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월요일부터 경향신문에 한 달에 한 번 글을 쓰기로 했다. 일본 문제를 다룬 걸로, 첫 번째 원고 보냈다.
신문에 글을 쓸 때면, 사실 매번 고민이기는 하다. 여기도 일종의 장사라, 조회수 같은 데에 아주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휘발성 있는 글이라는 게, 내 실력으로는 오래 가지가 않는다. 그 때는 엄청나게 읽은 것 같지만, 1년 지나면 아무 의미도 없는 글, 그런 걸 쓰고 싶지는 않다.
의미가 있고 중요한 글,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건 파울이 될 확률이 높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 혹은 아무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글..
그 중간에서 매번 널뛰기를 하는데, 의미 있을 때도 있고, 의미 없을 때도 있다.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귀찮아서, 작년까지는 아예 글을 안 쓰려고 했다.
몇 년 칼럼 쉬었는데, 하다 보니까 다시 쓰게 되었다.
남이 하지 않는 얘기, 이런 기준 정도는 계속 지키려고 한다.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어제는 친한 친구랑 간만에 술 한 잔 진하게. 공무원이랑 일하다가 만나서, 이렇게 평생 친구로 지내게 될 줄은 몰랐다. 서로 워낙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가식 같은 건 없다.
몇 년간 진짜 외국에 같이 많이 돌아다니던 사이이기는 했는데, 같이 여행을 갔던 적은 없었다. 다음 주에 짧은 국내 여행을 가기로 했다. 뭐 꼭 가야 할 일은 없지만, 여행이 언제 목적이 있어서 가나? 아무 이유 없이 가는 게 진짜 여행인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는다. 아직 은퇴한 친구는 없지만,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슬슬 은퇴를 준비한다. 대기업에 상무하는 친구가 있는데, 아무래도 자기 자리에 오래 있기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을 조금씩은 하는가 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이고, 중학교 때도 친구였다. 저렇게 똑똑한 애가 있나 싶었다. 야구도 잘 했다. 그렇게 친했는데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최근에야 가끔 본다. 멀리 살아서, 툭하면 불러내기가 쉽지 않다.
둘째가 아픈 다음부터, 내 삶에는 이정표나 그런 게 없다. 그냥 되는 대로 산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꼭 하고 싶은 거, 그런 건 더더욱 없다.
당연히 목표 의식 같은 건 없다. 아직 약간의 열정이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한참 불태우던 시절 같은 그런 열정은 이미 아니다. 벽에 부딪히면 벽을 넘어가거나 벽을 부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돌아간다. 너무 많이 돌아가야 하면? 그냥, 가다 만다.
어차피 애 보면서 하는 거라서, 멀리 가지도 못 한다.
둘째 초등학교 2학년 될 때까지는, 어차피 어영부영 사는 수밖에 없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그런 안이한 자세로 살 생각이다.
4년을 한도로 시작했는데, 벌써 큰 애 초등학교 방학이다. 그 사이 반 년이 지나갔다. 이제 삼 년 반 남았다. 그 뒤에는 뭘 하지?
얼마 전 예능 방송에서 뭘 같이 하자고 하는데, 힘들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시간 많이 내고, 규칙적으로 뭘 하는 일은 당분간 하기 어렵다.
4년 뒤에도 나에게 정열이 남아있을지, 자신이 별로 없다. 지금도 귀찮은 일은 못 한다.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일도 못 한다.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경제 다큐 같은 거 만드는 일을 삶의 마지막 일로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후원자 같은 거 있기 전에는 본격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쉽게 계획을 짜거나, 결심 같은 것을 하기가 어렵다. 기회 되면..
딱 백만 명 정도 볼 수 있는 경제 다큐를 몇 개 만들면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하는데. 이게 내 능력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서 '기회 되면'이라는 딱지를 달아서 마음 한 켠에 밀어넣는다.
폼도 안 나고, 실속도 없지만, 의미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의미만으로 뭔가 하기에는, 그 정도의 정열은 이제 나에게는 없다.
어제만 이것저것 네 개의 제안에, 힘들다고 답변을 했다. 라디오 방송 고정 출현, 다큐 인터뷰, 공무원들 보는 잡지 기고, 공무원들 교육.
큰 애 학교가는 걸 한동안 아내가 출근길에 같이 갔었는데, 며칠 전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었다. 별 수 없이 큰 애 교문까지 내가 데려다주는 걸로. 둘째 어린이집 시간에 맞춰서 아침에 한 시간 더 잤었는데, 다시 큰 애 시간에 맞추게 되었다.
