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에세이 작업을 준비하며

 


(여섯 살 큰 애 생일 선물로 접는 자전거를 사줬다. 동네에 언덕길이 많아서 도저히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아파트촌에 있는 처가댁으로 자전거를. 모닝에 이런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큰 애는 앞자리로 가고. 아내와 내가 동시에 탈 수가 없다는 부작용이. 그렇다고 고 자전거 샀다고 차부터 바꾸는 것은 이상한 일이고...)



1.

살다 보면 많은 우연들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나는 68년에 태어났다. 꼭 그런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럽을 뒤덮었던 68혁명에 대해서 좀 더 가깝거나 친근하게 느꼈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파리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68혁명의 팜플렛이 처음 뿌려진 건물이 F동이었는데, 나는 G동에서 공부를 했다. 왠지 중요한 일을 하고 같다는, 그런 어렴풋한 느낌이 있었다. 그저 우연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내 또래의 다른 친구들보다는 68혁명의 영향이 좀 더 많기는 한 것 같다.

 

2.

이것도 아주 우연한 일이다. 20대는 내내 군사정권이었고, 30대는 DJ 정권과 함께 시작하였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었다. 그 때 엄청나게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후에 펼쳐질 시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았던 것 같다.

 

마흔이 되었을 때, MB 정권이 들어왔다. 진짜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세상이 너무 추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MB 정권의 마지막 해에 큰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평생 늘 보면서 지낼 것 같은 친구 이재영이 떠났다. 그리고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게 40대가 지나갔다. 만약 아이들 둘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냥 지워질 것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9년이 지나갔다.

 

이 얘기를 20대들에게 했다.

 

"선생님, 저는 20대가 지워졌어요."

 

하긴 그렇다. 공교롭게 그런 열 살 터울로, 20대가 혹은 30대가 통으로 보수 정권 시절에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40대를 지내는 편이 20대를 날려먹는 것보다 나을까? 그야말로 그냥 우연일 뿐이다. 그렇지만 누가 대통령이냐,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서 개개인의 삶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나라들이 일부 있다. 프랑스가 그런 경우인데, 한국은 좀 더 그런 것 같다. 좋든 싫든, 개인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혀 영향을 안 받는 사람도 있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변화에 민감한 편이고, 심하게 많이 영향을 받았다.

 

3.

여론조사표를 자주 보고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그걸 다 맞다고 생각하거나 기계적으로 여론 조사에 맞춰서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연령별 혹은 지역별 편차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주 보는 편이기는 하다. 여론 조사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등장하는 사회경제 집단이 자영업자와 농민, 가정주부 그리고 50대 이상의 노령층이다.

 

한 때 가정주부가 왜 이렇게 보수적으로 조사에 집계되는지, 너무 궁금한 적이 있었다. '40대 여성'에 대한 연구주제가 그 때 나왔었다. 흔히 전업주부로 잡히는 사회경제적 집단이 보수적으로 사유한다고 하면 그 사유가 보수적으로 전환되는 나이가 있을 것이라는 게 기본 가설이다. 40대에 가정주부들은 어떠한 변화를 겪는가, 아니 한국의 40대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건 정말로 내가 궁금했다. 정말로 내가 궁금했다. 생각해본 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어느 날, 궁금해졌다.

 

실제로 연구 설계도 일부 했다. 더 진전시키지 못한 것은, 그 때쯤 3살 된 둘째 애가 폐렴으로 연달아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연구 정도가 아니라 하던 일도 다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라그렇게 40대 여성에 대한 연구는 내려놓게 되었다.

 

, 그럼 50대는? 내가 50살이 되었을 때, 춧불 집회는 더 큰 클라이막스로 가기 위해서 잠시 숨고르는 중이다. 그렇게 한 겨울,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왔다. 아직도 박근혜는 대통령이었고, 우리 모두 초조하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정말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조기 대선이 열렸다. 그리고 그 선거에서 더 이상 50대가 보수적이지는 않았다. 예전에 50대에서 보였던 투표 영상은 60대 이상으로 올라갔다.

