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책 한 권, 내년에

 

원래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8권이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얘기에 할당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태경제학 시리즈로 5권에서 8권까지를 잡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생태경제학 시리즈가 워낙 매 권 힘만 엄청나게 들어가고, 성과는 없는지라

 

나도 강철이 아니라, 7권에서 일단 포기하고 9권을 먼저 냈다. 문화경제학 9권까지 내고,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 쉬는 중이다.

 

8권을 살려보려고 노력을 좀 했는데, 아주 감성적으로, 포토 에세이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워낙 딱딱한 기술적인 얘기들이 많을 거라서, 좀 부드럽게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서

 

테스트 삼아서 포토 에세이도 한 권 내봤는데, 역시나 실패.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이래저래 헤매는 중이다. 10권은 농업 경제학, 그야말로 거의 안 팔릴 걸 감안하고 나의 양심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고.

 

11권은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 박근혜가 창조경제 얘기하면서 완전 김빠져서 에라 모르겠다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분야이기는 한데, 된장과학자들이 박근혜한테 그렇게 열심히 줄 댈 줄은 몰랐다. 빈정 팍 상해서, 안 해!

 

12권은 언론과 정당의 경제학, 그야말로 니미종편 출범하고 언론 환경은 이래저래 개판이 되어서, 그야말로 며느리도 몰라. 게다가 방송은, 내가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기 경험한 이후방송 얘기는 다루기도 싫고, 보기도 싫다.

 

내가 싫다는 밖에.

 

하여간 이러다 보니,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어디 처박혔는지 나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이 상태로 올해를 맞았다.

 

사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마당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죽어라고 머리 박고 고민하겠냐, 게다가 사전 연구비로 내 돈 엄청 써가면서

 

그래도 가을이 되면서, 내년 계획을 새로 절절하게 짜다보니, 일단 시작한 거는 어떻게든 마감을 지어야 좋지 않을까 싶어.

 

시리즈의 10권이 농업경제학이다. 어떻게 보면 나의 양심이다. 사람들이 이름 좀 알만한 경제학자 중에서 농업 얘기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내 출발점이 농업은 아니다. 그러나 내 양심이 향하는 마지막 종착지는 농업이다. 여전히 그러하다.

 

그리하여 은퇴하기 전에, 농업 얘기는 어떻게든 좀 정리를 해보자, 이렇게 해서 생각을 시작했드랬다.

 

최근에 농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이 구상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더 안 좋아졌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도 비교적 모범이라고 할만한 프랑스도 독일도 농업 정책은 요즘은 개판 5분 전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 뭐 그런 게 없다.

 

그래도 나의 양심이니까, 내기는 할 것인데이걸 후년 작업으로 잡았다. 뭔가 새로운 흐름이 내년 상하반기에 나오지 않을까, 그런 가냘픈 희망으로.

 

개별 국가 정책은 개판이지만, EU 통합 정책이 아마 내년에는 좀 더 모습을 보일 듯 싶다.

 

그리고 미국의 변화도, 지켜볼 만하다. 미셀 오바마가 백악관에 텃밭을 시작했다. 푸드 스탬프의 후속 프로그램도 좀 지켜볼 만하고, 일본에서의 청년농업직불금 관련 조치들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내 평생에 농업경제학 책은 딱 한 번 낼 것인데, 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냥 내가 아는 것만 정리해서,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기다렸다가 10권 내면서 그냥 시리즈 쫑 탁 내는 것에 대해서 요즘 고민하는 중이다.

 

그렇게 8권은 건너뛰고 10권에서 시리즈를 끝낼까 고민하던 차에

 

며칠 전 저녁 밥 먹다가 밀양 얘기를 보면서, 그냥 사람 죽어도 그만이라고 하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에너지 책은, 간단히 말하면 1쇄 털기가 아주 고욕인 책이다. 거기다 원자력에 반대하는 책, 힘은 힘대로 들고 성과는 없는.

 

몇 년 전에 기든스가 기후변화 관련된 책을 낸 적이 있다. 기든스, 그래 바로 그 제3의 길의 앤서니 기든스이다. 번역자는 홍욱희 선배, 이름 들으면 몰라도 그 때 그 사람, 그렇게 들으면 어지간히는 알만한 사람이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광화문 뒷골목의 중국집에서 탕수육에 빼갈을 정말로 맛있게 같이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옆에 같이 있었던 공무원 양반은 나중에 특허청장이 되었다. 숱한 논쟁과 치고박던 스토리 속에서도 그 양반과 그날 빼갈 마시면서 했던 얘기는 정말 좋았다.

 

이 양반이 한전 출신이다한전 그만두고 나와서 시민운동한 사람, 하여간 이름 하나만큼은 쟁쟁한 사람이다.

 

기든스의 책을 홍욱희가 번역했는데, 그래도 얄짤 없다이게 에너지 책의 한계치라고 보면 된다.

 

천하의 기든스가 써도 어렵다. 아마 움베르토 에코가 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자력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얘기들을 다 모아서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내가 에너지맨이었고, 에너지로 오랫동안 밥 먹고 살았고, 그걸로 살아왔던.

 

간단하게 책 구성을 생각해봤는데, 일단 책 한 권은 충분히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원자력에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 대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근 민간 전문가 위원회가 하나 열렸고, 위원장을 김창섭 박사가 했다.

 

오래 된 동료이고, 한 때 내 몸처럼 아꼈던, 정말 내 친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양반이다.

 

2004년도, 민주노동당 처음 원내 진출하는 그 총선 때, 탈핵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처음 썼고, 그 때 탈핵 프로그램을 디자인한 적이 있다.

 

10년 전 일인데, 김창섭 박사가 위원장으로 내린 기술적 결론이 그 시절에 내가 내린 결론과 같았다. 대가리 정상이면, 그 결론 외에는 없을 듯 싶다.

 

그 얘기를 10년만에 다시 꺼내볼까 싶다.

 

그 뒤에도 새로운 경험과 지식이 좀 얹힌 것들이 있다. 하다 보니 발전사 사외이사를 3년이나 했다. 발전소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뭘 하고 싶은지, 정말로 그 현장에서 몇 년을 보냈다.

 

그리그리하여

 

내년 상반기에는 간만에 에너지 관련 작업을 좀 해볼까 한다.

 

어떻게 보면 내 깊숙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공직을 그만둔다고 생각할 때, 원자력에 대한 내 입장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을 반대하거나 아니면 반대한다고 입장을 표출하면, 에너지 분야에서는 고위직에 갈 수가 없다. 현실이 그렇다. 생각을 바꾸거나, 아니면 말을 하지 않는 지혜를 갖추거나.

 

당시 나는 3급 부장 말년차였고, 현장 팀장이었다. 슬슬 2급 부장 승진과 함께 초고속 처장 승진이 기다리던 때였다.

 

물론, 그 중간에 내가 원자력 찬성자로 입장을 바꾼다는 전제하에

 

몇 가지 그런 정황과 개인적인 학자로서의 판단을 종합해서,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몇 년간 나의 아내는 빈처가 되었다.

 

그 시절의 얘기들과 그 후에 내가 더 알게 된 것들을 모아서 한 번 구상해볼까, 그런 고민 중이다.

 

왜 우리에게 원자력이 대안이 아닌가, 그 어쩌면 너무 뻔한 얘기들을 한 번 정리해볼까 싶다.

 

, 돈도 안되고, 힘은 힘대로 들고무엇보다도 여태껏 살면서 나와 계속해서 동료로 지내고 있던 사람들과 등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도 선택을 쉽지 않게 만든다.

 

그렇지만 마음과 양심이 가는 대로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박근혜 하는 걸로 봐서는, 몇 명 죽더라도 공권력이, 질서가, 이렇게 갈 거다.

 

나도 그냥, 양심이 가는 대로 하려고 한다.

 

한 때,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공로로 장관 표창도 받았던 내가

 

이제는 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년도 상반기에 책 한 권 작업할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

 

제목까지는 정해놓았다. 쎈 제목이다.

 

양심을 버리면, 결국 나이 먹어서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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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계획을 짜다가

 

1.

행복한가, 이 질문을 종종 한다. 내 삶은 대체적으로 행복한 편이다. 그래도 지금 행복하지, 이런 말이 내 입에서 잘 나온다.

 

그렇다고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에 별로 행복하지 않았고, 가장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직장 생활 시절, 그러니까 외형적으로는 내가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우울했고, 그 우울함을 참을 수 없어서 계속 술을 마시고.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나를 굉장히 우울하고 침울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랬다.

 

사직서를 내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이 한동안 이어졌는데, 그 때는 삶은 어렵더라도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 기간 내내, 나는 행복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2.

올 가을, 정신 없이 뛰어다니다가 그 질문을 다시 했다.

 

지금 행복한가?

 

물론 행복하지 않다.

 

LG 2위 정도로 리그를 마무리하게 될지 미리 알았다면, 좀 다른 대답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선두에 있던 LG는 정신 없이 4위도 보장하기 어렵게 곤두박질 치고 있었고, 내 삶도 그렇게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우울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 때쯤 예전에 몇 번 보았던 영화 <머니 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영화 보다가 내가 우는 건 아무 사건도 아니지만, 지난 수 년간 영화 보면서 울었던 것 중에서는 가장 강렬하게 울었다. 그냥 울고 만 것이 아니다. 머니볼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났고, 요즘 내 파트너로 같이 작업하고 있는 이송원 PD에게 영화의 느낌을 설명하다가도 또 눈물이 났다.

 

진짜 며칠, 엄청 울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3.

