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학생이 되었을 때, 가끔 해보는 생각이다. 

그 중의 1번 질문은 지금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되어도 자본론을 읽을 것인가, 그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여전히 트럼프를 사랑하지 않게 될 이유를 알려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미국은 지금 위기다. 바이러스 대처 개판이고, 인종 갈등 폭탄이고, 중국이랑 삽질 중이다. 

"미국이 원래 그래", 그런 비겁한 방식으로 대답하지 않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본주의의 모순'이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물론 손쉽기는 하지만 이것도 비겁한 방식인 것은 마찬가지다. 

대학교 2학년 가을,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읽었다. 

한열이가 죽고, 아직 전또깡이 대통령이던 시절.

돌아버리겠네. 헤겔부터 봐야겠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펼쳤다. 

An und fur sich.. 

이게 문자야? 즉자는 무엇이고, 대자는 또 무엇이냐? 

그 시절에 헤겔을 읽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당시 철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김흥중 선배였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자본론 세 권을 다 읽었다. 

나중에 유학가서 불어 까막까막하던 시절, 자본론 독강은 나에게 아주 높은 학점으로 전체 평균을 아주 많이 올려주었다. 

자본론을 읽고 나면 이젠 못 읽을 책은 없다. 천문학이나 양자 역학 같은, 자본론 시절에는 모르던 과학 얘기 일부를 제외하면 더 이상 난이도 높은 책은 지구별에는 없다. 

자본론만 읽은 게 아니라 자본론 4권으로 흔히 불리는 힐퍼딩의 금융자본론 그리고 로자까지 읽었다. 

이재영 살아있던 시절, 그가 권영길 등 원로급 인사들 앞에서 힐퍼딩 강의를 좀 해달라고 했다. 

전원 재웠다. 

한국사회경제학 학회에서 로자 얘기로 김수행 선생 등 앞줄에 앉아계신 원로들, 전원 재웠다. 

20대의 내 강의를 듣고 자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30대가 되면서 나는 더 이상 힐퍼딩이나 로자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만 재우자. 같은 얘기를 스머프 버전으로 하기 시작했다. 로자 얘기와 완전 똑같은 얘기를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로 얘기했다. 가끔은 공각기동대 버전으로 했다. 확실히 덜 잔다. 

최근에 20대와 30대 자칭 보수들을 만나서 좀 길게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자본론을 읽었다는 변호사 한 사람 때문에 좀 충격을 받았다. 

하긴 자본론을 읽고도 명박 옆에 있는 사람들을 좀 안다. 김문수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김문수는 잘 모른다. 최근에 들은 얘기로는, 밖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개차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재오는 좀 안다. 김수행 선생 강의 준비를 하고, 버스 운전수 등 당시 노조 만들 준비를 하던 사람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다. 이재오랑 운동하던 시절이다. 80년대에 민중당의 이재오가 4대강 전도사가 될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 

자본론을 읽으면 확실히 전화번호부급 고전 중에서 못 읽을 책은 없게 된다. 두꺼운 책은 있어도 세 권짜리 두꺼운 책은 없다. 

학부 때 자본론을 읽으면 박사과정까지는 그냥 달려도 된다. 그 이상 어려운 과목은 수리통계학 혹은 미분방정식 정도다. 그것도 선형대수부터 차분차분 하면 된다. 

나는 공부도 잘 못하지만, 다른 건 더더군다나 할 줄 모른다.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고 해도 뭔 특별한 재주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아버지가 갑자기 부자가 되어있을 확률도 제로다. 

그리하야..

2020년에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고 해도 나는 다시 자본론을 읽을 것 같다. 그리고 서른 살 이후의 내가 그런 것처럼, 자본론을 읽은 티를 내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자본론을 읽고 누구한테 그걸 읽었냐고 물어보는 인생은 꽝이다. 읽고 혼자만 생각하면 중간은 간다. 자본론의 효과는 그 자체로는 없고, 그걸 읽고 다시 보는 그 다음의 책에서 나온다. 이제 지구별에서 못 읽을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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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며칠을 보내고, 이별도 마무리하고..

마음이 아프다. 모든 이별은 다 마음이 아프다.

살면서 늘 욕 먹으면서 산다.

삼성 쪽 사람들에게 너무 아픈 얘기한다고 하면서 욕 먹고, 현대 쪽 사람들에게 그래도 너도 우리 ob 아니냐, 욕 먹고.

