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첫 발표 순간을 들으려고 버티다가, 너무 늦어져서 결국 잠이 들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다 주려고 일어나면서 이재용 구속 소식을 들었다. 내가 이재용하고 개인적으로 감정으로 가질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이 구속되었다고 해서 내가 괜히 기분이 좋거나 그럴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진짜로 기뻤다. 요즘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 자주 만나서 신나게 수다떨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기다리고 버티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 이재용 구속, 진짜로 기뻤다.

1997년 12월의 IMF 경제위기는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타면서 들었다. 그 이후로, 단건으로 기분 좋은 경제 뉴스는 접한 적이 없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경제 뉴스들은 우울하거나, 별 의미 없는데 언론에서 난리치는 것들이다.

멀리 더 어렸을 때까지 기억을 돌려본다. 내가 경제 뉴스를 보고 진정으로 기뻐했던 적이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다. 회사가 잘 되면 노동자들이 어려워지고, 집값이 올라가면 서민들은 힘들어진다. 경제가 그렇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의 댓가가 있다. 많은 경우, 제로섬 게임과 비슷해서, 일방적으로 기쁜 뉴스라는 게 생기기 어렵다.

이재용 구속은, 경제학자로서 정말로 처음 보는 생생한 기쁜 소식인 것 같다.

순실이 이후로 나라의 전환점이 잘 생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 첫 전환점이 바로 이 구속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든 부자든, 적당히 '사바사바', 대충하고 넘어가고, 그 한계의 선을 그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넘어가도, 이 정도는 안돼!

경제는 좋아질 것 같다. 패도적 재벌의 이상한 지배구조, 그런 것만 완화되어도 지금보다 경제는 탄력 받는다.

간만에,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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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정세균 국회의장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왔다. 몇 년간, 거의 매일 보면서 지냈었다.

내가 살아가는 원칙이 그렇다. 누군가 굉장히 힘들 때 같이 지내고, 고생이 끝나면 떠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그가 오세훈을 큰 표 차이로 이기는 것을 보고, 나는 폐렴으로 입원해있는 둘째 아이에게 돌아왔다.

누군가를 돕고, 그걸로 뭔가 얻어걸리는,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는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하여간 간만에 만나서, 나중에 국회의장 그만두면 내가 평전하나 쓰고 싶다고 말했다. 당근빠따, 그렇게 하자고 한다. 어차피 별로 할 일도 없을테니...

정세균과 평생을 같이 지낸 것은 아니지만, 평전만큼은 진짜로 재밌게 쓸 자신이 있다. 그의 삶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아직 보지는 못한 것 같다.

나도 좀 재밌고, 즐거운 거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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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이후로 사람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감성은 바뀔 것 같다. 어떻게 바뀔까? 나도 가설 형태로만 생각해보는 중이라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68 이후로 바뀐 감성들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입생로랑도 68을 겪었다. 입생로랑도 그 때 프레타뽀르떼, 기성복 시장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저는 이미 새장 안에 갇혀버린 새였어요."

그는 오뜨꾸뛰르 매종에서 시작하였다. 첫 데뷔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그를 승계한 수석 디자이너. 그 때 그의 나이가 21세였다. 알제리 전쟁에 파병될 때, 그는 이 '더러운 전쟁'에 참가하는 걸 거부한다. 그리고 매우 보수적인 크리스찬 디오르에서 해고된다. 그 위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매종을 열게 된다.

매종에서 시작, 매종에서 그의 디자인 인생은 마감된다. 68혁명은 그에게 기성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매종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매종이 아닌 다른 방식의 옷 만드는 법을 상상하지 못했다.

패션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라인과 색상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길을 열어준 입생로랑이 자신을 '새장 안에 갇힌 새'라고 하다니... 그게 68이 그에게 준 영감이었다.

그는 상속녀나 부자집 마담이 아닌, 스스로 성공한 직장 여성들이 자신의 옷을 입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저렴하게 옷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물론 오뜨꾸튀르 매종이라서, 아주 싼 옷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최대한 낮추려고 했다.

