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은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까 뭘 안 한다고 하는 일이 내 일 중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조그만 경제방송을 준비하는 게 있는데, 자문은 해줄 수 있지만, 진행은 못 하네요.. "네, 당연히 안 하지요." 몇 년 전 같으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네 고맙습니다, 그러고 했을 것 같다. 그 몇 년 사이에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책은 요즘 인기도 없고, 사회과학은 비주류에서 더 비주류로 내려 앉았다. 당연히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제 뉴스 거리도 아니고. 공보식 논리로 하면, 뉴스 밸류가 없다. 아예 없고, 전혀 없다.

좀 화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갑갑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원래도 비주류의 비주류. 비주류로 살아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그래도 술은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당한 주류.. 왜 이러고 사는지 몰라.)

공부라는 게, 화려한 거 좋아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씨 뿌리고, 김 매기까지 하는, 그런 노가다성 농사일과 공부가 비슷하다. 추수의 보람은 있지 않느냐? 추수절이 다가오면 누군가 차떼기로 도리를 쳐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입에는 들어가지 않았겠어, 이렇게 농사 노가다 일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성격,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하기가 어렵다.

철학은 그래도 때로 폼이라도 좀 나지, 사회과학은 그렇게 폼 나는 일도 별로 없다 (서울대 김상환 선생이 박사과정 들어갈 때 철학과로 안 가고 그냥 경제학과로 갔다고, 니가 그럴 수 있느냐고 쓴 편지를 얼마 전에 아내가 짐 정리하다가 찾아냈다. 참,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

그래도 쭈구리고 앉아 책 읽고, 종이에 뭔가 도표 같은 거 정리하고, 억지로 시간 내서 아이들하고 산책하고.. 이런 삶이 나에게는 잘 맞는다.

가끔 좀 더 화려한 데로 나오라고 하는 얘기들이 있기는 한데.. 나는 그렇게 무대에 서는 것보다는, 그냥 이론들 정리하고 숫자 비교하는 그런 공장일 같은 거, 뭔가 만드는 게 더 좋다. 그러니 지금까지 명랑을 잃지 않고, 웃으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거고.

뭔가 만드는 게, 그 순간이 나는 좋다.

연구원장 같은 제안은 심심치 않게 온다. 듣지도 않고, 싫어요, 그러고 만다. 지금 이 나이에 원장 해서 뭐하게. 남들 연구시키는 게 일이 되면서 50대의 마지막 기회를 낭비하면서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연구는 자기가 해야지.. 물론 나도 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냥 살살, 조금씩 해도, 우리나라 어느 연구원장보다는 더 생산적이고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 연구시키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고속버스로 수십 대분 이상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나도 그 줄 중의 한 명이 되고 싶지는 않다.

책 쓰는 연구원장이 어딨냐? 신문 기고도 자기가 안 쓰는 판에..

팔리는 건 나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직장 민주주의 책 정도의 의미와 품질을 가진 책, 3~4권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피아'급 수준의 얘기도 3~4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화려하고 넉넉한 삶 보다 내게는 100배는 가치 있어 보인다.

그러다보니까, 뭘 안 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 상대 심통나지 않게 하는 게, 요즘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빈번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희한한 50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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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쓰던 만년필 두 개. 하나는 내가 샀고, 하나는 학생들에게 선물받은 라미. 크로스는 필기감 개판인데, 그래도 기념으로. 요것보다 한 단계 위를 사고 싶기는 한데. 몇십만 원 그냥 써도 괜찮을 정도의 책을 쓰면 사기로 했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흘렀다. 돌아보면 참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다. 몽블랑이나 샤퍼에 비하면 정말 싸구려 만년필 하나 사도 괜찮을 정도의 책을 아직도 못썼다. 오죽 고민이 심하면 뭐야, 이게, 싸구려 같으니, 그렇게 던져놓은 작법책을 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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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요즘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이제 일을 좀 줄이라고 말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 전에도 일을 많이 했지만, 지난 2년 진짜 너무 많이 했다. 이제는 건강상, 무리다. 애 두 보면서 이리저리 짤린 시간에 뭘 하려니까 너무 무리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들은 긴장도가 아주 높다. 어디 딱히 물어볼 데도 없는 경우도 많고. 내가 사실상 자문들의 자문이다 보니까, 내가 모르면 그냥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줄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보니까 여성가족부 회의를 두 군데나 나가는데.. 무슨무슨 회의나 포럼에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그야말로 나래비를 서 있기는 한데, 그렇게 나가기 시작하면 진짜로 죽는다.

