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16건

  1. 2020.08.25 왼손 마우스.. 1
  2. 2020.08.08 겉얘기와 속얘기..
  3. 2020.07.15 해체와 재구성..
  4. 2020.07.10 감정에 관하여..
  5. 2020.07.01 지난 얘기와 앞으로 올 얘기들.. 2
  6. 2020.07.01 참새의 미학..
  7. 2020.06.15 부지런하지 않은 삶.. 4
  8. 2020.06.08 코로나 강연들을 맞아.. 2
  9. 2020.06.05 책을 쓰는 동기.. 5
  10. 2020.06.03 후회하지 않는 삶.. 3

오른쪽 어깨가 몇 달째 계속 아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딱 마우스 드는 그 각도다. 내가 무슨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정도인데.. 

책 내던 초장기에는 키보드 치는 어깨가 많이 아팠었다. 만년필로도 쓰고, 가급적이면 자판 덜 치려고 했었다. 그 짓도 오래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요령이 좀 생겼다.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하고, 꼭 뭔가 써서 해야 할 때에는 종이에다 만년필로 미리 밑그림을 좀 그리고.. 

책 쓰는 시간에는 어쨌든 긴장해서 자판을 치게 된다. 애들 태어난 다음에는 책 쓰는 시간도 하루 두 시간으로 줄였다. 막판에는 좀 더 하기도 하는데, 매일 그 정도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다. (대가리가 부족하지!) 그 시간에도 안 되는 건,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준비가 부족해서다. 준비가 될 때까지 뒤로 미루고, 준비가 된 걸 먼저..

게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뭘 더 한 것도 아닌데 마우스 쥐는 오른쪽 어깨가 아픈 건.. 대가리 쓰는 게 귀찮다. 그냥 마우스를 왼손으로 옮겼다. 생각보다 어색하다. 그래도 오른 쪽 어깨가 풀리려면, 어색한 걸 참는 게 나을 것 같다. 습관이라는 게 무섭다. 

올 연말까지는 사람들 만나는 거나 새롭게 뭔가 하는 것들을 극도로 줄이고,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몸도 좀 추스르고. 애들 키우다 보니, 정말로 심신이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뭘 할 수도 없는 시기다. 

2020년은 아마도 마우스를 왼손으로 쥐게 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나머지야 뭐, 그렇게까지 감동적으로 가슴에 남을 일이 벌어지지가 않았고, 또 남은 시간에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왼손 마우스는 어색하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색한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게, 남은 인생을 덜 어색하고, 덜 불편하게 사는 방법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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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기부터 한 과목씩 수업을 하게 되었다. 뭐, 아무 거나 해도 된다는. 그래도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으라고 했다고, 막상 아무 거나 하라고 해도 아무 거나 하기는 어렵다.

이번 학기는 말고, 좀 준비를 해서 다음 학기 수업 제목을 '겉얘기와 속얘기'로 하면 어떨까 싶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또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다.

이번 정부를 보면, 딱 겉얘기와 속얘기라는 틀을 사용해서 분석하기가 좋은.

겉얘기는 조국 이후로 맨 앞에 선 검찰 얘기. 속얘기는 집값 파동으로 터져나온 경제 얘기. 겉얘기는 화려하기는 하지만, 진짜 큰 울림은 속얘기에 들어가 있다.

공격과 수비로 바꾸어도 비슷한 얘기가 된다. 정치는 공격에 해당하고, 경제는 수비에 해당하는데, 단기적으로는 정치가 최고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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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건이 지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머리 복잡하고, 심경도 복잡하다. 

트라우마로 얘기하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다. 영화 명랑에 최민식이 영화 끝에서 말한다. "이 많은 원혼을 다 어쩔 것이냐." 조선 수군이든 일본 수군이든, 명랑에서 원혼이 된 것은 마찬가지다. 

일장공성만골고라는 말이 있다. 장군 한 명이 이름을 드높이는데 만 개의 해골이 뒹굴게 된다는.. 참 슬픈 얘기기는 하지만, 이건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젠더 경제학 책을 좀 빨리 쓸 수 없느냐는 얘기를 몇 군데에서 들었다. 