대선이 끝나자마자 시작한 올해, 지난 수 십년 동안 한 해 계획을 짜지 않고 출발한 첫 번째 해였다. 1년 계획은 물론, 2~3년 계획까지 촘촘하게 짜놓고 움직이는 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물론 계획을 짠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들은 늘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계획을 짜야 계획을 고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그걸 알 수 있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게 되었다. 내 삶은,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삶과는 많이 달랐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례가 없던 길을 가게 되었다.

 

경제학자가 영화 기획을 하게 되고, 그래서 영화 판권을 팔고, 또 다른 영화 기획에 참여할 것을 제안받는 상황... 내가 아는 한, 전례는 없다.

 

그래도 꼬박꼬박 계획을 짜면서 하나씩 걸어가다 보면, 별로 불안감은 없다. 잘 되면 계속 하는 거고, 해봐서 영 아니다 싶으면 접는 거고.

 

계획은 바꾸고 수정하라고 있는 거 아니냐? 그러나 계획도 없으면 너무 불안해진다.

 

2013, 올해가 정말로 아무 계획 없이 첫 해를 맞았던 해이고, 뭘 할지, 어떻게 할지 아무런 생각 없이 연초가 지나갔다.

 

올해는 정말로 되는대로 살았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되면서 나에게 지금 행복한가, 물어봤는데...

 

, 시방 나는 행복하지 않다.

 

그래서 영화 <머니 볼>을 보고 실컷 며칠 울고 난 후, 내년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4.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여간 내년에는 둘째 아기를 가질 생각이다. 아내도 원하고, 나도 그러고 싶고.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이 둘 키울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내는 직장에 계속 다닐 계획이다.

 

좋은 아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성실한 아빠가 되는 것을 맨 위에 놓고, 그리고 다음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년 봄이면 동네에 어린이 집이 생긴다. 하루에 몇 시간 어린이집에 아기 맡기고 할 수 있는 일 정도로, 내가 하는 일들을 대폭 줄일 생각이다.

 

그리고 보람과 의무감, 이런 건 당분간 접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생각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누구한테 행복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내년 가을에도 나에게 행복한가, 물어봤는데, 올해와 같이 행복하지 않다, 그렇게 답할 수 없는 삶, 그런 삶을 왜 사는가?

 

내 삶에 행복이 넘쳐야 사람들을 지켜줄 수가 있고, 길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5.

지금 하는 일들은 대체로 내년 봄에서 여름 사이에 정리가 된다. 내년 7월을 경계로, 정말로 재미있거나 죽도록 보람 있는 일만 남길 생각이다.

 

학자로서 했던 일, 의무감으로 했던 일, 그런 일들은 올 겨울부터 시작해서 정리해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나도 뭔가 새롭게 배우려고 한다.

 

곰곰 생각해봤는데, 아비로서 내가 아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평생을 갈 중요한 일은 빵 굽는 기술인 듯싶다.

 

물론 나는 요리는 조금 하지만, 빵 구울 줄은 모른다.

 

그거야 배우면 되는 거고.

 

아비로서, 내 아들이 먹을만한 빵 몇 개를 구울 수 있는 남자가 되면 좋겠다, 그게 내가 오랫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정말로 곰곰이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다.

 

내가 빵을 배우고, 빵을 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빵 굽는 어린이로 자라게 될 것 같다.

 

영어, 한글, 수학, 그런 건 몰라도 된다. 시간되면 천천히 배워도 되고, 잘 못해도 상관없다.

 

행복은 그것과는 상관 없다.

 

우리는 존재감을 과시하거나, 화려한 부를 휘두르기 위해서 혹은 잘난 척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6.

그리고 나를 위해서, 평생 내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재밌었고, 더 해보고 싶은 일이 뭔가, 생각을 해봤다.

 

이 결정은 비교적 쉬웠다.

 

머니볼 보고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울고 있던 시절, 영화사에서 같이 일하는 이송원 PD에게 올해도 내년작을 결정하지 못하면 문 닫기로 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영화 기획을 시작한지 3년쯤 되는데, 작년에는 아주 열심히 했고, 올해는 아무 계획도 없이 시작해서 아주 조금만, 뜨문뜨문했다.

 

잘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해본 일 중에서 제일 재밌는 일은 영화 기획이었다.

 

다행히 연출이나 현장 PD와는 달리, 기획은 화려하지도 않고, 아기 키우면서 잠깐잠깐 시간을 내서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일이다.

 

그리고 내년에 내가 맡을 영화 기획에 관한 계약을 다음 주에 한다.

 

재밌는 일을 마침 하게 될 기회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경우에는 내가 운이 있는 편이다.

 

부차적으로 보조기획을 2~3편 하게 될 것 같다.

 

7.

내년도 계획을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삶은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편해졌다.

 

한 가지는 이번에 확실히 이해한 것 같다. 나는 화려한 것 보다는 뒤에서 누군가를 지원하고 보조하는 일을 할 때 더 행복해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돈이나 명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숨어서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혼자 있는 시간, 이걸 훨씬 더 원한다는 것.

 

올해는 내 책 한 권은 나갔고, 또 한 권이 나갈 수도 있고, 연초로 넘어갈 수도 있다.

 

책 작업은 잘 된다. 그렇지만 올해 헤매느라고 내년으로 넘어간 책들이 좀 있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것저것 맡고 있던 직책들, 사회적 역할들, 이런 건 내년을 계기로 다 내려놓고 아기와 빵 굽는 아빠로서의 삶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고양이 네 마리 돌보면서, 아기 키우는 것, 이게 내 정체성이고, 내 삶이다.

 

아기를 돌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해야 할 일은 내 일이 아닌 듯 싶고,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올해, 몇 년만에 처음으로, 내 삶에 대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답변을 내렸다.

 

그러나 내년에는 그렇게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순간순간을 행복만으로 채울 수는 없지만, 돌아보면 행복했다고 대답할 수 없는 삶, 그렇게 살면 안될 듯 싶다.

 

내년 계획을 짜면서, 나의 행복을 맨 앞에 놓고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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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솔로 계급의 경제학'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볼까 생각하면서 써본 최초의 스케치가 있다.

 

그 후로 진도도 많이 나갔고, 몇 개의 필승 카드도 생겨났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내 손에서 10월말까지 초고를 떨어뜨려 보려고 한참 작업 중이다.

 

지금의 원고는 이 때와는 톤도 다르고, 접근도 전혀 다르게 되었지만...

 

하여간 이렇게 떠듬떠듬, 시작을 한 작업이다.

 

책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나에게 가장 맞는 작업이 이 작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40대 중반, 이제 더 이상 나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때 내가 가졌던 열정 이상을 이번에 쏟아부으려고 한다.

 

스케치 작업만 몇 번을 했고, 이번만큼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많이 한 적도 없다.

 

내가 어디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는가,

 

나도 까먹을지 모를 것 같아서...

 

책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나 내 방에서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택도 없이 느린 컴 가지고 썼었는데,

 

이번에는 작업실 대신 여관방 잡아놓고 하는 것도 좀 하려고 한다.

 

전화기 꺼놓고.

 

하여간 중요한 주제이기는 한데, 아직도 결정적으로, 나는 답을 잘 모르겠다.

 

나올 때까지, 작파하고 고민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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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계급의 경제학 : 세습 자본주의와 무자식자들                                     

 

우석훈

 

< 들어가는 말 >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의 테제 11)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심각하게 만들려고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웃기는 것이다.

 

(우석훈, 솔로 테제 11)

 

1. 자식자, ‘불알 두 쪽’, 프롤레스

 

로마 시절의 일이다. 노예가 아닌 시민 중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군대에 가기 위해서는 로마병의 중장갑 전투 장비를 자신이 직접 사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지킬 것이 없으므로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있었던 것 같다.

 

5년에 한 번 로마에서 진행된 시민들의 현황 조사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의 재산란에는 자식들의 이름만이 기록되었다. 그야말로 자식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 ‘자식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라틴어 proli 즉 자식이라는 말에서 proles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야말로 자식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군대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로마 시민층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조선 식으로 얘기한다면, 그야말로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양인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우리는 상민이 아닌 모든 양인들은 군역의 의무를 지었다. 최소한 군대 앞에서 만큼은 경제적 차별이 없던 나라였다.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는 군대와 시민권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이 나온다. 외계의 괴물, 벅스들과 전쟁 중인 미래의 공화국은 군대에 갔다 온 국민들에게만 시민권을 주고, 이들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경제와 정치, 그리고 군대라는 이 복합적인 권력 중에서 군사 권력이 경제를 누르고 시민권을 통제하는 미래 사회가 설정되어 있다. 아마도 경제 권력이 너무 막강해져 문제를 일으켰는지, 결국 군인들이 기업인들을 통제했던 전사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군대에 가서 정상적으로 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투표권을 가진 시민권을 받을 수 없다는 영화에서의 설정은 군대와 경제 사이의 관계의 한 단면을 생각해보게 한다.

 

재산이 없으면 군대에 갈 수 없고, 그래서 더더욱 가난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자신의 이름 뒤에 재산 항목으로 달려있는 것은 자식들 밖에 없는 프롤레스’, 그야말로 자식자, 자식 밖에는 없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2. 프롤레타리아, 팔 것은 몸 밖에 없는 사람들, 무산자

 

로마의 가난한 시민들인 프롤레스들을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끄집어 낸 사람이 바로 칼 마르크스이고, <자본론>에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고, 팔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 농민이라는 말로 쉽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말로는 자본가(capitalist)는 유산자, 즉 재산이 있는 사람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는 무산자, 재산이 없는 사람으로 번역된다. ‘생산 수단이라는 좀 복잡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 단어를 염두에 둔다면, 무산자라는 번역이 정확하게 원어의 뉘앙스를 살리는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의미는 재산이 없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생산수단, 즉 생산을 하기 위한 수단인 공장이나 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더 가깝다. 자본가의 반대말이니까, 무산자라기 보다는 사장님이 아닌’, 그런 의미에 가깝다.