 

다큐 얘기가 몇 개 오고 가고는 했는데, 이것도 무리데쓰.

 

책을 비롯한 일 몇 개로 하는 일들을 확 줄여놓기는 했는데, 일하는 시간이나 강도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내 주변을 아무리 돌아봐도 내 나이에 자기가 책도 읽고, 엑셀작업 등 분석도 직접 하고, 인터뷰도 직접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람들 연락해서 일정 잡고, 타임 스케쥴 짜는 것도 별 방법이 없어서 직접 다 한다. .. 내가 제일 한가해 보이기도 하고, 결국은 정보가 나한테 다 모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

 

그냥 올해는 씨 뿌리는 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모른다고 하고 자빠질려고 한다.

 

오랫동안 안 보던 사람들하고 오후에 차 한 잔 마시는 일을 몇 달 정도 했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없애야 할 것 같다. 애 키우면서 하려니까 차 마시는 것도 이제는 부담된다.

 

집필할 때 문 걸어 잠그던 사람들이 이제는 좀 이해가 될 것 같다. 몸이 너무 힘든겨..

 

저녁 먹고 나서 일을 좀 했는데, 그것도 없애기로 했다. 그냥 쉬기로.

 

일단 앞으로 2~3년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참하게 지내기로 했다. 몸도 좀 추스리면서. 진짜, 몇 년간 너무 무리 했다. 그 뒤는? 모른다. 일단은 놀면서, 쉬면서, 되면 되는대로, 말면 마는대로.

 

 

 

(애들 보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몇 년째 계엄령 내린 것 같은 비상 사대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나도 긴장도를 좀 낮추고, 쉬엄쉬엄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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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에 쓰는데, 하여간 욕은 옴팡지게 먹었다. 욕이야, 뭘해도 먹는 게 욕이다. 뭘 하면 한다고 욕 먹고, 가만히 있으면 수수방관한다고 욕 먹고.

어쨌든 애들 둘 보면서 책을 별로 못 봤는데, 서평 쓰니까 책은 야무지게 읽게 된다. 막상 글을 쓰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일단 읽어야 쓰니까 절대 시간을 쓰게 된다. 그리고 뭘 읽을지를 알아야 읽는데, 이게 참.. 읽어야 뭘 읽을지를 알게 된다는 또 다른 딜레마가.

책 고르는데 원칙이 있나? 없다. 마음 가는데로. 박노자 책을 고를 때가 제일 힘들었다. 박노자 책 서평을 쓰고 나니, 마치 인생의 숙제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박노자가 몇 번 나를 비난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거는 박노자 생각이고, 나의 박노자에 대한 생각은 또 다르다. 박노자 때에는 편집국이 잔뜩 긴장했다. 쓴다고 몇 주 전에 알려줬고, 원고도 일주일 전에 줬다. 혹시 이거는 안 된다고 하는 경우, 대타로 쓸 책도 준비해두었다. 다행히 그대로 나갔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고르는 절반 정도의 책은 일반적인 조선일보 독자들이 아주 불편해하거나 싫어할 내용들이다. 그리고 많은 진보 쪽 독자들도 싫어할 내용이다.

그런 책을 준비할 때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긴장도 된다. 그리고 그냥 평이한 걸로 갈까 하는 꾀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마나한 얘기로 떼우면서 세상을 살지는 않았다. 크든 작은, 지면이 주어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얘기를 최선의 노력을 다 해서 만들어낸다. 그렇게 살아왔다.

몇 년 전, 하도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국방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자격이 되고, 추천해줄 장군들도 있었다. 전쟁사와 특히 해전 중심으로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다닐까,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 갈까 싶었는데.. 된장, 거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논산으로 이사간댄다.

인연이 아닌가벼..

그래도 서평을 쓸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은, 국방대학원이 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어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변화 때문에..

만약 지금 대학원 다니고 있으면, 애 보다 잠깐씩 나가서 수업 받고 오는 것 외에 뭘 더 할 수 있겠나?

