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경제를 위한 법률

 

법률을 직접 만든 것은, 진짜 오래 전 일이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때 그 작업을 직접 했었고, 연관해서 대통령령이나 장관령들을 전체적으로 손을 본 적이 있다. 진짜 옛날 일이다.

 

어쨌든 정말 오랜만에 법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청년과 관련된 법안이 이미 몇 개 발의된 게 있고, 조만간 청년 권리와 관련된 법이 또 하나 제출된다고 알고 있다. 그거라도 있으면 다행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인데, 사실 그 정도로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사정상, 9, 10월에 법안을 제시해야 19대 내에 입법이 가능하다. 일정은 그렇고. 생각보다 복잡한 현안들이 좀 있다. 이런 게 모두 부드럽게 풀릴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여

 

안철수 의원, 그야말로 청춘 콘서트의 바로 그 안철수 의원에게 법안 얘기를 했다. 흔쾌히, 정말로 흔쾌히 그런 건 좀 해야하지 않겠냐고

 

매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철수 의원은 종종 만난다. 주로 경제에 대한 얘기를 하고, 성장 모델에 관한 얘기들을 나누고는 했다. 청년 얘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은 논의 초기라서, 어떤 걸 어떻게 넣어야 할지 정리되어 있는 상황은 아니다.

 

기금에 관한 고민이 있을 수 있고, 기업에 대한 몇 가지 제도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조금 더 넓힌다면, 작업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 같은 것 까지도

 

잠깐만 주변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우호적인 상황은 아니다.

 

한국의 청년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문제가 나빠지기만 하고 해법을 못 찾는 것 아니겠는가.

 

안 되는 이유를 들자면 100가지도 넘을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떻게든 문제를 좀 풀어보려고 한다.

 

어떤 요소들을 넣어야 할까? 그리고 어떤 효과를 기대해야 할까?

 

아직은 비교적 초기 논의이다.

 

하여간 댓글 남겨주시문, 최대한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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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새로운 책을 준비하며

 

1.

늘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많은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 혹은 뭔가 창작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라도 정서적 안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던 것 같다.

 

하여간 죽어라고 살아온 삶, 그게 아주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을 누구에게 권해줄 처지는 아니다.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 난 늘 불면이었고, 언제나 수면부족이었다. 감정은 과잉이었고, 날 극한까지 밀어 부쳤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조금은 더 편하게 생각하면서 살아도 되는데, 별로 그러지를 못했다. 만약에 지난 대선, 결과가 좀 달랐다면 나는 훨씬 더 편안하게 내 삶을 즐기는 쪽으로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2.

내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나랑 같이 일하지 않으면 금방 힘들어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계속 움직인다. 이제 좀 내려놓고 싶기는 한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편해졌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하여간 당분간 움직이게는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아기 둘의 아빠가 되면서, 나도 이제 좀 이기적이 되었다.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그리고 자빠지는 일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뭘 더 어쩌겠어, 그런 생각도 종종 한다.

 

30대 때의 나는, 무조건 될 때까지, 그런 생각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될 일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어차피 아무리 죽어라고 해도 안될 일이었다. 그 때는 그런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건강을 많이 상했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쉴 때 쉬고, 잘 때 잔다.

 

요 며칠, 어쩔 수 없이 잠을 제대로 못잤다.

 

두 손이 부르르 떨리고, 손가락 관절 위로 혈관도 잔뜩 부풀어올라,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핑계 대고 좀 쉬었다.

 

손 떨리는 것은 좀 가라앉았다. 그냥 이렇게 살살 살려고 한다. 조금 더 무리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살 살려고 한다.

 

3.

책은 어떻게 할까?

 

이제 그만 쓴다고 맨날 생각하면서도 이래저래, 조금 더 쓰게 된다. 내가 몇 권을 썼지?

 

책 권수를 세던 때도 분명 나에게 있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까먹었다. 모르겠다

 

책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대충 살아서 그렇다.

 

하여간 권수 같은 것은 어느새 기억 뒤편으로 넘어간지도 꽤 된다.

 

책 작업을 할 때, 꼭 필요하고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만 한다. 이 세 가지가 다 맞아서 한 경우 아니면, 꼭 후회하게 된다.

 

, 물론 어느 책이든 그런 조건이 맞는다고 생각을 해서 시작을 하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면, 결국에는 후회하게 된다.

 

3.

내 책 중에 후회를 가장 많이 준 책은 <솔로계급의 경제학>이었다. 이것은 책과는 상관없는, 애초의 기획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점을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한 경우였다.

 

그래도 마칠 수 있었던 게 기적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게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후회까지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책 작업을 하면서 재밌던 경험은,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제외한 나머지 최근 책들은 정말로 책 준비하고 쓰면서 그 과정을 즐겼던 책이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 이후로, 크게 결심한 게 한 가지 있다. 적어도 책과 관련해서, 앞으로는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내가 괴로워서 이제는 못하겠다.

 

4.

하여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요즘은 좀 편안하다. 마음만 편하고 몸이 편치 못하다는 게 단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달 전부터 생각했던 게 ‘40대 여성에 관한 책이다.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왜 이런 걸 고민하게 되었는가,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될 듯 싶다.

 

여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다.

 

40대 후반 여성, 내 친구들이다. 평생을 좋은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같이 상의하면서 살아왔던 내 친구들이 바로 40대 여성이다.

