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53건

  1. 2020.12.21 씨네 21 연재를 시작하며.. 10
  2. 2020.11.11 개활지 산책 3
  3. 2020.10.14 마음의 에너지.. 2
  4. 2020.10.13 그리움의 시간들.. 1
  5. 2020.09.24 일정 더럽게 꼬인 날..
  6. 2020.09.09 코로나 덕분.. 1
  7. 2020.09.08 나이 먹는 것..
  8. 2020.08.25 왼손 마우스.. 1
  9. 2020.08.08 겉얘기와 속얘기..
  10. 2020.07.15 해체와 재구성..

연말이라서 여기저기 개편인지, 필진 부탁이 꽤 왔다. 지금 경향에 연재하는 중이라서, 다른 데는 좀 어렵고..

결국은 씨네21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처음 신문에 필자로 글을 썼던 게 서울신문이었는데, 참 오래도 썼다. 그 동안 한국은 뭐가 좀 좋아졌나, 문득 그런 생각이. 소득은 많이 높아진 것 같은데, 거기에 걸 맞는 삶의 질은 여전히 좀 그런 것 같다.

어제 김민경, 박세리 나와서 결혼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잠깐 봤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그렇게 얘기하는 게 시대상인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혼밥은 필수, 연애는 선택", 그렇게 시대가 변한 것 같다. 코로나와 함께 연애는 더 줄어든 것 같고, 대충 막 사는 아저씨들은 이 와중에도 단란주점 가시겠다고 또 온갖 편법이.

예전에 친구들 모이는데 좀 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맨날 증권 얘기만 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좀 참았는데.. 골프장에서 캐디 꼬시는 얘기들만 길게 해서, 확 질려버렸던 적이.

내가 사람을 좀 가리지는 않는데, 일상적으로 노는 공간에는 노 골프. 그러다보니까 내 주변에는 골프 안 치는 사람들이. 골프 안 치는 남자들이 보통은 유흥주점도 잘 안 간다. 그 대신에 뭔가 좀 엎어보자는 반역의 흐름은 아주 강하고.

개혁이라는 얘기가 참 개떡 같은 얘기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말이야 부드럽고 현실적인 얘기 같지만, 결국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미지만 가져가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내년에는 좀 더 앞으로 좀 나가보려고 한다. '진보', 이런 개 뼉다구 같은 얘기는 가급적 안 하려고 한다. 좌파면 좌파고, 우파면 우판 거지, 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진보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래서 좌파를 좀 더 전면에 내세울까 한다.

내 앞에 있던 사람들도 공개된 장소가 되면 좌파라고 잘 말하지 못하고, 진보라고 적당히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말도 꼬이고, 논리도 꼬이고. 내 뒤로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생각보다 변화가 많지 않다.

어차피 꼴통에 똘아이라고 몰린 처지, 뭐 더 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50대 나머지 인생은 '자랑스러운 좌파'로 살아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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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도 그렇고, 직장 민주주의도 그렇고, 내가 주로 다루는 분야들은 스포츠로 치면 비인기 종목이다. 별로 다루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고, 큰 관심도 단 번에 끌기 어렵다. 그래도 하는 건 그게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고, 그런 이유 보다 비인기라는 이유가 더 큰 지도 모르겠다. 경쟁도 별로 없고, 이건 내가 하던 분야니까, 그렇게 횡포 부리면서 텃세를 부리려는 주인들이 별로 없다. 만약 이런 걸 다루는 사람들이 많고, 이미 충분히 잘 되고 있으면, 굳이 내가 분석을 하려고 나서지 않았을 것 같다. 

비주류로 살아가는 게, 사실 몸에 밴 인생이기도 하다. 왕따는 왕따인데, 왕따 당하는 쪽 보다는 왕따 놓는 것에 더 가까운 삶을 산 것 같다. 그냥.. 아무도 안 보고 싶어. 

