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노회찬과 같이 토크쇼하던 사진을 드디어 찾아냈다..)

 

포위 당해서 섬멸의 위기에 놓였을 때에는 내용은 물론이고 형식에 대한 모든 것들을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 한국의 지성은, 전멸 위기다. 지성과 지식, 모두 다 전멸 직전.

일부는 청와대 가서 폼 잡는 것은 좋은데, 아, 열심히 공부해서 저거 하려고 하셨구나, 그 회의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일부는 대중들의 삶과 아주 멀리, 그냥 안드로메다로.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월급만 많이 주면, 땡큐, 열라 땡큐.

이러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지성 자체가 전멸한다. 분서갱유가 아니라 그냥 상업적인 이유로 고립되어 분서폭망. 욕만 하고, 쟤네들 다 나빠요, 이렇게 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70년대에는 박정희랑 목숨줄 내걸고 싸운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지지해줬다. 80년대, 90년대, 마찬가지다. 지금은 뭐랑 싸우냐? 지지할 이유도 없고, 뒤에서 폼잡고 있을 거면. 지성이 존재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보여줘야 한다. 지금이 그래도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순간 아닌가 싶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특별한 스터디팀 없이 지냈다. 그렇지만 이건 내 인생에 아주 예외적인 순간이다.

 

대학교 1학년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늘 스터디를 만들거나 했고, 지금은 젊은 여성학 하는 박사들과 새로운 스터디팀을 만들기 위한 구상을 하는 중이다.

 

그 중에 가장 화려했던 것은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과 했던 스터디팀. 매주 했는데, 문재인, 정세균, 추미애 심지어는 김한실까지 고정 멤버였다. 여성부 장관이 된 진선미, 벤처기업부 장관이 된 홍종학도 멤버였다. 야당 시절,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스터디팀을 하나 만들었었다. 거기서 대통령, 국회의장이 나왔고, 장관은 겁나게 많이 나왔다. 그 때 장하성 선생과 김상조 선배도 강사로 왔고, 전번들을 서로 나누었다. 정성인 선생도 강의를 했는데, 그 때는 문 대표가 불참. 아쉬운 순간이었다. 보수 신문들은 이거 그만 하라고 난리들을 쳤었는데, 나는 못 들은 척, 그냥 1년 정도 강행했다. 결국 안철수의 탈당으로 아사리판이 나서 더 이상 끌고 나갈 수가 없어서 접었다. 나중에 문대표 양산 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했던 내용들 꼭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하셨던.. 한다고 대답은 했는데, 둘째 입원하면서 나도 모르겠다, 내 코가 석자다..

 

(당시 스터디 관련 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305&aid=0000017219)

 

그 시절에 딱 한 시간 포맷으로 했다. 30분 발표, 30분 토론. 좀 극단적으로 짧기는 했지만, 그게 매주 그 사람들에게 내가 받아낼 수 있는 시간이 극대치였다.

 

보통 내가 하는 스터디팀은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책을 같이 읽을 것인가, 읽지 않을 것인가, 이게 큰 기준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모여서 책을 읽는 형식의 스터디팀을 만든 적은 없다. 책 정도는 혼자서 읽고, 그 뒤의 얘기들을 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그래서 이게 대학원 박사 과정의 스터디랑 형식이 같은 것이다. 모여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그러면 책 읽고, 진짜 할 얘기는 뒷풀이 가서.. 그렇게 해놓고 술 처먹다가 한 쪽에서는 싸우고, 한 쪽에서는 연애하고, 뭔 짓인가 싶었다.

 

내가 준비하는 강연은 2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예전에는 딱 한 시간 발표하고, 한 시간 토론이었는데, 이제 점점 더 토론의 강도가 약해져서, 그냥 한 시간 반 정도 얘기한다. 책을 읽고 오면 발표는 사실 필요 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제일 싫은 것은 기업 연수교육에서 하는 강연이다. 아마 돈은 충분히 받았을 테니까, 한 번 씨부려봐, 품평회 하듯이 배 내밀고 앉아 있는 대기업 직원들 앞에서.. 딱 맘 먹었다. 배 내밀고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건 안 한다. 지금도 사장이 어떻게든 꼭 해달라고 부탁한 예외적인 경우 아니면 기업 교육은 안 한다. 피차 서로 곤욕스러운 자리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전경련에서 부탁 왔을 때. 그야말로 회장급들 교육을 좀 시켜달라고 했다. 일본에서 한다고 했다.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보니까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거기서 강의를 해달라는. 그래서 골프 못 친다고 했다. 그냥 골프채 들고서 치는 척만 해도 된다고 했다. 싫다고 했다. 돈 많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싫다고 했다. 이것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사실은 나도 전경련의 환경 분야 주포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는 아니다.)

 

요즘에 내가 새로운 양식 실험을 해보는 것은 티타임이다. 10명에서 20명 안팎의 사람과 모여서 차 한 잔 마시면서, 나는 30분 이내로 배경에 관한 얘기를 하고.

 

돌아가면서 서로 얘기를 하게 하고, 중간중간 내가 진행성 개입을 하는.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읽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효과는 강연보다 티타임이 훨씬 좋다. 좀 더 비공식적인 얘기의 핵심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최근에 독자 티타임하면서 나도 안 해본 새로운 포맷을 실험해보는 중이다.

 

티타임 형식이 성공하려면 얘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확실하게 출발점과 목표점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가 하는 거니까 아무 문제 없고.

 

기존의 강연과는 다른 20명 내외의 티타임 형식을 좀 더 많이 만들어볼 생각이 있다. 물론 강연으로 돈을 벌고, 책을 팔 생각이면,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나는 사실 그런 목적은 별로 없다. 진짜로 사회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고 싶은. 그럴 때에는 티타임 형식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변화를 만들기 위한 것, 진심이 최고다.

 

후배들하고 하는 스터디에 대해서 내가 약간의 자부심이 있는 게.. 석사 시절에 나와 공부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박사가 되었다. 타율로 치면 9할이 넘는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서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한 드문 경우 일부 아니면 대부분 최종 터치다운까지.

 

나는 그들에게 지식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목적을 주로 가르치고, 공부하는 법을 가르쳤던 것 같다 (내 손을 거쳐간 박사들만 모아도 학과 몇 개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듯한.)

 

이런 유사한 효과를 상식적인 시민들과 나누기 위한 포맷이 현재로서는 티타임이다. 강연보다는 나은 것 같다.

 

내년에는, 어차피 사람 많지 않은 것은 미리 주최측과 얘기해서 티타임 형식의 실험을 좀 더 많이 해보려고 한다. 내가 우스워 보여도 박사 22년차다. 가르치고 지도하고, 이골이 나도록 잔뼈가 굵었다. 좀 더 쉽고, 좀 더 표준화할 수 있는 양식에 대한 실험이 내년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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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강연할 때.. 저 시절만 해도, 참, 나에게도 힘이 남아있었다..) 

 

1.

