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 가장 큰 일이 있다면, 1995년 BBC 드라마로부터 시작한 일종의 다시 연대기를 거의 한 바퀴 돈 것이다. 드라마도 다 봤고,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도 다시 몇 번씩 돌려가면서 봤다. 심지어 <킹스맨>도 봤다. 다아시, 바로 콜린 퍼스의 이야기이다. 브리짓 존스 3편이 작년에 나왔으니까, 95년의 BBC 드라마부터 물경 20년간 다아시는 콜린 퍼스가 했었다. <킹스맨>의 극중 캐릭터 이름이 다아시가 아닌 게 서운할 정도였다. 그 때 방한한 콜린 퍼스의 인터뷰 방송까지 찾아서 봤다.


다아시 혹은 콜린 퍼스, 이 얘기는 다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까지 이어졌다. 원래 소설이 있고, 소설 역시 엄청 히트쳤다고 들었다. <오만과 편견> 패로디는 엄청나게 나왔고, 아직도 나오는 중인가 보다. 다아시를 엄청 좋아하거나, 영국 B급 코메디, 소위 화장실 유머를 그닥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돈 들여서 이런 영화를 왜 만들었어, 캐 박살 날 영화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다아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좀비 영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만든 피터 잭슨이 뉴라인시네마에서 <반지의 제왕> 만든다고 했을 때, 배신이라고 한바탕 난리들 났었다. 대중적인 감성은 아닐지 몰라도, <고무 인간의 최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름 폭넓게 존재한다.


나는 <고무 인간의 최후>를 보았을 정도가 아니라 DVD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건 간만에 엔돌핀 팍팍 돌게 하는, 도대체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나의 감성의 기원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 저 장면에서 바로 "19세기 영국에서는...", 이렇게 역사 왜곡 들어가야지, 갖다붙이기, 그래 바로 저거야. B급 정서에서는 은유와 직설, 이런 게 탁탁 들어가면서 "그래, 저런 게 순실이야", 요 정도로 바로 꺽고 들어가줘야 한다.


원작에서 백작부인 캐서린 드뵈프 매우 강직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나온다. 물론 하는 역할은 좀 그렇다 싶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는 와중에서도 나름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리하여 결코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이다. 캐서린 여사와 엘리자베스의 논쟁, 이 밀리지 않는 최강의 여상 캐릭터 둘의 설전이 원작에서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좀비판 오만과 편견에서는 캐서린 여사가 아예 영국 최강의 여전사이며, 사상최대의 좀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초강력 캐릭터로 나온다.


오 예, 캐서린 드푀프, 이 정도 해줘야지! 거럼 거럼, 원작을 정말 충실하게 잘 해석했다니까! (이 장면을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나말고 동아시아에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심지어는 캐서린 여사는 애꾸눈 안대까지 하고 나온다. 오 마이 갓! 혹시나 모르고 그냥 넘어갈 관객을 위해서 짚고 넘어간다.


"안대는 기능성이예요, 패션이예요?"


"당연히 기능성이지."


19세기 영국 사교계 여성들의 과장스러울 정도의 패션이 나름 기능성이었다는 꼼꼼함, 이 장면에서 문득 그 시대를 살았던 경제학자, 톨스타인 베블렌을 연상.


영화 시간 대에 집어넣기 위해서 중요한 장면들은 많이 스킵하고 넘어가지만, 결정적 장면들은 대부분 살렸다. 아, 이런 패로디 소설이나 영화를 볼 사람들은 이미 원전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그냥 보면, 다아시가 도대체 왜 강물에 뛰어들어? 그 날이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실제로 다아시를 사랑하게 된 첫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소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걸 다시 깨달았다.


비주류의 비주류,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감성과 느낌의 출발점이다. 비주류만 해도 벌써 주류 축이지, 뭐. 비주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진짜 축에도 못끼는. 그게 내 감성이고, 그럴 때 딱 좋다.


영화 <황산벌>에 악의 축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곧 이어,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난 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 감성이 딱 좋다. 한국에서는 영국식 B급 코미디, 축에도 못 들어간다. 90년대, 2000년대, 프랑스의 극단적 예술영화와 영국식 B급 코미디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이해 난이도 너무 높은 독일 영화, 이런 게 헐리우드가 싫으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그 시절에는 일본 문화가 수입금지라서, 일본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B급 영화, 그 중에서도 화장실 유머 범벅이고, 도대체 왜 만들었을까, 기획의도 같은 게 잘 안보이는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살았다.


유학은 왜? 목표, 그딴 거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살고, 흐르는 대로 흐르고, 가끔 수틀리면 팍 개겼다. 입 다물고 살지만, 가끔 개기는 일도 안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 내 피에 흐르는 극단적 비주류 감성, 오 예,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걸 보면서 다시 살아났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만들었어? 너는 다아시 다시 한 번 안보고 싶어. 네네, 보고 싶어요, 소희 선생님 (둘째 아이의 작년 담임이신데, 새학기 들어 담임이 바뀌니까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요즘 난리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거, 다 맞다고 할 때, 아니 난 그냥 딴 거 할래요, 이런 축에도 못끼는 사람들의 많이 가볍고, 약간 저질스러운 정서, 이게 그냥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에는 이런 캐릭들이 많이 나온다. 간만에 긴장 풀고 편하게 영화 봤다. 딱 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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