인생이란 그렇게 알기 어려운 복잡한 우연들이 겹치면서 만들어지는 작은 소품 같은 것이다.

아내는 나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이 살았겠나? 이런 말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아내는 두 아이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다. 그리고 지금의 삶에 대해서 가끔은 감사하는 것 같다.

아내는 딱 15년만 더 일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마 그 정도는 어찌어찌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더 킹>에 감찰부 여검사가 나온다. 딱 아내 캐릭터다. 어마무시, 살벌 맥시멈,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그리고 남자들 특히 '개저씨' 스타일이 그냥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한다. 본능적으로, 개저씨들도 누가 무서운지는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불이익을 많이 당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지난 일이다.

내가 국방대학원에 가지 않았고, 아내가 그래도 좀 편안하게 지내기 때문에 책을 좀 읽고, 서평이라도 쓸만한 여유가 생겼다. 소소하지만 매우 작은 우연들이 모여서,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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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뷰 2시간 넘게 했더니, 피곤이 영 가시지 않는다. 끝나고 조금 쉬어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애들 데리러 가서 다시 시달리고. 이제 인터뷰가 두개 남았나 했더니, 하나 더 남았다.

유명해지기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는 여성동아 등 여성지, 패션지, 그리고 10대들 보는 쥬니어 패션지, 이런데 인터뷰를 많이 했다. 내 기사도 그런 데 주로 나왔고. 거기다 샘터나 그 비슷하게 생긴 잡지들에 주로.

생활 경제에 관한 작은 얘기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잡지들에서. 화장품 관련된 책을 준비하다가 '88만원 세대' 준비에 치어서 결국 화장품 얘기는 쓰지 못했다. 조향사와 관련된 얘기도 (조향사와 관련된 얘기는 결국 이번에 농업 경제학에서 일부 다루기로. 알고나면 진짜 음식에 대한 심미적 기준이 바뀔 수도.)

그 당시 잡지는 주로 가판대에서 팔았다. 주위에서 '가판대 그랜드 슬램' 했다고 놀렸다. 레몬트리인가, 중앙일보에서 나오던 쥬니어 패션지 느낌의 잡지, 그런 데가 주로 내가 놀던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잡지에서 환경이나 농업, 식품, 이런 데 관심 있는 젊은 기자들이 엄청나게 밀어주고 도와준 거였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렇다. 하다못해 신동아 같은 데에서 내 얘기를 다뤄주고, 막 그랬다.

그 후로 정말 오랫만에, 직장 민주주의 주제 가지고 그랜드 슬램 한 번 할 것 같다. 한참 때에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동시에 인터뷰한 적은 없었다.

그냥 나는 이렇게 밑바닥에서, "이게 중요하다", 이렇게 움직이는 게 체질에 더 잘 맞는다. 사회과학은 이렇게 바닥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오늘 행주산성 자료 정리하는 걸 시작으로, 이제 나는 다음 작업으로 이동한다. 약간의 인터뷰 남은 것과, 강연 정도만 남기고 다시 이동한다.

행군 간에.. 군가는 없다. 그냥 조용하게, 다음 목표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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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만년필로 줄 그으면서 보고, 중요한 개념들은 책 맨 앞 페이지에 노트한다. 전에는 따로 독서 노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는 못 하고 바로 책에다. 근데 뭔가 잘 안 되는 시절에는.. 책이 있으면 만년필이 안 보이고, 만년필이 있으면 정작 책이 안 보이고. 이래저래 책 안 볼 핑계만 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상태가 며칠이 가기도 한다. 정작 시간이 잠깐 났을 때.. 애 키우는 순간의 아픔이다.

요즘 그렇다. 만년필이 대체 어디 간 거지? 30분째 이 지랄하고 있다.. 책 보기 싫은겨, 아마도. 그걸 만년필이 안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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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버리려다 보니, 하퍼스 바자 인터뷰가 튀어나왔다. 패션지 등 인터뷰 엄청 했는데, 몇 번 이사하면서 버렸거나, 없어진.

 

연대 강사 시절이다. 햐, 과거는 늘 미화되고, 아름답게 각색된다고는 하지만.. 저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치열한 진실을 너무 현장에서 보면 괴롭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무기력함도.

