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며

 

1.

시간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내 삶은 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온통 뒤죽박죽이다. 너무 빠른 것과 너무 늦은 것, 그런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몇 개의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는 있는데, 별 의미는 없다. 하여간 20대 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시절에는 77학번들과 공부를 같이 했다. 그 사람들이 오랫동안 동료였다. 국내에서는 82학번들이 데뷔하던 시절에 같이 데뷔했다. 집도 엄청 빨리 샀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친구 자식들이 대학을 갔거나 가려고 할 때, 우리 집 아이들은 4, 6, 그러다 보니 아이들 친구 때문에 만나는 부모들은 이제 한참 젊은 부모들이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거나,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와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예민해진다. 원래 예민했던 게 아니라, 그렇게 된 것 같다.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기다 보니 '88만원 세대' 같은 책을 쓰게 된 것도 아주 우연한 일은 아니다. 소피스트의 시대에 "흐르는 물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처음 들은 말인데, 친구들은 그 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내가 들어간 그 물은, 다시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나도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 시간의 문턱을 넘으며, 매번 기뻐하고, 좌절하고, 놀라움을 겪는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지나간 것은, 그런 것이다.

 

2.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주 가끔은, 정말로 간절히 원한 적이 있기는 하다. 첫사랑 때 한 번, 성신여대 교수임용 파이널 총장면접에서 떨어질 때, 그리고 아마 한 두 번 정도 더, 간절히 원한 순간이 있기는 했다. 내가 그 시절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단 한 가지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더더욱 나는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그런 건 믿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도 믿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믿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를 언젠가 내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너무 창피하지만 않을 정도로, 진짜로 면피만 하면서 살아간다. 누가 봐도 창피하고,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짓은 하지 말자, 그 정도로 대충 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50이 되는 순간,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할 일도 없었으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두 아이를 조금씩은 돌봐야 했고, 돈도 조금씩은 벌어서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해야 했다. 들째는 게속 아팠다. 아이를 아주 열심히 봤고, 일은 아주 조금만 했다. 그래도 돼?

 

아주 더운 여름 날, 차를 치웠다. 10만 조금 넘은 차인데, 수동이라 팔 데도 없을 것 같고, 폐차할까 생각 중이었다. 마침 동료가 힘들어하길래, 그냥 줘버렸다. 차가 없으면, 생활이 조금 더 단촐해지고, 돈도 조금 덜 쓰게 된다. 그 정도 조정은 했다.

 

내 삶의 대부분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였다. 초등학교 때 미래 희망을 쓰라고 해서, 외교관이라고 썼다. 별 거 아니다. 내 짝 아버지의 직업이었을 뿐이다. 한 번도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전문 외교협상관 일을 했다. 가끔 초등학교 때 써냈던 친구 아버지 직업이 생각나기는 했다. 그 집에 미니카가 엄청나게 많았다. 살면서 남을 부러워하는 게 별로 없었는데, 마루의 서재 하나를 가득 채운 그 미니카들은 좀 부러웠다. 촌놈이, 정말 미니카라는 걸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이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펄펄 뛴다. 그렇지만 난 원래 그렇게 살았다. 되는 대로, 그 때 그 때 형편 맞춰가면서 살았다. 그래도 한 평생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하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개돼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문화부 공무원이 우리 아이들을 개돼지라고 불렀다. 물어보니까 이래저래 한 다리 건너면 직접 알 수 있는 관계고, 나와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한다. 진짜로 만나서 그 말이 복잡한 총체성을 물어보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개돼지라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이 있었다. 우리가 권력자들이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르는 그 시대를 만든 것 아닌가? 나한테 개돼지라고 그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자식들도 개돼지 취급받는 사회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해야 할 말이 생겼다.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른 그 공무원도, 한 때는 다 우리들의 친구 같은 존재였고, 같은 건물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지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10, 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한 때 조선이라고 불렸던 나라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내면적 전환점 사이에 서 있다.

 

3.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MB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40대는 지나가버렸다. 나에게 아직도 젊음의 흔적이 남아있던 시절, 그 나이는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다 봉쇄되어 있었다.

 

50대의 힘은 2012년 대선 때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하였다. 투표율 82%, 어마무시한 수치가 나왔다. 병원에 있는 사람, 등대와 같이 어쩔 수 없는 노동조건을 가진 사람들, 해외에 단기 체류 중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 빼면 다 한 것이다. 많은 기관과 연구자들이 50대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지금 국토부 장관인 김현미가 그 때 만든 연구소가 시니어 연구소다. 그도 한 때 청년 문제가 최고 중요하다고 하던 사람인데, 그 대선 이후 시니어 연구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사람이 바뀐 건 아니지만, 방향이 약간 바뀌었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내가 50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정권이 바뀌었다. 보수의 핵심 축이던 50, 이제 50대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변해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로 임시로 열린 대선이 끝나는 날, 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할만큼 했다.

 

기뻤을까? 솔직히 기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갈 길은 멀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생각하면, 암담하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했다. 더 이상 시대가 던져준 의무감 때문에 내 삶을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할만큼 했다. 아마 대통령 문재인도 더는 나에게 뭘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럴 일도 없고. 그가 당대표 되기 이전부터, 아니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몇 년간 진짜로 도울 만큼 도왔다. 이젠 나도 나의 두 아이와 아내를 돕고 싶다.

 

새 시대, 그냥 조용히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우리', '시대', '역사', 이런 어려운 말은 더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세 끼 밥이 입에 들어올까,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난 다른 사람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된다. 그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정도, 그렇게 살까 한다.

 

4.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아주 친했던 친구를 얼마 전 만났다. 큰 대기업에 상무가 되어 있었다. 많이 친했던 친구다. 50대라는 나이가 그런 나이다. 살아남아서 한 두 번 더 올라갈 기회가 있거나, 이제는 자기가 일하던 곳에서 돌아서야 하는 선택이 기다리는 나이다. 큰 선거 때 투표하는 것, 그리고 약간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20년을 더 살지, 30년을 더 살지 모른다. 30년이 되면, 거의 확실하게 운전은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그때쯤이면 자율운행차가 일반화될까?)

 

좋든 싫든, 뭔가 선택을 해야 하는 나이가 50대이기도 하다. 하다 보니까, 나는 그 선택을 35세에 했다. 공기업 부장도 어느 정도 연수가 차서, 슬슬 승진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팀장도 해먹을 만큼 해먹고, 그 윗자리로 가라는 압력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 조금 더 작은 조직으로 옮겨서 팀장말고 본부장하라는 얘기인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사직서를 내고, 남들이 요즘 엄청나게 들어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평생 직장을 나왔다.

