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카펜터스의 베스트 앨범과 사운드 오브 뮤직 ost만 계속 돌리다가, 오늘은 큰 맘 먹고 앨범을 좀 바꿔보았다. 되는 대로 잡아보니, 데카에서 나온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한 베토벤 심포니 9번이 걸렸다.

 

9번이 워낙 시간이 길어서 더블 앨범 형식으로 되어있다. 교향곡 한 번을 듣기 위해서 3번을 뒤집는 일을 해야 하지만, 앉아서 9번을 다시 한 번 듣는데 그 정도의 수고야.

 

베토벤 9번은 더는 얘기할 필요가 없는, 전국민이 다 아는 음악일 것이다. 어쩐지 말러를 들어주지 않으면 좀 궁상맞다는 얘기가 10년 전에 유행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한 때의 말러 열풍도 지나간 것 같고, 모짜르트 열풍도 지나간 것 같다. 나는 한동안 바그너를 열심히 듣기는 했는데,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바그너를 모티브로 썼다가, 책 판매가 영 신통치 않은 것을 보고, 괜히 바그너 듣고 있으면 짜증이 생겨나는 증상이 생겼다. 원래도 바그너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히틀러의 등장을 즈음한 독일의 분위기들을 연상하기 위해서 일부러 들었던 것인데.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아마 이 책이 좀 팔렸으면, 다 바그너 덕이다라고 그랬을지도 모른, 그런 천상 속물인 셈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이 베토벤 9번에서 가장 즐겁게 듣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이 합창 교향곡이 바로 그 시원한 합창이 터져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말러의 소프라노가 돋보이는 교향곡들도 좋지만, 촌놈이라서 그런지, 나도 역시 합창이라고 하면 역시 9번의 시원스러운 합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내가 9번에서 가장 좋아하고, 또 궁상맞게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오려고 하는 장면은, 바로 1악장이 시작하는 부문의 튜닝에 가까운 가벼운 음맞춤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이 아주 긴 심포니의 시작을 위해서 잠깐의 몸풀이 그리고 바로 튀어나오는 튀어져나갈 듯한 총주.

 

 

이 대목은 영화 <이퀄리브리움>에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약품에 의해서 감정을 인위적으로 억제당하고 무감정한 상태에서 파시즘을 유지하는 '감시자'가 역할을 하던 주인공이 LP로 베토벤을 들으면서 눈물을 되찾게 된다. 그 때 흘러나온 대목이 바로 베토벤 심포니 9번의 첫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나서 턴테이블을 다시 샀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나의 LP들을 다시 수거해와서 LP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그릴 일은 없겠지만...

 

우리에게 LP를 뺐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뺐고, 결국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을 앗아가고, 그런 이후에 파시즘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음모와 관련되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베토벤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심포니 9번의 첫 장면은 절대로 내가 파시즘의 세계와 타협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들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심포니 9번의 전곡을 듣는 것은 일년에 몇 번 안된다.

 

음악은, 맥락이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심포니 9번은 영원히, <이퀄리브리움>의 파시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예술을 되찾기, 그 첫 순간의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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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체처럼 패션지에서 사용하는 문체는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나 때론 그런 문장이 더 편할 수가 있다.

 

책을 내고 싶거나, 책을 내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들에게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그야말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1.

책과 관련해서, 나에게도 고민이 많다.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은 아직도 잘 해결을 못했고, 출판사와 에디터와의 관계,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불만들을 해결할 것인지, 좀 생각해보는 편이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내가 가졌던 질문에 대한 모든 해답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즉...

 

저자들에게는 필독서이다. 저자와 작가, 즉 author와 writer 사이에는 약간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픽션과 논픽션이라고 재미없게 구분하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는 더 미묘한 것 같다.

 

작가에게도 에디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회과학이나 인문서적을 만들 저자들에게, 이 책은 사실상 필독서이다.

 

이건...

 

무조건 봐야 하는 책이다.

 

2.

김학원이 그리는 출판계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상적인 상태이다. 물론 나도 그리 세상이 움직일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생각하지만. 내가 만난 현실은 책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터프'했다.

 

출간과정이 우아한 일들의 연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멱살을 잡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냥 침묵하거나. 그런 터프한 의사결정 과정이 몇 번은 등장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냥 참고, 속으로 삭이는 편이다.

 

아마 상대방도 같은 상황일 것이고, 그럴 때 싸워봐야 결국 답이 안 나오는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 뻔하므로, 내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참는다. 그러나 참는다고 해서 그 감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보다는 에디터 쪽에서, 그리고 출판사 쪽에서 참는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런 팽팽한 신경전에 관한 책이지만, 어쨌든 문체는 우아하고, 그려진 상황은 이상적이다.

