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맘고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아홉수, 진짜로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내가 잘 한 게 하나 있다면.. 내 시간의 흐름대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 더 하고 싶은 게 있거나, 질러가고 싶은 게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원래의 흐름대로, 그냥 천천히, 못 견딜만큼 더디게 지냈다. 뭐든지 후다닥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고, 수많은 변화와 기회들이 생겨나는 상황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올드하다'는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뚜벅뚜벅 가게 되는 것. 뭐든 하나하나 직접 내 손으로 만들지 않으면, 결국은 올드해진다. 그리고 일일이 만드는 것에 시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40대에 너무 막 살았다는 글을 얼마 전에 썼다. 사실 막 살려고 막 산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고, 좋은 조력자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그 때는 몰랐다. 그 시절에 한 건, 내가 한 게 아닌 게 많다. 그냥 나도 끼어있었던 것을, 내가 뭔가 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 뭔가 엄청? 그건 착각일 뿐이다.

그 막 살았던 40대에 건진 것이 없지는 않다. "내가 하면 다르다", 이런 생각은 완전히 버렸다. 내가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과는 덜 나오고, 결국 초조해지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술 처먹고. 그렇다고 남한테 신경질 낼 처지도 아니니까, 또 혼자서 술 처먹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흐름대로 가는 지금의 이 호흡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뭐 좀 빨리 좀 내놔보라고 주변에서 온통 난리다. 나는 그냥 내 호흡대로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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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실마리를 잘 찾은 날은, 어쩜 좋아, 나 천잰가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엉키면?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이 대체로 너저분하다. 써놓은 거 다 날리고, 오늘 다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다. 느낌 좋다. 어쩜 좋아, 나 천잰가봐. 다시 요지랄을. 한국에 직장 민주주의가 오는 날... 요절할 뻔했던 어떤 천재가 50에 대오각성해서, 한국의 직장 민주주의에 관한 책으로 첫 발을 떼다.. 요렇게 기록될지도. 요런 너저분한 생각이라도 계속하지 않으면 사회과학 저자로 버틸 수가 없다. 야구도 계속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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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정책은 좌우가 결국 비슷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현실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렇다고 그 논쟁과 논의 과정을 생략하고 먼저 가운데에 가 있으려고 하면 안철수가 된다. 돌고 돌아서 사람들의 선택과 타협의 결과로 거기에 가야지, 나는 여기로 올 줄 알았어, 먼저 거기에 가면 정치인 안철수가 된다.

책을 쓰는 것은 정치와는 정반대의 과정인 것 같다. 논리이든 감정이든, 극한에 갈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생각 혹은 한 가지 감정으로 얘기가 최대한 전개되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이 책의 정신인 것 같다. 감안해서 읽거나 타협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극한까지 가는 경험을 제시하는 것,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게 된다. 지금은 그렇다. 적당히 타협하는 글은 신문만 펼치면 사설에서 매일 볼 수 있다.

샤르트르는 까뮈가 너무 세속적이라고 비난하고는 했다. 그렇지만 까뮈도 사유의 세계에서 극한까지 상황을 몰고 간다. 이방인이 그랬고, 페스트도 그랬다. 그게 극한이고, 그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독자도 않다. 그렇지만 만일 벌어진다면 당신은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지독할 정도로 극한까지 질문을 끌고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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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에서 뻔뻐니즘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다. 책도 그렇지만 뭔가 만드는 일에는 다 공통적으로 이게 필요한 것 같다. 책은 대표적으로 그렇다. 공부해서 책을... 그렇게는 못 한다. 이미 아는 것을 쓰는 것이지, 그 때부터 공부해서, 그렇게는 못 한다. 공부는 평소에 그리고 작업 시작하기 전에. 책 쓰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몇 개 항목의 업데이트, 수치 작업과 확인 그리고 인터뷰를 통한 현실 검토, 그 정도다. 내 안에 이미 있고,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다. 책을 쓰면, 뭘 모르는지는 확실히 알게 된다. 쓸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아는 것만 쓰는 것이다. 아무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잠깐 뻔뻔해지는 수밖에 없다. 내가 제일 잘 알아, 뻔뻔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잠시 뻔뻐니즘 속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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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이제 특별한 변동 없이, 거기서 거기인 인생이 될 것 같다. 뭐 엄청나게 해봐야 특별히 더 영광스러울 것 같지도 않고, 별 거 안 해도 소소한 일들은 하고 있을 것 같고. 워낙 특별한 일이 없을 거라서, 50권째 책 내고는 작은 잔치라도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출판기념회 같은 건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다. 그래도 작은 잔치 정도는... 지금 속도로는 이번 정권에는 좀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정권 초중반 정도에 걸릴 것 같다. 책 데뷔한지 15년은 넘어야 할 것 같고, 20년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옆에서 사람들이 기왕 하는 거 백 권 채우라는데, 그렇게까지 하려면 정말 70까지 책 쓰는 건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 그게 좋을 것 같지도 않고. 하여... 50권 째에는 조촐하게 잔치라도 한 번 하기로 했다. (더운 일요일 오후, 땀 찔찔 흘리면서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 드랍아웃과 '워라밸'에 관한 항목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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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준혁이 가지고 있던 2318 안타 기록을 오늘 박용택이 넘어섰다. 사실 양준혁은 지금처럼 게임이 대폭 늘어날지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일찍 은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무리해서라도 2~3 시즌은 더 했을 것 같다.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든다. 요즘 딱히 부럽거나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박용택은 부럽기도 하고, 멋지다는 생각도 든다.

