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연세대학교에서 <개청춘> 상영이 있었다.

 

이제 막 졸업해서 20대 당사자 운동을 시작하려다가 독한 좌절감을 맛본 정배, 생태선본으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해서 악전고투 중인 명선, 앨범 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볼 때마다 안스러운 사회학과 밴드 '킬링 너즈' 그리고 사학 대신 만화로 먹고 살 공부를 하는 한솔 등이 꽤 고생을 했다. 그러나 뒤에서 해결하기 정말 어려운 일을 뒤에서 부드럽게 해결한 진짜 해결사는, 이번에도 영화다.

 

당분간 개청춘은 공동체 상영으로 서울의 몇 개 대학과 단체들 그리고 지방에서는 영대까지는 가는 걸로 알고 있다. 연대 상영본은 내가 본 것보다 8분 정도 줄인 거라는데, 여기에서 또 8분 줄인 날씬한 버전으로 편집을 끝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시점에서...

 

노조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면 어떨까, 그런 고민이 있다. 뭐, 고민할 것까지는 없다. 반이다 본인들은, 그렇게 하면 좋겠다니.

 

 

20대의 자기인식이 시작되다

[뷰포인트] 연세대학교 개청춘 상영회 후기

기사입력 2009-10-05 오전 11:55:56

88만원 세대, 청년실업, 20대 개새끼론... 20대를 둘러싼 담론으로 사회가 뜨겁다.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시대로의 변환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으로 명명되거나 꿈도 희망도 책임감도 지니지 못한 낙오자 집단으로 묘사되거나. 그러나 이 모든 담론은 모두 20대를 '대상'으로 호출할 뿐, 20대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들어있지 않다. 우리 시대의 20대들을 온전히 표현해주지도 못한다.

여기 20대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삶을 그려낸 다큐멘터리가 있다. 아직은 영화제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상영되지도, 개봉날짜를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소규모 상영회들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개같은 청춘일지 몰라도 그 청춘을 열자고 제안하는 다큐멘터리 <개청춘>은 우리 시대 20대들의 삶의 표준을 그려내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하지만 다양하게, 그리고 각자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20대 '개인'들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써 한 가지 표현 혹은 규격화된 틀로 지금을 살아가는 20대를 규정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개청춘>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개청춘> 특별상영회에 최근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 - 2009』『뉴라이트 사용후기』 등의 책을 출간한 20대 필자 한윤형 씨가 다녀온 후 글을 보내왔다. 일하는 20대의 삶을 20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에 담아 20대인 대학생들의 호응으로 조직된 상영회에서 20대 필자가 보고 해석한 매우 소중한 결과물이 바로 이 글이다. - <편집자 주>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저녁 7시,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다큐멘터리 <개청춘>의 상영회가 열렸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들은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배급을 맡은 이들은 시네마달, 영화가 끝난 후 반이다 멤버 셋과 함께 토크쇼를 같이 한 사람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중 1인인 경제학자 우석훈이었다. 이렇게만 얘기해도 이 행사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청춘>을 두 번째로 보는 자리였다. 일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던 거다. 이제 개봉을 목표로 한 <개청춘>은 조금 더 편집된 형태로 관객들 앞에 선보였는데, 딱 8분 가량 줄었다는 그 러닝타임만큼 더 깔끔해진 듯 했다.

이 행사의 의의를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대' 여성들인 반이다가, '20대'들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그것에 대해 '20대' 대학생들이 후원하여 상영회를 연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 나는 '20대' 논객이라는 허울 밖에 없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 후기를 쓴다. 20대 문제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 반복되는 단어가 지겨울 거다. 방금 내가 쓴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무어라고 봐야 할 것인가?

2007년에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다. 부모님 자산이나 축내며 무기력하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했던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사실 당신들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었다. 윗세대, 특히 386세대는 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올바름을 독점하면서 당신들에게 부당한 비난을 한다. 힘을 합쳐야 이 세태를 바꿀 수 있다. 토익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고 그 책은 주장했다. 그리고 저자들의 주장에 일말의 기대를 건 일군의 20대들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이합집산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석훈과 박권일의 메시지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88만원 세대의 메시지는 왜곡된 형태로 젊은이들에게 당도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취직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취업 컨설턴트의 조언 속에서, 당신들의 어려움은 좌파 정권과 386들이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가지고 나라를 운영했기 때문이라는 수구세력의 야바위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도저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젊은이들의 냉소주의 속에서 말이다.