 

물론 아직도 많은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50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집단의 의견을 갖는다. 대통령 지지율을 비롯해서 정치적 의미가 강한 여론 조사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50대는 보수적이다. 특히 갤럽에서 주로 하는 문화 취향 조사에서는 변화가 없다. 50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안동역과 같은 트로트와 노사연이다. 나는 좀 다를까? 트로트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정도지, 이제는 어느덧 20대가 듣는 노래와 내가 듣는 노래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 내가 50이 되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라고 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 마찬가지다.

 

나는 워낙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거의 동료로 지냈던 사람들이 나보다 열 살 많은 경우가 많다. 이제는 환갑이 되었거나 환갑을 기다리는 그들이 가끔 내 모습을 보면 놀란다. 나도 흰머리 나고, 적당히 배 나오고. 그리고 나도 또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놀라는 일이 생길 것이다.

 

4.

이런저런 이유로 50대 에세이집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좀 된다. 물론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이 시기가 이렇게 격동의 시기가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내용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고, 이제 슬슬 써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은, 무슨 얘기를 큰 줄기로 삼을 것인가, 그야말로 모지방에 관한 얘기.

 

어차피 내가 살아가는 삶과 일상 그리고 내 생각에 관한 것들이라서, 제목이 뭐가 되든, 기둥이 뭐가 되든, 기본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써놓은 것도 일부 있고,

 

먼저 생각한 것은 '경차 타면 멋있을 나이', 요런 스타일의 제목이다.

 

경차 탄 건 몇 년 되지만, 경차만 탄 건 1년 정도 된다. 내 차를 없앤지 1년 정도 된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차가 없는 건 아니고, 아내 차를 얻어 타고 다닌다. 아이들 아침에 어린이집 데려다 줄 때 주로 타고, 지방에 가야 할 일 있을 때에도 탄다.

 

50대가 경차 탄다고 해서 엄청난 일은 아니다. 그냥 살다 보면 그런 때도 있고, 이런저런 경험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좀 느껴지는 게 없지는 않았다.

 

몇 번 아내가, 그냥 벤츠 타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넉넉했다. 워낙 내가 쓰는 돈이 없어서. 별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고, 실제로 계산을 해보니까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갔다. 시트로엥은 진짜로 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현대 간부들과 밥 먹다가 그 얘기 했더니, 그냥 벤츠나 아우디 사는 게 나중에 편할 거라고

 

이젠 다 지난 일이다.

 

하여간 이렇게 경차 가지고 얘기들을 모으는 종류가 한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보수적이지 않은 50대의 탄생', 이런 얘기들로 기둥을 세우는 방법. 시대의 변화에 대해서 정직하게 맞서는 방식이다. 어쨌든 지금 그리고 앞으로 수 년간 한국의 변화를 발생하는 가장 큰 변수는 50대의 정치적 성향이 바뀌는 것이다. 물론 정확히는 50대의 성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50대의 구성비가 바뀌는 것이다. 이게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지, 그걸 지금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가능한, 큰 변화가 발생하고 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쓰는 게 에세이집이라서, 경차든 보수든, 어느 쪽이든 축만 세우면 거기에 맞춰서 작업하면 된다. 그래도 선뜻 결정을 못하는 것은

 

미감상으로는 '경차 타면 멋진', 이런 게 더 내 미감에 잘 맞는다. 보수와 보수적이지 않은 것, 정직한 제목일지는 몰라도, 내 미감에는 잘 안 맞는다. 왠지 텁텁하고, 어둡고, 어쩐지 트로트 <안동역>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런 제목의 장점은 명확하다. 에둘러가지 않고 바로 본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중간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 들어가니까, 맞든 틀리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건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장점이다.

 

경차와 보수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아직 마음을 못 먹고 있다.