 

일본에서는 '드롭 아웃'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그냥 학자로서의 자유를 가지고 싶어서 그만둔 것일 뿐이다. 엄청난 이유가 있거나, 위대한 결심(!)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왠지 더 재밌는 길이 있을 것 같아서

 

그 후로도 몇 번의 큰 선택을 더 했다. 그 선택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 게 50대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가 아니라면, 대부분 50대에 뭔가 선택을 하게 된다. 사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도 아쉽다고 난리다. 지금의 20대는 그런 선택을 아주 일부만이 할 수 있게 된다.

 

뭔가 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친구들 만나면, 몇 명 빼고는 대부분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다. 친한 70대 노친네들이 좀 있다. 남은 삶을 고민하는 건 맞는데, 같이 만나면 점심 메뉴를 뭘 할까가 제일 큰 걱정이다. 지금의 50대는, 선택 받은 70대만큼 풍요롭지는 못할 것이다. 풍요의 시대는 한국에서 이미 끝났다. 그리고 그 풍요의 뒷 끝은 더 심해질 것이다.

 

5.

50대의 얘기는 과거에 대한 얘기 아니면 미래에 대한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시절의 영광에 대한 과거 혹은 남루했던 청춘과 같은 과거의 얘기는 재미없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얘기는, 서로 시간 낭비다. 안철수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공허한 것은, 자기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지금 여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전환기다. 짧게는 10년간의 황당했던 순간, 좀 넓게 보면 전두환에서 유신까지 올라가는 종 기괴한 관행과 습관, 그런 것들에서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그런 순간이다. 그런 게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뉴라이트들의 말이 맞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배워서 자본주의를 시작했다. 원래 한국 모델은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이 모델로 했던 독일이나 네덜란드 모습들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 박정희가 따라했던 프랑스 모델도 유신의 흔적 속에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는 미국 모델이다. 워낙 미국 식민지처럼 수 십년을 살았고, 모국과의 관계로 1등 국민과 2등 국민이 나누어지는 것 같은 식민지 모델로 작동했으니 말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은 식민지 모델에서는 좀 벗어났지만, 대학은 이제 완전히 식민지 모델이다. 그리고 가끔 스웨덴 같은 북구 모델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는 우리가 교과서다. 프랑스 혁명과 촛불집회는 다르다. 그래서 걸어가는 길도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제는 모델도 없다. 우리가 걸어가는 대로 그게 그냥 교과서가, 우리가 하는 대로 그대로 모델이다. 이런 전환기는 80년에도 없었고, 98년에도 없었고, 2003년에는 더더욱 없었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 옛날 얘기를 과거적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재미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에 대해서 서로 시간 쪼개가며 얘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들한테 동화책 한 권 더 읽어주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는, 이제 재미없다. 지금 내가 사는 삶, 지금 우리가 겪는 일들, 그런 게 조금이라도 더 살갑고, 약간이라도 더 재미있다.

 

그 얘기를, 경차를 가지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차 살거냐 말거냐? 산다면 무슨 차를 살 거냐? 경차 가지고도 충분히 철학과 미학을 얘기할 수 있고, 인생관과 윤리를 얘기할 수 있고, 경제 얘기를 할 수 있다. 골프나 당구 혹은 바둑 가지고 하는 얘기보다는 훨씬 살갑다.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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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내고 신문 인터뷰 사진. 금향 기자가 급해서 핸펀으로 그냥 찍었던 걸로 기억...)



강연에 대해서

 

1.

몇 달 동안 강연을 꽤 많이 했다.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고, 뭔가 챙겨준 게 너무 없다. 진짜로 몇 년간 도움만 받았다. 머리 숙이는 걸 진짜로 싫어하는데, 선거 몇 번 치루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만 하고 다녔다. 그런 사람들이 강연 부탁하면, 안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기왕에 하는 거, 최선을 다 해서 한다고 했더니, 이래저래 너무 많이 했다. 하여간 몇 달 동안, 진찌로 강원도 빼고는 거의 전국을 다 이잡듯이 다녔던 것 같다. 제주도만 제주시, 서귀포시, 그렇게 두 번을 갔다.

 

12월이 되면, 전에 약속한 것 몇 개만 남고,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는 강연은 안 하려고 한다. 특별히 안 하는 거라기 보다는, 원래도 안 하던 거, 그냥 안 하는 상태로.

 

2.

90년대에 내 강연은 비쌌다. 특별히 내가 비싸게 받은 건 아닌데, 그 때는 후하게들 줬다. 한 번에 보통 500만원 정도 받은 것 같고, 더 준 경우도 있다. LG였던 걸로 기억난다. 500만원 준다고 했는데, 강연 끝나고 나니까 경영진이 너무 고마웠다고 결국은 천 만원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내가 아는 지식은 우리나라 최고였다. 지금은 그 정도 아는 사람들은 가끔 있기는 한데, 그 때 환경 문제에 관해서 공장 관리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으로는, 내가 최고였다. 그걸 업으로 했으면, 아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때에, 정말 넉넉하게 벌었고, 특별히 돈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아마도 가장 비싸게 받을 뻔했던 것은, 전경련 소속 사장들이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가는데, 거기 동행해서 몇 번의 강의를 해주는 걸로

 

근데 나는 잠시 짬을 내서라도 별도로 강의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틈틈히 얘기해주는 그런 거였다.

 

안 한다고 그랬다. 골프 질 줄 모른다. 전경련에서는 그냥 골프 치는 시늉만 하면 안되느냐, 그래서 골프 안 치는 건 내 철학이라고 그랬다. 이래저래, 돈 겁나게 많이 준다고 그러기는 했는데, 일 없슈

 

그 시절에도 돈과 철학이 부딪히면, 나는 철학을 선택했다.

 

3.

아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풀뿌리 시민단체나 생협 조직들 전국으로 찾아다니면서 5만원, 10만원짜리 강연을 하고 다니던 시절이다. 농사지은 쌀을 받아온 적도 있고, 달걀 한 판을 받은 적도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책 아직 발간하기 전이다.

 

내가 쓴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논리는 그 시기에 구성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뭘 배워서개뿔, 배우기는 뭘 배워? 한국의 밑바닥 사람들이 왜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고생하는가, 어디서부터가 문제인가, 이런 걸 유학 가서 배우긴 어서 배우나? 정부는 알까? 개뿔, 알긴 뭘 알아총리실과 몇 년간 일했고, 실제로 근무도 했다. 알긴 뭘 알아!

 

진짜로 전국의 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 생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절, 건강을 잃었다. 진짜로, 너무 무리했다.

