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63건

  1. 2019.03.25 어느 월요일 아침.. 2
  2. 2019.03.24 가끔은 지옥에 있는 것 같은.. 1
  3. 2019.03.13 아무 일도 없는 하루
  4. 2019.03.07 한가한 나날의 이면 4
  5. 2019.03.04 디테일의 순간
  6. 2019.03.04 '북소리' 자문위원회
  7. 2019.03.03 지승호 인터뷰..
  8. 2019.03.03 우리는 성숙할 수 있을까?
  9. 2019.02.20 광주의 직장 민주주의 조례.. 3
  10. 2019.02.17 시대유감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길이 엄청 막혔다. 학교 가는 큰 애는 50분에 간당간당하게 교문에 들어갔다. 대학교 때 미국 영화 보면 엄청 중요한 일 하는 아빠들이 아침에 자녀들 등교시키고 가는 거 보면서, 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1년 내내 저렇게 할 수가 있지?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교사 부부랑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막 들어간 아이가 있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월수금, 화목토로 부부가 등하교는 물론이고 시장 보고 밥 하는 것도 나누어서 하는 것 보고.. 이런 게 우리의 미래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우리의 미래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 작업하면서, 그 때 본 20살 중 1/3 정도만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스웨덴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의 혼외 출산 국민이 절반을 넘어선다. 통계로만 보면 결혼하지 않는 건 별 상관이 없는데, 연애도 하지 않는 건 좀 그렇다. 요즘 같으면 연애 대신에 혐오로 소일하는 것 같다.

성경에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랬던 것 같다. 한국에서 성경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종교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자기 보고 싶은 대로,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종교는 그냥 그걸 강화시키는 보조재 같은 거 아닌가 싶다.

우병우, 황교안, 한국 공직 시스템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개똘아이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황교안이 포럼 같은 데 돌아다니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경제라고 그러고 다닐 때, 아마도 저 아저씨는 반드시 대선에 나오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교안이 꽃길을 걸었는데, 아마도 이회창이 모델인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대쪽 검사라는 이미지라도 있었는데. 황교안의 꽃길과 반대편의 진흙탕 길은 이재명이 걷는 것 같다. 정치라, 잘 모르겠다.

죽기 전에 노회찬 대통령 되는 거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뭐, 가능성 1도 없지만, 가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하면 노회찬이 대통령을 해야지, 이런 마음도. 이제 그런 택없는 소망 같은 건 안 갖기로 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죽었다.

애들 학교 데려다 주면서 카뮈의 페스트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주 더운 날, 대학교 2학년 때 중앙도서관 지하에서 팥빙수 먹으면서 읽었던 그 기분이 떠올랐다. 세브란스에서 이한열 시체 지키던 그 6월이 지나고 어느 여름 날이었는데, 마치 코 끝에서 세브란스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다.

혐오로 달려가는 한국은, 페스트에 갇힌 카뮈의 그 어느 도시와 사실 다를 바 없다. 도시 바깥으로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이 사람들과 같이 하겠다, 어느 기자에게 인간적으로 던져진 생존의 질문이다. 기자는 잔류를 결정한다. 사실 페스트라는 소설 자체가 이 하나의 질문을 형성시키고, 독자들에게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질문을 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과도 같다. 그 시절에 나는 페스트를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읽고.. 도서관이 너무 덥다, 그냥 잔디밭에 나가서 친구들하고 술 처먹고, 헬렐레.

4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페스트를 다시 읽었다. 쥐가 옮기는 질병 페스트에서, 피를 토하며 죽는 쥐가 처음 등장한 날이 4월 16일이다. 세월호 사건이 난 바로 그 날이다. 순간 소름 돋았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우리는 이 봄날,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혐오할 대상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 프로야구 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만큼은, 혐오를 잠시 내려놓고, 응원한다. 잘 좀 해라, 병살 좀 그만 치고. 지겹지도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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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다 보면,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은 지옥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절반쯤 지났을 때 종종 그렇다. 다 버리고 새로 할까, 아니면 그냥 갈까,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어떨 때는 아예 그냥 계약금 다시 돌려주고, 이 책 내지 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냥 꾹 참는 건, 내 책들은 책들끼리 서로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설계되어 있다. 중간에 이가 하나 빠지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가 없는.. 몇 년에 걸쳐서 그렇게 설계를 해놔서, 나 이거 그만 할래, 그렇게 던져놓고 도망가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럴 때 애들이 좀 봐주냐, 뭐 전혀 그렇지 않다. 주말이면 밥 하고, 애들 보고. 오늘은 청소 한단다. 뭐, 그래도 오늘은 좀 낫다. 조금만 있으면 야구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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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둘을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두 군데를 가야하니까 아침 등교 시간이 더 힘들어지기는 했다. 큰 애는 육교 위에서 혼자 내려보내는데, 육교를 내려가기까지 연신 뒤를 돌아다본다. 교문까지 혼자 가는 걸 어려워한다. 이번 달 안에는 육교를 혼자 건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둘째는 혼자 움직이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어린이집 현관문까지만 데려다주면 혼자 자기 방까지 간다. 큰 애는 어린이집 졸업하는 순간까지, 방에다 데려다 달라고 했다. 둘째는 많이 아팠고, 부모 손길도 덜 받았다.

