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작업할 연출 처음 만나는 날이다.

빈 손으로 만나기가 밍숭맹숭해서 cd 한 장.

별 거는 아닌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할 때 주로 집어드는 음반.

중2 때, 태어나서 두 번째로 산 lp였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은 lp가 되었다.

내가 소년이 될까 말까하던 시절의 감성.

다행히 전세계 어디가나 대부분 판다.

비 많이 내리는 오늘 같은 날 더욱 땡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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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책]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 황선도


 


저번 책도 아직 못 읽었는데, 또 새 책을 집으려니까 좀 그렇다. 그래도 마침 아내가 다 읽은 책이 있어서.


 


생태학 관련 책은 가능하면 많이 보고, 또 소개도 많이 하려고 한다. 몇 년 전에 숲 생태학에 관한 책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책에도 소개를 했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까, 소개를 했더라도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좀 곤란한 일이 생겨났다. 공무원 대상 강연을 몇 번 했는데, 아 글쎄내가 소개한 책의 저자가 4대강 찬성 쪽으로 배 바꿔 탔다는 거다. 이런 난감. 이해는 가지만, 하여간 뭐 그런 책을 소개하느냐고 꽤 여러 번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몰랐어요


 


국내 저자 중에는 그렇게 배 바꿔 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주 친했던 양반 중에도, 벌써 넘어간. 그래도 가능하면, 우리나라 책을 좀 많이 보고, 나도 교양 수준의 바닥을 면하려고 하는.


 


황선도 박사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우리나라 물고기 생태에 관한 짧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비슷한 책들을 몇 년 전에 쭉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을 봇 봤다.


 


<자산어보>라는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국내 어류 얘기는 자산어보 스타일이 많다. 그러다보니까 정보만 있고 얘기가 없어서, 읽고 나면 머리에 잘 안 남는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이 얘기는 어류 생태학 중에서는 좀 유명한 얘기다. 생선 귀 어딘가에 나이테 비슷한 게 있어서, 모든 물고기는 원칙적으로 나이를 알 수 있다. 그 얘기에 물고기 얘기들을 얹어서 만든 책으로 알고 있다.


 


30대 시절의 일이다. 고래 연구를 좀 했었다. 그 시절에 대학원생 한 명의 논문 지도를 고래 생태학 가지고 했었다. 한동안 울산에서 고래 토론회 할 때 단골로 불려간 적도 있었다. 혼획에 관한 연구도 좀 했었는데, 워낙 우리나라에 고래 관련된 자료가 없어서 논문을 쓰거나, 글로 남기지는 못했다.


 


여유가 되면 국내에서 나온 생태학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는 걸 좀 하고 싶다. 아울러 나도 고래에 대한 걸 좀 더 써보고 싶기도 하고,


 


정색을 하고 다시 연구를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물고기 관련된 글이라도 좀 읽어두려고.


 


(한겨레에서 발굴한 저자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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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만든 자랑스러운 '에듀피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생지옥이 펼쳐진다. 학생 지옥, 부모 착취, 개념 상실, 불신 지옥, 모든 수식어가 논리적으로 다 가능하다...)



교육 마피아야, 교육 토피아야?

 



박정희 시절, EPB 사람들이 재무부 견제하면서 '모피아'라는 단어를 처음 썼다고 알고 있다. 맨 처음 이 단어를 누가 썼는지, 아마도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을 것이다.

 

하여간 그 이후로 공적 영역에 문제를 모피아로부터 변형시키는 일이 유행이다. 박근혜 때는 해피아라고 난리를 치더니, 요즘은 농피아라는 단어도 쓴다. 가끔은 뭘 알고 하는 얘기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악인을 설정하고 상황만 모면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금 슬슬 마무리로 들어가는 '국가의 사기'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정리를 못하고 헤매고 있던 게 교육 분야다. 교육에 비하면 나머지 분야는 상대적으로 쉬었다고 할 정도다.

 

공공 부문의 교육, 이게 좀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른 분야는 특정 기능, 특정 출신, 부처의 구조적 형태, 이런 데에서 힘이 나오는데 교육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뭐 이런 게 있나 싶다.

 

교육 분야에서 누가 나쁘지?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공정택 말고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름이 없다. 모피아, 이러면 몇 사람 이름이 줄줄줄 나오고, 출신 학교, 출신 과, 이런 얘기들이. 정 안되면 박근혜 때 그랬던 것처럼 위스컨신 마피아, 이렇게라도. 그런데 교육에는 딱이 이렇게 형성이 되지가 않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이상한 사람도 별로 없다.

 

억지로 따지면 사범학교 출신과 교대 출신 사이의 갈등이 있기는 한데, 익숙하기는 해도, 그건 너무 옛날 얘기다. 지금도 그럴까? 사범대 출신과 일반 학과 출신의 얘기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건 서울대 얘기다. 교육부와 교육공무원을 서울대가 다 장악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건 자기들 동창회 같은 얘기인데, 이걸로 한국의 교육 전체를 설명하기는 진짜로 어렵다.

 

최근의 절대평가 기준 등 수능체계 개편을 놓고 진짜 말 많다.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미국유학파들의 문제를 얘기하기도 한다. 너무 미국식 제도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그냥 미국 입시를 한국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려다 생긴 문제.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이것도 정말로 부분에 관한 얘기다. 전체 교육을 놓고 설명하기에는, 들어가는 입구나 너무 작다.