몇 년 전만 해도 강연은 꽤 잘 되었다. 진중권, 홍기빈 등과 했던 건대 강연은 천 명인가 왔었다. 나 혼자 해도 500명 정도 되는 방은 너끈히 채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장하준 선생 강연이었다. 연대에서 강의하던 시절, 매주 한 명씩을 불렀다. 공식적으로 내가 줄 수 있는 돈은 10만 원.. , 염치 없기는 한데, 그 대신 나도 품앗이로 다른 걸 도와주기로 하고, 그렇게 했었다. 300명 정도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을 내가 빌릴 때, 괜찮겠냐고 걱정들을 했다. 그래도 천하의 장하준인데..

 

그게 어찌어찌 소문이 나서 원희룡 같은 국회의원들도 왔다. 300명 들어가는 계단강의실에 500명이 넘게 왔다. 나중에는 산소 부족으로, 덥고, 숨쉬기 힘들고. 그 시절, 장하준의 인기는 정말로 하늘을 찔렀다.

 

mb 시절, 어쩌면 모두 외로웠는지 모르겠다. 뭐라도 있으면 같이 모여서 니들, 참 고생이 많다”, 그런 걸 나누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강연회마다 사람들이 가득 찼었다. 부산대 강연할 때 300명이 넘게 와서, 정신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그 시절에는 그랬다.

 

사회적 경제 책 내고 작년 하반기에 전국을 한 번 돌았었다. 그 때는 작게 돌았다. 지역의 작은 생협이나 협동조합 아니면 시민단체, 20~30명 모인 작은 강의실을 꼼꼼하게 돌았다. 사회적 경제는 크게 모여서 얘기할 주제는 아니다.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차비도 제대로 주기 어려운 시민단체의 작은 방들을 돌았다.

 

보통 강연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강연기획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기업에서 하는 직원 연수 같은 거를 하면서 꽤 큰 돈을 받는다. 나는 그런 거는 안 한다. 돈 때문에 강연을 한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내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럼 그냥 연봉 많이 준다는 데 가서 대충 살았으면 될 거 아냐? 이 나이에 이게 뭐냐! 그렇게 내가 불쌍하게 느껴질 것 같다.

 

강연 시장에서는 강연자의 수명을 대체적으로 2년 반 정도로 본다. 전문 강연자로 나서면 한 때 돈을 많이 벌기는 하지만, 그게 2년 반이면 땡, 그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건 완전히 미사리 카페하고 경제적으로는 똑 같은 구조다.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려면 히트곡이 두 곡은 있어야 한다 (영화 <걸 스카우트>에서 최성수 팬이 등장하는.) 두 곡은 있어야 시작할 때 한 곡, 끝날 때 한 곡, 자기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중간에 남의 노래를 부르더라도 한 시간 짜리 공연에 앞뒤는 자기 거로 할 수 있어야 나중에 미사리라도 갈 수 있다.

 

히트작 하나로는 2년 반, 그게 강연 시장의 논리 구조다. 그리고 내내 돌아다니면서 같은 얘기만 하면 두 번째 히트작이 나오기가 어렵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강연업체들이다. 냉정하다.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게, 내가 회사 강연을 안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

 

2.

촛불집회 이후, 서울이든 지방이든, 강연은 이제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서로 같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어려운 시기는 지나갔다.

 

그리고 유튜브가 커졌다. 돈 때문에 강연하던 사람들은 유튜브로 넘어갔고, 광고 수익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도 세상 사는 방법 중의 하나다. 이래저래 강연은 아주 힘들어졌다.

 

그 사이에 지방 강연은 정말로 더 힘들어졌다. <불황 10> 나왔을 때, 지방의 교보문고를 따라서 전국을 돌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큰 방이든 작은 방이든, 꽉꽉 찼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와서 강남교보에서 할 때 정말 그 큰 강당이 다 찼었다. 그건 옛날이다.

 

이제 지방의 교보문고에 강의실을 가진 곳은 거의 없다. 채울 수가 없으니 강연을 할 수가 없고, 그러니까 뭐하러 방을 유지하느냐, 그런 거랜다. 광화문에 있던 교보 기획팀이 근교로 이사가고, 그 이후에 책에 관련된 기획들이 급감했다. 그 충격이 지방에서는 더욱 더 충격적으로 온..

 

직장 민주주의 책 나오고, 어쨌든 되는대로 일단 지방 강연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잡힌 게 대구, 인천, 전주, 진주.. 강연장이 없어서 지역의 도서관과 연계해서 할 수 있는 데만 먼저 잡았다.

 

지방 강연이, 참 어렵다. 서울도 사람 모으기가 어렵지만, 지방은 더 어렵다. 그래서 더 안 하게 되고, 그러니까 더 안 가게 되고, 결국 아무 행사도 없는 지역이..

 

내가 내는 모든 책에 강연을 하는 건 아니다. 책 나오기 일상적으로 하는 강연 한두 번 하고 마무리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강연이 들어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음 작업을 해야 하니까 지난 책 붙잡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적 경제 때 크고 꼼꼼하게 강연을 했었는데, 직장 민주주의는 좀 길게 꼬리를 늘이려고 한다. 낮고, 작게.

 

책에 썼다. “나의 타점은 낮다.” 높은 데 보고 스윙한 책이 아니다. 가벼운 진루타로도 충분하다.

 

원칙은 독자 다섯 분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

 

유튜브와 디지털의 못하는 것은, 사회는 사람의 일이라는 점이다. 씨앗이 뿌려질 때, 결국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이 한 번은 있어야 한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사람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해는 많은 경우, 수다로부터 시작된다.

 

수다, 이건 내가 좀 한다.

 

물론 나도 언제까지 강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애들 보면서 잠시 시간 내는 거라서 물리적으로 한계도 뚜렷하다. 그렇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이렇게 말하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이상은의 <언젠가는>, 아직도 좋아한다. 언젠가는, 그 기다림 마저도 없으면 삶은 너무 비루하다. 나는 그렇게 비루하게, 그리고 때로 비겁하게, 그렇게 50대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

 

화려하고 불꽃같이, 거대하고 거창하게, 그런 건 이제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다시 올 필요도 없다. 그러나 비루하게, 그렇게 시간을 때우면서 환갑 되는 날만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방송의 인기와 같은 이미지의 도움 없이, 책 그 자체의 힘만으로 세상을 몇 센치라도 움직이는 것, 그 순간을 보고 싶다.

 

그래야 우리 자식 세대에도 책이 여전히 살아있는 나라가 된다. 지금 같아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책은 오래 못 버틴다. 사회과학이라는 쟝르는 그보다 훨씬 전에 사라지게 된다.

 

예전에 협상하던 시절 태국대 교수랑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책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태국에는 한국과 같은 사회과학 책이라는 게 아예 없다는 거다. 그 때 놀랐다.

 

각고의 노력이 없으면, 우리는 진화가 아니라 퇴화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그 분기점에 서 있다. 가면 안되는 길로 우리는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이라는 광선검을 들고,

 

May the 명랑 be with you!