 

아내는 '봉투돈'이라고 불렀다. 내가 봉투에 받아서 아내에게 준 돈들을, 아내는 남편이 가장 자랑스럽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때, 5만원, 10만원, 이렇게 집에 가져간 돈 들을 아내는 꼭 통장에 넣었다. 나는 그냥 쓰라고 했는데, 아내는 꼭 통장에 입금시키고는 했다. 그렇게라도 내가 돈을 벌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슬퍼질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그 시절의 지금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학자 중에서, 이렇게 밑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시절에 아내와 외국에서 좀 길게 체류하는 일들도 몇 번 있었다. 우리의 문제를 보고,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나, 그렇게 외국에 있다가, 그런 시절이 꽤 길게 지나갔다.

 

그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 책을 내기 시작하고, 강연은 정리를 했다. 더 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4.

지금도 가끔 강연을 하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책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부탁하는 몇 번 정도다. 그 외에는 안 한다. 할 얘기는 책에 다 썼고, 그걸 일일이 다니면서 소개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 팔리면? 그만이다. 내 능력이 거기까지니까, 아니면 그만이다.

 

그래도 꼭 강연을 하려면?

 

이제는 명분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민단체나 정부기관에서 꼭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일부, 지역의 사회적 경제 관련 단체나, 이 정도, 아니면 가끔 대학. 다른 데에는 나에게 명분이 없다.

 

50이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명분 없는 일은 절대로 안 하려고 한다. 길게 보니까, 남는 건 명분 밖에 없다.

 

너는 돈 안 필요해? 가끔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하는 일들만으로도, 넉넉하지는 않아도 식구들 세 끼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강연으로 가끔 받는 돈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주 어려웠던 잠깐을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살기 위해서 가끔은 돈이 필요하니까, 나도 돈 버는 일을 조금씩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서로 슬퍼지는 일이다.

 

별 큰도 아니고, 슬퍼지기만 하는 일을 왜 해?

 

5.

가끔 강연 부탁이 오면서, 이것저것,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는 간다. 어차피 아는 건데, 약간만 수정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해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학자는, 지식의 최전선에 사는 사람이다. 요 몇 년, 내가 그런 경험을 가끔 한다. 내가 모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물어볼 데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지난 몇 달,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며 동시에 다짐인 얘기가 있다.

 

앞으로 9년 후, 어떤 주제가 가장 중요한 정책적 질문이 될까? 9년 후면, 개헌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다음 대선 직전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 그거다.

 

앞의 책들을 보면, 보통 책 낸지 7~8년 정도 되면 대중적 주제가 된다. 그 순간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최첨단인 것처럼 보인다. 미세먼지의 경우는, 10년도 넘은 후 그 주제가 대중적이 되었다. KBS 했던 미세먼지 강연이 그랬다.

 

보이는 건 그렇지만, 실제로 그 문제를 뒤지고 고민하던 시점은 그 한참 전이다. 지금부터 내가 붙잡고 씨름하는 주제들이, 10년 후 한국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한다. 아직까지는 그랬는데, 지금부터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각오로 하루를 산다.

 

물론 나도 아주 나이를 먹으면, 예전에 한 것들을 반복하고, 재해석하면서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애들 돌보거나, 3살짜리 애들 '기저귀 교실' 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뭔가 있는 척, 옛날 얘기를 들척거리면서 '잘난 척',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놀고 쉬면 된다. 뭘 잘 모르고, 더 이상 최전선에 서 있지 않은데, 남들 앞에 서는 것, 학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12월부터 당분간 강연을 안 하기로 결정을 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집안에 있는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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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여한 패널분들이 너무 극진하게 챙겨주셔서, 진짜로 몸둘 바를 몰랐다...)


오늘 ebs랑 교육부에서 한 광주 지역 토크콘서트에 갔다왔다. 같이 한 패널들이랑 관객들이 너무 극진히 챙겨주시는 바람에, 몸둘 바를 몰랐다. 그냥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었다면 다행이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기 위해 산 것, 사실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아이들 영어 유치원에 안 보내는 것은, 그게 걔들에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뿐이다. 따로 특목고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좀 더 편안하게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것이 길게 삶을 행복하게 보내기에 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내 피를 물려 받았다면,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안 가겠다고 방방 거릴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학교 안 간다고 그냥 버텼다. 몇 달 간을 그냥 집에서 아프다고 버텼다. 학교 가자고 하면, 죽는다고 버텼다. 절대로 공부하라는 얘기나 복잡한 얘기 안 한다고 다짐을 받고서야 2학기 때에나 겨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두 아이들이 만약 나를 닮았다면,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죽어도 안 간다고 버틸 가능성이 높다. 특목고? 학교도 자퇴한다고 하기 딱 좋을 성격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졸업 한 학기 남겨두고 좌퇴한다고 방방거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마음도 진심이었다.

그냥 고분고분하게, 학교 보내주면 고마워하고, 학원 보내주면 더 고마워하고... 나의 유전자는 그렇지 않다.

뭔가 이유도 없이 잘난 척 하고, 뭔가 가르치려는 사람들, 꺼져...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나의 아이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편하고, 조금이라도 즐겁게...

지금도 수틀리면, 꺼져... 다 필요없어.

이렇게 살면, 돈도 많이 손해보고, 세상 살이도 많이 손해보지만, 속 마음만큼은 편하다. 그렇게 해도, 하루 세 끼 입에 밥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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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기, 초고를 끝내고


 

(이 블로그가, mb 촛불집회 때 공식적으로 깃발 들고 참여했던 블로그였다...)



1.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면, 이 순간이 뼈저리게 그리워질 정도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네 살, 여섯 살, 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 진짜로 중요한 것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도, 좀 안정이 되었다. 지난 4년 동안, 번 돈과 쓴 돈이 딱 똔똔이었던 것 같다. 쓰는 건 고정적으로 썼는데, 번 돈이 딱 거기 맞았다. 애들 병원비가 많이 나갔고, 이래저래 애들 쓰는 돈은 고정적으로 나간다. 아마 6월이었나? 진짜 몇 년만에 처음으로 흑자가 되었다. 원래 나는 2년 생활비 밑으로 현금이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와 함께, 한동안 가진 돈을 쓰면서 버티기도 했다. 줄기만 하던 잔고가,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몇 달 안되었는데, 이래저래 들어올 돈들 생각하면 내년 생활비까지는 되는 것 같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원래 나는 집에 가만히 있을 때가 소득이 제일 높다. 아무도 안 만나고 있으면 쓰는 돈이 없고, 가만히 있을 때 돈 버는 일이 가장 많이 생기니까, 가만히 처박혀 있는 게 제일 돈 잘 버는 길이기는 하다.

 

둘째 아픈 것은 이제는 좀 안정기가 들어갔고, 요즘 몸무게도 부쩍 늘고, 키도 좀 자랐다. 큰 애가 가을 내내 감기를 달고 있기는 했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애들 데리고 산책 다니고, 같이 운동하는 시간도 좀 더 늘렸다.