 

저 시절에 인터넷 활용 강의 전체 1위를 했었나? 하여간 뭐 그런 소소한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너무 날 것의 진실을 눈앞에서 직면하는 그런 괴로움들이 너무 컸다.

 

하여간 나만 보면 사람들이..

 

팔리지도 않는 책, 뭐하러 쓰냐, 어디 월급 주는 데 그냥 처박혀라.

 

엄청들 그랬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했지만, 그냥 꾹 삼키고, "네, 고맙습니다", 했더랬다.

 

안 팔리는 걸 누가 모르냐? 뭔가 솔직하게 얘기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것이지.

 

예나 지금이나, 친한 사람이나 안 친한 사람이나, 팔리지도 않는 책 뭐하러 쓰냐고 아주 지랄들을 한다.

 

여기에 2년 전부터는 버전이 하나 더 붙었다. 애 둘 아버지씩이나 되서 뭣하는 짓이냐? 넌 왜 그렇게 책임감 없이 너만 좋은 인생을 사느냐? 애들은 뭔 잘못이냐?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러고 만다.

 

(20대 같았으면, 너 화장실로 나와.. 한 번만 더 이런 개소리하면, 아구창을 미싱으로 확 박아뿔라.)

 

하퍼스 바자 인터뷰를 보면서, 꾸역꾸역 그런 조롱을 10년 넘게 참아온 지난 시절이 문득.

 

앞으로 10년 넘게 이 지랄을 나도 하고 있을까? 그건 모른다. 그 때까지도 할 얘기가 남아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그 때까지 건강이나 지능이 감당이 될지도 잘 모르겠고. 내년 일도 잘 모르는데, 10년 뒤 일을 누가 알겠나?

 

친한 박사 친구가, 책은 뭘하러 그렇게 꾸역꾸역 쓰고 자빠졌냐, 건강도 안 좋다면서, 속을 확 긁어놓는다 (속으로는, 너는 왜 하라는 결혼은 안 하고, 연애는 좀 하냐?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나는 인격이 되니까, 푸하하.)

 

그래도 나이 처먹는 게 좋은 점은 하나 있다. 신경줄도 굵어지고, 훨씬 더 잘 참게 된다. 모욕, 수모 혹은 조롱, 이젠 별로 그렇게 참는 게 어렵지는 않다. 애도 보는데, 그 정도야, 뭐.

 

그래도 꾸역꾸역 참으면서 한 자 한 자 써보는 건,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라고나 할까. 그 진창길을 걸어서 아직도 목이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그것만 해도 나는 생큐 베리버치, 메리시 보꾸!

 

그래도 둘째가 조금만 있으면 혼자 화장실에서 밑 닦을 있는 경지에 도달할 거다. 그나마 살만하니까, 요즘 이것저것 신경도 좀 쓰고. 그 전에는 누가 조롱을 하거나 말거나, 놀리거나 말거나, 갑자기 전화 걸어서 "너 아직도 책 같은 거 쓰고 자빠졌냐", 이러거나 말거나. 그냥 잠이나 좀 더 잤으면, 이런 생각 밖에는 못했다. 그래도 다 좋아진 결과 아니겠나 싶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조롱을 참으면서, 신경줄만 굵어진 게 아니라, 더 많은 낙관도 생겨났다. 그래도 잘 될 거야.. 입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도 그런 생각이 든다. 강해진겨! 그래도 30대 보다는 내가 많이 강해진겨!

 

어느덧 한국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모진 조롱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는 것 - 싸우는 것은 택도 없이 중과부적이고 - 이 되었다. 그래도 참는 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경제학을 science economique라고 부른다. '경제 과학'.. 나는 과학자로 훈련받았고, 과학자로 분석했고, 과학자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개 똥 취급하는 조롱도 잘 견딘다. 나는 시방 과학을 하는겨..

 

그렇다고 상대방의 조롱을 같이 조롱으로 던지는 건, 개 똥 같은 삶이다. 그렇게 살 수는 없고.

 

그래서 내 삶의 마지막 - 아니 거의 마지막 - 단계의 점프는, 조롱이 아닌, 조소가 아닌, 진정한 유머로서 이 조롱들을 극복하는 것.

