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이 국회의장이 되었을 때, 국회 안에서 뭔가 해보라는 권유가 엄청 많았다. 그때도 별 거 안 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후, 나는 애들 보던 거 그냥 하고, 아내가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적응을 하는 거를 뒷받침하면서 살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다들 줄 서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한 자리 하는 걸 보면서, 나는 그냥 좀 안 그러고 싶었다. 소소한 이유를 따지면 정책에 대한 결이 달랐던 것도 좀 있었고.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 나는 본격적으로 50대 중반이다. 망했던 나의 40대가 다시 생각이 났다. 나의 40대는 mb와 함께 시작이 되었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의 40대는 온통 헤매고 고생하고, 슬퍼하고, 먹먹해하던 기억만이 남았다. 

내 인생을 잠시 살펴보면,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원 없이 해볼 수 있는 시기는 그야말로 한 턴, 공교롭게도 이번 정권의 5년,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마 그 시기가 지나면, 지금처럼 가만히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생각이 나고, 새로운 시도가 생각이 나는.. 그런 때가 지날 것 같다. 에이징 커브, 아마 나에게도 그런 게 올 것 같다. 

평생 머리가 팡팡 도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이제 12시가 넘어가면 잠이 쏟아져서, 집중해서 글을 쓰는 건 하기가 어렵다. 밤 새서, 아니 며칠씩 밤을 새던 그런 시기는 나에게도 끝이 왔다. 아마 몇 년 지나면, 낮에도 집중이 어려운 그런 때가 올 것 같다. 

일단 정한 것은 내가 하던 일들을 5년 내에 어느 정도는 마무리해서, 어느 때 손을 내려놓아도 괜찮은 상태를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안 하던 일을 새로 하기는 어렵고, 그냥 하던 일들을 마무리하는 정도로. 아마 5년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금 무슨 엄청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좌파 에세이를 쓰면서, 나의 남은 날들을 누구와 보내게 될지 생각을 많이 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나에게 그런 글을 쓰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좀 더 어려운 사람들, 더 힘든 사람들, 그들과 나 생의 나머지 시간들을 보내려고 한다. 더 소수자, 더 어려운 곳, 평생을 그런 곳에서 지내려고 노력했고, 나머지 삶들도 그렇게 될 것 같다. 

60대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둔 것이 없다. 아주 옛날에는 그 시간이 오면 <삼국지> 같은 거다 새로 쓰면서 지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것도 어린 시절의 생각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불어 번역은 괜찮게 하는 편이다. 노년에는 책이나 번역하면서 보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그게 생각보다 체력과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이라서.. 그것도 어려울 것 같다. 그냥 나 쓰는 용돈이나 번다고 생각하면, 이름 걸지 알고 그냥 매절로 번역하는 정도의 일을 해도 그냥그냥 살아갈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돈을 많이 쓰는 스타일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 

한 가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정부 기구나 공기업 같은 데 무슨 자문이라고 하면서 틈틈이 가서 아무 소리나 막 하고, 밥 얻어먹고 오는 일.. 그런 것은 정말 안 하고 싶다. 

시민단체 같은 데에서 발제 부탁이 와서, 몇 개는 해줬고, 앞으로도 좀 할 게 있다. 생협에서 가을에 기념 강연 같은 거 해달라고 해서, 그것도 해준다고 했다. 아마 그렇게 어렵지만 근근이 버텨가는 단체들 조금씩 도우면서, 그렇게 내 삶의 남은 시간들을 쓸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박용진을 조금씩 돕는 중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오죽하면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겠느냐 싶은 생각이 더 컸다. 박용진을 알고 지낸 건 오래 된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이고, 아내와 결혼하기 이전에도 알았었다. 그 사이에 그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엄청난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아마 앞으로도 5년간은 조금씩은 도와주게 될 것 같다. 진짜 개인적인 일이고, 우정에 의해서 하는 일이다. 

40권 약간 넘는 책을 썼다. 50권까지는 어떻게든 가 볼 생각이다. 내년, 늦어도 후년에는 어떻게든 마무리가 될 것 같다. 나 혼자 ‘경제 대장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느새 내 인생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런 인생은 너무 긴장도가 높고, 머리가 복잡한 스타일이 삶이다. 그렇게 죽어라고 살다가는 버나드 쇼가 얘기한 데처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런 얘기 나오기 딱 좋다. 

조희연 선생을 개인적으로 좀 아는 편이다. 그는 말년에 교육감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삶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더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는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싶다. 
회사 생활을 만으로 치면 28세부터 시작했다. 그때부터 평생을 욕 먹으면서 살아왔다. 좌파로 살면, 한 일오도 욕 먹고 하지 않은 일로도 욕 먹고, 그냥 무지하게 욕을 먹게 된다. 언젠가는 그런 것도 다 사라질 날이 오기는 할 것이다. 욕 하는 건 이제는 자식 밖에는 없는 삶, 그런 시간이 나에게도 올 것이다. 

그렇지만 5년간은,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한테 욕 더럽게 먹는 그런 삶을 당분간은 살게 될 것 같다. mb 때 청와대 홍보수석인가, 하여간 그런 인간이 “애 입 좀 막으라고”, 생난리를 쳤나보다. 하여간 난리 부르스가 났다. 녹색성장과 원전 정책에 대해서 글을 쓰던 시절이었다. 그때 한 번만 더 협박하면 그간에 있었던 일 다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 뒤로는.. 움직일 공간이 앞으로도 없고, 뒤로도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 mb 때도 버텼는데, 윤석열 때 못 버티겠나 싶다. 

그 시절에 이것저것 얘기를 많이 했는데, 후보 시절 근혜가 그걸 읽었다고 누가 알려주었다. 근혜가 대통령 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외교부에서 통상교섭본부 떼어다가 산업부에 붙인 일이었다. 그게 fta 책의 최종 결론이었다. 근혜 대선 캠프에서 보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못 들은 척 했다. 나중에 인수위 사람들은 보자고 해서 잠시 만났다. 그래도 근혜 시절에도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5년 간은 그런 시절을 또 겪을 것 같다. mb 시대와와 윤석열의 시대가 뭐가 다른지, 몸으로 겪어보면 알 일이다. 어쨌든 인수위 끝나면 인수위 보고서는 차분하게 읽어볼 생각이다. 여유가 되면, 작은 팜플렛 스타일의 책 한 권은 쓸 생각이 있다. 나도 인수위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지 궁금하다. 영화 <짝패>에서 류승완의 대사가 이렇다. “이제부터 전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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