 

산업과의 유착 관계도 설명이 어렵다. 제일 큰 교육산업이 사교육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사교육계와 교육 공무원이 엄청난 유착 관계에 있고, 퇴직하면 서로 왔다갔다?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부처의 이기주의? 그렇게만 말하기도 어려운게, 교육부가 있고, 또 시도 교육청이 있다. 너무 엇박이 나서 문제일 정도로, 전체적으로 하나로 움직인다,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 단체와 보수 단체 사이의 갈등 혹은 정치적 갈등? 그렇게 보이는 면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실제로 들어가보면 이렇게 이념만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기간제 교사 문제가 점점 커져서 학교 비정규직으로 고착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념이 뭔가 작동?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 이거 뭐여? 세계 최대의 사교육 국가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린이집에서 대학교 아니 대학원까지 횡행하는데, 도대체 누가 잘못한 거여? 전두환이야, 박정희야, 아니면 이승만이야? 아니면 조희연? 아직 장관 된지 얼마 되지도 않는 김상곤? 김상곤 때문에 이렇게? 도대체 이게 뭐여?

 

교육 분야가 이상하기는 한데, 몇 달을 놓고 들여다 봤는데, 흔히 말하는 공공부문의 마피아 현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주로 교육 마피아라는 표현을 쓸 때는 교장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학교 단위의 비리 현상을 얘기할 때 사용된다. 그럼 교장 때문에 이 문제가 생긴겨? 그건 좀 이상하쟎아.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생각해낸게, '교육 토피아'. 학생들은 모르겠고, 학부모도 모르겠고, 건국 이후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낸 교육자들의 유토피아, 뭐 이런 거 아니겠슴? 그렇게 놓고 분석하면 의외로 잘 맞는다. '교육 토피아''에듀토피아'라는 두 단어를 놓고 막판 고민하는 중이다. 에듀 토피아는, 벌써 말이 어렵다. 가능하면 쉽고 짧은 게 좋다.

 

그리하여, 교육 토피아라는 개념을 놓고 기본 분석을 다시 한 번 해보려고 하는 시점이다. 이게 마무리되면, 클랜 분석은 일단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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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겁나게 온다. 올해 8월은 비가 많이 와서, 무지무지할 정도의 열섬 현상은 생기지 않았다. 추세적으로 보면 5월이 가장 많이 더워진다. 그리고 9월도 더워진다. 8월은, 그렇게까지 높아지지는 않았다. 비가 많이 와서. 한동안 아열대 기후라는 말이 유행을 하더니, 이제 간간이 우기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열대성 스콜이라고 하더니, 이제 장마 대신에 우기가 생기는 거 안인가 싶기도 하고. (더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책 하나를 준비하는 중이라서, 덥고 덜 덥고, 더 민감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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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송은 가능하면 안 할려고 한다. 별로 잘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또 별로 즐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둘째 아픈 다음부터는 시간 약속도 해봐야 잘 지키기도 어렵다.


그래도 다큐 같은 거는 가능하면 도울 수 있는 한 도울려고 한다. 동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라고나 할까?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정말 최소치의 기여라고 할지도.




지난 몇 년 동안, 공중파를 포함해서 교양 방송이나 경제 방송의 상황은 정말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졌다. 이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게 꼭 방송장악, 그런 정치적 이유 때문만도 아니다. 제작비 구조 자체가 진짜 안 좋다.


다큐 만들 때 며칠씩 같이 움직이기도 하는데, 출연료가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 돈도 안 받고 뭐하러 가? 내 맘이다. 돈 때문에 움직이는 건 더 기분 나쁘다. 의미가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아니면 그만이다.


최근에 kbs에서 좀 큰 방송을 했고, cbs tv랑 하나 했다. 그리고 요즘 sbs 스페셜 팀하고, 2부작 다큐하는 중이다.


오늘 일단은 마지막 촬영하는 날이다. 세 군데 촬영을 했다. 헥헥.



2.


이래저래, 작년에 하던 일들을 많이 정리했다. 칼럼도 다 없앴다. 없어진 것도 있고.


하다 보니까, 또 다시 조금씩 얹히기 시작한다.


한겨레21에 3주 간격으로 육아 칼럼을 쓴다. 주간지 연재는 예전 시사인에 두 면씩, 매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야 내가 힘이 좋던 시절이고.


원래는 흐름대로 하면, 계란 파동 다룰 타임이다.


쓸 얘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얘기가 좀 있고, defra 얘기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 책에 쓰기 위해서 defra 조사해놓은 것도 좀 있다.


근본적으로는 주간지의 스케쥴 한계가 있다. 지면에 나가는 것은 다음 주,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기사를 보게 되는 것은 또 그 다음 주. 2주 동안 이슈가 버틸 수 있어야 하고, 그래도 여전히 힘이 있어야 한다.


계란파동은 매일 뉴스가 나온다. 지금은 딱 정타 같아도, 실제 현실에서는 슬로우 커브에 맥 없는 포수 파울플라이 같은 볼이 될 위험이 높다. 그냥 맥락만 안 맞는 게 아니라, 진짜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이럴 위험도.


그래서 급선회...



우리 집 아이들은 가끔 잘 때 보면 손 잡고 잘 때가 있다. 세게 잡을 때도 있고, 살살 잡을 때도 있고.