 

경차든, 보수적이지 않은 50대이든, 내 삶의 특징에서 파생되어서 나오는 속성들이기는 하다. 어느 쪽이든, 내 모습이다. 하여간 어느 쪽이든, 1~2주 내에 선택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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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찬가지다. 힘 세다고 힘 과시하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 무섭게 내리는 비는, 잠시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바닥부터 변화를 만들고, 새롭게 구상하는 집단, 그게 진짜 무서운 것이다. 70년대 재야, 80년대 학생운동, 90년대 시민단체 그리고 2000년대 뉴라이트, 무서웠다. 힘은 별 거 없었지만, 새로운 생각들과 구상이 그 속에서 맹아처럼 싹트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권력에서 힘이 완성되지 않는 사회라서 그렇다. 절치부심하고 뉴라이트 만들면서 집권한 세력이 10년만에 만든 세상은, 너무 허당이었다. 같은 질문이 지금의 집권 세력에게도 던져질 것 같다. 5년 후, 10년 후, 그 미래를 위해서 지금 생각을 해야 한다. 한국은 70년대 이후, 대체로 그러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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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그들이 없는 언론 - 춘래불사춘

 

1.

좋은 다큐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다. 그렇지만 재밌는 다큐란 무엇일까? 여기에 답하기는 정말 어렵다. 지난 주에 프랑스에서 만든 발레 공연에 관한 다큐를 보았다. 엄청나게 멋진 연습 장면이 가득하기는 한데, 재미가 없어서 참고 보기가 어려웠다. 4팀의 공연준비를 병렬형으로 보여주는데, 100%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스토리 이해 자체가 힘든 구조다. 좋은 다큐를 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재밌는 다큐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몇 명의 발레 전공자들의 삶이 비춰 보이는 재미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참고 보기 어려웠다.

 

YTN MBC의 해직기자들 얘기를 담은 다큐 <7 - 그들이 없는 언론>은 좋은 다큐와 재밌는 다큐라는 질문을 동시에 하게 만든다.

 

2.

7년의 개봉 스크린수는 105, 누적관객수는 16,999명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는 극장 개봉을 했느냐 안 했느냐, 그리고 관객수 만 명을 넘겼느냐 안 넘겼느냐, 그런 기준으로 분류한다. 물론 가끔 이런 기준에 전혀 맞지 않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큐가 등장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사회적 흐름과 갑자기 생겨난 열풍, 이런 외부적 변수가 너무 커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인사이드잡> 5,000명 약간 넘겼다. 그리고 해방 이후 언론에서 가장 많은 영화평을 받은 작품이라는 <경계도시2>가 만 명이 약간 안 된다. 이 정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다큐로 분류된다.

 

<7- 그들이 없는 언론>, 극장용 다큐를 기준으로 치면 성공한 기준은 넘긴 영화다. 애게, 만 칠천명? 만 명을 목표로 가는 게 한국의 다큐이기도 하고, 사회과학 서적이기도 하다. 새로운 얘기, 새로운 변화를 전통적 방식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대개의 경우 '넘사벽'으로 작동하는 것이 만 명의 벽이다. 만 명을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경제 다큐를 비롯한 많은 다큐들이 당장 출발할 것이다. 지금보다 최소한 10배는 많은 다큐와 책들이 준비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두텁다. 만 명은 커녕, 극장에 제대로 걸리기도 어렵다는 현실성 앞에서 수많은 기획들이 출발도 해보기 전에 좌초한다. 소박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 소박에 소박, 그 극한에 간 최소한의 수치가 만 명이다.

 

3.

<7 -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기 위해서 나는 2,500원을 지불하였다. 그것도 고만고만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주말 저녁을 보내기 위해서 고심고심하다가 결국 선택한 것이다. 나도 그렇다. 선뜻 극장에 가지 못했고, 소장용 최신 영화를 거침없이 사면서도 2,500원을 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망설였다.

 

별 생각, 별 기대 없이 보았다. 그리고 6년만인지, 7년만인지, 영화에 대한 감상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재밌게 보는 영화는 많고, 감동하는 영화도 적지 않지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몸을 움직이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 딱 고만큼.

 

4.

7년에는 아는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종종 나온다. 이름만 들었지 잘 모르는 기자들도 있었다. 해직 기간에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대목이 정서적으로는 클라이맥스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그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 같다.

 

최승호 CP는 개인적으로 엄청 존경하는 사람이다. 다른 일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나도 몸이 무거워서 꿈쩍도 못한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중첩되면서, 영화는 초반을 지나면 급격하게 감정을 에스컬레이팅 시키면서 밀고 나간다.