그러다 보니까 몰려 다니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누군가에게 머리 숙이는 것을 더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내 일로 머리 숙여 본 적이 없다. 남의 일로는 “한 번만 도와주시라”,, 머리 많이 숙였다. 내 일로는 아직까지도 머리 숙인 적이 없는데, 이제 남은 인생, 머리 숙일 일이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도 비주류로 살았는데, 남은 삶이 더욱 비주류의 비주류가 된다고 해서 별로 불편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국이 그렇다. 조금만 인기 있고, 뭔가 뜬다고 하면 우루르 몰려 가서 줄을 선다. 20세기 후반에 한국이 이러면 안 된다고들 했던 것 같은데, 새로운 밀레니엄이 오고 2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그런 것 같다. 

나는 한국이 좀 더 다양하고 다채롭고, 다원적인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20대부터 그랬다. 그리고 다들 하는 선택은 늘 싫어했다. 프랑스로 공부하러 간다고 하니까, 우와, 놀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던지. 왜 미국 안 가? 별 다르게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냥 돈이 없어서 미국은 못 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만족했다. 아, 쟤가 원래 가난하지.. 

학위 받고 뭔가 얘기를 좀 하려니까, 너는 왜 미국 박사 아냐? 그래서 그냥 C급 경제학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좀 덜 괴롭혔다. 겸손해서 나를 낮춘 게 아니라, 괴롭히는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서 그냥 낮추고, 뒤로 숨어서 살았다. 

2016년부터 애들 보는 일을 시작했다. 아주 편해졌다. 이제는 견제도 별로 없고, 굳이 찾아내서 “겨뤄보자”, 이런 사람들도 많이 사라졌다. 

조국 선배가 처음 청와대 갈 때 문자가 몇 번 왔었고, 나도 답을 했다. 뭐, 문자나 하는 것 보다는 친한 사이이기는 한데, 나는 애 보는 일도 버거워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조국은 조국 인생 사는 거고, 나는 내 인생 사는 거고. 진중권에게는 선배라고 부른다. 진 선배가 학교 그만두고 글 쓴다고 할 때,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나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 그 때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진중권은 진중권 인생 사는 거고, 나는 내 인생 사는 거고. 

다음 달부터는 코로나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한다. 코로나 1차 유행 때 12월달이 되어서 다시 전체적인 전망을 다시 해야 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대체적으로 백신이 등장한 이후 혹은 백신이 등장할 것 같은 순간부터의 흐름과 그 이후의 장기적 변화를 보고 싶었다. 진짜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겠나 싶지만, 초창기에 너무 뻔한 걸 가지고 얘기하기 보다는,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된 시점에 실제로 분석해야 할 것을 분석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잠시 돌아서 내 삶을 생각해보니까, 참 비인기 종목에다가 비주류 인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 모습대로 피어나면 그만인 인생인데, 조금만 옆길로 걸어가면 불안할 수 밖에 없는 문명을 만들어낸 게 우리 모습이다. 

눈치 안 보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눈치를 안 본 건 아니다. 눈치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아예 눈치나 눈총이 없는 한적한 곳에 펼쳐진 개활지를 걸어간 것 아닌가 싶다. 좁은 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넓은 길이지만 돈 안 되는 곳에는 아무도 없다. 비인기 종목이고, 비주류이기는 하지만, 숨어 살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뭐 하는지 사정 되는대로 거의 대부분 알리면서 산다. 그래도 별 관심 없는, 그런 한적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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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하게 '마음의 에너지'라는 말을 한 번 써보게 되었다. 초창기 정신분석학에서 dynamic이라는 개념으로 많이 쓰던 말이기는 한데.. 초기 열역학적인 상상력을 사람의 삶에 적용하가 위해서 쓰던 개념 중의 하나다. 

뭐, 이런 골 아픈 얘기를 21세기에, 그것도 코로나 한 가운데에서 다시 꺼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좋든 싫든, 우울증과 자살 얘기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정부 기관에 자문을 하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별로 그렇게 내키는 주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 사회에 왜 이렇게 자살이 많은가, 직장 민주주의를 하면서 한 번은 다루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주제다. 

무슨 깨달은 사람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진짜 딱 질색이다. 나이를 처 먹고 나니까. 누가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도 좀 꼴불견처럼 보인다. 누구한테도 별로 그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을 나도 잘 모르고, 당장 내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것도 잘 모르는데.. 남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영 질색이다. 