 

오늘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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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글을 또 쓰기는 싫다. 안 그럴 수 있는 방법은 매번 다른 얘기를 하면 된다. 그런데 그건 다른 글인가? 신문기사는 같은 글의 소재만 다른 변주인 경우가 많다. 뉴스 끝에 있는 기상캐스터의 날씨 소개는 같은 글이 매일, 끝없이 반복되는 글의 전형이다. 이런 글은 쓰고 싶지 않다. 나는 기자가 아니거덜랑.

새로운 소재만 찾으면 같은 형식의 글을 끝없이 써도 되는 것일까? 이게 내가 글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 자세이며 파토스이기도 하다. 무슨 얘기를 하느냐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어떤 식으로 쓰느냐도 때로는 중요하다. 그래야 같은 글을 또 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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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의미있는 책이다. 세상은 못바꿨어도, 몇 사람의 인생은 행복해진 것 같다..) 

 

 

1.

90년대 대만의 젊은 감독들이 카메라 워크를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그야말로 스탠딩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기술이 발달해서 카메라를 다양하게 움직이고, 앵글도 훨씬 많아졌다. 실력이란, 카메라 딱 세워놓고 누가 잘 찍을 수 있느냐, 그게 진짜 예술이란 얘기다. 어차피 자본과 장비로는 헐리우드 이기기 어려우니까, 이런 논쟁이 나왔다. <붉은 수수밭> 나오던 시절의 기술적 논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대형 지비집은 기본이고, 드론도 비행허가만 나면 다 쓴다. 물론 카메라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긴박감을 만드는 고전적 영화 <구멍>을 비롯해서 여전히 그런 예술적 시도들이 있다. 그렇게 하면 대단한 게 맞기는 하다. 그런 걸로 승부 보려는 사람, 거의 없다. 하다못해 간단한 실외 예능방송도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한다. 사람들의 변한 시선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2.

2년 전에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을 냈다. 겁나게 안 팔렸다. 그 뒤에 낸 육아 에세이도 역시 겁나게 안 팔렸다. 아마 몇 권이 계약되어 있지 않았으면 그 시점쯤 나는 책을 그만 쓰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을 것 같다. 생각은 그런데, 그 전에 약속한 게 있어서 억지로 억지로 끌고 갔다. 다행히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가 체면치례 정도는 할 수 있을 수준은 되었다. 사회적 경제, 딱 견적 안 나오는 주제이기는 한데, 했던 작업들의 흔적은 남겨놓아야 할 것 같아서 한 책이다. 그야말로 시한부 생명연장’, 내 상황은 그렇다.

 

그 때쯤 나는 나도 돌아보고, 내가 내는 책도 돌아보고, 그리고 바뀐 세상도 돌아보게 되었다. 다들 책이란 원래 안 팔린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책을 쓸 이유도 없다. 도서관에 납품하려고 책 쓰는 건 아니다. 안 팔려도 괜찮지만, 그냥 안 팔려서, 그런 건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3.

내 생각에는, 내가 다루는 주제나 내용에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둘러싼 여건도 너무 안 좋아지기는 했는데, 이건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다들 방송에 좀 더 나가고, 케이블에서 하는 예능방송 같은 데에도 나가라고 했다. 라디오도 진행 섭외 들어오면 그냥 빼고만 있지 말고. 마침 그 때 신동엽이 mc를 맡는 새로운 방송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파일롯부터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왔다.

 

나는 그게 본말이 뒤집힌 거라고 생각을 했다. 방송을 하다 보면 나갈 수는 있지만, 책을 팔기 위해서 방송을 나가는 것은 좀 아니다 싶었다. 그렇게까지 책을 써야 하면, 차라리 그만 쓰고, 편안하게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그래서 오히려 방송도 안 하기로 더욱 마음을 굳혔다. 어쩌다 오는 일회성은 몰라도, 진행을 하거나 고정을 하는 건 아니하기로 (하여간 성격 진짜 지랄 맞다. 이것 좀 해봐, 그랬더니, “절대로 안 할 거야”, 이렇게 삐둘어질 테다 버전..)

 

4.

그리고 살펴봤는데,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변했다. 유튜브의 짧은 동영상의 영향 등으로 호흡이 더 짧아져 있다. 책은 호흡이 길다. 책을 잘 안 보기도 하고, 텍스트의 묘미로부터 멀어져 있기도 하지만, 호흡 자체의 길이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많은 아날로그 매체들이 그렇게 디지털 시대의 변한 호흡에 잘 적응하지를 못한다. 그건 매체 속성상, 어쩔 수가 없다. 한국에서 디지털이 들어와서 시장이 붕괴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매체가 영화 정도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다음을 꼽으면 웹튠. 그런데 여기도 이익 분배 등 근본적인 문제들이 심각해지는 중이기는 한 것 같다.

 

,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작년에 맞닥거렸던 잘문이었다.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 실험적 시도를 해본 게 50대 에세이였다. 문제 실험을 많이 했다. 물론 망했다. 그렇기는 한데, 읽은 독자들의 팬레터 같은 게 좀 열렬하게.

 

이게, 세상이 돈이 전부가 아니듯이, 책도 돈이 전부가 아니다. 가끔 나한테 가장 의미 있는 책을 꼽으라고 하면 아직도 아날로그 사랑법을 꼽는다. 책은 완전 망했다. 그리고 가난한 출판사의 마지막 카드였는데, 나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에디터는 결국 가난한 출판사를 떠나게 되었다. 나도 한동안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그 책이 내 인생을 바꾸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세상을 바꾸는 아니, 바꾸는 척만 책보다, 단 한 명이라도 행복하게 해준 책이 진짜 좋은 책이다. 그래서 저자로서 아날로그 사랑법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과 비슷한 현상이 50대 에세이 때 벌어졌다. 안 팔리는 책이 미운 책일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나쁜 책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안 팔리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많은 요소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유튜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맞춰서 호흡도 더 짧게 가져가고, 웃기거나 화나게 하거나 어쨌든 감정 포인트를 더 자주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이제는 일부러 밀도를 낮춘다. 밀도를 높이면 숨이 막힐 정도로 꽉꽉 조이는 느낌을 받지만, 요즘은 밀도만 너무 높이면 힘들다고 책 집어 던진다. 밀도 조절도 이제는 신경 쓰는 항목 중의 하나가 되었다. 너무 낮추면, 글이 건들건들거려서 불량한 책이 되거나, 가짜 책이 된다.

 

5.

50대 에세이 때 했던 문체 실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 책이 직장 민주주의 책이다. 그래도 여전히 완성형은 아닌 것 같고. 중간 편집을 하면서 게임이론으로 조직론 설명한 2장을 통째로 날렸다. 그리고 그걸 짧은 몇 페이지로 축약해서 앞의 장 끝에 넣어버렸다. 독자를 웃길 수는 없어도 재우는 것은 너무 실었다. 책의 난이도가 확 내려갔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고 하지만, 사람들의 호흡이 변했다. 방법 없다. ‘88만원 세대에서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까지는 주로 생각의 흐름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제 그렇게 하면 잘 훈련된 독자들 말고는 책을 못 읽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하려면 거기에 맞추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그런다고 책의 내용이 더 좋아지느냐, 그렇지는 않다. 내용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같다. 결론도 같다. 이것저것 맞추다 보면 힘은 몇 배로 든다. 그래도 방법이 없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이러다가 1쇄도 못 털게 되고, 출판사에 돈을 벌어주기는커녕 매번 손해만 입히게 되는 것.. 그건 책을 그만 쓰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책이 훨씬 더 팔리느냐? 꼭 그런 건 아니다. 책의 판매에는 개입하는 요소들이 아주 많다. 그리고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인지도와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방송에 나가지는 않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정말로 책의 힘만으로 파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다. 엄청 팔고, 겁나게 팔고, 그런 건 옛날에 다 해봤다. 책의 힘만으로 팔리는 책 그리고 그 힘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책, 그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여전히 책을 쓰는 것이다.