 

좀 잔인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좀 특수한 경제활동에서 누군가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기본적으로는 임금 외에는 없다.

 

<자본론>에 정의된 착취의 개념은 좀 복잡하다. 롱 스토리 숏트, 긴 얘기를 짧게 정의하면 하여간 일한 만큼의 돈을 사장에게 지불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덜 지급된 임금이 바로 잉여가치, 즉 이윤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그 반면, 주류 경제학에서는 노동의 생산성이 바로 임금이기 때문에, 일한 사람이 자신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은 주고 있다고 이해된다. 착취가 있든 없든, 19세기 중후반에 자신이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 외에는 소득이 생겨날 수 없는 이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를 새로 정립하면서 마음 속에 가졌던 생각일 것이다.

 

아주 추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은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 즉 사장님들과 노동자만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자본론>의 기본 논리이다. 그럼, 그 사장을 없애고 노동자들끼리만 생산을 하면 어떨까? 왕을 없애고 시민들이 참정권을 가지고 정치적 결정의 최고 위치에 가도록 만든 것이 프랑스 혁명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왕조를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그런 혁명의 순간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혁명이 한 번 더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19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최초의 자본주의 형성을 마친 국가에서 생겨난 사회 사상이다. 논리적으로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희생과 고통을 담보로 한 생각이다. 러시아 혁명을 시작으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현실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생겨났다.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한 역시 38선 이북에 있던 러시아의 영향권 내에서 사회주의로 근대 국가를 만든 나라 중의 하나이다.

 

3. 룸펜과 중산층

 

룸펜 정확히는 룸펜 프로레타리아라는 단어는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미 등장한 단어이다. 사장과 노동자만으로 사회가 구성되는 것은 아니고, 이건 지금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형성 초기에도 그랬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노동자만 해도 그래도 양반인 것이고, 그 상황에도 가지 못하는 부랑자, 소매치기, 좀도둑, 방랑자, 이런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그들을 룸펜이라고 불렀다. 간단히 말하면 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기본 프레임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룸펜인 것이다. 그럼 그들은 뭘 먹고 사나? 혹은 그들은 일하지 않는가? 영화 <도둑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일을 하는 것이기는 한데, 그 일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들도 노동하는 것인가? 혹은 그들에게도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아주 오래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칭송을 바쳐야 하나?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나오는 기막힌 사기꾼을 가치와 생산이라는 틀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상업영화의 제작 및 유통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 그것도 아주 자기만족적인 의미로 영화를 제작하거나 다큐를 만드는 인디 영화나 인디 다큐의 종사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런 룸펜들과 함께 또 다른 고민의 대상이 요즘은 그냥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중간계급(middle-class)'라고 할 수 있는데, 어원적으로는 그냥 소득이 중간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얘기들이 있다. 사장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은 룸펜이야"라고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직업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공무원들이 그렇다. 요즘은 공무원들도 직급에 따라서 노동조합을 만들지만, 그렇다고 공무원이 노동자인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한 때 전세계를 풍미했던 루이 알뛰세의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라는 테제에 의해서, 국가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유지하는 장치라고 하면 설명은 쉽다. “너희는 자본의 개들이야”, 이렇게 한 쪽 편으로 밀어버리면 말은 간단하지만, 어딘가 좀 찝찝하지 않은가? 종교인들도 분류가 어렵다. “종교는 아편이다”, 이렇게 자본가편이라고 밀어붙이면 이해는 쉽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종교를 처리하기도 어렵다.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된 기관인 대학교, 여기의 교수들, 이 사람들은 또 뭘까? 어차피 일을 해서 월급을 받으니까 노동자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장관 자리에 오르는 웨이팅으로는 또 가장 좋은 직업인 만큼, 통치자 쪽으로 이해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다. 매일매일 드라마에서 보는 스타급 연기자들 그리고 그 자신이 회사인 것도 아니면서 회사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A급 영화감독들, 이 사람들도 자본과 노동자라는 간편하고도 단순한 분류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해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군인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군인은 도대체 어떠한 경제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연금과 재산을 가지고 있는 퇴역한 장성들, 이들은 또 무엇인가?

 

하여간 중간계급 혹은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쉬운 개념은 아니다. 한국의 도시가계 연평균 소득이 4,500만원 정도 된다. 도시에 살면서 연소득 4,500만원을 버는 가장이 자신이나 그 식구들이 자신들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듯싶다.

 

4. 블루 칼러와 화이트칼러 그리고 슈퍼을들의 창조계급

 

20세기를 거치면서 노동자 사이에도 분화가 이루어졌다. 공장과 사무실 사이의 분화, 그래서 한 쪽은 작업복을 상징하는 블루칼러, 또 다른 한 쪽은 흰색 와이셔츠를 상징하는 화이트 칼러, 그렇게 나누어서 이해하게 되었다. 어렵게 따지자면 한없이 복잡하겠지만, 이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사무직과 공장직,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대졸과 고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서울 본사에 근무하는 문과와 지방 공장에 근무하는 이공계의 차이로 드러나기로 하였다.

 

좀 큰 눈으로 생각해보면,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블루컬러에 해당하는 노동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그 대신 판매 등 경영과 관련된 역할이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임금으로 볼 때 꼭 화이트 칼러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두 종류의 노동 사이에 사회적 위계와 선호 관계가 설정되는 경향이 있다.

 

직업이 귀천이 없다’, 우린 늘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별로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연봉에 따라, 일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근무지에 따라, 직업에 대한 선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이런 노동 방식의 차이에 따라 노동자 사이에서도 처지와 이해가 갈리게 된다. 여기에 자본주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중소기업의 문제가 한국에서는 해소되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남아있다. 대기업에 갈 것인고, 공기업에 갈 것인가 혹은 중소기업에 갈 것인가, 이 자본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 화이트/블루의 구분만큼 개인의 삶을 극명하게 가르게 된다.

 

굵고 짧게’, 이는 대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연봉은 많지만 오래 일하기 어렵다. ‘가늘고 길게’, 이는 공기업을 의미한다. 연봉이 민간 기업만큼 높지 않지만, 여전히 정년을 보장받고 있으며, 정규직 체계 내로 들어가면 그냥 그렇게 특별히 모나거나 특별히 구질구질하게 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가늘고 짧게’, 이건 중소기업을 상징하는 말이다. 연봉이 적은데, 또 언제 망할지 모르니, 가늘고도 짧은

 

'미스매칭'이라는 용어에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구직을 하라고 정부의 애잔함이 담겨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주어진 현실이 이러니, 선택지가 별로 없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프롤레타리아, 팔 것은 몸 밖에 없는데, 그나마 잘 안 팔리고, 이래저래 잠시만 다른 데 돌아보고 있으면 삽시간에 룸펜이 되어버리는 삶, 그게 현재 스코어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누군들 가늘고 짧게살고 싶겠나. 할 수만 있다면 굵고 길게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 아닌가? 화이트컬러든 블루컬러든, 결국 회사에 고용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초기 선택의 작은 차이가 개인의 삶의 인생경로를 엄청나게 바꾸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자신의 미래로써 중소기업은 영 아니고, 공기업은 힘들고, 대기업도 만만찮은 것은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사람들이 삶의 주판알을 튀기는 동안, 미국에서 환상적인 계급이 새로 출연하였다. 격론의 대상이 되었던 리처드 플로리다가 얘기한 창조계급(creative class)이 그것이다. 과학과 문화를 막론한 고소득 직종이 창조성을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그의 얘기는 창조성과 함께 도시의 관용성(tolerance)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다. 가히 게이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함의를 가진 이 논의를 쉽게 정리하면, 게이가 많이 사는 도시에 창조계급이 많이 산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게이라는 말은 아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루이 뷔통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크 제이콥스는 물론 창조계급이며 동시에 게이다. 간단히 말하면, 마크 제이콥스가 살기에 불편하지 않은 곳에 다른 창조적인 인간들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학자나 작가 혹은 영화인들은 많은 경우 독창적이며 동시에 괴팍한 사람들이라서, 전통적인 규범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익명성을 존중하지 않는 곳은 불편해서 살기가 어렵다. 플로리다의 이런 얘기들은 너무 간단한 것이라서 그게 맞을까 싶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유교적인 전통성이 강해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구의 경우, ‘밀라노 프로젝트는 충분한 정부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창조적으로 경제 구조가 바뀐 흔적을 보기가 어렵다. 이 밀라노 프로젝트 실종 사건에 대해서 경제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기는 한데, 그 중 가장 창의적인 해석이 <도시와 창조계급>이라는 플로리다의 테제를 따르는 방법이다. 분명 대구에는 돈이 갔는데, 사람들이 따라가지는 않았다. 유교적 전통에 따른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여성들과 게이들에게는 분명히 살기 어려운 도시 여건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 인간들이 대구에 거주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검증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될 것이다.