그래도 '마음의 에너지'라는 단어는 뭔가 풋풋하게, 마음 속에서 생각할 거리를 만드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마음이 가는 거야 어떻게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런 에너지가 있다면.. 그 크기가 삶에서 늘 균일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내 삶을 돌아봐도, 마음의 에너지가 좀 높았던 때가 있고, 뭐 그닥..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열정' 같은 얘기를 별로 안 좋아 한다. 허버트 허슈만의 "열정과 이익"이라는 책이, 아마도 20대 초반 내 운명을 바꾼 책 중의 하나였는데.. 자본주의와 함께 어떻게 열정이 새로운 시스템의 모터와 같이 사용되었는가, 그런 얘기를 너무 일찍 읽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열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 머리 속에서는 자동적으로 '자본의 음모'로 치환되어서 들린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마음이 평생 그렇다. 누군가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얘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고, 나도 열정을 가지려고 해본 적이 없다. 인간은 기계와 같이 그렇게 열정이라는 에너지로 폼뿌질해서 막 살아지고,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올해는 책이 코로나 때문에 '당인리' 한 권만 나오는 해가 되었고, 그나마도 작년에는 데뷔한 이후로 처음으로 책이 한 권도 안 나온 해가 되었다. 되는 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책들이 다 내년으로 넘어갔다. 일정이 어마무시하게 빡빡하다. 

일정표를 보니까 에세이집 하나 쑤셔넣을 공간이 없기는 한데.. 

'마음의 에너지' 정도의 주제로 에세이집을 한 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이 꺼지듯, 마음의 에너지가 사라지면 사람은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여전히 증오든 미움이든, 에너지가 넘치니까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양 쪽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죽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뭔가 하고자 하는 생각이 정말로 없으면, 죽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이런 질문들 찬찬히 던져보면서 글들을 좀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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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치기를 막 끝냈다. 

지난 주 토요일부터 몇 개의 일을 거의 초치기로 끝냈다. 다 잘 끝난 것은 아니고, 내가 자료를 너무 늦게 봐서, 엉뚱한 자료가 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도 하나.. 일요일 저녁에만 열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던 건데, 전체 자료가 10건이나 되어서 뒤로 미루다 보니. 하나하나 열어보니까, 이 인간들 완전 미필적 고의네.. 

막상 당장 해야할 것이 없는 순간이 오니까 순간 멍해진다. 뭐 하지? 

그리움의 시간이 찾아온다. 잠시 보고 싶은 얼굴들이..

저녁 때는 올초에 약속을 했던 광명시 강연이 있다. 너무 예전에 약속했던 거라서 안 한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내도 오늘 저녁에는 일이 있다. 결국에는 장모님이 하루 집에 오시기로. 

메일에 강연 부탁 와 있는데, 미안해서 아직 못 한다고 답변을 못한 게 몇 개 있다. 그것부터 힘들다고 답변을 하기로. 

애들 태어나기 전, 아내가 박사 과정 있던 시절에는 여행은 보통 주중에 갔었다. 그것도 계절에 따라 사람들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다. 이제는 주말 아니면 어디 가기도 힘들다. 

매일매일 일상을 처리하는 생활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신문사의 생각과도 다르고, 여의도 피플들 생각과도 다르게 마음이 전개 된다.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지고, 참는 데도 익숙해진다. 그리고 계절이 변하는 것에 훨씬 더 민감해진다. 그것 말고는 크게 변하는 게 없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애들 키우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없는 사람인 마음으로 살아간다. 뭔가 시간 약속을 해야 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고, 규칙적인 일은 더더욱 안 한다. 언제 누가 아플지도 모르고, 더더군다나 코로나 국면이라 집에서 30분 넘는 거리에는 가급적이면 안 가려고 한다. 동네 어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온 뒤에 큰 애 돌봄교실에서 귀가 조치가 내려졌었다. 

마음의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끔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리운 사람도 있다. 그래도 그 그리움이 오래 가지 못 한다. 조금 있으면 애들 학교 올 시간이거나, 학교 데려다 줄 시간이거나. 그리움의 시간이 오래 머물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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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오디오북으로 나온다. 프롤로그를 녹음해달라고 해서, 오전에 스튜디오에 갔다왔다. 간만에 강남에 갔다왔다.

저녁 때는 네이버 노조에서 영상 강연을 했다. 분당.. 우와. 가는 길도 겁나게 막히고, 오는 길도 살벌하게.

