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은 수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한 번은 하겠는데, 두 번은... 그래도 요 번 주에는 꼭 두 번을 하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몸을 너무 막 굴렸다.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고. 아침에는 죽어라고 푹 자는 걸로 겨우겨우 버텼는데, 애들 어린이집 아침에 보내면서 아침에도 못 잔다. 이제는 언제 크게 아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진짜, 몸을 너무 막 굴렸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지난 1년 동안 진짜로 괜찮은 자리나 일이 제안이 많이 왔었다. 왜 꼭 그런 일들은 몰려다니는지 모르겠다. 다 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할 수가 없다고 물리면서, 속이 좀 쓰리기도 했었다.

그 중에 가장 아쉬운 게 하나 있다. 각색으로 부탁이 왔었는데, 결국에는 기획과 각색 그리고 연출까지 포함해서 통으로 받아가 달라고 했다. 30억, 비싸면 40억 밑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원작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그 원작을 재밌게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애 돌보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연출을 맡을 자신이 없었다. 하기로 했으면 전체를 통으로 맡아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애도 애지만 일단인 내 건강이 자신이 없었다. 그냥, 하던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30대 후반에 건강이 크게 안 좋아서 쓰러진 적이 한 번 있고, 요즘 건강이 안 좋다. 잠깐씩 무리하는 정도는 하는데, 예전처럼 몇 달 동안 며칠씩 밤새고, 그런 일은 이제 못한다. 나도 이제 50이다.

1년간은 아무 생각 안하고, 수영장에나 다시면서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 기간으로 삼기로 했다. 지금 건강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 제 명에 못산다. 연출을 하게 될 기회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올 것 같다. 그런데 작년처럼, 건강상의 이유로 못하는 건 좀 인생을 바보처럼 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출간 일정은 올해까지만 잡혀 있다. 물론 다 못 쓸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년 초로 넘기고. 내년에는 출간 계획이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비워두고 갈 생각이다. 내년에 책 쓸 여유가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계약된 것만으로 큰 영화 두 편의 기획을 맡고 있다. 두 번째 것은 아직 연출도 확정을 못하고 있다. 이거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것만 해도 아기들 아빠가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사이드로 붙었던 몇 작품도 처리를 해야 하고, 가끔은 새로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이다.

하여간 내년 여름까지는...

수영장 열심히 다녀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이다. 나머지는 지금 일정 잡힌 것을 제 때에 마무리하는 정도로...

1년간 체력단력 기간으로 삼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제일 좋아한다. 제발 그렇게 좀 해달라고 한다...

살다보면, 다음을 위해서 크게 쉬어가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몇 년간 정말로 너무 몸을 막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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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회 2

영화 이야기 2017. 5. 21. 10:15

별 생각없이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 2>를 보게 되었다. 그냥 tv 에서 해주는 일부를 보고는 결국 tv에 2,500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보았다.
멍...


<신세계>의 일부가 보이는 것 같고, <더킹>에서 나왔던 들개신은 아예 통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부산영화제에 나왔나, 하여간 제대로 개봉하지는 않은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다. 확인해보니까 전작인 흑사회는 기념 상연 정도 했던 것 같고, 흑사회2는 상영관 2개에서 누적관객수 364명이다. 아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면, 기념비적인 364명 중에 한 명이 되었을 것 같다.


20대에서 30대 초반, 나도 이렇게 기념비적인 영화를 보는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아기 태어난 다음에는 다 꽝이다. 1년에 한 번 극장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안관> 꼭 봐야 한다고 주위에서 난리인데, 진짜로 갈 형편이 아니다.


<무간도>를 굉장히 재밌게 본 적이 있다. 2편도 재밌게 봤다. 3편은, 음, 그 정도는 아니다.
<흑사회 2>는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많은 제작자나 창작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것들이 종종 있다. <더킹>의 들개신은 아마도 여기에서 나온 것 아니겠나 싶다. <더킹>에서의 들개신은 좀 설정적이고, 기능적이다. <흑사회 2>는 영화의 골격에 해당하고, 클라이막스로 달려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들개에게 물려죽는 것이 주는 원초적 공포가 있나?


최근 한국 영화의 일련의 흐름을 보수신문에서는 '사회파' 혹은 '정의의 상품화', 이런 식으로 부른다. 나는 그냥 '강한 남자 신드롬' 정도로 분석한다. 이런 강한 남자 얘기의 원형과 비슷하기는 한데...