 

사회적 선호도는 블루칼라<화이트칼라<창조계급, 이 순서대로 나갈 것이다. 푸른 작업복을 입는 것보다는 넥타이를 선호할 것이지만, 그 위에는 다시 넥타이를 맬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창조계급의 영웅, 스티브 잡스도 넥타이를 매지 않고, 또 다른 한 편에 서 있는 마크 제이콥스도 마찬가지이다. 한 때 방송인 중에서 가장 많은 소득을 올렸던 강호동 역시 넥타이를 매지는 않는다. 이 넥타이를 매지 않는 새로운 계급에서 상층부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 줄을 서서 모셔가는 '슈퍼을'을 형성한다. 창조성, 상징적 자본, 매력자본, 이런 슈퍼을 현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개념들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모두의 노동 조건이 동일한 것은 아니며 임금 조건 역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5. 자동화와 프레카리아트

 

블루칼러에서 창조계급에 이르는 일련의 직업 분화와 추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가설이 있기는 하다. 로봇 등 자동화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좀 더 간편하다. 지난 100년 동안 노동자들이 했던 많은 일들은 이제 로봇 등 자동화 기기로 대체되었다. 자동차 조립공정에서 이제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설치된 자동화 로봇의 보조 역할에 가깝다. 물론 아직도 수작업으로 자동차 조립을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걸 만드는 사람들은 블루칼라라고 부르지 않고, 장인이라고 부른다. 일부 슈퍼카들을 만들 때 수작업 조립을 한다.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로 노동의 주축이 옮겨간 것은 공장 자동화 과정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개인용 PC의 보급과 함께 전산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화이트칼러의 자리도 상당 부분 위협당하게 되었다. 지금 화이트칼러의 일자리 중에서도 상당 부분은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성 내근직의 대표적이었던 전화 교환수가 결국에는 사라지게 된 것이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공기업이었던 KT가 민영화되고, 그 정리해고 과정에서 이런 전환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직종들이 몇 가지가 있다. 창조계급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직업들이 대체적으로 로봇화 혹은 자동화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로봇 디자이너, 로봇 영화감독, 로봇 연구자, 이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디자인한 웨딩 드레스, 전위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과 고가에 팔릴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청년이 자신의 미래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로봇과 경쟁하게 될 것인가 아닌가, 그 기준이 아닐까 싶다. 공무원! 탁월한 선택이다. 대통령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일이 없는 한, 공무원과 국회의원은 적어도 지금의 대학생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여전히 사람이 할 것이다.

 

블루칼라에서 창조계급까지, 노동활동이 중심축이 움직이는 동안, 기계화가 불가능하거나 기계화가 필요 없는 새로운 노동양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유자식자라는 의미의 프롤레타리아와 위험하다는 의미를 가진 precarious라는 형용사의 결합어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그것이다. 불안하고 가난한 노동자 정도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불완전 고용, 불완전 노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는데, 요즘 우리 말는 비정규직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 중에도 슈퍼을들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파견노동자와 알바까지 포함하는 일련의 노동 양상, 그들을 의미한다.

 

프레카리아트 현상이 지금 막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방식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이후의 일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이전의 사람들은 무얼 하고 살았단 말인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그 도시 빈민들이 지금의 프레카리아트보다 부유하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프레카리아트 현상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이지만 세계경제 특히 선진국 경제가 더 이상 '발전' 패러다임에 따른 고성장을 하기가 어렵다는 전망을 갖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덩치가 커져나가고 있을 때에는 내부의 문제가 뻔히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갖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그런 식의 고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지하고 나면, 지금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나중이라고 풀릴 리가 없다는 것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말을 했다. 이제,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단결하라", 이런 선언이 필요하게 된 시기가 도래하는 것일까? 한 쪽에서는 기계로 대처될 수 없는 고급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창조계급'으로 분류되는 동안, 이제는 사람값이 너무 싸서 굳이 비싼 로봇으로 대처할 필요가 없는 노동을 중심으로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을 눈 앞에 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분화 현상이 한국에서는 너무 빠른 시간 동안에 벌어지기 때문에 특정 세대 혹은 특정 연령에게서 동시에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청년은 창조적이며, 동시에 프레카리아트적이다. 이제 막 패션 디자이너나 연예 기획사 막내로 데뷔한 20, 그 어느 쪽이든 아직은 가능하다. 창조계급 쪽의 눈으로 본다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면 최소한 밥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화 노동자로 본다면, 실업보험 등 4대 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알바 혹은 그 이하의 경제적 삶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확률로만 본다면, 후자 쪽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 , 그래서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상관 없어요, 어차피 잘 안될 꺼니까요."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말이다. 그러나 자동화의 끊임없는 진전과 한계 노동의 계속적인 등장이 끝이 아니다. 창조계급과 '불안한 노동'과 같은 새로운 트렌드에 얹혀서 또 다른 장파동의 변화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있다.

 

"애인 있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아보신 적이 있으신가? 어쩌면 멀지 않은 장래, 결혼정보 회사 아니면 이런 질문을 아예 하지 않을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전쟁이나 페스트와 같은 아주 특수한 상황 아니면 전 세대가 다음 세대보다 부유했던 적은 없었는데, 한국은 부의 상대적 안정성 측면에서 다음 세대가 전 세대 보다 가난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기어야 지금 와서 새삼 놀라울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빈곤 현상과 함께 섹스도 줄어들게 될 것인가? 로마 시절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가부장 중심의 가족 패턴은 이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섹스와 부의 연관관계,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은 아닐까? 돈과 섹스 혹은 경제적 부와 섹스, 이 문제에 대해서 경제학이 질문을 던져본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엘빈 토플러 이후의 미래학자들은 세상을 지나치게 기술중심적으로 예측하였고,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지독할 정도의 낙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동화와 전산화 그리고 코뮤니케이션의 발전은 이미 상당 기간 전에 예측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 아래에서 살고 있고, 그러한 기술적 발전이 만들어내게 될 또 다른 이면에 대해서 미래학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자동화가 만들어놓은 기술적 전환은 노동자들의 권력을 현저히 약화시켰고, 동시에 그들의 경제적 삶도 열악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결혼은? 결혼은 모계제 사회가 종료하고, 수컷들이 농업을 전담하게 되면서 생겨난 장치이다. 이제 이 열악해진 노동자, 아니 노동하기도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재생산(reproduction)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섹스는?

 

6. 신빈곤 현상과 메이팅의 위기 : 솔로계급의 탄생

 

연애와 결혼, 섹스에도 좌우가 있느냐 싶겠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 보수층이 강력한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 따라서 종교적 입장과 정치적 입장이 일정하게 궤를 같이 한다. 한국의 보수는 여전히 유교적 전통이 강한 영남 지역의 정서와 강남 대형교회의 지배력이 적당히 결합된 것이라서, 가부장적 권위에 익숙한 집단이다. 혼전 순결에 대해서 입장이 나뉘고, 게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처리에서 입장이 나뉘고, 성폭행 방지법에 대해서 확실히 입장이 나뉜다.

 

자식자 혹은 유자식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로마 시대의 가난한 시민은 자본주의 출발 초기에 노동계급을 지칭하는 은유로 사용되었다. '클래스(classs)'라고 이름 붙여진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898년 톨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Theory of Leisure Class) >가 아닐 수 없다. 충분히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부유층에 관한 얘기이며, 과시적 소비에 관한 베블렌 재화는 여전히 패션, 알콜, 승용차 등 소비 현상에서 중요한 분석 기준이 된다. 창조 계급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클래스에 관한 은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된 '솔로대첩'으로 크게 유행하게 된 '솔로계급', 아마도 가장 슬픈 계급론이 아닐까 싶다. 추세적으로 결혼은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아마도 지금의 대학생 중에서 1/3 내외가 전통적으로 '가정' 정확히는 핵가족(nuclear family)의 형태를 이루며 출산을 하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그랬듯이 특히 가난한 여성에게 "결혼하라"는 정부와 교회의 메시지가 끊임없이 협박처럼 갈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데살로니가 후서 3 10.)

 