이런저런 이유로 노조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노조에서 오는 부탁은 어지간하면 들어주려고 한다. 노조라는 최소한의 안전판도 없을 때 벌어지는 황당한 일을 좀 목격했다.

노조라면 질색하고, 노조가 없어지는 것이 세상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왕조 시대 생각났다. 왕조가 없어지고, 귀족 아니 평민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지도자가 된 사람들이 저지를 잘못된 일들도 무지하게 많을 것이다. 대통령도 잘 못하고, 부패도 하고.. 총리도 또한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못할 거니까, 왕을 계속 두자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직장 민주주의 책은, 여러모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유럽식이라면 정의당에서 주로 얘기하고, 민주당도 반대하지 않을 얘기지만, 거의 의제로 설정이 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식으로 지금까지 진도를 나가는 중이다.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네이버 노조에게 뭔가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냥 내 식의 보람이다. 살면서, 보람 있는 일을 많이 했다.

내년에는 젠더 경제학을 정리하려고 한다. 많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년을 넘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책은 더럽게 안 팔리는 시대를 만났다. 이제는 괜찮은 책을 소개하고, 어떻게든 묻히지 않게 하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도 버티고, 좀 더 해보려고 한다. 나는 원래도 마이너의 마이너, 어려운 데에서 같이 고생하고, 그런 게 내 삶의 문화와 잘 맞는다.

티 안나게, 조용히 조용히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조용히 관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손을 보태고. 여전히 나는 조용히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동거리가 너무 많아지고, 오늘처럼 두 번씩 강남 아래로 가야하는 일이 벌어지면, 몸이 너무 힘들다.

그래도 먹고 사는 데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만 해도 감사할 뿐이다.

연구원장 같은 것도 귀찮고, 무슨무슨 기관장이니, 그런 것도 다 귀찮다. 애들 보면서 조금씩 글 쓰고, 도울 수 있는 사람들 조금씩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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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사줬더니 큰 애는 오늘도 일찍 데리러 오라고 성화다. 친구들이 다 일찍 가는 데다가 비도 온단다. 이번 주까지는 태권도장이 문을 안 연다. 방법 없다. 세 시에 애들 다 데리고 왔다. 돌봄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정말 힘들다. 거리두기 하느라고 멀찍이들 떨어져 있고, 혼자서 책 보고 노는 게 다다. 돌아비리. 

어제 저녁에 아내가 식기세척기도 사고, 건조기도 사겠단다.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고, 부엌이 좁아서 놓을 데도 마땅치가 않다. 오랫동안 몸으로 때우면서 잘 버텼는데, 거리두기 2.5 2주차가 되면서 이 인내도 바닥이 났다. 그래, 돈으로 되는 건 돈으로 하자..

당인리 이후로, 출간 일정을 전면 재조정했다. 뭔가 좀 불편한데도 참고 했던 것들이나, 에디터가 확실하지 않은 것들은 다 연기. 전에는 뭐가 좀 안 맞아도, 그냥 참아가면서 했는데.. 그런 것들이 힘은 힘대로 들고, 성과도 별로였다. 그래도 좀 여유가 있을 때에는 다음에는 좀 편하게 해야지, 그렇게 참아가면서 했는데.. 코로나 국면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내년 겨울에 모든 것들이 정상화되어 있다면, 그 정도가 기적적인 일일 것이다. 쉽지 않다. 내년에는 둘째가 학교에 들어가는데, 최소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이라고 해도, 앞으로도 2년은 더 이렇게 지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세 시부터 애들 데리고 오는 건, 좀 가혹한 조건이기는 하다. 

하는 일들을 극단적으로 줄여 놓은 상황이기는 한데,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더 줄이게 된다. 방법 없다. 삶이라는 게 되는 대로 하고 사는 거지, 죽어라고 무슨 결심을 해봐야. 

한 때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에도 등대와 같은 삶을 꿈꿨었다. 서 있는 곳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삶, 그래서 작더라도 몇 개의 배에게는 도움이 되는 삶, 그런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뭐,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제 자리에 있는 삶은 도달한 것 같다. 목표의 반은 온 셈이다. 장하다! 

