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51건

  1. 2019.03.13 아무 일도 없는 하루
  2. 2019.03.07 한가한 나날의 이면 4
  3. 2019.03.04 디테일의 순간
  4. 2019.03.04 '북소리' 자문위원회
  5. 2019.03.03 지승호 인터뷰..
  6. 2019.03.03 우리는 성숙할 수 있을까?
  7. 2019.02.20 광주의 직장 민주주의 조례.. 3
  8. 2019.02.17 시대유감
  9. 2019.02.13 연극성과 양아치 벗어나기.. 3
  10. 2019.02.12 해탈은 아직 멀다.. 1

애들 둘을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두 군데를 가야하니까 아침 등교 시간이 더 힘들어지기는 했다. 큰 애는 육교 위에서 혼자 내려보내는데, 육교를 내려가기까지 연신 뒤를 돌아다본다. 교문까지 혼자 가는 걸 어려워한다. 이번 달 안에는 육교를 혼자 건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둘째는 혼자 움직이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어린이집 현관문까지만 데려다주면 혼자 자기 방까지 간다. 큰 애는 어린이집 졸업하는 순간까지, 방에다 데려다 달라고 했다. 둘째는 많이 아팠고, 부모 손길도 덜 받았다.

토요타 공장의 일본 분포도와 센다이 공장의 연혁 같은 걸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 자꾸 미국 토요타 홈페이지로 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센다이 공장 갔을 때 자료들 좀 잘 챙겨둘 걸.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료가 거의 없다. 그나마 책이라도 좀 있으면 생큐, 책은 물론이고 논문도 관련된 게 전무한 경우가 많다. 유튜브에 다 있다는 사람들 말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찾거나 보는 자료들이 유튜브에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변의 작가들이나 기자들 작업하는 거 보면.. 중요하고 알고 싶은 순서대로 찾아가지 않고, 결국에는 일상적으로 접하거나 찾을 수 있는 자료 순서대로 가게 된다. 가고 싶은 데 가는 게 아니라, 갈 수 있는 데 가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개념들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는데.. 문득 먹고 사는데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남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내 삶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타 센다이 공장이 왜 생겼고, 거기서 무슨 차종을 만들고, 그게 지역 경제와 여건에 무슨 철학에 기반한 것인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서 다시 프리우스 플러그인이 갖는 상징적 가치.. 이런 걸 찾는 한국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후키시마 사고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그러나 프리우스 플러그인과 두 사건이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한국에서는 못 봤다.

얼마 전에 미세먼지 책 낼 생각 없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일정상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실이 그렇다. 내가 2005년 에 미세먼지 책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낸 사람이고, 그걸로 저자 데뷔했었다. 미세먼지 문제로 제일 고민 많이하던 시절은 2001년으로 올라간다. 총리실에 있던 시절이다. 그 후로 3년간 고민을 했고, 결국 그게 데뷔작이 되었다. 그 책을 다시 내고 싶지 않은 것은, 미세먼지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저자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작업을 하겠다는 대략이 밑그림도 그 책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그걸 지금 다시 하기는 어렵다.

먹고 살기 위해서 지금 하는 일들의 일정을 맞추지 않아도 상관 없는 것, 그것만 해도 내 삶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물론 지금 당장 뭘 해야 우리 집이 먹고 살 수 있으면, 아내가 아침마다 날 좀 덜 구박할지도 모른다. 빨리빨리 일어나, 오늘도 디비 처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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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신문에서 칼럼 연재 부탁이 왔는데, 지금 너무 많이 써서 어렵다고 답장을 썼다.

칼럼이 대충 쓰거나 신경 써서 쓰거나, 사실 별 차이는 없다. 좀 더 핫한 주제인가,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그 차이가 더 크다. 그렇지만 쓰는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나마나한 얘기는, 진짜 좀 그렇다. 누가 싫다, 뭐가 아니다, 이런 즉자적인 얘기들로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몇 년째 일을 줄이는 중이다. 줄이고 줄여도, 다른 데서 자꾸 늘어나서 실제로 양 자체가 준 것 같지는 않다. 약속 특히 점심 약속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아내도 그러라고 한다.