그런 것보다는 스타일이 좀 더 드라이하고, 홍콩 뒷골목의 싸구려 느낌을 잘 살렸다. 한 마디로, 강한 남자라기 보다는 꼬질꼬질한 남자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구조와 욕망 안에서 그 꼬질꼬질함이 진짜로 지저분한 전략으로 변하게 된다.


나온지 5년도 넘는 영화다. 아마도 수많은 강한 남자 신드롬을 추구한 사람들이 이미 보았을 영화를 뒤늦게 복기 하듯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았어도 시대의 영감을 만드는 영화들이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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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와 보람

 

몇 년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은 그래도 아이들이 덜 아프고, 내 삶에도 약간의 루틴이 생겼다. 몇 년째 밀리고 밀려온 책들을 요즘 정리하는 중이다. 언제가 하기는 해야 하는 일이라서, 별 일 없는 요즘 약간 무리해서 하는 중이다.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책이 나가면서 나도 이것저것 잔상이 많아졌다. 내가 하는 공부는 처음부터 비주류 중의 비주류, 비인기 종목들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기는 하는데,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것들을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비인기이거나 너무 일찍, 그래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런 주제들을 다루었다. 당연히 책도 인기가 없는 종류이다.

 

미세먼지를 다루었던 <아픈 아이들의 세대>로 데뷔를 했다. 요즘은 인기 종목이 되었지만, 내가 그 주제 다루던 시절만 해도, 그런 게 있는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허걱허걱, 겨우 1쇄 다 털고 절판되었다. 복간하자는 얘기가 있기는 했는데, 그 때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비주류의 비주류, 마이너의 마이너, 그게 학문적으로 내 위치다. 생태학, 농업, 사회적 경제, 이런 걸 20대 때부터 봤다. 좌파 내에서도 노동과 관련된 주제, 재벌과 관련된 주제, 이런 건 그 시절에도 인기 종목이었다. 내가 성격이 좀 더럽다. 남들이 다 하려고 하는 것, 그런 건 갑자기 하기가 싫어진다. 남들 다 하는데, 뭐하러 나까지 해? 그런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인기 있는 분야는 어깨싸움도 많이 해야 하고, 줄도 잘 서야 한다. 어깨싸움도 싫고, 줄 서는 건 더더욱 싫었다.

 

얼마 전 정세균 국회의장이 갑자기 연락을 해서, 난데없이 차를 한 잔 마시게 되었다.

 

"너네는 설에 왜 세배 안 와?"

 

그게 첫마디였다. 정세균과 친한 사람들은 세배 가나보다. 내가 이끌던 전문가 집단은 정세균계로 분류가 되었었나보다. 한 때는 친문으로 분류되다가, 한 때는 친 김종인, 또 한 때는 반 김종인, 그렇게들 분류를 하다가 나중에는 정세균계로 분류를 했다고 한단다. 알 게 뭐냐. 나는 누구한테도 줄 선 적 없고, 앞으로도 아무에게도 줄 설 생각 없다. 늙은 아빠가 아이들 줄 맞춰서 밥 먹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래도 설날 세배 얘기 들으면서 아주 오래 전 강사시절 생각이 났다. 시간강사들, 우리들끼라는 주니어 박사 혹은 주니어라고 부른다. 설날이 되면 아주 괴롭다. 주류에 해당하는 선생들 중 한 명을 골라서 세배를 가야 한다. 물론 간다고 뭐가 생기는 건 아닌데, 안 가면 아주 괴로워진다.

 

누구한테 줄을 서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냥 설 전날 술 때려 마시고 푹 자버렸다. 내가 아버지한테도 세배 안 하던 시절인데, 세배는 누구한테! 공무원 시절에도 세배를 가는 걸 봤다. 역시 안 갔다. 그리하여 결국 이 날 이 때까지, 아무한테도 세배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주제도 비주류, 살아가는 패턴도 비주류, 난 늘 혼자 있는 게 좋았고, 혼자 노는 게 좋았다. 어깨싸움도 싫고, 패거리도 싫고. 학자가 된 이후로, 그렇게 혼자 지냈다. 그러나 보니, 내가 다루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비주류의 비주류, 절대로 팔리지 않을 주제의 책이 되었다.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그래도 이렇게 잘 다루기 어렵고, 해봐야 티도 안 나고 인기도 없을 책을 발간시키고 나면, 보람이 느껴진다. 이 번 책이 특히 그렇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별로 다루지 않고, 방치된 분야의 책들이다.

