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세상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책은 별로 힘을 못 썼는데, 동아일보 같은 데에서 성숙은 아니라고 꽤 난리를 쳤었다. 대중적으로 뿌리는 못 내리고, 아주 상층부의 소모적 논쟁만 생겨났던..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성숙해졌는가? 개뿔이다. 힘들 때 성숙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쉽다. 그냥 고개 처박고 있으면 된다. 잘 될 때 혹은 좋은 흐름을 탔을 때, 그 때가 어렵다. 좋으면 고개 빳빳이 들고, "다 내가 잘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행동하게 된다.

성숙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한국에서는 남자랑 여자랑 비교하면 좀 더 쉬운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남자 특히 성공한 남자 중에서 그 사이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더욱 더 꼰대처럼 되어간다.

진중권은 성숙했을까?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진보누리 시절의 진중권에 비해서 더 성숙해진 것 같지는 않다.

장하준은 성숙해졌을까?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라서, 그의 인격과 삶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하는 얘기들이 부쩍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도 어쩌면 삶의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 적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은 성숙해졌을까? 글쎄.. 참여연대를 움직이던 그 시절에 비해서 진짜로 국민경제 전체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했으니까. 상식적으로는 그 이상 더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분노가 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그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가 정의당 한 가운데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그는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더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인다. 모르겠다.. 혹시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는 더 성숙해졌을지도.

가끔이라도 보는 남자들 중에서 더 유명해지거나, 더 높아진 사람들은 꽤 많다. 성숙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잘 없다. 성숙하기 전에 노화가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들 중에는 예전에 알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더 깊어지거나 우아해지거나, 덜 날카로와지고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한혜정 선생이 대표적이다. 은퇴하기 몇 년 전에 꽤 많은 연구를 같이 했었다. 그리고 은퇴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은퇴하지 몇 년, 손자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래도 관심이 줄어들거나 뒤로 간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더 편안해졌다.

시인 노혜경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잘은 모른다.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방송과 글로 보던 예전의 그의 모습과 요즘의 그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보면, 확실히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변화가 있기는 한 것 같다. 만약 그걸 성숙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여성들은 40대와 50대를 거치면서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환갑을 바라보면서 심성에도 변화가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더 처먹지 못해서 환장을 하는 할머니들도 종종 봤다.

사회는 바뀌고, 시간은 흐른다. 개인들도 그 속에서 개인사의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만나게 된다.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해서 공황장애로 가는 사람도 종종 보았고, 이미 끝냈어야 할 부부 관계를 해소하지 못해 수심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도 보았다. 친구들은 잘 나가는데, 자기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해만 지면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보았다. 그리고 많아진 돈과 명예를 감당하지 못해 점점 더 자기 안의 성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람도 보았다.

성숙이란 뭘까? 몇 년만에 성숙 자본주의 책 내던 시절에 관한 기억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본다.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들을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운동권들에게 힘과 권력이 가는 시대가 왔다. 과연 이 시기에 우리가 성숙한 한국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국가는 그렇다 치고, "저 사람은 그래도 좀 성숙했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좀 배출할 수 있을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는 허들을 향한 협동진화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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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조례, 광주의 경우

 

1.

MB 시절,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 같지만, 내 인생은 진짜로 삶의 어두운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괴로웠다. 나꼽살이라는 팟 캐스트를 시작한 건, 대충 그 시절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가장 인기 있던 시절이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세상은 증오로 차 있었다. 증오가 정의이고, 그게 옳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은 오래 갔다. 그 힘은 박근혜 아니 순실이를 만나서 결국 폭발했다. 어쨌든 우리 모두, 아니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을 움직인 것은 분노였다. 너무 싫었다.

 

2.

그 즈음에 내가 나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과연 분노 위에 무엇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런 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아주 길고 긴 과정이다. 당통과 로베르츠피에르 같은 우정이 결국 배신과 죽음으로 엇갈린..