게다가 목요일이면 큰 애 여름방학이다. 돌봄교실 보내기로 해서 좀 나아지기는 했는데, 화목으로는 수영장 보내기로. 얄짤 없이 수영장 갔다와야 하는. 핑게대고 나도 수영을 하기로 했는데, 여름방학 내내 일단은 죽었다고 봐야 하는.
둘째 초등학교 2학년 끝날 때까지, 4년이 기한이었는데, 어느덧 그 중에 반년이 지나갔다.
일부러 그렇게 맞춘 건 아닌데, 애들 보는 4년이 끝나면 나도 남은 14권 마저 끝내서 50권 채울 것 같다. 꼭 숫자를 채우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세어보니까 그럴 것 같다.
정부에서 하는 일들은, 솔선수범하느라고 그런지, 원고료도 너무 황당하고, 강연료는 차비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공무원 노조에서 하는 일들은, 그들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 꾸역꾸역,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기는 한다. 노조도 아니고 공식적인 일인데, 노조 보다도 덜 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공익적인 일이니까 이해를 해달라고 하는데.. 이해는 가는데, 나도 시간 내기는 어렵다.
신세진 사람이 해달라는 경우는, 어지간하면 해준다. 살다 보니, 나도 은근 신세 많이지고 살았네. 시민단체나 노조에서 해달라면, 그것도 시간 많이 부딪히는 경우 아니면 해주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해달라고 하면.. 고민 많이 하다가 주제가 특별히 더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면 한다. 지금부터 쓰는 책 두 권이 농업경제학과 10대를 위한 독서 에세이, 별 수 없이 기회 되는대로 10대들 많이 만나야 하는 주제라서.
나머지 경우는, 당분간은 좀 어렵다. 나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내 일을 좀 해야해서.. 고민도 좀 하고, 사람들 만나서 상의도 하고, 그래야 할 내 시간이 좀 필요하다. 여유 되는 대로 인터뷰 작업도 해야 하고.
삶의 전환기는 끝나고, 또 다른 전환기가 올 때까지, 차분히 앉아서 이것저것 만드는, 그야말로 씨뿌리기의 계절이다.
경제 사조에 중상주의가 있고, 중농주의가 있다. 느낌상 중농주의 다음에 중상주의가 올 것 같은데, 실제로는 중상주의 다음이 중농주의다. 중농주의와 고전학파는 거의 동시에 왔다.
중농주의를 만든 프랑수와 케네와 고전주의를 연 아담 스미스는 동시대 사람이다. 두 사람이 만났을까 안 만났을까, 그런 게 논문 주제이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아무도 관심없는..)
나는 중농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태학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케네와 열역학 그리고 생태학에 대한 작은 논문을 본 이후로, 이거다 싶었던..
평생 케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상업에 몰두하기 보다는 농업적 사유를 더 많이 하려고 하는.
정부 연구원에서 직장 민주주의 강의해달라는 부탁이 왔다. 뭐, 시간도 마땅치 않고, 돈도 조금이라서 힘들다고 얘기하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안 땡긴다.
근데 자기 네는 노조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마음이 짠하다. 그래서 그냥 간다고 했다.
직장 그만둔 이후로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은 시민단체나 노조 한 구석, 뭔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은 주로 정부 방침과 반대인 경우가 많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들을 다룬다. 그러다보니까 성공한 사람들이 큰 돈 벌고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사람들은.. 주로 욕 한다.
그래서 늘 우울하거나 힘들거나 아니면 심난한 사람들을 주로 만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버티기 위해서 '명랑'이라는 걸 더 많이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거나 어려운 사람들 만나서 같이 인상 쓰고 있으면, 서로 힘들어서 아무 얘기도 못 한다.
이 일을 2003년부터 치면 벌써 15년 넘게 한 것 같다. 그 중에서는 잘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보통 잘 되면 연락이 잘 안 된다. 별로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리그에서 덩더쿵 덩더쿵 하고 지내는 게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 잘 된 다음에도 계속 연락한 사람은, 몇 사람 정도, 좀 드물다.
아마 책을 쓰는 한에는 평생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뭐, 처음 경제학을 공부할 때에는 이렇게 복잡하게 살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꼭 <자본론>을 읽어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뭐, 그렇게 사는 게 별 재미는 없다. 올라가면 뭐 할겨? 사실 별 거 없다. 그리고 그 특수한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힘들다. 나쁜 짓을 좀 하거나, 나쁜 짓을 안 했다고 자기를 속이거나.
그냥 나는 적당히 이렇게 사는 게 더 내 인생 다워서 좋다. 약간 불편하기는 하지만, 삶이 쪽스럽지는 않다.