"밥이나 사줄께 함 와라", 요런 부탁도 그만 듣기로 했다. 다이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도 좀 빼야 하는데, 언제까지, 아 네네.. 처묵처묵하면서 살 수는 없다. 밥 못 먹는 인생도 아니고.

술 약속도 정말 최소한으로만 남기고. 예전 동료들과는 '비포 더 돈', 한강에 아스라이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귀가하는 걸 최고로 치던 시절. 차 마시고 얘기하자, 이게 여전히 안 된다. 그렇게 지냈던 시간의 무게가 여전히 무겁다. 사선을 같이 넘던 처지에, 그냥 모른다고 그러기도 좀 그렇고.

어떻게든 일감을 하나라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 허랑방탕한 입장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좀 미안하다. 그냥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 같은 게 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치기 어려운 볼은 안 치고, 잡기 어려운 볼은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만, 최소한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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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다 보면, 갑자기 머리가 휙 돌아서 기가 막힌 전환점을 쓰게 되는 순간이 있다. 피가 확 돈다. 그런 게 한 열번 쯤 와야 책이 된다. 이런 흐름의 디테일은 미리 계산할 수가 없고, 기획할 수도 없다. 좀 전에 그런 순간이 왔다. 오 예..

조직관리하는 사람들이나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만드는 순간만의 매력이나 쾌감 같은 게 있다. 도저히 미리 계산할 수 없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빈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 뭔가 생성되는 순간.

물론 이런 게 엄청난 돈이 되지도 않고, 기가 막히다고 평가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디테일 설계에서 어벙벙한 공간을 메꾸는 디테일을 만드는 순간. 그래도 이런 게 꽉 쪼여져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난 이런 게 좋아서, 관리직 같이 돈 만지고 힘 쓰는 길로 가지 않았다.

어디다 얘기하기도 어렵다. 무슨 문제를 해결했는지 설명을 하려면, 앞뒤로 복잡한 얘기를 하도 많이 해야 해서. 그리고 전체적인 맥락에서만 중요한 거지, 그 context를 벗어나면 아무 것도 아닌 얘기가 된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기쁜 순간을 1년에도 몇십 번 만난다. 그래서 내가 아직 쓰러지지 않고, 웃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 돈은 진짜 별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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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에서 하는 '북소리'라는 책 소개 방송이 있다.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에 마지막 남은 책소개 방송이다. 보수 정권이 책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 기간을 지나면서 결국 공중파에서 책과 관련된 방송은 다 없어졌다.

그러면 정권 바뀌면 좀 살렸냐? 뭐, 전혀. 다들 뭐 하느라고 바쁘신 건지.

하여간 '북소리'에서 자문위원회를 구성한다고 연락이 왔다. "영광입니다"라고 짧게 답변을 주었다.

요즘 예능방송 자막에 '방송국 놈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때마다 웃는다. 나도 오늘은 그 얘기하고 싶다. '방송국 놈들", 책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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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도 이제 나이를 먹는다. 우리, 다 나이를 먹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홍대 앞에서 만났던 청년 느낌이 조금은 났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어렴풋한 느낌 같은 건 사라져버렸다.

우리 시대가 풍요로왔던 것은, 그래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만나고, 기록하던 지승호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들 지 잘난 맛에 살던 시절.

언젠가 내가 지승호에게 다시 인터뷰집 하자고 부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직은 그런 때는 아니다. 나는 지금 애들 손 붙잡고 격랑의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인터뷰집을 낼 때에는, 인세를 나누는 일 같은 건 하지 않고.. 전부 그에게 주는 계약을 할 생각이다.

나는 그 시절을 행복하게 건너왔다. 인세를 조금 더 받거나 덜 받거나, 강연비를 받거나 무료로 하거나, 살아가는 데 아무 차이도 없다.

그가 환갑을 바라볼 때쯤, 좀 더 편안하게 삶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인터뷰 작가의 괴로움과 즐거움: 지승호 인터뷰

[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1914년 5월 어느 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는 한 목사의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제3인칭으로서 그(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신을 믿는다는 것이 그 분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떨리는 목소리가 기어코 입 밖으로 터져나올 테고, 그 고백은 누군가에게 벅찬 기쁨이나 깊은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을 테지만, 부버는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고 선언한다.

