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구, 커튼 뒤에 꼬리만 내놓고 자고 있다. 커튼이 하도 더러워져서 아내는 블라인드로 바꾸자고 했는데, 야옹구가 슬퍼질까봐, 쓸 때까지 쓰고 그냥 버린다고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머리 처박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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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에 커피를 새로 마시는 게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해야 할 것들이 밀려서 별 방법이 없다. 

저녁 때 수영장 갔다오고 보니까 수영모자가 없어졌다. 꼭 뭐 좀 하려면 이렇게 안 도와준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냥 수영장에서 사면 되었는데, 한참 문 닫고 난 다음에 겨우 열고 나서는 그런 게 다 없어졌다. 얄짤 없이 다시 구매, 사는 김에 두 개. 내가 하는 일은 뭔가 좀 엉성하다. 

내 인생도 가만히 돌아다보면 기구할 정도로 뭔가 일이 많다. 그리고 평생 논쟁이 끊기지 않는다. 논쟁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서는 것도 안 좋아하고. 그렇게 우여곡절의 인생을 살고 나서 사회적으로 맨 마지막에 남을 정체성을 생각해보니까, 그게 좌파인 것 같다. 좌파로 살면 좋아? 냅둬유, 이렇게 살다 죽을랑께. 

그래도 다른 일은 시큰둥, 오늘 하나 내일 하나, 어차피 잘 안 될텐데, 그렇지만.. 좌파에 대한 얘기는 간만에 좀 밤을 샐 만한 동기가 된다. 다른 건 나 아니라도 할 사람 많은데, 이건 나 아니면 누가 하겠나 싶다. 

나를 위해 사는 삶은 별로 보람도 없을 뿐더러 별로 재미도 없다. 내가 날 위해 해봐야 뭘 얼마나 하고, 행복해져봐야 얼마나 행복해지겠나. 작년인가, 누가 한샘 회장을 같이 만나자고 그래서, 별 생각 없다고 그랬다. 돈을 좀 지원받아서 큰 일을 하면 좋겠다고 해서, 큰 일은 무슨 큰 일. 밥이나 먹고 살면 되지. 한샘 팔렸다는 뉴스 들으면서 문득 그 시절 생각이 잠시 났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 내에서 즐겁게 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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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을 처음 본 건 생전의 노회찬이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으로 2004년 총선을 준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선거에서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을 했었습니다. 그 시절에 박용진을 처음 봤었습니다. 같이 일을 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 시절에는 박용진이 참 젊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얄쌍하고 냘랍했습니다. 진보 정당에서는 아주 살이 찌거나, 아주 마른 두 유형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박용진은 요즘 말로 핏이 멋졌습니다. 

2004년 총선이 끝나고 원내에 진출한 다음에 노회찬, 심상정 같은 사람들은 원내 활동에 집중을 하고, 박용진이나 김종철 같은 젊은 리더들을 좀 더 전진 배치하고 당을 개혁하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내 세력 분포 등 여러가지 문제로 그런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도 박용진은 혼자 묵묵히 출무하고 묵묵히 낙선하고, 다시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당의 일을 하고는 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참 빛나 보이던 존재였던 기억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온국민행복정치연구소’라는 걸 만들려고 하는데, 소장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박용진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이번 대선에서 너무 나이 많은 사람들만 나서는 것은 좀 보기에 그렇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박용진이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주자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그래도 전체적인 틀을 보기에 더 부드럽게 할 것 같았습니다. 