 

그 시절에 분노 위에 세워진 것은 오래 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 내 분노가 절정으로 달하던 시점이 <괴물의 탄생>에서 <생태 요괴전>, 그 사이 어느 쯤인 것 같다. 그 시절의 책들은, 괜찮게 팔리고, 파장도 있었다.

 

Mb 시절이 끝나가고, 대선에서 졌다. 망했다. 나는 그 때쯤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분노를 내려놓고 시도한 첫 책이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이었다. 책은 망했다. ,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게 내가 생각한 청년에 대한 얘기를 정리한 책이다. 책은 망했지만, 그 책에서 던져진 이슈는 살아남아서 여전히 움직인다.

 

그리고 한동안 사는 게 좀 편치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도 안정되었고..

 

사는 게 편해지다 보니까, 이름이나 명예 혹은 권력, 그런 게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 때쯤 내 주변에서 영향력이라는 단어들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별로 의미 있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영향력이 좀 생기면 뭐 하나.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별로 원치 않은 일을 하는, 허깨비 지랄 같은 걸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한테 대박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다.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나는 대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 입장에서, 대박 나야 뭐하겠냐? 더 유명해져서? 사는데 불편하기만 하다. 내가 가는 동네 슈퍼 아저씨가 나를 못 알아보는 정도 상황이 딱 좋다. 이미 망했다.. 자꾸 인사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것이다. 그 외에는, 별 의미 없다.

 

물론 모든 책이 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계속 책을 쓰는 것은, 변화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팔리고, 좀 덜 팔리고,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사회적 경제 책이나 직장 민주주의 책이 그런 흐름 위에 있다.

 

그 사이에 이 책은 꼭 돈 벌 것”, 그런 제안들이 몇 번 있었다. 돈에 내가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큰 의미 없다. 내가 나한테 떳떳하지 않은 책은 싫다.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3.

직장 민주주의 책으로 광주에서 부탁이 왔다. 광주 갔다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근데 이번엔 뭔가 좀 다르다. 독자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은 없다. 그건 지방강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늦어도 그 날 돌아온다. 아직까지 책 때문에 내려가서 그냥 자고 오는 일은 한 적이 없다. 성격 더럽게 까칠하다. 모르는 사람과 밥 먹기, 모르는 사람과 술 먹기,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그것만큼은 이제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 술이라도 좀 편하게 먹게..

 

근데 이번에는 꼭 술을 마셔야 한다는 거다. 오매매. 아는 사람 부탁도 있고, 등등, 그러기로 했다. 저자로 데뷔한지 10년 넘게, 처음이다, 그런 일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럴 만한 일이기는 하다.

 

광주시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조례로 만들겠다는 거.. 옴마. 사실 안 될 건 없다. 한국당이 어깃장을 놓아서 법률은 늘상 폭망이다. 통과도 어렵지만, 막상 통과해도 이것저것 다 빠진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지금 그렇게 국회에서 폭망한 상태다.

 

광주는 그런 한국당이 없는.

 

가정친화인증제가 이미 있기 때문에, 조금 변형하면 실무적으로도 크게 무리갈 건 없다. 조달사업에서 가산점제로 할 거냐, 아니면 의무인증제로 할 거냐, 그 수위만 결정하면 된다. 학교도 그냥 조례로 지정해서 학교 민주주의 추진하면 된다.

 

메이데이 때, 그걸 발표했으면 쓰겄다.. , 그런 얘기다.

 

광주에서 들은 얘기는, 좀 가슴에 남았다. 광주가 얘기하는 민주주의는 왜 늘 과거의 일인가? 좀 더 미래적 민주주의 그리고 생활 속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를 할 수는 없는가? 그렇긴 하다.

 

직장 민주주의는, 그냥 결정해서 하면 되는 일이다. 크게 정리하면, 알아도 못하는 게 있고, 몰라서 못하는 게 있다. 직장 민주주의는, 몰라서 못 하는 것에 가깝다. 국가적으로 한 번에 하려면 한국당 때문에 좀 어렵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선언 형식으로 해도 된다.

 

어쨌든 뭔가 성과가 날 때까지 좀 도와주기로 했다.