고등학교 강연은 진짜 오래 했다. 매번 힘들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억에 남는 건, 직장 민주주의 가지고는 처음 한 강연이라서 그렇다. 몇 번 얘기가 있었는데, 아직 회사 다녀본 경험이 없는 고등학생들하고 이 얘기를 하는 게 여러 가지로 좀 자신이 없어서..
작년부터 강연은 부득이한 경우 아니면 거의 다 줄였다. 지치는 일이다. 뭐, 돈이 좀 되면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별로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고 돈 되는 것만 골라서 하면, 이건 양아치다.. 그렇게는 안 산다.
농업경제학 준비하면서 주대상을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삼으면서, 최근에는 고등학교에 자주 간다. 아무래도 그렇게 자주 보면 이미지를 잡을 때 좀 도움이 된다. 계속 고등학교 강연을 해서, 분위기 변하는 것도 좀 느낄 수가 있고.
10대들은, 강연 때 보면 귀엽다. 질문도 많이 한다. 길게 대답해주지는 못하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는 가능한한 정확하게 얘기해주려고 한다.
하다보니 별의별 학교를 다 가보게 되었다. 민사고는 몇 번 부탁이 있었는데, 일부러 안 한 건 아니고, 시간이 잘 안 맞아서.. 그야말로 입시만 준비한다고 소문난 학교에서부터 진짜 특별한 경우는 대안학교까지.. 시간이 10년 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지나보니, 그런 것들도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강연이 언제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분위기 잘 못 만들어서 영 어정쩡하게 시간만 보내고 마무리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오늘 별내고 특강은 분위기가 괜찮은 편이다. 일단 학생들이 착하다.
어른들이나 대학생들 강연보다 고등학생 강연이 좋은 점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책을 미리 읽고 온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다. 공무원들은, 강연은 들어도 책은 안 읽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역설적이다. 책을 읽는 공무원들은 강연에는 안 온다 (그리고 가끔 직접 연락..)
책 읽는 비율과 질문하는 거 생각해보면, 뭐라뭐라 그래도 고등학생.. 여전히 순수의 시대다. 대학교만 가도 그런 이유로는 절대 책 안 읽는다. 나도 그런 순수의 시대가 있기는 했었다는, 그런 오래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1. 산다는 게, 사실 재미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뭐라도 재밌는 걸 만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사실 잘 안 된다. 나도 안다. 그래도 그 밋밋한 속에 뭐라도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이것저것 일정을 짜고, 또 그런다.
2016년은 정말 최악의 한 해였다. 그리고 그 해가 최악이 될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안다고 별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아기는 아팠고, 그냥 그런대로 한 해를 버텼다. 그 해에는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나의 많은 동료들도 같이 힘들었다. 그리고 몇 년을 계속 해맸다.
어렵다고 이상하게 벗어나려고 하면 진짜 개미지옥처럼 될 것 같았다. 방송을 끊고, 외부에 글 쓰는 것도 쉬었다. 최소한의 일만 하고, 그냥 버텼다.
여전히 힘든 것 같지만 최악은 작년에 지난 것 같다. 몇 년간 차 없이 버티다가 지난 가을에 차를 샀다. 올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2016년처럼 힘들지는 않다. 올해는 신문 칼럼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책은 별로 안 팔렸지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이제는 50대 에세이가 될 것 같기는 하다. 2016년부터 바닥을 지나면서 생각을 많이 정리했는데, 실제로 삶이 많은 정리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 나오는 진지전 같은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결심을 하나 한 게 있다. 이제는 보람이고 나발이고, 재밌는 것만 하겠다는. 나도 50이 넘었다. 재미 없는 걸 하면서 남은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 없는 건 애들 돌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2. 내년까지는 출간 일정이 다 차 있다. 뭐, 많이 써서 다 찬 게 아니라, 애들 학교 보내면서 하는 거라서 최소한만 일정을 잡아 놨다. 그래도 그 이상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부산에 한 달 정도 가야 하는데, 도저히 부산 체류할 시간을 못 뽑고 있다. 뭔 수가 나겠지.
나도 대충은 아는 게,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대충 그 때쯤일 거라는 사실이다. 저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도 그 정도 시점이 클라이막스일 것 같다. 지금 준비하는 일들이 그 시간쯤이면 클라이막스로 갈 것 같다.
그리고는 지금도 살살 사는데, 더 살살 살 생각이다.
그래서 그 해에는 공포 얘기를 하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0대들을 위한 생태경제학을 '생태요괴전'으로 쓸만큼, 내가 그런 얘기를 좋아한다. 2년 전에 준비하던 게 하나 있기는 했는데, 몇 가지 이유로 그건 좀 어렵고.