사랑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소유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주어가 너라는 목적어에게 내 진심이라는 ‘사랑’을 던지는 그런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난주,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단행본을 펴낸 작가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과의 관계, 특히 대화에 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직업으로서 작업해온 사람이라는 의미다. 인터뷰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면서, 특정한 인격을 ‘정보’로 대상화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궁금한 건 그 인터뷰이에 관한 어떤 정보이거나 그 인터뷰이가 말해주는 어떤 정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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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세상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책은 별로 힘을 못 썼는데, 동아일보 같은 데에서 성숙은 아니라고 꽤 난리를 쳤었다. 대중적으로 뿌리는 못 내리고, 아주 상층부의 소모적 논쟁만 생겨났던..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성숙해졌는가? 개뿔이다. 힘들 때 성숙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쉽다. 그냥 고개 처박고 있으면 된다. 잘 될 때 혹은 좋은 흐름을 탔을 때, 그 때가 어렵다. 좋으면 고개 빳빳이 들고, "다 내가 잘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행동하게 된다.

성숙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한국에서는 남자랑 여자랑 비교하면 좀 더 쉬운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남자 특히 성공한 남자 중에서 그 사이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더욱 더 꼰대처럼 되어간다.

진중권은 성숙했을까?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진보누리 시절의 진중권에 비해서 더 성숙해진 것 같지는 않다.

장하준은 성숙해졌을까?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라서, 그의 인격과 삶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하는 얘기들이 부쩍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도 어쩌면 삶의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 적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은 성숙해졌을까? 글쎄.. 참여연대를 움직이던 그 시절에 비해서 진짜로 국민경제 전체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했으니까. 상식적으로는 그 이상 더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분노가 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그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가 정의당 한 가운데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그는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더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인다. 모르겠다.. 혹시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는 더 성숙해졌을지도.

가끔이라도 보는 남자들 중에서 더 유명해지거나, 더 높아진 사람들은 꽤 많다. 성숙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잘 없다. 성숙하기 전에 노화가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들 중에는 예전에 알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더 깊어지거나 우아해지거나, 덜 날카로와지고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한혜정 선생이 대표적이다. 은퇴하기 몇 년 전에 꽤 많은 연구를 같이 했었다. 그리고 은퇴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은퇴하지 몇 년, 손자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래도 관심이 줄어들거나 뒤로 간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더 편안해졌다.

시인 노혜경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잘은 모른다.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방송과 글로 보던 예전의 그의 모습과 요즘의 그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보면, 확실히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변화가 있기는 한 것 같다. 만약 그걸 성숙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여성들은 40대와 50대를 거치면서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환갑을 바라보면서 심성에도 변화가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더 처먹지 못해서 환장을 하는 할머니들도 종종 봤다.

사회는 바뀌고, 시간은 흐른다. 개인들도 그 속에서 개인사의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만나게 된다.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해서 공황장애로 가는 사람도 종종 보았고, 이미 끝냈어야 할 부부 관계를 해소하지 못해 수심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도 보았다. 친구들은 잘 나가는데, 자기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해만 지면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보았다. 그리고 많아진 돈과 명예를 감당하지 못해 점점 더 자기 안의 성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람도 보았다.

성숙이란 뭘까? 몇 년만에 성숙 자본주의 책 내던 시절에 관한 기억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본다.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들을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운동권들에게 힘과 권력이 가는 시대가 왔다. 과연 이 시기에 우리가 성숙한 한국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국가는 그렇다 치고, "저 사람은 그래도 좀 성숙했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좀 배출할 수 있을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는 허들을 향한 협동진화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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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조례, 광주의 경우

 

1.

MB 시절,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 같지만, 내 인생은 진짜로 삶의 어두운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괴로웠다. 나꼽살이라는 팟 캐스트를 시작한 건, 대충 그 시절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가장 인기 있던 시절이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세상은 증오로 차 있었다. 증오가 정의이고, 그게 옳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은 오래 갔다. 그 힘은 박근혜 아니 순실이를 만나서 결국 폭발했다. 어쨌든 우리 모두, 아니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을 움직인 것은 분노였다. 너무 싫었다.