 

서울에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노 위에 뭘 세우기가 어렵다. 오래 가고 강한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랑과 애정인 것 같다.

내가 움직여야 몇 년이나 더 움직이겠나. 두세 개만 세상을 바꾸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아니겠나 싶다. 그러면 ‘C급 경제학자정도의 이름은 남길 것 같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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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유감

책에 대한 단상 2019. 2. 17. 11:06

광화문 광장에 관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내 형편을 보면 '시대불화'다. 정부가 하는 것도 뭐라고 하고, 청와대 중점 사업도 뭐라고 하고, 박원순의 서울 시정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진짜로 이런 얘기 안 하고 싶고, 이런 글도 안 쓰고 싶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뭐라도 한 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된장.

정치 특히 영국 정치에서 '시끄러운 소수'와 '침묵하는 다수'라는 프레임이 종종 사용되었다. '시끄러운 소수'인지, '시끄러운 다수'인지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언제나 논란이다.

현실적으로 나는, '침묵하는 소수' 쪽인 것 같다. 소수이고, 침묵한다.. 그런 마이너의 마이너 견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지방 방송'이고, '지하실 방송'이고, '변방의 북소리'다. 그래도 저질은 아니다. 나름 고품격이다.

아마 영원히 마이너의 마이너 세계에서 살아갈 것 같다. 이런 삶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이상한 일이 진행될 때, 소수라는 이유로 그냥 입 다무는 것을 참기가 더 어려울 뿐이다..

'88만원 세대' 초고 끝나고, 결론을 바꿔주면 출간해주겠다고 하는 데가 좀 있었다.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은 아니다. 어차피 책 읽지 않는 대학생이나 20대에게 맞추지 말고, 그래도 좀 책을 읽는 30대~40대가 원하는 결론을 조금만 넣어주면.. 훈계하는 것은 싫었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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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부할 때 연극성(theatralite)라는 개념이 유행했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개념이고, 쉽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개념이다.

 

푸코의 <말과 사물>의 연장선에서 생각해보면..

 

사춘기가 과연 예전에도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사춘기가 현대적 현상이라는 거다. 근대가 출현하기 전에, 인간이라는 개념도 약했고, 인문과학, 그런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러니까 어린이 개념도 없고. 어린이는 약한 사람, 불완전한 사람, 그런 거였던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접근이나 개념 자체가 약하니까 당연히 어린이도 개념이 없고. 교육도 지금과는 접근 자체가 다르고. 그러니까 청소년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그 청소년기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다르게 취급하지도 않고.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사실 청소년기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결혼을 했고, 아빠가 되어 있거나 엄마가 되어있거나. 사춘기? 그게 뭔데?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그랬을 거다. 그러면 사춘기는? 이게 자연적 현상이냐, 사회적 현상이냐? 보기에 따라서 양 쪽 다 가능한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생리현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사춘기가 이제는 중2에 온다고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온다고 하기도 하고. 사춘기야말로 사회현상이기도 하고, 개념 현상이기도 하다. 나는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다. 반항은 학교 죽어도 안 간다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반항을 안 한 적이 없으니까 특별히 더 한 시기도 없다.

 

연극성은 이런 생각의 연장이다. 자기가 자신의 삶을 무대의 주인공처럼 생각한다는.. 이게 보기에 따라서는 20세기 현상이기도 하다. 대가족 시절에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재산이고 뭐고, 아무 것도 안 주는 차남들에게서나 생겨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더 올라가면 과연 인간, 아니 남자가 언제부터 허리띠를 쓰기 시작했는가? 최소한 그 때부터는 자신을 장식하고 꾸미기 시작한 거니까. 생각보다 늦다.

 

소비적 주체의 등장, 아마도 그런 과시적 효과를 베블렌이 분석한 게 19세기 후반이니까 그 정도에는 중산층에서도 어느 정도 형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드디어 생산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인 개인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스스로 자신의 삶이 주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엇겠지만, 귀족이거나 선각자 정도 되지 않았을까. 하여간 연극성이라는 얘기는 이런 얘기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자신은 자신만의 극장에서 모두가 주인공이다. 인생을 하나의 거대한 연극처럼 생각하고, 모두 거기에서 자신만의 연극을 하게 된다. 그게 삶이다.