그게 68이 입생로랑에게 준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입생로랑의 표정이 가장 밝고 행복했던 것은,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였다. 미테랑 정권이 열렸을 때, 그와 그의 파트너들의 표정은 진짜로 밝다. 이유없이 행복해했다. 68이후로 13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미테랑 정권이 끝나고, 입생로랑은 다시 어려워진다. 술을 점점 더 많이 마시고, 마약도 하게 된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사르코지가 참석한다. 그의 장례식 필름을 보았는데, 많은 디자이너 등 그의 동료들이 완전 똥 씹은 표정이다. 입생로랑의 관이 사르코지가 온 걸 좋아할까? 아마 똥 씹은 기분일텐데...

무언가 참여하고 노력하고, 그 결과를 눈 앞에서 볼 때, 우리는 입생로랑도 생애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 행복감이 만들어낼 변화가 과연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두 아이의 육아로부터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나도 입생로랑 평전 쓰고 싶다. 명박의 시절, 순실의 시대, 그 10년 동안 나도 '새장 속에 갇힌 새' 같은 느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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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는, '지도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삶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었었다. 의식했든 못했든,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은 지도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지랄하네',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2010년대 한국,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그런 게 아니다.

선배, 후배라는, 고풍찬란한 일본식 단어를 안 쓴지 몇 년 된다. 원래 한국에는 그런 말 없었고, 그런 전통도 없었다.

소학교 시절 얘기 중 감명깊게 들은 게, 같은 반에서 서로 존대해다는 말이다. 누구는 좀 어리고, 누구는 벌써 아기 아빠인데, 친구라고 반말하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는. 기수 따지고, 학번 따지고, 그런 얘기 안 한지 좀 된다.

학교 얘기도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하는데, 한국 말에 '자연어'처럼 배어 있는 거라서, 아예 안 하기가 쉽지는 않다.

'지도자'라는 단어도 몇 년째 쓰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지랄이야... 그런 건 아예 없는 것 같다.

아무도 지도받을 필요 없고, 아무도 지도할 필요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고, 그리고 수틀리면 그냥 서로 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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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좀 커서 애들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1. 책 읽을 때 만년필로 줄을 친다. 큰 아이가 한 번, 둘째 아이가 두 번, 만년필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결국 두 아이의 두 손, 네 개의 손이 온통 잉크 범벅이 되었다. 물티슈로 닦다가, 결국 비누로 두 손을 빡빡 닦을 수밖에 없었다. 30분이 지나갔다.


2. 조그만 소반을 놓고 책을 읽는데, 둘째가 어깨 위로 올라가고, 팔 위로 올라간다. 10킬로 가까운 아이를 어깨에 올리고 30분간 책을 읽었다. 아이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 쪽 어깨로 옮겨다녔다.


3. 실로 짠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결국 가슴팍에서 길게 실을 뽑아 냈고, 가슴팍의 조임매가 풀렸다. 아이 손에 실뭉치가. 오래 입기는 했어도 내가 가진 니트 중에서는 가장 비싼 건데, 외출할 때 입기는 어렵게 되었다. 올이 풀려버린 옷을 보면서 두 아이가 박장대소를 하고 행복해한다.


마침 읽고 있는 구절이, 1970년대 이후 여성들의 행복도가 전세계적으로 줄었다는 얘기였다.
나의 행복도도 줄어들고 있었다.


4. 아내가, 아이 둘 어깨에 태우고 책 읽는 거,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라고 한 마디 하고 갔다. 나도 어깨가 쑤셔서 더는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이를 보면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절절하게 했다. 방법이 없다,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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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질 것인가?

난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 걸 알아, 이미 알고 있었다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는 한다. 물론 진짜 그런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세상이 좋아질 것인가? 물론이다. 어렵긴 하지만, 세상은 결국 좋아질 것이다. 지금이라고 말하지는 않겠고, 정권만 바뀌면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결국 좋아질 것이다.

대선이 조기에 시작되었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그깐 정권 바꿔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렇게 얘기한다. 그렇게 얘기하는 게, 자신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방어적 연애와 비슷하기도 하다.

