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헤이든과 팻 메스니의 beyond the missouri sky 앨범 간만에 듣는 중이다. 갑자기 내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아저씨가 이 앨범 작업하는 사진이 몇 장 있는 것 같다. 멋진 아저씨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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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서 스콜피언스 노래를 들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파트 생활을 꽤 해서, 헤비메탈이나 하드락을 틀기가 좀 그랬다. 
며칠 전에 still loving you를 우연히 들었는데.. 이야, 여전히 좋다!
고등학교 때에는 iron maiden 엄청 들었었고, metal church는 대학교 때 들었던 것 같다. 
학교 앞 카페에서 안주 돈가스 놓고, 술은 대충 마시면서 스콜피언스 공연 틀어주는 걸 끝없이 보고 앉아있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하드락에서 헤비메탈 그 어딘가의 음악을 끝없이 듣던 시절이 내 인생에도.. 나의 반항기는 그때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은. 
지금에 와서는 그 사람들도 다 할아버지가 되었고, 이제 나도 저런 공연장에 가면 청년들이 "애비'하는 그런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시간은 흐른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박제 속에 봉해놓은 것처럼 살지만,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그 감성이 어느 일요일 갑자기 터져나오는. 
고등학교 때 2학년 때 짝이 결국 학교에서 하던 그룹 사운드 싱어가 되어서, 한참 재밌게 놀고는 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그 녀석이 추석이라고 집에 선물을 보냈다. 우리끼리 무슨 선물이냐고, 그 돈 가지고 나중에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했는데, 결국 보냈다. 
영등포 역전에서 동네 친구들하고 아이언 메이든 얘기 한참하고 재밌게 놀던 고등학교 시절의 생각이 났는데.. 그 녀석들은 지금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https://youtu.be/LgwdoISby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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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american pie 생각나서, 앨범 전체를 틀었다. 이 lp는 중3 때 샀던 기억이다. 소리가 너무 좋아서, 정말 충격적으로 들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때도 가사는 잘 몰랐는데, 위스키와 호밀빵, 그런 가사만 잘 들렸다. 이 노래 들으면서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지만, 위스키가 아주 멋진 술일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술은 고등학교 들어가서 2학기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전산반을 했었는데, 가을이면 전산제가 열렸다. 중학교 때에는 사진반을 했었고, 그것도 아주 재밌었는데, 전산반은 더 재미있었다. 전산제 끝나면 중국집에 몰려가서 소주를 때려마셨었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다.

위스키는 학력고사 끝나고 나서. 마루 장식장에 있던 버번을 하나 훔쳐와서.. 그때 마셨던 게 진빔이었다. 버번은 평생 즐겨 먹게 된. 존 맥클린 노래 들으면서 생겨난 게 위스키에 대한 로망이라, 스카치 먹으면 좀 이상할 것 같은. 스카치에 대한 로망이 없고, 버번도 충분히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면, 술값이 적게 된다.

요즘은 술 많이 줄여서, 위스키 먹는 일이 별로 없는데, 아내가 가끔 하이볼 한다고 위스키 사오라고 해서.. 커티샥도 참 좋아했었는데, 상대적으로 비싸기도 하지만, 파는 데도 잘 없다.

이럴 때는 인터넷으로 술 주문 할 수 없는 게 이해는 가지만,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어차피 나이 확인 다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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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non t'accotare all'urna. 내가 아직 좌파가 아니던 대학교 2학년 시절에 즐겨듣기도 하고, 가끔 따라부르기도 하던. 경제학을 계속할지, 다시 재수할지, 그런 생각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가사는 대충만 알았었는데, 세상 좋아졌다.. 이탈리아 가곡 전공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씩 부르는 아주 고전적인 이탈리 가곡.

이것저것 고민이 많아져서, 몇 시간째 이것저것 다른 버전으로 듣다가, 급기야 유튜브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_X7A14s48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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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에 작은 영화 박물관이 있다. 입구에 커다란 마를렌 디트리히 사진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기억인다.

'릴리 마를렌'이라는 노래는 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나게 유명해졌는데, 마를렌 디트리히의 버전으로 거의 통일. 독일어본, 영어본, 심지어 불어본도 있다.

원래는 연합군이 독일군에 대한 심리전 차원에서 만든 노래로 알고 있다. 그런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독일군만이 아니라 연합군과 미군도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쟁이 끝나고 릴리 마를렌은 총질을 했던 나라들끼리 일종의 문화적 화해의 상징 같은 것이 되었다.

마를렌 디트리히는 원래는 케네디 아버지의 연인이기도 했었는데, 케네디가 대통령 되고 나서 백악관에 초정되기도.. "피차 서로 시간이 없을테니까", 이런 유명한 말쌈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전설적인 얘기가.

한참 때, 이 노래 LP를 구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 내가 귀찮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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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작업할 연출 처음 만나는 날이다.

빈 손으로 만나기가 밍숭맹숭해서 cd 한 장.

별 거는 아닌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할 때 주로 집어드는 음반.