직장 민주주의 책에서 젠더 민주주의라는 장을 하나 열었던 적이 있다. 생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좀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생활 민주주의의 하위 개념이다. 좀 더 상위의 개념으로서 생활 민주주의를 얘기하기에는, 아직은 좀 빠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젠더 경제학에서는 생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직장을 너머 가족 같은 데로 좀 더 전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가고 싶은 것은, '남성 엘리트주의' 그 이후의 사회에 대한 표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일종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내 방식대로 펼쳐보는 것 아니겠나 싶다. 지역에 대한 얘기는 많이 했고, 젠더에 대한 얘기도 좀 했는데, 그걸 좀 더 종합적으로 생활 민주주의 방식으로 언젠가 그려보고 싶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생활 민주주의에서는 여전히 좀 약하다. 

그렇기는 한데.. 젠더 민주주의 같이 작업하던 에디터가 결국 출판사를 그만 두었다. 책 출간 일정 당기기는 커녕, 제 날자에 맞추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출간을 당기기는 커녕, 제 날자에 내기도 어렵다. 나는 에디터랑 몇 년간 호흡을 맞추면서 새로운 책들을 같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무나 그냥 같이 하는 거, 그런 식으로는 책을 못 쓴다. 몇 번, 에디터가 바뀌게 되어서 그냥 해봤는데.. 공교롭게도 그런 책들이 다 망했다. 최근에 그런대로 괜찮은 성과를 낸 책들이, 다 오래 된 에디터들과 오랫동안 준비해서 정석대로 낸 책들이다. 뭐, 그렇다. 예전에는 책 사정이 좀 괜찮아서, 크게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은 책들도 선방을 하기는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되기가 좀. 출판사는 바꾸어도 에디터는 안 바꾼다. 

나도 50이 넘으면서, 이제 모르는 에디터랑 쉽지 않은 내용을 얘기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맞춰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 내가 움직여야 얼마나 움직이겠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몇 년 안 된다. 

정부연구소나 공기업 기관장을 안 한다고 한 것은.. 그게 임기가 2~3년이다. 한 턴, 어쩌면 두 턴하고 나면 나의 50대는 다 간다. 그러면 끝이다. 그 나이에 다 늙고 병든 몸으로 뭘 또 하겠나. 근혜 시절이었다. 광주도시공사 사장직 제안이 왔을 때에는 정말로 고민을 좀 해었다. 내가 생각하던 지역에서의 공간 정책, 그런 걸 진짜로 해보고 싶기도 했었다. 일주일 고민했는데, 결국 그 길이 아닌 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내가 공직을 안 한다고 마음을 먹은, 그야말로 definitly.. 그 순간이다. 

지금 와도 그 순간을 별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차관이니 장관이니, 혹은 기관장이니 그런 건 인생의 목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번도 그런 걸 목표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지금 와서 친구들이 이제 높은 자리에 갔다고 나도 한 번, 그렇게 살아온 걸 바꾸면 어렵게 지냈던 나의 청춘과 30대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진다. 그 순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어려운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대나 30대나, 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늘 우리는 핍박받고 있었고, 도망다니거나 숨어서 뭔가 했다. 그러다가 다들 먹고 살게 되거나, 아니면 힘 있는 자리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변했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젠더 경제학에 대한 부탁을 받은 건, 10년도 좀 넘은 어느 날, 여성 경제학자들, 정확히는 누님들이 니가 그런 걸 좀 해라.. 그렇게 시작된 거다. 아직도 마무리를 못 했다. 이제는 그 질문을 마무리할 순간이 온 것 같다. 