 

이 얘기가 너무 재밌었다. 실제로 이 얘기로 박사 논문을 쓸 생각도 있었는데, 현실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정권이 우파로 바뀌면서 지도교수가 정년 이후 명예교수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나는 현실과 좀 타협을 했다.

 

연극성, 이 얘기 자체가 엄청나게 새롭거나 그런 거는 아니다. 자기 인생에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거, 너무 당연한 거 아냐? 그리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 작당한 판타지를 가지고 사는 거 아냐? 어차피 삶은 연극 같은 것인데?

 

그렇기는 한데, 이 얘기가 나한테 영향을 안 준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거나 별 거 없어 보이는 사람도, 다 자신의 의식 속에서는 주인공들이다. 그가 착각을 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다.

 

기획을 하거나 마케팅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양아치 짓을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사람을 숫자로만 보는 것이다. 물론 관객수, 독자수, 이런 건 다 숫자로 나온다. 시청률, 열독률, 이런 tv와 신문 같은 것도 주요 지표가 숫자로 나온다. 하다못해 유튜브도 카운터 숫자와 독자수, 이렇게 숫자로 나온다. 그래서 머리 수 세는 논리에 익숙해진다. 이런 게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다. 하다 못해 생태학의 기본도 머리 수 세기다. 포퓰레이션, 모집단의 개체수를 세는 것으로부터 생태학이 시작된다. 그런데 머리 수가 모든 것이 되고, 머리 수만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이러면 딱 양아치다.

 

그 숫자로 대표되는 모집단 속에서 한 명 한 명의 연극 주인공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잃으면, 그게 바로 양아치 아닌가? 생태학은 머리 수 세는 데에 끝나지 않는다. 그건 기본 데이터일 뿐, 그 속에서 생명과 생명 그리고 구조와의 관계를 구성해가는 것이 생태학 작업이다. 머리 수만 세고, 그걸 돈으로만 연결하는 것, 그건 양아치다. 그런 양아치성을 끝까지 몰고 가면, 미세먼지가 중요하니까 원전을 늘리자, 이런 이상한 얘기가 나온다. 환원해서는 안 될 것을 환원하게 된다.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가, 주인공들끼리의 연합체 같은 것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 나도 주인공, 너도 주인공, 우리 모두 주인공, ‘우리끼리만’. ‘스카이 캐슬현상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예전 경기고 나온 할아버지들이 이런 짓을 잘 했다. 얘도 경기고, 쟤도 경기고. 노회찬도 경기고 아녀? 이런 참, 뭐라 할 수도 없고. 노회찬은 학교나 학번 따지고, 나이 따지는 거 진짜 싫어했다. 어쨌든 노회찬도 경기고 나왔으니까 그 자리까지 간 거여,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경기고들이 대통령은 한 번도 못 만들었다. 얼마나 억울해들 하시는지. 그래서 이회창을 죽어라고 밀었다. 이회창 대통령 떨어질 때, 얼마나 꼬시던지! 게다가 상고출신 대통령 되는 순간, 진짜로 꼬셨다. 그래, 이게 시대 정신이야!

 

한 명 한 명의 연극 무대를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연극으로 보는 것, 물론 나도 잘 못 한다. 그래도 세상을 그렇게 보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기회가 되는 대로 그렇게 삶의 하나로서 재구성 해보려는 노력은 한다.

 

책의 저자가 되는 것은, 독자 한 명 한 명을 연극의 주인공으로 인식하기로 마음을 먹는 것과 같다. 제일 개쓰레기 같은 작가는 책 판매 부수로 자신의 독자들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건, 인간도 아니다. 양아치도 아니고, 스카이캐슬도 아니고, 그냥 개쓰레기다. 책을 못 쓸 수도 있고, 재미 없게 쓸 수도 있고, 쓰다 보면 틀린 내용을 쓸 수도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그러나 독자를 그냥 머리 숫자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책의 저자로서 출발점이 안 된 개쓰레기다. 3류 신문사 편집국장 같은 얘기일 뿐이다.

