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세상은 어떨까,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10년 후면 나도 환갑이 된다. 내가 살았던 한국은, 돈으로 너무 설명이 잘 되는 나라였다. 내가 바라는 10년 후 한국은, 돈으로 뭔가 설명이 잘 되지 않는 나라다. 내가 본 선진국이 대체로 그렇다. 미래 얘기하면,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여기저기, 덕지덕지 쓰도록 강요한다. 그러면 미래가 좀 보일까? 보장한다.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는 순간, 바보 된다. 열심히 살았던 공무원이 은퇴를 앞두고 바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는 지금의 연장이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가 올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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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청춘?


옛날부터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88만원 세대'를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도, 친하게 아는 선배가 '마음은 청춘'이라는 개수작을 부려서. 그 말 듣자마자, 진짜로 청년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때 나는 30대였다.

그 때에 비하면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 내 동료들도 다 늙어가고. 늙어가면서 알 것 같다. '마음은 청춘'이 아니라, 마음부터 먼저 늙는다. 몸이 늙고 마음이 늙는 게 아니라, 마음이 늙고 몸은 뒤따라 늙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뭔가 깨닫고 깨우치는 게 아니라, 비겁한 변명과 못된 짓할 잔대가리만 늘어난다. 죽어도 '마음은 청춘', 이런 개수작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2모작'이라는 얘기를 듣고, 초반에 이건 아니다라는 얘기를 못한 건... 그 땐 몰랐다. '마음은 청춘'이나 '인생2모작'이나, 대 개수작에 불과한 것. 그냥 조용히 사는 것, 할 일 하는 것, 그게 그렇게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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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체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는 중이다. 에세이집을 준비하면서, 문체를 크게 한 번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질색을 하는 것은, 기교로 글을 쓰는 일이다. 그건 글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냥 쓰레기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글을 쓰는 거지, 그런 게 없는 데도 테크닉으로 어떻게 해볼까... 어불성설이다. 그냥 노는 게 낫다. 그렇지만 기교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형식과 기법이 필요하기는 하다.

최근에 내가 글을 읽는 기준은, 습기와 생기, 두 가지다. 습기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습기 없이 생각만 하려고 하면 골 아파서 아예 집어 던지게 된다. 그리고 생기, 행복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

의미는 알겠는데, 이걸 문체에서 구현할 방법은? 아직 모른다. 고민만 해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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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뭐부터 손을 대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게다가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진짜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그 와중에 딱 두 개의 사실이 위안이다. 남의 걸 보고 평해야 하는 그런 글은 없다는 사실. 맞든 틀리든, 내가 새롭게 풀거나 얘기를 만들어야 하는 글이라는 점. 그냥 내 길을 가면 된다. 그리고 요즘 내가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는 사실. 되면 되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뭔가 생각을 해보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견적서가 바로 나온다. 안 되는 건, 바로 포기한다. 애 둘 키우면서 안 되는 것까지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요 며칠 사이에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나중에 평론에 관한 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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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삶이 막막하던 나와 내 동료들은 이 근처에서 매일 만났었다...)



2013년 이후로 따로 출간 계획을 잡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았다. 그만큼 정신도 없었다.


 


요즘은 하는 일도 없고, 딱히 계획된 일도 없다. 그리고 계획을 잡을 예정도 없다. 그래서 내년에 나올 책이나 미리 잠깐 정리해보기로 한다.


 


<국가의 사기>는 출간 일정은 1월인데, 이건 이미 대부분의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편집 작업 중이라, 사실상 올해 작업 분이다.


 


1. 경차가 멋진 나이


 


50대 에세이는 요즘 한참 쓰는 중이다. 2년 전부터 구상을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50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약간 특색이 있는 것은, 내 책 중에서 처음으로 내 친구들에게 하는 얘기들이다. 징헌 80년대를 보냈던, 그 시절의 친구들에게.