 

이제 슬슬 마무리 작업으로 들어가는 <국가의 사기> 역시, 별로 인기 주제는 아니다. 금융사기와 다단계 사기 얘기로 시작하지만, 주된 내용은 경제에 관한 행정 분야이다. 경제 행정, 역시 인기 없다. 경제 공무원은 누구나 되고 싶어하지만, 이걸 어떻게 견제하고, 어떻게 폭주를 막을 것인가, 그런 건 비인기 종목이 된다.

 

작년 7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소설책이 한 권 있다. 이건 에너지와 전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빠르면 8, 늦으면 9월에 나올 것 같다.

 

아이들 낳고 난 이후로 나는 긴축생활 중이다. 버는 돈은 유동적인데, 나가는 돈은 고정적이다. 줄이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소설책 준비하면서 이번에는 히로시마에 취재 여행을 갔다 올 생각이다. 히로시마 공과대학에서 찾아볼 게 좀 있다.

 

소설책 준비하면서 모아둔 자료들이 좀 있고, 조금 더 모을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주제이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주제이다. 물론 외국에서 많이 다루지 않은 건, 한국에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서 그런 것이고. 자료들 모으다가, 충분히 의미 있는 자료가 걸리면 에너지 책으로 발간할 생각도 있다. 그만큼 좋은 자료가 모일지 아닐지, 아직은 모른다. 잘 모아지면 출간할 생각은 있다.

 

내가 다루는 주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생소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원하는 것과는 반대의 결론 그리고 시각 자체가 반대인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싫어할 주제들이다. 그런 얘기 안 하고 싶어하는데, 그래도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고민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런 마음으로  책을 준비한다.

 

그렇게 몇 년 준비한 책들이 실제 발간되면, 진짜로 보람이 느껴진다. 물론 내가 준비한 모든 책이 다 발간되는 건 아니다. 결론이 영 없다, 그러면 막판이라도 포기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그것도 못한다. 농업경제학이 그렇다. 박근혜 시절에, 농정은 개판 정도가 아니라 진짜 반대편으로 갔다. 그런 걸 한 번 털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이게 주요 현장이 대부분 지방이라서, 이거 할려면 차부터 사야 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새만금과 관련된 다큐나 책을 하나 준비해볼 생각이 있는데, 이것도 엄두 안 나기는 마찬가지다. KBS MBC에서 다루면 그만인데, 영 난색이다. KBS에 토스하고 털려고 했는데, 토스가 잘 안 된다. 대선 전에는 보수 정권이라 힘들다고, 대선 끝나고 나니 청와대에서 싫어할 거라고 눈치보고. 이런 

 

나는 살아가는 게 편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힘들었지만, 요즘은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고, 아이들도 제일 힘들 때는 한 고비 지나서, 진짜로 한시름 놓았다.

 

TV나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일들, 신문에서도 맘 먹고 다루기 힘든 긴 호흡의 얘기들, 이런 것을 다룰 때 책이 매체로서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몇 년 준비해야 하는 일, TV에서는 50분 이내로 다루고 그만이다. 실제로 TV 다큐가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분석하는 것은 아니고, 많은 경우 누군가가 기초 연구를 해놓고 어느 정도 정리를 해놓으면 그걸 가지고 따라가게 된다. 장기 기획, TV 다큐는 못한다. 게다가 정권 눈치도 많이 봐야 하고. 당당하게? 노무현 때에도 그렇게는 못했고, 신정권에서도 포괄적 자유는 있더라도 구체적 자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신문은?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집요하게 몇 년간 들여다봐야 하는 일, 신문도 그런 일은 못한다.

 

정부 연구소? 장난치나? 언제 정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진지하게, 그것도 긴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게 해주는 것 봤나? 연구원들 월급이 지나치게 인센티브 위주로 구성되어서 소신을 가지면, 배고프거나 쫓겨나거나. 장기 승진 누락되면 버티기가 힘들다.