 

이렇게 살아가는 와중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행복은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행복은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저녁에 간만에 불고기를 만들었다. 애들 둘이 정말 맛있다고, 싹싹 긁어먹었다. 아내도 밥 비벼서 간만에 한 공기 넘게 먹었다. 나도 두 공기 먹었다. 이런 게 행복이다.

 

오늘은 <국가의 사기> 초고를 끝낸 날이다.

 

2.

<국가의 사기>에 대한 생각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는 작년 총선 다음날이다. 그날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사기꾼 얘기는 몇 번 같이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하여간 뭔가 한 번 준비를 해보기로 얘기를 했다. 그 때 그는 <군함도> 크랭크인 준비 막 시작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는 너무 분석 분량도 많고, 줄기 세우는 것도 까다로울 일이라서, 안하고 싶었다. 아이들 보면서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쯤에는, 마음 속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이건 꼭 좀 했으면 좋겠다고, 몇 날 며칠을 날 볼 때마다 물고 늘어졌다. 아내도 이건 좀 하라고 했다. 그리고 후배들이, 간곡하게 부탁을

 

책 준비하는 데, 내 주변 사람들이 전부 매달려서 이건 좀 해야 한다고 그런 적은 없었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그 와중에,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3.

내가 아는 얘기는, 진짜로 탈탈 털어 넣었다. 처음 시작할 때 나하고 했던 다짐이, '하나마나한 소리'는 절대 안 한다

 

하나하나가 키우면 별도로 책 하나가 될만한 아이템들을 절 하나에 쑤셔 넣었다. 그게 이 몇 페이지에 들어갈까 싶은 것을, 줄이고 줄여서 쑤셔넣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템에 비해서 중량이 적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과감히 날렸다. 새만금에 앞으로 들어갈 돈이 대략 20조원쯤 되는데, 그 정도면 미니 아이템이다. 털어내버렸다.

 

앞 부분에 들어가 있던 이론적 얘기들도, 나중에는 다 들어냈다. 아담 스미스의 자연이자율 얘기는 이번에는 꼭 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다 들어냈다. 다루어야 할 소재들을 위해서 분량 확보를 하느라고. 중간에 1/3 정도를 덜어내고, 비중 있는 것들을 꽉꽉.

 

키우면 책이 하나 될만한 아이템들도 절도 아니라 그냥 브리지 신으로 태워버렸다. 진짜, 주머니에 들고 있던 아이템들을 얘기를 강화시키는 부연설명 정도의 브리지로, 다 태웠다. 태우고, 또 태웠다.

 

4.

원고를 쓰는 과정에 내 생각이 바뀌었다.

 

언론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이 없었는데, 불가근 불가원. 방송도 불가근 불가원.

 

나는 학자의 길을 간다. 내 길과 언론의 길은 다르다. 가끔 교차하며 만날 뿐이다.

 

방송 제안도 약간은 있고, 고정 제안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게 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에 쓰던 칼럼들도, 이래저래 정리했다.

 

나는 만드는 사람이다. 소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해도 된다.

 

책은 이슈를 만드는 매체 중에서, 가장 숨이 긴 매체다. 신문 기획기사, 몇 달 준비하면 정말 길게 하는 것이다. 방송사 다큐도 2~3달 정도, 특집 방송이라고 해도 6개월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은, 1년이면 정말 짧은 거다. 짧으면 1, 보통은 2~3년 후에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얘기를 그 때 만드는 일이다. 어지간히 숨 길게 쉬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게 내 길이다.

 

중간에 사외이사 얘기도 몇 번 있었는데, 그런 것도 다 고사했다. 이제는, 내 길이 아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꼬질꼬질하게,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면서 굽신굽신 거릴 이유가 없다. 만드는 일이 내 일이다.

 

그리고 아주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도 없어졌다. 근심이 사라진 순간, 어쩌면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5.

초고를 끝내고 나니, 지난 몇 달간이 너무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이 끝나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지? 모르겠다.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다.

 

큰 산을 정말 몇 번을 넘었는데, 그런 분석 과정이 즐거웠다. 내가 왜 태어났고, 왜 공부를 했고,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내가 나에게 납득이 되었다. 그게 즐거움이다.

 

지금 계약상으로 남아있는 게 두 권, 어지간하면 내년 여름이 오기 전에 다 끝난다. 그 뒤에는 리스트가 없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열 권 정도 리스트가 있었다. 어느덧 다 소화하고, 이제는 남은 리스트가 없다. 그리고 그걸 억지로 늘리거나 채우고 싶지도 않다. 순리대로 가는 게 제일이다. 뭔가 생기면 쓰고, 아니면 마는 거다.

 

에세이집은 매년 한 권 정도는 써볼 생각이 있는데, 경제학 책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이 생각한 게 없다. 이제 50이다.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의무감으로, 아니면 허전해서, 뭘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나이도 아니고. 유명한 어른들 중에는 빈 공간이 두려워서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나도 편안하고, 나를 보는 사람들도 편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내 삶에 시간이 좀 더 남아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건 그런 거다.

 

<국가의 사기>를 쓰면서, 나는 정말로 편안하게 되었다. 약간씩 뒤틀어진 아픔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런 것도 다 사라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 너머의 일은, 내 영역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에필로그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그 마지막 토막을 쓰면서 눈물이 잠깐 났다. 문득, 내 인생에 이런 글은 다시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순간이 오늘 지난 것 같다.

 

그래서 행복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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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는 '경차 타면 멋진 나이' 쪽으로 가기로 했다. 기아 차 출고 자료를 받아봤는데, 경차를 제일 많이 타는 건 40대고, 그 다음이 50대. 남녀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20대와 30대가 많이 탈 것이라는 건 통계상으로는 그냥 생각. 신차 기준이라서 중고차까지 포함해서 보면 약간 바꿀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경차를 구매하는 데, 성별효과, 연령효과, 가격효과로 나누어 본다면, 성별효과와 연령효과는 별로 없고, 가격 효과가 가장 커 보인다.

원래는 '개수작과의 결별'이 가장 땡겼는데, 나라고 특별히 지난 습과의 이별, 뭐 이런 드라마틱한 일을 한 것은 별로 없다. 그리고 드립다 욕하는 것도, 이젠 별로다. 욕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가급적이면 유머 코드를 많이 쓰고, 돌려돌려 말하는 방식을 써볼까 한다.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서로 같이 고민을 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50대 에세이는 일반적인 50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흔히 386이라고 불렀던, 이래저래 욕 디지게 먹는 바로 그 나이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 아쉬운 점과 안타까운 점도 공존하고, 불가피성과 가능성 같은 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꼭지는 여러 개 잡아놓기는 했는데, 앞의 책에 밀려서 이제 써야 한다. 50이 되면 진짜로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런 얘기를 담담하게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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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영 종 상향, 이게 내 인생에 가장 살 떨리는 논쟁이었다...)