 


2. 발전 소설


 


발전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얘기다. 6년 전 <모피아> 준비할 때 같이 했던 그 팀들과 아직도 작업 중이다. 2년 전 여름에 첫 구상을 시작했는데, 다른 책들에 밀려서 아직도 본격적으로 쓰지는 못했다. 내년 6월이 목표다.


 


40대 여성 세 명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내 주변에 각양각색의 아줌마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 아줌마들이 맹활약해서 세상 구하는 얘기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홍대에서 목동까지, 여기가 주요 배경이고, 인천과 태안 그리고 제주도가 큰 축으로 등장한다.


 


3. 농업 경제학


 


원래는 이 자리에 에너지 경제학이 있었는데, 시점도 좀 아닌 것 같고, 내용도 아직은 충분치 않아서 고민하다가, 결국 농업 경제학으로 자리를 바꿨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로 시작해서 경제 대장정 12권짜리 책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9권까지 나갔는데, 그 후에 MB 시절, 나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져서 잠시 내려놓았다. 1권이 <88만원 세대>였다. <괴물의 탄생> 4권이었고.


 


이 시리즈를 완간할 생각은 없다. 11권인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에 넣을려고 했던 핵심 내용들은 <국가의 사기>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12권인 <언론의 경제학>, 쓸 마음이 없어졌다.


 


얼마 전, 언론과의 관계가 여전히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언론이나 방송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다. 가끔은 교차하기는 하지만, 같은 길은 아니다. 학자의 길과 방송인의 길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론의 경제학'은 쓰고 싶지 않아졌다. 중요한 얘기일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별로 그걸 연구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농업경제학이 사실상, 경제대장정 시리즈를 마감하는 책이 될 것이다. 2003년 즈음, 처음 농업경제학 공부하기 시작할 때, 주변에서 말리던 것이 기억이 난다.


 


전농과도 다르고, 농협과도 다르며, 생협과도 또 결이 다른 내 스타일의 농업 이론이 생겼다. 팔 자신은 없지만, 재밌게 쓸 자신은 있다.


 


내년 10월 발간이 목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다음 해에는? 아직은 잘 모른다. 그건 내년 이맘 때 다시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에세이집 한 권, 경제학 책 한 권, 그렇게 매년 낼 수 있을까? 생각은 그런데, 여력이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는 대로 사는 게, 제일 속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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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집에서는 옥토넛 탐험섬 h의 인기가 상종가다.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와서 보니, 이넘은 tv 앞에 곱게 모셔져 있다. 반면 더 크고 좋은 탐험선 a는 쇼파 옆에 자빠져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돈으로도 안된다. 재밌고 즐거운 것, 돈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아이들 마음은 그렇다. 어른은? 어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돈만으로 행복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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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생난리가 한 번 났었다. 옥토넛 탐험선 H가 있는데, 큰 애 것이다. 둘째 생일 때 큰 옥토넛 탐험선 A를 사주면서, 아주 작은 걸 큰 애를 같이 사줬다. 오늘따라, 둘째가 그걸 들고 놀기 시작하니까 늘 양보만 하던 큰 애가 부아가 났다.


"내가 먼저 잡았어, 내가 먼저야."


둘째는 이러고 울고 있다.


"내끄야, 내끄야."


큰 애도 이러고 울고 있다.


"둘 다 이빨 닦고 와, 그 때까지 탐사선은 아빠가."


옥토넛 탐사선을 뺏었다. 이 때부터 둘이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큰 애는 큰 애대로, 작은 애는 작은 애대로 서러움이 터졌는지, 울음보들이 제대로 터졌다.


양치질하고, 옷 갈아입히다 보니, 옥토넛 탐사선은 어느덧 까먹었다. 그래서 마무리되었을까?


어린이집 갈려고 나가는데, 둘째가 엄마한테 "아빠, 무서웠어", 일러준다. 물론 나도 마음 아프다. 둘째는 어리지만 뒷끝 있는 스타일이다. 아침마다 실강이 한 번씩 하지만, 오늘은 특히 심했다. 어마어마하게 울어들 댔다. 내일 아침이 걱정된다.


