰라서 그냥 안전하게. 

나에게는 꽤 긴 기간 동안 별 특별한 일도 벌어지지 않고, 그냥 아무 일도 없이 지내는 중이다. 평탄하다면 평탄하게, 무료하다면 무료하게 지내는 중이다. 

책을 쓰는 게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책을 내고 싶었던 것은 맞다. 그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인지, 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 영광을 구하는 스타일이거나, 뭔가 좀 화끈한 걸 원하는 성격 혹은 남들 앞에 서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면 이렇게 사는 게 좀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했는데, 이제 그렇게 학교에 왔다갔다 하기에는 나도 좀 나이가 많다. 그리고 애들 보면서 하려니까, 시간 관리가 안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가리친다는 건 이제 포기했다. 그리고 나니까 특별히 답답할 건 없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책을 쓰고 싶어서 책을 낸 건 아니고, 할 얘기가 있어서 책을 썼던 것 같다. 책을 쓰기 위해서 엄청나게 그때부터 준비를 하거나 그런 적은 별로 없다. 이미 알고 있고, 언젠가 얘기하기로 생각하고 있던 게 차례가 되면 그걸 쓰는 스타일이다. 통계나 자료를 확인하는 것 말고, 이제부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면.. 그런 책은 쓰지 않는다. 아니 못 쓰는 거다. 이미 관련된 경험이나 하고 싶은 얘기가 차서 한 권이라는 분량 안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설계와 압축 같은 게 문제일 때 출간 목록에 올린다. 궁금하거나 알고 싶다, 그런 정도의 상태에서는 책까지 쓰는 건 무리다. 

내년이나 후년 어디쯤에서 50권이 될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면 내가 알고 있는 게 바닥이 나지 않을까 싶다. 그후에는 뭐하면서 살지, 아직 생각해둔 게 없다. 그런 것까지 미리 생각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아주 어려서부터도 그랬고, 그후로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뭐 특별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런 성격이 책 쓰는 데에는 잘 맞는 것 같다. 특히 지금처럼 책이 어려울 때에는 말이다. 

그래도 책을 쓰면서 지금까지 짧은 몇 번의 기간을 제외하면,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불편하지 않았고, 크게 곤란을 느낀 적도 없다. 엄청나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정재가 영화 <오 브라더스>에서 말했던 것처럼 “제 마음대로 살겠습니다”, 그런 스타일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편안해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사정이 마음에 들어온다. 편안해지면 더 위를 보고, 더 큰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난 그러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편안해지면 주변에 굶는 사람은 없는지, 내가 누리는 이 작은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가게 된다. 대체적으로 그렇게 살았다. 

내가 가장 형편 없는 사람으로 보는 집단은 자녀의 행복에 목숨을 건 부자들이다. 사람이 돈을 좀 벌면, 그 다음에 자녀가 평생 살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래서 거기까지 간 사람들을 좀 안다. 그 다음에는? 그 시점에는 보통 손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다음부터는 손주 먹고 사는 것까지 해놓는다고 또 죽어라고 산다. 그냥 옆에서 내가 지켜본 것은, 그때가 딱 이혼에 대한 위기가 오는 순간인 경우가 많다. 자식 생각, 손주 생각을 하면서 평생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다고 하는데, 사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돈을 쫓아 평생 달려온 거고, 정작 식구들은 거기에서 소외되었을 상황이 많다. 

아주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래도 부인들이 그냥 버티고 참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 또래만 되어도 그런 부인은 별로 없다. 손자까지 생각하면서 죽어라고 살면, 딱 그때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후회를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아니 후회라도 하면 그래도 좀 해결할 방법이 있다. 후회도 안 하고, 분노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았다. 배신감에 부들부들 떤다. 

자기가 살았던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기는 아주 어렵다. 특히 성공한 남자일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아내랑 환갑 넘어서 해외 여행을 갈 수 있으면, 그것만 해도 일단은 선방한 인생 아닌가 싶다. 뒤늦게 이혼한 사람 중에 아내랑 해외여행 갔다가 결정적으로 이혼한 사례도 좀 봤다. 아내가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 결심하게 된. 

나에게 책을 쓰는 것은 이제는 그냥 일상적인 일이다. 특별히 티내거나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책의 첫 문장을 시작할 때, 마무리를 준비할 때 혹은 중간에 중요하게 한 번 꺾고 들어가야 할 때, 신경이 곤두서기는 한다. 전에는 그럴 때면 술을 며칠씩 퍼마시고는 했었는데, 요즘은 그냥 식구들하고 짧게 여행을 간다. 번잡스러운 것도 싫고, 남들 불편하게 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요란스럽지 않고, 번접스럽지 않고, 그래도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기는 하고. 그리고 혹시라도 간절히 필요했던 사람에게는, 제대로 책이 배달될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책은 뭘 쓸지 그리고 어떻게 쓸지, 이렇게 두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래도 내가 행복한 것은 뭘 쓸지를 가지고 고민한 적은 없었던 점 아닌가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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