 

3.

어쨌든 저자들은 저자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에디터들 역시 에디터들의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다. 두 개의 네트워크가 충돌하면, 대책이 없다. 그런 싸움을 최대한 피하면서, 책들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에디터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어쩌면 저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있는 셈인데, 저자들이 에디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훨씬 적은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4.

한 때는 나도 출판사를 차리는 것이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유학 시절부터, 아주 오래되었던 로망이다.

 

이 로망을 접었다. 너무 어렵고, 너무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출판사의 로망을 접었다.

 

직접 출판사를 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한에서는 모든 에디터들과 친구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사를 내겠다고 하는 순간, 잠정적 경쟁자로 바뀌면서 친구같이 지냈던 에디터들을 잃게 되고, 잘 되어봐야 사장과 에디터의 관계로 돌변하게 된다. 별로 이문이 남는 행위는 아닌 것 같아보였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출판사의 꿈을 깨끗하게 접었다.

 

그리고 잡지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꾸었다. 이 꿈도 접었다.

 

잡지의 편집장이 되거나 아니면 출간인이 되면, 너무 많은 사람들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이래저래 다 접고 나니, 마흔이 되고 나니, 할 일이 사라져버렸고, 하고 싶은 일도 사라져버렸다.

 

뭔가 하기 위해서 억지로 꿈을 만드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할 일이 없으면, 그냥 쉬면 된다. 그리고 아주 적게 먹으면 된다.

 

그래도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꿈은, 갈리마르 같은 프랑스 출판사에서 종종 하는, 콜렉션의 디렉터가 되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지만, 유럽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콜렉션에는 학자들이 디렉터 역할을 맡는다. 언젠가 그런 걸 해보면 좋겠다는 꿈은 아직 버리고 있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로망은 오랫동안 책과 잡지라는 두 개의 매체와 관련되어 있었다.

 

영화는...

 

팬으로서 열심히 지지하고, 재밌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좋은 감독들이 있고, 그들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아주 지랄맞다록 극장에 자주 가거나 DVD를 열심히 사주는 것, 그런 일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5.

어떤 사람은 책이 재미있어서 본다고 하는, 정말 부럽고도 부러운 경지에 올라가신 것 같다.

 

나는 그런 경지는 아니다. 내가 보는 책들은, 정말 재미없고, 또 어지간하면 전화번호부를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두껍고, 정말로 내가 필요한 내용은 그 중에 딱 두 세 페이지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 두 세 페이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연필로 열심히 무엇인가를 풀어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리하고, 재미없고, 게다가 두서없이 이어지는 라이벌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 누군지도 모르는 그 라이벌을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부 찾아봐야 한다면, 우와. 자본론이 사람들에게 쉽게 잡히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렇다.

 

존 스튜아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 같은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책의 1/3 분량은 대부분 생시몽에 대한, 약간은 치사하면서도 끈질긴 공격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이 생시몽의 인용은 몇 페이지씩 끝없이 이어지는, 불어 원문으로 채워져 있다. 영어와 불어를 동시에 읽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쩌란 말이냐.

 

재미없고, 흥미도 없고, 게다가 내용도 어렵고, 틈틈히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가득 드는 책들이 내가 읽는 책들이다. 난 아직 이런 책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정말 읽기 싫고, 지겹지만, 참고 읽는 책들이다.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다행히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위트가 많고, 아, 그랬구나, 책과 출판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알고 있으면,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다.

 

이보다 100배는 재미없었다고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꾹 참고 읽었어야 할 것 같은데, 다행히도 책은 무척 재밌다.

 

6.

출판사와의 communication, 특히 에디터와의 communication은 언제나 숙제이다. 난 그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편이다. 불만이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 나는 불만이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가 참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상대편에서는 훨씬 많이 참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원래 파트너 사이에 이런 오해와 긴장이 많기 딱 좋은 관계이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로 돌아볼 기회가 되었고,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하는 책인 것 같다.

 

이런 기술적인 얘기들까지, 책으로 간편하게 볼 수 있으니, 진짜 한국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정말이다. '저자'들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예비 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최소한 2~3년간의 모색기의 오류는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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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스 포만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가 만든 영화를 모를 수는 없다. <아마데우스>가 좀 오래된 영화라서 못 봤더라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나이>라는 영화의 이름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체코 출신의 이 영화 감독은, 그 자체로 영화사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B급 영화를 주로 보니까, 그의 예술 영화들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고백하자면, <래리 플린트>를 이제야 보았다.

