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슬러

영화 이야기 2009. 10. 2. 18:21

 

쿡 티비에서 추석 특집으로 영화 몇 개를 올려주었는데, 그 중에 손에 잡히는 대로 본 게 미키 루크의 <레슬러>.

 

아마 잘 생긴 걸로는 윤발이 오빠 다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의 늙은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과 비슷했다.

 

얘기는 싸구려 질질, 놀랄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싶지만. 그 안에 짙은 삶의 페이소스가 있다면, 아주 오래된 80년대 감성? 아니면 더 올라가서 70년대 감성?

 

죽을 줄 알면서도 램잼을 작렬시키는 미키 루크, 마약과 세월의 무게를 그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처럼, 단 한 번이라도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늙은 퇴역들, 그 삶의 무게 같은 게 느껴졌다.

 

아, 인제 미키 루크도 저렇게 되었구나.

 

한 때는 클락 케이블과 같은 전형적인 미남 배우들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들 했던 것 같은데, 배우로서의 미키 루크에게 인생은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마약, 스캔들, 그런 것들에 시달리면서 퇴물이 된 동네 레슬러의 모습이나 미키 루크의 모습이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런 모습을 보면,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 이런 감성으로 느꼈을 것 같은데, 문득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옛날 친구들 모이는 자리에 가면, 이젠 친구들쯤 절반은 앞이마가 훤하게 벗겨졌고, 배가 남산만해지기로 했다.

 

물론 더벅머리 그대로 하나도 안 변한 친구들도 있지만, 남산만한 배를 끌고 있는 친구들 보면, 세월의 무게가 중압감처럼 느껴진다.

 

레슬링과 관련된 영화로 제일 재밌게 봤던 것은, 레옹, 바로 그 레옹의 장 르노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서 레슬러로 돈 몇 푼 버는 신부로 나왔던 영화가 있었다. 한국에는 개봉이 되었었나?

 

사람의 감성도 바뀐다는 생각을 최근에 부쩍 많이 하게 되는데, 미키 루크를 보면서, 나 감성 자체를 돌아보게 된다.

 

가족과 지인들 모두가 등 돌리는 삶 그러나 또한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무대. 그 기묘한 이중성, 어쩌면 우리는 연극에서 끝끝내 내려오지 못한 퇴물 배우 아니면 레슬러와 마찬가지로, 삶을 하나하나 접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촛불집회 때 전대협 깃발 들고 모였던 아저씨 부대, 문득 그 장면이 겹쳐져 보였다. 그들 모두 생활인이 되었을까, 간만에 무대에 다시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어쩌면 80년대, 우리 모두는 무대에 다 같이 한 번 올라가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에 올라간 기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여전히 지우고 싶은 부담스러움일까?

 

램잼...

 

얼마 전부터 친구들이었을 것이 뻔한 넥타이 매고 회사다니고 있는, 이제는 부장에서 이사 사이 어디에선가 아웅거리며 살고 있을 그 동년배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마흔, 남성, 한국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