마치 성경에서 노동을 권면하였듯이 보수적 교단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고 말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카톨릭이든 기독교든, 기본적으로는 현 상태를 지키자고 하는 보수적인 종교들인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결혼과 출산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칼빈 시대의 신구교 대립 이후 결혼하는 목사들과 결혼하지 않는 신부들 사이의 예민한 종교 갈등을 다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1인 가구, 즉 솔로들의 증가는 세계적 추세이다. 그렇지만 연애하지 않는 혹은 연애하지 못하는 '솔로 계급(solo class)'의 사회적 등장은 이보다는 좀 더 복잡한 문제이다. 호모 사피엔스로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모든 남녀가 연애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엇갈려 가는 삼각관계의 슬픔과 긴장감 아니었다면 문학이 지금과 같이 융성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로맨스 코메디 같은 영화 장르는 성립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솔로의 증가가 솔로계급의 증가와 연관을 보일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굳이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다. 가난과 출산 사이에 기계적인 연관관계를 설정하기도 어렵고, 또 결혼과 연애 사이에도 유기적 관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연애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는 것처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연애를 안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많은 경제적 혹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이게 모두 신자유주의 때문이다"라는 간편한 - 그렇다고 진실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 해법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식코> 이후, 의료 문제에 대한 설명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이렇게 간편하게 답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전 세계적 부동산 버블, 이것도 신자유주의라는 편안한 설명법이 있다. 유전자 조작식품의 증가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인한 핵발전 문제에 대해서도 민영화와 에너지 산업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면 간단하지만 그리 틀리지 않는 설명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여기에 한국적 특징을 가미하기 위해서는 "이게 다 명박 때문이다", 이러면 되었다. 조금 더 구조적인 설명을 추가하기를 원한다면 "이게 다 삼성 때문이다"라는 것 하나를 추가하면 안성마춤이다. 좀 더 과학적 설명을 추가한다면 "김용철 변호사에 의하면"이라는 수식구 하나를 더 하면 완벽하다. 문재인 후보의 의료비 상한제 공약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이런 얘기들을 종합해서 "결국 삼성화재가 돈 벌어야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면 근사도 95% 이상의 설명틀이 된다. 그리고 보수 쪽 학자들의 침묵에 대해서는 삼성에서 돈을 받았거나 삼성의 눈치를 보기 때문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런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동원한 간편한 설명이 솔로 현상에서는 잘 맞지는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불이 넘어가는 스웨덴의 경우,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형태로 살아가는 성인들이 1/3이 채 되지 않는다. 1인 가구 비중은 60%를 넘어설 기세이고, 그러다 보니 혼외 출생 국민의 비중이 절반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사람들이 덜 사교적이거나 공동체의 해체가 급격히 이루어지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억지로 논리를 만들자면, 혼자 살 수 있으니까 혼자 사는 나라와 혼자 살 수밖에 없으니까 혼자 사는 나라, 그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좀 더 중립적이기 위해서 '메이팅(mating)'이라는 용어를 써본다면, 지금 한국이 당면하는 위기는 경제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메이팅의 위기이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 심지어는 가정의 평화를 꾸리는 것까지 전부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던 사회가 좀 더 현명해지고 자유롭고, 자신의 권리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등장과 함께 메이팅의 위기를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다른 아무런 조건이 없어도 메이팅의 위기는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청년을 중심으로 신빈곤 현상이 확대되는 가운데 메이팅의 위기를 만나게 되었다. 원래도 기대 소득이 남성보다 낮은 여성들은 더더욱 결혼과 출산의 비용을 높게 느낄 것이고, 메이팅 비용을 전가받을 수 없는 남성들 역시 출산 비용은 물론이고 연애 비용에 대해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이래저래 메이팅은 위기가 되었다. 그러면 소득 보전을 해주든, 보조금을 주든 아니면 청년을 위한 분배를 늘리든, 어쨌든 청년들 손에 더 많은 돈이 가게 하면 이 문제가 끝날 것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건 '문제-해법'의 전통적인 접근법보다는 '변화-적응(adaptation)'이라는 좀 더 생태학적인 접근 방법에 가까워 보인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결혼해라"라는 단순 명쾌한 답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은? 한국의 50대 이상 남성들, 결혼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해서 얼마나 적대적으로 대할 것인가, 눈에 선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직까지는 그렇게 다른 반응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지금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잇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는 유효한 수단 중의 하나로 복지 좀 더 정확히는 보편적 복지를 늘려나가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복지를 늘려서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보주의자들 역시 출산율을 자신들의 정책 성과로 이해하게 된다. 지금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그렇다. 변죽만 울리다 별 성과 없이 끝났던 오세훈의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를 표방한 '여행 프로젝트'나 출산율 중심으로 복지를 사고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을까? 스웨덴의 사례를 보면, 복지를 높여서, 여성이 행복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출산율을 높이자는 일련의 공식이 그렇게 진보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좌파의 시각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청년들의 솔로 현상 혹은 솔로 계급화 현상에 대해서 좌우 모두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입장 정도이다. 그야말로 '요즘 젊은 것들, 끌끌!'의 솔로 버전인 셈이다. 이데올로기는 시대와 함께 변해나가는데, 솔로 현상에 대해서는 기존의 이데올로기들이 아직 채 정비를 하지 못한 상태이다.

7. 세습 자본주의와 솔로계급, 한국은 어디로 가는가?

 

한국에서 3대 세습은 어느덧 일반화되었다.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어쩐지 찜찜한 것은 '3대 세습'은 북한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습이라고 얘기하면 아버지에서 자식으로 넘어가는 것인데, 어느덧 안정화로 넘어간 한국 자본주의에서 3대 세습은 이제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 삼성, 현대 등 대표적인 재벌 기업들이 지금 3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고, 언론은 물론 교회 심지어는 대학 등 학교법인도 3대 세습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경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고정 관념들이 여지없이 관철되면서, 누군가는 좀 더 쉽게 삶을 살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빈곤 상황에서 나올 수 없는 일들이 보다 더 일반화되고 있다.

 

세습이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인 것은 아니다. 포디즘을 만든 바로 그 헨리 포드는 엄청 구두쇠였고, 그 아들인 포드 2세는 씀씀이가 컸다고 한다.

 

"내 아들은 아버지가 포드이지만, 저는 아버지가 포드가 아니잖아요."

 

구두쇠인 그 포드가 어떤 기자에게 했다는 답변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그렇지만 포드사도 여러 번의 경영위기를 거치면서 전문 경영인 체계가 되었고, 더 이상 포드 가문이 몇 대씩 승계하는 그런 구조에서는 벗어났다. 무엇보다도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당대에 대기업을 일으킨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등장하였고, 그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회사를 승계하지 않는 일을 보면서, 한국에서 3대 세습에 대해서 질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 아니겠는가?

 

그렇다. IMF 경제 위기 이후 한국의 주류 경제학의 이데올로기대로 경제 운용을 했는데, 한 쪽에서는 사회적∙문화적 이유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어려운 솔로 계급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습이 기본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습형 사회는 왕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세습으로, 정치적으로는 이미 완성된 셈이다. 정치와 경제, 이 필연적으로 연결되면서도 선후를 따지기 어려운 두 요소 중에, 최소한 한국에서 세습이라는 관점에서는 정치가 먼저 진행되는 듯싶다. 그렇다면 1945년 해방 이후, 아니면 1961 5.16 이후로 도대체 한국 자본주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달려온 것일까? 그냥 편하게 얘기하면, 양반과 양반 아닌 사람으로 구성된 한국의 중세에서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서구식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보통은 3대 아니면 2대로 구성된 세습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는 한 계급과, 결혼은 물론이고 스웨덴식 혼외출산의 가능성도 없는 또 다른 계급으로 분화되는 이상한 시대로 향하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어도 출산이든 입양이든, 아이를 키우는 여성 그리고 비록 자신이 양육권은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아이가 어디서든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성, 이것과 한국의 솔로계급은 좀 양상이 다르다.

 

이 정도면, 도대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라는 껍데기를 쓰고 실제로는 중세 사회로 한국 사회가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을 던지기에, 근본적인 딜레마가 한 가지 존재한다. 솔로들에게 왜 솔로인가, 이 질문은 너무 잔인하고, 솔로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필요 없는 질문이 된다. 확률적으로, 언제 깨어질지 모르지만 일단은 외형적으로는 평온한 중산층으로 보이는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솔로 현상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끌끌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질문은 좀 다른 식으로 전개된다.

 

솔로 시대에는 어떤 산업이 뜨고, 어떤 상품이 인기가 있겠는가?”

 

영민하고도 정확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자본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사람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장사꾼들이 굳이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물건만 팔면 되지! 한국의 자본주의는, 어쨌든 세계 유일이며 세계 최초로 과외를 사교육으로 산업화시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식회사 단계로까지 승화시킨 시스템 아닌가?

 

뭔가 세상에 대해서 엄청나게 복잡한 질문을 던지거나, 아니면 세상을 구원할 방법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독자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거나 혹은 나도 잘 모르는 답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 책 한 권을 읽으면 엄청난 깨달음이 생길 것이라고 강변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에 피곤하게 갇혀 살면서 극단적인 비관론이나 염쇄주의 혹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을 호소하는 동안, 또 다른 한편에서는 쇄습 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좀 억울하지 않은가?

 

솔로가 늘든 말든, 솔로계급이 늘든 말든, 한국 자본주의는 별 특별한 전환점이 없다면 더욱 더 세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우리의 대통령 – ‘그들만의대통령이 아니라 이 스스로 솔로라는 사실 정도? 그리하여 박씨 성을 가진 소황제가 노인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권좌에 등극할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좀 심각하게 사태를 말하자면, 지금까지 오랫동안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생물학자들도 그럴 것이라고 간주한 '이기적 유전자'의 가설이 사회 한 쪽에서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명체의 존재 이유는 딱 한 가지, 자신의 유전자를 더 넓게 퍼뜨리고자 함이라! 그리하여 자기 자식을 더 많이 낳고, 무엇인가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 힘들고도 고달픈 삶을 버티고 있음이라!

 

사회 상층부는 어쨌든 세습을 통해서 '영광과 번영!(Glory and Prosper!)'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동안, 다른 한 쪽은 청년 시기부터 솔로계급으로 편입되어, 자신의 한 몸을 먹여 살리고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서 혼심의 힘을 쏟아야 하는 구조, 이러한 대한민국으로 가고 있는 게 과연 한국 경제의 목표이고 종착역인가? 오랫동안 군부 독재 아래에서 한국 경제가 이어져왔다. 그리고 10년에 걸친 민주당 정부, 다시 10년에 걸친 보수 정부, 그 시간 동안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무엇을 한 것이고, 우리가 가려고 했던 세상의 목표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8. 나를 위해 살 것인가, 우리를 위해 살 것인가? : 경제학의 진정한 의미

 

고전철학의 종결자이자 현대를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학의 시원'이라고 하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1. 남아당자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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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지구를 시작하며


살면서 가끔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 게 과연 있을까 싶다가도 인연이라는 쉬운 설명에 의존하게 된다. 


EBS에서 하는 환경다큐인 '하나뿐인 지구'는 처음으로 내가 방송에 데뷔했던 바로 그 방송이기도 하다. 물론 그래봐야 단발성 인터뷰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tv 방송은 그 때 처음 해봤다. 후에 환경스페셜을 같이 기획하면서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오래된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여간 인연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요소들이 겹쳐져서, 이번 가을 개편부터 하나지구라는 말로 부르는 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정말로 요상하다고 할 정도로 우연과 우연의 연속이었다.


미리 많은 것을 생각하거나 준비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정말로 우연하고도 급작스럽게 이 방송을 맡게 되어, 나도 많이 생각해둔 게 있지는 않다. 


기왕 시작한 거, 잘 하고 싶다는 하나마나한 생각 정도.


6팀이 돌아가게 되는데, 정신 하나도 없이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이번 주는 추석이라서 좀 쉴... 듯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관계로 이번 주에도 몇 번 나간다.


첫 번째 방송은 아열대편인데, 편집도 거의 끝났고, 더빙까지 마쳤다. 