요 얘기를 쓰기로 했다. 왜 이런 걸 쓰는지 전달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 의미없는 포수 파울 플라이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아니, 지금이라도 고민해서 더 쌈박한 걸?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면, 나는 과로로 바로 죽는다.


3.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고 돌아서니, 네이버에서 연애 칼럼 마감 날짜를 알려온다. 벌써?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미리 좀 원고를 모아놓고 오픈 하려는 거?


연애 칼럼은 2주 간격이다. 쉽게 생각하고 쓴다고 했는데, 주기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얘기까지 다룰 수 있을지, 아직 가늠이 안된다. 자리 잡을 때까지는 부드럽고 유순하고, 별 탈 없는... 하나마나한 글 쓰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그래도 한동안은 하나마나한 얘기를.


돌겠다.


4.

방송은 안 한다고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오는 시간 맞춰서 정봉주랑 sbs 라디오 하는 게 있다.


헉헉. 아침에 아무 것도 안 하는데, 전례를 깨고. 예전 정봉주 감옥 갔을 때 면회 간 적이 있다. 하여간 정봉주와도 약간 복잡한 사연과 안스러움이 있다. 그 때의 안스러움 때문에, 덜컥 해준다고 했다가... 한 번 가는 정도였는데, 당분간 계속.


생방송이라서 쉬운 방송은 아니다. 게다가 아직은 팀웍 등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좀 있어서.


5.

요렇게 다 하면 한 달에 50만원 정도 받는 것 같다. 차비도 안 나온다.


그냥 백만원 다시 주고, 안 한다고 하고 싶은 게 속 마음이지만, 약속한 거라서 꾸역꾸역 한다. 혹시라도 지나다니면서 밥이라도 한 그릇 사먹고 나면 밑지는 건데. 그래도 밥 때 걸리면 꼬박꼬박 밥 사 먹는다, 그것도 맛있는 걸로.


그럼 왜 해?


낮에는 애들 어린이집 가 있으니까,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또 나도 별 인기도 없고.


6.

그럼 바뻐?


몇 년 전부터, 바쁘다고 말 하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나는 바쁘지 않다, 게으를 뿐이지.


절대로 바쁘지 않다, 제 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무능함이 문제일 뿐이지.


죽을 때까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바쁘다는 말이다.


신문 등 외부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10년이 넘는다. 아마 7~8년 전인가? 한겨레에서 억지로라도 외부 기고 원고료를 올려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딱 한 번 원고료가 조금 오른 기억이 있다.


최근에 글 쓰면서 원고료 보니까, 안 오른 게 아니라, 내려갔다. 이유야 100개쯤 있을텐데, 원고료 책정한 거 보면,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진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바라보는 시건 때문에 그렇다.


너 말고 여기에 글 쓰고 싶은 사람들 많아...


카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다고 이러면 안된다고 나서서 뭐라고 할 정도로 내가 권위가 있거나, 인기가 있는 건 아니고, 또 그럴 실력도 안되니까, 그냥 꾹 참. 나는 전혀 바쁘지 않으니까.)


7.

바쁘다고 하면 지는 거다, 진짜로 그렇다. 내가 못나서 일을 못하거나, 아는 게 없어서 못하는 거지, 바빠서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


바쁘지 않다.


(그렇지만 영화 <불한당> 보고 금요일까지 분석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지도 않은 영화인데, 이건 또 언제 보고, 언제 또 분석하나. 그래도 나는 바쁘지 않다.)

 

바쁘다는 얘기는, 정말로 죽을 때까지 안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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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종의 전쟁, 꺼져, 트럼프!


 


1.


-미셀 발랑탱(Jean-Michel Valantin)이라는 프랑스 학자가 있다. 만날려면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억지로 누군가를 꼭 만나는 것을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아직 만난 적은 없다. 어쨌든 내 인생을 가장 극적으로 바꾼 한 사람을 꼽으라면, 이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장-미셀 발랑탱일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학자 중에서, 나와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장-미셀 발랑탱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내가 그의 책을 가지고 죽도록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책 두 권 정도 내고 시시껄렁하게 지내고 있던 시절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나 아내는 괜히 돈 쓰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아내는 그 때 활동가 생활을 접고 박사 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이것저것 잡지 뒤적뒤적거리고 가끔 신간 찾아보는 게 거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그 때 두둥, -미셀 발랭탱의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나보다 2~3살 많을까?


 