 

2.

그 즈음에 내가 나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과연 분노 위에 무엇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런 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아주 길고 긴 과정이다. 당통과 로베르츠피에르 같은 우정이 결국 배신과 죽음으로 엇갈린..

 

그 시절에 분노 위에 세워진 것은 오래 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 내 분노가 절정으로 달하던 시점이 <괴물의 탄생>에서 <생태 요괴전>, 그 사이 어느 쯤인 것 같다. 그 시절의 책들은, 괜찮게 팔리고, 파장도 있었다.

 

Mb 시절이 끝나가고, 대선에서 졌다. 망했다. 나는 그 때쯤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분노를 내려놓고 시도한 첫 책이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이었다. 책은 망했다. ,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게 내가 생각한 청년에 대한 얘기를 정리한 책이다. 책은 망했지만, 그 책에서 던져진 이슈는 살아남아서 여전히 움직인다.

 

그리고 한동안 사는 게 좀 편치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도 안정되었고..

 

사는 게 편해지다 보니까, 이름이나 명예 혹은 권력, 그런 게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 때쯤 내 주변에서 영향력이라는 단어들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별로 의미 있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영향력이 좀 생기면 뭐 하나.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별로 원치 않은 일을 하는, 허깨비 지랄 같은 걸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한테 대박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다.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나는 대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 입장에서, 대박 나야 뭐하겠냐? 더 유명해져서? 사는데 불편하기만 하다. 내가 가는 동네 슈퍼 아저씨가 나를 못 알아보는 정도 상황이 딱 좋다. 이미 망했다.. 자꾸 인사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것이다. 그 외에는, 별 의미 없다.

 

물론 모든 책이 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계속 책을 쓰는 것은, 변화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팔리고, 좀 덜 팔리고,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사회적 경제 책이나 직장 민주주의 책이 그런 흐름 위에 있다.

 

그 사이에 이 책은 꼭 돈 벌 것”, 그런 제안들이 몇 번 있었다. 돈에 내가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큰 의미 없다. 내가 나한테 떳떳하지 않은 책은 싫다.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3.

직장 민주주의 책으로 광주에서 부탁이 왔다. 광주 갔다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근데 이번엔 뭔가 좀 다르다. 독자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은 없다. 그건 지방강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늦어도 그 날 돌아온다. 아직까지 책 때문에 내려가서 그냥 자고 오는 일은 한 적이 없다. 성격 더럽게 까칠하다. 모르는 사람과 밥 먹기, 모르는 사람과 술 먹기,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그것만큼은 이제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 술이라도 좀 편하게 먹게..

 

근데 이번에는 꼭 술을 마셔야 한다는 거다. 오매매. 아는 사람 부탁도 있고, 등등, 그러기로 했다. 저자로 데뷔한지 10년 넘게, 처음이다, 그런 일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럴 만한 일이기는 하다.

 

광주시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조례로 만들겠다는 거.. 옴마. 사실 안 될 건 없다. 한국당이 어깃장을 놓아서 법률은 늘상 폭망이다. 통과도 어렵지만, 막상 통과해도 이것저것 다 빠진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지금 그렇게 국회에서 폭망한 상태다.

 

광주는 그런 한국당이 없는.

 

가정친화인증제가 이미 있기 때문에, 조금 변형하면 실무적으로도 크게 무리갈 건 없다. 조달사업에서 가산점제로 할 거냐, 아니면 의무인증제로 할 거냐, 그 수위만 결정하면 된다. 학교도 그냥 조례로 지정해서 학교 민주주의 추진하면 된다.

 

메이데이 때, 그걸 발표했으면 쓰겄다.. , 그런 얘기다.

 

광주에서 들은 얘기는, 좀 가슴에 남았다. 광주가 얘기하는 민주주의는 왜 늘 과거의 일인가? 좀 더 미래적 민주주의 그리고 생활 속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를 할 수는 없는가? 그렇긴 하다.