중2 때, 태어나서 두 번째로 산 lp였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은 lp가 되었다.

내가 소년이 될까 말까하던 시절의 감성.

다행히 전세계 어디가나 대부분 판다.

비 많이 내리는 오늘 같은 날 더욱 땡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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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어려운가 보다.


하는 일은 다 잘 안된다. 안되던 일은 원래 안되고, 잘되던 일도 안된다. 그렇다고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Lynyrd Skynyrd의 라이브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Free bird...


이걸 곰곰이 보다 보니, 내가 이 노래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순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내 인생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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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정신없이 지냈는데, 간만에 토요일 오후에 혼자 집에서 창문 너머 비 내리는 것도 마당에 감자 심어놓은 것도 보고.

원래는 내일쯤 조카들 데려다가 감자 캘려고 했었는데, 다음 주로 미루었다.

요즘 좀 심난해서 그런지, LP를 잘 못 들었다.

나야 그냥 계속해서 슬럼프니까, 심난하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무료하게 원고 들척들척, 이 책 저 책 들척들척, 최근에 가장 재밌게 본 책은 고양이 키우는 법에 관한 일본 책이다.

그렇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요즘 꽤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아직 기사로는 안 나갔는데, 아마 다음 주부터는 좀 부지런한 기자들 손에는 포착되서 이래저래 기사가 나가지 않을까 싶은데, 한 두명도 아니고 줄줄이 삶의 어려운 순간들을 통과하는 중이다. 왜들 그러시나...

이번 주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나야 늘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가능하면 소비를 줄이고, 꼭 하고 싶은 몇 가지에만 약간의 호사를 누리지만... 청바지 사본 게 몇 년 전인가 싶게.

그래도 경제학자로서 돈이라는 게 기본적으로는 다다익선이 아닐까 싶었는데, 생활인에게는 돈은 꼭 다다익선은 아닌 것 같다.

돈도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근 불가원, 너무 멀면 춥고, 너무 가까우면 데이고.

그저 딱 필요한 돈보다 만 원짜리 한 장 더 있는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돈이 아주 많아진 다음에 불행해진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 아들이 엄마에게 소송을 걸고,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맞고소 하고, 새엄마가 딸을 고소하고, 다시 딸은 새엄마를 맞고소 하고.

그런 소소한 사연에서부터 아버지가 돈벼락을 맞은 다음에 아주 나태해진 아들, 이런 것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너무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들으면 속상할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돈이라는 게 불가근 불가원 아닌가 싶다.

요런 생각들을 하면서, 중학교 듣던 LP 들을 꺼내서 듣는데, 괜히 기분 때문인지, 아니면 마흔이 넘어가면서 생기는 퇴행성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편해진다. 새로운 것이 주지 못하는 평온감을 오래된 것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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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원래는 고졸이고, 서울 사범 출신이다. 서울 사범이 무슨 학교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등학교이다.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기억하는 첫 번째 이유, 어쩌면 마지막 이유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버지의 고등학교 친구였던 어떤 분이 내 방에 LP를 들을 수 있는 장치를 해주고 가셨던 사건이다. 물론 비싼 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나소닉 앰프와 역시 파나소닉 스피커, 그리고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운 턴테이블, 딱 그렇게 내가 아무 것도 모를 때, 그냥 내가 중학교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분이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LP를 들을 수 있게 뭔가를 설치해주고 가셨다.

 

나중에 알았다.

 

그 양반이 원래는 사진작가이고,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봤던 사진 중에 많은 것들을 찍으신 분이라는 것을.

 

하여간 그런 건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중학교 때에는 사진반을 했었고, 내가 찍은 평생의 사진보다 많은 사진을 중학교 때 찍었었다.

 

우리 집은 부자 집은 아니었지만, 중고와 중고로 조합을 해서,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그런 대로 근사하게 LP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내가 돈을 벌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

 

비싸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소리를 돈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하여간 솜씨 있는 분이 내 방에 비싸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가셨고, 나는 그 혜택을 아주 많이 봤다.

 

어머니는 나에게 한달에 2~3장 정도의 LP를 살 수 있는 용돈을 주셨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받은 용돈으로 첫 번째 산 것은, LP가 아니라 비틀즈의 초기 노래를 모은 테이프였다. 나는 그것을 테이프가 닳아질도록 들으면서 중학교 1학년을 보냈다.

 

처음 산 LP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러브 스토리 사운드 트렉, 그리고 슈베르트의 물방앗간의 처녀.

 

너무 많이 들어서 앞부분의 노래들은 이제 튄다. 그게 내가 용돈을 받아들고 처음 LP 가계에 가서 사왔던 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산 게, 바로 사이몬과 가펑클의, 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냥 그들의 노래들이 대충 모인 pack 20이라는 이름을 가진 앨범이었다.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쓰리 핑거를 배우게 되었다.

 

참, 신은 나에게 이런 개떡 같은 목소리를 주었을까...

 

그 때 음악을 같이 했던 리드싱어가 나중에 국정원에 들어갔고,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약간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는 국악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해금이라는 악기를 잡게 되었다.

