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글을 쓰는 몇 단계가 있다. 문제와 만나고, 생각해보고, 자료를 구하고, 분석을 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글을 쓸지 말지를 판단하고.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은, 쓰고 싶지 않은 글이다. 일단 쓰면 한동안 편안한 삶은 깨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글이 이 마지막 단계에서 아웃된다.

서울시장 시절의 이명박과 뉴타운을 가지고 대차게 붙었었다. 결국 명예훼손으로 약식 기소하고, 벌금형으로 끝났다. 대법원까지 가자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내 주변의 의리 별로 없는 인간들 믿고 대법원까지 가기는 너무 부담스럽기도 하고. 건강도 심각해서, 아무 일도 하면 안 되는 상황이기도 했고.

하여간 명박과 벌금형 정도로 끝나기는 했는데, 그가 대통령이 되고, 우와.

내 책은 출판사가 모여 있지 않고, 여기저기 분산되어있다. 큰 데도 있고, 작은 데도 있고. 원래도 좀 나뉘어 있었는데, 그 시절에 어쩔 수 없이 분산시켰다.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박근혜 때는 상대적으로 좀 나았다. 믿거나 말거나인데, 당대표 시절, 박근혜가 내가 쓰는 글은 좀 읽는다는 얘기를 그 쪽 사람에게 건네들은 적이 있었다. 통상 기능을 외교부에서 떼어서 산업부로 옮겨야 한다는 게 그 시절 내 주장이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했던 첫 번째의 개혁 조치가 그것이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힘들기는 했지만, 명박 시절보다는 나았다.

지금도 쓰기로 했던 대부분의 글이, 쓸지 말지를 검토하는 단계에서 버려진다. 애 보는 아빠 입장에서는 너무 큰 논쟁을 벌였다가는 따라갈 여력이 안 된다.

하여간 이 단계까지 넘어가서 결국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감정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 이건 여전히 어렵다.

감정 라인 설계가 어려워서 몇 달째 못 쓰는 글이, 국공립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의 스쿨버스 문제. 이건 감정을 일목요연하게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매번 쓴다고 하면서 몇 달째 계속 뒤로 뒤로, 미루기만 하는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톤다운을 결정한다.

30대 때에는 최종 단계에서 톤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주로 톤다운을 한다.

사고나는 것보다는 무난한 걸 선호하게 된. 나이 먹어서 그렇다. 싸우는 것도 귀찮고, 시비 붙는 것도 귀찮다.

노무현 때에는 글을 쓰면, 청와대의 누군가 후배라고 하면서 연락을 하던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설명을 좀 드리고 싶다고 그런 식으로 연락이 왔었다. 지금 정부는? 다짜고짜, 기관장급들이 전화해서 "야, 밥 사줄께, 나와라." 뭐, 친한 사람이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누구한테 밥 얻어먹는 게 고마울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배 나온 다음에 정식적 충격을 받아서, 죽어라고 수영장 다니는 처지에, 밥 사준다면 고마워할리가.

하여간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아직도 잘 몰라서 비비적 거리는 글 하나, 보나마나 또 몇 아저씨한테 밥 먹자고 연락올 게 뻔한 글 하나.. 두 개를 놓고 이리저리 저울질 하는 중이다.

그냥 정부가 하는 일에,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냐, 이런 글들 쓰면 인생 편하고 좀 좋아?

며칠 전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발표한 거 봤는데, 사실 가관이다. 그 중에 너무 이상한 게 있어서 이번에는 써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쓰기가 싫다.

예전 청와대 정책실장, 뭐라고 하는 글 한 번 썼더니 이 양반 팍 삐져서 ㅠㅠ. 미안하기는 한데, 내가 하는 일이 그런 건데 뭐.

글에 감정을 너무 잘 만들면,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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