 

직장 민주주의는, 그냥 결정해서 하면 되는 일이다. 크게 정리하면, 알아도 못하는 게 있고, 몰라서 못하는 게 있다. 직장 민주주의는, 몰라서 못 하는 것에 가깝다. 국가적으로 한 번에 하려면 한국당 때문에 좀 어렵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선언 형식으로 해도 된다.

 

어쨌든 뭔가 성과가 날 때까지 좀 도와주기로 했다.

 

서울에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노 위에 뭘 세우기가 어렵다. 오래 가고 강한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랑과 애정인 것 같다.

내가 움직여야 몇 년이나 더 움직이겠나. 두세 개만 세상을 바꾸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아니겠나 싶다. 그러면 ‘C급 경제학자정도의 이름은 남길 것 같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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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유감

책에 대한 단상 2019. 2. 17. 11:06

광화문 광장에 관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내 형편을 보면 '시대불화'다. 정부가 하는 것도 뭐라고 하고, 청와대 중점 사업도 뭐라고 하고, 박원순의 서울 시정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진짜로 이런 얘기 안 하고 싶고, 이런 글도 안 쓰고 싶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뭐라도 한 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된장.

정치 특히 영국 정치에서 '시끄러운 소수'와 '침묵하는 다수'라는 프레임이 종종 사용되었다. '시끄러운 소수'인지, '시끄러운 다수'인지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언제나 논란이다.

현실적으로 나는, '침묵하는 소수' 쪽인 것 같다. 소수이고, 침묵한다.. 그런 마이너의 마이너 견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지방 방송'이고, '지하실 방송'이고, '변방의 북소리'다. 그래도 저질은 아니다. 나름 고품격이다.

아마 영원히 마이너의 마이너 세계에서 살아갈 것 같다. 이런 삶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이상한 일이 진행될 때, 소수라는 이유로 그냥 입 다무는 것을 참기가 더 어려울 뿐이다..

'88만원 세대' 초고 끝나고, 결론을 바꿔주면 출간해주겠다고 하는 데가 좀 있었다.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은 아니다. 어차피 책 읽지 않는 대학생이나 20대에게 맞추지 말고, 그래도 좀 책을 읽는 30대~40대가 원하는 결론을 조금만 넣어주면.. 훈계하는 것은 싫었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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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부할 때 연극성(theatralite)라는 개념이 유행했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개념이고, 쉽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개념이다.

 

푸코의 <말과 사물>의 연장선에서 생각해보면..

 

사춘기가 과연 예전에도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사춘기가 현대적 현상이라는 거다. 근대가 출현하기 전에, 인간이라는 개념도 약했고, 인문과학, 그런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러니까 어린이 개념도 없고. 어린이는 약한 사람, 불완전한 사람, 그런 거였던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접근이나 개념 자체가 약하니까 당연히 어린이도 개념이 없고. 교육도 지금과는 접근 자체가 다르고. 그러니까 청소년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그 청소년기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다르게 취급하지도 않고.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사실 청소년기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결혼을 했고, 아빠가 되어 있거나 엄마가 되어있거나. 사춘기? 그게 뭔데?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그랬을 거다. 그러면 사춘기는? 이게 자연적 현상이냐, 사회적 현상이냐? 보기에 따라서 양 쪽 다 가능한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생리현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사춘기가 이제는 중2에 온다고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온다고 하기도 하고. 사춘기야말로 사회현상이기도 하고, 개념 현상이기도 하다. 나는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다. 반항은 학교 죽어도 안 간다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반항을 안 한 적이 없으니까 특별히 더 한 시기도 없다.

 

연극성은 이런 생각의 연장이다. 자기가 자신의 삶을 무대의 주인공처럼 생각한다는.. 이게 보기에 따라서는 20세기 현상이기도 하다. 대가족 시절에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재산이고 뭐고, 아무 것도 안 주는 차남들에게서나 생겨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더 올라가면 과연 인간, 아니 남자가 언제부터 허리띠를 쓰기 시작했는가? 최소한 그 때부터는 자신을 장식하고 꾸미기 시작한 거니까. 생각보다 늦다.

