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1.

박근혜 2, 그 어느 때보다도 글 쓰기가 편치가 않다. 실제로 글 한 줄 쓰기도 어렵다. 글 쓰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라,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더 강해졌다.

 

글 쓰는 것만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내가 하던 대부분의 일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졌고, 그냥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요즘 내가 먼저 뭐를 하자고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거나,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다. 몇 년 전부터 하기로 했던 것 혹은 하던 연구가 거의 대부분이다. 최근에 유일하게, 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건 좀 해야겠다고 한 게 세월호 책 정도이다. 아마 내가 아빠가 되었고, 그리고 10월에 또 다른 아빠가 되는 그런 극적인 심경의 변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런 책을 쓴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뭐라고 썼는지 지켜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분명히 있기는 한 것 같다. 이건 초고이고, 습작으로 쓴 것이라는 걸 얘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겨나는 글의 부담감이라고나 할까, 분명히 그런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무게감을 짋어지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더 밝게, 더 발랄하게, 그리하여 가벼움 그 자체로 쓰는 글을 원래도 좋아했고, 더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누군가 뭐라고 엄청 복잡하게 나에게 얘기하면

 

그냥,

 

조까

 

이렇게 속으로 생각할 마음의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글 쓰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나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2.

가장 근본에 있는 마음 속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명박과 5년 그리고 근혜와 또 다른 5년을 보내게 되면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자신감 자체가 나에게 없어진 것 같다.

 

2004,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 때는 다소간의 무게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나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전부 다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이 뭔가 직접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친구들은 민주당 근처에 가서,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찾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별로 스스로 뭔가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당시 분당하기 전의 민주노동당 근처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많이 꺼내놓으면서, 그래도 누군가 잘되기를 바라는 일을 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렇게 처음으로 진보정당이라고 우리가 불렀던 곳에서 원내 진출을 했다. 그 때 들어간 사람들을 다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들어가는 게, 세상 좋아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나와 같이 일하던 파트너가, 어쩌면 내가 눈을 감을 때 내 인생의 최고의 친구라고 할지도 모르는, 바로 그 이재영이다. 하여간 그와 그 시절의 동료들은,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좋아질 거이라는 데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88만원 세대를 비롯해서, 내가 수 년 동안 밤 새면서 미친듯이 써내려갔던 책이나 글들은, 어쨌든 세상은 좋아질 것이고, 그 방향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돌려보고 싶다는 긴박감에서 나왔던 것 같다.

 

3.

근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세상이 과연 좋아질 것인가? 아주 마음 속 깊숙이, 진지하게 나에게 물어볼 때, 잘 모르겠다.

 

형식적으로 혹은 상태적으로 잠시 좋아질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로 좋아지는 것인지 혹은 그런 상태가 잠시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만큼 유지되기라도 할 것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이거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그런 글을 지금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좋을텐데, 그런 글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능적이다. 써야만 하니까 혹은 쓰기로 했으니까 쓰고 있는 글, 그런 것들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어차피 잘 안될 거니까, 그런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기능적인 삶, 그런 게 제일 살고 싶지 않았던 삶이다.

 

그런데 까딱하면 내 삶은 물론이고, 내 글도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더욱 글을 안 쓰고 싶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4.

세월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야말로, 된장이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쓰는 것, 그런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때는 힘들어도,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 도대체 한 번의 숨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을까 싶다.

 

별로 좋아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기능적으로 뭔가 쓰는 것, 이거는 정말 못할 일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뭔가 써야 한다고 억지로 버티는 것은,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그 밑바닥까지 가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는, 좀 허접하면서도 불쌍한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이게 진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어차피 질 건데, 그래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더 처참하게 되는 것. 패전 처리 투수, 차라리 그 정도면 좀 낫다. 그 뒤에 의미 없이 지는 게임에 서 있어야 하는 외야수들.

 

마침 요런 심난한 마음에 필연적 기분을 더해준 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올해는 역시 꼴지에서 그냥 헤맨다. 아마 열심히 하면, 꼴지에서 한 칸 정도 벗어난 정도에서 시즌을 끝내지 않을까 싶다. 안 그래도 심난한데, 응원하는 팀도 심난하고, 이래저래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런 상황이다.

 

질 때 지더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것은 아주 길게 보는 낙관적인 생각이 있을 때 힘이 난다. 져도 괜찮다, 그럴 때는. 그러나 내가 보는 상황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정말로 하기 싫지만, 그래도 기능적인 일이라도, 예컨데 질 때 지더라도 너무 황당하게 지지는 않으면 좋겠다.는 심정.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 것도 안 쓰고 싶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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