그 사이에 88만원 세대 담론의 함의는 엉뚱한 사람들이 가져가는 듯 했다. 386세대에 대한 비생산적인 미움을 증폭시키면서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 한 변희재나, 10대를 20대와 구별지으면서 정치적 대안의 부재라는 문제를 20대의 품성론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김용민과 같은 이들 말이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낀 세대'에 해당할 이들 보수-개혁 평론가들의 질타 속에서도 20대들은 말이 없었다. 여전히 20대에 관한 기획은 20대를 조명하지 않았다. 모든 종류의 20대 특집은 그들에 대한 어른들의 고상한 훈계와, 어른들이 보기에 예뻐 보이는 좀 다르게 사는 20대들의 모습을 조명하는데 급급했다. 부끄럽긴 하지만 '20대 논객론'이란 것의 수혜를 입은 내 처지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걷지도 않은 아이에게 달리기를 요구하거나, 혹은 익지도 않은 과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88만원 세대 담론을 이어가는 논의를 기획하거나, 당사자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때, 번번이 벽에 부딪히던 내가 떠올렸던 생각이 그것이었다. 20대는 자신들의 삶을 서사화해서 이해해 본 경험도 없고, 그 경험들을 서로 나누어본 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20대를 잘 모른다는 사실과, 행동을 고민하는 몇몇 이들이 20대들을 대변할 수가 없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는 요구는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뿐만이 아니라 20대들 자신의 입에서 나올 때도 매우 공허했던 거다.

젊은이들이 처한 이런 곤궁함은 우석훈 박사가 해제를 쓴 만화가 김태권의 『어린 왕자의 귀환』에서도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우주를 떠도는 이 시대의 어린왕자는 이 체제가 우리를 어떻게 짓누르는지는 밝혀내지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 "함께 고민하는 건 잘할 수 있단다!"라는 이 만화의 마지막 말은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숙제를 드러낸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정치적 고민의 시작이며 끝이다.

▲ 20대가 찍은 20대 다큐멘터리 <개청춘>
<개청춘> 역시 이 고민의 문맥에 서 있다. 그러나 반이다는 김태권과 다르다. 김태권은 책의 서문에서 IMF 이전의 대학생활을 경험해 보았다고 고백한다. "플라톤과 『자본론』을 한 팔에 안고 다니던 낭만적인 청년시절은 사라졌다."(서문 중에서) 김태권은 주변의 젊은이들과 공유했던 어떤 세계를 상실해본 경험을 가진 세대다. 하지만 반이다의 출발은 애초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 상황 그 자체다.

반이다 역시 이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이다는 그 문제를 바로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반이다의 한 멤버는 토크쇼 시간에 처음에는 사회문제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싶었지만 후반 작업으로 가면 갈수록 등장 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대체 '20대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이 영상물을 계기로 친구들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청춘>은 이 영화를 보는 '대학생' 관객들에겐 다소 생경한 인물들을 제시한다.

고졸로 알바를 통해 살아가는 군입대를 앞둔 인식, 고졸 후 곧바로 취업하여 직장에 7년 동안 다닌 민희, 그리고 대졸 후 방송국 막내작가로 살아가는 승희가 그들이다.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연세대에서도 나온 질문은 어째서 그런 표본(?)을 선택했는지 거기엔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반이다는 답한다. '일하는 20대'라는 기준을 통해 선정했노라고.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20대는 언제나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이다. 반이다는 그런 시선에 반대하면서, 매력적인 인물들을 그리고, 그런 인물들조차 힘들어 한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개청춘>이 20대 전반을 대변하지 못해도 반이다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20대 전체가 아니라 20대 개개인이고, 그들 각각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텍스트와 다른 영상매체의 힘이 드러난다.

그런데 저 '일하는 20대'를 쫓는 반이다의 시선과 감각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 이 영상물의 가장 큰 특징이면서 매력이기도 하다. 반이다는 작품 밖에서 인물들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따라간다. 형편이 안 되면 더싼 작업실을 찾아 이사를 가고, 인식과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 의논하며, 민희에게 갑작스럽게 터진 사건 때문에 몰래 눈물 흘린다. 전반적으로 여성 등장인물인 민희와 승희에 비해 인식과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런 시행착오의 울퉁불퉁함조차 그대로 담아낸다.