_______


그리고 저녁



어제 영화 <꾼> 시사회에 갔다가 이벤트 풍선을 받아왔다. 손에 들어간다. 분명히 두 개를 받아왔는데, 양손에 낀다고 저녁 먹고 나서 또 한바탕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에는 둘째 애 비행기 놀이, 헬기 놀이, 착륙, 이착륙 그리고 고장, 들고 30분 동안 빙빙 돌았다. 나중에는 큰 애까지 비행기 탄다고 난리를 쳐서, 비행 기지 고장... 그리고야 끝이 났다.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


방법이 없다. 그냥 많이 같이 놀아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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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며

 

1.

시간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내 삶은 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온통 뒤죽박죽이다. 너무 빠른 것과 너무 늦은 것, 그런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몇 개의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는 있는데, 별 의미는 없다. 하여간 20대 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시절에는 77학번들과 공부를 같이 했다. 그 사람들이 오랫동안 동료였다. 국내에서는 82학번들이 데뷔하던 시절에 같이 데뷔했다. 집도 엄청 빨리 샀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친구 자식들이 대학을 갔거나 가려고 할 때, 우리 집 아이들은 4, 6, 그러다 보니 아이들 친구 때문에 만나는 부모들은 이제 한참 젊은 부모들이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거나,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와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예민해진다. 원래 예민했던 게 아니라, 그렇게 된 것 같다.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기다 보니 '88만원 세대' 같은 책을 쓰게 된 것도 아주 우연한 일은 아니다. 소피스트의 시대에 "흐르는 물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처음 들은 말인데, 친구들은 그 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내가 들어간 그 물은, 다시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나도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 시간의 문턱을 넘으며, 매번 기뻐하고, 좌절하고, 놀라움을 겪는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지나간 것은, 그런 것이다.

 

2.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주 가끔은, 정말로 간절히 원한 적이 있기는 하다. 첫사랑 때 한 번, 성신여대 교수임용 파이널 총장면접에서 떨어질 때, 그리고 아마 한 두 번 정도 더, 간절히 원한 순간이 있기는 했다. 내가 그 시절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단 한 가지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더더욱 나는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그런 건 믿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도 믿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믿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를 언젠가 내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너무 창피하지만 않을 정도로, 진짜로 면피만 하면서 살아간다. 누가 봐도 창피하고,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짓은 하지 말자, 그 정도로 대충 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50이 되는 순간,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할 일도 없었으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두 아이를 조금씩은 돌봐야 했고, 돈도 조금씩은 벌어서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해야 했다. 들째는 게속 아팠다. 아이를 아주 열심히 봤고, 일은 아주 조금만 했다. 그래도 돼?

 

아주 더운 여름 날, 차를 치웠다. 10만 조금 넘은 차인데, 수동이라 팔 데도 없을 것 같고, 폐차할까 생각 중이었다. 마침 동료가 힘들어하길래, 그냥 줘버렸다. 차가 없으면, 생활이 조금 더 단촐해지고, 돈도 조금 덜 쓰게 된다. 그 정도 조정은 했다.

 