토요타 공장의 일본 분포도와 센다이 공장의 연혁 같은 걸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 자꾸 미국 토요타 홈페이지로 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센다이 공장 갔을 때 자료들 좀 잘 챙겨둘 걸.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료가 거의 없다. 그나마 책이라도 좀 있으면 생큐, 책은 물론이고 논문도 관련된 게 전무한 경우가 많다. 유튜브에 다 있다는 사람들 말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찾거나 보는 자료들이 유튜브에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변의 작가들이나 기자들 작업하는 거 보면.. 중요하고 알고 싶은 순서대로 찾아가지 않고, 결국에는 일상적으로 접하거나 찾을 수 있는 자료 순서대로 가게 된다. 가고 싶은 데 가는 게 아니라, 갈 수 있는 데 가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개념들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는데.. 문득 먹고 사는데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남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내 삶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타 센다이 공장이 왜 생겼고, 거기서 무슨 차종을 만들고, 그게 지역 경제와 여건에 무슨 철학에 기반한 것인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서 다시 프리우스 플러그인이 갖는 상징적 가치.. 이런 걸 찾는 한국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후키시마 사고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그러나 프리우스 플러그인과 두 사건이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한국에서는 못 봤다.

얼마 전에 미세먼지 책 낼 생각 없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일정상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실이 그렇다. 내가 2005년 에 미세먼지 책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낸 사람이고, 그걸로 저자 데뷔했었다. 미세먼지 문제로 제일 고민 많이하던 시절은 2001년으로 올라간다. 총리실에 있던 시절이다. 그 후로 3년간 고민을 했고, 결국 그게 데뷔작이 되었다. 그 책을 다시 내고 싶지 않은 것은, 미세먼지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저자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작업을 하겠다는 대략이 밑그림도 그 책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그걸 지금 다시 하기는 어렵다.

먹고 살기 위해서 지금 하는 일들의 일정을 맞추지 않아도 상관 없는 것, 그것만 해도 내 삶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물론 지금 당장 뭘 해야 우리 집이 먹고 살 수 있으면, 아내가 아침마다 날 좀 덜 구박할지도 모른다. 빨리빨리 일어나, 오늘도 디비 처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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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신문에서 칼럼 연재 부탁이 왔는데, 지금 너무 많이 써서 어렵다고 답장을 썼다.

칼럼이 대충 쓰거나 신경 써서 쓰거나, 사실 별 차이는 없다. 좀 더 핫한 주제인가,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그 차이가 더 크다. 그렇지만 쓰는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나마나한 얘기는, 진짜 좀 그렇다. 누가 싫다, 뭐가 아니다, 이런 즉자적인 얘기들로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몇 년째 일을 줄이는 중이다. 줄이고 줄여도, 다른 데서 자꾸 늘어나서 실제로 양 자체가 준 것 같지는 않다. 약속 특히 점심 약속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아내도 그러라고 한다.

"밥이나 사줄께 함 와라", 요런 부탁도 그만 듣기로 했다. 다이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도 좀 빼야 하는데, 언제까지, 아 네네.. 처묵처묵하면서 살 수는 없다. 밥 못 먹는 인생도 아니고.

술 약속도 정말 최소한으로만 남기고. 예전 동료들과는 '비포 더 돈', 한강에 아스라이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귀가하는 걸 최고로 치던 시절. 차 마시고 얘기하자, 이게 여전히 안 된다. 그렇게 지냈던 시간의 무게가 여전히 무겁다. 사선을 같이 넘던 처지에, 그냥 모른다고 그러기도 좀 그렇고.

