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이 워낙 전문가들 만나서 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데 가면 보수 일색이다. 정권이 몇 번 바뀌어도 별반 차이 없다. 차이는 보수 정권일 때에는 신나게 떠들다가, 민주당 정권일 때에는 좀 다소곳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이러 데들이 여전히 보수쪽 전문가 일색인 게, 끈 타고 내려온 진보 쪽 인사들이 정말 얼척 없는 소리만 하며서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면 가만히나 좀 있지. 아니면 정말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거 검토하는 회의는 무슨 대단한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영광도 없는데, 자료는 또 갑나게 복잡하고.. 힘든 거에 비하면 먹을 게 없다고, 일 마무리 될 때까지 잘 안 나오고 중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성실 복무, 끝까지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이 후속 회의에 계속 나오게 되는데, 그런 건 또 보수 인사들이 잘 한다. 

그럼 나는 왜 불러주나.. 워낙 그 세계에서 오래 살아서, 불쌍하다고 불러주기도 하고, 간만에 옛날 얘기하면서 밥이나 먹자고 불러주기도 하고. 뭐, 그런 노스탈지아 같은 이유도 좀 있는 것 같고. 아니면 결과 알면 생난리 칠 거니까, 미리 얘기를 같이 하는 게 낫다고 부르기도 하고. 하여간 그렇다. 

공교롭게도 대선 끝나고 이런 자리가 몇 번 있었는데, 후아.. 나는 듣지도 못한 인수위 내부 얘기들을 어찌다 잘들 알고 계시는지, 누구는 가려고 했는데 못 갔다. 누구는 오라고 했는데 안 갔다 등등. 고개 박고 묵묵히 짜장면 먹으면서 듣고 있는데, 짜장면발이 전봇대처럼 뻣뻣해서 목으로 넘어가지가 않는. (맛있는 짜장면이었는데, 훌륭한 짜장면님 탓을 해서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속으로 열불이 나고, 입맛이 뚝 떨어져서 비싼 중국집에서 결국 고추가루 달라고 해서, 왕 맵게 해서 겨우겨우 먹었드랬다. 열량폭발 짜장면을 놓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문 걸어잠그고 못 본 척 하면 그만인데, 아직은 나도 현업이라, 동종업계에 돌아가는 일들을 그냥 모른 척하고만 있으면 먹고 살 수가 없다.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나도 알고는 있어야, 먹고는 살 것 아닌가. 

짜장면 먹고 나서 ‘대오대불’은 아니더라도 ‘대오각성’ 정도는 한 게, 잘난 척들 하는 거 얄밉다고 등 돌릴 것도 아니고, 괜히 심통난다고 궁상떨 게 아니라는 것. 그래봐야 골리는 사람들만 더 재밌고, 신날 것 아닌가 싶다. 

영화 <전우치>에 보면 초랭이가 괴한들을 물리친 후 이렇게 말한다. 

“이럴 시간 있으면 책이라도 한 자 더 디다봐!”

그렇다. 궁상떨 시간 있으면 한 자라도 더 디다보거나, 한 번이라도 더 웃길 수 있는 유머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낫다. 오늘부로 나의 궁상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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