보수 쪽 사람들에게는 맨날 약점만 후벼판다고 욕 먹고. 전직 총리 한 명이, 내가 제일 싫었다고, 그런 얘기 들으면서 산다.

민주당 사람들에게도 욕 먹는다. 대충대충 넘어가지, 꼭 그렇게 헛점을 짚느냐, 욕 먹는다.

하다 못해 정의당 사람들에게도 욕 먹는다. 그렇게 잘 할 수 있으면, 니가 좀 하지 그래.

한 걸 가지고도 욕 먹고, 하지 않은 걸 가지고도 욕 먹는다.

남자들한테는 남자들 약점 자꾸 드러내게 한다고 욕 먹고, 여자들한테는 가정 얘기 너무 많이 한다고 욕 먹는다.

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얘기들로 욕 먹는다.

원래 '갈래치기'라고 정치에서 흔히 쓰는, 절반한테는 욕 먹지만 절반을 우리 편으로 하는 전법.. 그딴 게 난 체질상 싫다.

한 거 가지고 욕 먹을 때에도 참고, 하지 않은 거 가지고 욕 먹을 때에도 참는다.

이유는 별 거 아니다. 귀찮아서..

진짜로 내가 게으른 스타일이다. 천성이 그렇게 타고 태어났다.

별의별 욕을 다 먹어도 크게 뭐라고 안 하는 건..

나중에 내 인생은 진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한 삶이었다, 그 한 마디를 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정의, 민주주의, 진리, 그딴 어려운 건 잘 모른다. 그렇지만 누가 힘든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내 책에서도 나쁜 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나쁜 놈 다 잡으면 세상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넘버 3 원칙 같은 거. 나쁜 짓 할 나쁜 넘 후보는 세상에 정말 많다.

김상조를 대통령에게 소개한 사람이 나였다. 그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 몰랐다.

나쁜 넘은 아무리 분석해도 나는 잘 모르겠다. 50이 넘으니까 안 그랬던 사람이 나쁜 넘 자리에 가고, 그런 일을 하는 걸 종종 보게 되었다.

아마 내 인생에 김상조와 다시 술잔을 들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주 나중에라도, 용서하고 말고,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그럴 권능과 권리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희망을 같이 얘기하고 술을 기울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평생을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덜 힘들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 삶이라면, 난 그 삶을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 같다.

진리? 20대에는 진리를 찾아헤매던 적이 내 인생에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내가 알 수 있는 진리는 e=mc스퀘어, 그런 거 외에는 잘 모르겠다.

이제 사람을 추천하고, 그런 일도 그만 하려고 한다. 그딴 거, 필요 없다.

내가 살아가는 한, 이 사회의 최전선에서 힘겹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그걸로 충분하다.

보상은 필요 없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천천히 나빠진다면, 그걸로 행복하다..

(오늘 며칠만에 술을 마시기 위해서, 내가 술을 마셔도 되는 별 개떡 같은 이유를 찾기 위해서 몸부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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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은 나의 힘..

당인리 헤매는 거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분 좋게 술 마시고 낯선 도시의 싸구려 여인숙에서 내가 왜 여기 혼자 있지, 그럴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하다. 유학 가기 전 광주에 혼자 여행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런 기분을 느꼈다.

운동권으로 살다보면, 팬시한 것과는 정말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애 둘 키우면서 뭔가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옹색하고 궁색한 변명의 연속이다.

다시 궁상 모드로 돌아가기로 했다. 앗, 너무너무 익숙한 옷처럼 몸에 잘 맞는다. 이거야 이거..

바닥에서 박박 기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힘든 사람들 챙겨보고, 뒤돌아서면서 눈물 흘리고.. 그게 힘들어서 소주 마시지 않으면 마음이 견딜 수가 없던 시절, 그게 나의 30대 모습이었다.

별의별 힘든 사람들, 그것도 전국의 수많은 힘든 일들을 지켜보고, 힘을 보태면서 내 삶이 내 삶이 되었다.

중3 목동 어머니가 전화에 대고 기자한테 박박 소리치는 얘기를, 그것도 실화 버전으로 들었다.

기자님도 잘 아시겠죠, 얘 공부 못하면 죽음입니다. 그러니 이 전화 끊으시고, 다시는 우리 애한테 인터뷰 같은 거 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현실에 들어가면, 한국은 여기저기 지옥도다.

나는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우아하고, 고상하고, 팬시하고, 그리고 와인바에서 포도주 마시고..