지금으로서는 정해놓은 건 딱 하나, 소재다. 아파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뭘 어떻게 할지는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런 얘기를 워낙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재밌다.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에서 내가 제일 재밌게 생각하는 걸 해보려는, 굉장히 간단한 발상이다.
아마 귀신으로는 청와대 정책실장 했던 사람 중 한 명을 생각하고 있다. 착해 보이고, 어수룩해 보이고, 선해 보이는데.. 대가리가 좀 나쁘고, 감성이 보통 사람들의 감성과는 좀 다르다. 아파트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명박은 좀 스타일이 다르다. 그도 아파트를 겁나 짓고 팔고 한 사람이지만, 아파트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파트에 안 산다. 아, 이제는 감옥에 산다. cell..
이런 얘기를 굉장히 무섭게, 요괴 버전으로 해보고 싶어졌다.
3. 더 장기로 붙잡고 있는 주제가 하나 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후속판 같은 것인데, 엄두가 안 나서 미루어만 두고 있는.
이걸 조금 더 쉽게 해서 일본에서 문고판으로 내보자는 제안이 몇 년 전에 있었다. 지나간 책을 붙잡고 있기에는 써야할 것들이 밀려서 아주 뒤로 미루어둔 것이다.
무슨 재단 같은 데에서 이름 좀 올려달라고 몇 달 전부터 엄청 졸라댄다. 책을 내기 시작하면서 외부 프로젝트는 안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하여간 그렇기는 한데..
일본과 중국 연구를 하는데 꽤 많은 돈을 대준다는 것 같다. 그러면 더 뒤로 미루어두었던 애기를 좀 앞으로 당겨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역시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에 가장 중요한 책을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약간의 실용적인 이유도. 돈을 진짜로 받는 건 아직 결정은 안 했다. 그래도 내 연구를 하는데, 돈 받고 하는 건 좀 존심 상한다.
어쨌든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내 인생의 마지막 책 정도로 생각했던 걸 좀 당겨서 후년에 하기로 했다.
전에는 보람이 있으면 재미가 없어도 참고 일을 했다. 뭐, 돈은 별로 생각 안 했다. 지금도 돈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50이 되면서 나도 크게 변했다. 그 변화에 대한 얘기를 50대 에세이로 한 번 정리를 했다. 보람이고 나발이고, 이제 재미 없는 일은 하기 싫다.
물론 세상에 재미만 있는 일은 없다. 아무리 재밌는 일도 재미 없는 순간들을 좀 참기는 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재미 없고 잠시만 재미 있는 일을, 재밌는 거야, 그렇게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잠깐만 재미 없는 일하고, 잠깐만 재밌는 일하고, 뭘 고르겠냐? 아무리 재밌는 것만 골라도, 가끔은 재미 없는 순간을 참아야 한다. 그렇지만 늘 재미 없다가 잠깐만 재밌는 거, 50도 넘은 내 삶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 돈도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재미도 없으면 뭐하러 그걸 하겠나 싶다. 보람이고 나발이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고, 원하는 게 다르다.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게 싫고,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것도 싫고,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주 딱 질색이다. 원래 그렇다. 많은 사람을 겪어보니까 나는 참 싫어하는 일을 좋아, 아니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정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방송도 그렇다. 카메라 앞에 서고 마이크 잡는 걸 체질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방송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싫은데 누군가 해야 한다니까, 억지로 참고 했다.
명박, 근혜, 그 시절은 너무 괴로웠다. 뭘 해도 힘들고,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정권을 위해서 도울 만큼 도왔다.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시기는 사실 다시 안 오면 좋겠다. 다들 좀 이상하게 살았다.
좋은 세상은 뭘까? 글쎄, 그 정확한 모습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재밌는 거 하고 살 수 있는 구조가 구현된 사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래도 자기 사는 데 별 문제 없다고 느끼는 사회 아닐까? 충성하는 사람들 줄 세우고, 그런 사람들이 뭔가 공을 세우고,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즉.. 현재 한국의 모습은 아직은 가야할 길이 먼 사회이기는 한.
먼 곳에 있는 목표와 현실의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냥 애 보면서, 조금이라도 재미 있는 일 조금씩 하는 것, 이 외에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사람들은 재밌는 일의 가치를 종종 무시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다음 단계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근혜와 함께, 증오와 저주로 만들던 시대는 끝이 났다. 뭔가 사랑하고, 뭔가 즐겁고 그래서 뭔가 재밌는, 그렇게 뭔가 만드는 시대가 다음 단계일 것 같다. 욕만 하는 거, 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