 

박용택이 막 데뷔하던 시절, 2002년은 나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많다. 아마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했던 회의에 갔다가 다시 총리실로 돌아오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해 코리안 시리즈에 삼성과 결승에서 만났다. 이상훈이 공을 던졌고, 이승엽이 홈런을 쳤다. 동점. 그리고 다시 마해영이 홈런.

 

그 때 막 한강 건너서 남산 1호 터널 지날 때였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아마 이것저것, 생각이 겹쳐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여간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의 최악의 순간들을 지내고 있었다. 아마 아무리 더 힘들어져도 그 때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때 박용택이 데뷔를 했다. 그게 한국 시리즈에 그가 올라가보는 마지막이었던 것을 그는 몰랐던 것 같다. 아무도 몰랐다. 우승은 못해도, 그 언저리에 계속 있었다. 그리고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다음 해 봄, 노무현 정권에서 인수위랑 첫 인선 명단 보고 바로 사직서 냈다. 그 즈음에 청와대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얘기랑 조금만 더 기다리면 외국 근무 보내준다는 얘기가 있기는 했다. 글쎄, 그렇게 아쉬움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내 이름을 되찾고 싶었다.

 

2.

막 데뷔한 박용택이 야구하는 기간이 이상훈을 너무 좋아했던 나의 청춘이 완전히 끝난 시점과 이래저래 맞물린다. 그리고 그가 오늘 대기록을 세웠다.

 

나는 이제 그런 건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보낸다.

 

요 몇 주 기분이 아주 좋다. 좀 생각해봤는데, 한 달 전부터 산책을 좀 늘렸고, 몇 주 전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그 외에는 크게 잘 되는 것도 없고, 크게 망하는 것도 없고, 그냥 비슷비슷한 하루의 연속이다. 그냥, 줄넘기를 시작해서, 매일 조금씩 하는 정도로도 나는 기분이 좀 더 좋아졌다.

 

오늘 점심 때 윤호중 의원하고 밥을 먹었다. 그도 좀 고민이 있나 보다. 오늘은 내 얘기도 좀 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다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지난 2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그동안은 조각조각만 얘기를 해줬는데, 오늘은 따로 할 급한 얘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약간 모아서.

 

저는, 그냥 이러구 살래요.”

 

요즘 내가 편한 것은, 크게 영광을 구하는 게 없으니까, 크게 망할 것도 없고, 크게 실망할 것도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이 좀 커서, 주말 오후 내내 집안에서 웃음 소리가 끊이지가 않았다. 방안에 있는 고양이도 아무 문제 없고, 마당 고양이 강북도 요즘은 저녁이면 집에서 쉰다. 가끔 다른 고양이랑 시비가 붙기는 한다. 오늘은 검은 고양이랑 기싸움이 붙어서 내가 개입을 해서, 검은 고양이 쫓아냈다.