나 혼자 생각한 건데, 그냥 나는 움직이는 동안, 등대 같은 삶을 살면 좋겠다는.. 폭풍우 치고 깜깜한 밤에 조그맣게 불을 밝히는 등대 같은 삶이 되면 좋겠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격랑이 이는 깜깜한 밤에 뱃길을 나서지는 않는다. 그 순간에 뭔가 항해를 해야하는 사람들은 다들 먹고 살아야 하거나, 매우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먼저 움직이고 늘 최전선에 있으려고 한 건, 그런 이유는 아닌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내가 책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건, 이게 수단이 아니라서 그렇다. 나에게 책은 다른 일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이게 목적이고, 다른 게 수단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서 또 자료를 줄 사람을 만나고.. 그런 게 수단이 된 셈이다. 그리고 점점 더 어렵고, 점점 더 까다롭고, 그리고 또 점점 더 안 팔릴 책을 쓴다. 그런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다행히 책을 쓰면서도 먹고 사는 걸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애들 먹고 싶은 거 사주고, 갖고 싶다는 장난감 사주는데 궁색하지는 않게 산다. 고생하는 후배들 가끔 밥 사줄 때 싼 것 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는 산다. 

젠더 경제학을 거쳐 생활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은, 쉬운 길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언젠가 넘어가야 하는 산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멋지거나 고귀한 그런 학술적 목표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지체된 것이고, 그 지체가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 

큰 애에게 만 원짜리 비상금을 두 번 주었다. 그랬더니 이게.. 학교 문방구 앞에서 조그만 레고 장난감을, 정말 쓸 데 없는 걸 몇 개 샀다. 엄마한테 혼났다. 그런데 둘째가 형아가 가진 장난감을 보면서 심통이 났다. 지난 주에는 자기도 문방구 앞에서 본 게 있는데, 사주면 안 되냐고 나한테 물었다. 이번 주에 같이 가서 사준다고 주말에 대답을 했다. 어제 저녁에 둘째가 문방구에 언제 갈 거냐고.. 애들한테 뭔가 약속을 하면 빚쟁이가 된다. 갚을 때까지 계속 추심이 진행된다. 오늘 저녁에 간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둘째 어린이집 가는 길에 저녁 때 몇 시에 문방구 갈 거나고 물어본다. 집에 오면 바로 간다고 했다. 

가끔 일정이 꼬여서 '환장할 일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삶이 환장할 삶은 아니다. 

출간 일정을 보면 좀 빡빡하다. 거기에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부탁이 좀 많이 온다. 그 중에는 가끔 내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삶의 나락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잔뜩 뭐가 꼬여버린 사람들의 부탁도 끼어 있다. 모른 척 하기가 어렵다. 제가 해드릴께요, 그러고 나서는 집에 와서 후회한다. 그렇게 '환장할 일정'이 더 환장스럽게 된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해? 

애 보는 아빠한테 해달라는 것들이 좀 너무 많은 듯 싶다. 그래도 그냥 웃으면서 하는 게, 평생 이렇게 살았다. 

해야 할 일이나 내려야 하는 결정이 너무 많아서 잠시 먹먹해진 아침, 깃발이 아니라 등대로 살기로 생각한 30대 중반이 잠시 생각났다. 

"자기야, 나 좀 도와줘." 그 시절에 이재영이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깃발이 되는 삶을 내려놓고 이재영을 돕는 선택을 했다. 이재영은 노회찬을 도왔고, 나는 이재영을 도왔다. 그 이재영은 벌써 죽었고, 노회찬도 죽었다. 내가 뭘 위해서 살아야 할지, 그런 것은 이제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을 모으거나, 뜻을 모으거나, 그런 것은 안 한다. 그런 건 너무 많이 했다. 

모아야 할 때가 아니라 이제야말로 해체하고 재구성을 준비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데리다가 아주 예전에 했던 얘기가 잠시 다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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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관하여..

책 쓸 때 제일 어려운 것이 감정을 만드는 일이다. 논리야 자료도 분석하고, 숫자도 맞추어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할 것인가, 어떤 기분으로 말할 것인가, 그렇게 감정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게 없으면 기능적인 보고서가 되어버린다. 

얘기 만들기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감정이다. 특히 나처럼 섬세함과는 상관이 없이, 대충대충 살아가는 스타일에게는 감정이 가장 어렵다. 