하여간 붙잡자 말자, 바로 번역하기 시작해서 번역을 끝냈다 (그리고는 수 년, 내가 아는 모든 출판사에 출간을 의뢰했는데, 한국에서는 시장성 없다고 결국 못 냈다. 내가 한국어 출판을 위해서 뛰어다니는 동안, 그 사이 영어로는 번역되어서 나왔고, 이 분야 고전처럼 되었다. 엄한 책을 집었던 것은 아니라고 약간은 안도…) 번역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온 영화들은 구할 수 있는 건 일단 다 샀고, 구할 수 없는 것은, 그래도 구해서 봤다. <노스페라투> 수준의, 정말 오래된 영화라서 포스터만 볼 수 있는 몇 개 빼고는 다 구했다. 그리고는? <콜래트럴>처럼 3~4번 보면, 진짜 지겨워서 어쩔 수 없는 것 빼고는 100번씩 봤다. 영화 한 번 보면 100번씩 보는 내 습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00? 어떤 놈은 분석도 하고, 관련된 영화 감독과 제작자 다 만나서 물어보고, 시시껄렁해 보이는 메모들까지 다 뒤져서 책을 내는데그 분석을 뒤에서 따라가면서, 아 그렇군, 배 내 밀고 고개 끄덕끄덕하면서 건방 떨어서야 내 입에 밥이 들어가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천외천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 말도 장-미셀 발랑탱 이후로 쓰게 되었다. 정말로, 하늘 밖의 하늘을 본 것 같았다. 위대하고 거대하고, 에 또, 고매하고 그런 저자나 작가들은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고, 그런 비슷한 것도 없는 분석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오방. 외울 수 없으면 많이 보기라도. 정말로 죽도록 보고, 대사 적어가면서 보고, 그렇게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그렇게 하나의 테제에 집중해서, 이미 누군가 친절하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그렇게 해놓은 것을 따라가면서 그냥 보는 일을 죽도록 했다. 효과가 있었을까? 직접 효과는 모르겠다. 하여간 그렇게 생난리를 치고 난 다음에 낸 책이 처음으로 만권을 넘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낸 책이 20만권을 넘어갔다. 그게 <88만원 세대>…


 


그 때 배웠다. 잘 난 넘 있으면, 흉내라도. 난 흉내는 냈다. 안되면 시늉이라도.


 


2.




-미셀 발랑탱의 책은, 당시만 해도 불어 아니면 볼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영어로도 볼 수 있고, 문고판은 정말 싸다. 그 뒤로는 번역본 출간에 대한 노력은 접었다.


 


대학교 때 미학 공부를 한 적이 좀 있었고, 어설프게나 영화 미학 같은 것도 좀 봤다. 그 시절에는 리얼리즘 미학이 왕 먹던 시절이다. 그 때, 헐리우드는 상업적 코드와 제국주의 코드를 가지고 있으며, 디즈니의 악한 점은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배웠다. 돈 되는 건 뭐든지 하고, 뭐든지 하지만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뭐 그랬다.


 


-미셀 발랑탱 얘기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다른 어떤 나라의 영화와도 다르게, 펜타곤과 백악관과 밀접하거나 때로는 심하게 반목하면서, 어쨌든 때로는 협력 때로는 갈등, 그런 장르의 영화들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전략 영화'의 범주와 범위가, 상상초월 넓다. 아 그렇구나, 끄덕끄덕.


 


-미셀 발랑탱은 영화 전공자가 아니라 국제 정치학 혹은 국제 관계학 전공이고, 미국 분야에서 나름 특성이 있는 학자다. 근데 왜 영화를 이렇게 많이 봤고, 이렇게 잘 알아? 할 말이 없었다.


 


그 때 헐리우드 영화의 겉얘기와 속얘기라는 것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고, 영화 기획 단계부터 어떤 것들이 때로는 협력적으로 때로는 적대적으로 작동하는가, 이런 걸 좀 생각하게 되었다.


 


헐리우드 영화는 아무 얘기도 없이 그냥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코드만 범벅? 그런 게 아니란다. 고뤠?


 


그야말로 해석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지만 장-미셀 발랑탱이 때로 들이대는 사무실과 사무실 사이에 오갔던 팩스의 문구, 그런 게 반영된 주요 정치인의 연설문 속의 거의 아무도 보는 문구들, 이런 걸 보면서, 그야말로 입 딱. 할 말 없다.


 


, 세상에 뭐 이런 넘이 있나 싶었다.


 


3.


<혹성탈출> 68년에 나왔다. 한국에서도 워낙 인기가 높아서, 혹성은 제대로 된 말이 아니고 행성이라고 해야 한다는 친절한 지침서가 등장할 정도로. 이제는 <혹성탈출>이라는 영화를 표현할 때만 우리는 혹성이라는 말을 쓴다. 안 그러면, 무식하고, 일본식 한자어를 쓰고, 더럽게 터진다. 혹성 아닙니다, 행성!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인가, 주말의 명화 같은 데에서 처음 봤던 기억이다. 앞에부터 다 보지는 못했고 중간부터 봤는데, 찰톤 해스턴이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는 엔딩신, 그건 그 시절의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 이런 게 있구나.


 


그 때의 충격이 워낙 강해서인지, 그 뒤에 나온 자잘한 후속편들도 거의 다 본 것 같다. 물론 날 잡고 본 게 아니라서 쫙쫙 줄거리가 서 있지는 않다.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혹성탈출>이 이 비슷비슷한 시리즈물에서 우뚝 서 있는 이유는, 이게 '우주 아니다, 지구야 지구', 이런 라인을 세운 첫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마 문화적으로 가장 전격적으로 <혹성탈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얘기를 잡자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일 것이다 (<스타워즈>도 역시 우주 얘기이기긴 하지만, 이건 기획 의도나 전개가, 조금 다른 각도다.)


 


<혹성탈출>이나 <파운데이션>이나, 핵전쟁과 그 이후의 지구 오염을 모티브로 하는 것 같다. 냉전 시대에, "나가자 우주로", 이 얘기를 가장 대중적으로 축으로 세운 것이 아이작 아시모프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가자 우주" sf 문학이나 sf 영화의 기본 줄기가 된다. 버리자고, 지구는.