 

가장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연은 YTN 사장 사연이다. MB 특보로 사장 임명되자마자 거침없이 기자들을 짤랐이 아니고, 그래도 그 사람은 나름 최선을 다했고, 대화도 좀 되는 사람이었다고 노종면이 회상하는 장면두둥,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MB 특보가 밀린 자리에 올라간 내부 승진자, 사단은 그 단계에서 벌어진다.

 

학습효과인지, 처음부터 내부 승진자를 꺼내든 MBC의 김재철 사장, 가장 희극적 캐릭터이며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유일한 간부 캐릭이다. 일제 때 조선인 순사가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5.

다큐를 다 보고 나서 내 삶에도 몇 장이 스쳐 지나갔다.

 

kbs 파업 때 출연자로서는 아마 내가 거의 유일하게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았던 것 같다. 이제 다시는 kbs에 나오지 못할 거라는 것은 알았다. 2년 전인가, 신년 특집 생방에서 마지막 순간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그러세요, 뭐 그런 적이 잠시 있었다. 전혀 못 나간 것 까지는 아니고

 

ytn 파업 때는 따로 부탁이 없었는데, mbc 파업 때에는 이준익 감독도 나갔고, 나도 나갔다. 짧은 인터뷰 컷 말고는, mbc는 그 후에 나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방송국에서 파업할 때, 지지발언을 해달라거나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나는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연락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 그래도 내가 삶을 막 살지는 않았구나…'

 

만약 방송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대가가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 시절, kbs 뉴스에 나간 적이 있었다. 이래저래, cp는 러시아로 갔나, 하여간 그 때 관여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제작 현장과는 좀 먼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몇 년 후에 얼핏 건네 들었다.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나도 무서워서 방송국에 못 갔다. 잠깐 나가서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닌 거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 볼 이유가 있나 싶었다. 4대강 얘기를 대놓고 하면, 정말로 '피의 보복'이 오던 시절이다.

 

방송국 기자들만 7년 동안 당한 것은 아니다.

 

출연진들은 그래도 좀 낫다. 방송 만들어서 납품 하는 제작사들의 형편은 더 어마무시하다. 그리고 그런 제작사와 일하는 작가와 피디 등 제작진들, 겁나는 보복들을 받았다. 그렇다고 섭섭한 걸 얘기하면, 자기만이 아니라 동료들이 모두 어마무시한 피해를 받기 때문에 그냥 냉가슴들을 알았다.  

 

문화계에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방송국은 좁은 사회다. 블랙리스트, 그런 건 필요 없다. 그냥 약간의 사장 등 경영진의 호불호,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다큐 7년은 그냥 해직당한 몇몇 기자들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야만의 시대, 바로 그 야만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듯 묘사되었을 뿐이다.

 

6.

춘래불사춘, 다큐 7년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론이 제대로 서는! 꿈인데, 어쩌면 한국에서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명은 결국 복직을 하기는 하겠지만, 그런다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고생한 사람과 빛을 보는 사람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해직기자를 비롯한 방송 장악의 역사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기자들과 경향신문 기자들과 최근에 통화하거나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많이 외로워하고, 새로운 것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꺾인 것 같았다. 그들도 정권 교체를 오랫동안 목마르게 기다렸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행복과 영광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인사이더>는 많은 여운을 남긴 영화였다. 방송 고발과 지루한 소송전이 끝나고, 결국 '식스티 미닛'의 수완 좋은 기자 알 파치노와 담배 회사 내에서도 양심을 지킨 과학자 러셀 크로우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했던 일을 결국 내려놓게 된다. 싸움이 끝나서 이기면 원래대로?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큰 싸움이 끝나고 나면, 결국에는 상처가 남게 된다.

 

봄이 왔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봄이 오지 않는다. 언론이 그렇고 방송이 그럴 것 같다. 춘래불사춘, 다큐 <7 .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고 나서 이 단어 하나가 마음 속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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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삼국지를 내 방식으로 써보는 게 오래된 로망이었다. 사실 요즘 별 할 일도 없다. 당장 몇 달은 약속한 일 하느라 잠시 정신 없을 거지만, 그거 지나고 나면 판판히, 남는 게 시간이라...