 

매체로서 책만이 갖는 장점과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서 나도 힘을 보태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느껴진다. 보람이 밥 먹여주나? 보람은 삶의 의미를 준다. 내가 왜 사는가, 그런 문제로 머리를 쥐어뜯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어느 교육부 국장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다. 나는 공무원이 그런 소리를 술 자리에서라도 하지 않을 나라를 꿈꾼다. 그래서 내 삶이 보람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주류 상품, 학계에서의 메이저, 공직에서의 간부들, 그런 데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를 나는 다룬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작은 보람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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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하면 덜 가난할 수 있을까…해법은 '사회적 경제'"

우석훈 신간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청와대 직제에 일자리 수석을 신설하며 그 산하에 사회적경제 비서관을 배치했다. 이를 두고 사회적 경제가 새 정부의 주요 어젠다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도 사회적 경제에 주목한다.

그는 신간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문예출판사 펴냄)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덜 가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답으로 사회적 경제를 제시한다.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인 의미를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 물건이나 지식을 서로 빌려주며 함께 쓰는 공유경제, 그리고 협동조합 등이 중심이 된 경제다. 지역공동체 내에서 주민이 지역 자원을 이용해 수익사업을 하고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기업도 사회적 경제에 속한다.

책은 사회적 경제의 기본 개념과 역사적 흐름을 설명하고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진행되는 사회적 경제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며 이해를 돕는다.

사회적 경제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싹을 틔운 이후 노무현 정부 때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협동조합법이 만들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승민 의원 등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저자는 특히 경제불황기 사회적 경제가 사회의 안전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자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바로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자영업을 시작하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에서 1∼2년 정도 일하면서 경험을 쌓고 자신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사회적 경제가 불황기에 고용을 임시로 확충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책은 또 사회적 경제가 '좌파 정책'이라는 인식이 옳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치가였던 무솔리니가 대공황에 빠진 이탈리아의 위기 극복을 위해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정책을 고민했다는 점과 대표적 협동조합인 농협이 군사정권 때 만들어졌음을 상기시키며 사회적 경제가 이념을 뛰어넘는 시스템임을 설명한다.

저자는 "2008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사회적 경제라는 흐름이 좀 더 안정화돼서 새로운 구조가 될지, 아니면 10년 정도 유행하다가 '별 볼 일 없다'며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면서 "그러나 이 흐름은 일시적인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경제의 구조적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16쪽. 1만4천800원.

zitrone@yna.co.kr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8/0200000000AKR20170518147100005.HTML?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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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제주도로 1박 2일 출장, 우리는 애들 다 데리고 출동. 큰 애가 기침감기가 남아 있었고, 물갈이 하느라 둘째날 설사. 나는 애만 봤는데, 애들하고 틈틈히 바닷가 가서, 바다는 정말 원없이 봤다.

제주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인생 별 거 없다. 주어진 시간 열심히 살고, 내가 남들에게 뭘 해줄 수 있나 더 생각하고, 잠시라도 짬이 나면 행복을 향해 질주!


(쓰다보니, 요 문장이 너무 맘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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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최종 제목이 이렇게 잡힌 것은 출판을 몇 주 남긴 때의 일이다. 그 직전까지는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사회적으로'였다. 나는 이 제목이 더 좋았지만, 도저히 입으로 읽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입말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파자형 제목을 포기하고, '사회적 경제'를 그냥 이마에 달기로 했다.

이 책은 계약서부터 시작하면, 5년도 넘는다. 진짜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제가 청년에서 사회적 경제로 바뀐 것은 3년 정도 된다. 그 뒤로도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회적 경제'라고 제목에 다는 것은 나도 부담스러웠고, 출판사도 부담스러워했다.

사회적 경제라고 제목에 쓰는 건, 책 팔기 싫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랑의 노동'을 비롯해서, 원래 초반 작업 때 사용하던 제목들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내 심경이 바뀌었다. 책은 덜 팔리더라도, 그냥 정직하고 정확한 제목을 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책 제목 그대로이다. 어떻게 좌우를 넘는가, 내가 보고 들은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였다.