 

책이란 임시로 펼쳐진 연극 무대 같은 것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연극 무대와 조명, 장치들을 설치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책 쓴 사람이 주인공 아니냐고? 오 노! 연극 장치의 설치자 중의 한 명일 뿐이다.

 

책은 독자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책 만드는 놈을 욕하든, 책 쓴 놈을 욕하든,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든, 주인공 마음이다. 읽는 사람이 임시로 무대 이에 올라가는 주인공, 그런 게 책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여행 가이드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다. 여행은 주인공이 하는 것이다. 가이드는 그 코스를 도와주거나 약간의 설명을 덧붙일 뿐이다.

 

책만 그런 건 아니다. 만드는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연극에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고, 삶의 모든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걸 이해하는 게 만드는 일의 출발점이다. 내 물건을 누가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 그 의미가 뭔지, 그걸 아는 게 만드는 일의 시작이다. 그걸 모르고 하면? 본인도 힘들고, 남들도 힘든 일이 언젠가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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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때에는 강연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대학교 정도 가려고 했었는데, 그 시절에는 이미 학교 운동권이나 학생 자치 같은 게 무너지던 시기라서 그렇게 많이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금방 mb 집권이 시작되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데, 하여간 대학교 강연이 학교 측이 반대로 무산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나꼽살 하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는 김어준의 인기에 좀 묻어가는 면도 있었을텐데, 그 때는 진짜로 어마무시했었다. 부산대에서 대형 강의실 꽉 찾았다. 아마, 그게 가장 많이 왔던 걸로 기억난다.

2012년 대선의 문재인 서울 유세에서 처음 유세차를 탔다. 그 때 공약 중에서 의료비 100만원에 대해서, 아주 좋은 공약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성격상, 길게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몇 분 얘기하지 않고 내려갔는데, 그게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나보다.

그 시절을 정점으로, 내 인생은 그 후로 줄곧 하강 국면이다. mb 때도 힘들었는데, 박근혜 아주 초반만 지나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진짜 꽁꽁 틀어막혀 있었다.

그냥 정권 교체나 좀 돕자, 가벼운 마음으로 아직 당대표가 아니던 시절의 문재인을 돕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도운 건 마지막 선거가 끝나던 순간까지였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그 때 아내랑 아이들 다 데리고 보령으로 갔다.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서 며칠을 지냈다. 거기서 내가 하던 모든 걸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그 후로는 먹고 사는 걸 걱정하면서 살지는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특별히 다른 사람하고 싸우면서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노력하면서 살았을까? 그렇다고 억지로 말하면 '겁나 노력
, 이렇게 말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대부분 내 맘대로 살았고, 요즘은 그냥 내려놓고 산다.

그게 나의 50대다. 한 번 더 남은 인생을 위해서 도약, 그렇게 생각하기 좋은 나이일 것 같지만, 그건 똑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두 명을 돕는 일이 내가 주로 한 일인 것 같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고, 한 사람은 결국 환갑을 코 앞에 두고 감독 데뷔에 성공했다.

그리고 또 다른 동료 한 명의 인생의 난관을 풀어가는 데 나의 많은 시간을 쓴다.

그렇게 사는 게 더 나답다는 생각은 든다. 나는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하여 정말 덤으로, 딱 우리 집 생활비만 나오면 된다는 마음으로 책도 쓴다. 잘 팔리면 고맙지만, 아니라도 큰 문제는 없다. 그저, 내가 나중에 돌아봐서, 이런 책을 미쳤다고 썼냐, 그런 자책만 들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정도는 충분히 못 들은 척하고,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데도, 막상 그게 잘 되지는 않는다.