 

나에게 에세이를 써보게 하면서, 사회과학이 아닌 에세이 책을 준비하게 한 사람이, 바로 가장 오래된 나의 친구이다. 그렇게 오래된 친구가 아니라면 내가 말을 듣겠는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고분고분 듣는 여자 동기들이 있다.

 

40대 중반 여성, 긴박하게 나에게 연락하고 뭔가의 도움을 청하는 40대 여성들은 나의 후배들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본 적이 없는 나에게까지 연락을 하는 경우, 대부분 이혼을 앞두고 있거나 막 이혼을 했을 때였다. 아기는 키워야 하고, 막상 세상을 혼자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 절박한 삶의 무게감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마주하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아니면 일감이라도 찾아주어야 한다. 그 삶의 무게감, 어마어마하다.

 

얘기를 같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엄마의 무게를 같이 져야 한다. 그게 정말로 내가 고민을 같이 한 40대 중반 여성들이다.

 

40대 초반, 나의 아내와 그들의 친구들이다. 아내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그들의 경험이 곧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5.

오랫동안, 내 주변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많았다. 비율로 따지면 나와 같이 작업하고 일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이 월등하게 많았다. 내 책의 에디터들이 대부분 여성이었다. 처음에 같이 작업할 때에는 처녀였지만, 내가 나이를 먹은 것만큼 그들도 나이를 먹어서 아기 엄마들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도 아줌마가 되어갔다.

 

요즘 나는 아주 거친 남자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의도가 그렇다. 여성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조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대부분은 남자들, 그것도 정치를 매개체로 하는 아주 거친 남자들이다.

 

그렇게 나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로 돌아와있다. 협상하고, 거래하고, 나눌 거 나누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자웅을 겨루고,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런 걸 본능적으로 따져야 마음이 편해지는 그 남자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편과 서열, 그 간단하면서도 미묘한 남자들의 세계, 그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대에 있던 시절, 대기업의 세계가 그랬다. 정부에서 일하던 시절, 여성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냥 남자들이 학교 따지고, 학벌 따지고, 그런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리고 다시 그 세계로 돌아와있다.

 

6.

그 안에서 정말로 내가 분석해보고 싶은 얘기가 무엇일까, 지난 겨울 내내 고민을 해봤다.

 

40대 여성의 얘기, 그 삶을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나의 친구, 나의 후배, 나의 아내, 그런 좋든 싫든, 한 평생을 이미 같이 살아버린 그 사람들, 그리고 또 그들의 친구와 그들의 언니와 그들의 동생들, 그런 얘기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궁핍이 풍요를 느끼게 해준다고….

 

지금처럼 남성들 가득한 세상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니, 그와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생각이 더욱 애뜻해진다.

 

그리고 뭐가 다른지, 정말로 피부 세포가 감각적으로 느낀지, 약간은 좀 알 것 같다.

 

7.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청년들에 대한 첫 분석을 시작해보던 시절이 다시 생각이 난다. 그 시절, 주변이든 출판사든, 다들 반대했다. 청년, 그거 한국에서는 인기 없는 주제 아니냐

 

난 그 시절의 청년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걸 알 필요가 뭐가 있느냐, 그리고 뻔한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 나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뭘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시절 생각이 얼마 전, 여의도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 눈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모른다는 것은, 분석의 출발점이다.

 

지금 한국의 40대 여성, 사실 잘 모르겠다.

 

8.

분석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도 필요하다. 분석 대상자에 대해서 애정이 없다면 제대로 분석이 되겠는가? 그 애정은, 차이에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남자들에 둘러 쌓여서 오랜만에 나도 순전히 남자들의 전투적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그렇지 않은 존재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애정이 생겼다.

 

막상 분석을 해보면, 무슨 결과가 나올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분석 대상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생긴다.

 

뻔한 거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건 연구자들의 기본 욕구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9.

2015년 대한민국 40대 여성, 내가 던진 새로운 질문이다. 감각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이런 경우 남도 모르고 자신도 잘 모른다.

 

연령과 성별 그리고 시대와 같은 조건을 집어넣고 하는 분석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석이기도 하지만이렇게 구체적 조건을 주고 나면, 전혀 생소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경험적으로는 그렇다.

 

이렇게 생소한 질문 앞에 다시 한 번 서보려고 한다.

 

그냥 내 양심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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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까치와 비들기, 거기다 참새까지 고양이들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어도 너무 많이 먹는다.

 

하다하다 안되어서 고양이들 케이지 안에 넣어두는데, 그래도 이제 소용 없다. 그냥 케이지 안에까지 들어가서, 처묵처묵.

 

빈집털이, 고양이들이 꼼짝없이 당하는 중이다.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는 중이다.

 

올 가을, 비들기들한테 너무 당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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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베이터 안의 아기

 

아기가 이제 호흡기를 떼고도 숨이 좀 편안해지고, 우유도 먹기 시작한 걸 확인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별로 좋은 소식도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알리지도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미역하고 조그만 꽃바구니가 하나 배달되어 왔다. 첫 아이 때에는 꽃바구니가 꽤 왔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연락도 못했다.