<국가의 사기>, 마지막 스퍼트를 위한 숨고르기

 


49, 이제 만 나이로도 50이 얼마 안 남았다. 50살이 되면 무얼 하고 살까? 잘 모르겠다. 준비하지 않고 사는 시간을 좀 가져보려고 한다.

 

<국가의 사기>는 어쩌면 내가 쓰는 본격 경제학 책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쓸 책에 대한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될 각오'라기 보다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가지고 쓰는 책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아는 얘기들은 다 넣으려고 한다. 다 털고 나면, 이제는 남는 게 없어서 더는 못 쓸지도 모른다. 하여간, 탈탈 털어 넣는 중이다. 조금만 늘어진다 싶으면 싹 자르고, 꾹꾹 누르는 중이다.

 

언제부터인지 4장 구조의 책이 가장 편하게 느껴진다. 이 책도 4장 구조다.

 

원래는 200페이지 미만의 아주 짧은 팜플렛 같은 책을 구상했었다. 그런데 시기도 놓치고, 또 기왕 늦어진 거, 차분하게 정리를 하자고 생각하면서 책이 커졌다. 특히 2장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1, 2장을 쓰고 나니까, 벌써 보통 책 한 장 분량이 되었다. 커질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무식하게 길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뒤에 쓸 분량을 위해서 1장의 앞의 인트로 몇 절을 덜어냈다. 아담 스미스의 자연이자율 같은 얘기는 꼭 한 번 제대로 다루어보고 싶었던 얘기인데, 분량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구조상, 4장은 산뜻하고 짧게, 스피디하게 매무리짓는 게 낫다. 내용도 감사에 대한 대안 방식 말고는 어느 정도 다 정리가 되어 있다. 그건 순서대로 달리면 되는데

 

3장이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클라이막스인 '분양편'을 다루는 중이다. 클라이막스의 클라이막스니까 며칠째 긴장도를 잔뜩 끌어올려서 쓰는 중이다.

 

1) 자원외교

2) 4대강

3) 분양제

4) 버스 준공영제

5) 도심 재생

6) 새만금

 

요렇게 6개가 내가 고른 '국가의 사기' 메인 테마들이다. 순서대로 다루면 된다고 생각했는데분양편이 생각보다 커졌다. 커져도, 많이 커졌다.

 

저녁 때 내내 고심을 하다가, 새만금을 빼기로 했다. 순전히 분량의 문제다. 물론 그만큼 들여야 하는 에너지의 문제이기도 하고… 6개에서 5개로 줄이고, 새만금에 쓸 분량과 힘만큼을 분양제에 더 쓰기로 결정을 했다. 그래서 분양제는 3장 다른 절의 두 배 크기가 될 것이고, 내용도 그 이상은 될 것이다. 이 정도면 나도 거의 사생결단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새만금은 나에게는 양심과도 같고, 내 삶의 모터와 같은 존재다. 새만금 때 삭발하고 방조제에 올라갔다가 물대포 맞고 물에 빠진 활동가, 그녀와 결혼했다. 오랫동안 내 주변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새만금 싸움을 하면서 같이 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뺄 수 없는 주제이기는 한데

 

크게 보면, 분양제에 대한 개선과 대안에 힘을 쓰는 게,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만금을 빼고 그 분량 만큼을 분양제에 사용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내 양심일지도 모르겠다.

 

새만금을 빼고 남은 다섯 개의 주제, 뒤돌아 보면 학자로서의 내 삶을 뒤돌아보는 것과도 같은 사건들이다. 학위 받고 20년 약간 넘는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의 흔적이 새만금까지 6, 그리고 새만금 빼고 다섯 개, 그것 자체가 내 자서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제들 자체가, 내가 살아온 삶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의 주제라고 생각한 것이기도 하고.

 

이제 남은 다섯 개를 털고 나면, 내가 더 아는 게 있을까? 이걸 잘 모르겠다. 사실, 남은 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세상이 진짜로 좋아지기를 바란다면, 진짜로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는 했다. 그리고 그런 존재로 남고 싶다.

 

새만금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룰 기회가 내 인생에 또 올까?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새만금에 쓸 분량을 들어서 분양제에 사용하는 것은,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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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0&number=708211&device=pc


sbs 스페셜과 좀 긴 시간 촬영도 하고 준비도 하고, 하여간 웃기게 나왔다. 나도 웃기기는 했다. 웃으면 촬영 안 끝난다. 빨리 끝내고 애들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야 해서... 그래, 웃기는 게 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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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법?



둘째는 태어날 때 많이 아팠고, 작년에 많이 아팠다. 폐렴으로 몇 번을 입원했다. 요즘은 아이 보는 게 제일 큰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나머지 일을 한다. 안 남으면? 애들 어린이집 가고, 오고 그게 제일 큰 일이다. 나머지는 그 때 그 때 상황 봐서 한다.


 


첫 책이 <아픈 아이들의 세대>였다. 인생이란, 거기서 거기다.


 



아팠던 둘째랑 요즘 아주 많이 놀아준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잘 때도 나한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젠 제법 살도 올랐다. 한동안 백분위 체중표로 하위 5%였다. 1년 넘게 죽여라고 먹였더니 이제 중간 정도 간다. 시간 나는 대로 놀이터 같은 데 데리고 나가서 뛰어놀게 한다. 이젠 제법 잘 뛴다. 올 겨울만 잘 보내면, 이제 한시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지난 가을에도 폐렴기가 있었고, 올 봄에도 있었다. 체중이 좀 느니까 아픈 것은 마찬가지만 그래도 자기 힘으로 좀 버티는 것 같다.


 


1.


저자로 책을 쓴 게 이제 10년이 넘는다. <88만원 세대> 때부터 해도 10년이다. 그 동안에 엄청 잘 판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과학이나 경제 분야에서는 가장 오래 버틴 축에는 드는 것 같다. 중간에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기는 했는데, 오래 못 버티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버틴 게 아니라, 다른 할 게 별로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 책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때마다 손사레를 친다. 내가 무슨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에 남을만한 그런 기발한 책들을 늘 쓰는 것도 아니다.