감정을 만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서 좀 억지로 감정을 만들게 된다. 분노라는 감정이 가장 컸는데, 촛불집회 이후로 나는 분노를 내려놓고 살려고 한다. 분노가 가장 쉽고, 잘 통한다. 그런데 분노를 내려놓고 나니까, 더더욱 감정을 만드는 게 어려워진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책 쓸 때 왜 아무도 안 만나려고 하는지 잘 몰랐다. 내 경우에는, 감정 때문에 그렇다. 이럴 때 만나면 인위적으로 올려놓은 감정 때문에 실수를 하게 될지도 모를 것 같은.. 그렇다고 그 상황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오후에 농업 관련된 회의에 간다. 오전에 한참 감정을 잡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가, 오후에는 또 아주 냉정하게 정책의 기반에 관한 얘기를 해야 하고.. 

이렇게 전혀 다른 감정과 전혀 다른 톤의 상황에 들어가는 게 요즘에는 더 힘들다. 

강연도 더 줄이고, 사람들 만나는 일도 더 줄이려고 한다. 감정이 농축되면,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농업 경제학 하느라고 한참 감정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작업은 감정을 더 많이 쓰게 된다. 

30대에는 무슨 회의 같은 데 가도 나이 순으로 맨 끝에 앉고, 딴청도 부리면서 딱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별로 신경 안 썼다. 

나이를 처먹고 나니까, 이제 숨기 좋은 가장자리로 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다들 내 입만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졸기도 어렵고, 숨어서 딴청 부리기도 어렵다. 

박원순 상가에도 가야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보통 상가집은 첫날 바로 가는데, 요즘 너무 자주 갔다. 김종철 선생 상가 간 게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노회찬 상가부터 계속해서 문 앞에서 진선미와 만났다. 연속으로 몇 번째.. "상가집에서만 보내요", 어색하게 인사했던. 

나이가 주는 무게감이 이제는 좀 부담스럽다. 난 좀 편하고, 남들 안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삶을 살고 싶은데.. 이제는 옛날처럼 그렇게 도발적으로 하기가 어렵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뭐하나 쳐다보고 있어서, 숨어서 잠행하면서 혼자 조용히 기록하고 분석하고..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보수 쪽 신문에서 글 써달라는 부탁이 요즘은 많이 온다. 주제나 상황 봐서 쓸 수도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는데, 술 마시다가 그런 상의를 하면 아주 난리가 난다. 뭔가 어디에 묶여 있는 건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글 하나 쓰는 것도 주변 눈치를 엄청나게 보게 된다. 그것도 감정 소모다. 난 더 이상 20대에 그랬던 것처럼 전사도 아니고, 무슨 엄청난 조직을 끌어가는 그런 책임자도 아니다. 

암 것도 아니다. 그냥 애 보면서 글이나 좀 쓰는, 엎어진 김에 아예 자리 깔고 누워버린. 

그래서 더 편하게 맘 먹고 지내고 싶은데, 책을 쓸 때면 다시 감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분노 빼고. 그게 여전히 어렵다. 

코로나 이후로 수영장이 닫아버려서, 감정을 식히기가 더 어려워졌다. 수영은 좋은 게, 물 속에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그저 힘들어, 그만 하고 싶어.. 배고프다, 집에 가자.. 걷는 건 좀 다르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자꾸 지난 시간을 복기하게 된다. 고맙고 행복하다는 생각보다는, 원망스럽고 밉고, 그런 감정이 걸을 때 더 많이 생긴다. 온갖 잡생각들이.. 

그 감정을 모으고 모아서 증폭시키는 것까지는 좋은데, 넋이 나간 것처럼 한동안 지내게 된다. 

헤겔은 센스 데이타부터 감정을 거쳐서 이성으로 간다고 했다. 지내보니까, 그건 머리로 생각한 생각의 순서인 것 같다. 논리는 쉽고, 이성은 달래기가 용이하다. 어려운 건 감정이다. 논리가 지나가면 감정이 생긴다, 진짜 감정이. 쟤, 진짜 나쁜 넘이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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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는 저자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게 될 책이 될 것 같다.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치고, 또 고치고, 진짜 뼈골을 갈아 넣는 마음으로 엎고, 갈아엎고. 이건 두었다 다음에 써먹어야지, 그런 것들까지 다 털어 넣었다. 이젠 더 이상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조금씩 꼬불치면서 글을 썼는데, <당인리> 때는 다 털어 넣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변화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면서 넣을 수 있는 건 다 털어 넣는다. 기술이 좀 늘면 다행이고, 그런 것도 없으면 좀 허무해진다. 