 

미국 수정헌법 제 1조 (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한 자유로운 신앙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영화 <래리 플린트>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중,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정말로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는 재미있다. 정말로 겁나게 재미있다. 그리고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온 국민 <래리 필린트> 보기라도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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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천문학은 성직자와 비슷하다. 아무도 부름이 없이는 될 수 없다. 나는 그런 부름을 받았고 나에게는 2급이냐 3급이냐가 아니라 천문학자가 아니냐가 중요하다.

 

"나는 1급의 법률가보다는 2급의 천문학자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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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아이작 라비  (4) 200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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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단지 남달리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영원의 신비에 대해서, 그리고 실재의 놀라운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면 누구나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신비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해결하려고 매일 노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전기작가 칼 셀릭에게...)

 

우리는 벽과 천장이 온통 여러 가지 언어의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에 들어가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이작 라비, 노벨상 수상자

 

나는 물리학자는 피터팬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절대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으며, 호기심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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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2급의 천문학자  (3)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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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책을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것은, steady state라는 단어의 용법들을 찾아보다가 빅뱅과의 논쟁사 자체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기왕 보는 김에 좀 더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서 천문학을 좀 들여다보는 중인데, 워낙 나도 문과쟁이라서 천문학에는 잰병이다.

 

박창범의 <인간과 우주>와 사이먼 싱의 <우주의 기원 빅뱅>을 고른 것은 별 다른 이유는 없고, 서점에서 내 수준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대충 집어들은 것이다.

 

어땋게 보면 프레드 호일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아, 자연과 우주에 대해서 더 많이 알면 좋겠구나, 그런 것은 아니고 빅뱅과 steady state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 호화찬란한 논쟁 자체를 더 재밌게 생각한다는... 그런 음흉하고도 음험한 이유로 책을 보니, 방정식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불량 독자다.

 

생각해보니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고등학교 때 읽은 이후로 입문 수준이나마 천문학 책을 집어들은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어설프게 물리학 공부 하면서 본 거, 양자역학 책에서 지겹도록 나온 우주기원에 대한 애기, 그리고 과학논쟁사나 인식론 같은 데서 나온 얘기들 어깃장으로 모아서 알고 있던 게 내가 알던 천문학의 전부였던 셈이다.

 

사실, 박창범 교수의 책은 나온지 10년 정도 된 거고, 그 이후에 논쟁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여전히 궁금해서 사이먼 싱의 책을 집어든 것이기는 한데. 어쨌든 여전히 '지금'과는 약간의 격차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 나서 다른 책을 찾느라고 책장을 뒤지다보니, 개마고원에서 나온 <그림으로 보는 우주과학사>와 기타 초보자들을 위한 유사한 책이 몇 권이 더 있었다. 사실 내 수준에서는 이 정도 수준이면 딱 아닌가?

 

(이렇게 뒤지다가 아내가 사놓은 수학사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는데, 엉겹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사실 내가 보고 싶던 내용은 수학사 책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강생심이다. 대중을 위한 책을 보면서, 최근 천문학의 논쟁들을 좀 알면 좋겠다는, 이런 택도 없는 희망을 갖다니!

 

하여간 몇 년 동안 하다보니 주로 읽은 과학 분야의 책들이 생물학 관련된 책들이었는데, 물리학적 사유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생물학이나 생태학 책만 읽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꽤 전부터 누군가 선박의 역사니, 철강의 역사니 그런 책들 필요하면 준다고 했는데, 안 그래도 책장이 좁아서 도저히 정리불가인 상태라서, 괜찮습니다... 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과학 다큐멘타리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물론 그나마 이제는 KBS나 EBS나 다큐멘타리는 대폭 줄인다고 하니, 과학 다큐멘타리 보고 싶으면 다시 BBC나 NHK를 뒤져서보는 수밖에 없는 그런 나라로 가고 있는 셈이지만.

 

영화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처럼, 과학 다큐멘타리도 펀딩 과정이 필요하고, 제작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작자가 특별히 그런 것으로 덧칠하고 싶은 생각이 없더라도, 자연히 '우주 과학 입국' 그런 필터를 끼워서야 겨우 제작하게 된다. 순수한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은 정말로

사이언티스트' 일각에서만 해당되는 일일 것이고, 과학자는 물론이고 다큐멘타리 제작자도 실제로 이데올로기 심지어는 정책 홍보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비유를 들어보면,

 

최근에 항일투쟁과 관련된 다큐멘타리를 제작한 제작자와 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꼭 그렇게 민족주의 코드를 강하게 넣으실 필요가 있었나요?