추석날 나가는데, 약간 납량특집 분위기이다. 


우리나라가 아열대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빙하면서 최종버전을 봤는데, 으시시하다. 


환경방송이라는 게, 워낙 다루는 아이템이 비슷비슷하고, 하나지구는 20년 넘게 했으니 다루지 않은 아이템이 없다.


이번에는 생활 가까이에 있는 소재를 다루어보자고, 좀 삶에 다가가는 그런 컨셉을 가지고는 있는데... 역시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다보니, 경제방송 하나 환경방송 하나, 그렇게 방송을 두 개나 하게 되었다.


가을개편을 맞아, 몇 개 더 제안이 있기는 했었는데, 시간 관계상 이 이상은 무리이다. 새로 기획해서 준비하기에는 나도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아직은 나도 tv 방송이 익숙지 않은 관계로.


라디오 진행도 한 번 해보고 싶기는 했는데, 아기도 봐야 하는 처지에서 매일 하기는 좀 어렵고. 당분간 라디오는... 구매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라디오를 좋아한다.


욕심 같아서는 이번 시즌에 tv 버전으로 나꼽살을 기도해보려고 했었는데, 아직까지는 좀 무리인 듯 싶다. 내 인지도도 너무 낮고, 시청률도 바닥을 기는 처지에, 뭔가 새롭게 하기에는 아직은 좀.


어쨌든 나도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좀 여유가 생겨나고, 방송 여건도 지금보다는 좀 나아지면, 언젠가는 선대인과 tv 나꼽살을 꼭 해보고 싶다.


케이블에서는 비슷한 얘기가 몇 번 나왔는데, 아직은 좀 시기상조인 듯 싶고.


하여간 추석을 맞아, 새로운 방송을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워낙 간판 방송이라 나도 어깨가 편치는 않다.


출간 일정을 많이 조정해서, 당분간은 솔로계급 하나에 집중하려고 한다. 해 가기 전에는 꼭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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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가지 않아도 괜찮아, 말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솔로와 부부로 구성된다. 동어 반복인가? 어떻게 하다 보니, 동료들 중에는 여성들이 더 많다. 출판계, 방송계, 이런 데 워낙 여성들이 많아서 그런 듯 싶다. 영화를 같이 준비하는 동료 집단만, 그곳은 완전 남성들의 세계이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 중에서 맞벌이가 아닌 집은 한 곳도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 주변의 여성들은 모두 일을 한다. 에디터와 작가들이 많고, 연구직도 상당히 많다. 전혀 그런 일 할 것 같지 않던 여자 후배가 얼마 전부터 헤드헌터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중학생 딸을 둔, 평생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사람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한 것일까? 원래는 바이올린 전공이었다.

 

그 맞벌이 부부 중에서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가끔은 있다. 뒤늦게 감독 준비하는 조철현, <황산벌> 등 대부분의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기획했던 이 아저씨가 아기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빠가 없는 경우도 벌써 생겼다. 급작스럽게 암으로 떠나간 이재영이 딸과 아들, 두 아이를 남겨놓았다. 이재영이 떠난 뒤에 나도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못 봤는데, 요즘은 가끔 그 녀석들과 만나서 밥을 먹는다.

 

우리들 주변에 있는 수많은 아기들이나 청소년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제는 주식투자나 아파트 값 같은 것보다는 그들에게 펼쳐주고 싶은 미래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나온 우리 주변의 학생들 중에서 가장 편안하게 풀린 경우는, 외고를 그만두고 나온 조모 교수의 아들이다. 나의 첫 번째 조교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느덧 경제학 박사가 되었고, 미국 공무원과 결혼도 하였다. 좀 극단적인 경우이다. 검정고시로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그 중에는 아예 대안학교로 간 녀석들도 많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간 친구도.

 

내 주변에는 아예 조기 유학을 떠난 녀석들은 없었는데, 작년에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을 접고 엄마와 아빠가 아예 미국에 가서 같이 정착을 한 경우가 생겼다. 아빠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월급 받는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그 아빠가 요즘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료 중의 한 명이다. 기러기 아빠가 된 셈이다. 나와 주기적으로 술자리를 같이 하는, 그리고 10년 이상 된 동료 중에는 첫 번째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캐나다 교포라서 캐나다 사람도 내 주변에 있다. 이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으니 토론토로 돌아가서 캐나다 사람으로 키우는 게 나을지, 아니면 한국의 이 황당한 입시 지옥에서 딸을 한국인으로 키우는 게 나을지, 부모들이 요즘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공교육주의자이고, 사교육은 되도록이면 안 시킨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가 지켜온 신념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중등교육 특히 공교육 고등학교의 현실을 보면서 나름 걱정들이 깊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 주변의 좀 나이 먹은 녀석들, 이제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녀석들 중에는 대안학교 1세대들이 있다. 그 사회적 실험 한 가운데에서 어른이 된 것인데,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는 재밌게 살아간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둘 다 검정고시를 거쳐서 적당한 대학을 나왔다. 한 명은 활동가로, 한 명은 출판사 에디터로 살아간다.

 

이제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 엄마 중에서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다들 직장에 다니는 처지라서 초등학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들을 자꾸 불러내면 어떻게 할까, 아예 그런 거 없는 사립학교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한다.

 

우리 아기는 돌이 지났다. 아직 어린이집을 보내지는 않았는데, 동네에 어린이집이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한 상태이고, 좀 먼 동네의 어린이집은 대기 순위 100번쯤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데리고 있다. 아내는 복직했고, 내가 시간을 좀 더 내서 이렇게 저렇게 버티는 중이다.

 

, 당연히 아직 엄마도 제대로 못하고, 걸음마는 몇 달째 시도 중이다. 머리 숱이 많은 거 말고는 그냥 평범한 남자 아이다. 짐승의 소리로 울부짖는 것을 좋아하고, 요 몇 달 사이에 업어 달라고 땡깡도 부쩍 늘었다. 아기가 들을 동요 CD를 사러 나갔다가 깜짝 놀란 건, 우리 말로 된 동요 CD가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 거의 다 영어 동요이다. 고르고 골라서 두 셋트 사왔는데, 거기에도 한 장씩은 영어 CD가 들어있다.

 

이 사회의 무의식 한 단면을 본 듯 했다. 엄마들의 조바심과 지독할 정도의 마케팅이 딱 결합해서 생겨난 유아 영어교육 시장,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돈이면 다냐 싶지만, 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염치나 상식 같은 것도 거추장스러운 윤리 타령일 뿐일 것이다.

 

아기가 첫 울음을 떼자마자, 아니 뱃속에 들어 앉아마자 시작된 영어 태교 같은 것으로, 교육받는 것은 아기들이 아니라 바로 그 부모들이 아닌가 싶다. 아기들보다 먼저 엄마가 살벌한 경쟁을 체화해나가며, 그야말로 아기가 아니라 부모가 사육되는 세계.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 생각하면 좀 섬찟하다.

 

최근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디가 한 명 있다. 딸이 중3인데, 초등학교는 대안교육에서 그리고 지금은 공교육에 들어가 있다. 책은 전혀 읽지 않고, 아무 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전형적인 중3이다. 얼마 전에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 그럼 안 가면 되겠네.

 

아비가 너무 솔직하게 말을 하니, "아니, 일단은 좀 더 다녀보고..."

 

학교에 가기 싫으면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무지막지해 보이지만 정말로 현실적인 아비의 말 한 마디에 딸은 일단 학교에는 가기로 했다.

 

그 녀석에게 우리가 무슨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게 오늘 내가 시작한 고민의 출발점이다.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야 한다면, 적당한 방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의 잠재력마저 죽이게 된다는, 무지무지한 2013년의 현실이야 너무 자명하지 않은가?

 

어쨌든 좀 지켜보자, 그런 심정이다.

 

무책임한 얘기인가?

 

나도 그냥 생각을 해본다. 아들은 영어학원은 물론이고 어떤 학원도 보낼 생각은 없다. 정 뭔가 교육을 시켜야 한다면 그냥 내가 시킬 생각이다. 그래도 안되면?

 

그래서 대학을 갈 수 없다면?

 

지금 내 생각으로는, 안되면 마는 거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죽어라고 대학을 가야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지 않은가?

 

대학을 일부러 가지 못하게 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게 만들거나,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살면서 꿈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소망해본 적도 없다. 그래도 그냥,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별 문제는 없었다. 그 대신 외제차 같은 거나 좋은 옷을 일상복으로 입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살아왔다.

 

아기도 나를 닮았으면 꿈도 없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을 것이고, 그 대신 혼자 처박혀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또래에서는 남자들은 다 하는 당구를 칠 줄 모르고, 포카 같은 것도 해본 적이 없고, 섯다를 비롯한 화투장 숫자도 못 읽는다. 고도리는 규칙을 겨우겨우 알 정도이다. 볼링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하다 싶다. 스타크래프트 정도가 해 본 거의 유일한 오락이고.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꿈이 없는 대신,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강렬한 열망도 없다면, 어쨌든 밥은 세 끼 먹고 사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아들에게 무엇인가를 하나 가르쳐주어야 한다면, 카지노에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것 하나를 남겨주고 싶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정선에서 카지노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의지로 극복하지 못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종종 있는 법이다.

 

나의 아들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아, 이렇게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며칠을 곰곰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고, 생각도 정말 그렇게 한다. 그렇지만 그만큼 약간의 절제와 얼마간의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절제와 지식, 그건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아니다.

 

대만에서 6세 이하인가, 하여간 유아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한국과 대만의 차이는, 딱 지도자의 상식의 차이 아니겠는가? 상식을 가진 시민을 육성하는 것, 그게 원래 미국 대학 교육의 목표라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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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언제나 쇼파 한 가운데 처질러져서 자던 야옹구가, 올 여름에는 드디어 쇼파 등위로 올라갔다.