어차피 잘 안 될 줄 알고 있었다니까. 속은 덜 상하다. 그러나 좋아지는 게 있을까? 단 한 번의 연애, 단 한 번의 사랑, 그리고 결국 결혼.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냈던 이계안의 삶이 그렇다. 대학 시절 첫 번째 미팅에서 결혼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쭉.

뭐,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래서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도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안되면? 시간이 더 흐르면 잘 될 것이라고, 다시 또 생각을 한다.

대선 국면이다. 누구를 지지하든, 누구를 지지하지 않든, 정책 때문이든, 팬덤 때문이든,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들어간다.

모든 후보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에 임한다.

상황에 따라서, 물어보는 말의 강도와 맥락에 따라서, 별로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난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산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둘이나 낳고, 지금의 이 개고생을 안고 살 이유가 없다. 세상은 결국에는 좋아질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모두의 삶이 좋아지고, 모두가 만족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박근혜의 삶도 좋아질 지는 모르겠다. 순실이 언젠가는 행복을 찾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좋아질 것이다. 결국에는, 좋아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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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하다보니, 블로그 방문수가 백 만이 넘어갔다.

좀 열심히 쓰던 시절도 있었는데, 한동안 진짜로 정신이 없어서 그냥 방치해둔 시절도 있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가끔 글을 쓴다. 장기적 계획, 그딴 거 없다. 둘째가 언제 또 아파서 입원할지도 모르는 그런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사는데, 블로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한 때는 여기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사람들이 보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황폐하고, 망조 든 가문의 허물어져가는 대문을 보는 것과 같다.

뭐, 별 상관은 없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를 외치고 있는데, 독야청청 잘났다고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폭망과 이생망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내 인생은 그래도 값지고 보람있었다, 요러고 있는 게,

딱 반기문스럽다.

수많은 이생망들이 블로그에 와서, 똑바로 안하면 블로그 폭파시켜버린다고 할 때, 그 때가 내 삶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아주 열심히 살아가는 반기문을 보면서 요즘 배우는 게 적지 않다.

아, 저렇게 하면 저따구로 보이고, 요렇게 하면 요따구로 보이는구나.

<자본론> 전 3권을 통으로 읽어내는 것보다, 반기문 하는 거 유심히 살펴보는 게 배우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반기문이 인천공항에서 에비앙을 턱하고 드는 걸 보면서, 탄자니아에서 에비앙을 턱하고 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 내가 그렇게 보였었겠구나...

아디오스 에비앙, 포 에버...

생수를 마시더라도 동네 가면 동네 물을 마셔야한다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한 때의 영광에 이제는 별 내용도 없어 황폐해진 블로그를 보면서, 그래도 내가 반기문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잠시의 위로를 받는다.

'지나간 곳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영광을 구하지 말지어다, 블로그와 반기문을 교차로 생각하면서 잠시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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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토론회에서 쓸 발제문 쓰고 나니까 2시가 넘었다. 30대 때에는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토론회 발제문을 썼었다. 40대 때에는, 초반에는 좀 쓰다가 나중에는 꾀가 나서, 아예 토론회 참석을 안했다. 바쁘다는 핑게를 댔지만, 핑게는 핑게일 뿐이다.


옛날 서울말로 나이가 50이 되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내가 본 많은 영감들이 나이를 먹으면 지갑은 점점 더 꽁꽁 닫고, 입을 엄청 열었다. 이것저것 사정 아는 처지에, 정말 꼴값이라는 생각 많이 했었다, 내 처지에, 여전히 지갑을 열 형편은 아니다. 미안하니까 입이라도 연다는 건데, 이게 참 꼴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나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살았는데, 딱 그렇게 생겨먹는 꼴이다. 진짜 간만에 토론회 발제문 쓰고 나니, 역시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지갑 대신 입을 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인가?


근혜 말대로,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들어...