 

조롱과 멸시를 유머로 이기는 법, 아직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걸 이제 좀 해보려고 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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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중학교 때 명동에 있던 유네스코 빌딩의 작은 극장에서 처음 보았다.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어송과 함께 갔는데, 밤 늦게 끝나서 거의 마지막 버스를 타고 콩닥콩닥, 그런 마음으로 집에 온 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아마 지금까지 백 번도 넘게 본 것 같다.

 

여기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 “신은 한 쪽 창문을 닫을 때, 다른 쪽 창문을 열어 주신다.” 어린 내 마음에도 이 말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 때는 이 작은 대사 하나가 나의 삶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말이 될 줄은 몰랐다.

 

교회에 대한 경험들이 좀 진하게 있다. 그 안에는 증오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싫었다. 하긴, 그 시절 사랑의 교회에는 사랑이라고는 정말 돈에 대한 사랑과 지위에 대한 사랑 밖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게.. 장로가 되려고 하는 명박이 주차 안내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단 한 명을 저주하고, 남들에게 욕 퍼붓는 게 정신의 핵심인 종교가 어디 있겠는가. 다 불운했던 한국의 근현대사가 만들어 놓은 이상한 현상일 뿐이다.

 

2.

둘째가 아파서 하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던 순간 아니 그 기간을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익숙해서도 그렇고, 아까워서도 그렇고, 선뜻 뭔가 결심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나는 결심을 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현실은 그렇게 되었고, 그걸 피할 수 없던 상황을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나중에 미화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팠고, 아내는 육아 우울증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은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내용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은 그 기간들을 지내면서 사후적으로 선택한, 아니 다른 선택지는 없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때 화려함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같이 내려놓았다. 언젠가 있을 또 다른 성과를 위해 현재를 희생? 그런 건 비겁한 변명이다. 그냥 이렇게 살다, 때 되면 눈 감는. 그런 내 삶을 받아들였다. 내 나이 50, 남들은 한참 활동한다고 할 나이이고, 인생 2모작이니, 내 인생은 60부터, 그런 소리들을 찍찍 한다.

 

다 개체적 욕망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나타난 기현상이다. 자연적이지 않고, 사회적이지도 않다. 그냥 자본주의적일 뿐이다. 병든 한국 자본주의에, 뭐라도 한 번 더, 그런 개인의 욕망이 만나서, 같이 병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휴식 없이 죽을 때까지 개지랄을 한 번 더’, 그냥 그걸 언론의 언어로 바꾼 것일 뿐이다.

 

죽을 때까지 뭐라도 돈을 부여잡지 못해서 발버둥치게 만드는 것, 최소한 이게 노르딕 스타일도 아니고 복지 국가의 미래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돈이든 명성이든 아니면 권력이든, 놓지 못해서 끝까지 부여잡고 아둥바둥하는 스타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바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면, 나는 죽을 때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도대체 뭐하고 산겨? 만족할 인생을 살지는 못해도 괜찮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게 내가 생각한 찌그러지는 맛이다.

 

마지막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난 찌그러져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조롱을 견뎌냈다. 무기력도 견뎌냈다. 냉정한 현실을 참았다. 그래도 내가 잘나서 이렇게 한 거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작년부터는 은행 잔고가 그렇게 바닥을 치는 순간은 벗어났다. 호사롭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세 끼 밥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몇 년만에 내 통장에 돈이 좀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깊게 고인 물은 아니지만, 흘러 들어오는 대로 바로 흘러 나가는 옹달샘은 아니다.

 

3.

지난 10, 한국은 연성, 그야말로 극도의 연성적인 매체들만 살아남는 사회가 되었다. 경성이라고 불렀던 그런 분야는 진짜로 돈은 먹고 죽으려도 없다는 상황이 되었다. 인식론에 hard sciencesoft science를 구반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hard, 그야말로 하드코어 영화의 한 구석에나 나오는.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경성의 스타일인 것만은 아니다. 아주 부드럽고 상업적인 매체도 다룬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글들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딱딱하고 경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분야일 것이다. , 그 중에서도 사회과학은 가장 딱딱하다.