내 삶의 대부분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였다. 초등학교 때 미래 희망을 쓰라고 해서, 외교관이라고 썼다. 별 거 아니다. 내 짝 아버지의 직업이었을 뿐이다. 한 번도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전문 외교협상관 일을 했다. 가끔 초등학교 때 써냈던 친구 아버지 직업이 생각나기는 했다. 그 집에 미니카가 엄청나게 많았다. 살면서 남을 부러워하는 게 별로 없었는데, 마루의 서재 하나를 가득 채운 그 미니카들은 좀 부러웠다. 촌놈이, 정말 미니카라는 걸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이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펄펄 뛴다. 그렇지만 난 원래 그렇게 살았다. 되는 대로, 그 때 그 때 형편 맞춰가면서 살았다. 그래도 한 평생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하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개돼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문화부 공무원이 우리 아이들을 개돼지라고 불렀다. 물어보니까 이래저래 한 다리 건너면 직접 알 수 있는 관계고, 나와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한다. 진짜로 만나서 그 말이 복잡한 총체성을 물어보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개돼지라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이 있었다. 우리가 권력자들이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르는 그 시대를 만든 것 아닌가? 나한테 개돼지라고 그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자식들도 개돼지 취급받는 사회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해야 할 말이 생겼다.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른 그 공무원도, 한 때는 다 우리들의 친구 같은 존재였고, 같은 건물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지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10, 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한 때 조선이라고 불렸던 나라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내면적 전환점 사이에 서 있다.

 

3.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MB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40대는 지나가버렸다. 나에게 아직도 젊음의 흔적이 남아있던 시절, 그 나이는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다 봉쇄되어 있었다.

 

50대의 힘은 2012년 대선 때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하였다. 투표율 82%, 어마무시한 수치가 나왔다. 병원에 있는 사람, 등대와 같이 어쩔 수 없는 노동조건을 가진 사람들, 해외에 단기 체류 중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 빼면 다 한 것이다. 많은 기관과 연구자들이 50대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지금 국토부 장관인 김현미가 그 때 만든 연구소가 시니어 연구소다. 그도 한 때 청년 문제가 최고 중요하다고 하던 사람인데, 그 대선 이후 시니어 연구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사람이 바뀐 건 아니지만, 방향이 약간 바뀌었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내가 50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정권이 바뀌었다. 보수의 핵심 축이던 50, 이제 50대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변해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로 임시로 열린 대선이 끝나는 날, 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할만큼 했다.

 

기뻤을까? 솔직히 기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갈 길은 멀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생각하면, 암담하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했다. 더 이상 시대가 던져준 의무감 때문에 내 삶을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할만큼 했다. 아마 대통령 문재인도 더는 나에게 뭘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럴 일도 없고. 그가 당대표 되기 이전부터, 아니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몇 년간 진짜로 도울 만큼 도왔다. 이젠 나도 나의 두 아이와 아내를 돕고 싶다.

 

새 시대, 그냥 조용히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우리', '시대', '역사', 이런 어려운 말은 더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세 끼 밥이 입에 들어올까,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난 다른 사람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된다. 그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정도, 그렇게 살까 한다.

 

4.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아주 친했던 친구를 얼마 전 만났다. 큰 대기업에 상무가 되어 있었다. 많이 친했던 친구다. 50대라는 나이가 그런 나이다. 살아남아서 한 두 번 더 올라갈 기회가 있거나, 이제는 자기가 일하던 곳에서 돌아서야 하는 선택이 기다리는 나이다. 큰 선거 때 투표하는 것, 그리고 약간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20년을 더 살지, 30년을 더 살지 모른다. 30년이 되면, 거의 확실하게 운전은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그때쯤이면 자율운행차가 일반화될까?)

 

좋든 싫든, 뭔가 선택을 해야 하는 나이가 50대이기도 하다. 하다 보니까, 나는 그 선택을 35세에 했다. 공기업 부장도 어느 정도 연수가 차서, 슬슬 승진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팀장도 해먹을 만큼 해먹고, 그 윗자리로 가라는 압력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 조금 더 작은 조직으로 옮겨서 팀장말고 본부장하라는 얘기인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사직서를 내고, 남들이 요즘 엄청나게 들어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평생 직장을 나왔다.

 

일본에서는 '드롭 아웃'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그냥 학자로서의 자유를 가지고 싶어서 그만둔 것일 뿐이다. 엄청난 이유가 있거나, 위대한 결심(!)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왠지 더 재밌는 길이 있을 것 같아서

 

그 후로도 몇 번의 큰 선택을 더 했다. 그 선택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 게 50대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가 아니라면, 대부분 50대에 뭔가 선택을 하게 된다. 사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도 아쉽다고 난리다. 지금의 20대는 그런 선택을 아주 일부만이 할 수 있게 된다.

