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법?



둘째는 태어날 때 많이 아팠고, 작년에 많이 아팠다. 폐렴으로 몇 번을 입원했다. 요즘은 아이 보는 게 제일 큰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나머지 일을 한다. 안 남으면? 애들 어린이집 가고, 오고 그게 제일 큰 일이다. 나머지는 그 때 그 때 상황 봐서 한다.


 


첫 책이 <아픈 아이들의 세대>였다. 인생이란, 거기서 거기다.


 



아팠던 둘째랑 요즘 아주 많이 놀아준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잘 때도 나한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젠 제법 살도 올랐다. 한동안 백분위 체중표로 하위 5%였다. 1년 넘게 죽여라고 먹였더니 이제 중간 정도 간다. 시간 나는 대로 놀이터 같은 데 데리고 나가서 뛰어놀게 한다. 이젠 제법 잘 뛴다. 올 겨울만 잘 보내면, 이제 한시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지난 가을에도 폐렴기가 있었고, 올 봄에도 있었다. 체중이 좀 느니까 아픈 것은 마찬가지만 그래도 자기 힘으로 좀 버티는 것 같다.


 


1.


저자로 책을 쓴 게 이제 10년이 넘는다. <88만원 세대> 때부터 해도 10년이다. 그 동안에 엄청 잘 판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과학이나 경제 분야에서는 가장 오래 버틴 축에는 드는 것 같다. 중간에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기는 했는데, 오래 못 버티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버틴 게 아니라, 다른 할 게 별로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 책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때마다 손사레를 친다. 내가 무슨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에 남을만한 그런 기발한 책들을 늘 쓰는 것도 아니다.


 


대학원 들어갈 때의 일이다. 처음에 파리 8대학에 원서를 냈고, 그 다음에 파리 10대학 시험을 봤다. 이 시험은 죽을 뻔하다가 겨우 붙었다. 그 시험에서 꼴지가 아니라는 사실만 내가 안다. 3달 준비하고 붙었으니까, 붙고 나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등록하고 바로 서울에 가서 입학 때까지 놀다 왔다. 갔다 오고 나니까 8대학 합격통지서가 와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냥 10대학에 갔다. 8대학은 시험은 따로 안 보고 논문 계획서만 가지고 평가했다. 그 때 날 합격시켜준 양반이, 프랑스에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미셀 보였다. 정작은 자기 책보다는 '논문 쓰는 법'이라는 책으로 아주 유명해진 사람이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 논문 쓰면서 누구나 그 책을 한 번쯤 본다. 각주 다는 법 등 기능적인 일들을 설명해놓은 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 과정은 아주 젊은 부교수랑 같이 하게 되었다. 외부에는 아주 강성이고 근본주의자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양반이 돈을 벌게 된 것은, 우리 식으로 치면 회계사 시험 인문용 참고서였다.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 사상사 전공한 사람이지만, 그도 자식을 낳고 버틸 때까지 회계사 분야에서 강사도 좀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걸 정리한 수험서 책이 빅히트를 쳤다.


 


나를 가르친 사람들이, 소소하고도 별 거 아닌 얘기로 잘 팔리는 책을 쓴 사람들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전공서는, 돌아버릴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실험주의적 국가>라는 책은, 진짜로 실험적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형광펜을 몇 개를 동원해가면서 읽었다.


 


실용적인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혹은 잘 읽히는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들도 극단적인 실용서들을 쓰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걸로 돈을 좀 벌어서, 딴 데 손 벌리지 않고 자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것 치고는, 내가 엄청나게 실용적인 책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2.


책을 쓰는 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내가 유별나거나 특출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로서 오래 버티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다. 이건 미리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성격이 아주 더러워서 생긴 일이다. 남들 다 한다고 해도, 싫다면 안해아주 성격 더럽다.


 


내가 한 것은, 특출나거나 특별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모르는데, 내가 책을 많이 내던 시절에는 사재기도 좀 있었고, 지금 보다는 마케팅이 많았다. 알게 모르게, 자기 책 사재기를 부탁하는 저자들도 좀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건 안했다. <88만원 세대> 때에는 작은 출판사이기도 했지만, 첫 책을 내는 출판사였다. 뭔가 하고 싶어도 하는 방법도 몰랐고, 할 돈도 없었다.


 


그냥 남들 하는 기본 정도, 어떤 때에는 그 기본도 못했다. 그냥 내놓고, '내깔려둔다', 그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강연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 강연도 거의 안 했다. 책 나올 때 출판사에서 부탁하는 몇 건 정도나머지는 시민단체가 하는 행사나 도서관 행사, 혹은 내가 신세진 사람들에게 오는 부탁. 대학에서 강연요청이 오면 여건 닿으면 할려고 한다. 그 정도다. 이런 강연은, 대부분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시민단체 특히 지방에서는 이렇게 사람들 모으면서 회원조직이나 활동조직들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주 시간 안 맞는 경우 아니면 가려고 한다.


 


강연에서 돈을 버는 방법이 따로 있기는 하다. 이것도 시장이라고 한다면, 대기업 사원연수나 비슷비슷한 경제단체들 모임, 이런 건 돈이 된다. 직업으로 쳐도 이 시장은 한 번 뚫고 들어가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많은 돈이라고 해봐야 몇 억원대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런 건 안 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얘기 실력도 늘고, 따로 준비할 것도 없는 편안한 강연이다. 그래도이건 내가 싫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책으로도 먹고 살아? 넉넉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하면 세 끼 밥은 입에 들어간다. 강연하면 더 돈 많이 벌지 않아?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그냥 취직하는 게 낫다. 나중에는 몰라도, 아직은 오라는 데가 좀 있다.