<당인리>가 끝나고 도움 받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못 본 사람들을 좀 몰아서 만났다. 한동안 술값 내기 싫어서 자리도 잘 안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아내한테 허락 받고 술값도 꽤 냈다. 

그리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느냐, 물론 아니다. 기분 안 좋아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떠나온 옛날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 누가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누구 말이 맞았느니, 안 맞았느니, 한동안 하지 않던 옛날 얘기 속으로 들어가서.. 이겨도 아무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옛날에는 많이 하던 그 남자 엘리트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갔다. 결론적으로, 기분 안 좋아졌다. 

요번에는 할아버지들 특히 70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예 안 볼 건 아니니까, 가끔씩 만나기는 할텐데, 지금처럼 집중적으로 특정 기간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건 안 하기로 했다. 

옛날 사람들 만나니까 옛날 얘기를 한다. 이제 그게 별로 재미 없다. 무엇보다 내가 감성이 많이 변했다. 

농업 경제학은 10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고, 작년부터 내 생각의 상당 부분은 10대들 그것도 중학생의 삶에 많이 맞추어져 있다. 공부 잘 하는 10대도 아니다. 게임 중독이고, 사고 치는 중학생 얘기를 몇 달 동안 쓰다 보니까, 20대도 아니고 10대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주로 살펴보는 중이다. 덩달아 나도 10대들의 감성에 많이 움직여간다. 

연말에는 젠더 경제학 쓸 예정이다. 왕창 쌓아 놓고는 아니지만 예열 차원에서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닌데, 아줌마들이 최근에 나한테 이혼 관련된 얘기들을 많이 한다. 남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 아닌가 싶었는데, 좀 지나면서 보니까, 나도 ‘참새 방앗간’ 수다형 인간으로 감성이 좀 변한 것 같다. 

중학생들 일상 살펴보고, 아줌마들 이혼 고민 얘기 들어주다, 나도 그런 대화와 시선에 적합한 방식으로 감성이 변해버린 것 같은..

그러다 문득 칼잡이들 같은 엘리트 남성의 거칠고 공격스러운 어깨싸움을 한동안 계속 봤더니, 감성적으로 충돌을 느낀 것 같다. 난 이제 그렇게 안 살아. 

남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단 칼질부터 하고 본다. 그리고 자신의 맹활약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것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거칠게 칼질을 한다. 돌아보면, 나도 그렇게 살았다. 나라고 뭐 다르겠나 싶다. 

바로 뭐라고 할까 했는데, 그건 또 내 삶의 방식이 흔들리는 것 같아, 그냥 참고 웃었는데.. 그래도 마음이 편안하면 해탈인데, 나는 아직 해탈과는 거리가 먼. 

며칠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먹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맹활약했던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는 작은 결심. “마, 왕년에 누군 깡패 수사 안 해본 줄 알아”,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나왔던 대사다. 이게 너무 입에 짝짝 붙어, 나도 비슷한 식으로 몇 번 말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그 영화에서는 이놈도 저놈도, 다 나쁜 놈들이다. 웃고 말아도 되는 일들을 꼭 “왕년에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종종 했다. 습관이다. 

일부러라도, 지난 얘기는 하지 않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필요 없는 얘기고, 쓸 데 없는 얘기다. <응답하라 1988>에서 이적이 속삭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남들 어려운 얘기나 속상한 얘기 좀 더 들어주고, 그걸로 다른 사람이 스트레스라도 좀 줄이는 도움을 주면 그걸로 족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그렇게 맨날 남의 얘기만 들어주면 내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

스트레스 없이 살면 최고고, 그게 힘들면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과는 안 만나면 된다. 간단하다. 

