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독점

독서감상문 2009. 11. 10. 12:41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는 빨리 읽어버리기 아까워, 화장실에 놓고 보는 책이다. 즉, 하루에 한 두 페이지 이상 읽기가 어렵다. 아마도 몇 달 동안, 진중권 읽기가 계속될 듯하다.)

 

진중권은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면서, 사진 작품에 두 개의 층위가 있음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나는 그 용어를 layer라고 보통은 사용하는데, 포토샵 용어에서 가지고 왔다. (아직은 무엇이라 번역할지,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다.)

 

롤랑 바르트의 studium과 punctium은, 내 용어로 하면 1st layer와 2nd layer 정도, 그리고 나는 3rd layer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다.

 

하여간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뭔가가 있고, 이것은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것이다.

 

자,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내가 한 공부로 다시 돌아와보게 된다.

 

나의 경제학은 맑스나 아담 스미스 위에 세워져 있지 않고, 케인즈 위에 서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다 통합했다, 예를 들면 지금의 경제원론 체계를 만든, 베블렌의 제자인 슘페터의 제자이자, 스위지의 동창이었던 폴 사무엘슨처럼, 그렇게 통합을 기원한 것도 아니다.

 

나는 딜타이 위에 세웠고, 조선일보의 이한우가 번역한 딜타이 책 보다는 폴 리쾨를 통해서 만난 딜타이 위에 세웠다. (폴 리쾨르는 파리 10대학 총장이었는데, 그가 책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자마자 은퇴를 하고 파리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폴 리쾨르의 삶은, 내가 도달하고 싶은 궁극의 이상향이다.)

 

물론 해석학을 세운 것은 딜타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쨌든 딜타이-리쾨르로 이어지는 간결한 선 위에 나의 학문을 일단은 세워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수리생태학의 population theory와 최근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오스트롬까지 이어지는 evolutionary game theory 같은 것들을 올려놓았다.

 

해석학이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 의심을 받은 것은, '해석의 독점'이라는 관점으로 알고 있다. 말은 복잡하지만, 해석을 누구도 독점하지 말고, 그 독점에 대해서 악랄하게 조롱하고, 저항하라. 아마 그런 게 대체적으로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해석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대체적인 흐름일 것 같다.

 

(물론 대개의 많은 학문들이 그렇듯이, 그 조롱은 다시 독점적으로 사용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진중권이 < 교수대 위의 까치>의 앞 부분에서 강조하고 또한 다시 환기시키는 것은 '해석의 독점'에 저항하고, 스스로 해석자가 되라고 하는 말이다.

 

다시 한 번 롤랑 바르트의 용어를 사용하면, punctium을 회복, 발견, 혹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와 같은 것을 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맨 처음의 인상이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그것에 환원되지 않는 화가와 우리들 사이의 특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매번의 특수 관계는 개인에 따라서 동일하지 않게 생산되는 것이고, 이것에 재생산이라는 특수성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해석을 독점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 논쟁이 숨어있게 될 것 같다.

 

나는 해석은 독점되어서는 안된다는 편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해석을 조금 쉽게 '주석'이라고 바꾸면, 아주 오랫동안 주석은 독점되어 왔다. 독점된 정도가 아니라, 독점된 주해를 따르지 않으면, 목을 치는, 아주 살벌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이건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정약용의 경세유표는 예론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이게 주석이 독점된 시기에, 가장 맨 위의 보편화된 또 다른 기표로 자신의 담론을 세우는, 목 날라기 싫은 사람의 눈물나는 수법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진중권의 주문대로라면, 이제 교수대 위의 까치는, 정확하게 이 책이 팔려나간 부수만큼의 그런 새롭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punctium에 의해서, 그만한 부수의 책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질 때, 저자의 기도가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진중권이 보라고 하고, 새롭게 puncium 혹은 관계를 만들어보라고 한 그 작업을 하기 보다는, 그를 통해서 진중권만을 보려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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