 

소비적 주체의 등장, 아마도 그런 과시적 효과를 베블렌이 분석한 게 19세기 후반이니까 그 정도에는 중산층에서도 어느 정도 형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드디어 생산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인 개인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스스로 자신의 삶이 주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엇겠지만, 귀족이거나 선각자 정도 되지 않았을까. 하여간 연극성이라는 얘기는 이런 얘기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자신은 자신만의 극장에서 모두가 주인공이다. 인생을 하나의 거대한 연극처럼 생각하고, 모두 거기에서 자신만의 연극을 하게 된다. 그게 삶이다.

 

이 얘기가 너무 재밌었다. 실제로 이 얘기로 박사 논문을 쓸 생각도 있었는데, 현실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정권이 우파로 바뀌면서 지도교수가 정년 이후 명예교수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나는 현실과 좀 타협을 했다.

 

연극성, 이 얘기 자체가 엄청나게 새롭거나 그런 거는 아니다. 자기 인생에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거, 너무 당연한 거 아냐? 그리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 작당한 판타지를 가지고 사는 거 아냐? 어차피 삶은 연극 같은 것인데?

 

그렇기는 한데, 이 얘기가 나한테 영향을 안 준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거나 별 거 없어 보이는 사람도, 다 자신의 의식 속에서는 주인공들이다. 그가 착각을 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다.

 

기획을 하거나 마케팅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양아치 짓을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사람을 숫자로만 보는 것이다. 물론 관객수, 독자수, 이런 건 다 숫자로 나온다. 시청률, 열독률, 이런 tv와 신문 같은 것도 주요 지표가 숫자로 나온다. 하다못해 유튜브도 카운터 숫자와 독자수, 이렇게 숫자로 나온다. 그래서 머리 수 세는 논리에 익숙해진다. 이런 게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다. 하다 못해 생태학의 기본도 머리 수 세기다. 포퓰레이션, 모집단의 개체수를 세는 것으로부터 생태학이 시작된다. 그런데 머리 수가 모든 것이 되고, 머리 수만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이러면 딱 양아치다.

 

그 숫자로 대표되는 모집단 속에서 한 명 한 명의 연극 주인공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잃으면, 그게 바로 양아치 아닌가? 생태학은 머리 수 세는 데에 끝나지 않는다. 그건 기본 데이터일 뿐, 그 속에서 생명과 생명 그리고 구조와의 관계를 구성해가는 것이 생태학 작업이다. 머리 수만 세고, 그걸 돈으로만 연결하는 것, 그건 양아치다. 그런 양아치성을 끝까지 몰고 가면, 미세먼지가 중요하니까 원전을 늘리자, 이런 이상한 얘기가 나온다. 환원해서는 안 될 것을 환원하게 된다.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가, 주인공들끼리의 연합체 같은 것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 나도 주인공, 너도 주인공, 우리 모두 주인공, ‘우리끼리만’. ‘스카이 캐슬현상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예전 경기고 나온 할아버지들이 이런 짓을 잘 했다. 얘도 경기고, 쟤도 경기고. 노회찬도 경기고 아녀? 이런 참, 뭐라 할 수도 없고. 노회찬은 학교나 학번 따지고, 나이 따지는 거 진짜 싫어했다. 어쨌든 노회찬도 경기고 나왔으니까 그 자리까지 간 거여,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경기고들이 대통령은 한 번도 못 만들었다. 얼마나 억울해들 하시는지. 그래서 이회창을 죽어라고 밀었다. 이회창 대통령 떨어질 때, 얼마나 꼬시던지! 게다가 상고출신 대통령 되는 순간, 진짜로 꼬셨다. 그래, 이게 시대 정신이야!

 

한 명 한 명의 연극 무대를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연극으로 보는 것, 물론 나도 잘 못 한다. 그래도 세상을 그렇게 보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기회가 되는 대로 그렇게 삶의 하나로서 재구성 해보려는 노력은 한다.