좀 지나면 나도 50대 중반으로 넘어간다. 아직도 나의 맹활약을 얘기해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다면, 그건 내 인생이 꽝이라는 얘기와 같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먹고 편안하게 살았다. 재밌게 살고, 재밌는 얘기 만들기도 정신 없다. 지난 시절의 맹활약은 아무 의미도 없다. 앞으로 올 얘기, 앞으로 만들 얘기들, 이런 게 훨씬 재미 있다. 

남들이 우러러봐야 재밌는 삶, 그거 재미 하나도 없다. 어차피 한 평생 사는 거, 남들 밀치고 어깨싸움하면서 살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내가 간다고 해봐야 얼마나 가겠나. 뱃살 빼는 것도 힘들어서 제대로 못 하는 처지에. 
그래도 나는 지나간 것보다는 앞으로 올 얘기들이 훨씬 재밌다. 그것만 해도 고마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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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이들 시간에 맞춰 산지 4년 조금 넘는다. 작년부터는 일을 더 줄였다. 뭐, 정확히는 줄인 게 아니라 줄어든 거다. 망하는 일이 너무 많아져다. 이제 밖에서 고정적으로 해야하는 일은 하나도 남은 게 없고, 주기적으로 하는 일은 정말로 한 개도 없다.

변화가 생겼을까? 한 가지는 변화가 생겼다.

남자들의 어깨싸움에서 나왔다. 공작과 음모, 시기와 질투의 세계를 더 이상 볼 일도 없고, 끼워주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애들하고 밥 먹고 사는 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일만 하면 된다.

그랬더니.. 아줌마들이 이혼을 생각할 때 나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생각보다 많다. 이렇게 많은 아줌마들이 이미 이혼을 결심하고 디데이만 보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혼도 종종 보게 되었다.

여자 후배들은 숫제 나한테 '언니'라고 부른다. 언니들과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인생이 크게 한 번 바뀌기는 한 것 같다. 이제 더는 열심히 살지 않고, 되는 만큼만 하고, 안 되어도 그만이다, 그렇게 내려놓는 데 익숙해진다. 뭐, 바둥거려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원래도 말수가 별로 없는데, 점점 더 없어진다. 그리고 주로 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내가 입을 다물어야, 힘든 사람들이 입을 여는 것 같다.

"자, 얘기 해보세요.."

이런 상황에서 말을 하면 그건 힘든 사람이 아니다. 어려운 사람은 어렵게 말을 연다.

어렸을 때, 참새가 참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섯 살, 여섯 살, 그 시절의 기억이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참새가 줄었다. 참새 보기 어렵다. 한국이 참새의 나라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갈매기 조나단을 너무 재밌게 봤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니 내 삶은 참새와 비슷해진 것 같다.

높이 나는 갈매기들 사이에서 혼자 참새처럼 지내다보니, 쟤들 왜들 저렇게 힘들게 살아, 그런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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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부지런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택도 아닌 얘기다.

기본적으로 나는 게으르고, 혼자 있고,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한다. 가만히 있는 거, 특히 멍 때리고 있는 거 좋아한다.

나중에 아주 귀찮게 되는 게 싫어서 후딱 해치우고 노는 거, 그런 스타일이다. 후딱후딱 해버리고, 아주 길게 논다. 그리고 놀 때 뭔가 귀찮게 하는 거 정말 싫다.

그 게으름은 여행지에서 극한에 간다. 절경 아니라 절경 할아버지를 가도, 유명한 데 구경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냥 놀러 온 건데, 살살 걸어서 산책할 수 있는 거리 이상을 안 간다. 그리고 그냥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가만히 있는다. 그걸 몇 주 좀 큰 여행은 한 달 이상씩 그렇게 한다. 어딘가 짐 풀면, 그 일대에서 꼼짝도 안 한다. 뭐하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다.

쉬러..

어떻게 보면 평생을 이렇게 쉬다가 뭐 좀 잠깐 하다가, 또 쉬다가,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최근에는 이게 더 심해졌다.

하기로 했으니까 하는 거, 그것도 이제는 안 하기로 했다. 꼭 해야만 하는 일, 그 외에는 안 한다. 부지런해서 손발을 놀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 그런 것과 아주 거리가 멀다.

나 정도 책을 읽었으면 습관적으로 책을 잡고, 또 읽으면서 재밌다고 할텐데..