 

뭔가 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친구들 만나면, 몇 명 빼고는 대부분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다. 친한 70대 노친네들이 좀 있다. 남은 삶을 고민하는 건 맞는데, 같이 만나면 점심 메뉴를 뭘 할까가 제일 큰 걱정이다. 지금의 50대는, 선택 받은 70대만큼 풍요롭지는 못할 것이다. 풍요의 시대는 한국에서 이미 끝났다. 그리고 그 풍요의 뒷 끝은 더 심해질 것이다.

 

5.

50대의 얘기는 과거에 대한 얘기 아니면 미래에 대한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시절의 영광에 대한 과거 혹은 남루했던 청춘과 같은 과거의 얘기는 재미없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얘기는, 서로 시간 낭비다. 안철수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공허한 것은, 자기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지금 여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전환기다. 짧게는 10년간의 황당했던 순간, 좀 넓게 보면 전두환에서 유신까지 올라가는 종 기괴한 관행과 습관, 그런 것들에서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그런 순간이다. 그런 게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뉴라이트들의 말이 맞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배워서 자본주의를 시작했다. 원래 한국 모델은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이 모델로 했던 독일이나 네덜란드 모습들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 박정희가 따라했던 프랑스 모델도 유신의 흔적 속에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는 미국 모델이다. 워낙 미국 식민지처럼 수 십년을 살았고, 모국과의 관계로 1등 국민과 2등 국민이 나누어지는 것 같은 식민지 모델로 작동했으니 말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은 식민지 모델에서는 좀 벗어났지만, 대학은 이제 완전히 식민지 모델이다. 그리고 가끔 스웨덴 같은 북구 모델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는 우리가 교과서다. 프랑스 혁명과 촛불집회는 다르다. 그래서 걸어가는 길도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제는 모델도 없다. 우리가 걸어가는 대로 그게 그냥 교과서가, 우리가 하는 대로 그대로 모델이다. 이런 전환기는 80년에도 없었고, 98년에도 없었고, 2003년에는 더더욱 없었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 옛날 얘기를 과거적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재미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에 대해서 서로 시간 쪼개가며 얘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들한테 동화책 한 권 더 읽어주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는, 이제 재미없다. 지금 내가 사는 삶, 지금 우리가 겪는 일들, 그런 게 조금이라도 더 살갑고, 약간이라도 더 재미있다.

 

그 얘기를, 경차를 가지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차 살거냐 말거냐? 산다면 무슨 차를 살 거냐? 경차 가지고도 충분히 철학과 미학을 얘기할 수 있고, 인생관과 윤리를 얘기할 수 있고, 경제 얘기를 할 수 있다. 골프나 당구 혹은 바둑 가지고 하는 얘기보다는 훨씬 살갑다.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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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내고 신문 인터뷰 사진. 금향 기자가 급해서 핸펀으로 그냥 찍었던 걸로 기억...)



강연에 대해서

 

1.

몇 달 동안 강연을 꽤 많이 했다.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고, 뭔가 챙겨준 게 너무 없다. 진짜로 몇 년간 도움만 받았다. 머리 숙이는 걸 진짜로 싫어하는데, 선거 몇 번 치루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만 하고 다녔다. 그런 사람들이 강연 부탁하면, 안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기왕에 하는 거, 최선을 다 해서 한다고 했더니, 이래저래 너무 많이 했다. 하여간 몇 달 동안, 진찌로 강원도 빼고는 거의 전국을 다 이잡듯이 다녔던 것 같다. 제주도만 제주시, 서귀포시, 그렇게 두 번을 갔다.

 

12월이 되면, 전에 약속한 것 몇 개만 남고,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는 강연은 안 하려고 한다. 특별히 안 하는 거라기 보다는, 원래도 안 하던 거, 그냥 안 하는 상태로.