 

아기는 태어나서 잠시 숨을 쉬는 것 같았는데, 체중 검사 등 등록절차를 하느라고 잠시 기다리는 게 꽤 길어진 이후, 숨을 못 쉰다는 얘기를 들었다. 종종 있는 일이라는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 아직 원인은 모른다니, 마음을 놓기가 쉽지가 않다.

 

어쨌든 다음 날 저녁 때, 아기는 호흡기를 떼었지만, 간헐적으로 숨이 거칠어지고는 했다. 오늘에야 숨이 편해지고, 조금씩 우유도 먹기 시작했다. 산다는 게, 늘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기가 그렇게 편한 일은 아니다.

 

아기가 아직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다. 그래도 며칠 만에 나도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내는 일요일 날 퇴원하지만, 아기는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 마음이 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며칠 전에 비할 바는 아니다.

 

큰 아기는 크게 우는 모습을 첫 모습으로 보았는데, 둘째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그래도 그나마 표정이 편해진 모습이 첫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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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가의 노래, 새로운 작업을 위한 모색 중

 

박근혜 정부 2년차, 참 고통스럽다. 고통스럽고 답이 안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꾸질꾸질하게, 우린 질 거야, 아마, 그렇게 있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나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막 태어난 아기랑 아내와 함께 실랑이하는 게 좀 지나고 나니, 이제는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앉아서 글을 쓸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글을 안 쓰고 있으면, 더 답답하다. 뭐라도 쓰고 있어야그래서 나는 늘 글을 쓸 주제를 찾는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이 나온다, 난 아직 그런 경지에는 가 보지 못했고, 뭔가 주제를 정해서 오랫동안 생각해보면서 하나씩 꺼집어내는 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오랫동안 길게 생각할 주제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 무의식 속에 뭐가 제일 인상 깊었고, 이 시기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가, 짜낼대로 짜내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 속에서 나온 게, ‘형가의 노래였다. 사실 별 노래는 아니다.

 

바람은 소소히 불고, 역수물은 차구나

장사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딱 두 연 짜리 시이다. 별 내용도 없고, 별 뜻도 없는데, 나는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어렸을 때에도 좋아했는데, 학위를 받고 나서도 난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아내에게 처음 쓴 연애편지에도 이 노래를 썼던 걸로 기억난다. 아내는, 그 정도가 아니라 처음 했던 데이트에서도 이 노래 얘기를 했다고사람들이 미친 넘이라고 하더니, 자세히 보니 진짜 미친 넘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 때 형가의 노래 얘기만 안했으면, 좀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는 토를 달아주었다.

 

생각해보니, 난 누군가에게 진심을 가지고 얘기할 때, 늘 형가의 노래를 얘기했던 것 같다.

 

장사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나는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지금도 좋을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 여전히 좋다.

 

형가가 죽으러 가면서 불렀던 노래가 형가의 노래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몇 주 전, 아내가 얘기한다. “너는 형가를 제일 좋아했어.”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 뭐 그런 중국 고전 중에서 내가 누구를 좋아했나 가만히 생각해본다. 강유를 참 좋아했고, 한신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중의 제일은, 형가, 정확히는 형가의 노래이다. 이제 좀 있으면 쉰이 되는 나이, 내 삶을 돌이켜보니 진짜로 내가 좋아했던 것은 형가의 노래였다. ? 모른다. 그냥 좋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아주 조그맣게 메모했던 문장이 있다.

 

박근혜 시대, 마키아벨리 이후의 책들은 필요 없고, 효능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제왕, 그들을 모셨던 사람들의 얘기가 오히려 더 유효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현대 정치학은 정당을 중심으로 얘기를 푼다. 양당제니, 다당제니, 대의제 민주주의니 혹은 직접 민주주의제이니, 기본적으로는 정당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얘기이다.

 

박근혜 시대, 이게 다 개뻥이다.

 

중세 유럽을 비꼰 얘기 하나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왕이 아침에 일어날 때 침대에서 왼발로 내리면 성군이 되고, 오른발로 내리면 폭군이 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왕이 어떤 쪽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는지 아주 관심이 있었다고

 

지금 우리가 딱 그런 꼴이다. 군주의 심기를 살펴야

 

침대에서 어떤 발로 내렸는지 알아야 하는 것, 이런 된장, 야당의 비대위원장도 딱 그런 꼴 아닌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근대적 인간의 출발에 해당하는 책이다. 야박하게 얘기하면 이익, 좀 점잖게 얘기하면 합리성, 그런 걸 갖춘 인간들이 만드는 사회의 시스템에 관한 글이다.

 

2014년 대한민국, 그런 근대성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차라리 왜 한신이 숙청되었는가, 장량은 어떻게 버텼는가, 그리고형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역수를 건넜고, 그가 노래를 불렀던 동기는 무엇일까, 그걸 생각하는 게 빠르지.

 

형가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모아보고 싶은 글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종의 소품 코미디같은 것이다.