코로나 덕분에 이룬 게 없지는 않다.. 드디어 나는 꼼짝도 하지 않는 삶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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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갔다왔더니, 얄짤 없이 한 시다. 지친다. 올 여름 휴가도 애들 다 데리고 울산에 갔다왔었다.

40대에 아직 지치지 않았던 시절에는 울산, 제주도, 부산, 이렇게 지역별로 지역경제에 대한 책을 써볼까 하던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엄청 돌아다녔었는데.. 애들 키우면서, 이제 그렇게 힘 많이 드는 일은 못 한다.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살면서 포기한 게, 아프리카 경제학을 포기하던 시절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석사 때 지도교수가 날리던 아프리카 경제 대가였다. 나중에 삶이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루어둔 것인데, 그런 여유는 내 삶에 생기지를 않았다.

지역경제를 가지고 좀 다양한 버전으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활동량 많던 시절에나 생각하던 것이지.. 지금은 택도 없다. 잔고가 좀 여유가 있으면 이것도 좀 풍부하게 펼쳐볼 수 있을텐데, 캑캑. 애들 데리고 먹고 사는 것도 빡빡하다. 그런 연구에 돈을 들일만한 처지가 아니다.

지금 쥐고 있는 몇 개의 주제도 제대로 펼치지를 못해서 낑낑거리며 살아간다. 여기에 뭔가 더 얹는 건 무리다.

지방에 가면 사람들도 좀 만나고, 하루 밤이라도 자고 오면 나을 것 같은데..

그러면 아침에 애들 등교는 누가 시켜줄 것도 아니고.. 오후에 하원도 제 시간에 해주기가 어렵다. 캑캑.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날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점점 나이를 먹어서, 예전처럼 그렇게 영민하게 돌아다니기도 어렵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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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어깨가 몇 달째 계속 아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딱 마우스 드는 그 각도다. 내가 무슨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정도인데.. 

책 내던 초장기에는 키보드 치는 어깨가 많이 아팠었다. 만년필로도 쓰고, 가급적이면 자판 덜 치려고 했었다. 그 짓도 오래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요령이 좀 생겼다.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하고, 꼭 뭔가 써서 해야 할 때에는 종이에다 만년필로 미리 밑그림을 좀 그리고.. 

책 쓰는 시간에는 어쨌든 긴장해서 자판을 치게 된다. 애들 태어난 다음에는 책 쓰는 시간도 하루 두 시간으로 줄였다. 막판에는 좀 더 하기도 하는데, 매일 그 정도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다. (대가리가 부족하지!) 그 시간에도 안 되는 건,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준비가 부족해서다. 준비가 될 때까지 뒤로 미루고, 준비가 된 걸 먼저..

게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뭘 더 한 것도 아닌데 마우스 쥐는 오른쪽 어깨가 아픈 건.. 대가리 쓰는 게 귀찮다. 그냥 마우스를 왼손으로 옮겼다. 생각보다 어색하다. 그래도 오른 쪽 어깨가 풀리려면, 어색한 걸 참는 게 나을 것 같다. 습관이라는 게 무섭다. 

올 연말까지는 사람들 만나는 거나 새롭게 뭔가 하는 것들을 극도로 줄이고,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몸도 좀 추스르고. 애들 키우다 보니, 정말로 심신이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뭘 할 수도 없는 시기다. 

2020년은 아마도 마우스를 왼손으로 쥐게 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나머지야 뭐, 그렇게까지 감동적으로 가슴에 남을 일이 벌어지지가 않았고, 또 남은 시간에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왼손 마우스는 어색하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색한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게, 남은 인생을 덜 어색하고, 덜 불편하게 사는 방법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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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기부터 한 과목씩 수업을 하게 되었다. 뭐, 아무 거나 해도 된다는. 그래도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으라고 했다고, 막상 아무 거나 하라고 해도 아무 거나 하기는 어렵다.

이번 학기는 말고, 좀 준비를 해서 다음 학기 수업 제목을 '겉얘기와 속얘기'로 하면 어떨까 싶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또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다.

이번 정부를 보면, 딱 겉얘기와 속얘기라는 틀을 사용해서 분석하기가 좋은.