여전히 책 읽는 거 싫다. 안 보고 싶다. 보지 않으면 밥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까 보는 거지, 아직도 안 보고 싶다. 지금도 책 하나 집어들려면, 봐야 하는 이유 몇 개를 만들어서 억지로 책을 집어든다. 나라고 전공 책이 재미있겠냐.. 더럽게 재미 없다. 더럽게 안 보고 싶다. 그냥 참고 본다.

팟캐스트는 명박 시절, 누구라도 좀 얘기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싫은데 참고 했다. 지금은 그런 거 하고 싶은 사람들 많다. 여당 시절, 갑자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꼭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그런 거 몇 개만 어쩔 수 없이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한다. 새만금 살리기 같은 거.. 욕만 잔뜩 먹고, 보복만 당할 게 뻔한 일을, 게다가 올드해보이는 이 일을 지금 누가 하겠냐.

이런 것도 안 하고, 그냥 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농업 경제학 초고가 슬슬 마무리 단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사양산업이고 망했다고 하는 거, 그런 거나 하면서 살까한다..

바쁜 일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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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단체에서 코로나 관련된 강연에 힘들다는 답변을 보내고 나서는 나도 맘이 편치 않다.

지난 번 전주 강연도 안 하고 싶었는데, 모르는 척 하기도 좀 그래서..

그날 ktx 타고 올라오면서 이젠 진짜로 연말까지는 코로나 관련된 강연은 안 한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나는 비대면 진료 가지고 이미 충분히 얘기 많이 했다.

12월까지는 코로나와 관련해서는 강연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지금 하는 얘기들의 거의 대부분이 12월달 되면 헛소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에는 말을 줄이는 것이 헛빵을 줄이는 길이다.

굳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 맘대로 하겠다는데, 하루하루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가 경제에 대해서 하는 얘기를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터는 거야, 트럼프보다 잘 터는 사람을 미국 정치인 중에서 본 적이 없다. 글이나 영상으로만 보는 거는 케네디도 엄청 잘 털었는데, 트럼프다 더 잘 턴다.

뉴욕 주지사인 쿠오모도 잘 터는데, 그건 내 감성으로만 그렇고, 객관적으로는 트럼프가 터는 건 정말 최고다.

잘 턴다고 뭘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터는 말에,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일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고, 일 단위로 챙개볼 이유도 없다.

트럼프 선거 끝나면 봅시다..

코로나 논의에 대한 일정표를 한 번 점검한 다음, 나는 농업 경제학 마무리에 모든 시간과 정성을 투입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기로 한 일들을 제대로 하면 되고, 코로나는 분자생물학 등 내가 공부하기로 한 일정표대로 기본 공부를 하면 된다.

그리고 올 12월에 데이타 보는 일은 다시 할 거다.

그때까지 돌아가는 머니게임에, 나는 주식투자할 게 아니니까, 가끔 추이만 보면 된다. 지켜볼 수치도 딱 하나다. 과연 12월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가느냐, 아니면 제로 금리 언저리에서 버티느냐.

수능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 학교 열어야 한다, 행정적으로 결정하는 순간에 변수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지만 남은 변수가 단기 변수인지 중장기 변수인지, 그걸 알기는 어렵다.

보통의 경우 12월까지, 6개월이면 단기 변수이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장기 변수일 것이다. 후년 일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지금.

그래도 시민단체나 노조에서 부탁하는 강연을 거절하고 나면 마음이 좋지는 않다. 나도 한동안 단체에서 상근하면서 그런 걸 만드는 일을 꽤 했었다. 돈도 적고 약속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 행사에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마음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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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은 이제 본문 2장, 4명의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마무리 편지 4통, 그렇게 여섯 개의 글이 남았다. 기계적으로 딱 육 일 일치, 일주일 작업 분량이다. 물론 초고 기준이다.

농업 경제학 나가기 전에 두 권이 먼저 나가니까 순서상으로는 이게 40권째가 된다. 진짜 미친 넘처럼 책만 쓰고 산 인생 같기도 하다. 물론 틈틈이 술 처먹고 진창 놀면서 살았다.