연구소는 아주 작습니다. 상근 직원은 몇 명 안 되고, 여러 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조금씩 시간을 내서 도와주는 형태가 되어 있습니다. 열악하지요. 저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에 조금씩 살을 보태거나 조율하는 정도의 역할을 주로 합니다. 캠프와는 별도로, 여러 정책들을 검토하고 새로운 대안들을 만드는 작업은 선거와는 별도로 좀 오래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같이 일해본 박용진의 가장 큰 특징은, 그는 자기가 할 얘기의 초고를 직접 쓴다는 것입니다. 정책의 경우에도 그가 이미 책으로 정리할 정도로 어느 정도의 이해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초안을 만들면, 그 다음에 보좌진들이나 전문가들이 그야말로 콩 내라, 감 내라, 온갖 시어머니 노릇을 다 합니다. 때때로 자기들끼리 논의하다가, 말 되냐, 안 되냐, 치고받고 하기도 합니다. 그걸 다 지켜보고, 나중에 자신의 판단을 내릴 때, 그때는 인간이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다른 정치인들은 보통 보좌진이 초안을 만들고, 그 다음에 시어머니 노릇을 합니다. 자기가 할 얘기, 자기가 할 정책, 그걸 자기 손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합니다. 우린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 않나요? 높은 자리에 가고 중요한 사람이 되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게 박용진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스타일과 가끔 박용진을 비교해보게 됩니다. 뭘 할 사람, 그렇게 물으면 저는 언제나 뒤에 숨고, 혹시라도 손 들까봐 두 손 깍지 끼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뒤에서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 안 만나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걸 좋아합니다. 박용진은 저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입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나서서 반장하겠다, 내가 그거 하고 싶다, 그런 스타일었다고 하더군요. 문제가 있으면 저는 지켜보면서 해법을 찾거나 대안을 찾는 스타일이지만, 박용진은 주저하지 않고 방향을 정해서 돌파하는 스타일입니다. 하나하나 해결한 ‘해결 리스트’가 커져가면 박용진은 더 큰 정치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는데 입 다물고 있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더군요. 박용진은 언제나 큰 문제 앞에 서 있는 스타일로 살아갈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구요.  

그래도 박용진 주변에서는 제가 박용진을 꽤 오랜 시간 본 편인데, 그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믿을 만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 본 것부터 따지면 저도 작지 않은 시간을 보아온 것인데, 크게 변한 거 없이 그 시절에 하던 말 거의 그대로 지금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용진이 하는 일이라면, 저는 우선 믿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거나 복안이 있다, 그렇게 늘 생각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박용진의 단점도 하나 말하겠습니다. 그는 약간 밉상입니다. 가만 있으면 중간을 갈 때, 가만 있지 않고, 나서지 않으면 본전은 챙길 수 있을 때 그러지 못 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정치든 시민단체든 싸움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싸우고 나면 상처가 남습니다. 삼성 문제에서 유치원 3법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작지만 ‘박용진 리스트’라는 게 생겼습니다. 이긴 싸움이 많지만, 그래도 상처가 남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는 웃어도 정말 환하게 웃지를 못합니다. 얼굴 한 구석에 어둠이 있습니다. 사회 한 구석에서 정말로 열심히 싸운 사람들이 갖는 미소 속의 어두움이 그에게는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가끔 박용진이 변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민단체 혹은 노조의 연장선에서 싸우던 그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전체 국민들과 공감하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 만들어야 하는 또 다른 정치의 장에 그가 서 있을 뿐입니다. ‘온국민’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우리 모두 언젠가 이 시간을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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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에서 연락이 왔는데, 최근에 나온 팬데믹 책으로 했던 인터뷰에 여혐 관련된 악플이 달렸단다. 게시판 창을 닫을 수가 있다고 의견을 물어보는 건데, 그냥 두시라고 했다.

시대가 그렇게 된 건데, 어쩌겠냐.. 그래도 지금 20대는 좀 낫다. 10대로 내려가면 더 하다. 그들이 20대가 될 때쯤, 한국은 더 무서운 사회가 되어있을 것 같다. 누구를 원망하겠냐, 한국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서운 사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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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인터뷰 봤다. 세삼 박세일 생각이 났다. 그는 보수이기는 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따뜻한 보수'라는 말이 생겨났다.

윤희숙은 기계적으로 전경련 등 좀 과하다 싶은 재벌 쪽 보수들이 하는 얘기들을 반복하는 것 같다. 예전 경제학자들 중에는 노동자라고 쓰면 큰 일 나고, 꼭 '근로자'라고 써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윤희숙이 경선에서 어디까지 갈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노선이 박세일과 비교하면 '차가운 보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봉제를 다 털고, 청년과 장년의 임금을 같게 만들고 나면,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도는 과거의 벌어진 사회적 타협과 균형의 산물이다.

보수도 예전에는 무식한 사람들 위주였는데, 이제는 차가운 사람들 위주로 변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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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피자헛에 가서 당분간 마지막이 될 저녁 외식을.. 다음 주부터는 저녁 시간에 외식은 없다. 그렇기는 한데,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아내랑 큰 애가 가고 싶어해서 갔는데. 배달해도 먹을 수 있는 피자를 굳이 이 마지막 디너 메뉴로 선택하는 게 맞는지, 잠시 갈등. 둘째는 불고기 피자말고는 안 먹어서, 겨우겨우 달래서, 닭고기도 사준다고.