나는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미루어두었던 농업경제학 파일 다시 열면서, 내가 지옥도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산림연구원에서 박사들하고 세미나하기로 했다.

그들에게 내가 본 한국의 10대들, 지금 그들의 지옥도를 얘기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와 함께 문득 우리가 다시 만난 한국, 교육은 지옥이다. 교육이 아닌 곳도 지옥이다.

여의도는 아직 그 지옥과는 좀 거리가 있다. 청와대는 너무 먼 곳으로 가버렸다, 우아한 곳으로..

여전히 궁상은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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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강연을 어제, 오늘, 두 번이나 했다. 그냥 강연으로만 치면, 대박이다. 성공..

따로 파워포인트도 만들지 않고, 그냥 칠판 놓고 했는데.. 난 원래 칠판 강의를 훨씬 더 재밌게 한다.

그냥 상업적으로 강의하는 강사라면 대박 아이템을 쥔 셈인데..

이미 하기로 전주 시장한테 약속한 전주 시청 강연은 어쩔 수 없지만, 코로나 강연은 그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강연 많이 하다 보면, 점점 더 전달력이 높아지고, 설명력도 높아지는 게 있기는 한데..

인간이 얄팍해진다. 자꾸 잘 팔리고, 전달 잘 되는 얘기만 하려고 한다.

지나간 것은 싹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시작해야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다.

직업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나는 책 쓰거나 강연하는 게 직업이 아니라, 학자가 직업이다. 책은 수단이고, 강연 역시 수단인데, 별로 선호하지는 않는.

나는 다른 사람 보다는 3~4년 먼저 움직이려고 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조금 빠를 뿐이다.

아주 뒤에서 따라오면서 해석을 잘 하는 방법도 있다. 그것도 좋은 연구다. 그렇지만 나는 게을러서 그렇게 많은 것을 동원하는 해석은 잘 못한다.

먼저.. 아직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코로나에 대해서 내가 다른 사람 보다 좀 더 아는 것은.. 10년 전에 이 책을 한 번 쓰려고 했고, 올해는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지난 가을에 자료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작 3~4달 먼저 움직였는데, 지금은 그 차이가 동료 경제학자들과 많이 나 버렸다.

10대 연구를 2년 전에 시작했다.

농업, 독서, 경제, 세 가지 시리즈를 전부 10대에 걸어서 하게 되었다.

이 얘기를 들은 활동가들이나 기자들은 내가 설명하는 방식이 가장 참신하고 새롭다고들 한다.

아직은 골격 차원이고, 정리하는 데에는 지난한 품이 든다.

당인리는 4년 전에 시작했다. 주요 작업들은 2년쯤 전에 했고.

사람들이 보는 지금의 나는 대개 3~4년 전에 정리된 생각을 얘기하는 껍데기다. 몇 달 전에 분석한 것을 지금 얘기하는 코로나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그건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고.

지금 강연을 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일 거이냐, 3~4년 후의 일을 지금 고민할 것이냐.. 난 늘 후자를 선택했다.

실속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나한테 부끄럽지는 않을 수 있다. 뭐, 그렇게 해도 맨날 부진하고 부족해서, 사실 혼자 돌아보면 쪽팔.

코로나는 딱 내려놓고 강연 같은 거는 하지 않다가, 12월에 상황을 다시 보기로 이미 몇 주 전에 결정했다.

경제 부총리인 홍남기가 난리를 치지 않았으면 관련된 글 같은 것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인간, 견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좀 너무하다 싶은. 결국 몇 번 펜을 들었다.

(그 업보로 강연부탁 너무 많이 온다..)

난 내일을 사는 사람처럼, 현재는 모르고 미래의 일만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몇 년간은 더 그럴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당분간 50권째 책을 쓰는 순간을 위해서 뒷골목을 주로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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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조 관련된 행사에 가서 강연하고 왔다.

매번 강연하고 나면 이제는 안 한다고 결심을 하고는 하는데.. 노조 그것도 정말 힘든 비정규직 노조,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작은 시민단체, 청년들이 모여서 현실의 벽앞에서 눈물을 삼키는 미래당 같은 곳, 이런 데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기업체에서 수 백만원 준다고 하는 강연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거의 안 간다. 신세졌던 사람이 부탁하는 경우, 그런 특별한 때. 작은 노조에서 하는 강연은 차비 빼고 이러고 저러고 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거나, 내 돈이 더 들어갈 때도 종종 있다. 그런데도 가는 건?