그거만 되면, 나도 해탈의 경지에 들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잘 안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도 잠시 생각해봤다. 아직은 내려놓을 게 더 많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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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애들 데리고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고 왔다. 작은 놀이터에 가서 잠깐 뛰어놀기도 하고. 큰 애는 벌써 커서, 단순 '나잡아 봐라'는 재미 없어 하고, 미끄럼틀에서 공성전을 해야 한다. 미끄럼틀, 안 올라가고 싶은데, 올라가서 잡고, 도망가고, 이 정도는 해야 놀이 축에라도 끼는. 좀 더 크면 미끄럼틀 공성전에서 투석전 하게 생겼다..

이번 연휴의 목적은 아내의 휴식과 일. 컨셉 명확하다. 아내는 지쳤다. 시장 보기나 애들과 산책은 내가 하고, 아내는 푹푹 잔다. 그리고 하루에 몇 시간씩 애들 데리고 나가서 아내가 밀린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좀. 그러다 내가 지쳐서 어제는 아홉 시도 되기 전에 뻗어서 잤다. 작전과 달리, 나만 푹 쉰.

나는 예전에 비하면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물론 일 자체가 없지는 않은데, 속도와 강도도 몇 년 전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추었다.

옆에서 누가 보면, 노는 건지, 하는 건지. 그럴 것 같다.

직장 민주주의 책을 벌써 손 털어버렸어야 하는데, 강연 등 일부 일정을 아직 잡고 있어서, 거기서 차질이 좀 생겼다. 할 수 없다. 그런 건 그냥 양심 가는대로.

얼마 전에 시사인 편집국장 했던 김은남 기자가 하루에 몇 시간 글을 쓰느냐고 물었다. 2시간요..

김은남 기자가 취재한 많은 작가들은 여덟 시간 한다고 한다. 뭐, 그럴 수는 있을 것이다.

책의 원고를 쓰는데 내가 쓰는 시간은 매일 2시간을 목표로 한다. 3시간 쓰는 날도 있고, 심지어 4시간을 쓰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꽝인 날도 있다. 잠시 책상에 앉지도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평균 내면 2시간.

그 이상 하면 좋을까? 생각 하나마나다. 애 보면서 2시간 낼 수 있으면 최고치다.

그나마 요즘은 다시 바빠져서 블로그도 거의 포기, 책 서문 읽기도, 그렇게 시간을 빼기가 어려워서 당분간 개점 휴업. 한 책 끝내고 다른 책 시작하기 전에 잠시 여유를 낸 건데, 당분간은 신경을 분산시키기가 어렵다.

지나보니까.. 정열적 활동,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던 시기가,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뭘 잘 몰라서, 쓸 데 없는 짓을 많이 했었다.

우쭈쭈쭈, 남들이 꼭 필요하다고 하면, 진짜 몸이 부숴지도록 도와지기도 하고.

요즘은 좀 약아졌다. 누가 뭐라고 말을 해도, 단가표부터 물어본다. 단가 안 맞으면 안 한다.

물론 시민단체 활동을 조금씩 돕거나 그런 건 지금도 한다. 그런 데는 단가고 뭐고 없다. 시민운동에 단가 같은 게 어딨냐.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거지.

나머지는 그냥 단가 맞춰보고, 영 아닌 건, 서로 마음 불편하지 않게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은 좋지만, 애들 보는 처지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당분간, 봉사는 애들한테 하고, 아내한테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하루에 2시간을 확보하는 거다.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차 한 잔 마시기 위해서 앞뒤로 준비하는 시간까지 치면 4시간이 사라진다. 그렇게 해서는 2시간도 안 나온다.

내년은 모르겠지만, 올해는 꼭 매일 2시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에게 2시간'이겠지만, 그것도 내게는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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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물에 그 밥. 나는 유학을 엄청나게 일찍 갔고, 학위도 전례없이 빨리 받았다. 그러다보니까 20대를 좀 별다르게 보내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 분야에서는 제일이라는 사람들과 일상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최고이거나 이제 곧 최고가 될 사람들. 서울대 철학과의 김상환 선생, 서양경제사의 주경철 선생, 이런 양반들하고 책 같이 읽고, 논문 뭐 써야하는지 그렇게 복댁이면서 살았다.