50이 넘으면서 단호함 같은 게 생기기는 했다.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서 움직이고, 보람이 있는 일을 피하지는 않겠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가, 모두가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런 세계이다. 돈 때문에, 의무감 때문에, 그게 좋은 건 아니다. 잠시 그렇게 움직일 수는 있지만, 평생 그렇게 움직이면 삶 자체에 자괴감 외에는 남는 게 없다. 돈이 모든 것을 보상해줄까? 돈은 잠시 행복하게 해주지만, 길게 기쁨을 주지는 않는다. 생물학에서 얘기하는 역치의 법칙 그대로이다. 없으면 티가 금방 나지만, 있으면 조금 더 있다고 해서 조금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돈 없으면 꽝이다, 사회 구성원들끼리 서로 이렇게 얘기하는 사회, 좋은 사회는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도 아니고. 성숙과는 거리가 먼, 그저 순실이 같은 얘들한테 놀림받기 딱 좋은 사회 아닌가 싶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정말로 대한민국이 순실이 놀이터였다. 신나게 놀고, 재밌게 놀고, 딱 털고 나가려는 순간, 그야말로 재수가 없어서 걸린 거 아닌가 싶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 "돈 없으면 꽝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런 것을 법칙처럼 모시지 않아도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 편이 서로에게 편하다. 돈과 권력이 마법의 열쇠가 되어서 뭐든지 열고 다닐 수 있는 사회, 그렇게 좋은 사회는 아니다. 한국의 상층부, 마법 열쇠 들고 다니는 순실에게는 그냥 훌렁훌렁 열렸다. 그들이 청년에게는, 약자에게는 또 얼마나 단호하게 잘 난 척을 하시고, 갑질들을 하셨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지갑을 열 수 없으면, 입이라도 다물어야지... 토론회 발제문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떠벌떠벌 입을 여는 게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된다. 그냥 머리 박고 살면서, 이래라 저래라, 그런 거 절대 안하고, 참견질, 상관질, 조언질, 이딴 거 없는 삶, 그렇게 살고 싶다.


입을 열면, 약속을 하게 되고, 약속을 하면 지키고 싶어지고, 그렇게 되면서 집착이 생긴다. 그리고는 욕심이 생긴다. 되고 싶은 것도 생기고, 이루고 싶은 것도 생기고. 그리고 이런 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꼴불견이다. 순실이도 자신은 충신이 되려고 했다는 거 아니냐...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아예 입을 다물 수는 없고. 어떻게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앞으로 1년간 곰곰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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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에게 뇌물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당연한 일인데, 당연한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게 돌아가던 나라라서 신기할 정도이다.

작게 보면 삼성이라는 하나의 기업에 관한 문제이고, 크게 보면 세습 자본주의로 전락해가는 3세 경영의 문제이기도 하다. 2세든 3세든, 정상적으로 상속세 낼 거 내고 진행되었으면 좀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하면 또 다른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건희의 삼성, 그건 크게 보면 공포를 상징했다. 과장되었든, 제대로 보았든, 한국은 이건희를 두려워했다. 미화하든, 칭송하든 혹은 공포에 떨든, 이건희의 삼성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삼성 국정원'이 국정원 정보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은연 중 받아들였다.

3세인 이재용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부러워하는 사람은 있을 수도 있고, 시기하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그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공포가 없으면 실력이 좋아야 하는데, 별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덩치가 그렇다. 순실이 뭐가 무섭다고, 그 앞에서 덜덜덜 떨면서 아기 취급을 받았을까?

이재용이 감옥가면 경제가 망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한국이 덩치가 커져서, 부패와 조직 비효율로 인한 손해가 당장의 기계적 손실보다는 더 클 것 같다. 이재용이 감옥 간다고 해서, 당장 재벌에 엄청난 변화가 오지도 않고, 갑자기 오너들이 경영에서 손 떼고 전문 경영인 체계로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궁극의 모습은, 오너가 쥐고 흔들면서 불법과 합법의 기묘한 경계를 타는 지금의 모습은 완화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재용의 구속영장이 제대로 처리되면, 그만큼 한국 경제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도 손을 못 쓰는데, 다른 곳은 어쩔까 싶은, 그런 전체적 교훈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세 승계, 3세 승계, 세금 낼 거 내고 해라. 그렇게 할 지분이 없으면, 오너로서의 명예만 갖고, 적당치 않은 3세들 황제 경영 청산하고.