 

일자로 죽 뻗었다.

 

돌 막 지난 아기가 꼬리를 잡으려고 돌진하고, 맘씨 좋은 야옹구는 그냥 도망 다니는 걸로 육아를 대신. 아기 울 때 야옹구 보면 직빵이라서, 요즘 집 안에서 야옹구의 주가가 초강세이다.

 

얼마 전부터 강아지풀을 아기가 들고 흔들면서 야옹구와 진짜로 부대끼면서 놀기 시작했다.

 

쇼파에 아기가 따라 올라오기 때문에, 야옹구는 아기한테 밀려서 쇼파 등에서 길게 누워 자기 시작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 아니 야옹구는 환경의 동물.

 

우리 모두 아기에게 적응해서 지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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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생을 위한 에세이집 >

 

내가 그렇게 부지런히 사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도 아니다. 열정, 생각해보면 그런 걸 내 인생에 가지고 있었던 적이 과연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냥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돈 되지 않는 걸 부지런히 챙겨가면서 하니까 부지런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양심이 너무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했던 약간의 소란스러움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누가 딱 봐도 출세나 성공과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고, 오히려 윗사람들한테 찍히거나 우파들한테 단단히 미움 받을 일만 골라가면서 했으니까 좀 열정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내 마음 편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 것도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남들 하는 것과는 다른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인생을 낭비하고 사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대학 때는 물론이고, 나는 연애도 거의 한 적이 없다. , 인생을 낭비하고 사는 듯해 보이는 사람과 얽혀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견적서가 금방 튀어나왔을 것 같다. 입장 바꿔놓고 보면, 나처럼 진짜 돈 되는 일 피해 다니고, 성공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만 돌아 돌아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하다.

 

매달 가지는 못해도 어쨌든 지난 몇 년 동안 중고등학교 강연은 꽤 간 건 것 같다. 다양한 방식으로 10대들을 계속 만나려고 노력했다. 초창기에 봤던 녀석들은 벌써 대학에 갔고, 군대에도 가고 유학도 가고. 좀 부지런하게 살려고 했으면 그 녀석들 어떻게든 챙겨서 계속 만났으면 나도 많이 배웠을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못했고. 가장 최근에 본 친구들은 무슨 인터뷰집을 낸다고 집 앞까지 찾아왔던 고3과 고2 친구들.

 

언젠가는 ‘10대들과 대화하기정도의 제목으로 한국의 10대들에 대한 경제 인류학적 연구서를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88만원 세대는 초창기에 연구하던 그 10대들이 대학에 가면서 생겨난 변화 같은 거 생각해보다, 그야말로 얻어 걸린 테제라고 할 수도 있을 듯싶다. , 살면서 얻어 걸리는 것도 가끔 있어도

 

그래서 아직까지는 10대들에 대한 전격적인 연구를 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또 당분간 그렇게 할 여건이 되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데 못 하는 게 뭐 어디 한 두 개인가?

 

그렇지만 지난 10년도 그랬지만 앞으로 5, 정말 난리 부르스처럼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 벌어질 곳이 바로 중등교육 현장, 바로 우리들의 중고등학교일 것이라는 점은 뻔해 보인다. 박근혜가 제대로 못 푸는 문제가 한 두 가지일까 싶지만, 하여간 교육 현장은 진짜 이상해질 것 같다. 전교조한테 교육을 너무 이념적으로 본다고 하는데, 지금의 보수주의자들이야말로 교육을 너무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의 지지자로 만들거나, 자신들의 복제품, 클론처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것처럼.

 

전 세계 어느 나라를 살펴봐도 선진국 중에서 자신의 중등교육을 자기 나라에서 한 바퀴 돌리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우리들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2세를 외국에 위탁시키는 아주 기이한 시스템을 만들어놓았다. 이게 아주 난감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걸 뭐 일거에 고치자고 할 만한 힘도 없고, 그럴 역량도 안되고.

 

그래서 생각한 게, 중고등학생들이 읽을만한 에세이집을 한 권 준비해보는 것이다.

 

박사 논문 끝내고 약간 한가한 시간이 생겨서 내가 안 보던 분야의 경제학 저널들을 챙겨서 읽은 적이 있었다. AER에서 페다고지를 주제로 해서 학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았던 단어 하나가 준 충격이 오래 간 적이 있었다.

 

‘otherwise bright student’에 대한 글이었는데,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학생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문맥상으로는 좀 삐딱한 학생이 아니라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얘기였다.

 

경제학과 1학년 첫 수업에 들어온 여성과 유색인종이, 그야말로 변수와 방정식으로 유치찬란한 첫 수업을 듣자말자, , 이건 내게 도움이 되는 학문이 아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야 다른 방식의 접근과 시선이 경제학에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경제학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런 얘기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의 공교육과 조기 유학과 딱 맞는 말이다.

 

집이 가난하거나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이 딱 학교에 가자마자, 이런 나와 안 맞는군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녀석들이 볼만한 에세이집을 한 번 써보고 싶은 게 요즘 내 생각이다. 아직 구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고.

 

테마별로 할지, 회고식으로 할지, 그런 것도 방향을 못 잡았다. 다만 독서하는 방법, 글 쓰는 방법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쓸까 한다. 내가 하는 방식으로 공부해봐야 나보다 공부를 잘 하기가 쉽지가 않겠지만, 그 정도 공부하면 한국은 몰라도 외국에서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 듯싶다.

 

시대가 어둡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뭐라도 좀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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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바보 삼촌.)

 

삶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요즘처럼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도 별로 없을 듯하다. 사실, 요즘 나는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머리 속으로는 계속 이런 저런 구상들을 해보기는 하지만, 그거야말로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이니, 공적인 의미는 아무 것도 없는 일들이다.

 

모든 것이 공적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어쨌든 정말로 오랜만에 사적인 삶 외에는 하는 게 없다.

 

사적으로 아기를 아기를 돌보고 있고, 한동안 하지 않던 경제적 활동을 조금씩 시작해서, 에라, 돈이나 벌자...

 

한동안 돈 안 벌고 살았는데, 요즘은 소일거리로 조금씩 돈을 버는 중이다.

 

 

 

 

(엄마 고양이, 요즘은 마당에서 하루 종일 멍때리며 보낸다.)

 

아기 보고 있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 없이 흐른다. 돌 가까워지면서 아기가 벌써 두 번이나 앓았다. 집 근처에 소아과 병원이 없다. 병원 하면 가는 것도 이제는 큰 일이다.

 

아기 보는 틈틈이 전화 몇 통화 하고 나면 금새 해지고, 밤이다.

 

아내가 복직한 다음, 정말로 해야 할 집안 일이 많아졌다.

 

 

 

(바보 삼촌, 하품 중. 넉살 좋고, 표정 좋다. 이런 바보 삼촌의 인생관을 배워야 한다!)

 

하는 일도 없이 바쁘다는 게 정말 요즘의 나일 것 같다. 뭐, 절대 시간의 대부분을 아기와 보내니까.

 

아기 앞에서는 컴은 물론이고 핸펀도 켤 수 없고, tv도 못 킨다. 노트북 아니라 노트도 못 펼친다. 만년필이든 다 뺏어가버린다.

 

영화 모니터링 작업 같은 것도 물론 할 수 없고.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요즘 배워나가는 중이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신문에 많은 글을 썼는데, 이젠 좀 내려놓으려고 한다.

 

경향신문에 한 번 남았다.

 

지방에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하면서, 거의 매주 지방에 갔다온 듯 싶다. 지난 수 년간, 늘 그랬었다.

 

지난 번 곡성 가면서, 이젠 진짜 먼 데 좀 그만 가자고 했는데...

 

다음 주에 구레에 간다. 안 갈 수만 있으면 안 가고 싶은데, 형편이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하반기에도 매주 지방에 가야할 듯 싶다.

 

오매나야...

 

내가 책상이나 스튜디오에 얌전히 앉아있는 꼴을 사람들이 못 본다.

 

현대시절이나 정부기관 시절, 그 시절에도 나는 내근보다는 지방 출장 등 출장이 훨씬 많았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그게 어쩌면 팔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스튜디오에서 방송해도 되잖아 싶지만, 나를 데려다 쓰는 사람들은 꼭 전국을 헤매고 돌아다니게 만든다.

 

생태 경제학이라는 게, 대부분의 현장이 지방이라, 이래저래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

 

 

 

 

(강북걸, 뽀샤시하게 나왔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세상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상의 모든 것들이 답답하고 갑갑해 보인다. 그 삶에서 지나치게 시니컬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인격 수양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나 동료를 애정으로 대하는 것,

 

아... 몸에서 언젠가 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LG팬 10년이니 사리가 나온다고 했던가?

 

20대에는 '날선 칼 같은 삶'이라는 표현을 좋아했었다. 왠지 나도 그래야 할 듯 싶었던.

 

옆구리에 살 잡히기 시작하면서 '가늘고 길게'를 얘기하던 어른들이 심정이 좀 이해가 갈 듯하기도 하다.

 

마흔 여섯, 이제는 뭔가 벌릴 나이도 아니고, 펼쳐놓았던 혹은 펼쳐진 많은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이다.

 

하긴, 별로 펼쳐놓은 것도 없어서, 그냥 내 방만 잘 치워도 되는감?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에니메이션 작업인데, 펼쳐놓고는 뒷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아직 손도 못대고 있다.