2.
지금 내용을 마무리하려고 준비하는 또 다른 책이 있다 <국가의 사기>, 시기상으로 그리고 정서상으로,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는 아무래도 쌍둥이 책이 될 것 같다. 한참 중반 작업쯤 들어가 있을 때, 최순실 사태가 벌어졌다. 나에게도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인가? 온다면 그 시대가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사회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좌우 이념의 대결로 인해서 어려웠던 문제가 사회적 경제 책에 주로 나간다. 그리고 제도 개선에 관한 얘기 그래서 미래 경제의 비전에 관한 얘기가 <국가의 사기>로 정리된다. <국가의 사기>는 벌써 원고가 마무리되었어야 하는데, 아이 둘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그렇게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나도 이 격동의 시대, 마음을 정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대체적인 입장 정리는 끝났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3.
사회적 경제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좀 안다. 그렇지만 변화의 여지가 아직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책을 쓸 이유는 없다.

책을 쓰는 방법이 과연 효과적일까? 생각을 좀 많이 했다.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이고, 효과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길게 시간을 두고 진짜 변화를 생각하면, 여전히 책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내가 엄청난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길게, 다른 말로 하면 한가롭게, 뭐가 더 나은 길인지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은 좀 있다. 하루하루의 호흡으로 살아가면, 책은 쓰기 어렵다.

어떤 책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나면 책이 실제로 나오는데 3년 정도 걸린다. 물론 FTA나 세월호 때처럼 급하게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호흡은, 3년 정도인 것 같다.

3년이 지나도 여전히 의미가 있거나, 여전히 시대의 최전선일 때, 그 때 출간을 한다. 언론과도 많이 다르고, 방송과는 더더욱 다르다. 2~3년 지났을 때 무의미해지는 얘기, 그런 건 책으로 다루기가 어렵다.

최근에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다.

누군가는 길게 보고, 넓게 살펴보고, 꼭 정답은 아닐지라도 계속 살펴보는 작업을 하는 게 의미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일을 조금은 더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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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기자 사건으로 한겨레 신문사가 직접 사과문을 걸었다. 이제, 사건은 진짜 사건이 되었다.

1.
안수찬 사건이라고 해서 직접 찾아봤다. 좀 과한 글을 쓴 것은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안 써도 되는 글을 쓴 것처럼 보인다. 공인이 되면, 효과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게 된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그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말로 사회적 효과가 발생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격하게 써도 된다. 그것도 글의 테크닉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런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면, 최대한 부드럽게 쓰는 게 낫다.

몇 년 전, 안수찬 기자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종종 만났다. 의욕과 패기가 넘쳤고, 뭔고 하고 싶어 '미치고 싶은 상태'였다.

요즘은 기자나 편집국에서 직접 아는 사람들에게 메일이나 문자로 취재동향을 알려주는 게 흔한 일이 되어다. 자신의 기자로서의 일상을 일일이 써서 보내준 건, 안수찬 기자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깊이 인상에 남았다. 어떤 의미로든, 안타까운 일이다.

2.
신정부 이후, 진보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나는 한겨레에 글을 오래 썼고, 그 시절에도 한겨레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겨레 내부에 엄청 친한 기자가 있어서 내부 사정을 잘 알고, 그러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 시절,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신문으로서의 한겨레의 운영에 대해서 불만이 좀 있었다. 그 시절의 한겨레 운영진을 '부국강병파'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민감한 사건이 꽤 있었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쟁들, 새만금을 보는 시선, 굴직굴직한 논쟁들이 있었다. 아마 이라크 파병 이후로 부국강병파라는 말이 나왔던 것 같다. 국가는 부유하고, 군사는 강하고... 당시 청와대가 아니라 한겨레의 기본 논조를 그렇게 비판하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내가 쓰던 글을 한겨레에서 교정교열이나 문단의 순서배치 말고는 크게 손 댄 적은 없다. 딱 한 번, 내부의 의견을 반영해서 고쳐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글이었다. 별로 고치고 싶지 않았지만, 죽어라고 고집한다고 해서 민주평화가 오는 것도 아니니... 그러시라, 그랬다. 물론,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완전 열받았었다. 혼자 그러고 말았다.

정권과 비판, 이건 언론이 가진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편, 남의 편, 이건 선거 때의 일이고, 정권이 형성되면 잘 한 건 잘했다, 못한 건 못했다, 이상한 건 이상하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덜 이상해진다.

3.
신정부가 들어섰다.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잘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고, 잘못된 일도 있을 것이다. 잘 하는 거야, 잘 했다고 하면 되니까 쉬운 거고. 못하는 것도 다루기가 쉽다. 이렇게 하면 잘 하쟎아, 이런 방식으로 서로 너무 곤란하지 않은 정도에서 절충안을 만들 수가 있다. A안, B안, 그도 아니면 C안, 이런 글이 사실 제일 쓰기 쉽다.