어떻게든 일감을 하나라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 허랑방탕한 입장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좀 미안하다. 그냥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 같은 게 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치기 어려운 볼은 안 치고, 잡기 어려운 볼은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만, 최소한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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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다 보면, 갑자기 머리가 휙 돌아서 기가 막힌 전환점을 쓰게 되는 순간이 있다. 피가 확 돈다. 그런 게 한 열번 쯤 와야 책이 된다. 이런 흐름의 디테일은 미리 계산할 수가 없고, 기획할 수도 없다. 좀 전에 그런 순간이 왔다. 오 예..

조직관리하는 사람들이나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만드는 순간만의 매력이나 쾌감 같은 게 있다. 도저히 미리 계산할 수 없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빈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 뭔가 생성되는 순간.

물론 이런 게 엄청난 돈이 되지도 않고, 기가 막히다고 평가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디테일 설계에서 어벙벙한 공간을 메꾸는 디테일을 만드는 순간. 그래도 이런 게 꽉 쪼여져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난 이런 게 좋아서, 관리직 같이 돈 만지고 힘 쓰는 길로 가지 않았다.

어디다 얘기하기도 어렵다. 무슨 문제를 해결했는지 설명을 하려면, 앞뒤로 복잡한 얘기를 하도 많이 해야 해서. 그리고 전체적인 맥락에서만 중요한 거지, 그 context를 벗어나면 아무 것도 아닌 얘기가 된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기쁜 순간을 1년에도 몇십 번 만난다. 그래서 내가 아직 쓰러지지 않고, 웃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 돈은 진짜 별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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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에서 하는 '북소리'라는 책 소개 방송이 있다.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에 마지막 남은 책소개 방송이다. 보수 정권이 책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 기간을 지나면서 결국 공중파에서 책과 관련된 방송은 다 없어졌다.

그러면 정권 바뀌면 좀 살렸냐? 뭐, 전혀. 다들 뭐 하느라고 바쁘신 건지.

하여간 '북소리'에서 자문위원회를 구성한다고 연락이 왔다. "영광입니다"라고 짧게 답변을 주었다.

요즘 예능방송 자막에 '방송국 놈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때마다 웃는다. 나도 오늘은 그 얘기하고 싶다. '방송국 놈들", 책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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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도 이제 나이를 먹는다. 우리, 다 나이를 먹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홍대 앞에서 만났던 청년 느낌이 조금은 났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어렴풋한 느낌 같은 건 사라져버렸다.

우리 시대가 풍요로왔던 것은, 그래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만나고, 기록하던 지승호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들 지 잘난 맛에 살던 시절.

언젠가 내가 지승호에게 다시 인터뷰집 하자고 부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직은 그런 때는 아니다. 나는 지금 애들 손 붙잡고 격랑의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인터뷰집을 낼 때에는, 인세를 나누는 일 같은 건 하지 않고.. 전부 그에게 주는 계약을 할 생각이다.

나는 그 시절을 행복하게 건너왔다. 인세를 조금 더 받거나 덜 받거나, 강연비를 받거나 무료로 하거나, 살아가는 데 아무 차이도 없다.

그가 환갑을 바라볼 때쯤, 좀 더 편안하게 삶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인터뷰 작가의 괴로움과 즐거움: 지승호 인터뷰

[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1914년 5월 어느 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는 한 목사의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제3인칭으로서 그(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신을 믿는다는 것이 그 분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떨리는 목소리가 기어코 입 밖으로 터져나올 테고, 그 고백은 누군가에게 벅찬 기쁨이나 깊은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을 테지만, 부버는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고 선언한다.

사랑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소유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주어가 너라는 목적어에게 내 진심이라는 ‘사랑’을 던지는 그런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난주,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단행본을 펴낸 작가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과의 관계, 특히 대화에 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직업으로서 작업해온 사람이라는 의미다. 인터뷰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면서, 특정한 인격을 ‘정보’로 대상화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궁금한 건 그 인터뷰이에 관한 어떤 정보이거나 그 인터뷰이가 말해주는 어떤 정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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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세상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책은 별로 힘을 못 썼는데, 동아일보 같은 데에서 성숙은 아니라고 꽤 난리를 쳤었다. 대중적으로 뿌리는 못 내리고, 아주 상층부의 소모적 논쟁만 생겨났던..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성숙해졌는가? 개뿔이다. 힘들 때 성숙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쉽다. 그냥 고개 처박고 있으면 된다. 잘 될 때 혹은 좋은 흐름을 탔을 때, 그 때가 어렵다. 좋으면 고개 빳빳이 들고, "다 내가 잘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행동하게 된다.

성숙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한국에서는 남자랑 여자랑 비교하면 좀 더 쉬운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남자 특히 성공한 남자 중에서 그 사이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더욱 더 꼰대처럼 되어간다.