 

그래도 웃어야지, 어쩌겠냐.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로 연말까지는 책상에 앉아서 자료들 쭉 펼쳐놓고 하는 그런 작업은 할 수가 없다. 뜨문뜨문, 책 읽고, 머리 속에서 혼자 생각하고,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 글을 쓰는 그런 형편에서, 형가의 노래를 가지고 소품 코미디를 만들어본다는 생각으로

 

마키아벨리 이후의 책은 전부 필요 없다. 그런 근혜 시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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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것들 전성시대, 작업을 준비하며

 

아기가 태어나면 이제 노트북을 가지고 글을 쓰려는 야무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노트북도 구해다 놓았다. 물론 무식의 소치였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도저히 노트북을 켤 수가 없게 되었다. 모니터를 향해서 광속으로 돌진, 키보드를 두 손으로 팡팡! 그럼 책은 읽을 수 있나? 책이든 신문이든, 뭔가 잡고 읽는 꼴을 그냥 두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동화책은 지난 1년 반 동안 겁나게 많이 읽었다. 그것도 많이 읽다보니, 이제는 작가의 집필 의도와 전략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오묘한 존재이다.

 

육아집 써달라는 얘기는, 정말 거짓말 약간 보태면 매 주 한 번 듣는다. 출판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나 혹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나, 하여간 간만에 오는 연락의 대부분은 육아집에 관한 얘기이다. 몇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가제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싸기’, 이런 것도 정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기를 생각하면 안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대선이 끝나고 아기 키우고 있는 동안에 한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다루어야 할 주제와 책이 겁나게 많이 밀리게 되었다. 아직 책 형태와 스타일이 잡히지 않아서 계속 밀리고 있는 주제로 불타는 금요일이 하나 있고, 농업 경제와 원전 얘기도 어떻게든 한 번은 정리할 생각이다. 농업, 원자력, 겁나게 안 팔리는 분야의 주제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미루어둘 수도 없고. 한 번은 정리해볼 생각이다.

 

처음 냈던 책이 이번에 복간된다. 10년만이다. 그리고 보니, 나도 책 쓰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책을 쓰기 시작한 건데, 좋아졌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 그새 10년이 흘렀다.

 

명박에 이어 근혜 시대를 사는 중이다. 마흔살이 되면서 명박의 시대를 맞았는데, 나의 40대는 그들과 함께, 엉엉.

 

보수 7년차, 정말 더는 못 참겠다. 일상이 비루해지는 것은 참는다고 하더라도, 이 시대가 무너져내리는 것은 정말로 참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뭐 별다른 대안 세력이 있느냐? 안 보인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아니다, 그런 논쟁이 내부에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얘기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얘기이다. 그게 아니라는 얘기는, 야당이 잘 못하니까 안 되는 거지, 제대로만 하면 안될 이유가 없는 여건이라는 얘기이다.

 

이 논쟁을 측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아예 절벽 앞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은, 기울어져서 갸우뚱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절벽에 매달려 안 떨어지려고 죽을 똥 살 똥, 그러고 있는 느낌이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닝기미, 모든 국민들이 연어가 되어 살아남으라이게 말이 되느냐.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 시궁창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잡것들이 정말 신났다. 그 사람들은, 뭘 해도 잘 된다. 신나게 승진하고, 몇 칸씩 뛰어서 승진하고, 정부 눈먼 가지고 덩더쿵 덩더쿵.

 

작년에 진지하게 검토를 하다가, 좀 더 자금 사정이 좋아지면 하자고 내려놓은 영화 기획이 하나 있다. 이완용 일대기였는데, 조철현 대표가 이 얘기를 정말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좀 살펴보니, 이완용의 삶이 정말 재 밌는 삶이다. 나라를 팔아먹는데 압장선 것을 중심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삶 중심으로 보면, ‘잡것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나름 살펴볼 구석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라는, 이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팔아먹는 거다그렇게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려고 했었다.

 

이완용은 실력으로 그 자리에 간 사람이다. 물론 깨끗한 일만 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불법과 탈법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타던 사람이다.

 

이완용만도 못한 사람, 이것들을 잡것이라고 부를 생각이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그에 한참 못미치는 잡것들은 그냥 나라를 망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이 순간을 뭐라고 얘기할지 생각해보니까, ‘잡것들 전성시대’, 딱 이거 아니겠는가?

 

잡것들에게 싸가지라고 불리는 상황, 딱 요 상황이다.

 

싸가지로 치면, 나도 한 싸가지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싸가리스, 싸가를 탑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잡것들에게 싸가리스라고 듣는 게 우아한 상황은 아니다.

 

하여, ‘잡것들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글들을 좀 써보려고 한다.

 

감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영화로 치면, 요즘 내가 밀고 있는 소품 코미디형식으로. 하여간 아기 보는 틈틈이 약간씩 시간을 내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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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코미디 영화, 기획을 시작하다

 

요즘 나의 무기력감은 좀 도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이다.

 

오늘 아침, 아기 어린이집 보내놓고 잠시 누워서 눈을 부쳤는데,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이런 꿈은 꾼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의 악몽을 꾸었다. , 내용은 별 게 아니다. 이미 나간 방송에 대한 젊은 PD들의 은근한 야지, 뭐 그런 거였다. 여기에 직장 그만둘 때의 마지막 상사, 정말 내가 몸이 아팠을 때 병원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 그리고 보너스로 커피 시켰는데, 주머니에는 동전 몇 개만 있는 상황, 이런 것들이 잡다하게 결합되어, 딱히 강렬한 모티브도 없지만 내내 시달리는 그런 무서운 꿈이 되었다.