 

요즘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 그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냥 아기 돌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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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계급의 질문, 간단 정리

 

1. 메이팅의 위기

나쁜 남자, 젊은 오빠, 연하남, 프렌디

 

2. 경제적 동기

 

3. 적대감

 

4. 젠더 전쟁

 

5. 세대 전쟁

 

6. 공간의 재구성

 

7. 금융과 싱글

 

8. 최저임금과 기본 소득

 

9. 방송, 출간, 영화 등 문화 부문

 

10. 교육과 솔로

 

11. 가족과 가족 아닌 사람, 그 두 그룹의 관계

 

12. 관계의 경제학

 

13. 사랑의 노동

 

14. 흑인 여성이 편의점에 온다면?

 

15. 솔로를 위한 정책 아니면 엄마를 위한 정책?

 

16. 창조경제와 중공업 그리고 경공업

 

17. 교육과 솔로

 

18. 가난한 솔로

 

19. 부등가 교환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20. 착취, 성적 착취, 솔로 착취

 

21. 가난한 solo vs 부자 solo

 

22. 솔로들의 정치

 

23. 여성들의 미래

 

24. 솔로와 스포츠

 

25. 솔로와 농업

 

26. 솔로와 군대

 

27. 엄마 사회냐, 언니 사회냐?

 

28. 사회주의와 솔로 현상

 

29. 출산률이 다가 아니다

 

30. 비자발적 솔로, 어쩌라구?

 

31. 고립과 연대

 

32. 솔로와 쇼비니즘 그리고 국가주의

 

33. solo와 자원 그리고 생태

 

34. solo와 에너지 효율성, 통합 그리드

 

35. 메이팅 산업과 거래로서의 결혼 그리고 이혼

 

36. 혼자 늙어가는 남성

 

37. 혼자 늙어가는 여성

 

38. solo와 관광

 

39. 솔로문학, 솔로예술?

 

40. 기계로 대체되지 않는 노동

 

41. 혐오와 증오

 

42. 클라스로서의 솔로

 

43. 군인들의 조직, 솔로들의 조직 그리고 기업론

 

44. 솔로와 반려동물

 

45. 솔로 시대의 국민경제와 거시경제

 

46. 연금문제 등 경제 제도 - 제도를 사람에 맞출 것인가, 사람을 제도에 맞출 것인가?

 

47. 가부장제 그 이후의 삶

 

48. 풍요 그 이후의 고독

 

49. 헤겔이냐 프로이드냐?

 

50. 솔로의 합리성, 합리적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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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계급의 경제학, 헤매는 중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올해, 나는 되는 일이 없다. 뭘 해도 잘 안되고, 어떤 시도를 해도 별 볼 일 없다.

 

보통 나는 계산을 많이 해보고 움직이는 편이다. 계산 같은 건 전혀 안하고 안 따지는 듯하기는 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이 따진다. 그리고는손해 볼 것 알아도 의리나 명분에 의한 결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의리, 뭐 아닌 듯싶게 살아왔지만, 의리에 의한 결정도 많이 내렸다. 그렇지만 손해 본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하여간, 딴 건 몰라도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내 계산은 거의 맞지 않고, 나도 내 계산을 믿지 않는다. 올해는 무조건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최악으로 안될 것이다, 그런 예상들은 잘 맞는다. 그걸 꼭 계산해봐야 알고, 예상해봐야 아나

 

그러면 아무 일도 안 해야 하고, 가만히 있는 게 맞는데, 8월이 막 시작되는 지금까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고, 예상보다 많은 시도를 했다.

 

그래서 결과가

 

연전연패.

 

아놔,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맞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다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막 던진 건, 박근혜와 살게 된 첫 해, 아주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머리 박고 있었다

 

그렇게 박근혜 시대에 나는 조용히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어려울 줄 알았다, 그렇게 내 삶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잠시는 현명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것 같았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올해, 나는 연전연패 중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정답이긴 한데, 그럴 수는 없어서 움직이기는 하는데, 내 실력에.

 

이렇게 헤매는 와중에 새롭게 붙잡고 있는 연구 주제가 솔로 계급의 경제학이라는 거다.

 

보통 같으면 도서관에 몇 년씩 틀어박히고, 볼 수 있는 책은 싹 다 뒤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고

 

지금은 그러기가 어렵고. 아기 보는 와중에 며칠에 한 번 잠깐 인터뷰하고.

 

컴 작업은 낮에는 상상도 못하고, 노트북 아니라 노트도 아기 앞에서 꺼내놓기가 어렵다.

 

이러다가 진짜 애기 업고 방송 촬영하러 나가게 생겼다. 당장 이번 주는 수요일 오전부터 촬영인데, 아기 맡길 데가 없다. 에라, 정 안되면 그냥 아기 들처 엎고 나가야겠다. 그러는 중이다.

 

하여간 연구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냥 그냥 버티는 중이다.

 

이 와중에 솔로로 지내는 사람들 인터뷰하고, 의견들 묻고, 그런 걸 모아낼 수 있는 데이터 뒤져보니와 죽겠네.

 

민간기업에서 연구할 때에도 이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고, 국제협상 나가는 틈틈이 데이터 뒤져볼 때에도 이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한데

 

워낙 주제가 재밌는 주제다. 그리고 야구로 비유하면, 뭔가 배트 끝에 딱 걸렸다는 느낌?

 

연구 여건으로는 최악의 상황이기는 한데, 나름대로는 주어진 조건 내에서는 최선을 다 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솔로로 시작했다가, 청년에 관한 얘기 그리고 젠더 이코노미라고 잠정적으로 이름 붙였던 책 세 개 분량의 얘기들을 지금 한 권에 따 내려놓는 중이다.

 

솔로라는 게, 꼭 청년에 대한 얘기인 것만도 아니고, 꼭 여성 혹은 젠더에 대한 얘기인 것만도 아니다. 구분을 하면 별도의 얘기이기는 한데, 결국에는 그 얘기가 그 얘기이다. 억지로 나눌까, 아니면 합칠까, 나는 합치는 것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 좀 극적으로 느낀 게 있다.

 

남성들의 여성에 대하 적대감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 그리고 연령이 낮아질수록 이게 더욱 더 높아진다는 사실.

 

이건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흐름과는 좀 다르다.

 

90년대 이후,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다음 세대가 될수록 마초 지수는 낮아지고, 좀 더 젠더 평등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우리는 생각했다. 어쨌든 추세상, 그 때의 예상은 틀리게 된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남성들은 점점 더 여성들을 혐오하고 적대적으로 느끼는 듯 싶다.

 

그리고 지금 고등학생은?

 

이게 전수조사를 해보지 못해서 뭐라고 하기는 그런데, 최소한 여성에 대한 적개심은 일베 수준으로 현재의 고등학생들이 높지 않을까

 

이런 게 일단 작업 가설이고.

 

대안 학교 남학생들은 전혀 다를 듯싶지만, 아직까지 살펴본 바로는, 뭐 그닥.

 

시간만 좀 더 있고, 자금만 여유가 있으면 이건 좀 더 현황 조사를 해보고 싶은데, 현재 상태로서는 곤란하고.

 

90년대 초중반의 유럽과는 지금 한국의 10~20대 의식의 흐름은 좀 다른 듯 싶다는 작업 가설 하나 정도로.

 

청년 경제에 관한 건, 워낙 오래 작업하던 거라서 어느 정도 기초 작업이 되어있는데, 젠더 이코노미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흐름으로 예상했던 거와 다른 추세가 꽤 튀어나온다.

 

어쨌든 책 작업 시작하고 처음으로 목차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졌다.

 

목차 안 잡고 작업했던 책들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중간에 다음 목차 잡아가면서 썼던 책들이 좀 많이 팔린 책들이었다.

 

그렇지만 일부러 목차를 안 잡지는 않는다. 잡으려고 했는데, 못 잡았던 것일 뿐이고.

 

솔로 얘기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던 책을 세워놓고, 다시 디자인한 경우라서 목차는 걱정도 안했는데

 

하여간 지금 목차도 못 잡고 있다. 결론은, , 당연히 못 잡고 있고.

 

아마도 당분간 더 헤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만에 딱 걸린 느낌인데, 대충해서 그냥 밀어내기, 그런 식으로 작업할 생각은 없고.

 

동화책도 재밌는 얘기 하나가 구상 중이었고, 모피아 2부인 교육 마피아 얘기도 한참 구상 중이었는데, 솔로 얘기에 다 밀렸다.

 

그러나 그럴만한 얘기다.

 

서승환 선생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그 양반한테 첫 경제원론을 배웠다. 그 때 편미분이니 전미분이니, 그런 것만 배운 게 아니라 경제학에 임하는 경제학자의 자세 같은 것도 같이 배웠다.

 

강사 시절에도, 작지 않은 격려를 받았다. 별 거 아니더라도, 그 시절에는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평생 잊지 못할 격려가 된다.

 

하여간 지금 그 양반이 국토부 장관인데,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 양반이 너무 편안하게 살았던 거라자기 손으로 부동산 거래라도 한 번 해봤을까 싶은. 현실과 이념의 차이, 그런 걸 너무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여간 그 건으로 나도 좀 느낀 바가 있어서, 현실성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해보려고 하는.

 

(생각은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은 아직 돌 지나지 않은 아기랑 놀아주고 이유식 먹이고, 똥 기저귀 갈아주는…)

 

이러 고민 하다가 가끔 TV 틀어서 NLL 얘기하는 거 보면,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짜증 팍 난다.

 

올해는 되는 일 없다. 그리고 몇 년간 역시 되는 일 없을 듯 싶다.

 

우리들의 영웅은 쓰러지거나 배신당하거나 혹은 배신하거나

 

하여간 나는 헤매는 중이다. 그리고 연전연패 중이다. 그렇지만 눈도 뜨지 않고 무작정 맞고 있는 건 아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무쟈게 맞는 중이다.

 

그렇게 눈이라도 뜨면서 맞아야, 맞아 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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