그러다보니까 내가 부딪힌 가장 큰 문제는, '그 나물에 그 밥'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다. 권위로 치면 내 주변 사람들의 권위가 하늘을 찌른다. 그리고 그냥 존경한다고 네네, 그렇게 지내다보면 뭔가 폼은 나는데,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된다.

지금 내 주변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계속하고 싶어하고, 정말로 편안한 상태가 되면, 더욱 더 익숙한 것을 진짜 열심히 하고 싶어진다. 보통의 잘난 사람들은 그렇다.

쉐킷쉐킷, 그걸 어떻게 흔들어서 전혀 새로운 조합을 만들 것인가, 그게 20대부터 내가 늘상 고민하던 현실적 질문이다. 여전히 어렵다..

잠깐 한눈 팔고 있으면, 또 다른 '그 나물에 그 밥' 안에 들어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거 아닌 것 같은데.. 늘상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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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다보면 쓰는 내가 재미가 없거나, 빨리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때는 전부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거나, 그 분량을 앞뒤로 드러내버린다. 그게 어려우면 그 부분이라도 다시 쓰는 수술을 한다. 쓰는 내가 재미가 없거나 감정이 안 생기면, 읽는 사람에게 그런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 물론 충분한 팬을 확보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부담감을 안 느낄 필요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 내가 재미 없는데, 누가 재밌겠다고 느끼겠나 싶다.

물론 그냥 그렇게 하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다. 과감하게 드러내면 그만이기는 한데, 큰 공사가 되거나, 대공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88만원 세대> 처음 시작할 때, 맨 앞의 인트로가 좌완 정통파 투수 이상훈에 대한 얘기였다. 근데 이게 은유가 너무 겹으로 겹치다보니까 얘기가 복잡해졌다. 일단은.. 다 버렸다.

오늘 아침에,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이 왔다. 이게 판단이 어렵다.

감정을 쌓아나가면서 뒤에서 진짜 얘기를 들을 준비를 하는 게 효과적이기는 한데, 문제는 독자들의 호흡이 점점 더 짧아져서.. 그 순간까지 따라올 사람이 점점 더 없어지는.

싹 버리던지, 장면 전환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데 마땅히 할 다른 얘기가 없다. 비비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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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시세를 보니까, 월세는 4,000에 40이다. 아내는 필요하면 작업실 따로 내도 된다고 하는데, 그냥 40만원어치 노는 게 날 것 같다. 보는 김에 간만에 옛날에 살던 아파트.. 2배 올랐다. 그거 팔고 이사가려고 했던, 결국 찜만 찍었던 아파트. 3배 올랐다.

지방에 집을 하나 더 살까, 일본에 하나 더 살까, 그러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뭐, 그러면서 각 국별로 부동산 특징과 그런 걸 공부하게 되기도. 강릉에 있는 경포대 현대는 진짜 살 생각이 있어서 몇 번 가보기도 했다. 동계 올림픽 유치한다고 생지랄 떠는 거 보면서 정나미가 뚝 떨어져서.. 그 후로는 진짜로 강릉은 한 번도 안 갔다. 신혼여행을 강릉으로 갈 정도로 강릉을 좋아했었다. 최고 절친도 강릉 사람이고.

결국 돌고 돌아, 작업실은 따로 마련하지 않는 걸로 결론을 냈었다. 그리고는 지금은 야옹구 쓰는 방에 얹혀서 고양이 눈치 보면서 지내는.

그 시절에 약간만 아는 교수 한 명이 막 부동산 회사를 차리고, 자기도 디벨로퍼라고 생지랄을 떨었다. 끌끌.. 그렇게 돈이 좋더냐, 그렇게 막 무시했다.

암 말기라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햐, 사는 게 뭔가하는 생각이 문득.

내가 봤던 집들은 최소 2배고, 보통은 3배 정도 올랐다. 그래도 안 산 게, 집으로 돈 벌었다는 얘기가 정말로 듣기 싫었다. 그냥 내가 사는 집에서 조용하게 사는 게, 제일 편하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그런 것.