 

안 그러면 시청률이 전혀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해. 결국 좀 넣어주는 수밖에.

 

제작 과정에서 제작자가 알면서도 결국 흔한 상업성 코드를 집어넣게 된다. 보는 사람이 알아서 필터링해서 보면 좋겠다는 게 제작자가 설명한 취지였다.

 

천문학에 관한 국내 저술에서도 그런 여러가지 제약 조건들이 있을 것 같다.

 

박창범의 <인간과 우주>는 그런 면에서 비록 오지이기는 했고, 관심은 없었지만 한국의 천문학이 그나마 이데올로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시절의 마지막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요즘에 이런 책을 쓴다면, 당연히 우리별 시리즈에 대한 얘기가 길게 나올 것이고, 우주를 잘 안다는 것이 국민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허블 망원경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를 했고, 등등의 얘기가 부록처럼 죽 따라붙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과학은 과학일 뿐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글쎄...

 

이 명제를 천문학에 대입하면, 천문학은 천문학일 뿐이다...

 

이런 시기가 한국에도 최소한 90년대 중후반까지는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많은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배고플 것이지만, 지금도 천문학은 천문학인지, 우주과학은 우주산업이 아닌지,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여전히 국가가 자리잡고 있고, 또한 정치가 자리잡고 있는지.

 

어차피 뻔한 질문이지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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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서 낮잠 자고 이불 치울려고 하는데, 그 사이에 고양, 자기 자리라고 뒹굴면서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다 이불 좀 억지로 치울려고 하면 도끼눈을 뜨고, 확 삐져버린다.

 

(카메라가 없어서 핸펀 카메라로 찍어보는데, 와... 이거 뒹굴뒹굴하는 고양, 도저히 속도를 못 따라간다.)

 

고양, 여기 좀 봐, 치즈...

 

치즈는 안 해도 가끔 쳐다보기는 한다.

 

(마당에 있는 쓰지 않는 개집을 치울까 했는데, 그새 날씨가 추워졌는지 5개월 된 마당 고양이 새끼들이 개집 안의 이불 위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마음이 아파져서, 그것도 못 치우겠다.)

 

(일본 갈 때 고양이 데리고 가는 방법을 고민 중인데, 오사카 가는 배는 고양이를 못 태운댄다.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배도 같은 배라서 못 태운댄다. 우와, 고양 땜에 일본 열도를 헤매고 다니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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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CD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유학 시절, 도니가 너무 음서서, 중간에 모아두었던 CD와 비디오들 전부 팔고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다. (카를로스 산타나 라이브 비디오를, 그 때 팔았다... 어차피 PAL이라서 한국에서는 못 볼 것이었다만.)

 

LP는 중학교 때부터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냥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꽤 된다. 그래봐야 오리지날이라고 부르는 원판은 몇 장 안되고, 그나마도 결혼 하고나서 중고로 산 것들이다.

 

청계천에서 샀던 빽판도 좀 있는데, 라이브 인 재팬이라고 부르던 딥 퍼플, 에릭 클랩턴 실황공연, 월, 뭐 그런 것들이다. 지금 들어보면, 소리는 괜찮은데, 영 문제 많아서 바늘 상할까 봐 잘 못 올린다.

 

그래도 소주 한 잔 마시고 얼떨떨해지면, 꼭 그런 게 듣고 싶어지기는 한다. 고등학교 때, 짜장면 집에서 단무지 놓고 소주 참 많이도 마셨다. 고등학교 때 담배는 안 피웠는데, 술은 엄청 처먹었다. 2학년 후반부터 술 마시는데 재미붙여서, 고3 내내 틈만 나면 술 마시고, 마루에 있던 장롱에 진열되어 있던 아버지가 평생 모은 양주들, 틈틈히 꺼내마셨다. 그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2학년 중순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딱 3년만에 아버지의 평생 애장품이라고 하는 양주를, 결국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3년이나 간 건, 정말 티 안나게 살짝살짝 꺼내마셨던 것인데, 결국은 다 마셔버리고야 말았다.)

 

__________

 

용산에 얼마 전에 LP 가계가 엄청 많이 생겼다. 이게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3,000원, 4,000원 주고 중고 LP 사는 재미가, 아, 쏠쏠하다. 김건모 1집, 2집, 강수지, 이런 거 집어들면서, 이게 과연 3,000원의 가치 밖에 없을까?