우석훈 박사는 토크쇼에서 그런 반이다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독립된 문화생산자로서 사는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반이다는 대상을 드러내면서 자신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메타 텍스트와 같다고 우석훈은 설명한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가 동원되었다고 해서 이 영상물이 어떤 심오한 지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정반대다. 우석훈은 일본의 프리타족을 다룬 영상물 <조난 프리타>의 예술성과는 달리 <개청춘>은 매우 쉽고 재미있다고 코멘트했다. 사실 <개청춘>은 별다른 생각없이 보면 되는 영화다. 서너 장면을 제외하면 특별히 연출의 기술이 발휘된 듯한 부분도 없다.

상영회에 온 20대들은 <개청춘>을 보니 무언가 자신들도 비슷한 것을 찍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반응했다. 반이다는 일부러 그런 느낌을 주려고 쉽게 찍은 것은 아니라며 웃었지만, 만일 그런 느낌을 줬다면 매우 좋다고 응답했다. 이를테면 각자의 셀프카메라를 통해 각자의 삶을 찍어보면 어떨까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상물에서 민희는 셀프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찍으면서 자신의 삶을 재점검한다!) 만약 백만 개의 셀프카메라가 있다면 우리는 백만 개의 삶을 찍게 될 것이고, 누가 20대를 대표하는가 따위의 객쩍은 질문도 사라질 것이다. 이 대답은 인디스페이스의 시사회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반이다가 <개청춘>의 상영을 통해 20대의 삶을 담아낸다는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다.

<개청춘>은 상업영화도 예술영화도 아니다. 이 영상물은 만든 이들의 능력(?)을 우리에게 증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반이다의 첫 영상물은 반이다가 의도한 바를 더 잘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상영회의 관객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토크쇼에 임했다. 영상물 자체의 값어치를 매겼을 인디스페이스 시사회장의 관객들과는 달리, 연세대학교의 관객들은 촬영기법, 반이다의 결성, 영화의 특정 부분의 의미, 등장인물과 반이다의 근황과 장래계획 등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스무 명 가까운 이들의 질문을 받고 나자 토크쇼에 할당된 1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반이다가 이런 종류의 젊은이들과의 잦은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생계의 곤궁을 해결하고, 다음 작업을 위한 에너지를 얻게 되며, 또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반이다가 설명해줘서 좋아하게 된 장면으로 이런 것이 있었다. 용산 참사 이후 시위 현장에서(그곳이 용산이라는 사실은 아쉽게도 영상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반이다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로또를 긁는다. 그리고 전경들이 로또를 긁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88만원 세대』를 보면 스타벅스 커피 같은 거 마시지 말고 20대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것을 제안하는 부분이 있다. 반이다는 20대 문제에 대한 고민도 스타벅스에서 로또를 긁으면서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88만원 세대』를 향한 자조적이고 애교섞인 항변(?)인 셈이다.

민희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야간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연세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식은 금년 8월 11일에 입대했다. 승희는 흑자경영을 위해 다큐 작가들을 잘라버린 모 방송국 사장님 때문에 외주 프로덕션에서 야근을 하느라 상영회에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삶은 흘러간다. 반이다는 차기작에 대한 욕심과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갈등한다. 우석훈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지옥이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떤다. 삶은 지지리 궁상이며 행복은 술 먹은 직후에나 온다는 거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버텨간다. 반이다는 영상물을 찍으며 우리 모두 '어떻게든 버티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버티는 삶 속에 '너희들은 희망이 없다'는 김용민의 충격요법과 '너희들은 실은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나와 함께 진중권을 쳐부수자.'는 변희재의 달콤한 독약은 개입할 수 있는 맥락이 없다. <개청춘>은 그렇게 무책임한 타자의 시선과 구별되는 20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기인식을 호출한다.

물론 나는 <개청춘>만이 시작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20대들이 자신의 삶을 담아냈으나 어떤 지식인이나 글쟁이들도 비평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창작물들이 있다. 가령 웹툰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개청춘>을 통해 이전에 있었던 것과 이후에 있었던 것을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20대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발화하는 과정은 20대의 삶과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개청춘>이 더 많은 이들을 만나야 하며, <개청춘>에서만 끝나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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