 

2.

90년대에 내 강연은 비쌌다. 특별히 내가 비싸게 받은 건 아닌데, 그 때는 후하게들 줬다. 한 번에 보통 500만원 정도 받은 것 같고, 더 준 경우도 있다. LG였던 걸로 기억난다. 500만원 준다고 했는데, 강연 끝나고 나니까 경영진이 너무 고마웠다고 결국은 천 만원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내가 아는 지식은 우리나라 최고였다. 지금은 그 정도 아는 사람들은 가끔 있기는 한데, 그 때 환경 문제에 관해서 공장 관리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으로는, 내가 최고였다. 그걸 업으로 했으면, 아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때에, 정말 넉넉하게 벌었고, 특별히 돈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아마도 가장 비싸게 받을 뻔했던 것은, 전경련 소속 사장들이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가는데, 거기 동행해서 몇 번의 강의를 해주는 걸로

 

근데 나는 잠시 짬을 내서라도 별도로 강의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틈틈히 얘기해주는 그런 거였다.

 

안 한다고 그랬다. 골프 질 줄 모른다. 전경련에서는 그냥 골프 치는 시늉만 하면 안되느냐, 그래서 골프 안 치는 건 내 철학이라고 그랬다. 이래저래, 돈 겁나게 많이 준다고 그러기는 했는데, 일 없슈

 

그 시절에도 돈과 철학이 부딪히면, 나는 철학을 선택했다.

 

3.

아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풀뿌리 시민단체나 생협 조직들 전국으로 찾아다니면서 5만원, 10만원짜리 강연을 하고 다니던 시절이다. 농사지은 쌀을 받아온 적도 있고, 달걀 한 판을 받은 적도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책 아직 발간하기 전이다.

 

내가 쓴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논리는 그 시기에 구성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뭘 배워서개뿔, 배우기는 뭘 배워? 한국의 밑바닥 사람들이 왜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고생하는가, 어디서부터가 문제인가, 이런 걸 유학 가서 배우긴 어서 배우나? 정부는 알까? 개뿔, 알긴 뭘 알아총리실과 몇 년간 일했고, 실제로 근무도 했다. 알긴 뭘 알아!

 

진짜로 전국의 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 생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절, 건강을 잃었다. 진짜로, 너무 무리했다.

 

아내는 '봉투돈'이라고 불렀다. 내가 봉투에 받아서 아내에게 준 돈들을, 아내는 남편이 가장 자랑스럽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때, 5만원, 10만원, 이렇게 집에 가져간 돈 들을 아내는 꼭 통장에 넣었다. 나는 그냥 쓰라고 했는데, 아내는 꼭 통장에 입금시키고는 했다. 그렇게라도 내가 돈을 벌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슬퍼질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그 시절의 지금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학자 중에서, 이렇게 밑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시절에 아내와 외국에서 좀 길게 체류하는 일들도 몇 번 있었다. 우리의 문제를 보고,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나, 그렇게 외국에 있다가, 그런 시절이 꽤 길게 지나갔다.

 

그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 책을 내기 시작하고, 강연은 정리를 했다. 더 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4.

지금도 가끔 강연을 하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책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부탁하는 몇 번 정도다. 그 외에는 안 한다. 할 얘기는 책에 다 썼고, 그걸 일일이 다니면서 소개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 팔리면? 그만이다. 내 능력이 거기까지니까, 아니면 그만이다.

 

그래도 꼭 강연을 하려면?

 

이제는 명분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민단체나 정부기관에서 꼭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일부, 지역의 사회적 경제 관련 단체나, 이 정도, 아니면 가끔 대학. 다른 데에는 나에게 명분이 없다.

 

50이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명분 없는 일은 절대로 안 하려고 한다. 길게 보니까, 남는 건 명분 밖에 없다.