 

다음 번 책에서는 더 많은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농업경제학에서는 편지 형식의 형식 실험을 해보려고 하고, 젠더 경제학에서는 어투와 문체, 가장 저렴한 싸구려 문체를 사용할까 생각 중이다.

 

디지털 시대, 사람들은 유튜브의 영향을 받아서 호흡과 감성도 변한다. 책이 완전히 디지털 방식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호흡에 맞춘 변화 정도는 할 수 있다.

 

6.

권위도 더 내려놓고 싶다. 자꾸 사람들이 나한테 교수라고 한다. 애 태어난 다음부터는 도저히 여유가 없어서 학교 수업도 안 했다. 난 교수 아니다. 이제는 박사라고 불리는 것도 좀 그렇다. 박사면 어떻게 아니면 어떻고..

 

그냥 씨라고 불리는 게 차라리 더 편하다는 생각이 요즘 들기 시작한다.

 

글도 그런 마음으로 쓰려고 한다. 더 허당스럽고, 힘도 더 빼고. 좀 더 저자가 권위가 있어야 독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거 아냐? 10년 전에는 그랬다. 지금은 안 그렇다. 권위 있는 저자, 그냥 20대들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는다. 방법이 없다. 내려놓을 수 있는 건 극한으로 내려놓는 수밖에.

 

그렇게까지 해야 해? 물론이다. 좋은 세상을 보고 싶은 그 욕망을 위해서, 내가 뭔들 못하겠냐? 못해서 못하는 거지, 싫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더 짧게, 더 낮게 그리고 더 많은 주기적 패턴의 포커스들을 배치, 그런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감성이 변한다. 그리고 20대의 감성은 정말로 흐름을 알기가 어렵다. 자기들도 사실 서로 잘 모르는 것 같다. 죽어라고 맞추려고 해도 어색하다. 그러나 맞추려는 노력도 안 하면, 진짜 급식체가 아니라 꼰데체라고 불리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다, 맞춰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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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 카메라 쓰던 시절, 세검정 옛날 내 방. 여기서 책 10권 넘게 쓴 것 같다.. 아이 태어나기 전.) 

 

나한테 왜 계속 책을 쓰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제일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수없이 많은 답변을 해봤는데, 아마도 가장 진실된 답변은 그냥 책 쓰는 게 좋아서”, 이런 것 같다.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이 가장 표준 답변이기는 한데, 나는 그런 헝그리 정신을 가졌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책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대충대충 한다. “이거 아니면 나는 죽는다”, 그런 생각 자체가 싫다. 그리고 너무 몰입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는 그런 바보 같은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대충대충, 건성건성, 되거나 말거나,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 그런 내가 책에서 만큼은? 에이,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목숨 걸고 책을 쓰면, 3권에서 4권 사이, 자살하고 싶은 순간을 한 번쯤은 맞게 된다. 책 쓰는 게 뭐라고, 자살 충동을 느끼고, 우울증 가고, 집안 식구들 달달 볶고.. 그건 아니다. 권장생 선생이 그러시지 않았나, 인생은 소풍 같은 것이라고. 인생의 소풍인데, 책이 목숨 걸? 그런 건 아니다. 그러면 2~3년 하다가 극도의 회의감에 빠져서 결국 가보지 않은 길을 내려놓게 된다. 대충, 살살, 그게 10년 이상 책을 쓰는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관한 책>10년 넘게 책을 쓰면서 생겨난 약간의 노하우에 관한 책이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많이 쓰다보니까 요령 같은 것도 생기고, 패턴 같은 것도 생겼다. 그리고 저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 가짐 같은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는 것과 교양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쓰는 것은 좀 다르다. 소설 작법이나 시나리오 작법 같은 것은 꽤 나온 책이 많은데, 교양 분야는 아직 생각해본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라는 표현을 쓸까 말까? 나는 라고 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런 문장을 본격 책에서 처음 쓴 사람이 나다. 신문에도 나는 라고 쓴다. 요즘은 필자라는 일본식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내가 데뷔하던 시절, ‘라고 쓰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었다. 주로 비평하는 문학 쪽 선생님들이 나를 보면서 요즘 것들, 기본이 안 되어서”, 아주 혀를 끌끌 찼다.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거는 영어구요, 불어는 on,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어 처리를 합니다”, 내가 싸가지 맞기는 맞다. 환갑 가까운 초절정 유명 평론가들에게도 불어 문장으로 되치기를 했다. 영어의 피동형과 우리 말의 주어에 관한 얘기다. 왜 건방지게 라고 하느냐고 아주 지랄들을 하셨다. 그래서 근대 이후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글에 관한 얘기로 뭐라고 되받아줬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에밀 졸라의 <J’accuse>에 관한 얘기다. 나는 고발한다, 누가 고발하죠? Je, 에밀 졸라가 는 이라고 했다. 에밀 졸라가 그 사건은 고발되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시일야방성대곡, ‘오등은이라고 시작된다. ‘를 왜 쓰느냐,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은 지금 영어 얘기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말로 글 쓰는 사람들이구요. 불어, 독어, 다 그렇게 안 해요. Je, ich.. 베토벤이 ich liebe dich라고 했지요,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안 했어요. 뭔 소리예요? 나도 참 성질 지랄맞다. 하여간 그 사건으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들한테 개싸기지로 단디 찍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책에서 내가혹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그렇게 스타일이 되었다.

 

내 책은 일반적인 책에 비하면 파격 투성이다. 물론 나는 더 파격으로 가고 싶은데, 아직도 가슴이 좀 쫄려서, 더 과감하고 더 과격하게 못 간다.

 

독자가 읽을 수 없으면, 그건 쓰나마나, 독자에게 감정이 안 생기면 그것도 쓰나마나. 내가 책을 쓰는 기준은 토요일 밤에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에 한 숨에 읽을 수 있는 것, 그게 아니면 안 쓴다. 물론 일부러 거꾸로 간 경우도 없지 않지만, .. 그 책은 망했다. 결국 12권으로 기획된 경제 대장정 시리즈가 그 실패로 서게 되었다. 언젠가 해보고 싶은 코멘터리 북도, 바이바이.