 


대학원 들어갈 때의 일이다. 처음에 파리 8대학에 원서를 냈고, 그 다음에 파리 10대학 시험을 봤다. 이 시험은 죽을 뻔하다가 겨우 붙었다. 그 시험에서 꼴지가 아니라는 사실만 내가 안다. 3달 준비하고 붙었으니까, 붙고 나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등록하고 바로 서울에 가서 입학 때까지 놀다 왔다. 갔다 오고 나니까 8대학 합격통지서가 와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냥 10대학에 갔다. 8대학은 시험은 따로 안 보고 논문 계획서만 가지고 평가했다. 그 때 날 합격시켜준 양반이, 프랑스에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미셀 보였다. 정작은 자기 책보다는 '논문 쓰는 법'이라는 책으로 아주 유명해진 사람이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 논문 쓰면서 누구나 그 책을 한 번쯤 본다. 각주 다는 법 등 기능적인 일들을 설명해놓은 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 과정은 아주 젊은 부교수랑 같이 하게 되었다. 외부에는 아주 강성이고 근본주의자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양반이 돈을 벌게 된 것은, 우리 식으로 치면 회계사 시험 인문용 참고서였다.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 사상사 전공한 사람이지만, 그도 자식을 낳고 버틸 때까지 회계사 분야에서 강사도 좀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걸 정리한 수험서 책이 빅히트를 쳤다.


 


나를 가르친 사람들이, 소소하고도 별 거 아닌 얘기로 잘 팔리는 책을 쓴 사람들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전공서는, 돌아버릴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실험주의적 국가>라는 책은, 진짜로 실험적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형광펜을 몇 개를 동원해가면서 읽었다.


 


실용적인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혹은 잘 읽히는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들도 극단적인 실용서들을 쓰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걸로 돈을 좀 벌어서, 딴 데 손 벌리지 않고 자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것 치고는, 내가 엄청나게 실용적인 책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2.


책을 쓰는 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내가 유별나거나 특출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로서 오래 버티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다. 이건 미리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성격이 아주 더러워서 생긴 일이다. 남들 다 한다고 해도, 싫다면 안해아주 성격 더럽다.


 


내가 한 것은, 특출나거나 특별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모르는데, 내가 책을 많이 내던 시절에는 사재기도 좀 있었고, 지금 보다는 마케팅이 많았다. 알게 모르게, 자기 책 사재기를 부탁하는 저자들도 좀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건 안했다. <88만원 세대> 때에는 작은 출판사이기도 했지만, 첫 책을 내는 출판사였다. 뭔가 하고 싶어도 하는 방법도 몰랐고, 할 돈도 없었다.


 


그냥 남들 하는 기본 정도, 어떤 때에는 그 기본도 못했다. 그냥 내놓고, '내깔려둔다', 그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강연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 강연도 거의 안 했다. 책 나올 때 출판사에서 부탁하는 몇 건 정도나머지는 시민단체가 하는 행사나 도서관 행사, 혹은 내가 신세진 사람들에게 오는 부탁. 대학에서 강연요청이 오면 여건 닿으면 할려고 한다. 그 정도다. 이런 강연은, 대부분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시민단체 특히 지방에서는 이렇게 사람들 모으면서 회원조직이나 활동조직들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주 시간 안 맞는 경우 아니면 가려고 한다.


 


강연에서 돈을 버는 방법이 따로 있기는 하다. 이것도 시장이라고 한다면, 대기업 사원연수나 비슷비슷한 경제단체들 모임, 이런 건 돈이 된다. 직업으로 쳐도 이 시장은 한 번 뚫고 들어가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많은 돈이라고 해봐야 몇 억원대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런 건 안 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얘기 실력도 늘고, 따로 준비할 것도 없는 편안한 강연이다. 그래도이건 내가 싫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책으로도 먹고 살아? 넉넉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하면 세 끼 밥은 입에 들어간다. 강연하면 더 돈 많이 벌지 않아?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그냥 취직하는 게 낫다. 나중에는 몰라도, 아직은 오라는 데가 좀 있다.


 


보람을 포기하고 생기는 돈은, 그렇게 달지 않다. 명분을 포기하고 생기는 실익은, 편안하지 않다.


 


3.


가만히 있으면 누가 알아줘? 책을 내놓고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좀 돌아다니면서 알리라는. 물론 나도 그런 걸 아주 안 하지는 않지만, 내가 먼저 뭘 하자고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용적인 이유다. 아주 기발한 거 아니면, 해봤지 별 소용없다. 괜히 힘만 들고, 모양만 빠진다. 그러다보니, 그냥 원칙주의로 사는 게 제일 낫다.


 


좋은 책은 팔리고, 아니면, 좋은 책이 아니다.


 


아주 간단한 원칙만 정하고, 그 정해진 원칙을 어지간해서는 지키는 것, 그게 오래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칙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는? 그 땐 비겁하게 변명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원칙을 깨는데 익숙해지면, 나중에 존재가 지워진다. 왜 출발했는지, 그 생각 자체가 사라진다.


 


그냥 가만히 있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 그게 최선의 전략이다. , 이 정도면 전략도 아니라 무대책인데, 그것이 사실은 가장 오래 가는 기본 전략이다. 가만히 있으면 '양서'로 도서관 사서들이 인지를 하고, 도서관에서 좀 사준다. 그거 가지고 돼?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버킷 리스트'라는 용어를 사람들이 쓴다. 나는 '버킷 리스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것 같다. 하고 싶은 것, 없다. 되고 싶은 것, 없다. 그 대신 아주 빼곡하게, 하면 안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대개는 지킨다.


 


최근에 내가 하지 않을 것에 두 가지가 추가로 들어갔다. 방송 진행자와 고정, 그리고 예능 방송.


 


이유는? 그냥 애 보면서 차분히 앉아서 생각하는 삶이 너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불필요한 욕망이 자꾸 생긴다. 화려함을 구하고 살아본 적이 없는데, 속성상, 자꾸 화려함을 구하게 된다. 예능도 아주 안했던 건 아니다. 단기성으로는 한 적이 몇 번 있고, 생방송도 오래 했었다. 하다하다, 아침 방송도 했던 적이 있다.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책 보고, 사람들하고 토론하고, 글 쓰고, 이게 더 생산적이다.


 


4.


다른 저자나 작가들을 만나면 다들 하는 얘기가, 책 시장의 어려움과 시대에 맞지 않는 책의 단점에 관한 것들이다. 아러 아러, 진짜로 그런 얘기가 목까지 나온다. 틀린 야기도 아니고, 이상한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에서 사회적인 뭔가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매체 중에서, 책이 가장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음주 용어로 하면, '장타자'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예전에는 유명한 장타자였는데, 요즘은 극단적인 단타자로 바뀌었다. 애들 키워봐…)


 


방송으로 치면, 일일방송이 있고, 주간방송이 있다. 이 템포는 진짜로 숨 넘어간다. 모든 것들은 12시간 단위 혹은 24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회사는 보통은 월간 단위로 움직인다. 제일 중요한 것이 월간 실적이고, 월간 단위의 회의가 중요한 의사결정체가 된다.


 


공무원들은 보통 주간단위로 움직인다. 별 실적이라는 게 없지만, 주간 회의에서 중요한 것들이 결정된다.