 


과학을 좀 하고, 공부를 좀 한 사람들은 60년대에 "나가자 우주", 쒼나게 상상을 펼쳤다. 그 흐름 속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세계적 빅힛트를 쳤고,


 


그런데 갑자가 유인원들이 말 타고 등장하는 영화가 두둥둥, 뭐야 이 촌스러운 것들은, 보던 관객들들은 너무너무 후지고 감성적으로도 올드하다고 느꼈다.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 신을 보기 전까지는.


 


영화가 이제 끝나나, 크레딧 타이틀이 올라가려나, 대체 뭔 소리한 거여, 이렇게 슬슬 엉덩이를 들썩 거릴즈음, 오매나야, 여그가 뉴욕?


 


먼 우주를 돌고 돌아, 이상한 행성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참말로 뉴욕? 그렇다니까!


 


우주냐, 지구냐, 이 끝나지 않을 SF 장르의 논쟁의 대척점 하나를 거대하게 세운 것이 바로 <혹성탈출>이다. 지구를 수백번 터뜨리고도 남을 핵전쟁, 그리고 미소의 냉전 갈등, 알아 알아그런데 우린 뭘 해야 해? 우주로 갈까? 아니거던요. 지구에서 그래도 버티면서 살아남는 수밖에 없거던요!


 


요 라인을 타고 막 21세기로 넘어가려는 시점에 <매트릭스>가 나오게 된다. 그 정도 기술이 발달하고, 그 정도 과학이 발달했으면 안드로메다는 아니더라도 어디 명황성 정도 가줘야 하는 거 아냐? <매트릭스>는 지구 땅 구석 어딘가에 있는 시온의 땅을 찾아 헤매고, 프로그램 내의 위상 공간을 헤맨다. 우주? 몰러, 거긴 멀어.


 


그냥 냉전시대와 핵전쟁 위험만을 얘기했으면 <혹성탈출>이 지금의 그 위치에 가지고 못했을 것이고, 그야말로 리부팅해서 다시 3부작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원숭이 분장하고 허접한 옷 입고 말 타고 다니던 이 영화가 문명사에 남을 정도로 깊은 충격을 준 것은, 우주냐 지구냐, 이 깊고 오래된 논쟁에 한 축을 빡 그었던우주복 입고 진공 놀이하면 재밌디? 좋아 보이디?


 


4.


전작은 이리하여 역사가 되었고, 다시 3부작을 시작한지도 몇 년, 이제 그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 소소하게는 배경과 주요 등장인물 등 차이가 좀 있기도 하지만, 원전 <혹성탈출>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핵전쟁이 영화 배경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냉전은 깨졌다. 소련은 벌써 망했고, 동독 출신의 과학자가 이제 독일의 지도자다. 동독? 뭐여? (이언주가 한국의 메르켈이 되겠단다. 이건 또 뭔 소리여?)


 


냉전, 핵전쟁 그리고 살아남는 존재들의 미래, 이런 굵직한 소재 위에 혹성탈출이 얹혀져 있었다. 핵전쟁을 빼고 나니까, 확 힘 떨어진다. 그래 이제 21세기니까! 그럼 이제 뭔 얘기를 하지? , 이거 어려운데. 여기서부터가 창작자의 고통이다. 게다가 리부팅 이후 이미 성공한 1, 2편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1, 2, 3편이 독립된 각각의 구성이라고 놓고 분석하는 방법이 있고, 3편을 위해서 1, 2편이 셋업이라고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어느 편이든, 자기 맘대로일 때가 많다. 원작자가 이런 것까지 얘기해주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럴 리도 없고, 그렇게 소소하게 설명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쨌든 3 <종의 전쟁>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명백히 그리고 다른 소리 할 것 없이, 이건 지도자에 대한 얘기다. 지도자의 속성, 지도자의 덕목,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지도자? 뭔 맥락없이 갑자기 지도자?


 


하여간 3편은 유인원의 유일무이한 지도자인 시저와, 사람들 사이에서도 배척당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기다리고 있는 대령, 그렇게 주요 대립을 형성한다. 그리고 실패한 지도자 코바의 죽은 혼령과, '당나귀'라고 불리는 굴욕을 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코바의 옛 부하들, 그렇게 한무더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모든 얘기들은 '증오'라는 한 단어로 수렴된다.


 


증오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코바는 증오를 내려놓지 못했는데, 과연 우리들의 지도자 시저는? 그렇다면 저 잔혹무도한, <지옥의 묵시록>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대령은? 그리고 그의 증오는? 그는 증오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마지막이 너무 비참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최후의 자존심을 놓고 몸부림을 치는 것인가?


 


원자탄을 내려놓은 <혹성탈출>이 세롭게 안티테제로 형성한 것은 증오에 기반한 국가주의 그리고 그런 상징들이 엉겨 붙으면서 만들어진, 두둥, 바로 극우파 아니겠는가? 여기에 유럽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 미국식 인종주의.


 


유럽에 극우가 또 다른 정당으로 형성된 것은 이미 90년대이고, 일부에서는 대선 결선투표까지도 갈 정도다. 브렉시트로 상징되는 이런 극우파의 흐름에 헐리우드가 눈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영화적으로 핵전쟁이 갖는 짧고 강한 임팩트에 비해서, 극우파와 증오는 형상화시키기 어렵다. 그리고 그 딜레마를 개념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형상화하기는 더욱 어렵다.