 

그렇게 꾸역꾸역 오다 보니 36권을 썼다. 감정, 밀도, 흐름, 시퀀스, 꺾기, 이런 내가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기능 보다 100배는 중요한 게 일관성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일관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 삶도 책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엉망진창이었다. 논리는 일관성을 가질 수 있지만, 삶이 일관성이 없으면 그 논리도 상황 논리에 빠진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안 그럴 수가 없다. 몇 년 하고 좌판 걷을 거면 몰라도, 10년이 넘어가면 논리적 일관성만으로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가 없다.

 

결국 저자가 되는 것은 책을 완성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저자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그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책은 연예인이나 배우와는 다르다. 책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하는 사람, 서술하는 사람, 그 삶이 그대로 책에 투영된다. 연기와도 다르지만, 보고서와도 다르다. 보고서는 기능적이다. 누가 쓰느냐고 별로 안 중요하고, 기능과 결론만 중요하다. 책은 다르다. 그리고 그 인생이 거짓 인생이면, 책도 거짓이다. 책을 둘러싼 저자와 독자와의 메타 텍스트는 그렇게 형성된다. 거짓말을 한 번 할 수는 있지만, 10년 넘게 하기는 어렵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 이런 얘기를 두 번 하고 싶다. 책에 관한 것 한 번, 영화에 관한 것 한 번, 막상 해보니까 이렇더라.. 영화는 한 10년 후쯤, 그 때쯤 하면 어떨까 싶다. 나도 지식과 경험이 좀 더 쌓이고..

 

책은?

 

기능적으로는 지금 바로 써도 된다. 앞으로 내가 14권의 책을 더 쓰면 50권이 된다. 그 동안에 변화는 오겠지만, 기술이나 기량이 점프하듯이 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체득하고 이해한 기술만 가지고도 많은 사람들이 책 쓰는 시간을 1/3 이하로 줄여줄 자신이 있다. 일반인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가지고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의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기능에 관한 교과서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내가 남자 애들 둘 보면서도 올해 책 3권을 냈다. 내년도 3권이다. 이렇게 하는 건, 엄청나게 내가 아는 게 많거나, 머리가 거의 천재급, 절대 이런 건 아니다. 기능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건 기능으로 처리하고, 좀 더 감정적인 것이나 섬세한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때문이다. ‘굼뱅이의 기는 재주에 관한 책이 의미가 없거나, 뭔가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 쓴다. 요즘 내 책이 엄청나게 잘 팔리거나 그렇지는 않다. 책 시장이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내 인기가 바닥을 달리는 이유도 있고. 좀 복합적이다. 나도 그 상황은 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티핑 포인트가 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인생이 원래 좀 그렇다. 참고 기다리면 된다.

 

책에 관한 책을 지금 낼 수는 없다. 지 책도 못 파는데, 누구한테 책이 이러쿵 저러쿵, 지랄하네,그런 헛소리 취급 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티핑 포인트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직장 민주주의 책에서 그런 티핑 포인트가 올까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다. 1~2년 내에 오기는 할 것 같다.

 

그 티핑 포인트를 넘기면 쓰고 싶은 책이 또 하나 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제안이 왔던 책인데, <촌놈들의 제국주의> 일본판.. 그냥 하면 되는 일인데, ‘책에 관한 책처럼, 이것도 티핑 포인트 이후에 내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쟁여놓고 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누군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생에도 사이클이 있다. 책에도 사이클이 있다. 어려울 때는 고개 숙이고, 힘들 때는 버티고, 잘 나갈 때에는? 그 때도 고개 숙여야 한다. 그래야 멀리 간다.

 

나는 별 욕심은 없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두 개를 생각해보니까, 국민 경제가 IMF급으로 망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살아서 전쟁 나지 않는 것, 이 두 개다. 나는 그렇지 않은 세상을 위해서 성실히 는 아니고 살살’ – 살아갈 뿐이다.

 

돌아보면, 내가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건, 내 삶 그 자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장정일 선배가 그런 얘기를 했다. “10년간 꾸준히 책을 쓰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밥은 먹고 살게 될 거다..” 실제 지내보니까 그렇다. 10년이 넘도록, 밥 먹고 걸 걱정하지는 않았다. , 워낙 쓰는 돈이 적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인지,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껴질 정도다.

 

마치 장정일 선배가 나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나도 다음에 올 사람에게 작은 참고자료는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개똥이라고 생각하는 순실이 시대도 지났고, 책이 뭐여, 아직도 책 보는 사람 있나, 이러고 있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책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보여주고 싶다. 책 한 권 남기는 게 평생 소원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게 한국의 힘이고, 저력이다.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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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젊은 연구원들하고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책은 겁나게 안 팔렸지만, 육아 에세이 가지고 같이 얘기했으면 한단다. 그래도 이게 정권 바뀌어서 좋아진 것. 야당 시절에는 혹시라도 나랑 만났다고 무슨 해꼬지를 당할지 몰라서, 정말 친한 경우 아니면 만나지도 못했다. 문재인 대표 시절, 우리 도와주다가 민간 연구원의 박사 한 명은 정말 짤릴 뻔했다. 그걸 좀 도와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서.. 결국 새누리당 국회의원 도움을 받았다. 된장. 야당 시절, 다들 몸사리느라 결국 집권 여당의 도움도 받은. 내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정말 손이 발이 되게 빌었었다. (그 때 도와줬던 사람들 좀 챙겨줘야 하는데, 내가 이 꼴이라.. 한국은행 출신 한 명은 결국 시골에 집 짓고 낙향. 가슴이 무너지는.)

언제나 내 주변에는 쥬니어 박사들이 많았고,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늘 함께 했었다. 지난 2년간, 애들 보느라 새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이, 그냥 버텼던.

이젠 둘째 폐렴도 끝났고, 나도 한시름 덜었다. 실무진들과 차도 좀 마시고, 수다도 떨고. 농업 관련된 연구소들은 다 나주로 내려가서, 지나면서 차 한 잔 하기가 힘들다 (원장이 절친급인데 ㅠㅠ..) 연구소, 원장이나 부원장들이 친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대가리들은 실제로 연구할 때 아무 도움 안 된다 (행정들 하시느라, 얼마나 바쁘신지.. 그나저나 공무원들은 원장들 그렇게 앉아놓고, 진짜 시녀처럼 무려먹으신다.)

연구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그냥 바닥에서 박박 기는게 결국은 가장 효율적이다. 시간과 품이 들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

내 인생도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난 그냥 영원한 실무자로 바닥에서 살아갈까 싶다. 보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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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진 뒤적거리다 보니, 2011년에 노회찬 사진이 나왔다. 맙소사. 진행자는 이재영.흔들리기는 했지만 이재영 사진도 있다. 내가 몸처럼 사랑했던 두 친구였다. 그들은 벌써 떠나고 나만 남았다..)

 

1.

한 해가 간다. 어제는 아내가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의 흐름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저녁 때 아내가 회의에 갔다가 늦게 와서, 애들 데리고 내가 좀 고생한 날이기는 하다. 글쎄.. 요즘 내가 하는 일이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덜컹덜컹, 이리 박고, 저리 박고..