아내가 반대한다. 예전에도 삼국지 한 번 써볼려고 했는데, 그 때는 이준익 감독이 반대했다. 중국식 시각이 아니라 한국식 시각을 담아보라는데, 뭐... 불가능한 주문이다. 그나마 이민족의 시각을 적극 담으려고 했던 게 장정일 삼국지였다. 그래서 장정일 삼국지가 나름 개성 만빵 삼국지가 되기는 했다.

아내는, 정서적으로 내가 삼국지 보다는 초한지를 훨씬 좋아하니까, 삼국지 쓸 거면 차라리 초한지를...

한신도 겁나 좋아하고, 번쾌 얘기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실제로 그렇기는 하다. 삼국지에서 내가 유일하게 눈물 흘리는 장면은 강유가 죽을 때... 그 때만 눈물이 나온다.

그렇지만 번쾌는 상상만 해도...

한국에서 아무도 관심없을 초한지부터 먼저 쓰라는 아내의 말을 내 식으로 해석해 보면...

돈 번다는 핑계로 육아 도망갈 개수작 부리지 말고, 당분간 얌전히 처박혀서 아이나 볼 것. 끙. (난 그런 의도는 아니라, 이 긴긴 세월을 뭐하고 지낼 것인가, 그런 건설적인 고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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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에 대해서 근본을 한 번 생각해보자는 글이다. 가끔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는가,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해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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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세상읽기]사회 속 경제, 경제 속 사회
오창민
기사 게재일 : 2017-05-29 06:00:00

 최근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 일자리수석실에도 사회적경제비서관이 배치되는 등 정부 차원에서도 서민경제, 지역 경제 안정을 위한 사회적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원래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은 19세기 말에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 수단이었던 협동조합(cooperative)과 같은 결사체를 일컫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사회적경제는 공동체를 꾸리고, 호혜와 연대의 원리로 약탈적 자본주의에 맞서 ‘사회적인 것’을 지켜내고자 한 것이었다. 한국은 1960년대 농협과 수협 등이 조직되었지만, 이는 유럽의 협동조합과는 달리 국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큰 차이가 있다. 2000년에 생산적 복지의 형태로 자활기업이 등장했고, 본격적으로 민간 영역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역동성을 끌어내기 위해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른 사회적기업,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른 협동조합 등 각종 사회적경제 관련 법, 제도, 정책이 시행되었다.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국가 지원을 바탕으로 확장되었으며, 국가 차원에서 구성원들의 집합적인 이익 추구, 분배의 형평성 강화, 민주적 의사 결정, 공동체성의 복원과 같은 ‘사회적 목적’과 재화와 서비스 생산·유통, 자본 축적, 이윤 추구와 같은 ‘경제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구도 속에서 양적 성장을 밟아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자리 창출 및 고용 증대 등 성장 패러다임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보다 사람과 노동이 우선시 되는 사회적경제의 본래 취지와 목적이 희석되고, 형식화 되면서 사회적경제가 기존 경제체제의 보완재나 심지어 종속물로 전락할 우려도 든다.

 국가가 돌봄, 사회서비스 등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복지영역을 민간영역으로 전가하고, 사회적·공익적 활동영역에 대한 질 낮은 보상을 감행하려든다면 사회적경제는 주류경제의 아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자본과 권력에 대한 비판 없는 사회적경제의 ‘사회적 가치’ 창출은 허울뿐이다. ‘사회 속 경제’를 지향할 것인가 ‘경제 속 사회’에 머무를 것인가에 대한 답은 경제력에 대한 사회의 지배력 회복에 달려 있다. 이는 경제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건강한 공동체 경제를 만들어가려는 가치와 의지의 문제이다.

오창민 <경제문화공동체 더함 대표>


http://www.gjdream.com/v2/news/view.html?news_type=201&uid=48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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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진짜 간만에 아이들 데리고 교보문고 놀러갔다.


여섯 살 큰 애는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사줬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여러 번 빌려다 본 건데, 워낙 좋아해서 결국 그냥 사기로 했다.