 

내 LP 중에는 아마 200장 정도 될까, 안 뜯은 게 것들이 있다. 산울림 초기 앨범 거의 대부분, 안 뜯은 LP로 가지고 있다. 아까워서 못 뜯는다. 원래는 아이가 크면, 13살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모으기 시작한 미봉인 버전인데, 아직 아이도 못 낳았다. 내년에는 기필코...

 

그러나 아마 박물관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오리지날이라는 원판에 비해서 국내 가수들 판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헐값 대우를 받지만, 그런 건 구경도 하기 어려운 시기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오기는 할 것 같다.

 

_____________

 

자, 요번에 산 LP 몇 장 소개해보자.

 

 

 

김국환 앨범을 산 건 처음이다. <타타타>라는 노래 때문에 나도 산건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는지, 이건 조금 비싸서 4,000원이었다. 타타타, 가사는 정말 명곡이다.

 

그래도 김국환의 최고 히트작은, 은하철도 999이다. 기차가 어둠을...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만화에 대해서는 평이 분분하다. 프랑스에서 이 만화를 열심히 봤는데, 은하철도 999, 노래 부르면서 주제가 부르는 가수가 죽어난다. galaxie express neuf cents quatre-vingt dix-neuf, 프랑스의 80진법 때문에 999할려면 아주 바쁘다.)

 

김국환의 <타타타>는 지금 들어도 몽롱해지기는 하지만, 앨범 전체로는, 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트로트를 아주 안 듣지는 않는데, 아마 열 곡 정도? 변형된 트로트 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부터 나왔다. 지금도 농촌에 가면, 생전 듣지도 못하던 트로트들을 아주 신나게 들을 수 있고, 그거 느낌 안난다고 인상쓰고 있다가는 할아버지들하고 척지기 딱 좋다.

 

하지만 여전히 적응 잘 안되기는 한다.

 

김국환, 요즘은 밥은 먹고 사나? TV의 체험 프로그램 같은 데에서 열심히 일하던 거 몇 년 전에 본 것 같은데.

 

 

김수철 앨범이 여러 장 있는데, 나는 유독 이 3집을 좋아했다. 대학교 때 한 장 샀고, 몇 년 전에 또 한 장을 샀는데, 이건 안 뜯은 LP이다. 아마 뜯을 것 같지 않아서, 뜯은 게 걸려서 또 샀다. 3천발, 정말 해도 너무너무한 헐값이다.

 

그 때가 내 삶에서 가장 혼동스럽던 대학교 2학년 때 나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취향이 당시의 김수철 음악과 잘 맞아서 그런 건지. 하여간 이 판에 나온 소리들이 내 소리의 기준이 되었고, 그리고 20년이 되어서 다시 들어봤는데, 음... 여전히 그러한가보다.

 

가사는, 지금 들으면 유치뽕이기는 한데, 어쩌면 나의 유치뽕 감성은 김수철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가만히 놓고 가사들을 분석해보면, 스토커 버전들이거나, 꿈에 나올까 무섭게 "사랑해요!". 아, 정말 무서운 가사들인데.

 

누군가 날 가슴 속에 묻어놓고, 그건 사랑이예요!

 

우와, 호러 버전이다.

 

그 시절 가사가, 다 남자들의 스토커 버전이기는 하지만, 김수철도 3집 때에는 그런 게 아주 심했다.

 

오랜 고생을 끝내고, 몇 년 전에 다시 복귀한 걸 보기는 했지만, 밥이나 먹고 살까? 영 걱정스러운 아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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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이렇게 안 팔리고, 사람들이 잘 안 읽는지, 영원한 미스테리 같다.

 

언제 같이 이 책을 읽고, 왜 한국 사람들은 기번을 읽지 않는가, 머리 맞대고 그 설명을 좀 찾아보면 좋겠다.

 

이 책은 무수히 많은 얘기들의 원형 중의 원형이고,수많은 원형을 만들고, 그 원형은 다시 또 파생되어 또 다른 세계의 원형이 되었다.

 

왜 이 책이 이렇게 주목을 받지 못할까?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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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의 <뉴 라이트 사용후기>는, 책을 2/3 정도 읽었다가 들고 다니느라고 책을 잃어버렸다. 재밌게 읽은 책인데, 다 읽으면 쓴다고 하는 게 책을 다시 사지 못해서 어영부영 시간만 지나가 버렸다. 마침 <히로히토와 맥아더 정권>이라는 책을 아주 재밌게 읽어서, 두 가지 얘기를 엮어서 현대사에 대한 글을 한 번 쓰려고 생각하다가, 그냥 시간만 하릴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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