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애들 방학식이다. 오전에 일찍 학교에 가서 애들 데리고 왔다. 점심은 그냥 족발 시켜먹기로 했다. 나도 귀찮다. 그래도 어머니 점심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그거야 하면 되고. 

코로나 때문에 방학은 두 달간이다. 죽었다. 아내가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한 달 쓰기로 했다. 그래도 방학은 길다. 

내일은 어머니 검진일이다. 안 간다고 버티시는데, 어떻게 모시고 갈지, 머리가 빡빡하다. 이것저것 검사도 세 시간은 걸린다는데, 내시경 같이 복잡한 것은 뺐어도 차마 엄두가 안 난다. 어머니는 비협조의 극치다. 문진표가 안 왔다. 겨우겨우 안내 통화가 되어서 온라인으로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몇 년 전에는 있었는데 하도 사고가 많이 나서 이제 온라인은 없다고 한다. 택배 아직 도착 안 했으면 예약 뒤로 미루어주겠다고 하는데, 순간 경기.. 내일도 애들끼리 집에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일 처리 안 되면 다음 주에는 더 힘들다. 네, 그냥 하지요. 

내 바로 밑의 동생도 역시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화도 안 받는다. 오전에 전화 걸어보니까, 받기는 받았다. 부탁할 일이 좀 있기는 했는데, 하나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어려울 때니까 세 끼 잘 챙겨먹으라고만 말했다. 형으로 사는 게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 저녁에는 다큐영화 시사회에 가기로 했다. 영화사 진진에서 하는 행사다. 여러번 못 가고 미안해서, 이번에는 간다고 했다. 과연 갈 수나 있을런지. 

나한테 의지하는 사람들이 몇 명인가 잠깐 세볼까 하다가, 잠깐 세다가 말았다. 식구들이 줄줄줄, 여기에 아주 작은 규모의 출판사 몇 개, 그리고 기획을 하는 사람들. 

몇 년간 같이 일하던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이 떠나갔고, 몇 명이 더 늘었다. 주변 사람들이 줄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 늘었다.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속으로는 골골 하는데, 몇 년간 열 한 번 오른 적이 없고,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 팬데믹 국면에서 내가 감기 걸리면, 우리 집은 완전 정지다. 

어디선가 자문위원으로 위촉장 준다고 텔레그램으로 이력서 양식 채워서 보내달란다. 순간 컴퓨터 부술 뻔했다. 바빠주겠는데.. 

바쁘긴 바쁜데, 뭘 하느라고 바쁜지도 잘 모르겠다. 다다음 주에 중요한 인터뷰를 하나 할 생각인데, 아, 이 양반이 전화를 안 받는다. 돌아삐리. 

멜론에서 앙드레아 보셀리 노래를 하나 추천해준다. 꾹, 응, 들어.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서 주인공 테마곡으로 나왔던, 감옥 가는데 하루 종일 굿바이하면서 나왔던 노래. 기왕 듣는 김에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나왔던 <마리아>도 같이. 몇 년 전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한 달 내내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났다. 

아주 예전, 은퇴하면 노르망디 바닷가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아무도 성거시지 않은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은퇴 준비 중인데, 노르망디에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때는 별 거 없이 살다가 조용히 사라진다는 생각이었는데, 나한테 매달린 사람들이 아직은 너무 많다. 

나는 바다가 그렇게 좋았다. 수많은 바닷가에 갔었는데, 아직도 기억 속에서는 노르망디의 바다가 제일 좋다. 아마 거기서 노년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심지어 한 번 놀러갈 일도 없을 것 같다. 파리에는 가끔 가지만, 짧게 출장을 가면서 노르망디까지 갔다 오기는 쉽지 않다. 

불어로 부르는 앙드레아 보셀리의 라라의 테마를 듣다 보니, 문득 노르망디 생각이. 참, '라라의 테마'가 <닥터 지바고>에 나왔던 노래라는 생각이 문득. 윤석열이 재밌게 본 영화가 닥터 지바고였다는.. 그는 뭘 보고 이걸 인생 영화라고 했을까? 내 기억에는 영원히 살아남는 악인에 관한 영화였다. 그는 누구를 악인이라고 생각할까? 

점심 먹기 전, 그래도 족발 오는 거 기다리면서 약간의 휴식을 가졌다.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시고.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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