그렇다면 잘못한 일은?

하거나 말거나, 기술적으로 중간 대안이 없는 일은 다루기가 아주 어렵다. 이라크 파병, 가거나 말거나. 이미 진행된 상태의 황우석 사건, 덮거나 열거나.

덮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많은 경우 거대한 충격파를 감내해야 한다. 정권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느 쪽 정권이라도 부담되는 일이다. 정권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무오류를 증명하려고 한다. 그 거대한 충격파에 맞서는 일은,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쉽지 않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벌어진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건 선거 전에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일 혹은 정책의 일에는 기술적인 측면이 붙는다. 이 얘기를 할 거냐 말 거냐, 그걸 선택해야 한다.

안수찬 사건은, 그래서 충격파이기는 하다. 아쉬운 것은, 안수찬이 하지 않아도 되는 글을 너무 열심히 썼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기술적 논쟁이 시작된 이후에 안수찬의 글이 나왔다면, 좀 다른 맥락으로 읽혔을 수도 있다. 글이 날 것인 게 문제? 어차피 sns에는 날 것이 올라간다. 심각하고도 의도적인 허위에 기반한 글이 아니라면, 정제된 글을 사람들이 거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안수찬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한겨레 경영진이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부국강병파'라고 불리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당선 이후, 언론이 하는 주요 기능은 용비어천가는 아니다. 기술적 분석을 하고, 기술적 지적을 하는 것이다. 대안이 없으면? 그러면 하지 말라고, 목을 내놓고 그 얘기를 하는 거다. 그래야 발전한다. 그리고 그렇게 용기를 내야 세상이 좋아진다.

선거 한 번으로 정책이 조화롭게 만들어지는 것, 그런 건 아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5022.html?_fr=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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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레이버2

영화 이야기 2017. 3. 22. 11:20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7편의 영화를 며칠에 걸쳐서 봤다. 2014년에서 2015년, 2년에 걸쳐서 영화 7편이 만들어진 거였다. 딱 둘째 애 태어나고 세 살 될 때까지 그리고 내가 뭐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던 그 시절에 만들어진 거였다.

봄이 오고, 둘째 아픈 것도 한시름 놓고 나니까 제일 먼저 한 게 실사판 레이버 영화 찾아본 셈이다. 그 동안에 정신이 없어서 이런 거 있는 줄도 몰랐다.

오시이 마모루가 신이라들 하는데, 진짜로 신 맞는 것 같다. 공각기동대는 매트릭스를 비롯해 수많은 얘기들의 원형이 되었다. 그 정도 하면 어느 정도 한 생에서 해야할 정도의 일은 다 한 거다. 그 반에 반에 반에 반도 못하고 그냥 삶을 낭비하게 되는 게 삶이다.

흔히 하는 말로, '한 바퀴 더' 돈다고 한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라는 이 복잡한 제목의 시리즈가, 진짜로 한 바퀴 더 돈 얘기이다.

내 입장에서는 공각기동대보다 더 재밌다. 공각기동대의 최근 시리즈도 봤다. 처음 공안9과가 만들어지는 그 배경에 관한 얘기들이 최근에 다시 하고 있다. 소령이 아직 소령이 아니던 시절...

패트레이버의 특차2과는, 그보다 설정이 훨씬 더 재밌고, 우리의 삶과 더 밀접하다. 그리고 '잉여'와 공무원 사이의 긴장 관계가 더 팽팽하다.

공각기동대는 앞으로 올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전뇌가 더 발달할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패트레이버는, 이미 경쟁에서 밀려버린 기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레이버, 이제는 아무도 만들지 않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게다가 사람이 타고 조용해야 하는 로봇, 경쟁에서 졌다.

언젠가 퇴화하게 될 기술, 이건 지금 우리의 얘기이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이 짧으면 10년 길면 20년 내에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남을 것과 남지 않을 것, 그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오사이 마모루의 얘기는, 그렇게 경쟁에서 애당초 밀려버렸지만, 아직은 문을 닫지 않은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직이지만, 결코 한가하지는 않은.

며칠에 걸쳐 보면서, 진짜로 몸 세포 구석구석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해리포터, 그런 세계적 빅히트를 친 연작 시리즈들을 아주 재밌게 봤다. 그런 얘기들은, 대부분 내 얘기는 아니다.