 

내 삶은 이만하면 더 바랄 것은 없다. 크게 아픈 데 없고, 30대 이후 처음으로 수영 말고 다른 운동을 조금씩 한다. 스테리칭 운동도 하면서 오매오매, 이 장작대기”, 혼자 웃는다. 유학 시절에는 혼자서 운동을 많이 했다. “죽을 수 없다”, 그냥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텼다. 지금은 그런 이를 악무는 일은 나에게 벌어지지 않는다. 되면 되고, 안 되면 말고. 그렇다고 내가 혼자 뭔가를 다 하냐? 그런 것도 아니다.

 

어제는 전체 회식이 있었다. 1차 끝나고 마무리하면서 기획팀 대표로 아주 짧게, 한 마디 했다. 어느덧 같이 일하는 사람이 50명도 넘었다. 그냥 나는, 티 나지 않게 내가 맡은 역할만 하면 된다.

 

3.

박용택이 한 마디를 했다. 이제는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목표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실제로 그렇다. 요즘은 내가 지금 쓰는 책이 마지막 책이 된다고 해도 별 상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억지로 뭔가 목표를 세우고, 그걸 위해서 기를 쓰는 것, 덜 재밌는 방식이다.

 

요즘은 프로야구에 절절함이 키워드다. 나는 그런 절절함이 없다. 절절함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보다는 좀 더 즐기면서 지내고 싶다.

 

50대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많이 변했다. 제일 큰 건, 이제 덜 괴로워하면서 책을 쓰게 되었다. ,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갑자기 책이 더 팔리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내 책을 10년 가까이 계속 읽어준 동료들이 이번 책은 처음으로 잡자마자 한 번에 다 읽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거면 된 거다.

 

전에는 책 쓰면서 괴로워하고, 몸부림을 하면서 썼다. 50대 에세이 때, 즐기면서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쓰지는 않았다.

 

직장 민주주의는, 보람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고 써보려고 한 건데, 막상 시작하니까, 내가 얘기에 빠져든다. 독자들도 그렇게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쓰면서 재밌기도 할 뿐더러, 내가 빠져든다. 보람이 문제가 아니다. 이건, 돈 주고도 하고 싶은 일이다.

 

내년도 출간 리스트를 잠시 살펴봤다. 10년을 넘게 책을 썼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나만 쓸 수 있거나, 나만 쓰려고 하는 주제가 남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물론 잘 팔기도 하면 좋겠지만, 그건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최소한의 체면 치례 정도라도 할 수 있다는 게 고맙기만 하다.

 

나도 언제까지 책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짧으면 3~4, 길면 10년 정도 쓸 것 같다. 환갑이 넘어서도 책을 쓰고 있을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이미 10년짜리 한 턴을 돌았는데, 또 한 턴을 돌기도 어려울 뿐더러, 하지 않은 주제가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다. 더 할 새로운 얘기가 없으면, 언제든지 펜을 내려놓겠다고 생각하고 산다. 기록? 몇 년 전부터, 그런 것의 의미는 없어졌다. 영광과 화려함, 잠시의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음 흐름이 오면 기억할 사람도 없다. 기억할 의미도 없고.

 

그냥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내 책을 산 사람들이 보기에 저건 아니지”, 그런 아주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정도 아닐까 싶다. , 특별히 하는 게 없어서, 특별히 이상해지기도 어렵다. 잘 못하는 것,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얼마 전 청와대에 있는 어떤 아저씨랑 잠시 통화할 일이 있었다. 언제까지 쉴 거냐고 물어본다. 워낙 친한 사람이라,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그냥 이렇게 살 거라고. “그래요, 지금은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네요.” 요런 애기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지금 쉬는 것은 아니다. 내 능력이 되는 대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중이다. 야구 용어를 하면, 나는 지금 내 게임 뛰는 중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가끔 책 새로 내면 나에게 몇 권 냈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 글쎄, 잘 모른다. 10권 때까지는 세었던 것 같은데, 나도 세어보지 않은지 좀 된다. 몇 권 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직장 민주주의가 얼마나 이 사회에 유의미하게 만들어질 것인가,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

 