장관급 자리는 아직 아니고, 차관급 자리는 제안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애 보고, 책 쓰고, 그렇게 살겠다고 차관 안 한 사람이 한국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도 어지간히 사람 말 안 듣고 사는 것 같다.

사외이사 몇 번 얘기가 있었는데, 했어, 벌써 했어.. 나이 먹고 나니까, 그것도 귀찮다. 책임지는 거, 일절 귀찮다.

책을 쓰는 것, 얘기들은 많은데..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만으로는 책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나에게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쓰자고 해서 쓴 책은 직장 민주주의 책 딱 한 권이다. 나머지는 내가 재밌거나, 내 삶에 의미가 있어서 쓴 책이다.

책에 관한 얘기들 중에서 다루지 않는 얘기가, 동기에 관한 문제다. 기술과 기법, 이딴 건 사실 책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건 표준작법 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동기가 책을 뚫고 나갈 정도로 강력하지 않으면, 책 마무리가 어렵다. 물론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 동기 따위 필요 없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물경, 2020년 한국에서 책이라는 것 특히 사회과학 책이라는 것, 돈이 동기가 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도나도나, 안드로메다로..

세 끼 밥이나 먹고 사는 것도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은.

농업 경제학 같은 걸 지금 누가 하겠나. 하던 사람들도 전공 조금씩 바꾸면서 철수하고, 나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던데.

DJ가 벽 앞에 서서 울기라도 하라고 했다.

농업 경제학 같은 게, 딱 벽 앞에 서서 우는 것 같은 마음으로 쓰는 책이다. 돈은 충분치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동기 만큼은 책 표지를 뚫고나갈 정도로 강력하다.

책에도 약간의 테크닉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시나리오의 표준 작법서 중의 대표적으로 성공한 '세이브 더 캣' 이상의 테크닉이 필요하지는 않다.

영어 찍찍 남발하는 거 피할 것, 쓸데 없이 약자 쓰지 말 것, 이그저 남발하지 말고 가능하면 명사 그대로 받을 것.

제일 하지 말아야 할 것.

첫째, 둘째, 셋째, 넘버링 하는 지랄. 첫째 하는 순간 절반 정도의 독자는 이미 책 집어던졌고, 셋째 하는 순간 나머지 절반의 독자가 이미 중고책 사이트에 책을 올려놓았을 것이다.

뭐, 그 정도만 알면 책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동기는 다르다. 자기 인생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 이게 없으면 마무리하기 힘들다. 중간에 집어 던지게 된다, 때려쳐!

한 권의 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중요한 게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사람들이 이 두 번째 요소를 간과해서 써놓고 출간을 못 하거나, 출간하고도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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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언론에 보내는 기고문 하나 썼다. 글 쓰는 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제는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전화로 꽤 많은 일들을 처리했는데, 그것도 옛날 일이다.

새로 여기저기 대선 캠프들이 생기는데, 뭐 안 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할 생각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냥 혼자서 연구하는 학자로, 가늘고 길게 살다가면 그만이다. 야당 시절에는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다. 그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르다. 자기 선택이다. 나는 안 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아내가 아침 일찍 지방 출장이다. 글도 마침 다 썼고, 애들하고 아내 서울역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오는 김에 샌드위치도 하나 사서, 간만에 아침밥도 먹었다. 그 와중에 둘째는 마스크를 집에 놓고 갔다. 어린이집 앞에서 다시 돌아왔다 갔다. 사는 게,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사소한 것일수록 챙기기가 어렵다.

유튜브 할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최근 부쩍 늘었다. 없다고 말했다. 난 여전히 책과 글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위축되고 작아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은 맞다.

김상조처럼 자기가 쓴 책과 자기의 행동이 엇갈리는 사람들도 가끔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도 내가 쓴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틈이 나는대로 웃으려고 노력하고, 주변 사람들 입에서 웃음이 나올 수 있도록 한다. 자기 힘을 극대화하는 삶은 결국 후회를 만나게 된다. 살면서 아무리 해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명랑 밖에는 없다. 덜 웃긴 것은 미안하지, 후회하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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