 

어쨌든 한 해가 지나면서 생각해보면, 그냥 꾸역꾸역 하기로 한 일을 빵꾸내지 않고 그냥 버티기에 정신 없던 시간들이었다. 가끔은 왜 이러고 사나 싶지만, 그래도 별로 방법은 없다. 애 둘 어린이집 보내고, 회사에서 정신 없는 아내 뒷바라지 하면서 버티는 중이다. 이 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면, 그건 좀 뻥이다. 나도 사람인데, 뭘 좀 멋지게 해보고, 근사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겠는가? Mbc 쪽에서 경제방송 얘기가 잠시 나왔을 때에는 별로 안 흔들렸는데, 생각지도 않다가 sbs에서 라디오 진행에 대한 얘기 들었을 때는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몇 초, 방법 없다. 어렵다고 했다.

 

1년 내내, 특히 상반기에는 뭐 해보겠냐, 어렵다,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걸 버티고 참아내는 것도, 사실 감정적 에너지 소비가 많은 일이다. 물론 통장에 돈이 겁나게 많고,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면 좀 더 버티기가 쉬울텐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세 끼 밥 먹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

 

50이 되면 난 뭘 할까? 모르겠다. 생각해 놓은 것도 없고, 생각해본 것도 없다. 그냥 에세이집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를 쓰면서, 마음만 준비한 것 같다. 뭘 할지, 모르겠다. 둘째가 다섯 살이다. 최소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정도까지는 본격’,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직도 4~5년은 이렇게 살게 된다. , 길다.

 

2.

뭘 같이 하거나 뭘 해보라는 얘기는 엄청나게 온다. 장관 자문, 뭐 이런 것들은 그냥 한 칼에.. 쳤는데, 조한혜정 선생 같은 식구 같이 지내는 양반이 뭘 하자고 하면, 이건 또. 그래서 하나씩 둘씩, 정부의 작은 기구에 이름이 올라간다. 된장. 이거 아닌데. 억지로 겨우 시간을 만들었더니, 또 무슨 봉사를 해달라고. 내가 봉사할 처지가 아닌데. 이거 또 인생 옆구리 터지는 느낌인데.. 그래도 또 어떻게 꾸역꾸역.

 

젊은 박사들이 때때로 이런 책, 저런 책, 이런 연구, 저런 연구, 그렇게 얘기할 때면 잠시 삶이 행복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아주 인심 사납게 굴지는 않았나벼? 내 삶에 크게 도움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성심성의껏, 내가 아는 만큼.

 

쓰고 싶은 책이나 써 달라고 부탁하는 책들이 죽 늘어서 있다. 쓰는 거는 그냥 일정 맞춰서 쓰면 되는데, 잘 안 팔린다. 초창기에는 출판사에서 잘 안 내줘서 쓰고 싶은 걸 잘 못 썼는데, 이제 내가 안 팔리는 게 부담되어서 덜 쓴다. 방법 없다. 동료들은 이제 책은 그만 쓰고, 자기들하고 그냥 놀잔다. 그럴까? 솔깃한다. 그것도 좋네요..

 

그래, 36권이면 많이 썼다. 출판사에서 계약금 받은 게 천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 내년에는 이거 그냥 다 돌려주고, 그냥 놀까? 생각이 오락가락 한다. 요즘은 언제 돌려주고 그만 쓰게 될지 몰라서, 새로운 계약도 안 한다. 딱히 돈 필요한 것도 아니고.

 

3.

그래도 꾸역꾸역 진도를 나가는 건, 내가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안 하던 얘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걸 좋아하고. 딜타이 등 해석학을 그렇게 좋아하기는 했는데, 해석하는 것 보다는 만드는 게 더 좋고, 더 재밌다. 재주는 곰이 벌고 돈은 떼놈이.. 원래 세상이 좀 그렇기는 한데, 한국이 그게 아주 심하다. 알기는 아는데, 어려운 주제를 알아 먹을 수 있는 말로 설명틀을 만들고, 안 해본 얘기를 개척하고, 그런 게 재밌다.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애들 둘 데리고 숨어 턱턱 막히는 한 해를 보내면서 무슨 재주로 이 시간을 내가 버텼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내가 하면 다르다”, 이런 생각을 버린 게 제일 큰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나도 좀 했던 것 같다. 운이 좀 좋았던 것은 같은데, 그 운이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내가 써야할 운은 나중에 아이 둘을 키우게 되는데, 이미 다 써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해도 별 수 없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그렇지만 자꾸 내가 하면 다르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생각들을 억지로 하면서 견딜 수 없는 노동강도를 견디게 하는 사회에서 살았던 것 같다. 병신!

 

문득 그리고 생각이 났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이렇게 살아야겠다. 무슨 엄청난 것을 한다고, 그렇게 죽어라고 밤 새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너무 빡빡하게 살았고,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하도록 설계한, 잘못된 삶을 살았다. 그게 인간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해도 다르지 않고, 어차피 똑 같은 결과가 나올 건데, 굳이 내가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맘 편하게 먹고, 나는 조금 더 아이들하고 놀기나 하고, 남들 건들이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 있는 주제들을.

 

201812, 올해 나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은 내가 해도 다르지 않다”, 이 문장이다. 나에게 돈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했을 수도 있을 스트레스들을 줄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명랑이라는 단어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애 둘 보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아빠, 아니 늙은 아빠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책을 쓰거나, 엄청난 돈을 벌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거의 전부다.

 

그러나 남들 하는 일은 안 한다. 내년에는 더더군다나 안 할 거다. “내가 하면 다르다”, 이딴 거 없다. 내가 해도, 남들하는 거랑 별 차이 없거나, 아니면 그만도 못할 확률이 높다.

 

그냥 남들 하는 건 안 한다, 그 정도의 생각으로 2019년을 맞으려고 한다. “나 아니면 못한다”,가 아니라 아무도 안 하는 것, 그런 거나 꾸역꾸역 일정에 너무 늦지 않게 하는 정도로 살려고 한다.

 

다행히 한국에는 아무도 안 하는 게 너무 많다. 직장 민주주의가 그랬다. 정말 이게 본격적인 분석으로는 첫 번째 책이라는 데에, 나도 놀랐다. 농업경제학이 그렇다. 아무도 안 한다. 앞으로도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큰 성공과 큰 명예 그리고 큰 돈을 마음 속에서 내려놓으면, 보람과 명랑, 두 가지는 내 삶에 꾹꾹 채워넣을 수 있을 것 같다.

 

남들 다 하는 것을 잘 잘 하기는 아주 어렵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남들 안 하는 것을 왠만큼 하는 것은 명랑하게 할 수 있다. 아주 잘 하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능력이 안 된다. 그냥 왠만큼, 평타 정도, 진루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완벽하게 하면 좋겠지만, 명랑하게 하는 것,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해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남들 피하고 기피하는 것만 할 거다. 춥고, 어둡고, 꼬질꼬질한 데.. 다행히도 난 그런 데에서 뭔가 사부작사부작 하는 걸, 보람 있게 생각한다.