 

책의 저자가 되는 것은, 독자 한 명 한 명을 연극의 주인공으로 인식하기로 마음을 먹는 것과 같다. 제일 개쓰레기 같은 작가는 책 판매 부수로 자신의 독자들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건, 인간도 아니다. 양아치도 아니고, 스카이캐슬도 아니고, 그냥 개쓰레기다. 책을 못 쓸 수도 있고, 재미 없게 쓸 수도 있고, 쓰다 보면 틀린 내용을 쓸 수도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그러나 독자를 그냥 머리 숫자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책의 저자로서 출발점이 안 된 개쓰레기다. 3류 신문사 편집국장 같은 얘기일 뿐이다.

 

책이란 임시로 펼쳐진 연극 무대 같은 것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연극 무대와 조명, 장치들을 설치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책 쓴 사람이 주인공 아니냐고? 오 노! 연극 장치의 설치자 중의 한 명일 뿐이다.

 

책은 독자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책 만드는 놈을 욕하든, 책 쓴 놈을 욕하든,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든, 주인공 마음이다. 읽는 사람이 임시로 무대 이에 올라가는 주인공, 그런 게 책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여행 가이드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다. 여행은 주인공이 하는 것이다. 가이드는 그 코스를 도와주거나 약간의 설명을 덧붙일 뿐이다.

 

책만 그런 건 아니다. 만드는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연극에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고, 삶의 모든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걸 이해하는 게 만드는 일의 출발점이다. 내 물건을 누가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 그 의미가 뭔지, 그걸 아는 게 만드는 일의 시작이다. 그걸 모르고 하면? 본인도 힘들고, 남들도 힘든 일이 언젠가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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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때에는 강연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대학교 정도 가려고 했었는데, 그 시절에는 이미 학교 운동권이나 학생 자치 같은 게 무너지던 시기라서 그렇게 많이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금방 mb 집권이 시작되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데, 하여간 대학교 강연이 학교 측이 반대로 무산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나꼽살 하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는 김어준의 인기에 좀 묻어가는 면도 있었을텐데, 그 때는 진짜로 어마무시했었다. 부산대에서 대형 강의실 꽉 찾았다. 아마, 그게 가장 많이 왔던 걸로 기억난다.

2012년 대선의 문재인 서울 유세에서 처음 유세차를 탔다. 그 때 공약 중에서 의료비 100만원에 대해서, 아주 좋은 공약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성격상, 길게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몇 분 얘기하지 않고 내려갔는데, 그게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나보다.

그 시절을 정점으로, 내 인생은 그 후로 줄곧 하강 국면이다. mb 때도 힘들었는데, 박근혜 아주 초반만 지나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진짜 꽁꽁 틀어막혀 있었다.

그냥 정권 교체나 좀 돕자, 가벼운 마음으로 아직 당대표가 아니던 시절의 문재인을 돕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도운 건 마지막 선거가 끝나던 순간까지였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그 때 아내랑 아이들 다 데리고 보령으로 갔다.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서 며칠을 지냈다. 거기서 내가 하던 모든 걸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그 후로는 먹고 사는 걸 걱정하면서 살지는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특별히 다른 사람하고 싸우면서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노력하면서 살았을까? 그렇다고 억지로 말하면 '겁나 노력
, 이렇게 말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대부분 내 맘대로 살았고, 요즘은 그냥 내려놓고 산다.

그게 나의 50대다. 한 번 더 남은 인생을 위해서 도약, 그렇게 생각하기 좋은 나이일 것 같지만, 그건 똑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두 명을 돕는 일이 내가 주로 한 일인 것 같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고, 한 사람은 결국 환갑을 코 앞에 두고 감독 데뷔에 성공했다.

그리고 또 다른 동료 한 명의 인생의 난관을 풀어가는 데 나의 많은 시간을 쓴다.

그렇게 사는 게 더 나답다는 생각은 든다. 나는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하여 정말 덤으로, 딱 우리 집 생활비만 나오면 된다는 마음으로 책도 쓴다. 잘 팔리면 고맙지만, 아니라도 큰 문제는 없다. 그저, 내가 나중에 돌아봐서, 이런 책을 미쳤다고 썼냐, 그런 자책만 들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정도는 충분히 못 들은 척하고,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데도, 막상 그게 잘 되지는 않는다.

그거만 되면, 나도 해탈의 경지에 들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잘 안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도 잠시 생각해봤다. 아직은 내려놓을 게 더 많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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