상속 자본주의로 한국은 너무 빨리 가고 있었다. 그것에 약간의 브레이크 역할을 이재용의 구속이 해줄 것 같다. 괜히 국민연금 건드리고, 정권과 한 배 타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비즈니스가 잘 되는 건 아니라는 우리의 제도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속의 경제적 실익과 사업의 성과, 잘 계산해보지도 않고 식구 경영하는 것, 이제 차분히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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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1차 시장

 

1.

팔순이 다 되는 전병석 선생이 간만에 차 한 잔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2년 만인가, 다시 차 한 잔 했다. 그 또래의 영감들 중에서 주기적으로 뵙는 분들이 몇 분 있다. 그리고 많이 배운다. 뭘 배울려고 만나는 건 아닌데, 그렇게 오래 산 양반들을 만나면 느껴지는 바가 없지 않다.

 

<데미안>을 처음 읽은 것은 6학년 때의 일이다. 소설이 원래 얘기하려고 했던 거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사과 술을 만드는 과정, 그런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만든 칼바도스 같은 사과술이 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소설 <개선문>에서 주인공이 칼바도스를 마실 때마다 나는 <데미안>을 처음 읽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독 짓는 늙은이>도 그 시절에 읽었다.

 

<갈매기 조나단>은 중학교 1학년 때 읽었다. 이 두 책을 읽는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읽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 조나단 얘기가 그렇게 우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정말로 재밌었었다. 그리고 다음에 읽은 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건 도저히 이해도 못하고, 왜 보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내 주변의 여학생들은 정말로 이걸 재밌게 읽었다. ", 베르트르여, 나의 베르트레여", 이렇게 시작하는 시로 독후감을 쓴 친구가, 그걸 다 읽지 못하고 울었던 것은 평생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끝까지 읽기도 힘든 저 소설에 감명 깊어하고, 슬퍼하고, 그리고 그걸 동감하는 내 또래 친구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에, 놀랐다. 정말로 놀랐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덮고 바로 펄벅의 <대지>를 읽었다. 진짜로 재밌었다.

 

데미안이나 조나단,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책들이다. 그걸 출간한 사람이 전병석 선생이다. 그 앞에 앉으면 세월의 기억이 묵중하게 다가온다. 책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그 삶을 귀하게 여겼던 양반들의 시절이다.

 

전병석 선생도 경제학도였다. 그 시절에 공부하던 얘기를 하고 싶으시면, 이래저래 나에게 연락을 한다. 그 또래 할아버지들 중에는 직접 아는 분도 있고, 건너서만 전설처럼 아는 분도 있다. 하여간 이 양반이 살면서 지키고 살았던 것은 딱 두 가지라고 하신다. 땅을 사지 않는 것, 주식을 하지 않는 것한국 최초의 주식 전공책도 이 양반 출판사에서 냈는데, 초고를 보니까 자본주의에서 허가된 도박이 바로 주식이라는 생각이 드셨다고팔순이 다 된 지금까지, 그걸 지키고 사신다.

 

그런 삶을 마주 대하면,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

 

2.

저자로 데뷔한지, 나도 이제 10년은 넘었다. 그 동안에 많이 변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변했다. 10년 전에 책 쓰겠다고 하면, 걱정은 하면서도 "어려운 일 한다"고 사람들이 약간은 격려를 해주었다. 지금은 책 쓰겠다고 하면, 인생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약간의 안스러움, 약간의 경멸, 이런 시선으로 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회과학 책이 거의 안 팔린다는 사실 자체는 변한 게 없는데, 약간의 존경심 같은 것도 사회적으로는 사라진 것 같다. 그 영광은 요즘은 웹툰으로 많이 간 것 같다. 만화와 사회과학 사이에 웹튠의 등장과 함께 교차한 지점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가장 크게 변한 것은 1차 시장에서 2차 시장으로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차 시장과 2차 시장, 말 그대로 본원적 시장 혹은 선시장과 파생시장 혹은 후시장 사이의 차이이다.

