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1.

장 폴 뒤부아라는 프랑스 소설가의 <프랑스적 삶>이라는 소설이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봤을지 모르지만, 나는 참 재밌게 보았다. 드골에서 지스카르 데스탱을 거쳐 미테랑, 시락까지 이어지는 대통령의 집권기를 각 장의 주요 소제로 쓴 소설이다. 많은 소설은 연대기적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처럼 각 정부의 집권기를 노골적으로 챕터 구분의 방식으로 쓴 것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소설 중에서, 예를 들면 박정희 때, 전두환 때, 노태우 때, 김영삼 때, 김대중 때, 노무현 때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 때, 이렇게 딱 시기를 걸고 주인공의 삶을 그 안에서 드라마틱하게 보인 적이 있을까? 사건 그대로를 보이려고 하면, 예를 들면 박경리의 <토지>처럼 엄청나게 길어진다. 장 폴 뒤부아의 소설은, 그렇지만 그걸 관찰한 한 사람의 시각으로 압축적으로 묘사하면서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얘기는, 아내에게 배신당한 한 엘리트 남성의 몰락기와 비슷하다. 그나마 그 아내는 정부와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가 죽는다. 한 때는 잘 나가는 회사의 사장 남편이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주인공이 노년에 재취업을 위한 상담 창구에서 상담 직원에게 개무시를 당하는 장면에서, 나는 약간은 자학적인 의미로, 그래 그런 게 삶이야, 이런 느낌을 받기도 했다.

 

<88만원 세대>에서 동거하겠다는, 그것도 일본인 애인과 동거하겠다는 아들에 대해서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장면의 모티브는 이 소설에서 가지고 왔다. 그들이 결혼과 동거를 어떻게 하는가, 가장 평범한 묘사를 이 소설에서 보았었다.

 

나는 이 소설이 그렇게 좋았던 것이, 그가 잘 났든 그렇지 않든, 그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들이 대통령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뼈저리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시대적 인식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평온하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자기는 그걸 알지도 못하고

 

이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한국에 사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누가 대통령인가에 대해서, 개개인의 삶의 변곡점을 맞는 그 모습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와서 다시 돌아보면, 그건 좀 오류일 수도 있다.

 

누가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평안한 대기업의 일부 인사들이 있을 수 있고, 누가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인생은 개떡과 같은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서 인생을 생각한다는 것, 그것도 이 쪽과 저 쪽의 극단을 예외적으로 배제한 나머지 사람들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2.

내 삶도 그러했겠지만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도 누가 대통령인가에 따라서 상당한 부침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 그러니까 흔히 얘기하는 프로필 혹은 요즘 식의 스펙에 보이는 외형적 모습 말고 정말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보면, 실제로 부침이 많았을 것이다. 이건 자신이 어느 편이냐, 그런 굳건한 생각을 갖았느냐 혹은 그런 생각에 따라서 충실한 행위를 했느냐,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질문이다. 편은 바꾸기도 하고, 실천은 하기도 하고 말기도 하고, 그러기도 한다.

 

어쨌든 누가 대통령인가에 따라서, 어쩌면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에 따라서 자신의 정말 개인적이면서도 사적인 비망록을 정리하는 게 가장 간편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거나, 이혼을 했거나 혹은 집을 샀거나 그런 개인개인의 개별적 요소들이 얹힐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런 구조에서 살고 있다.

 

3.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어떻게 남은 살을 살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늙은 아비의 고민 같은 거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50이 내일 모래가 된 나이에, 아무래도 우량아 등급에 들어갈 만한 아기를 내내 안고 들어주다 보니, 이제 손목도 시리고, 발목도 시리고, 허리도 뻐적지근하기 시작한다. 저질 체력에 늙은 아빠, 하여간 아기 보다 골병들기 딱 좋은 조건이다.

 

게다가 10월이면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아내는 회사를 다니니까. 어떻게든 내가 더 많은 시간들을 아기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슬슬 겁나기 시작한다.

 

4.

솔직히 정치는 물론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은 다 놓고 그냥 조용히 앉아서 아기나 돌보고 싶다. 아기만 돌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혹시 밥통 비었나, 살펴봐야 하는 고양이들도 이제는 여섯 마리도 넘는다. 내가 아기 돌보고, 고양이들 겨우 밥 주는 동안에, 마당은 완전히 잡초 밭이 되었다.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가 죽을 때 보았던 그 정갈한 포도밭, 그것과 완전히 정반대인 전혀 손대지 못하는 잡초밭을 보고 있다.

 

물론, 비겁한 변명은 있다. 마당 고양이들이 몇 년새 만들어놓은 그 똥밭에 정상적인 것들은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이게 변명인 것은, 그 똥들도 제 때 치워주면 된다. 아기 똥 기저귀 갈아주다, 잠시 시간 나면 고양이들 밥 주고, 그러면 언제 고양이 똥을 치우고, 또 내가 원하는 그 식용 박하를 키우고 채리 묘목을 돌볼 것인가.