 

혹시 아나? 아주 다른 주제만으로 50권 넘기면, 그래도 역사 책에 한 줄 들어갈지도. 영광은 필요없고, 명랑은 필요하다. 그 출발점에, 내가 하면 다르다, 이런 생각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찬란한 사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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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먹고 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요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책이라는 게 묘한 거다. 쓰면 쓸수록 쓸 얘기가 늘어난다.

 

나는 책 쓰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하다 보니까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겨서 책을 쓴 거지, 책 쓰는 게 직업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쓸 마음도 없다. 적당히 하다가 쓸 얘기 다 떨어지면 내려 놓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산다. 그게 10년이 넘었다.

 

10년 내내 2~3년 정도의 출간 예정을 늘 가지고 있었다. 가졌다기 보다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시간이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다. 예정된 시간, 그거 재미없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배운 게, 출간 일정을 미리 잡지는 말아야겠다..

 

그렇기는 한데, 내년에는 정말 바늘 하나 찔러넣을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그 다음 해의 일정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절대로 장기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스스로 내 삶을 재미없는 일정이라는 틀 안에 가둘 이유가 전혀 없다.

 

책을 계약하면 계약금을 받는다. 돈으로서 큰 의미는 없다. 나는 그래도 좀 많이 받는 편이기는 한데, 어차피 받을 돈을 미리 당겨서 먼저 받을 뿐이다. 프로야구 같은 데에서 보는 사인 보너스, 그런 건 아니다. 둘째 아프고 돈이 빠듯할 때에는 나도 계약금 받기는 했는데, 보통은 안 받는다. 앞으로는 따로 받을 생각은 없다. 그러면 쓸지 안 쓸지도 불투명한데, 출판사하고 미리 먼저 뭘 약속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몇 년치 일정을 미리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 병신들이 하는 짓이다. 내가 그 병신 짓을 10 년 넘게 했다. 해보고 나니까, , 내가 병신짓을 한 거구나..

 

물론 계약금을 많이 받으면 출판사에서 좀 더 열심히 팔아주기는 하는데, 그건 외국 작가들 얘기다. 엄청나게 돈을 주고 외국 번역서 들여올 때에는 그렇게 하는데, 한국에 있는 대형 출판사 하시는 분들이 국내 작가들에게 투자하고 뭐 그런.. 그럴 생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들 잘난 척 하는 거 눈꼴 셔서 일부로라도 안 하겠다는 입장이 99.99%.

 

독자들이 책 안 사줘서 출판이 요 모양 요 꼴이기는 한데, 그 얘기는 대형 출판사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당신들은 한국의 작가들을 어떻게 대하셨는데? 개차판 아니면 쪼다.. 지켜보는 마음이 아프다. 존경은 못 하더라도 존중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감?

 

하여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책을 쓰면 점점 쓸 내용이 늘어난다. 이건 데뷔할 때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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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도,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면 꼭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된장. 일정표를 보니까, 점심 약속, 커피 약속, 오매나야 줄줄줄. 강연과 방송 일정을 다 없애고나니까, 또 뭐 별로 우선순위에 넣지 않아도 되어도 좋은 일들이 줄줄줄. 내 입장에서는 집에서 나가게 만드는 일은 다 일이다. 그리고 책 추전 부탁이 엄청은 아닌데, 꽤 온다. 잠시 생각을 정리해본다.

책 추천이 귀찮은 일이다. 특히 나에게 추천 부탁이 오는 책들은 어렵거나 까다로운 책들이다. 전에 내가 지금처럼 요 모양 요꼬라지 아닐 때에는 추천사나 해제로 어마어마하게 팔아준 책들이 있기는 하다. 연이나... 그것은 힘 좋던 시절의 일이고. 지금은 그냥 밥 세 끼 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하는 시절. 내 추천사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까다로운 책, 그것도 읽을 일정에 없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요즘 애들 보면서 책 한 권 읽는게, 진짜 없는 시간을 쥐어짜는.

그래서 추천사는 가급적 안 쓴다. 예전부터 그랬다. 꼭 써야 할 거면 차라리 좀 더 공을 들여서 해제를 쓰고, 해제 쓸 정도로 여유가 없으면 아예 안 쓰고.

이 짓도 10년이 지나니까 약간의 이해가 생겼다. 추천사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추천사로 고마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저자나 출판사나.. 사람이 원래 그렇다. 잘 되면 자기가 잘 한 거고, 안 되면, 다른 넘들이 못한 거고. (88만원 세대 때 남재희 장관이 정말 공들여서 추천사를 써줬고, 그 이후로는 가급 술 받아들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도 한 가지 배웠다. 정말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때가 아니라 훨씬 늦게라도 꼭 고맙다고 전화라도 한다. 그게 어려우면 안부 인사라도 한다. 쑥스럽다고 고맙다는 말을 미적미적하면, 나중에 진짜 어색해진다. 고맙다는 말은, 고맙다고 생각드는 순간에.

출판사에서 부탁오는 경우는 거절이 쉽다. 내가 하루 단가로 생각하는 나의 일당은 50만원이다. 난 가끔만 일하니까. 물론 단가 안 맞거나, 돈 안 줘도 남들 돕거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한다. 돈 내고도 한다. 그렇지만 상업적인 활동의 최소 단가는 50만원이다. 그 밑은.. 원칙적으로 안 한다. 애 둘 보면서 한 번 움직이기 위한 원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하로는 정말로 삶만 힘들어지고 고달픈 뿐이다. 추천사의 원가는.. 뭐, 택도 없다.

머리 아픈 경우는 저자가 직접 부탁하는 경우. 이 순간 참, 다양한 종류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걸 해봐서 좀 더 생각이 많아진다.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내가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사람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

냉정하게, 한다 안 한다, 이것만 결정한다. 안 하는 경우에는 최대한의 예절로, 하는 경우에는 아주 짧고 드라이하게 '예스까 노까', 이렇게만 대답한다. 나머지 얘기는 원고로.

추천사 하나를 오늘 내로 써야 하는데, 추천사는 안 쓰고, 추천사에 대한 글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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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노회찬 부탁으로 강연도 참 많이 했었다..)

 

 

어제 정의당 강의는 경기도 당원들 대상으로 한 당원교육이다. 움직이기 싫어서 거의 꼼짝도 안 하는데, 정의당 경기당 당원교육까지 간 건, 진짜로 노회찬 이후로 마음이 너무 짠해져서 그렇다. 어차피 해주기로 한 거, 가장 최신 얘기로 정성스럽게 준비할 생각이었다. 비슷한 때 광주 정의당에서도 강연 부탁이 왔다. 같은 내용으로 할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성이라는 것은, 가장 최근의 얘기, 다른 데서 아직 발표하지 않은 내용을 얘기하는 것이다. 하던 얘기를 가지고 하면, 폼도 나고, 준비도 쉽다. 아니, 준비랄 게 없을 경우도 많다. 그래도 늘 하던 얘기라서, 빠다 바란듯이 미끄럽게 넘어간다. 나는 이런 것을 싫어한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한 얘기 또 하는데, 이게 무슨 녹음 테이프냐 싶은 생각이 든다. 하던 얘기 또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는 건, 진짜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강연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나한테 했던 약속이 있다. “같은 강연은 안 한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거칠지만 그 때 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들을 가지고 얘기를 했다. 원래의 주제와 새로운 생각, 이런 것들이 섞였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진짜로 고로운 일이지만, 길게 보면 그게 도움이 된다.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이 파워포인트를 쓰기 시작했다. 금강기획 같은 기획사에서도 아직 파워포인트 도입하기 이전 시절부터 나는 파워포인트를 썼다. 수학식 하나하나 다 에미네이션 걸고, xy축에서 지시선, 방향선, 전부 날려오는 짓을 했다. 그게 96, 97년이니, 나도 좀 난리부르스이기는 했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시간은 없었고, 부사장단 회의에서는 그 난리를 쳤다. 그렇지만 그게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UN 시절에도 파워포인트 썼다.