 

그냥 생태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시대와 구조의 변화에 맞추지 못해 죽어가는 멸종 위기종에 가깝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사회과학을 비롯한 경성 과학이 죽으면, 그 사회도 같이 죽는다. 아주 오래된 얘기지만, 맛있는 것만 먹는다고 건강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체리와 캔디 그리고 초콜릿만 주면 좋은 부모일까? 당연히 그런 건 아니다.

 

자본주의는 체리와 캔디만 주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와 같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만 한다면, 대학이라는 게 왜 존재하고, 학문이 왜 존재하겠는가?

 

나는 이런 질문 앞에 서 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나는 한 번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탈탈 털어버린 이후의 삶이기 때문이다. 보람도 없느냐, 그런 건 아니다. 이런 딱딱한 분야가, 그래도 보람은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람과 행복 그리고 소소한 잔재미들은 있다.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는가? 다행히도 나는 이제 그런 걸로 만족할 수 있는가?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어? 이 질문은 어렵다. 나는 충분할 정도로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내 뒤에 올 사람도 그럴 수 있느냐, 그게 보장이 없다. 그래서 판 걷어내고, 다른 양지 바르고 부드러운 데로 이사,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나는 오랫동안 작은 이정표 역할은 하게 될 것 같다. “여기로 가면 딱딱한 길이 나옵니다.” 그렇게 알려주고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냥 내 건강과 여력이 허용하는 그 시간 정도일 것이다.

 

이정표가 이정표 역할을 하는 건 내 일은 아니다. 그건 내 능력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도 이정표 역할이나마 하게 된 건, 어쩌면 50이 된 신이 나에게 열어 주신 또 다른 작은 문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삶은 편안하다. 건강이 메롱이지만, 그래서 더 살살 산다. 무리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래도 이 만큼이라도 버틴 게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었다는 정도는 안다.

 

<음식국부론> 내고, “그런 걸 알면 삶이 더 찝찝해져서 그냥 모르고 살래요”,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런 걸 탓해본 적도 없다. 그냥 나는 알면 찝찝한얘기를 하는 사람인 내 모습이 좋다. 다만 좀 더 그걸 웃을 수 있게, 유머러스하게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알면 인생이 더 피곤해져”, 그런 벽 앞에서 나는 춤추고 노래한다.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 더 작은 마이크를 들었고, 더 작은 규모의 사람들과 대화한다. 괜찮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으련다.. 누군가는 아주 딱딱한 코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그리고 아직은 그런 걸 몇 번은 더 할 수 있다는 게, 썩 고맙기만 하다.

 

(쥴리 앤드루스가 가장 멋있었던 것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아니라 <프린세스 다이어리>였었다. 진짜,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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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둘째, 올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아이가 폐렴 없이 봄을 넘겼다..) 

 

2018년의 마지막 날이다. 하여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해였다. 뭐든, 잘 안되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올해 3, 처음으로 둘째가 폐렴 없이 봄을 맞았다. 그거면 되는 거다. 그래서 올해는 봄이 시작되자마자, 무조건 성공한 한 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좋은 일이 또 하나 있기는 하다. 이래저래 아내 연봉이 좀 올라서 내년부터는 아내 연봉으로 우리집 생활비가 된다. 오 예. 퇴직하기 전에는 우리집 생활비보다 한참 높았지만, 지금 그거 따질 형편은 아니고.

 

애들 보면서 뭔가 한다는 게, 진짜 깽깽 발 짚고 올림픽 나가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별로 하는 게 없으면 건강이라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이제는 뭘 해도 무리다.

 

그래도 내가 잘 하는 게 하나는 있다. 남의 일 돕는 건, 이건 정말 잘 한다. 내 일이 제대로 안 되니까, 남의 일이라도 열심히 도와주고. 내 책은 못 팔아도, 남의 책은 좀 팔아줬다. 심지어 남의 영화도 좀 팔아줬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기는 재주라도 있으니까 아직도 내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왜 이 모양 이 꼴로 연말을 맞게 되었는지,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하나하나 이유가 있기는 하다. 이건 이래서 힘들고, 저건 저래서 어렵고. 그렇지만 구차하다. 그냥, 망한 해에 불과하다.

 

완전히 헤매고 망한 해가 맞기는 하지만, 숨 고르기 하고 넘어가는 한 해라고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편하다.