 

예전에 텍스타일에서 파리와 밀라노 관계가 그런 선시장과 후시장 관계였다. 파리 프리미어 비전에서 그 시즌에 유행할 천이 먼저 선보인다. 그리고 1월달쯤, 미처 소화되지 않은 천 혹은 수요조절에 실패한 천이 시즌을 마감하기 전에 후시장으로 나오게 된다. 주로 밀라노에서 열렸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선시장으로 가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후시장으로 갔다. 안목만 뛰어나다면 아직 시즌에 유행하지 않은 천을 대량으로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이나 중국 같은 개도국을 노리고 저렴한 가격에 크게 한 번 유행을 시킬 수 있다. 별로 틔는 안 나지만 떼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내가 알바로 무역 에이전트 비슷한 거 할 때, 선시장에서 후시장으로 넘어가는 트렌드 분석 같은 것을 했었다. 패션 시장에서는 손 뗀지 워낙 오래라서, 요즘은 후시장 구조를 잘 모른다. 런던 등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폼은 선시장이 나지만, 돈은 후시장이 더 벌기 좋다. 물론 기회 확률을 따지면, 결국에는 비슷해진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책은 1시장이었고, 선시장이었다. 좋은 책이나 읽기 편한 책을 쓴 사람들이 책 시장에서 알려지고, 신문이나 방송으로 진출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저자 발굴 방식이었다. 유시민도 그랬고, 진중권도 그랬고,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강준만도 그랬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 시절의 맨 끝에 속했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책 시장이 1시장도 아니고, 선시장도 아니다. 책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이 책을 쓴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의 책이라야 그나마 좀 팔린다. 한국의 사회과학 책 시장, 좀 넓게 보면 인문교양을 포함한 '양서 시장', 이 자체가 일종의 파생 상품이 되었다.

 

3.

지난 10, 책 시장과 비슷하게 움직인 시장이 한국에는 또 하나 있다. 정치인 시장이 그렇다.

 

원래 정치는 정치로 유명해지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그 유명을 기준으로 다른 일을 하는 시장이다. 10년 전까지, 한국은 대체적으로 그랬다. 3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그들이 무슨 방송을 하거나, 책을 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유명해지는 일을 해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민주화의 시절, 한국 정치는 1차 시장이고 선시장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3김 시대 청산'이라고 하지만, 지나와서 보니까 3김만 청산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 절차 자체도 청산된 듯하다.

 

지금은 정치를 해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해진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다. MB가 그랬고, 안철수가 그랬고, 조금 먼저는 문국현도 그랬다. 근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무너무 유명한 아버지를 등에 엎고 모든 일을 했다.

 

정치가 정상화된다는 것은, 기초의회나 광역의회, 이런 데에서 성공을 만들어서 유명해지고, 그걸 자산으로 국회의원이 되거나 단체장이 되는 게 일반적인 상황으로 받아지는 것이다. MB가 튀어나오고, 트럼프가 튀어나오고,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일은 아니다. 지난 10, 한국의 정치도 이렇게 길게 보면 좋은 일이 아닐 것이 일반화되었다. 기초자치단체장인 이재명의 경우는 어떨까? 조금 특이한 경우이기는 한데, 엄밀히 생각하면 자치의 영역에서만 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샌더스 모델과 유사한 점과 상이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4.

책과 정치가 1차 시장이나 본원시장이 아니라 2차 시장, 파생 시장이 되었다는 기이한 공통점을 왜 가지고 있을까? 여러 가지로 설명을 시도해볼 수는 있는데, 딱 찍어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한국의 지식 사회 혹은 엘리트 집단의 재생산 구조에 문제점이 생겼다는 것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엘리트 집단 역시 노후화된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연성화된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더 딱딱한 지식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스타가 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어령이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당대의 주요 소설들에게 시비를 걸던 게 26세이다. 그 뒤에 이어령만큼 똑똑한 사람이 한국 사회에는 태어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만큼 늙어갔고, 그만큼 벽이 높아졌다. 나이와 상관없이, 저자로서 혹은 작가로서 기성 세대에게 당당하게 버틸 수 있는 장치로는 책 만한 것이 없다. 이런 길이 점점 더 막혀간다.