그나저나 박용택,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승하고, 막 신나는 분위기에서 잘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지만 꼴쥐소리 들으면서 꼴지 언저리를 헤매는 팀에서 자기 흐름대로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박용택의 많은 별명 중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광고택이다.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안 될 때, 잘 참으면서 기본 정도라도 하는 것, 그게 사실 어렵다. 그걸 잘 참고 이겨낸 사람이라서,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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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좋은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주 하는 생각은. 어려운 걸 어렵게 쓰는 게 1단계. 어려운 걸 쉽게 쓰는 게 2단계. 어려운 걸 재밌게 쓰는 게 3단계. 웃기든 울리든, 어려운 것을 가지고 감정을 만드는 게 4단계. 이런 것 같다. 2단계까지는 연습하면 되는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재미는 종류가 너무 많다. 그리고 다양하다. 게다가 감정은, 생각보다 보편적이지 않다. 순실이가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 때 나는 격렬하게 웃음보가 터졌다. 우리 아버지는 그 때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버님 집에 가기 싫어졌다. 그리고 잠시 우울해졌다. 감정은 아주 복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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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조금 읽었다. 책을 읽는 것은, 자기 시간을 내어놓는 것과 같다. 나에게 책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다. 내가 모르는 것에 관해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전혀 모르던 것에 대해서 생각을 죽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전혀 모르던 것에 대한 작은 우주가 생기고, 내가 알던 작은 소행성 하나가 산산히 부수어져 나간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책을 읽는 가장 나쁜 자세 중의 하나가, 자기가 필요한 것만 읽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실용적인 자세로 장점들만 자기 안에 들어올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10년 혹은 20년이 지나면 이게 결정적으로 해로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책의 실용적 장점만이 모여서 지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머리에 똥만 차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저자를 온전하고 완벽한 한 사람이라고 일단은 전제하고 그의 생각들을 읽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책은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 틀리다. 시기가 변하면 그 자체로 완벽하게 자신과 맞는 책은 없다. 심지어 자기가 쓴 책도 시기에 따라서 다루는 대상과 생각의 변화 때문에 자기와 맞지 않게 되기도 한다. 남이 쓴 책이야 오죽하겠냐.

그걸 자기가 우월자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심판하면서 읽으면, 책의 미덕 자체도 온전하게 자신에게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배운다는 생각 그리고 '온전하게' 하나의 세계관을 맞이한다는 생각으로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매번 고통스럽다.

이런 생각을 딜타이 등의 말을 빌려서, 해석학적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키워드 하나면 꼽으면 context,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컨텍스트를 읽을 수 없는데, 텍스트를 어설프게 재단하면서 자신이 더 우월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방떨면, 컨텍스트 근처에도 못 가본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여전히 나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여전히 내게 독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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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네이버에 쓰던 불로그 이름이 여기는 등대였다. 등대라는 단어가, 참 좋았다. 요즘은 GPS로 운항을 하니까 등대는 사실 있으나 마나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항해에서 등대는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했다.

 

등대는 불을 밝히기는 하는데, 자기를 보라고 빛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자기를 통해서 길을 찾으라고 하는 것, 등대 그 자체는 별 존재는 아니다. 나는 그런 게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의미? 등대의 의미를 무시하는 항해사는 없다.

 

원래 나는 기동력 좋게 움직이거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별로 부지런하지 않다. 그리고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 반복적인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익숙한 것을 싫어하고, 해봤던 것을 또 하는 것을 싫어한다. 어려운 것을 하는 것보다 쉬운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반복을 더 싫어한다. 너무 어려서 프로이드를 읽어서 그런지, 반복과 죽음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이 박혀 있나 보다. 뭔가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을 때, 나는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살지는 않았다. 새로운 것과 최고, 나는 최고의 길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버리고, 새로운 것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

 

하는 일이나 쓰는 글의 범위 같은 게 계속 바뀌기는 하지만, 내 삶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다. 그냥 어디 한 구석에 짱 박혀서 어디다 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뭔가 새로운 혹은 새롭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을 줄구장창 만들고 있는 일, 그 정도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먹고 사는 게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 생각에 좀 변화가 왔다. 물론 해결이라고 해봐야 남들에게는 에게, 그 정도, 그 수준을 넘지는 못한다. 하여간 어느 날 미쳤다고 갑자기 나는 이제 벤츠 타야겠어”, 그런 황당한 생각만 하지 않으면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다 보니까 누가 큰 돈 번다고 얘기해봐야, “너나 열심히 버세요”, 면박 주기 일쑤다. “너는 돈 안 필요해?”, 이렇게 물으면 , 안 필요해요”, 요렇게 대답한다. 진짜 황당한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면, “너보다는 돈 많아요”, 요띠구로 면박을 주기도 한다.