 

흐르는 물살 속에 거꾸로, 이런 멋진 건 아니고 그냥 헤매는 느낌의 한 해를 보냈다. 책은 어렵고, 사회과학은 더 어렵다. 그렇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아무 보람도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 아파서 집에 들어앉으면서 언제까지 책을 쓸까, 좀 고민을 했다. 아내는 적당한 데 취직자리 생기면 그냥 나가보라고 말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냥 나가버리면 집은 난가가 된다. 방법 없다.

 

올해는 헤매기는 했지만, 책에는 별 문제 없는 것 같다. 50대 에세이는 삶을 정말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이제 나는 앞에서 뛰는 스프린터 느낌으로는 할 수가 없다. 더 뒤에서 후방 지원군 같은 역할을. 그것도 막상 하려면 쉽지 않다.

 

올해는 정말 법인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자금 흐름이나 여유 시간 등 도무지 여력이 잡히지 않아서 내년말로 미루었다. 그냥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앞으로 올 날을 생각하는..” (요 말은 고정식 특허청장이 내가 사직서 내고 쉬는 동안에 해준 얘기다.)

 

1년은 더 쉬면서 삶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왜 책을 계속 써야 하는지, 이유도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내 삶도 아주 사회적 삶이 되었다. 내가 지금의 삶이라도 누리고 사는 게, 너무 많은 사람들의 정성 덕분이라는.. 사회과학이 좋을 때면 할 만큼 했다, 이래도 되겠지만 지금은 난국이다. 나 하나 힘을 보탠다고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안 쓴다고 하면 그것도 좀 그렇다. 그래도 한국 최초의 사회과학 전업작가라고 불렸다. 그런 나도 상황이 힘들다고, 손 털고 나갔다고 하는 건 좀.

 

내가 책에서 바라는 것은 엄청난 것은 아니다. 딱 우리 집 생활비 만큼의 인세. 꾸역꾸역, 평균 내보면 그 정도는 하는 것 같다. 몇 년은 더 버틸 여력은 된다.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 삶이나, 흐름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나는 괜찮은 흐름을 탔었다. 그리고 박근혜와 함께 망했다. 정확히 말하면 순실이가 남양주 종합촬영소 팔아먹을 때, 나는 그걸 못 막았다. 그 때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아이는 아프고, 내 일은 안 되고, 동료들은 헤매고, 처박고..

 

무슨 대단한 만루홈런이나 연타석 홈런, 그런 걸 기대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병살타 치지 말고, 희생번트 정확하게 대고, 가끔 유의미한 장타. 그 정도면 내 능력으로는 충분하다. 그리고 어디 부상 나서 게임 거르지 않고, 시즌 소화하는. 지난 몇 년간을 이렇게 살았다.

 

그 대신 정말로 나를 돌아보고, 기본에 해당하는 것들을 다시 해본다.

 

최근에 책 서문 소리내서 읽는 걸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달리 할 것도 없고.

 

다큐 감독하고 통화하고 나서, 제일 처음 생각한 게 서문 읽기였다. 근데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좋다. 마치 도 닦는 것 같다. 잡념도 없어지고, 삶의 단절 같은 게 생긴다. 그리고 무슨 책을 할지, 내 맘이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그런 것도 별로 상관 없다. 그렇지만 내가 걸어가는 길을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가지게 될 것 같은 효과가 생기기는 할 것 같다. 그래도 고스톱 쳐서 책이라도 쓰게 된 것은 아니다. 별로 피나는 노력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멍하니 않아서 뭐라도 되겠지,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

 

한 해가 간다. 몇 년째 변함 없이, 올해도 망했고, 올해도 망했고, 에 또 올해도 또 망했네.. 이러고 있다. 이제는 망하는 게 내 삶의 일부분인 것처럼 익숙하다. 괜찮다. 올해도 망년회는 어김 없이 했다.

 

내 책들은 시대보다 너무 빠르다는 평을 받는다. 미세먼지 문제로 데뷔한 게 2005년이니까, 벌써 13년 전에 그게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했던.. 시대보다 늦으면 판 접어야 하지만, 아직은 시대 보다 빠르다. 그러면 된 거다.

 

그리고 나는 이 모양이지만, 동료들이 열심히 일 한다. 가끔은 나도 좀 묻어가고.

