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덜룩하게 못생긴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우리 집 마당에 종종 출현한다. 그냥 그런 고양이 한 마리 있나 싶었는데, 관계가 전환되는 계기가 한 번 있었다.
장마가 한참일 때, 이 얼룩덜룩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끌고 우리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아, 엄마구나...
눈 막 뜬 새끼 고양이는 세상에서 다시 없을 정도로 귀여운 존재이다.
그 장마를 잘 버틸까 싶어서, 어느 날부터 처마 밑에 먹이를 주기 시작했는데, 길고 길었던 올해 장마가 끝나고 어느 날부터, 나머지 두 마리 새끼들은 보기가 어려워졌다. 엄마와 새끼, 그렇게 둘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생태계에 좋은지, 아니면 세상에 좋은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두 마리 새끼는 장마를 못이겨서 죽었거나, 아니면 엄마가 버린 것 같다. 내가 마지막 본 장면은 딱 한 마리 새끼가 이 얼룩달룩, 못 생겼다고 내가 구박하던 그 엄마 고양이한테 젖을 먹고 있던 장면이었다.
왜 한 마리 뿐일까?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사라져버린 두 마리는 아마 젖도 못 떼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디선가 잘 살고 있고, 다만 힘이 약한 새끼 한 마리를 어미가 끝까지 데리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상상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대충 열 마리 넘는 고양이를 키워봤는데, 그 중에 한 번, 제일 예쁘고 튼실해보이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 남기고 엄마가 가출한 적이 있다. 나머지 두 마리는 늘 그렇듯이 예전 우리집 현관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런 것이면 좋겠다만...
하여간 그래서 얼마 전부터 저녁 때마다 고양이 사료를 조금씩 놓아주는데,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 사라진다. 다만,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끌고 다니는 그 얼룩달룩 못생긴 고양이 모녀가 먹었으면, 뭐, 그런 마음이다.
오늘 저녁에는 정말 못생긴, 누렁이 고양이를 봤다.
나는 이 누렁이로부터 모녀 고양이를 지켜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쨌든 늘 하던 것처럼 사료를 주면서 보니까...
엄미와 새끼, 그렇게 한참 사료를 먹는 것을 지키던 그 누렁이가 그들이 사라진 다음에 비로소 사료를 먹는 걸 보았다.
아빤갑다.
가끔씩 어미와 새끼를 지키는 아빠 고양이들이 있다. 이 누렁이는 아마도 아빠 고양이인 것 같다.
배고플텐데, 엄마와 새끼가 먹을 만큼 먹고 자리를 지키고 난 다음에야 약간 남은 사료를 먹는 이 누렁이는, 아마 얼룩달룩이 남편이고, 한 마리 남은 새끼 고양이의 아빠일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 그 새끼 고양이의 검은색 옆의 노란 줄은, 엄마와 아빠를 섞은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고양이들의 순애보이다.
누렁이, 그 자식이 이 고양이들의 아빠이고, 어미인 셈인데, 정말로 아내와 새끼들이 다 먹고 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그런 길고양이를 보면서, 이 한 가족의 순애보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저 녀석들이 올 겨울까지 버틸까, 아니면 이번 겨울을 버텨낼 수 있을까?
장마가 지나고 잠깐 펼쳐진 밝은 여름 날, 고양이들의 순애보가 나를 울린다.
누렁이면 어떻고, 얼룩이면 어떻겠나. 하나 남은 새끼 고양이를 지금 저들의 어미 아비가 죽어라고 살리려고 하는 것이고, 그 때야 최근 펼쳐진 우리 집 마당의 비밀을 풀었다.
지난 겨울 내내 쟁탈전이 벌어졌던 이 마당에, 두 마리 고양이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큼의 생태 공간을 지킬 수 있다. 지금 저들은 그러고 있는 중이다.
이 새끼 고양이가 다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 때는 이 임시적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그들끼리도 경쟁 관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순애보다.
해가 진 밤, 그들 세 가족이 펼치는 고양이 순애보가, 문득 내가 왜 살아가려고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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