 


3편 클라이막스의 약간 복잡한 설정은 극우파 코드가 비쥬얼로 형성화시키는 것이 한계를 어느 정도는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 이후, 독단적인 지휘관이 독자적 카리스마가 보여주는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할 때부터 유럽은 물론이고 전세계를 한번쯤 덮치고 갈 극우파의 시대를 어느 정도는 예견한 것 같다. 우파든 좌파든, 인간의 조직이라는 한 번쯤 "지도자는?", 이 질문을 하게 된다. 그게 사람 사는 사회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시대가 변하면서 새롭게 다시 한 번 질문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미 '트럼프의 미국'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고, 누구든 상관없다. 증오와 두려움 위에 세운 독재, 그리하여 자신들 안에서도 영원하기 어려운 짧은 악몽과도 같은 것이다 (북쪽의 상관이 기동하는 강력한 부대가 영화 안에서 과연 왜 필요했던 것일까,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를 만들 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 <종의 전쟁> "꺼져, 트럼프!"라는 짧은 명제와 기묘한 싱크로율을 만들어 내었다. (미국 보수들 내에서도 트럼프가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너무 강하다는 불만이…) 우연이겠지만, 기막힌 우연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종의 전쟁> MB 정권 마지막 해에 봤다거나, 아니면 박근혜 한참 헤매던 2~3년 차에 봤다면, 우리의 이 영화 해석법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탈애굽 이후, 낙원에 도착하기 직전의 행복감을 맛보려고 하는 시점이다. 극우파 혹은 증오만 강조하는 지도자, 아니, 이건 지나간 얘기라니까. (그러나 미국이라면!)


 


증오와 차별, 어쨌든 21세기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면하게 되는 주요 주제가 이미 되어버렸다. 이걸 잠시 환기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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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태어나기 전에는 책 읽고 나서, 짧게라도 메모를 읽는 게 습관이고 또 큰 재미였다.


책상 옆에 몇 줄로 산을 이루고 쌓여 있는 책들 보면, 진짜 한숨부터 난다. 읽기는 읽어야 하는데, 도통 짬이 안난다. 그러다 보니 잠깐 읽은 책도, 뭔가 메모를 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러다가 그냥 한세상 가겠다는 두려움이 잠시...


그리하여, '볼 책' 리스트라도 그 때 그 때 적어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주원 교수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가 그 리스트 1번이 되었다.


(읽고, 짧게라도 메모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훈민정음이야 다 아는 얘기 - 가 아니라, 사실 정설이 아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실록에 훈민정음 창제 앞에, 진짜로 아무 기록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두둥...


김주원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에 당시 실록본이, 겨우겨우 중간에 다시 만든 건데,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활자도 엉망이고,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있다는 걸 소개 받았다. 그럼 봐야지, 뭐.


안 그래도 언어학자가 쓴 훈민정음에 관한 글을 좀 보려고 했었다.


(한국은 언어학자가 개 똥구녕 소리하는 사람으로나 알고 있다, 끌끌.)


이유는 이렇고...


추가적으로, 요즘 정인지라는 아주 골때리는 캐릭터에 팍 꽂혀서, 여유 되는 대로 정인지에 관한 걸 좀 모아서 보는 중이다.


세종 시절의 신하들 중, 이름은 고약해가 끝내주지만, 진짜로는 정인지가 이게 아주 미스테리의 연구 대상인 인간이다. 알듯 모를듯, 서양사에서도 이 정도의 울트라 정신영웅의 슈퍼갑 캐릭터는 본 적이 없다.


일단 내 연구가설은,


기본적으로는 정인지와 이완용이 같은 종류이며 같은 캐릭터의 인간 아닐까 싶은.


(그래도 영 같은 캐릭터라고만 하기는 어려운게, 고종이 이완용을 대하는 태도에 비하면 세종이 정인지를 대하는 태도는 약간 떫더름한 구석이 있는.)


실록에 있는 기록만으로는, 정인지가 아주 끝내주는 발언을 한다.


세종 죽고 5일째인가,


세종은 니도 알고 내도 알고, 한 게 별로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세종이라는 휘호는 거두라.. 바로 갑질 들어간다. 그 대신에, 책은 좀 냈으니까, 지금이라도 정직하게 '문종'이라고 하자.


그 말을 듣던 세종의 아들 문종이, 야, 그래도 북방 개척하면서 전쟁도 좀 괜찮게 했으니까, 그냥 세종으로 가자...


(요게 실록에는 더 자세한 기록이 없다. 하여간 정인지계 신하들은, 에이, 세종은 아니다, 문종은 에이, 세종 맞다 요랬다.)


그냥 추측하면, 아마도 문종 죽고 나서, 정인지께서, "엣다, 문종", 이리하지 않았을까 싶은.


게다가 정인지는 잘 먹고 잘 살. 어느 정도? 장안 최대급 부자.


(요기에 좀 남사스러운 전설급 사연들이 약간 더...)


그리하여, 일단 김주원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부터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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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제일주의


 


1.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다빈치 코드>를 아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그가 작년에 <비틀즈 : 에잇 데이즈 어 위크>라는 다큐를 만들었다. 나도 다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든 다큐를 다 볼 수는 없다. 우연히 이 다큐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다. 바로 다큐를 구매하고 며칠 동안 보고 또 보고,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또 보았다. 나만 본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도 다 보라고 했다. 동료들은 다 보았고, 모두들 엄지 척.