 

젊은 정치인이 지역에서 성공하면서 정치로 유명해지는 것이 어려운 것만큼, 책으로 유명해지기도 어려워졌다. 이게 지금 당장에는 문제가 아니지만, 5, 10년 혹은 20년 후, 이런 장치를 유지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5.

왜 책을 쓰느냐, 나도 10년 만에 다시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재미 있어서 쓴 건 아니다. 10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 돈이 없어서? 10년 전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다.

 

10년 전에는, 내가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생태나 환경 혹은 문화와 같이, 당시에 내가 공부하던 영역은 한국에서 워낙 비주류이고, 좌파 내에서도 소수였다. '비주류의 비주류', 당시 내 위치였다.

 

지금은? 꽤 많은 책을 이미 썼고, 아직도 정리해야 할 것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물론 해보고 싶은 것과 써보고 싶은 것들이 아직 좀 남아있기는 하지만, 죽을 고생을 하면서까지 그걸 꼭 정리해야겠다는 열정은 이미 남아있지 않다. 나도 그 사이, 이제 나이를 먹었다.

 

10년 전에도 팔릴 것이라는 생각을 안하고, 누군가 해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썼다. 그 사이 출판 환경은 더 안 좋아졌다. 안 팔리는 것은, 몇 곱절로 더 안 팔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책을 쓴다고 하면 '쯧쯧', 진짜 신세 망친 사람처럼 사람들이 지켜본다.

 

간단하게 10년 사이의 변화를 정리해 보면

 

안 팔리는 건 똑같은데, 격려라도 좀 받으면서 쓰는 것과, 만류를 무시하고 쓰는 것,

 

딱 그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나는 책을 쓰는가?

 

그래서 이 질문에 답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답을 하려고 해봤는데, 양심에 맞고, 논리에 맞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을 가름하기로 한다.

 

잠시만

 

공식적이고 논리적인 대답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속마음은, 한국의 책 시장이 1차 시장이 될 단초라도 생길 때까지, '조금만' 더 버틸 수밖에 없다고.

 

한국이 정상적이 된다는 말은, 책시장이 다시 1차 시장이 되고, 정치가 다시 1차 시장이 된다는 말과 같다. 유명한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해서 유명해지는 것, 이게 일반적인 선진국의 정치이다. 우리가 순실이와 함께, 그리고 명박과 함께 겪은 이 이상한 나라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그 동안에, 우리의 정치는 아주 이상해졌다. 정치는 혐오재가 되었고, 정치를 한 사람은 '똥 묻는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다른 걸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 그래서 뿌리가 얕다.

 

이런 게 정상적인 된다는 말과, 책이 정상적으로 된다는 것은 같은 과정이다. 동어 반복이기도 하다. 인과의 복잡성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현상적으로, 결과적으로는 같은 것을 관찰하게 된다.

 

도매 서점 하나의 부도와 함께, 얕고도 얕은 뿌리를 가진 나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중이다. 정상적인 상황도 아니고, 바람직한 상황도 아니다.

 

책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이 책을 쓰는 지금의 상황, 사실 악몽과 같은 상황이다. 이 상태를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게는 '저자'라는 말은, 다른 유명한 나라의 저명한 저술가의 전설 같은 얘기일 뿐이다. 내가 본 태국이 그랬다. 자기 나라에 사회과학이라는 쟝르가 있고, 사회과학 저자가 있다는 얘기를, 내가 아는 태국 교수들이 정말로 부러워했다. 우리의 미래가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지금의 20~30대 젊은 학자나 저술가 중에서 책으로 유명해지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인구 천 만도 될까 말까 한 작은 나라들이다. 문화와 학술, 강대국이다.

 

유명한 사람이 정치하는 나라가 정상적이 되기 어렵고, 이미 유명해진 사람들이나 책 쓰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가 없다. 2017년 한국, 정치든 책이든, 악몽이다. 이 악몽은 빨리 깨어나야 한다. 순실이 패거리가 힘 쓰는 나라, 그 반대에 해당하는 의미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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