내가 그런 작은 곳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그런 운동하던 시절, 하승수 변호사랑 정말 바닥에서 박박 기면서 사회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느끼는 현실의 벽, 내가 오랫동안 그 벽 앞에서 서 있었다.

유명한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도 해봤다.

인생 이렇게 대충 살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설교만 엄청 들었던.

그 후로 이를 악물고 대충 살았다. 평생 대충 살았고, 앞으로도 대충 살 생각이다.

나한테 한국의 정치와 대통령의 역할 그리고 큰 정치의 구조, 이런 거 설명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지금도 많다. 그들은 날 늘 촌놈 취급했다. 얼래, 서울 사람인데..

최근에 큰 금융기관 같은 데에서 돈 엄청 준다고 코로나 강연해달라는 부탁이 많았다.

안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문해줄 사람, 한국에 엄청나게 많다.

금요일 밤, 홍성 갔다 오면서 길 엄청나게 밀렸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곤란하고 힘 없고, 그런 사람들하고 평생을 살았다. 앞으로도 여력 닿는대로, 그렇게 할 생각이다.

난 큰 뜻이 있다.

지옥에 가는 건 피하고 싶다. 천국은 바라지도 않지만, 지옥에 가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

하루 종일 운전만 했더니 엄청 피곤하지만, 내일 푹 쉬면 된다.

(젠장, 내일 오후에는 미래당 강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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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모란 교수를 만났다. 몇 달 전부터 우와, 대단한 사람이다, 놀랐던 사람. 정신 없어서 총리실 간담회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는데, 기모론 교수 나온다고 해서, 갈께요, 그랬더라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길 가는. 멋진 사람을 보면 마음이 설래이는 게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2. 내일은 최재천 선생을 만난다. 요번주 가기 전에 꼭 차 한 잔 하시자고 연락을 주셨드랬다.. 나도 그 양반을 꼭 보려고 하기는 했는데.. 2~3달 후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3. 출판사 사정으로, 농업 경제학은 결국 내년으로 넘어갔다. 내가 뭔 이상한 거에 씌웠는지, 책 낼 때만 되면 에디터들을 그만두는. 몇 년째, 많은 책이 그랬다.

  4. 방법이 없어서 올해 출간 일정을 대대적으로 조정했다. 10대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를 먼저 내고, 젠더 경제학도 연내에는 낼 생각이다. '페미니즘을 위한 경제적 변명', 일단 가제는 그렇게 잡았다.

  5.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한테 속삭인다.

  6. 젠더 경제학까지 마무리하면, 팬데믹 경제학 준비를 시작할 생각이다. 12월에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7. 정부에서 정책 과제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고마운 얘기이기는 한데, 나는 외부 과제 안 한다. 책 쓰면서 안 한다고 마음을 먹었고, 아직도 어디서 돈 받아서 연구한 적 없다. 내일은 고맙지만, 좀 어렵겠다고 대답을 할 생각이다.

  8. TV 나가는 게 맘이 편치가 않다. 연말까지는 정말로 찌그러져서 살아야지, 그렇게 딱 마음을 먹었는데.. kbs 심야토론 나와달라고, 하도 간곡해서 또 마음이 흔들렸다. 이러니 내가 마음을 먹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9. 청년들이 하는 미래당에서 세미나에서 코로나 대응 발제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도 좀 쉬어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늘 힘들 때마다 집 앞에 와서 하소연하던 후배인데, 모른 척하기가 또 미안한. 내일은 해준다고 대답을 할까 싶은데, 마음 속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10. 작년 10월쯤, 올해는 팬데믹 얘기 밀어놓고 밀어놓은 거 정리는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뭔 얘기를 해야하지? 예전에는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와중에 딱 코로나 19사태가.. 가끔 내가 귀신 씌운 듯, "이게 지금 꼭 필요해", 그런 순간이 있기는 하다. 2007년쯤, '88만원 세대' 내고 얼마쯤 있다가, "이 시대에는 판데믹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정신이 없어서 결국 책은 못 썼다.

하이고, 코로나나 마나, 내가 몸이 힘들어서 죽겠다. 연초에 계획 세울 때에는 전혀 일정에 없게, 여기저기 자문회의 같은 데 불려 다니고, 1주일에 두 번씩 언론 인터뷰하는 별 그지 같은 일정이.. 인생, 계획이라는 게 무의미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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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을 위한 변명", 요렇게 딱 제목만 써놓고, 그냥 다시 접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정의당보다 더 왼쪽 그리고 더 녹색에 있었다. 그래서 '비주류의 비주류'라고 늘 생각했다. 정의당만 해도, 나보다는 주류 쪽이다.