 

사실 강연하는 입장에서는 파워포인트가 훨씬 편하다. 한 번 만들어 놓고, 그냥 조금씩 고쳐서 때우면 된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다 보니, 만들어 놓은 걸 가지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면, 거절하면 된다. 더 편하다. 그러나 했던 걸 또 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는 가장 최근의 내용 그리고 아직 얘기하지 않은 걸 가지고 얘기하지 않으면, 내가 부디낀다. 뭐 하는 짓이냐, 시방.

 

그렇다고 매번 파워포인트를 만들 수는 없다. 간단하게 해도 하루는 넘어간다. 그래서 결국 내린 결론이, 안 한다.. 돈이 필요해서 강연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 맨 앞에 서서, 가장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했지, 돈도 필요하고, 에 또, 이렇게 생각하면서 산 적은 없다. 또 강연비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렇게 생활이 궁핍한 것도 아니다.

 

정치인 중에서 내 강의를 가장 처음 들었던 사람은 노회찬과 단병호였다. 수많은 사람에게 강의를 해주었는데, 그래도 선생격이라고 꼬박꼬박 인사하는 사람은 단병호 정도였다. 노회찬은 친구 같은 처지라서, 들었니 말았니, 그럴 처지는 아니고.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나, 같이 스터디하던 후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강의를 들은 사람은 정세균과 원혜영이다. 국감 때 정세균 외국 갔을 때를 제외하면, 개근했다. 안 불렀는데도 가장 많이 왔던 사람은 진선미와 박병석이었다. 그 때는 그냥 판서했던 때도 있고, 파워포인트 만들었을 때도 있다.

 

회사 사장들 강연 부탁도 많이 왔었다. 한 번은 진짜로 전경련 회장단 강연 부탁이 왔다. 고민하다가 할까 했다. 일본에서 하라는 거라서, 일본 정도는 나도 갈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니미럴.. 골프장에서 골프치다가 하라는 거다. 골프 안 치는데요? 그냥 치는 척만 하시면 돼요. 싫은데요. 그래도 이런 기회가.. 그래도 싫어요. 안 했다. 대통령을 만나라고 해도 골프 치면서, 안 한다. 남들한테 골프 쳐라 마라, 이러지는 않지만, 나는 안 친다.

 

강연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명박이, 순실이, 이런 애들이 황당하게 하고 있을 때에는 그래도 조그맣게라도 모여서 서로 고민하고 하다못해 고통이라도 나누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나도 전국을 돌아다녔다. 갔다왔다, 차비 빼면 진짜 내 돈이 더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시대를 같이 버티고 이겨내는데, 뭐라도 도움이 되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시간은 변했다. 다시 니 편, 내 편 갈리기 시작한다. 굳이 나까지 나서서 이 편, 저 편,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생각을 만들고, 시대의 최전선에 가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았다. 책 나오면 하는 의례적 강연이나 신세진 사람이 하는 부탁, 그 정도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눈 오는 겨울, 더운 여름에도 아무 것도 안 하기로 했다. , 가을로 피하기 어려운 강연 몇 번, 그게 내가 찾은 타협점이다. 물론 시민운동 차원에서 하는 건, 돈 받지 않고 내 돈 내서라도 한다. 사회과학 특강 같은 것은 정말로 무료로, 가끔은 맥주 한 잔씩 사기도 하면서 했었다. 그런 게 시민운동 차원에서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은 애 둘 보면서 뭔가 하는 처지에 당분간은 힘들다.

 

그리고 파워포인트 만드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판서가 더 좋은 강의 방식이라서 그렇다. 그 때 그 때 중요한 일, 아직 하지 않은 얘기를 전부 정리하는 게, 꼭 새로운 얘기를 위해서 좋은 방식은 아니다. 그러면 라디오 같은 매체는 전부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라디오도 얘기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데 좋은 방식이다. 그래서 팟캐스트라는 매체가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부 보여줘봐, 시각형 정보가 전부는 아니다.

 

지난 주 토요일날 정의당 당원교육은 그렇게 생각한 첫 시도다. 마침 칠판이 있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칠판 놓고 강의하면 칠판 3번 정도는 새로 썼던 것 같다. 내가 정렬적이던 시대다. 그렇게 판서하면서 눈사람형 경제니 8자형 경제 같은 개념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강의 준비하면서 판서 분량으로 1장 정도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개념 10개 정도 썼는데, 끝난 것 같다. 그 대신 설명을 많이, 길게 했다. 파워포인트 20, 30컷 만들어 놓고. 시간 맞추기 위해서 막 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개념 열 개가 안 된다. 그리고 새로 분석하거나, 새로 알게 된 것은 한두 개 밖에 안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실 한 개 분량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11월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철썩 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뭐가 뭐가 엄청나게 온다. 돈 많이 준다고 하는 게 오면, 사실 나도 흔들린다. 마침 또 그렇다. 그래도 그냥, 힘들다고 하고 말았다. 새로운 얘기나 새로운 분석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시대는 퇴행으로 간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그게 인간의 2대 욕망 중 하나라고 프로이드가 말했다. 타나토스라고 부르는, 죽음의 욕망이 후기 프로이드의 2대 축 중의 하나다. 계속해서 변화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 이걸 프로이드는 에로스에 속한 영역이라고 했다. 20대 초, 나는 타나토스보다는 에르스의 영역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타노트>는 그 후에 나왔다.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그 시절 베르베르는 매우 프로이드적이었다.

 

강연도 요즘은 상업화 정도가 아니라 산업화가 되었다. 강연산업에서 강연자의 수명을 보통 2년 정도로 본다는 것 같다. 2년이면 한 얘기의 수많은 변주도 거의 다 끝나고, 인기도 떨어지고. 물론 그걸 계속하기 위해서 자기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것까지 포함해서 평균적으로 2년이라고 본다. 내가 처음 대중 강연한 것부터 치면 15년 정도 된 것 같다. 강연 논리 그대로 따라가면 2년 후에 아주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성격이 지랄맞아서 이렇게 저렇게 했던 결정들이, 우연이지만 아주 나중에 산업적 논리와 분석과 맞추어 보니까 내가 내린 선택들이 맞는 것 같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결국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많은 시간과 많은 집중을 필요로 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겠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계속 관찰한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시간 많이 들어간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 이게 내가 지키려고 하는 딱 하나의 명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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