겉얘기는 조국 이후로 맨 앞에 선 검찰 얘기. 속얘기는 집값 파동으로 터져나온 경제 얘기. 겉얘기는 화려하기는 하지만, 진짜 큰 울림은 속얘기에 들어가 있다.

공격과 수비로 바꾸어도 비슷한 얘기가 된다. 정치는 공격에 해당하고, 경제는 수비에 해당하는데, 단기적으로는 정치가 최고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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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건이 지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머리 복잡하고, 심경도 복잡하다. 

트라우마로 얘기하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다. 영화 명랑에 최민식이 영화 끝에서 말한다. "이 많은 원혼을 다 어쩔 것이냐." 조선 수군이든 일본 수군이든, 명랑에서 원혼이 된 것은 마찬가지다. 

일장공성만골고라는 말이 있다. 장군 한 명이 이름을 드높이는데 만 개의 해골이 뒹굴게 된다는.. 참 슬픈 얘기기는 하지만, 이건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젠더 경제학 책을 좀 빨리 쓸 수 없느냐는 얘기를 몇 군데에서 들었다. 

직장 민주주의 책에서 젠더 민주주의라는 장을 하나 열었던 적이 있다. 생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좀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생활 민주주의의 하위 개념이다. 좀 더 상위의 개념으로서 생활 민주주의를 얘기하기에는, 아직은 좀 빠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젠더 경제학에서는 생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직장을 너머 가족 같은 데로 좀 더 전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가고 싶은 것은, '남성 엘리트주의' 그 이후의 사회에 대한 표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일종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내 방식대로 펼쳐보는 것 아니겠나 싶다. 지역에 대한 얘기는 많이 했고, 젠더에 대한 얘기도 좀 했는데, 그걸 좀 더 종합적으로 생활 민주주의 방식으로 언젠가 그려보고 싶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생활 민주주의에서는 여전히 좀 약하다. 

그렇기는 한데.. 젠더 민주주의 같이 작업하던 에디터가 결국 출판사를 그만 두었다. 책 출간 일정 당기기는 커녕, 제 날자에 맞추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출간을 당기기는 커녕, 제 날자에 내기도 어렵다. 나는 에디터랑 몇 년간 호흡을 맞추면서 새로운 책들을 같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무나 그냥 같이 하는 거, 그런 식으로는 책을 못 쓴다. 몇 번, 에디터가 바뀌게 되어서 그냥 해봤는데.. 공교롭게도 그런 책들이 다 망했다. 최근에 그런대로 괜찮은 성과를 낸 책들이, 다 오래 된 에디터들과 오랫동안 준비해서 정석대로 낸 책들이다. 뭐, 그렇다. 예전에는 책 사정이 좀 괜찮아서, 크게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은 책들도 선방을 하기는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되기가 좀. 출판사는 바꾸어도 에디터는 안 바꾼다. 

나도 50이 넘으면서, 이제 모르는 에디터랑 쉽지 않은 내용을 얘기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맞춰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 내가 움직여야 얼마나 움직이겠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몇 년 안 된다. 

정부연구소나 공기업 기관장을 안 한다고 한 것은.. 그게 임기가 2~3년이다. 한 턴, 어쩌면 두 턴하고 나면 나의 50대는 다 간다. 그러면 끝이다. 그 나이에 다 늙고 병든 몸으로 뭘 또 하겠나. 근혜 시절이었다. 광주도시공사 사장직 제안이 왔을 때에는 정말로 고민을 좀 해었다. 내가 생각하던 지역에서의 공간 정책, 그런 걸 진짜로 해보고 싶기도 했었다. 일주일 고민했는데, 결국 그 길이 아닌 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내가 공직을 안 한다고 마음을 먹은, 그야말로 definitly.. 그 순간이다. 

지금 와도 그 순간을 별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차관이니 장관이니, 혹은 기관장이니 그런 건 인생의 목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번도 그런 걸 목표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지금 와서 친구들이 이제 높은 자리에 갔다고 나도 한 번, 그렇게 살아온 걸 바꾸면 어렵게 지냈던 나의 청춘과 30대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진다. 그 순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어려운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대나 30대나, 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늘 우리는 핍박받고 있었고, 도망다니거나 숨어서 뭔가 했다. 그러다가 다들 먹고 살게 되거나, 아니면 힘 있는 자리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변했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젠더 경제학에 대한 부탁을 받은 건, 10년도 좀 넘은 어느 날, 여성 경제학자들, 정확히는 누님들이 니가 그런 걸 좀 해라.. 그렇게 시작된 거다. 아직도 마무리를 못 했다. 이제는 그 질문을 마무리할 순간이 온 것 같다. 