Man of the West...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전투에서 나오는 대사다. 아주 격론이 붙었던 대사다. 그래, 너희는 서양 넘들이고, 저 중간계 한 쪽 끝의 나쁜 넘들은 동양인이라 이거지.

아무리 보편주의, 범용적 감정을 얘기해도 내 얘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는, 딱 우리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 조직, 공기업, 그 중간중간에 잉여 부서들이 있다. 한직, 그렇지만 결코 한가하지 않은...

박근혜와 함께, 한국 자체가 한가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에 끼고 중국에 끼고. 전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해야할지, 아니 어떻게 해야할지, 좀 방향이 잡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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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실사판은 편이 있다. 공교롭게, 7편부터 봤다. 그리고 한 편을 더 봤는데, 이게 뭔가, 잘 이해를 못했다.

원래 패트레이버는 극장판은 전부 dvd를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찾아봤었다.

주말 내내 애들한테 시달리다가 그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밤에 아이들 재우고 넥스트 제네레이션 1편의 에피소드 0을 봤다.

뭐지? 이 익숙하고, 오래 전부터 내 피부였던 느낌은?

나중에 보니 감독이 오시이 마모루, 공안 9과의 얘기를 극장으로 옮긴, 바로 그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였다.

영화를 보면서, 아니 책이든 소설이든 아니면 시든, 어떤 얘기라도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98년이었던 것 같다. TV판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 그 느낌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했다.

수 년 아니 수십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깨어나는 느낌?

내용상 유사한 것은, 2000년인가, <춤추는 대수사선>을 봤을 때...

그 때의 강렬함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자라서, 몇 년 후 결국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2.
넥스트 제네레이션 시리즈의 백미는 1편이 에피소드 0이다. 에피소드 제로, 이걸 봐야 그 뒤에 이어지는 허무 시리즈의 줄기가 잡힌다. 나도 이걸 안 보고 뒤의 얘기를 먼저 봤더니, 도통 뭔지 감을 못 잡았다.

얘기는 한직에 관한 얘기이다. 한직이기는 하지만, 진짜로 한가하지는 않다. 두 개의 레이버를 운용하기 위해서 3명씩 두 조, 그 두 조가 24시간 비상 대기한다. 물론 비상 상황은 몇 년째 벌어지지 않는다.

편의점을 딱 두 명이 운용하는 것과 같다고 영화는 설명한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바쁘기는 겁나게 바쁘고, 비상 운용체계이다, 몇 년째.

<춤추는 대수사선>이 헤이세이 공황 이후의 일본 관료의 고민을 담고 있다면,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도 마찬가지다. 대수사선에서는 일선서의 애환과 본청 사이의 갈등이 중심이다.

패트레이버는 더 하다. 일선에 있는 경찰서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레이버는 이미 기술적 실패에 대한 논쟁이 끝난 상황이라 - 필요없다고 - 부처가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무의미하지만, 최선을 다 한다...

울 뻔했다. 그리고 조금은 울었다.

난 늘 한직에 있었다. 대기업에 있을 때나, 정부 기관에 있을 때나, 심지어는 연구원 부원장을 할 때나, 늘 한직이었다.

그런데 한직이 한가하지는 않았다. 그런 걸 뭐하러 하느냐는, 남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일들을 했는데, 언제 부서가 없어질지 몰라서 진짜로 죽어라고 밤새고 일했다.

한직이 가끔 바빠진다. 회장 보고 할 때, 장관 보고 할 때 혹은 대통령 보고 할 때, 밤 샌다.

영화 에피소드 2는, 이 한직이 가끔 바빠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무의미하지만, 안할 수는 없으니까 밤을 새는...

장관 보고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장하준 교수의 아버님께서, 장관이 되어 상관으로 모시던 시절이 있었다. 겁나 밤 샜다. 장관이 바보면 바보라서 밤 새는 게 힘들고, 바보가 아니면 바보가 아니라서 또 힘들고.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무의미한 일이다.

3.
내 삶은 전체적으로 '한직'이 딱 맞는다. 늘 한직에 있었다. 환경, 에너지, 이런 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바쁘지 않은 건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연구직, 이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지금은?