 


비틀즈는 63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64년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강타한다. 도대체 이 열풍이 언제까지 갈까, 비틀즈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해석도 잘 못했고, 예측도 못했다. 66 8,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비틀즈는 돈 받고 하는 대형 공연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공연 자체도 초라했고, 어느 관객이 공연장을 뛰어다니는 난장을 치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것이 공식적인 비틀즈 공연의 마지막이었다.


 


여기까지는 뭔가 했다가, 잘 안되었다가, 접었다가규모가 커서 그렇지, 평범한 얘기다. 물론 론 하워드도 "애네들, 진짜 잘났어요", 이런 평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상업영화 감독이 갑자기 다큐를 집어든 것은 아니다.


 


그 후로도 상당 기간 그랬지만, 비틀즈도 초기 계약조건이 좋지 않았다. 앨범은 큰 돈이 되지 않는 구조였고, 공연을 해야 비로소 돈을 벌 수 있었다. 더 크게, 더 자주, 그렇게 공연을 했다. 그리고는 지쳐갔다. 이 상황에서 제일 처음 문제점을 느낀 것은 존 레논이었다. "Help"라는 노래가 그렇게 존 레논의 작사작곡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만 해도, 나머지 멤버들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이게 뭔 소리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샌프라시스코 공연이 엉망이 되고 아마 폴 메카트니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Enough!"


 


아마도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실제로 그 공연을 마지막으로, 진짜로 비틀즈가 공연을 모두 접는다. 다큐에서는 이 장면이 진하게 온다. 아마 비슷한 구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그리고 다시 3부 리그로, 그렇게 점점 더 하위 리그로 내려가면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더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90년대 후반에 미사리가 한참 뜨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미사리에 놀러 가자는 말을 많이 했었다. 한 번 가보고는 다시 안 갔다. 거기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도 고통스럽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좀 이후에, '미사리 가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얘기다.


 


공연을 그만둔 비틀즈의 다음 얘기는 다큐에서 아주 짧게 지나간다. 그렇지만 길게 사연을 서술하면서 충분히 감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얘기는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조금 감정선이 강한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한 번쯤 울기도 할만할 것 같다.


 


비틀즈는 스튜디오로 돌아간다. 그리고 정말로 노래만 만들고 녹음만 한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이 만들어진다.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비틀즈 멤버들끼리 약속한 것은 딱 하나였다. 예전에 했던 것들과는 어떻게든 다른 걸 하자. 그렇게 비틀즈 후반기의 노래들이 만들어진다. 여기서부터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


 


"렛잇비" 앨범을 준비하는 와중에 애플음반사 옥상에서 깜짝 콘서트를 한다. 애초에 애플음반사와 앨범 계약을 할 때 그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더벅머리를 하고, 같은 스타일의 양복을 입고 있던 네 명의 청년은 66년부터 4년 동안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개성은 극대화된다. 그 모습을 그 유명한 옥상 컨서트에서 볼 수 있다.


 


 


2.


살다 보면 뭔가 잘 안될 때도 있고, 의미 없이 재미가 없어질 때도 있다. 잘 안되거나, 하기 싫거나. 위기는 그 둘 중의 하나이다.


 


왜 안 되는가? 그 이유를 알면 세상에 안 되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중에 지나보면 알 수 있을지 몰라도, 뭔가 안 되는 순간에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른다. 안 되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운할 것 같아서 안 되는 이유를 이것저것 대보지만, 사실은 모른다.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은, 핑계다.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이유를 모른다. 같은 이유로, 잘 되는 사람도 잘 되는 이유를 모른다.


 


"자기가 잘 해서 잘 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일 것 같다. 분석도 이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성격도 이상해진다. 자기가 잘 하는 것, 거기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동료들의 도움이 있고, 많은 사람의 지지가 있고, 여기에 인생에 한 두번 올 법한 운도 따랐고


 


자기가 잘 해서 잘 되는 거, 세상엔 그런 거 없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없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에는 자본의 입맛에 맞는 것잘 하긴 뭘 잘해, 그냥 자본에 예뻐 보인 거지.


 


자기가 잘 해서 잘 된 게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곤란한 일이 생긴다. 잘 되는 것도 이유를 잘 모르는데, 안 되는 것의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잘 되는 것의 이유도 불분명한데, 그것의 반대 상황인 안 되는 것의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그냥 재수가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최소한 '큰 바위 얼굴' 같은 얼굴은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논리적으로는 그렇긴 한데, 결심하는 순간이 하나가 필요하기는 하다. 66년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엉망으로 끝내고 비틀즈 멤버들이 했던 결정은, 말 그대로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안티테제, 그야말로 비틀즈의 그룹 역사가 서양철학적 논리 구조와 같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뭔가 전환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하나가 있기는 했다.


 


그런 복잡한 얘기들을 내 식으로 하나의 용어에 묶어 넣었다.


 


창작 제일주의.


 


옳고 그르고는 모르겠고, 좋다와 나쁘다도 모르겠다. 될 거다, 안 될 거다, 그런 건 더더욱 모르겠다. 그렇지만 뭔가를 만들기는 해야 한다는 거.