그렇기는 한데..

2004년부터 글을 써왔는데, 요즘 내가 느끼는 중압감이 가장 크다. 솔직히 좀 무섭다. 그리고 '환영받지 못하는 글'이라는 생각을 지금처럼 크게 받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민주당은 확실히 주류에 가까워진 것 같다. 그런데 포용력은 좀 약한 것 같다. 나도 뱃심은 어지간하다. 그동안 환영받지 못하는 글들을 계속 썼었는데, 요즘은 나도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은 확실히 좀 이상하다. 포장만 있고, 내용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요즘은 그 포장도 귀찮아하는 것 같다.

그냥 못 본 척하고 말까, 그런 생각이 요즘은 종종 든다. 나도 그냥 '평론가적' 입장에서, 중계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어떨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쟤는 저렇대요, 얘는 요렇대요..

그래도 나는 좀 낫다. 이리저리 도망갈 구석도 있고, 영 수틀리면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 아무 글도 안 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다. 정 써야 하면, "문재인 정권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그렇게만 쓰고. 그래도 더 써야 하면, "이게 다 삼성 때문이다", 이러고 말면. 별 상관 없다. 그렇지만 이런 내가 정의당을 보면..

선거 망해서 속상할텐데, 사람들이 패도 너무 팬다. 이건 한 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아무 논리 없이 패던 것 같은 방식으로 "이게 다 심상정 때문이다", 이런 것 같다.

나도 심상정이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당이 많은 전략적 실수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는 한데.. 패도 너무 팬다.

그럼 세상 좋아지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옆에서 지켜보면, 무서울 정도로 팬다. 그럼 니들은 저 사람들이 고생하던 시절 뭐 했는데,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것 같다.

지켜보면, 무섭다.

너무 무서워서 "정의당을 위한 변명"은 제목만 썼다가 지워버렸다. 너무 무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에 글 쓰기 시작하면서, 제목만 써놓고 지운 건 처음이다.

나도 슬슬 글 그만 써야 할 시간이 다가오나 보다.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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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우유 넣는다고, 아무 생각 없이 넣었더니 비피더스 요구르트. 곽이 똑같이 생겼다. 버리기도 그래서 그냥 마시는데, 인생의 오묘함을 느끼게 되는 아침이다. 열심히 산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루틴을 잘 설계해서 루틴을 지킨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오늘 아침처럼 요구르트 넣은 커피를 마시게 된다. Seize the day! 즐기자, 요구르트 커피를. 아, 달달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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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낸 책들이 썩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선방하는데, 50대 에세이가 혼자 헤매고 있다. 이유는 모른다.

지난 책들을 별로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망한 책들이 늘어나면서, 지난 것 보다는 새로 쓸 책에 더 많은 힘을 들이려고 한다. 그 편이 정신 건강에도 낫고.

하여간 그러고 있는데, 이번에 오디오북을 만들면서, 앞의 프롤로그는 직접 녹음을 좀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다고 했다.

내 인생이라는 게, 살다 보니 내 주변의 또래 친구들과는 아주 멀리 와 있는 삶이 되어버렸는데.. 돌아보면 망한 얘기들의 연속이다.

누군가나 어떤 단체들을 도와주고 묻어가는 거, 딱 질색이다. 가난하거나 별 볼 일 없이 사는 건 괜찮은데,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접싯물에 코박고 죽겠다.. 딱 고런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가 도와주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 인생의 바닥에 있거나, 혼자서는 헤쳐나오기 어려운 심연 한 구석을 헤매고 있을 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총리가 된 정세균이 정계 은퇴를 고민하던 순간이 두 번 있었는데, 두 번 다 내가 말렸다. 몇 년간, 보통은 매주 2~3번, 1년간은 거의 매일 보면서 지냈다. 그런 그에게도 1년에 한두 번 밥 먹는 이상은 안 한다.

사람이 그렇다. 엘리트 특히 엘리트 남성은 기본이 동고독락이다. 고통은 나누어지지만, 즐거움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걸 20대에 알았다. 그래서 고통만 나누고, 한 번도 즐거움을 나누자고 해본 적이 없다.