 

개꿈은 차라리 낫고, 완전 잡꿈인 셈이다. 하여간 별 것도 아닌 잡다한 것들의 무의식이 모여서,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던 상황을 구현하고 있는 것, 그게 요즘의 내 꿈이다. 흡혈귀가 나오고 10대 시절의 악몽과, 좀비가 주로 나오던 20대 시절의 악몽은 차라리 좀 낫다. 그거야 뭐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는지, 아주 강렬한 것들이 있으니까 나름 분석을 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같이 잡다하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악몽은, 그냥 기억하기가 싫을 뿐이다.

 

어쨌든 이런 게 요즘 나의 난감한 상황이라는 것은,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에서부터 엇나간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불편한. 그렇다고 딱히 뭘 하고 싶은 것이 있지도 않은. 이제 곧 나이 50살인데, 아침 나절에 나는 이런 잡스러운 꿈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렇다. 나는 원래도 이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사는 중이다. 다만 예전의 굵직한 잡스러움이 요즘은 좀 더 자잘한 잡스러움으로., 훨씬 더 잘잘하게, 그리고 훨씬 더 좀스럽게.

 

하여간 그런 마음 속에서, 요 며칠간 오가던 정치 코미디에 관한 영화의 기획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굵게 안되면, 쫀쫀하게.

 

야당이든, 여당이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요즘 살펴보면 너무 치사하다. 아니면 너무 용감하거나.

 

제목만 일단 비대위라고 가제 상태로 정해놓은 상태이고,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 일단 다 여성으로. 여기에 뭘 채워넣을지는 이제 차분히 좀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아직 마음을 먹지 못한 건, 원래의 생각으로는 클라이막스에 선거를 넣겠다는 거였는데, 이런 정공법이 옳을지, 아니면 좀 더 쫀뜩쫀뜩하게 치사한 사건으로 갈지

 

하여간 나의 무의식을 황폐하게 만든 지난 수 년간의 정치 사건을 코미디 형식으로 한 번 풀어보는 것을 기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쫀쫀하고 끈적끈적한 사건, 그런 걸 한 번 푸하하, 웃을 수 있는 걸로 좀 바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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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복지 정책을 담당한 김근태 계열의 선배가 오늘 오후에 내게 보내준 글이다.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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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진보민주-시민사회, 무엇을 할 것인가

 

최 민 식

()생활정치연구소 상임이사

 

 

아빠 왜 세상이 이래

 

2014. 4. 16. 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도 잊혀져서도 안될 역사적 사건이다. 지난 71일 진도항에서, 나는 10년 뒤 돌아와서 수장된 아이들에게 내 10년의 행적을 보고하기로 맹세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본 모든 양심적 인사들이 그러한 마음이었을 것이리라.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날의 민주화운동, 민주화세력의 집권전선에서 싸웠던 전과, 훌륭하신 선배님들을 모셨던 추억, 무엇보다도 현대적 복지제도입법을 성과있게 했다는 복지전략가로서의 자부심.. 그런데 진도항에서 다 무너졌다. 아니 그 전에 내 아들이 던진 한마디에 그랬다. “아빠 왜 세상이 이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좋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좋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슨일이라도 하리라. 사회운동을 시작한 게 1987년이고 정치권에선 1995년부터 20년 가까이 밥먹고 살았으니, 정치에 기여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에서는 11표라서 돈 많은 사람의 발언권이 쎄다지만, 정치에서는 11표라는 기본적 민주주의 원리가 그나마 작동하기에, 나는 정치를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영역이라고 아직도 생각해왔다. 그런데 정치에서의 실패, 야권의 7.30 재보선 참패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올바른 대책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야권, 참패의 역사를 뒤짚어라

 

지난 2007년부터 7년간, 두 번의 대선 참패와 두 번의 총선 참패, 2014년 지방선거의 아쉬운 실패, 그리고 스물 몇 번의 재보선 참패에 이르기까지, 야당의 최근 선거사는 패배의 역사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를 보는 눈은 극명하게 갈렸다. 보수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만큼 했으면 잘했다는 구조적 필패론과, 사실상 보수-진보가 총동원된 대선 전쟁에서 양 대선캠프의 캠페인전에서의 명암이 승부를 갈랐다는 전략부재 무능론이 대표적이다. 나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본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7.30 재보선의 대참패도 야당의 존재의 근거를 다시 물어야 할 정도의 참담한 패배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40%의 황금비율이 깨져나가고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참사와 세월호 참사 양 참사가 민심을 격동시킨 상황이었다. 그런데 세간의 예상을 비웃듯이 11:4라는 어처구니 없는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이 패배의 원인은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이미 물러났지만 김한길 안철수의 모자란 리더쉽이 불러온 패배라는 리더쉽무능론은 차라리 쉽다. 패배의 대표적 원인은 공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천의 혼선과 실패가 낳은 재앙이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구도, 전략, 전술, 리더쉽에서 캠페인까지, 승패를 가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야권은 공천을 저리하고 늘상 선거연대에 시달리고 젊은층 투표율에 기대하다가 또다시 지고 만다.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패배이고 반복되는 분석이고 또다시 분열되며 지리멸렬해진다. 패배의 늪에 깊이 빠진 야권, 어떻게 살아나야 하나.