 


국회는? 정치권은 이틀 단위로 움직인다. 보통은 월수금 오전에 최고의원 회의가 있다. 많은 사이클은 그 최고의원 회의에 맞추어진다. 이틀 지난 얘기는, 벌써 과거형이다.


 


주기가 짧아지면 더 다이나믹해질까? 남들 다 아는 걸 자기만 모르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난다. 뭔가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축적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신문도 24시간 단위로 움직이지만, 가끔은 기획기사 같은 것을 한다. 길게 보면 한 달 단위 정도 된다. 언론이 가장 길게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이다. 그것보다 뒤의 얘기를 하면, "그 때 가서 얘기합시다",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MB나 박근혜가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것 중의 하나가 TV 다큐가 있다. 길면 두 달, 보통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주기로 움직인다. 가끔은 6개월에서 1년씩 가는 장기편성이 있기는 한데, 이건 그야말로 특별편성, 해외 장기취재로 4부작, 6부작 같은 것을 할 때의 일이다. 보통의 PD나 촬영감독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책은 짧으면 2, 길면 3~4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사회에 관한 얘기를 하는 매체로는 장타자, 아니 최장타자 정도가 된다. 2년 전에, 2년 후에 필요한 얘기를 생각해서 그 때 움직인다. 2년이 지나도 이 문제는 안 바뀌어! 그럴 때 책 준비가 시작된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사람들이 책을 내는 것 아니겠는가?


 


보통의 경우, 방송이나 신문은 다람쥐의 덫에 걸린다.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사실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다. 최장의 호흡은 책이 가지고 있다 (물론 책의 단점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니까 호흡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줄여가면서 최소한의 지출만.)


 


책을 쓰는 것은, 선경지명의 힘에 있지 않고, 버티는 힘에 있다. 누가나 가끔씩은 선경지명의 순간이 온다. 전혀 안 오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찰라의 순간을 가지고 실제로 책을 준비하고 쓰고, 그리고 누군가 알아봐주는 시간까지 가는 것, 버티는 힘이 사실은 책을 쓰는 기술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책도 기술의 영역이 조금 있는데, 이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게 된다.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버티는 힘, 이건 진짜로 초장에 포기하는 사람과 달인의 영역에 가는 사람,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뉘어지는 것 같다.


 


이거 문제다, 생각하고 2~3년을 버티고, 다시 또 2~3년을 버티는 것, 그게 책을 쓰는 노하우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왜 그 지랄을 해?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위해서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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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박사 "사교육비 쓰지 말고, 목돈 모아 아이 줘라"40대 늦깎이 아빠가 된 경제학자가 바라본 육아 이야기

  • 기사본문
베이비뉴스, 기사작성일 : 2017-09-05 18:39:29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늦깎이 아빠' 우석훈 경제학 박사가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의장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한 날 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두 아이가 손을 잡고 자고 있는 모습을 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서로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주고 있는가? 사교육이나 영어유치원, 돈은 돈대로 쓰고 도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천국문과 지옥문을 동시에 여는 것과 같다. 지난 봄, 높은 자리 제안이 왔을 때 1주일 동안 매일 세 번 마음이 바뀌었다. 진짜 인간이 간사하다 생각했다. 결국, 거절했다. 인생에 몇 번 없을 행복한 순간들….”

 

두 아이의 아빠이자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가 전하는 아이 키우는 이야기다.

 

‘88만원 세대’ 저자로 유명한 우 박사는 5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3층 강의장에서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라는 주제로 특강을 펼쳤다. 우리나라 남성들의 낮은 가사참여율, 육아용품의 고가화, 엄마들의 독박육아, 영어 사교육 등에 대해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 박사는 부모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인 영어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큰 아이가 6살이 되면서 어린이집을 보낼지, 유치원을 보낼지, 영어유치원을 보내야할지 고민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유치원이 엄청 좋으면 보내겠는데 라이선스 있는 선생님만 차이가 있지 통합교육이라 누리과정으로 다 같다. 영어유치원은 교육기관이 아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체육활동비가 정부에서 나오지만 영어유치원은 정부의 교육지원이 없다. 앉아만 있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고민하다 어린이집에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 박사는 “대만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 과외를 금지하고 있다. 유아 정신병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영어유치원 3개 생기면 소아 정신과가 1개 생긴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늦깎이 아빠' 우석훈 경제학 박사가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의장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영어유치원 보내는 비용으로, 3개월 아이와 엄마가 하와이 가는 게 효과적

 

우 박사는 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출산패턴에 있어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고 분석했다. '결혼한 사람들은 아이를 특별히 더 낳거나 덜 낳거나 없이 비슷한데 실제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결혼을 안해서'라는 것이다. '결국 결혼율이 출산율의 주요 변수인데 사교육이 큰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추측했다.

 

우 박사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영어유치원 비용을 계산을 해본 결과, “대치동 가서 물어보니 오전 9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1개월에 95만 원, 1시간 더 하면 20만 원 추가, 교재비 등 비용이 든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직장이 없어야 가능하다. 아이들을 거점에만 내려주니까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외국어를 배워 언어를 할 수 있는데 3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비용을 따져보면 3개월 아이랑 엄마가 하와이 가서 지내고 올 수 있는 돈이다. 많은 돈을 들여 효과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차라리 3개월 하와이를 다녀오는 게 효과가 더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영어유치원을 열심히 보내는 동안 외국에선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외국에선 과학과 수학을 하는데 우리는 영어만 죽어라 하고 있으니 외국 아이들과 비교를 하면 주특기가 없는 것, 보병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5~6살 또래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얘들은 리더십 있는 아이가 아니라 리액션이 좋은 얘들이 친구가 많고 인기가 많다. 반장처럼 굴려고 하면 왕따 당하기 쉽다. 말이 리액션인데 이는 공감능력을 말한다”며 “STEM 보다 공감능력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엄마 독박육아…한국 남성 가사참여율 16.52%로 꼴찌 바로 앞

 

우 박사는 나라별 가정 내 남성 가사참여율 데이터를 보여주며 '우리나라 여성의 대부분이 독박육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 가사참여율이 제일 높은 나라는 덴마크(43.39%)다. OECD 평균이 31.97%인데 한국 남성 가사참여율은 16.52%로 인도 다음으로 가장 낮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남성노동분담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인도(12.82%), 일본(17.90%), 중국(28.00%) 등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낮게 나타났다. 

 

우 박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세우는 영국 등 유럽 국가는 육아의 주체가 국가고 엄마가 지원하는 역할을 뜻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가는 육아의 주체가 아니라 엄마가 육아의 주체고 국가는 엄마를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불안함 때문에 사교육비 쓰는 게 아니라 그 돈을 모아 뒀다가 목돈을 한꺼번에 주면 아이가 외국에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하거나 필요한 책을 사보는 등 더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것을 엄마 혼자 다 하기는 어렵다. 아빠들이 도움을 줘야한다”고 말했다.