결혼 초에는 그래서 돈이 한참 없던 시절이 있었고, 아내가 고생 무쟈게 했다. 시간이 지났더니, 아내가 강해졌다. 나 믿고는 세상 못 살겠다고, 자기가 알아서 살아간다.

50이 넘어가면서 나는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려놓았다. 뭐, 내려놓고 싶지 않은데, 결국에는 내려놓을 수밖에 없던 것도 있고.

내 인생에 무슨 엄청난 의미가 있을까? 그딴 거 생각 안 해본지 이제는 꽤 된다. 그냥 산다.

그렇다고 삶이 재미 없는 건 아니다. 그냥 살아가도, 그 안에 소소한 재미가 있다.

박용진이 상임위에서 밀려나서 교육위로 쫓겨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아주 약간 같이 했는데, 그 뒤에 교육3법으로 맹타를 날렸다. 지켜보면서, 흐믓했다. 그런 맛이 있다.

김해영은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줬는데, 이번 선거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도 별 걱정은 안 한다. 언제 어디서든 자기 못은 충분히 하고 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점에 올라간 사람을 종종 본다. 그 정점을 지키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도, 마음이 정리가 안 된 사람은 오래 있지를 못 하는 것 같다.

물론 드물게 '캐시끼'라서, 줄 타고 줄줄줄, 끝까지 잘 올라가는 넘들도 가끔 봤다. 아, 20년 전에 캐시키인데, 아직도 캐시키네. 놀랍다.

어쨌든 이렇게 내려놓던 시절의 얘기를 정리한 책이다.

햐.. 그렇게 내려놓고, 코로나로 얼마 되지도 않는 강연도 없어지고, 정말 애들하고 놀기만 하면서 지내도 되는 순간인데. 동네에 있는 찻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된장. 뭐, 돈 드는 일도 아니고, 그 정도 못해주겠나 싶지만.. 좀 많다.

하여간 이 책이 워낙 헤매서.. 작년에는 에세이 안 썼다.

농업 경제학 마무리하면, 다시 간만에 에세이 쓴다. '10대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 농업 경제학에 이어서 10대들에 대한 책 두 번째다. 에세이 형식으로 할 거고, 내가 읽은 책 얘기 중에서 내가 다시 10대가 되면 꼭 읽을 책을 골라볼 거다.

좀 안 바쁘게 지내고 싶은데, 오늘 오후에만 약속이 세 탕이다. 나한테 도움되는 건, 옛날 친구들 만나서 술 처먹기로 한 거 하나 뿐.. 요즘은 정말 오래된 친구들도 가끔은 만난다. 딱 그만큼 삶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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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없을 걸요."

출판사에서 나에게 저자를 찾는 문의도 심심찮게 온다. 저자들이 원하는 출판사는 존재하지 않고, 출판사들이 원하는 저자는 존재하지 않고.

이걸 누가 내주겠냐, 요 문장과, 누가 이렇게 어려운 걸 쓸 수 있겠느냐.. 요 두 문장이 존재한다.

"야, 이 새끼야, 그만 좀 놀고 책 좀 써라."

"싫다, 누가 그런 걸 보겠다고. 난 그냥 놀란다.."

친구한테 전화해서 책 좀 쓰라고 했더니, 그냥 놀고 싶단다. 딱 그 주제에 대해서 잘 쓸 수 있는 녀석인데. 큰 마음 먹고 쓴 책 2~3권 망하게 되면 대개 내 친구 같은 반응을 보인다.

"야, 니 재주가 아깝다."

"됐고. 술이나 한 번 사라."

내 주변에 나보다 유능하고, 머리 팡팡 잘 돌아가는 녀석들 많은데, 책 쓰라고 하면 질색들을 한다.

"너는 운이 좋았잖아."

딴에는, 나는 운이 좋기는 했다. 너무 일찍 터졌고, 그 후로도 요즘 용어대로, "가끔은 터졌다".. '모피아" 때 전체 순위 6등 가본 게 제일 높게 간 거라는데 - 나는 그것도 잘 모른다 - 뭐, 그 정도만 해도. 몇만 부 간 게 여러 권이다. 다 운이다.

하여간 출판사와 저자 사이에, 뭔가 메워지지 않는 논리적 간극 같은 게 있다.

"어이, 김 박사, 책 한 번 해볼텨?"

이렇게 전화를 걸면서, 내가 왜 남의 일에 이렇게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그렇지만 일단 다 모여서 소주 한 번 마시는 걸로 중간 접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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