나 혼자 생각한 건데, 그냥 나는 움직이는 동안, 등대 같은 삶을 살면 좋겠다는.. 폭풍우 치고 깜깜한 밤에 조그맣게 불을 밝히는 등대 같은 삶이 되면 좋겠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격랑이 이는 깜깜한 밤에 뱃길을 나서지는 않는다. 그 순간에 뭔가 항해를 해야하는 사람들은 다들 먹고 살아야 하거나, 매우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먼저 움직이고 늘 최전선에 있으려고 한 건, 그런 이유는 아닌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내가 책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건, 이게 수단이 아니라서 그렇다. 나에게 책은 다른 일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이게 목적이고, 다른 게 수단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서 또 자료를 줄 사람을 만나고.. 그런 게 수단이 된 셈이다. 그리고 점점 더 어렵고, 점점 더 까다롭고, 그리고 또 점점 더 안 팔릴 책을 쓴다. 그런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다행히 책을 쓰면서도 먹고 사는 걸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애들 먹고 싶은 거 사주고, 갖고 싶다는 장난감 사주는데 궁색하지는 않게 산다. 고생하는 후배들 가끔 밥 사줄 때 싼 것 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는 산다. 

젠더 경제학을 거쳐 생활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은, 쉬운 길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언젠가 넘어가야 하는 산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멋지거나 고귀한 그런 학술적 목표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지체된 것이고, 그 지체가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 

큰 애에게 만 원짜리 비상금을 두 번 주었다. 그랬더니 이게.. 학교 문방구 앞에서 조그만 레고 장난감을, 정말 쓸 데 없는 걸 몇 개 샀다. 엄마한테 혼났다. 그런데 둘째가 형아가 가진 장난감을 보면서 심통이 났다. 지난 주에는 자기도 문방구 앞에서 본 게 있는데, 사주면 안 되냐고 나한테 물었다. 이번 주에 같이 가서 사준다고 주말에 대답을 했다. 어제 저녁에 둘째가 문방구에 언제 갈 거냐고.. 애들한테 뭔가 약속을 하면 빚쟁이가 된다. 갚을 때까지 계속 추심이 진행된다. 오늘 저녁에 간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둘째 어린이집 가는 길에 저녁 때 몇 시에 문방구 갈 거나고 물어본다. 집에 오면 바로 간다고 했다. 

가끔 일정이 꼬여서 '환장할 일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삶이 환장할 삶은 아니다. 

출간 일정을 보면 좀 빡빡하다. 거기에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부탁이 좀 많이 온다. 그 중에는 가끔 내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삶의 나락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잔뜩 뭐가 꼬여버린 사람들의 부탁도 끼어 있다. 모른 척 하기가 어렵다. 제가 해드릴께요, 그러고 나서는 집에 와서 후회한다. 그렇게 '환장할 일정'이 더 환장스럽게 된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해? 

애 보는 아빠한테 해달라는 것들이 좀 너무 많은 듯 싶다. 그래도 그냥 웃으면서 하는 게, 평생 이렇게 살았다. 

해야 할 일이나 내려야 하는 결정이 너무 많아서 잠시 먹먹해진 아침, 깃발이 아니라 등대로 살기로 생각한 30대 중반이 잠시 생각났다. 

"자기야, 나 좀 도와줘." 그 시절에 이재영이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깃발이 되는 삶을 내려놓고 이재영을 돕는 선택을 했다. 이재영은 노회찬을 도왔고, 나는 이재영을 도왔다. 그 이재영은 벌써 죽었고, 노회찬도 죽었다. 내가 뭘 위해서 살아야 할지, 그런 것은 이제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을 모으거나, 뜻을 모으거나, 그런 것은 안 한다. 그런 건 너무 많이 했다. 

모아야 할 때가 아니라 이제야말로 해체하고 재구성을 준비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데리다가 아주 예전에 했던 얘기가 잠시 다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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