 


그런 걸 나는 창작 제일주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삶을 삶답게 만드는 힘은 스타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있는 거 아니겠는가 싶다. 만드는 거, 그게 재밌는 일이다. 재밌고 재미없고, 되고 안 되고는 그 다음 일이다. "본질이 스타일에 있지 않다…" 이 생각을 하는데 50년이 걸렸나 싶다.


(그리하여 10년만인가, 블로그 이름을 '우석훈의 임시연습장'에서 '창작 제일주의'로 바꿨다. 내 이름을 뺐는데, 이름 필요 없고. 수식어도 필요없고. 창작을 하느냐 마느냐, 행위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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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름을 바꾸려고 한다. 제일 좋아했던 이름은 네이버에 쓰던 '여기는 등대'였다. 그게 제일 감성에 잘 맞았는데, 너무 잘 난 척하는 것 같아서 재수 없다는 생각이 가끔은 들었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 쓴다고 하도 뭐라고들 해서. 블로그 제목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책 제목 중에서는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같은 느낌의 글들을 많이 쓰려고 했었다. 인상 써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노무현 정부 때 그런 스타일의 글을 많이 썼다.

그리고 보수 정부 10년을 그냥,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버텼다. 이제는 블로그 이름도 바꿀까 한다. 뭘로? 아직은 모른다. 하여간 좀 더 밝고, 그런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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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요즘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가?

 

2004년부터 하루에 A4 3~4장은 글을 썼던 것 같다. 그 중에는 괜찮은 글도 있고, 뭔가 전혀 방향을 못 잡은 글도 있고, 생각은 맞는데 전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못한 글도 있다. 그렇긴 한데, 그게 나의 습작 시절이었다고 생각하면 대체적으로 맞는 것 같다. 수많은 생각의 시도들을 했고, 표현의 시도들도 했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로 영 블로그에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못 쓰는 것도 있고, 안 쓰는 것도 있고, 더더군다나 쓸 참이 없는 것도 있고.

 

작년부터는 그래도 조금씩은 블로글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영 쉽지 않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봤다. 왜 나는 요즘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가?

 

1.

일단은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애 보는 틈틈이 잠시 컴을 켜는 것이니까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게 맞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글들은 쓰다가 쉬었다, 다시 쓰다가 다시 쉬었다, 이렇게 끊어가면서 글을 쓴다. 다른 글을 못 쓰는 것은 아니고, 블로그 글만 못 쓴다. 시간이 없기는 없는데,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2.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그런 것 같다. 별로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데, 나만 혼자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신경을 좀 써야 하는 시간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하는지, 요즘 누가 지켜보고 신경을 쓰겠나. 혼자 하는 생각이다.

 

물론 블로그에 글을 쓰면 누가 보기는 본다. 그렇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제는 별로 내 생각이 뭔지 중요하지도 않아서, 별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써도 되는 상황이다. 괜히 나 혼자 눈치 보는 습관이 든 것 같다. 남들 배려하는 것과 눈치 보는 것은 좀 다르다. 엄한 짓을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3.

너무 잘 쓸려고 한다. 그건 나중에 진짜 인쇄 매체로 갈 때 고민을 해도 되는데, 초고 때부터 너무 가설적인 얘기들을 앉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게 괜한 욕심이다. 눈치 보는 데다가, 잘 쓰는 것처럼 보이려는 생각까지 겹치면, 이래서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4.

가끔은 술 마시고 글을 쓴 적도 있다. 술 먹고 책을 쓰지는 않는데, 글은 가끔 썼다. 술 먹고 글 쓰는 것은 안 하기로 꽤 오래 전에 마음을 먹었다. 술 마실 때는 맘 편히 술만, 글 쓸 때는 편안하게 글만.

 

안 그래도 안 쓰는데, 술 먹고 쓰던 것마저 없어지니까, 아예 안 쓰게 된다. 술 먹고 잠깐 생각은 나는데, 깨고 나면 잊혀진다.

 

그래도 술 먹고 글 쓰는 것은 안 하는 게 낫다. 그렇긴 한데, 글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5.

그리고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죽어라고 읽어야 뭐라도 좀 남는데, 절대적인 독서량 자체가 너무 줄어들었다. 책에서 오는 새로운 정보가 없다. 그렇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가장 많이 날 때가 원래 책을 읽을 때다.

 

6.

방송 진행 하다가 겉멋도 들었다. 기본적인 방향만 잡으면, 실제로 자세한 얘기는 출연자들이 알아 오거나 작가들이 정리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인데, 그러다 보면 기술만 늘고, 실제로 뭐가 뒤지고 찾는 일은 덜 하게 된다. 아니면 아예 안하고, 진행만 생각하거나. 바보 같은 일이다. 화려한 것은 잠시이고, 오래 가는 것은 단 하나라도 진짜로 만드는 일이다.

 

7.

그리하여, 눈치 안 보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시도들을 다시 하기로 했다. 괜히 쭈그리고 있다가 생각이 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내가 뭘 하든지, 뭔 생각을 하든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다. 혼자서 이것 맞추고, 저것 맞추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그 지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한 문장, 두 문장 짜리 글이라도 좀 더 많이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

 

, 오늘은 토요일 밤, 지금부터 간만에 눈치 안 보고 술 한 잔 마시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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