 

너는 돈 안 필요해? 가끔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하는 일들만으로도, 넉넉하지는 않아도 식구들 세 끼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강연으로 가끔 받는 돈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주 어려웠던 잠깐을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살기 위해서 가끔은 돈이 필요하니까, 나도 돈 버는 일을 조금씩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서로 슬퍼지는 일이다.

 

별 큰도 아니고, 슬퍼지기만 하는 일을 왜 해?

 

5.

가끔 강연 부탁이 오면서, 이것저것,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는 간다. 어차피 아는 건데, 약간만 수정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해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학자는, 지식의 최전선에 사는 사람이다. 요 몇 년, 내가 그런 경험을 가끔 한다. 내가 모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물어볼 데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지난 몇 달,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며 동시에 다짐인 얘기가 있다.

 

앞으로 9년 후, 어떤 주제가 가장 중요한 정책적 질문이 될까? 9년 후면, 개헌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다음 대선 직전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 그거다.

 

앞의 책들을 보면, 보통 책 낸지 7~8년 정도 되면 대중적 주제가 된다. 그 순간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최첨단인 것처럼 보인다. 미세먼지의 경우는, 10년도 넘은 후 그 주제가 대중적이 되었다. KBS 했던 미세먼지 강연이 그랬다.

 

보이는 건 그렇지만, 실제로 그 문제를 뒤지고 고민하던 시점은 그 한참 전이다. 지금부터 내가 붙잡고 씨름하는 주제들이, 10년 후 한국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한다. 아직까지는 그랬는데, 지금부터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각오로 하루를 산다.

 

물론 나도 아주 나이를 먹으면, 예전에 한 것들을 반복하고, 재해석하면서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애들 돌보거나, 3살짜리 애들 '기저귀 교실' 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뭔가 있는 척, 옛날 얘기를 들척거리면서 '잘난 척',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놀고 쉬면 된다. 뭘 잘 모르고, 더 이상 최전선에 서 있지 않은데, 남들 앞에 서는 것, 학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12월부터 당분간 강연을 안 하기로 결정을 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집안에 있는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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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여한 패널분들이 너무 극진하게 챙겨주셔서, 진짜로 몸둘 바를 몰랐다...)


오늘 ebs랑 교육부에서 한 광주 지역 토크콘서트에 갔다왔다. 같이 한 패널들이랑 관객들이 너무 극진히 챙겨주시는 바람에, 몸둘 바를 몰랐다. 그냥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었다면 다행이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기 위해 산 것, 사실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아이들 영어 유치원에 안 보내는 것은, 그게 걔들에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뿐이다. 따로 특목고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좀 더 편안하게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것이 길게 삶을 행복하게 보내기에 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내 피를 물려 받았다면,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안 가겠다고 방방 거릴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학교 안 간다고 그냥 버텼다. 몇 달 간을 그냥 집에서 아프다고 버텼다. 학교 가자고 하면, 죽는다고 버텼다. 절대로 공부하라는 얘기나 복잡한 얘기 안 한다고 다짐을 받고서야 2학기 때에나 겨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두 아이들이 만약 나를 닮았다면,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죽어도 안 간다고 버틸 가능성이 높다. 특목고? 학교도 자퇴한다고 하기 딱 좋을 성격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졸업 한 학기 남겨두고 좌퇴한다고 방방거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마음도 진심이었다.

그냥 고분고분하게, 학교 보내주면 고마워하고, 학원 보내주면 더 고마워하고... 나의 유전자는 그렇지 않다.

뭔가 이유도 없이 잘난 척 하고, 뭔가 가르치려는 사람들, 꺼져...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나의 아이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편하고, 조금이라도 즐겁게...

지금도 수틀리면, 꺼져... 다 필요없어.

이렇게 살면, 돈도 많이 손해보고, 세상 살이도 많이 손해보지만, 속 마음만큼은 편하다. 그렇게 해도, 하루 세 끼 입에 밥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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