진중권은 성숙했을까?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진보누리 시절의 진중권에 비해서 더 성숙해진 것 같지는 않다.

장하준은 성숙해졌을까?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라서, 그의 인격과 삶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하는 얘기들이 부쩍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도 어쩌면 삶의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 적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은 성숙해졌을까? 글쎄.. 참여연대를 움직이던 그 시절에 비해서 진짜로 국민경제 전체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했으니까. 상식적으로는 그 이상 더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분노가 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그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가 정의당 한 가운데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그는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더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인다. 모르겠다.. 혹시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는 더 성숙해졌을지도.

가끔이라도 보는 남자들 중에서 더 유명해지거나, 더 높아진 사람들은 꽤 많다. 성숙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잘 없다. 성숙하기 전에 노화가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들 중에는 예전에 알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더 깊어지거나 우아해지거나, 덜 날카로와지고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한혜정 선생이 대표적이다. 은퇴하기 몇 년 전에 꽤 많은 연구를 같이 했었다. 그리고 은퇴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은퇴하지 몇 년, 손자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래도 관심이 줄어들거나 뒤로 간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더 편안해졌다.

시인 노혜경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잘은 모른다.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방송과 글로 보던 예전의 그의 모습과 요즘의 그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보면, 확실히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변화가 있기는 한 것 같다. 만약 그걸 성숙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여성들은 40대와 50대를 거치면서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환갑을 바라보면서 심성에도 변화가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더 처먹지 못해서 환장을 하는 할머니들도 종종 봤다.

사회는 바뀌고, 시간은 흐른다. 개인들도 그 속에서 개인사의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만나게 된다.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해서 공황장애로 가는 사람도 종종 보았고, 이미 끝냈어야 할 부부 관계를 해소하지 못해 수심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도 보았다. 친구들은 잘 나가는데, 자기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해만 지면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보았다. 그리고 많아진 돈과 명예를 감당하지 못해 점점 더 자기 안의 성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람도 보았다.

성숙이란 뭘까? 몇 년만에 성숙 자본주의 책 내던 시절에 관한 기억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본다.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들을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운동권들에게 힘과 권력이 가는 시대가 왔다. 과연 이 시기에 우리가 성숙한 한국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국가는 그렇다 치고, "저 사람은 그래도 좀 성숙했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좀 배출할 수 있을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는 허들을 향한 협동진화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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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조례, 광주의 경우

 

1.

MB 시절,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 같지만, 내 인생은 진짜로 삶의 어두운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괴로웠다. 나꼽살이라는 팟 캐스트를 시작한 건, 대충 그 시절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가장 인기 있던 시절이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세상은 증오로 차 있었다. 증오가 정의이고, 그게 옳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은 오래 갔다. 그 힘은 박근혜 아니 순실이를 만나서 결국 폭발했다. 어쨌든 우리 모두, 아니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을 움직인 것은 분노였다. 너무 싫었다.

 

2.

그 즈음에 내가 나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과연 분노 위에 무엇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런 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아주 길고 긴 과정이다. 당통과 로베르츠피에르 같은 우정이 결국 배신과 죽음으로 엇갈린..

 

그 시절에 분노 위에 세워진 것은 오래 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 내 분노가 절정으로 달하던 시점이 <괴물의 탄생>에서 <생태 요괴전>, 그 사이 어느 쯤인 것 같다. 그 시절의 책들은, 괜찮게 팔리고, 파장도 있었다.

 

Mb 시절이 끝나가고, 대선에서 졌다. 망했다. 나는 그 때쯤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분노를 내려놓고 시도한 첫 책이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이었다. 책은 망했다. ,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게 내가 생각한 청년에 대한 얘기를 정리한 책이다. 책은 망했지만, 그 책에서 던져진 이슈는 살아남아서 여전히 움직인다.

 

그리고 한동안 사는 게 좀 편치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도 안정되었고..

 

사는 게 편해지다 보니까, 이름이나 명예 혹은 권력, 그런 게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 때쯤 내 주변에서 영향력이라는 단어들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별로 의미 있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영향력이 좀 생기면 뭐 하나.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별로 원치 않은 일을 하는, 허깨비 지랄 같은 걸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한테 대박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다.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나는 대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 입장에서, 대박 나야 뭐하겠냐? 더 유명해져서? 사는데 불편하기만 하다. 내가 가는 동네 슈퍼 아저씨가 나를 못 알아보는 정도 상황이 딱 좋다. 이미 망했다.. 자꾸 인사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것이다. 그 외에는, 별 의미 없다.