4살, 여섯 살, 두 애들 전부 다 좋아한다. 겁나 좋아한다.


시인 중에 제일 친한 사람은 역시 지리산의 이원규 시인을 것 같다. 학부 때 회계학인가 전공을 해서, 돈 얘기도 같이 많이 한다. 재밌다.


그렇지만 시로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사람은 최승호와 최영미일 것 같다. 최영미는 공부 다 끝나갈 때쯤 시를 읽게 되었고, 학부 시절에 영향 많이 받은 것은 최승호의 시다.


진짜로 좋아했다. 대설주의보 같은 시들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생관과 삶도...


마지막 본 게 아마 10년쯤 전, 광화문 어느 호프집이었을 것 같다. 새만금 관련 공판이 한참이던 때... 그는 환경운동연합의 대표였다.


이제 아이들의 최승호의 동시를 읽는다. 나도 같이 읽는다.


대설주의보 시인의 요즘 얼굴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 나도 같이 웃게 된다.


한국 어린이들이 읽을만한 동시로는, 단연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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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한참 열심히 할 때는 방문객이 많았다. 수 천명이 상주했고, 복닥복닥했었다.

트위터는 박원순 시장 선거나왔을 때 시작했다. 하다 보니까 팔로워가 20만 약간 안 된다. 엄청 할 때도 있었다.

둘째 태어나고 모든 일은 정지. 기저귀 갈고, 밥 하다 보면 아무 것도 하기가 어렵다...

어제 국회의장 공관에서 가족 동반으로 사람들 모아놓고 식사했다. 정세균과 나름 긴 시간, 거의 매일 만나면서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동료들과 헤어지면서 해단식을 못했다.

나는 둘째 입원하면서 집밖에 나가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정세균은 국회의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같이 일했던 또 다른 한 명이 윤호중이고, 나와 정세균이 떠난 다음, 그는 정책위 의장이 되었다.

50명 정도가 같이 모여 있었는데, 뿔뿔이 흩어지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 해단식을 어제 했다. 이제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게 되었다. 몇 년만에 갖게 되는 이 홀가분함이란!

이제 아이들 돌보는 것 말고는 공식적으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블로그는 좀 살려보려고 한다. 심각한 거 쓸 생각은 별로 없고, 책 읽는 거, 영화 보는 거, 기타 등등 간간히 메모용으로.

하루에 한 두 번, 짧은 단상은 트위터 통하고, 친구들하고 수다 떨 때에는 페북, 그 정도로 하면 어떨까 싶다.

카톡, 밴드, 이런 거 일절 안 했다. 또 그런 거 안 하는 게 내 트레이트 마크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주부터 밴드를 하게 되었다. 동료들도 집단이 되다보니까 행정 처리를 밴드에서 하기로...

앞으로 1년간, 내가 결심한 건 딱 하나다. 수영장 자주 가면서 기초 체력을 다지기... 그거는 진짜로 하려고 한다. 1년이 되기 전까지는,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루틴을 만들고, 루틴대로 따라하기...

그 다음은? 모른다. 7년간 같이 일한 동료가 아직 신용불량자이고, 주민등록증도 말소된 상태다. 한 명은 빚은 다 갚게 되었는데, 아직 신용불량 빚을 못 갚았다. 아마 1년 정도 지나면 그 빚은 다 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1년이 지난다.

그 다음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 때까지는 페북에서 친구들하고 수다 떨면서 노닥노닥.

대학교 4학년 때 잔디밭에서 친구들하고 노닥노닥거린 이후, 친구들하고 진탕 노는 것도 못하고 지금까지 살았다. 이젠 좀 놀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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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두환 시절의 경제 지표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패턴을 보여준다.

토건율은 내려가고, 물가인상률도 내려가고, 그 상태에서 경제성장률도 높고, 종합주가지수 상승률도 환상적이다. 이런 모습은 딱 한 번 나왔다. 그 이후에는 토건율이 기이하게 높아질 때마다 대형 경제위기들이 닥쳤다.

