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계속 잠만 주무시지만, 때 되면 식사는 조금씩 하신다. 병원에서는 이제 밥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그건 아직은 좀 무리인 것 같고. 

집에 가신다고 몇 번 하셔서, 혼자서 밥 하실 수 있고, 시장 볼 수 있기 전에는 집에 못 가신다고 했다. 하루 종일 누워계시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식사는 좀 하신다.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검진 예약은 했는데, 병원 모시고 가는 게 또 난제다. 자신 없다. 

아무 것도 안 드신다고는 하지만, 조미김을 드렸더니 그건 좀 드신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반찬은 쇠고기 장조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며칠 전에 반찬 가게 가서 사왔는데, 그건 잘 드셨다. 메추리알과 쇠고기 장조림. 벌써 다 드셨다. 

우리 집에서 밑반찬은 주로 아내가 한다. 아내도 회사 일이 정신이 없어서 몇 달 전부터는 나물 같은 거는 내가 애들 데리고 옆동네 시장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오고는 했다. 그냥 날 잡고 해도 되기는 하지만, 나도 나물 한다고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사온다. 

쇠고기 장조림 하나 사러 시장에 가기도 그렇고, 또 어머니만 두고 그렇게 괜히 집을 비우기도 좀 그렇고. 배달 앱에서 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찾아보니까 반찬 가게가 하나 생겼다. 시장보다는 좀 비싼 것 같은데,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처음으로 반찬 배달 해봤다. 금방 온다. 몇 년 전에 어머님에게 반찬 정기 배달을 신청했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짜고, 입에 안 맞아서 다 버린다고 욕만 잔뜩 먹었던 적이 있다. 

오전에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강의하고 돌아오는데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아버지 계신 병원은 좀 멀고, 좀 무리가 되더라도 가까운 데로 모실 계획이 있기는 했다. 아버지 신분증 들고 한 달쯤 전에 가서 의사 면담하고 입원 대기하던 중이었다. 결국에는 좀 어렵게 되었다고, 병원 옮기는 것은 당분간 포기했다.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는 그래도 아버지에게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걸로 막내 동생하고 계획을 했었는데, 어머니도 같이 누워 계신 상황에서 두 군데 다 왔다갔다 하는 건 이래저래 무리다.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막냇동생이 아버지 계신 병원에 전화해봤는데, 이제 존댓말을 하신단다. 존댓말, 반말 섞어서 하신지는 사실 좀 된다. 아버지 기억은 뇌에 종양이 너무 커져서, 두 달 전부터는 왔다갔다, 좀 그랬다. 

지금에 와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증상이 같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어머님이 아직은 거동을 하실 수가 있어서 조금 사정이 낫기는 한데, 그냥 누워만 계시는 것은 같다. 운동도 좀 하실 수 있게 해드리고 이것저것 더 챙겨드려야 하는데, 지금 같아서는 제 때 식사 챙겨드리는 것도 버겁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드시는 간식은 감말랭이 작게 자른 거. 어제 저녁 때 큰 애가 감을 막 집어먹었더니 어머니가 “얘, 감 얼마 안 남았다”고 그러셨다고 한다. 그거 냉장고에 더 있다. 나랑 큰 애가 워낙 감을 좋아해서 떨어지지 않게 넉넉하게 사다 놓는다. 손자가 감 집어 먹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시니, 웃음이 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거라도 드시니까 다행이다. 

주말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환자들이 먹는 유동식 몇 박스를 주문했는데, 오늘 왔다. 먹어보니까 딱 두유맛이다. 점심 때 식사하시고 드시라고 하나 뜯어드렸는데,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하셨다. 두유랑 맛이 똑같다고 했는데, 잠시 커피 타다고 돌아보니 그새 하나 드셨다. 맛이 보통 두유보다 훨씬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라서 배지밀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동식 오래 먹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니까. 

친한 선배한테 안부 인사차 전화했는데, 그새 청와대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얼굴 보고 식사 한 번 하자고 하는데, “형, 내가 커피 약속을 할 처지가 안 돼”, 그러고 말았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일도 엄청 큰 대형 사업이 되었다. 집에서 잠시 나가려면 사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다. 

나도 몇 주 후에 병원 가야 하는 날인데, 이건 한 달 미루기로 했다. 나도 여기저기, 아이고 삭신이야, 병원 다닌지 꽤 된다. 정기적으로 피검사도 하고, 1년에 몇 번 스캔도 하고 MRI도 찍고 그런다. 나이를 처먹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 병실에서 몇 주 버티고 나니까 머리의 두피에 온통 크고 작은 염증이 났다. 병원에 가보니까, 이건 완치가 되지 않는 병이라고 한다.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라고. 원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완치가 없단다. 그냥 관리하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약이랑 연고랑 그런 거 잔뜩 받아왔다. 3달 후에 다시 보잔다. 의사가 그랬다. 평소 같으면 한약방 하는 얘기 같은 거라서 잘 안 하는데, 자기가 요즘 딱 그런 얘기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자기 동생이 서른도 안 되었는데, 같은 증상이라서 자기가 약 주고 있단다. 

이제 나도 50대 중반이다. 여기저기, 아이고 삭신이야, 그러면서 살아간다. 10살인 큰 애는 어깨가 뻐근하다고 해서, 며칠째 어깨 마시지랑 머리 지압을 해주는 중이다. 훨씬 나아졌단다. 자기 전에 마사지 해달라고 오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좋아”, 그런다. 귀엽다. 중학교 때 심심해서 마사지책이랑 지압책 잔뜩 읽고 주변 사람들 대상으로 연습하면서 살았던 게, 이렇게 써먹을 일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들이 전화해서 힘들지 않느냐고 위로를 한다. 사실 나는 요즘 힘든 건 거의 없다. 힘든 건 부모님들이 힘들지, 나는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재밌는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아내가 하는 일이 아주 잘 되고 있고, 여름과 가을에 병원에 입원했던 둘째도 지금은 입원과는 좀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중이다. 부쩍 소년티가 나기 시작하는 큰애와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인생에 대해서 논하고, 삶에 대해서 대화한다. 큰애는 자기 딴에는 경제학자와 화가 두 개를 놓고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나는 어느 쪽이라도 다 좋고, 그거 아니라도 상관 없다고 했다. 이제 곧 초등학교 4학년, 이제 어른이 느낌 보다는 소년의 느낌에 점점 더 가까워졌다. 물론 하는 짓이나 생각은 아직 영락 없는 어린이지만, 느낌은 많이 변했다. 산타가 뻥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 동생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적당히 둘러대는 것 정도는 협조해 준다. 

어느덧 나는 내 또래의 친구들과는 좀 다른 문화의 삶을 살게 되었다. 뭔 상관이냐. 아직은 어머니, 아버지, 다 살아 계시다. 내 삶에 이런 순간이 그렇게 길게 남지는 않았을 것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아직 다 계신 이 시간들을 슬프게만 지내고 싶지는 않다.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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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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