 

물론 모든 책이 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계속 책을 쓰는 것은, 변화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팔리고, 좀 덜 팔리고,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사회적 경제 책이나 직장 민주주의 책이 그런 흐름 위에 있다.

 

그 사이에 이 책은 꼭 돈 벌 것”, 그런 제안들이 몇 번 있었다. 돈에 내가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큰 의미 없다. 내가 나한테 떳떳하지 않은 책은 싫다.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3.

직장 민주주의 책으로 광주에서 부탁이 왔다. 광주 갔다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근데 이번엔 뭔가 좀 다르다. 독자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은 없다. 그건 지방강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늦어도 그 날 돌아온다. 아직까지 책 때문에 내려가서 그냥 자고 오는 일은 한 적이 없다. 성격 더럽게 까칠하다. 모르는 사람과 밥 먹기, 모르는 사람과 술 먹기,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그것만큼은 이제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 술이라도 좀 편하게 먹게..

 

근데 이번에는 꼭 술을 마셔야 한다는 거다. 오매매. 아는 사람 부탁도 있고, 등등, 그러기로 했다. 저자로 데뷔한지 10년 넘게, 처음이다, 그런 일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럴 만한 일이기는 하다.

 

광주시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조례로 만들겠다는 거.. 옴마. 사실 안 될 건 없다. 한국당이 어깃장을 놓아서 법률은 늘상 폭망이다. 통과도 어렵지만, 막상 통과해도 이것저것 다 빠진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지금 그렇게 국회에서 폭망한 상태다.

 

광주는 그런 한국당이 없는.

 

가정친화인증제가 이미 있기 때문에, 조금 변형하면 실무적으로도 크게 무리갈 건 없다. 조달사업에서 가산점제로 할 거냐, 아니면 의무인증제로 할 거냐, 그 수위만 결정하면 된다. 학교도 그냥 조례로 지정해서 학교 민주주의 추진하면 된다.

 

메이데이 때, 그걸 발표했으면 쓰겄다.. , 그런 얘기다.

 

광주에서 들은 얘기는, 좀 가슴에 남았다. 광주가 얘기하는 민주주의는 왜 늘 과거의 일인가? 좀 더 미래적 민주주의 그리고 생활 속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를 할 수는 없는가? 그렇긴 하다.

 

직장 민주주의는, 그냥 결정해서 하면 되는 일이다. 크게 정리하면, 알아도 못하는 게 있고, 몰라서 못하는 게 있다. 직장 민주주의는, 몰라서 못 하는 것에 가깝다. 국가적으로 한 번에 하려면 한국당 때문에 좀 어렵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선언 형식으로 해도 된다.

 

어쨌든 뭔가 성과가 날 때까지 좀 도와주기로 했다.

 

서울에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노 위에 뭘 세우기가 어렵다. 오래 가고 강한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랑과 애정인 것 같다.

내가 움직여야 몇 년이나 더 움직이겠나. 두세 개만 세상을 바꾸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아니겠나 싶다. 그러면 ‘C급 경제학자정도의 이름은 남길 것 같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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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유감

책에 대한 단상 2019. 2. 17. 11:06

광화문 광장에 관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내 형편을 보면 '시대불화'다. 정부가 하는 것도 뭐라고 하고, 청와대 중점 사업도 뭐라고 하고, 박원순의 서울 시정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진짜로 이런 얘기 안 하고 싶고, 이런 글도 안 쓰고 싶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뭐라도 한 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된장.

정치 특히 영국 정치에서 '시끄러운 소수'와 '침묵하는 다수'라는 프레임이 종종 사용되었다. '시끄러운 소수'인지, '시끄러운 다수'인지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언제나 논란이다.

현실적으로 나는, '침묵하는 소수' 쪽인 것 같다. 소수이고, 침묵한다.. 그런 마이너의 마이너 견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지방 방송'이고, '지하실 방송'이고, '변방의 북소리'다. 그래도 저질은 아니다. 나름 고품격이다.

아마 영원히 마이너의 마이너 세계에서 살아갈 것 같다. 이런 삶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이상한 일이 진행될 때, 소수라는 이유로 그냥 입 다무는 것을 참기가 더 어려울 뿐이다..

'88만원 세대' 초고 끝나고, 결론을 바꿔주면 출간해주겠다고 하는 데가 좀 있었다.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은 아니다. 어차피 책 읽지 않는 대학생이나 20대에게 맞추지 말고, 그래도 좀 책을 읽는 30대~40대가 원하는 결론을 조금만 넣어주면.. 훈계하는 것은 싫었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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