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것들 전성시대, 작업을 준비하며
아기가 태어나면 이제 노트북을 가지고 글을 쓰려는 야무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노트북도 구해다 놓았다. 물론 무식의 소치였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도저히 노트북을 켤 수가 없게 되었다. 모니터를 향해서 광속으로 돌진, 키보드를 두 손으로 팡팡! 그럼 책은 읽을 수 있나? 책이든 신문이든, 뭔가 잡고 읽는 꼴을 그냥 두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동화책은 지난 1년 반 동안 겁나게 많이 읽었다. 그것도 많이 읽다보니, 이제는 작가의 집필 의도와 전략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오묘한 존재이다.
육아집 써달라는 얘기는, 정말 거짓말 약간 보태면 매 주 한 번 듣는다. 출판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나 혹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나, 하여간 간만에 오는 연락의 대부분은 육아집에 관한 얘기이다. 몇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가제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싸기’, 이런 것도 정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기를 생각하면 안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대선이 끝나고 아기 키우고 있는 동안에 한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다루어야 할 주제와 책이 겁나게 많이 밀리게 되었다. 아직 책 형태와 스타일이 잡히지 않아서 계속 밀리고 있는 주제로 ‘불타는 금요일’이 하나 있고, 농업 경제와 원전 얘기도 어떻게든 한 번은 정리할 생각이다. 농업, 원자력, 겁나게 안 팔리는 분야의 주제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미루어둘 수도 없고. 한 번은 정리해볼 생각이다.
처음 냈던 책이 이번에 복간된다. 딱 10년만이다. 그리고 보니, 나도 책 쓰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책을 쓰기 시작한 건데, 좋아졌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아, 그새 10년이 흘렀다.
명박에 이어 근혜 시대를 사는 중이다. 마흔살이 되면서 명박의 시대를 맞았는데, 나의 40대는 그들과 함께, 엉엉.
보수 7년차, 정말 더는 못 참겠다. 일상이 비루해지는 것은 참는다고 하더라도, 이 시대가 무너져내리는 것은 정말로 참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뭐 별다른 대안 세력이 있느냐? 안 보인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아니다, 그런 논쟁이 내부에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얘기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얘기이다. 그게 아니라는 얘기는, 야당이 잘 못하니까 안 되는 거지, 제대로만 하면 안될 이유가 없는 여건이라는 얘기이다.
이 논쟁을 측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아예 절벽 앞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은, 기울어져서 갸우뚱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절벽에 매달려 안 떨어지려고 죽을 똥 살 똥, 그러고 있는 느낌이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닝기미, 모든 국민들이 연어가 되어 살아남으라… 이게 말이 되느냐.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 시궁창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잡것들’이 정말 신났다. 그 사람들은, 뭘 해도 잘 된다. 신나게 승진하고, 몇 칸씩 뛰어서 승진하고, 정부 눈먼 가지고 덩더쿵 덩더쿵.
작년에 진지하게 검토를 하다가, 좀 더 자금 사정이 좋아지면 하자고 내려놓은 영화 기획이 하나 있다. 이완용 일대기였는데, 조철현 대표가 이 얘기를 정말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좀 살펴보니, 이완용의 삶이 정말 재 밌는 삶이다. 나라를 팔아먹는데 압장선 것을 중심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삶 중심으로 보면, ‘잡것’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나름 살펴볼 구석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라는, 이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팔아먹는 거다… 그렇게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려고 했었다.
이완용은 실력으로 그 자리에 간 사람이다. 물론 깨끗한 일만 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불법과 탈법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타던 사람이다.
이완용만도 못한 사람, 이것들을 ‘잡것’이라고 부를 생각이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그에 한참 못미치는 잡것들은 그냥 나라를 망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이 순간을 뭐라고 얘기할지 생각해보니까, ‘잡것들 전성시대’, 딱 이거 아니겠는가?
잡것들에게 ‘싸가지’라고 불리는 상황, 딱 요 상황이다.
싸가지로 치면, 나도 한 싸가지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싸가리스, 싸가를 탑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잡것들에게 싸가리스라고 듣는 게 우아한 상황은 아니다.
하여, ‘잡것들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글들을 좀 써보려고 한다.
감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영화로 치면, 요즘 내가 밀고 있는 ‘소품 코미디’ 형식으로. 하여간 아기 보는 틈틈이 약간씩 시간을 내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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