 

관점을 정확하게 정리해보자. 이런때 일수록 통찰적 접근이 필요하다.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통찰적 관점, 그것이 나의 관점이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종필을 껴안아 호남충청연합으로 이회창을 이겼다. 신한국당은 이인제의 분열로 표가 더 분산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국민경선의 역동성에 더해 정몽준을 껴안아 미래지향적인 세대교체흐름까지 포괄했다. 이회창은 특권층을 대표하는 낡은 인물로 낙인되어 또다시 패했다. 승리의 역사가 알려주는 통찰은, ‘단결과 변화이다.

 

 

세가지 문제와 세가지 해법

 

첫 번째 문제, 야권은 분열되었다. 2007년 대선 패배직후 어느 모임에서 누구는 민주당 혁신론은 누구는 신당추진론을 누구는 진보정당론을 누구는 사회운동 강화론을 펼치는데, 중요한 점은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차이를 더큰 차별로 만들고 다른 길로 가는 모습이었다. 현재 민주진보진영은 새정치민주연합, 진보정의당, 통합진보당, 사회당, 녹색당 등 여러정파로 분열되었다. 심지어 같은 당 안에서도 대선후보 중심으로 계파 분열되어있다. 반면에 보수진영은 현실의 지역주의 정치판에서 영남과 충청을 하나로 묶어냈다는 점에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보수진영 전체를 단 하나의 단일정당으로 완성시켜냈다는 점이다.

 

민주진보진영은 분열을 독립으로 합리화한다. 다수파인 민주당은 손해볼 것이 없다고 안주하고, 소수파 진보정당은 진보성을 지속시키기 위한 전략적노선으로 착각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성과없는 연합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감동도 없다 오히려 식상하다. 선거는 구도다. 1표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종다수대표제 선거체제하에서 새누리당과 민주진보진영간의 사실상의 1:1 구도만 선거판에서 만들면 된다라고 떠드는 자들이 한심할 뿐이다.

 

해법1. 어떤 손해를 보고 어떤 욕을 먹더라도 깨지지 않는 단일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야권의 노선 정체성이다. 아직도 진보냐 온건중도냐다. 이념적 정체성은 사실 낡은 잣대다. 야권은 2차원적인 진보와 보수의 줄 위에서 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를 했고 이명박 통치기에는 정치권에 복지국가 담론도 수용되었다. 실용주의다. 무슨 이념적 선명성을 내세운다는 것은 시대착오다. 노선, 그것은 시대의 위기를 종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야권에 필요한 것은 진보적 선명성이나 중간층을 공략하기 위한 중도성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 그 자체일 뿐이다.

 

해법2.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유능한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야권의 행위적 정체성이다. 대적투쟁전선이냐 문제해결정책전선이냐. 섬멸적 투쟁성을 야권의 행위적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그룹이 항상 존재한다. ‘야성’. 사실 반독재민주화운동기의 야당은 독재라는 거악에 맞서 목숨걸고 싸웠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통치가 독재인가. 아니다. 철저하게 민주주의다.(물론 기업사회체제를 옹위하는 관리민주주의이지만) 선거로 뽑혔고 법대로 인사하고 법대로 행정하고 있다. 지금 야당의 투쟁이란 87년 체제가 낳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변형으로 보일 뿐이다. 그것도 그나마 야권내부의 시선으로 볼 때 그렇지, 기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결과인 박 대통령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몰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야권은 대선직후부터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 1년넘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야권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가세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대선불복으로 비쳤다. 이 사안을 간단히 볼 것이 아니다. 낙선한 후보자가 대통령이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해 당선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그걸 빌미로 다음 선거에 활용한다. 그것이 팩트가 되었다. 야권은 민주주의 회복 투쟁을 했을 뿐이라지만, 사회적으로는 대선불복프레임이 완성되어 버린 것이다.

 

해법3. 정쟁에서 떠나 문제해결 정책전선을 대폭 확장하는 것이다.

 

감히 생활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왜 무상급식이 성공한 진보의 프레임이 되었는가 상기하길 바란다. 아이들 학교급식 문제, 엄마들 골치아픈 도시락 준비문제, 친환경 음식 문제 등, 생활현장에서의 문제들을 가치있는 방향으로 해결한다. 이것이 진짜 진보다.

 

 

변화하기 위해 변화하자

 

올바른 방향으로, 가치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현재 새정치연합과 민주진보진영은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다. 더 퇴보하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고 노력하는가. 아니다. 안주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빨간색으로 과감한 색상변화를 한 것에 새정치연합은 수동적으로 파란색으로 정했다. 변화가 아니다.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고집쟁이 이정현을 순천에 공천하고 당선시켰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지역위원장들을 공천했다. 당선시켰다. 새정치연합은 출마안하겠다던 권은희를 광주에 공천했다. 당선은 되었으나 오히려 대선불복 프레임이 가동되었다. 정의당은 배수진을 치고 당대표급들을 출전시켜 단일화 테이블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젊은 후보 기동민은 사라졌으며 노회찬 단일후보는 너무 늦어서 단일화 효과도 나오지 못했다. 무엇이 변화인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공들인 지역도 포기하고 마구 옮겼다는 비판이 거셌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 권력 탐욕이라는 악성프레임이 작동되었다.

 

선거직후 손학규는 정계를 은퇴했다. 전격적이었고 패배감에 젖던 가슴아픈 사람들의 마음에 다소나마 위안을 선사했다. 변화의 방향은 세대교체인 듯 했다. 그리고 다시 반발이 거셌다. 변화는 또 다시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변화는 변화의 내용보다는 변화할 수 있다고 변화하는 것이리라.