 


보람을 포기하고 생기는 돈은, 그렇게 달지 않다. 명분을 포기하고 생기는 실익은, 편안하지 않다.


 


3.


가만히 있으면 누가 알아줘? 책을 내놓고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좀 돌아다니면서 알리라는. 물론 나도 그런 걸 아주 안 하지는 않지만, 내가 먼저 뭘 하자고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용적인 이유다. 아주 기발한 거 아니면, 해봤지 별 소용없다. 괜히 힘만 들고, 모양만 빠진다. 그러다보니, 그냥 원칙주의로 사는 게 제일 낫다.


 


좋은 책은 팔리고, 아니면, 좋은 책이 아니다.


 


아주 간단한 원칙만 정하고, 그 정해진 원칙을 어지간해서는 지키는 것, 그게 오래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칙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는? 그 땐 비겁하게 변명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원칙을 깨는데 익숙해지면, 나중에 존재가 지워진다. 왜 출발했는지, 그 생각 자체가 사라진다.


 


그냥 가만히 있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 그게 최선의 전략이다. , 이 정도면 전략도 아니라 무대책인데, 그것이 사실은 가장 오래 가는 기본 전략이다. 가만히 있으면 '양서'로 도서관 사서들이 인지를 하고, 도서관에서 좀 사준다. 그거 가지고 돼?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버킷 리스트'라는 용어를 사람들이 쓴다. 나는 '버킷 리스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것 같다. 하고 싶은 것, 없다. 되고 싶은 것, 없다. 그 대신 아주 빼곡하게, 하면 안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대개는 지킨다.


 


최근에 내가 하지 않을 것에 두 가지가 추가로 들어갔다. 방송 진행자와 고정, 그리고 예능 방송.


 


이유는? 그냥 애 보면서 차분히 앉아서 생각하는 삶이 너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불필요한 욕망이 자꾸 생긴다. 화려함을 구하고 살아본 적이 없는데, 속성상, 자꾸 화려함을 구하게 된다. 예능도 아주 안했던 건 아니다. 단기성으로는 한 적이 몇 번 있고, 생방송도 오래 했었다. 하다하다, 아침 방송도 했던 적이 있다.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책 보고, 사람들하고 토론하고, 글 쓰고, 이게 더 생산적이다.


 


4.


다른 저자나 작가들을 만나면 다들 하는 얘기가, 책 시장의 어려움과 시대에 맞지 않는 책의 단점에 관한 것들이다. 아러 아러, 진짜로 그런 얘기가 목까지 나온다. 틀린 야기도 아니고, 이상한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에서 사회적인 뭔가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매체 중에서, 책이 가장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음주 용어로 하면, '장타자'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예전에는 유명한 장타자였는데, 요즘은 극단적인 단타자로 바뀌었다. 애들 키워봐…)


 


방송으로 치면, 일일방송이 있고, 주간방송이 있다. 이 템포는 진짜로 숨 넘어간다. 모든 것들은 12시간 단위 혹은 24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회사는 보통은 월간 단위로 움직인다. 제일 중요한 것이 월간 실적이고, 월간 단위의 회의가 중요한 의사결정체가 된다.


 


공무원들은 보통 주간단위로 움직인다. 별 실적이라는 게 없지만, 주간 회의에서 중요한 것들이 결정된다.


 


국회는? 정치권은 이틀 단위로 움직인다. 보통은 월수금 오전에 최고의원 회의가 있다. 많은 사이클은 그 최고의원 회의에 맞추어진다. 이틀 지난 얘기는, 벌써 과거형이다.


 


주기가 짧아지면 더 다이나믹해질까? 남들 다 아는 걸 자기만 모르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난다. 뭔가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축적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신문도 24시간 단위로 움직이지만, 가끔은 기획기사 같은 것을 한다. 길게 보면 한 달 단위 정도 된다. 언론이 가장 길게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이다. 그것보다 뒤의 얘기를 하면, "그 때 가서 얘기합시다",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MB나 박근혜가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것 중의 하나가 TV 다큐가 있다. 길면 두 달, 보통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주기로 움직인다. 가끔은 6개월에서 1년씩 가는 장기편성이 있기는 한데, 이건 그야말로 특별편성, 해외 장기취재로 4부작, 6부작 같은 것을 할 때의 일이다. 보통의 PD나 촬영감독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책은 짧으면 2, 길면 3~4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사회에 관한 얘기를 하는 매체로는 장타자, 아니 최장타자 정도가 된다. 2년 전에, 2년 후에 필요한 얘기를 생각해서 그 때 움직인다. 2년이 지나도 이 문제는 안 바뀌어! 그럴 때 책 준비가 시작된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사람들이 책을 내는 것 아니겠는가?


 


보통의 경우, 방송이나 신문은 다람쥐의 덫에 걸린다.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사실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다. 최장의 호흡은 책이 가지고 있다 (물론 책의 단점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니까 호흡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줄여가면서 최소한의 지출만.)


 


책을 쓰는 것은, 선경지명의 힘에 있지 않고, 버티는 힘에 있다. 누가나 가끔씩은 선경지명의 순간이 온다. 전혀 안 오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찰라의 순간을 가지고 실제로 책을 준비하고 쓰고, 그리고 누군가 알아봐주는 시간까지 가는 것, 버티는 힘이 사실은 책을 쓰는 기술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책도 기술의 영역이 조금 있는데, 이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게 된다.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버티는 힘, 이건 진짜로 초장에 포기하는 사람과 달인의 영역에 가는 사람,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뉘어지는 것 같다.


 


이거 문제다, 생각하고 2~3년을 버티고, 다시 또 2~3년을 버티는 것, 그게 책을 쓰는 노하우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왜 그 지랄을 해?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위해서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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