작업실 때문에 집을 하나 더 살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도 마흔 넘어가면서 다 귀찮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난 젊었을 때 월급을 너무 많이 받아서 서른 살에 집 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통장에 돈이 많아서..

아파트 살 때, 내가 다니던 사무실 두 군데에 지도에 컴퍼스와 자 가지고 딱 중간 지점에 선을 그었다. 광화문과 용인 사이. 그 중에서 형편 되는 데 그냥 샀다. 진짜 무식하게 산 건데, 그 집도 세 배 넘게 올랐다. 그야말로 개발의 시대. 아무 것도 없는 벌판이 좋아서 고른 건데, 명박이 거기에 뭐라뭐라 막 때려짓는다고 하고. 건너편에 이번에는 오세훈이 또 뭐라뭐라 짓는다고 하고.

공사판 벌어지는 게 싫어서 그냥 이사왔다.

내가 알던 섬유 수입하는 회사 사장이 대구 사람이었다. 텍스타일 공부겸, 수출입 업무도 좀 봐주고, 섬유 시장도 좀 분석해주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패션 공부를 하고, 선시장 후시장, 밀라노 시장, 프리미어 비젼, 그런 데 대해서 좀 익숙해지게 되었다. 이 양반이 아파트에 거의 광적인 수집벽 같은 게 있어서 돈만 생기면 아파트..

그게 싫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패션쇼 관련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좀 조언만 해주고 말았다. 그 때 모델들의 세계를 좀 볼 수 있었다. 참 어려운 일이구나.. 그리고 또 인연이 되어, 슈퍼 모델들하고 일을 할 기회도.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데에도 그 삶이 너무너무 힘든 삶이었다.

삼성물산 등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디자이너들이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라서, 히트 치는 지갑이나 가방이 구상되고 만들어지고, 그야말로 시장을 싹 아도치는 과정을 지켜볼 일도 있었다. 이것도 좀 지난 일이라서, 현빈 백 만드는 과정을 본 게 거의 마지막이었다.

20대에 우연한 계기로 텍스타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까, 우연하게도 패션 디자인, 모델, 패션쇼, 이런 게 너무 먼 거리의 일이 아닌 삶을 살게 되었다.

몇 년째 입고 다니는 후드티도 봉제 관련된 노동조합에서 선물로 받은 것. We are not the machine.. 그렇게 쓰여 있다.

뭐든, 난 그렇게 뭔가 만드는 사람들하고 있을 때 편하고 재밌지, 아파트 사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하고 있을 때에는 재미 하나도 없다.

가끔 패션에 대한 책 제대로 한 번 써보자는 제안을 받기는 하는데, 이게 손 놓은지 너무 오래 되서..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아르데꼬 다니던 친구들 다시 만나보고 싶기는 하다. 그 때 참 재밌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파트나 부동산에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뛰어다니는 것, 인생을 낭비하는 길이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시간이 길지가 않다.

앙드레 김은 두 번 만났었다. 앙드레 김 얘기 한 번 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것도 벌써 2년 전이다.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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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 중이다. 진짜로 멋있다. 살면서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도 이제 50. 내 삶도 누군가 걸었던 삶을 따라 걷는 삶은 아니다. 별 볼 일 없더라도,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나이 먹으면,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엄청 좋아했었다. 그러나 나이 먹으면 그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영원한 소년처럼 노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성숙하고, 그 성숙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말년을 보내고 싶다. 나는 나이먹지 않는다, 그런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기회가 닿으면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한 평전을 쓰거나, 그의 인터뷰집을 내거나,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내가 얼마나 잘 나고, 얼마나 깊이가 있고, 얼마나 천재적인가.. 그런 건 별로 재미 없는 얘기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걸 보이고 싶어서 오늘도 몸부림을 친다. 그렇지만 별로 재밌어보이지는 않는다.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종종 보는데, 그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그처럼 잘나거나, 대단한 삶을 살지는 못할 것..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처럼 늙어가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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