 

돈을 엄청나게 더 버는 일에 매력을 느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성 아우구투스가 인간을 움직이는 세 가지 동기로, , 명예, 성욕 (libido libidinal)이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돈도 별로고, 명예도 별로다. 그렇다고 갑자기 사랑에 빠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내가 사는 모습이, 내용은 몰라도 모양새는 크게 변동이 없다. 사는 집에 그냥 살고, 먹던 거 먹고, 입던 거 입고, 애들 보는 거 계속 보고. 40대까지는 중대한 커브틀기, 이런 게 가끔은 있었던 것 같은데 50이 되니까 그런 것도 없다.

 

속으로는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쓰는 글 스타일도 바뀌지만, 크게 보면 30대 중반에 저자로 데부한 이후로, 거기서 거기인 삶을 사는 중이다.

 

소소한 변화들은 있다. 신문에 칼럼 쓰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고, 방송도 고정적으로 뭔가 해야 하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아픈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리고 일간 혹은 주간으로 변하는 그 사이클을 애 보면서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그보다는 긴 사이클, 2~3년 혹은 5년 이상 걸리는 일들을 주로 한다. 지금 막 내 손에 있는 것들은 빨라야 3년 후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시간을 비운 대신, 힘 닿는 대로 현장에 가보고, 실무자들 인터뷰 하는 일들을 조금 더 늘렸다. 나는 여전히 책과 자료만 보는 데스크일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현장에 가는 걸 더 선호한다.

 

이렇게 뻔하디 뻔한 삶을 살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고정점 같은 게 되었다. 세상은 변한다.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가끔 있어서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작년부터 정부에서 학계까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난리들을 친다. 그래야 껍닥을 달아야 정부에서 돈을 준다. 나는 지랄 염병을 한다고 한 마디 한다. 포디즘도 제대로 이해못하는 아저씨들이, 어디서 어디로, 뭐가 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진짜 염병들을 하신다. 이렇게 안 변하고 있는 사람도 필요할 것 같다.

 

30대 때 썼던 여기는 등대라는 표현이 얼마 전에 다시 생각이 났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변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기준점 역할을 하기는 한다. 사명감으로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나를 준거점으로 삼는 것 같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등대, 등대의 의미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요즘 너무 간단한 기준으로 세상이 좋아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쉽게 판단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되돌아보면서, 이게 맞는지 아닌지, 생각해보고 싶어질 때도 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는 아니다.

 

거기에 그냥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존재, 우리는 과연 등대가 될 수 있을까? , 쾌속정이나 구축함 혹은 항공모함 같은 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등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등대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배가 되어,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좋다. 삶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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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은 논리나 감정, 한 가지만 가지고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은 논리만 가지고는 못 쓴다. 그리고 교과서나 참고서 아니면 그렇게 논리만 가지고는 읽기가 너무 힘들다.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만드는 설계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을 만드는 일은, 이건 설명하기가 어렵다. 노력한다고 해도 안되고, 억지로 끌어내려고 해도 안된다. 억지로 만든 감정은, 잠시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책을 쓰는 것은, 일시적으로 미친 놈이 되는 것과 같다. 많은 창작 작업과 마찬가지다. 그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제일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만드는 작업을 동시에 두 개를 할 수는 없다. 논리적으로 맞추고 줄기를 세우는 것은 기계적인 작업이다. 이건 할 수 있다. 그러나 써나가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두 개의 감정이 섞이면, 이제 슬슬 사람이 미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쓰는 작업을 동시에 하지는 않는다.

(구상과 조사 같은 것은 몇 개를 병행해서 하더라도, 크게 겹치지는 않는다.)

감정을 만들지 않으면, 설명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 독자들이 설명하는 방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근본적인 딜레마가 생겨난다.

설명하지 않고도 설명하는 법, 무슨 파르메니데스의 역설 같은 느낌이다. 10년 전에는, 이렇게까지 감정을 많이 동원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전체적인 어법과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논리만 가지고 책을 세울 수가 없다.

감정,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주제 자체가 그렇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 다른 실력이 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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