 

어쨌든 이건 나의 일상의 삶이다.

 

그 와중에 잠시 짬을 내서 방송도 하고 촬영을 한다. 강연은 거의 하기가 어렵지만 내가 어려울 때 신세진 사람들이 부탁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가끔은 한다. 취재를 조금 더 하고, 사진도 조금 더 찍고 그렇게 현장에 가고 싶지만, 이건 거의 어렵다. 요즘은 아기가 밤에는 손이 좀 덜 가게 되어서, 밤에는 좀 글을 쓴다. 그래 봐야, 뭘 쓸지 방향을 잡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시 가졌던 시간이 끝날 정도이다.

 

짧게 정리하면, 아내가 일하러 간 동안에 나는 아기를 보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틈틈이 약간의 사회적 삶을 한다.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르 담당하는 내가 꿈꾸는 나라의 대표로서 필요한 활동을 올해는 도저히 못한다고 했는데, 공동대표 체제로 되어있는 상황상, 하여간 대충 하는 시늉이라서 한 해 더 해주면 좋겠다원래 내가 하면 죽어라고 하고 말면 마는데, 이거 영 꼴이 꼴이 아니다

 

5.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골목 모퉁이에 붙은 표지판에서 장석준이라는 이름을 단 선거벽보를 보았다. 석준이시의원 후보로 나왔다. 택도 없는데, 왜 니 얼굴이 여기 있는 거니

 

마음이 더 괴로울려니, 그와 상대편에 서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될 일이 생겼다. 그를 내게 소개해준 사람은, 너네 동네에 노동당이 택도 없이 나와 았는데, 신경 쓰지 말고, 여기 좀 도와주라

 

사실, 그 중간에서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그 때만 해도 그 상대편이 장석준인 줄 몰랐으니까.

 

, 애 키우고 있는 애기 아빠한테 이렇게들 복잡해.

 

고민을 잠시 했는데, 내가 많이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표도 안 찍어. 그건 내가 그들과 보낸 수 십년이 넘는 젊은 시절의 기억 그리고 우리가 같이 넘으려고 했던 그 선, 그것에 대한 기억이다.

 

6.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삶은, 그냥 조용히 아기 키우면서 지내고, 내가 사는 동네에 노동당 장석준이나, 예를 들면 녹색당 아무거시, 이런 이름이 뜨면 두 사람의 정책이나 경력 그런 걸 비교해서 투표하면 되는 삶이다. 내가 본 많은 유럽의 뭘 좀 안다고 하는 동네 사람들, 대체적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나도 딱 그러면 좋겠는데

 

그게 과연 우리 시대에 허용된 꿈일까, 그런 깊은 회의에 잠기게 된다.

 

거대 악과 차악, 그 중에 골라달라, 그게 벌써 몇 십 년이냐. 내가 살다 살다 죽어도, 내 아이는 물론, 손자가 살아도 그렇지 않은 날이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7.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생각을 이번 지방선거 끝나고, 원래도 그 얼마 전부터 했는데, 선거 이후로 깊게 해보았다.

 

모른다. 그리고, 모르겠다. 원래 이런 종류의 질문은, 모르겠다, 그렇게 답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인민노련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나는 인민노련 조직원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들과 식구처럼 삶을 살게 되었다. 된장, 그 인민노련도 갈갈이 찢겼다.

 

조직부장이었던 노회찬, 울산으로 최초로 내려간 현장 활동가, 조승수, 그들은 정의당에 가있다. 조직부장 노회찬 밑에 있었다고 들었던 인천의 송영길은 이번에 선거에서 졌다.

 

그리고 그들이 정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 당의 최초 상근자이자 우리의 영원한 정책위원장인 이재영은, 대선 직전에 암으로 사망했다.

 

남은 몇 명이 여전히 노동당 한 축을 형성한다.

 

어차피 현실에서 별 거 안 할 거라면 인민노련의 친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녹색당의 파운더 중의 한 명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런 고민을 이번 지방선거 이후에 심각하게 했다.

 

매 번 선거 때마다 이렇게 나름 최선을 다하고, 끝나고 나면 내가 뭐했나 하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또 그렇게 평생을 살 거라면

 

차라리 나의 양심에 따라서, 정말로 내가 지지하고 나와 식구처럼 살아왔던 사람들을 위해서 떡이라도 한 번 돌리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8.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영원할 나의 친구이나 동료들인 인민노련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과, 아무 영광은 없어도 차라리 같이 함께 할 가치를 지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원래 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라서, 잘 결정을 못한다.

 

어쨌든 이번 선거를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고민을 깊게 하기 시작했고, 누구를 진정으로 지지할 것인가, 그 생각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 고민은 퍽이나 오래 갈 것 같다. 그러나 백년의 고독처럼, 무엇을 할 것인가, 영원할 고민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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