 

해금으로 날 표현하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된장.

 

그해 국악과 대학원은 파아노를 기본 점수에 집어넣었다.

 

내 피아노 실력은,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기본 코드로 치는 실력...

 

아 또 때 마침, 그 때 수배도 받았다.

 

음악으로 먹고 살기도 어렵고, 진학고 간당간당하던 순간, 집은 나와서 돈은 없었고, 대학은 다닐까 말까...

 

참, 노래를 잘 부르면 좋았을 걸...

 

대학가 앞에서 잠깐 기타 반주하고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그 때 또 사이먼과 가펑클을 들었다.

 

하여간 고맘 때, 집에서 돈을 좀 받아야 유학이라도 갈 수 있으니까, 결국 잠깐 집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 때가 대학 4학년, 미칠 것 같았다.

 

집은 이미 나와서 살고 있었는데, 국악원에서는 그냥 국악하면 좋겠다고 하고,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대학 공부는 때려치고 신춘문예라도 되면 좋겠다고 시만 쓰고 있던 시절.

 

그리고 점점 경찰은 나를 찾아서 조여오던 그런 날.

 

바로 그 나와 오랜 시간을 같이 했던 그 LP...

 

그게 아직도 내 방에 있다.

 

그걸 다시 틀어본다.

 

스피커는 모니터 오디오, 한참 괜찮을 때의 스튜디오 식스.

 

앰프는 몇 년 지났지만 여전히 괜찮은 기기라는 평을 듣는 뮤지컬 피델러티 A3, 인티 버전. 사람들은 이걸 보통은 뮤피라고 부른다.  

 

그리고 턴테이블은, 장정일 선배한테, 구박받고 구받받으면서, 당분간 이렇게 버틴다고 말했던 데논.

 

음악이 이런 건지, LP가 그런 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와 온갖 사건을 다 같이 겼었던 LP 한 장이, 아직도 살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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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카펜터스의 베스트 앨범과 사운드 오브 뮤직 ost만 계속 돌리다가, 오늘은 큰 맘 먹고 앨범을 좀 바꿔보았다. 되는 대로 잡아보니, 데카에서 나온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한 베토벤 심포니 9번이 걸렸다.

 

9번이 워낙 시간이 길어서 더블 앨범 형식으로 되어있다. 교향곡 한 번을 듣기 위해서 3번을 뒤집는 일을 해야 하지만, 앉아서 9번을 다시 한 번 듣는데 그 정도의 수고야.

 

베토벤 9번은 더는 얘기할 필요가 없는, 전국민이 다 아는 음악일 것이다. 어쩐지 말러를 들어주지 않으면 좀 궁상맞다는 얘기가 10년 전에 유행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한 때의 말러 열풍도 지나간 것 같고, 모짜르트 열풍도 지나간 것 같다. 나는 한동안 바그너를 열심히 듣기는 했는데,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바그너를 모티브로 썼다가, 책 판매가 영 신통치 않은 것을 보고, 괜히 바그너 듣고 있으면 짜증이 생겨나는 증상이 생겼다. 원래도 바그너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히틀러의 등장을 즈음한 독일의 분위기들을 연상하기 위해서 일부러 들었던 것인데.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아마 이 책이 좀 팔렸으면, 다 바그너 덕이다라고 그랬을지도 모른, 그런 천상 속물인 셈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이 베토벤 9번에서 가장 즐겁게 듣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이 합창 교향곡이 바로 그 시원한 합창이 터져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말러의 소프라노가 돋보이는 교향곡들도 좋지만, 촌놈이라서 그런지, 나도 역시 합창이라고 하면 역시 9번의 시원스러운 합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내가 9번에서 가장 좋아하고, 또 궁상맞게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오려고 하는 장면은, 바로 1악장이 시작하는 부문의 튜닝에 가까운 가벼운 음맞춤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이 아주 긴 심포니의 시작을 위해서 잠깐의 몸풀이 그리고 바로 튀어나오는 튀어져나갈 듯한 총주.

 

 

이 대목은 영화 <이퀄리브리움>에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약품에 의해서 감정을 인위적으로 억제당하고 무감정한 상태에서 파시즘을 유지하는 '감시자'가 역할을 하던 주인공이 LP로 베토벤을 들으면서 눈물을 되찾게 된다. 그 때 흘러나온 대목이 바로 베토벤 심포니 9번의 첫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나서 턴테이블을 다시 샀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나의 LP들을 다시 수거해와서 LP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그릴 일은 없겠지만...

 

우리에게 LP를 뺐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뺐고, 결국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을 앗아가고, 그런 이후에 파시즘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음모와 관련되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베토벤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심포니 9번의 첫 장면은 절대로 내가 파시즘의 세계와 타협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들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심포니 9번의 전곡을 듣는 것은 일년에 몇 번 안된다.

 

음악은, 맥락이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심포니 9번은 영원히, <이퀄리브리움>의 파시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예술을 되찾기, 그 첫 순간의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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