지금도 한직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 키우고, 기저귀 갈고, 동화책 읽어주고, 빨래 개키고, 그런 데 쓴다.

한직이라고 안 바쁜 건 아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계속 공황이다. 그러다보니 공직과 대기업의 구호와 위상 그리고 내부적 논의가 많이 바뀌었다.

일상의 한직화?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시리즈가 딱 그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화될 가능성 제로,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이 얘기를, 아 딱 내 얘기도, 그렇게 받아먹을 사람들이 있다.

에피소드0을 보면서, 몸 안에 수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막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오 예, 한직. 이게 나의 가장 익숙한 정체성이다. 나, 이런 거 좋아, 딱 좋아.

4.
몇 년째,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 섰는데, 마땅한 답을 못찾았다.

패트레이버 에프소드 0을 보면서 이 질문에 답을 찾았다.

한직.

공각기동대의 공안9과보다 훨씬 내 삶에 싱크로율이 높은 특차2과 얘기, 진짜 재밌다.

딱 작년 요맘 때, 류승환 감독이랑 사기꾼 얘기를 하면서 '경제 사시꾼'이라고 가제를 잡아놓은 책이 있었다. 출판사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사기'라고 약간 바뀌었다.

어떻게 풀지, 큰 기둥이 세워지지 않아서 계속 미루고 있던 책이다.

한직, 이 생각이 들자마자, 사기꾼 얘기의 주요 줄기들이 딱 맞춰졌다.

오 예, 구성 끝...

점심 때 이 책의 에디터 만나서 밥 먹었다.

이보 보행 로봇이 왜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인간의 바보 같은 생각...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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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책의 마지막 절은 '신들의 경제' 정도의 제목을 달고 종교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종교 얘기에 얽히는 게 귀찮기도 하고, 또 몇 년된 정보들을 다시 최근형으로 업데이트 할려면 에고고...

그래도 마음을 먹은 것은, 내가 왜 책을 쓰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내가 책을 쓸까? 모른다. 올해까지는 쓸 것 같고, 내년은 나도 모른다. 수 년에 걸쳐 이것저것, 출판사와 계약된 책들은 올해 다 끝난다. 내년에는 출간 계획이 없다. 2005년부터 시작해서 출간 계획이 없는 해는 내년이 처음이다. 갑자기 마음이 엄청나게 바뀌지 않으면 내년 출간계획을 따로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쓸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다.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예상할 수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지만, 모르는 데도 아는 척하는 것은 흠이다. 다음 정권은 어떻게 될까? 모른다. 잘 하기를 바라지만 잘 할지 못할지, 모른다. 어떻게 될지 미리 예상하고 설정할 수는 없다. 급격한 변동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러니 미리 예상을 하고, 출간 일정을 세울 수는 없다.

입문서나 청소년용 책, 그런 가벼운 책에 대한 요구를 많이 받는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해서 딱 한 번 입문서를 쓴 적이 있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처음 책 쓰기 시작하면서, 입문서를 쓰거나 좀 더 대중적으로 편안한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책 쓰는 일을 내려놓겠다고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책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물론 그렇게 아방가르드처럼 살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경제라는 주제를 다루는 내 입장은, 가장 첨예한 전선, 바로 그 대치점 맨 앞에 서 있을 거 아니라면 안 다룬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장 한 가운데 어딘가에 서 있지 않을 거라면, 굳이 경제학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걸 또 어렵게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책으로 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만큼은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삶은 지난 10년 동안 많이 변했다. 한 때 시민운동의 상근활동가였고, 연대 조직의 사무국장도 했다. 현장 한 가운데에서 살았고, 늘 내 몸은 전국의 현장 어딘가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는 현장에 서 있기가 어려워졌다.

맨 앞에 있는 치열한 얘기들 혹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의되지 않짐나 궁극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별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책을 쓰고, 시간을 들일 이유는 없다.

종교와 경제, 전격적으로 한 권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늘 치열한 현장에 서 있었다,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의 마지막 절은 종교 얘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럴 생각이다. 치열한 얘기 아니면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책 한 권 낼 때 연구조사 등 내가 쓰는 돈이 더 많아졌다. 내 책은, 준비하는데 돈 많이 들어가는 책이다. 그만큼 치열한 얘기니까, 내 돈을 써가면서 연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거라면, 논쟁을 피하거나 숨어가면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간만에, 내가 왜 책을 쓰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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