 

'늦깎이 아빠' 우석훈 경제학 박사가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의장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영어유치원 보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날 우 박사의 강의를 들은 엄마들은 강의에 대한 만족감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특히 강의를 듣고 나니, 영어 사교육과 영어유치원에 대한 고민에서 한층 자유로워졌단 반응들이 나왔다.

 

손주가 있다는 조경애(62) 씨는 “강의에서 실제 데이터로 보여주니까 현실감이 있었다. 손주도 늦은 시간까지 영어 과외를 한다. 영어만 할 줄 아는 아이는 보병이지 않느냐. 과학이나 수학에 좀 더 특화가 될 수 있다면 경쟁력 있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4살 아이의 엄마 윤승희(32) 씨는 “4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영어유치원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박사님 말씀 듣고 영어유치원은 안 보내는 걸로 마음 먹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 남성들의 가사 참여율이 낮다는 게 수치로 보니 더 체감했다”고 말했다.

 

5살 아이의 엄마 김보람(37) 씨는 “아이가 5살이다. 애기 엄마들과 얘기하다보면 슬슬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는 얘길 듣게 되는데 영어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교수님 말씀 들으면서 상식적인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만 할 줄 아는 아이가 될 것인지, 어떤 분야를 특화해서 배울 것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됐다”며 강의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혜진(39) 씨는 “아이가 4학년, 1학년으로 좀 커서 강의 듣는 동안 아이들 어릴 때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동안 (사교육 유혹에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온 게 좋은 시간이었구나, 마음을 잘 지켜왔던데 대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받는 느낌이라 감사했다. ‘그래 맞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해’ 앞으로도 이 마음을 잘 지켜가야겠단 확고한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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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경 기자(hk.kwon@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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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기>, 마무리 준비하며 메모

 

1.

지난 해 있었던 총선은, 아마도 지난 10년 동안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사건일 것이다.

 

둘째가 아팠고, 총선일을 경계로,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하던 일들을 내려놓았다. 둘째 아이가 많이 아프고, 연거푸 폐렴으로 입원한다는 것 외에는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총선이 끝난 다음 날,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이 류승환 감독이었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냥 약속을 잡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그는 그 때 <군함도> 크랭크인을 준비하면서 아주 바빴고, 나는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진짜로 간만에 한가했다.

 

하여간 그 때 했던 얘기 중에 사기꾼 얘기가 있었다. 우여곡절을 거치고 또 거치다 보니까, 그 얘기가 씨앗이 되어서 자라난 얘기가 <국가의 사기>라는 책이다.

 

2.

처음에는 별로 이 책을 열심히 할 생각이 없었다. 동기도 별로 없었고, 목표점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알게 된 일이 있다.

 

나는, 다단계를 진짜로 싫어한다

 

다단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좀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는 다단계도 싫어하고, 다단계 권유하는 사람도 싫어하고, 다단계 권유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한 마디로, 진짜로 싫어한다.

 

영혼 깊은 곳에서 혹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다단계를 싫어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단계에 대한 얘기들을 골격으로 하는 책은, 나는 쓸 생각도 없고, 쓸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뭘 싫어하는지, 이렇게 진지하고 깊이, 몇 달을 걸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진짜로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뭘 싫어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약간은 좀 알게 되었다. 깨달음, 뭐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나도 잘 모르던 내 안의 생각들을 나도 좀 알게 되었다.

 

나는 다단계를, 정말로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싫어한다

 

3.

그 다음은 비교적 순탄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뭘 싫어하는지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으면 뭘 좀 알까? 알긴 뭘 아나결국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자신과 자신을 구성하는 구조에 순치되거나, 약간 저항하는 척하다가 끌려 가거나, 그런 둘 중의 하나의 삶을 살게 된다.

 

어쨌든 책을 고민하면서, 내가 뭘 그렇게 싫어하는지, 약간은 알게 되었다.

 

매듭을 풀 첫 실마리를 찾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약간은 기계적인 일이 진행된다.

 

4.

만약 아이들 보면서 작업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면 <국가의 사기>는 아마도 대선이 끝나고 여름에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대선 이후 몇 달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도 좀 변하였다.

 

, 이거 아닌가벼

 

처음에는 200페이지 안팎의 팜플렛 형식의 책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400페이지를 많이 넘지 않은, 약간 두꺼운 책이 되었다.

 

400페이지? 지금 추세로는 그것도 넘기게 생겼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제 거의 마무리한 2장만으로도 어지간한 300페이지 책 하나 나올 분량이다. 이 흐름대로 가면, 500페이지는 가뿐히 넘고, 그대로 밀고 가면 600페이지도 넘게 생겼다.

 

잠시 호흡을 다듬고

 

3장과 4장을 조금 슬림하게, 절을 딱 반으로 덜어내고

 

1장 시작하는 세 개 정도의 절을 일단 날리기로 했다. 정 필요한 내용은, 별도로 나중에 쓸 서문에 일부 살리고.

 

국부론의 <자연이자율> 얘기가 처음에는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날리기로 했다.

 

3, 4장에서 결론과 대안을 써야 하는데, 이미 너무 많은 분량을 1, 2장에서 해먹었다. 잠시 구조조정.

 

5.

1장은 개인은 왜 속는가, 그런 제목을 가지고 있다. 2장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리고 3장과 4장에서 결론과 대안을 이야기하는, 그런 구조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4장 구조의 책을 아주 선호하게 되었다. 4장일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쓰다보니까, 그런 구조가 제일 편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제목은 '국가의 사기'지만 별로 음모론적인 책은 아니다. 내가 또 별나게 음모론을 싫어하기도 하고. 구조 분석과 조직 분석에 더 가깝다. 클랜 개념을 새로 만들었고, 이념 현상이라는 용어를 별도로 정의하였다.

 

해보지 않은 분석인데, 필요한 단계마다 필요한 개념을 만들고, 그렇게 오다 보니까, 이 작업이 은근 재밌다.

 

출판사나 에디터에서는 이 책이 나의 대표작이 될 거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대해서 아는 얘기들을 거의 다 털어내기도 했고, 또 내 무의식까지 탈탈 털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얘기들만 쓰는 중이다.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별로 목숨 걸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뺐다. 남은 얘기들은목숨 걸 가치가 있는, 그 정도로 문제 있는 것들 것.

 

하여간 이제 반환점을 돌고,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간다.

 

3장의 한 개 절 정도, 4장의 한 두개 절 정도, 넣을지 뺄지 고민 중이다.

 

그리고는 달릴 것이다. 구조를 잡고 기본틀을 잡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아고고, 애들 보면서 뭔가 하는 게, 진짜로 힘들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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