지표로 보면, mb 때가 최악일까 싶었는데, 박근혜가 이걸 뛰어넘었다. 근혜 시절은 해방 직후 혹은 한국전에 버금갈 정도로 지표들이 어글리...

문재인 시절, 경제 지표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길게 보면 1년, 짧게 보면 6개월은 일단은 좋을 것 같다. 그 뒤에는? 그야말로 경제로 보는 성적표다.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장기 호황은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장기 호황 국면으로 가면 전두환 7년 동안 봤던 아름다운 패턴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3년 후쯤에는 다시 심각한 경제 위기가 올 가능성도...

아직은 너무 많은 것이 열려져 있는 시기다. 한국 경제에서 전두환 때 봤던 그 아름다운 경제 패턴을 한 번 더 보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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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모피아>는 내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책이다. 책 자체 보다도 이 작업할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 결국 내 평생 동료가 된... 이래저래 7년을 같이 했다. 그 연장선에서 영화 <사도>가 나왔고, 지금도 작업은 계속 중이다.

<모피아> 드라마 판권은 나오자마자 팔렸고, 큰 애 낳고 한참 돈 많이 들어갈 때 진짜로 요긴지게 도움이 되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드라마 기획까지만 가고 실제 편성이 되지는 않았다.영화 판권은 성사 직전에서 섰다. 제작자가 안철수를 모델로 만들어볼 생각이 있었는데, 안철수가 정치를 그렇게 잘 하지는 못한 듯 싶었나보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아주 사적인 관점에서, 나만큼 안철수가 잘 해 주기를 바랬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가 시기가 좀 겹쳐서, 판권 시기 조율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정권이 넘어갔다. 그리고 판권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제작 검토는 몇 군 데서 한 걸로 아는데, 제작비가 겁나 들어가게 되어있는 설정이다.

하여간 최근에는 실사판과 에니메이션판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좀 생겼다. 내가 판단을 내릴 일은 아니고... 어차피 이건 내가 직접 하지는 않을 생각으로 쓴 거라서.

5년 전에 상상으로 작업할 때에 비하면, 소름끼칠 정도로 현실과 싱크로율이 높아졌다. 진짜 돗자리 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이 생겨날지는 진짜 나도 몰랐었다. 한국, 참 안 변한다.

<모피아> 후속편은, 원래는 교육 마피아 얘기 다루는 걸 생각했었는데, 1년쯤 준비하다 뒤로 미루었다. 자살하는 고3 남학생과 그걸 지켜본 고3 여학생의 얘기로, 어느 정도 설정은 해놨었다. 그렇지만 자살이라는 얘기가 논리적이기는 한데, 내 심경으로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교육 마피아 얘기는 일단 뒤로 미루고,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소설은 작년 7월부터 시작한 게 있다. 설정만 해놓고, 다른 작업에 밀려서 기술적인 조사 직전 단계까지 가 있다.

물론 나는 대부분의 발전소와 현장에 다 가봤고, 전력거래소만 안 가봤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사무실 안에까지는 가봤는데, 나주로 내려간 다음에는... 나주 자체를 몇 년째 안 가봤다. 내 동료들이 아직 이런 설비들을 못봐서.

<모피아>는 김영사에서 냈었는데, 그 때 같이 했던 김영사팀은 벌써 다 다른 데로 옮겨갔다. 이 시리즈는 당분간 그냥 김영사에서 내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고, 처음 몇 주간은 나도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었다. 이젠 좀 알겠고, 나는 예전에 하던 얘기 만들기를 계속 재밌게 하려고 한다. 얘기 만들기는,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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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fem.or.kr/?page_id=221

사회적 경제 책, 페친 티타임 조촐하게 가질까 합니다.

6월 10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는 저번과 같이 환경운동연합 에코생협에서 하는 작은 카페. 내용이 사회적 경제라 마침, 또...

아내가 40대 때 저에게 늘 하던 얘기가 있습니다. 너네들이 술 마시지 않고 차 마시면서 혁명을 얘기했으면 우리나라 벌써 좋아졌다...

책 사주신 분들에게, 감사도 드릴 겸, 차나 한 잔 대접할까 합니다...

(블로그 봐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 석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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