 

 

삶속변화

 

이 시대 민주주의는 이미 기업의 손아귀에 놓여있다. 정치가 사회 경제 문화를 지배하고 모든 것을 통치하던 시절은 끝났다. 경제가 정치를 리드한다. 민주주의란 관리된다. 좁은 여의도 안에서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누구를 위하여 운영되는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결코 권력자 일인을 위한 정치독재 시스템이 아니다. 근본적 권력이동이 이미 경제로 옮겨진 이상, 정치가 해야할 일이란 무엇인가. 바로 경제정의다.

 

경제사회 전영역에서 양극화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지키고 늘려야 한다.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중산층 지갑에 단돈 천원이라도 불어나야 하고, 죽기 일보직전에 몰린 빈곤층들에게 생존의 사다리를 다시 놓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 그것도 야권이 싸워야 할 대상이 독재망령이 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자 아이러니다. 국민들의 삶속으로 생활속으로 지역속으로 들어가야 보인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의 변화는 삶속변화.

 

 

새로운 정당의 모델, ‘사회정당

 

정치혁신, 정당혁신.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 대한민국 정치시스템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종다수 일위대표 국회의원제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 본질적으로 접근해보면, 법과 예산을 다룬다는 면에서 볼때, 정치를 진짜로 하는 것은 관료들이다. 대통령 마저 관료들 아래에 있다. 문제해결의 키를 쥔 선장들이 관료사회에 차고 넘친다. 반면에 정치권에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섬멸적 투쟁에 앞장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작용으로 대중적 명망가들을 영입하기에 바빴다. 세상을 바꾸는 데 쓰고자 정치를 취했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적 후진성과 구조적 무능성을 접하면서 부터는 그저 직업정치인으로 안주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위대한 일이다.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성과있고 강고해질 일이다. 시스템의 문제는 정치에서 풀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하면, 경제사회문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나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정당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혁해 사회정당을 건설하라.

 

첫째, 정당의 주요구성요소인 인물의 특징을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전문가들로 일대혁신하라. 정책전선을 다양하게 펼치고 문제해결능력을 지금 당장 보여라. 만약에 국민들 호주머니에 단 돈 1천원을 늘려주는 삶의 정책을 내놓는다면, 다음 선거는 무조건 승리할 것이다.

둘째, 정당의 모든 부면을 개방하고 시민사회와 풀뿌리 지역활동가들과 접속하고 네트워크하라. 원래 정당은 계층기반과 지역기반이 있다. 한마디로 올라오는것이다. 기존의 동원정당은 계파정치의 후과다. 계파동원정당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망을 건설하라.

셋째, 정당의 운영방식을 sns로 일대 혁신하라. 카톡이며 페북이며 순식간에 소통된다. 당론이나 정책이 당원이든 지지자들에게 일독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한 시간도 들지 않을 것이다. 단지 소통이 문제가 아니다. 소통의 속도를 건설하라.

 

한마디로 정당을 사회화하라. 사회정당을 건설하라. 이것이 새정치연합이 살고 소수 진보정당이 살 길이며, 다른 한편 현존하는 사회운동이 역사에 기여하는 길이다. 이미 민주화운동의 후광은 사라졌다. 486은 새로운 사회정당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한다. 지금 민주진보진영이 가야할 형극의 변화는, 바로, 정치주체의 사회화다. 그 길이 복잡하고 어렵고 오래걸리더라도, 반드시 달성해야할 선도적 변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20164월 총선은 몇가지 점에서 민주진보진영에게 기회이다.

먼저, 박근혜 정권을 통째로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주까지는 아니어도 작금의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은 줄푸세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도 더 줄어들 것이다. 대북관계도 개선할 의지나 방법이 없다. 사회불안도 나날이 악화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낙제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2017년 대선 일년 반 전에 총선이 있다는 점이다. 대권후보에게 바치는 상납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드리는 사회정당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셋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진행되는 공론이다. 더 이상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소명이 있다. 새정치연합 홀로 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내외에서 형성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민주진보진영이 기회를 박찬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20개월 6백일이 남았다. 분투하자. 함께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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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키우면서 글쓰다 보니, 정말로 물리적으로 뭘 어쩔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꼭 쓰고 싶었는데, 쓰지 못한 글들, 제목만 잠시...

 

- 머머, 치치포포

 

- 이오, 치코

 

- 내 인생에 최고로 행복한 날들

 

- 마, 빠 그리고 마

 

- 저농약 쿵

 

쓰고 싶은 글이 좀 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된다... 그리하여 제목이라도 기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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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 원고를 끝내고 나서

 

‘FTA 한 스푼을 끝내고 나서 다시는 이렇게 사회적인 일에 급작스럽게 책을 쓰는 일은 안하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었다. 이게 너무 힘든 일이다.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온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전선과 같은 곳이라서, 그 긴장감을 견뎌내는 것은 더 힘들다. 한 번 그렇게 끝내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나도 어느 정도는 건강이 있어서 버텨내고는 했는데, 이제 나도 40대 후반을 향해 가는 나이, 아기 키우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 초기에, 이걸 한 번 정리해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많았었다. 그래도 못한다고, 이해해달라고 했었다.