 

내년에는 농업 얘기와 젠더 얘기로 들어간다. 젠더 얘기가 중간에 끼어들어오는 바람에 도서관 얘기가 후년으로 밀렸다. 사실 직장 민주주의 책이 좀 팔렸으면 내년에 바로 도서관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게 영 시원챦다. 그래서 도서관 책은 내가 좀 더 인기권으로 올라온 다음에 하려고 다음 해로 미루었다 (방법이 없다. 도서관 얘기는 그냥 진루타로 쓸 수가 없는 주제라서. 그 다음에는 나도 카드 없다.)

 

내년에는 책 세 권, 여력이 되면 초고 한 권 더.

 

지난 몇 년간 했던 작업들 중 묵직한 것들이 실제로 세상에 나오는 것은 후년이다. 올해도 망하는 한 해를 참고 버텼고, 내년도 망할 것이 뻔한 한 해를 참고 견디려고 한다.

 

미리 생각한 대로 많은 것이 진행되면, 일본에서 출간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예전 <촌놈들의 제국주의> 시절에 일본에서 부탁받은 게 있었는데, 그걸 미루고 미루고 있는 중이다. 50대 중반에는 그 일을 처리하려고. 내 삶의 많은 시간표가 그 일정에 맞추어져 있다. 물론 되면 좋지만, 이런 데 목숨 걸고 살지는 않는다. 애들 키우면서 생각하기에는,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다.

 

2018, 올해를 거치면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뭔가 거대하고, 이루기 어려운 걸 이루는 허들식 인생, 사실 별로 재미없다. 하면 뭐할 건데? 또 다음 허들을 향해? 그래서 그걸 다 넘으면? 도라도 깨치는 거냐? 아니, 저기 더 높은 허들을 향해.. ? ? 병신 아냐? 하느님이 너 죽어라고 허들이나 뛰다가 인생 낭비하라고 이 세상에 보낸 건지 아냐?

 

목표라는 것도 부질없고, 성공이라는 것도 부질 없다. 그냥 되는 대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되면? 되면 되는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안 되도 그냥 멍하고 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걸로 됐다.

 

뭔가 이루고 아니고, 그건 아무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을 좀 살피고 보살피고, 그렇게 사는 게 진짜 인생이다. 허들만 뛰다가는, 자기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병신 아냐. 신이 환상해서 내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 그를 돌보는 것은 우주를 돌보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정신 없이 뛰다보면, 옆에 신이 환생에서 와 있든, 뭐가 주변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죽어라고 뛰기만 한다. 그게 병신이다.

 

2018, 난 병신처럼 살지는 않았다. 되는 일이 별 없어도. 그건 괜찮다. 주어진 시간이 아직도 많다. 우리는 우정과 환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아닌가? 냉담하게 남 갈구고, 욕이나 서로 퍼부으라고 우주의 에너지가 모인 이 시간 속에 그냥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듀, 2018. 그리고 보나마나 엉망진창이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것 같은 2019년을 맞는다. 그래도 나는 그 속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올해도 되는 일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올해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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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글을 쓰는 일이 편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가장 싫은 일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일. 물론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겠지만, 대부분의 글이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고 만다.

중앙선데이에 꽤 큰 지면으로 연재를 하게 되었다. 자꾸 쓰던 대로 쓰려고 하는 관성 같은 게 나에게도 생겼다. 한겨레 36.5에 명랑국토부 연재하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빵빵 터졌었다. 경향에 시민운동 몇어찌 연재하던 시절에도 종종 터졌었다.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를까? 글쎄..

스타일, 문체, 정보, 이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도 익숙해지는 습 같은 게 생겨서 하던대로, 약간 그런 게 생긴 것 같다. 전혀 다른 눈으로 보고, 앵글을 바꾸어서 보고.. 이런 건 사실 그냥 하는 얘기다. 무슨 얘기를 할 것이냐, 그게 내가 쓰는 글의 생명이다. 스타일은 진짜 부수적인 것이고..

그 때는 나도 30대라서, 그냥 내 생각만 얘기해도 다른 사람과 생각이 많이 달랐다. 그걸 지금은 못할까? 글쎄..

못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안 하는 거라는 생각을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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