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CD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유학 시절, 도니가 너무 음서서, 중간에 모아두었던 CD와 비디오들 전부 팔고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다. (카를로스 산타나 라이브 비디오를, 그 때 팔았다... 어차피 PAL이라서 한국에서는 못 볼 것이었다만.)
LP는 중학교 때부터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냥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꽤 된다. 그래봐야 오리지날이라고 부르는 원판은 몇 장 안되고, 그나마도 결혼 하고나서 중고로 산 것들이다.
청계천에서 샀던 빽판도 좀 있는데, 라이브 인 재팬이라고 부르던 딥 퍼플, 에릭 클랩턴 실황공연, 월, 뭐 그런 것들이다. 지금 들어보면, 소리는 괜찮은데, 영 문제 많아서 바늘 상할까 봐 잘 못 올린다.
그래도 소주 한 잔 마시고 얼떨떨해지면, 꼭 그런 게 듣고 싶어지기는 한다. 고등학교 때, 짜장면 집에서 단무지 놓고 소주 참 많이도 마셨다. 고등학교 때 담배는 안 피웠는데, 술은 엄청 처먹었다. 2학년 후반부터 술 마시는데 재미붙여서, 고3 내내 틈만 나면 술 마시고, 마루에 있던 장롱에 진열되어 있던 아버지가 평생 모은 양주들, 틈틈히 꺼내마셨다. 그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2학년 중순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딱 3년만에 아버지의 평생 애장품이라고 하는 양주를, 결국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3년이나 간 건, 정말 티 안나게 살짝살짝 꺼내마셨던 것인데, 결국은 다 마셔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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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얼마 전에 LP 가계가 엄청 많이 생겼다. 이게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3,000원, 4,000원 주고 중고 LP 사는 재미가, 아, 쏠쏠하다. 김건모 1집, 2집, 강수지, 이런 거 집어들면서, 이게 과연 3,000원의 가치 밖에 없을까?
내 LP 중에는 아마 200장 정도 될까, 안 뜯은 게 것들이 있다. 산울림 초기 앨범 거의 대부분, 안 뜯은 LP로 가지고 있다. 아까워서 못 뜯는다. 원래는 아이가 크면, 13살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모으기 시작한 미봉인 버전인데, 아직 아이도 못 낳았다. 내년에는 기필코...
그러나 아마 박물관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오리지날이라는 원판에 비해서 국내 가수들 판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헐값 대우를 받지만, 그런 건 구경도 하기 어려운 시기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오기는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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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요번에 산 LP 몇 장 소개해보자.
김국환 앨범을 산 건 처음이다. <타타타>라는 노래 때문에 나도 산건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는지, 이건 조금 비싸서 4,000원이었다. 타타타, 가사는 정말 명곡이다.
그래도 김국환의 최고 히트작은, 은하철도 999이다. 기차가 어둠을...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만화에 대해서는 평이 분분하다. 프랑스에서 이 만화를 열심히 봤는데, 은하철도 999, 노래 부르면서 주제가 부르는 가수가 죽어난다. galaxie express neuf cents quatre-vingt dix-neuf, 프랑스의 80진법 때문에 999할려면 아주 바쁘다.)
김국환의 <타타타>는 지금 들어도 몽롱해지기는 하지만, 앨범 전체로는, 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트로트를 아주 안 듣지는 않는데, 아마 열 곡 정도? 변형된 트로트 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부터 나왔다. 지금도 농촌에 가면, 생전 듣지도 못하던 트로트들을 아주 신나게 들을 수 있고, 그거 느낌 안난다고 인상쓰고 있다가는 할아버지들하고 척지기 딱 좋다.
하지만 여전히 적응 잘 안되기는 한다.
김국환, 요즘은 밥은 먹고 사나? TV의 체험 프로그램 같은 데에서 열심히 일하던 거 몇 년 전에 본 것 같은데.
김수철 앨범이 여러 장 있는데, 나는 유독 이 3집을 좋아했다. 대학교 때 한 장 샀고, 몇 년 전에 또 한 장을 샀는데, 이건 안 뜯은 LP이다. 아마 뜯을 것 같지 않아서, 뜯은 게 걸려서 또 샀다. 3천발, 정말 해도 너무너무한 헐값이다.
그 때가 내 삶에서 가장 혼동스럽던 대학교 2학년 때 나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취향이 당시의 김수철 음악과 잘 맞아서 그런 건지. 하여간 이 판에 나온 소리들이 내 소리의 기준이 되었고, 그리고 20년이 되어서 다시 들어봤는데, 음... 여전히 그러한가보다.
가사는, 지금 들으면 유치뽕이기는 한데, 어쩌면 나의 유치뽕 감성은 김수철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가만히 놓고 가사들을 분석해보면, 스토커 버전들이거나, 꿈에 나올까 무섭게 "사랑해요!". 아, 정말 무서운 가사들인데.
누군가 날 가슴 속에 묻어놓고, 그건 사랑이예요!
우와, 호러 버전이다.
그 시절 가사가, 다 남자들의 스토커 버전이기는 하지만, 김수철도 3집 때에는 그런 게 아주 심했다.
오랜 고생을 끝내고, 몇 년 전에 다시 복귀한 걸 보기는 했지만, 밥이나 먹고 살까? 영 걱정스러운 아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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