 

그 긴장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내 일정도 있고, 10월이면 둘째 아이도 태어난다. 그냥 안 하고 싶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결국 하게 되었다. 너무 이상한 일이 많았다. 진짜 이 사건은 이상한 사건이다.

 

하여간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바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 조금씩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 때까지만 좀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내려 놓을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 이걸 꼭 해야겠다고 생각을 먹고, 속도를 부쩍  높인 것은, 대통령의 사과를 보고 나서이다. 원래도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이상한지는 몰랐다. 황당

 

그 때가 내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하여간 그 사건을 계기로 나도 속도를 냈고, 본문은 이제 1교가 끝났고, 나도 남겨놓았던 에필로그와 서문을 오늘 마쳤다.

 

책 제목은 원래 부제로 달아놓았던 내릴 수 없는 배가 되었다. 처음에 생각한 제목은 사고가 난 4 16일이라는 의미에서 4.16으로 일단 달아놓고 시작했었다. 공교롭게도 책의 도입부로 사용한 까뮈의 페스트에서 쥐들의 시체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페스트가 발병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그날도 4 16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사과에서 이 날을 기념하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목에서 자동 탈락.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본 한국은, 진짜로 이상한 곳이었다. 그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분석을 해보니까 정말로 이상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나니, 배 사건은 100% 또 발생한다.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것이고, 확률의 법칙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 편은 좀 나은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황당한 건 마찬가지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93년 서해페리호 사건이 나고 4년 후에 국가부도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월호 이후에는? 대통령 하시는 양상으로 봐서 4년보다는 줄어들 것 같다. 기가 막힐 정도로 서해페리호 사건과 세월호의 전개과정은 복사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그 때보다 뭐든지 조금 더 나쁘다고 보면 딱 세월호 사건이 된다. IMF에 대해서 나도 참 많은 언급을 하고 분석도 많이 했었는데, 서해페리호 사건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여간 뭔가 덥기 위해서 YS가 이것저것 삽질하던 끝에 국가부도 사태가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4년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빠른 시기에 국가부도급 위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검토하다 보니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형 사고가 벌어져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스템이 좋아진 경우가 별로 없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아주 심하고.

 

사건이 벌어지면 수습한다고 하면서 원래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거 더 쎄게 하는 거, 그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은데, 실제로 그렇게 가는 게 일반적 패턴이다. 나도 놀랐다.

 

최경환이 세월호 거론하면서 LTV 풀겠다고 하는데…. MB도 그건 안 풀었다.

 

솔로 경제학까지, 큰 책 두 권을 연달아 작업을 하고 났더니 내 정신 세계가 완전 망신창이 되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어요, 이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지금처럼 사회적 문제에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책은, 정말 다시는 안 할 생각이다. 내가 무슨 조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들어줄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몸으로 다 때우는데, 이제는 정말이지 체력이 안 된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책 작업을 시작한 게 2005년부터니까, 이래저래 올해가 10년째 이러고 있는 셈이다. 10년을 이러고 살았으니, 진짜 사회적 논쟁의 최전선에 10년 동안 서 있었던 거다. 이제는 슬슬 그만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올 겨울에 가장 먼저 나왔던, 그래서 일종의 데뷔작이 되었던 아픈 아이들의 세대개정판이 나온다. 벌써 한 바퀴를 돌아서, 이미 절판된 책을 다시 내고 싶어하는 출판사가 생겨났다. 그렇다고 모든 절판된 모든 책을 다 개정판을 낼 건 아니고, 이번 한 번 정도 예외적으로

 

하여간 세월호 얘기가 드디어 내 손을 떠나간다. 그 동안 참 많이 울었다.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안 울려고 하는데, 이거야 원

 

당장 좀 쉬고 싶은데, 일정상 작년에 방송했던 인터뷰들 정리하는 작업이 하나 더 남아있다. 이것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 연이나그러고 나면 둘짜 아기 태어나서, 다시 꽝.

 

교육에 대한 것도 좀 더 써보고 싶고, 아직 해보고 싶은 연구들이 남아있기는 한데그럴 여력이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교육부 장관 하겠다는 어떤 할아버지는 평생 책 한 권도 안 썼다는데, 매년 2~3권씩 쓰는 나는 도대체 뭐 하느라고 이렇게 바보 같이 살고 있느냐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힘만 많이 빠지고, 불필요하게 긴장감을 높여야 하는 삶이다. 이게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안다.

 

그나마, 내고자 계획한 책을 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하여간 언제부턴가 책이 손에서 떠나가는 순간이면 왠지 모를 허무함 같은 게 생겼다. 처음에 좀 체계적으로 접근할 때에는 책을 떠나 보내고 나면 외국에 갔었다. 그러면 지나간 책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좋은 장점이 있다. 그것도 좀 열심히 살 때 얘기고, 요즘은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잘 못한다.

 

어느덧 나도 아기 키우는 부모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은,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어딘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요즘은 조금씩 해보기 시작한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뭔가 성취감이나 해방감이 생기는 구조가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찝찝하고, 알면 아는 대로 더 슬프고. 글을 마치고 나서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게 기본 구조이다.

 

하여간 이제 내 손을 떠나간다. 허망에서 허무로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 끝내고 보니 안 썼으면 후회할 것 같은데, 쓰고 나서도 후회하는 그런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 이 고통스러운 뫼비우스, 이 사건이 갖는 본질적 특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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