오세훈 서울 시장 되고 제일 처음 생겨난 큰 이벤트가 방역 최고단계로의 격상이기는 한데, 이걸 시장 때문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좀 더 선제적으로 뭔가 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애들 학교에서는 지난 1년 넘게 한 번도 없었던 돌봄교실 폐쇄라는 연락이 왔다. 온라인 수업을 한다는데, 이게 교육방송인지, 뭔가 준비를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게 없다.

나는 노트북이 없고, 아내는 노트북 들고 출근하고, 둘째는 학교에서 빌려준 갤럭시 패드가 있고.. 당장 수요일부터 온라인 수업이라는데.

일단 나는 망했다. 방학 되면 어쩌나,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격리가!

팬데믹 책 준비하면서 연초부터 이 시점쯤 되면 방역단계 올라갈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높은 단계로 갈 줄은!

현 시점에서는 두 가지가 변수라고 본다. 가깝게는 2주만 지나면 방역 단계가 좀 내려갈까? 정부 하는 거 보면 쉽지 않다. 그 이상 지나가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까다로워지는 변화가 생겨날 수도 있다.

좀 길게 보면, 올겨울은 마스크 없이 지낼 수 있을까? 더 이상의 변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인데, 전파력이 더 높아지면 그것도 100% 확신하기는 어렵다.

NC에 확진자 두 명 나와서, 오늘 저녁에도 야구는 열리지 않았다. 남은 몇 달이 아주 힘들 것 같다. 불확실성이 극도로 달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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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집에 온 다음에 급히 보내줄 게 밀려서 잠시 뭔가 좀 하다가 부엌에 가보니..

둘이서 각자 그릇에 고개 처박고 컵라면 먹고 있다. 큰 애가 전기포트에 물 끓여서 컵라면 하고, 동생 반 자기 반, 먹고 있다. 먹성 둘째가 금방 다 먹고, 자기 형 거 좀 달라고 굽신굽신 하고 있어서, 국물에 밥 말아줬다.

둘째가 맵다고 라면 안 먹는다고 하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돼지 새끼들, 이 말이 절로 나온다. 금방 밥 먹을 시간인데.. 이번 주부터 둘째 때문에 오후 간식은 없다고 한 주간인데, 계속 누룽지 조금씩 줬고, 급기야 어제는 둘째가 하도 졸라서 누릉밥도 해줬다. 오늘은 자기들끼리 컵라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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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으로 공산당 선언문 샀다. 세상 참 좋아졌다. 대학교 2학년 겨울에 학교 도서관에서 뜨문뜨문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경제학 교과서도 그렇고, 우리 말로 읽을 수 있는 게 진짜 별로 없었다. <자본론>도 그 시절에 읽었다. 그 시절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경제학이 뭔지도 얼떨결에 점수 맞춰서 대학에 갔었다. 경제학 별로 재미 없어서 재수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친구들하고 술 처먹다가 이래저래 재수할 시기를 놓쳤다. 2학년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자본론 같은 책들을 읽었는데..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경제학 진짜 별 거 아니라고.. 그냥 박사까지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것 같다. 대학원은 국제경제학 전공이었는데, 불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내용은 진짜 재밌었고.. 박사 과정 때 경제 철학을 전공하려고 했었는데, 동구가 무너져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때 약간 맘고생한 거 빼고는, 박사까지는 진짜 '껌값'에 가까웠다. 그 시절에는 수학만 왠만큼 하면 그렇게 어려운 과목이 별 거 없었다. 수학과 관련된 과목에서 과목에서 다들 점수를 왕창들 까먹었는데, 진짜 수학과 수학이 어렵지, 경제학과에서 하는 수학은 그렇게까지 맛탱이 가는 수준은 아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선형대수 공부할 때, 진짜 너무너무 재밌었다. 완전 세상이 새로 보이는 느낌이었다. 햐, 이런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웠어야 나의 10대가 훨씬 즐거웠을텐데. 토폴로지도 완전 신세계, 기하학 다시 공부하면서 고등학교까지의 배운 수학이 허무해졌다. 이런 재밌는 세계가 있었는데, 별 의미도 없는 문제풀이만 죽어라고 배웠던지.. 

지금 돌아보면, 좀 재수 없는 얘기지만, 초등학교 입학하고 박사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한걸음에 달렸던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여름부터 전민련 만들던 시절에 서울민중연합, 서민련에서 1년 조금 안 되게 비상근 간사로 일했었다. 일이라고 해봐야 김수행 선생 같은 양반들 시민 강의하는데, 강의 수발 들고 조별 모임 지도하고, 뭐 그런 거였는데.. 결국 경찰이 털어서 며 사람 잡혀갔고, 나는 그냥 강좌 들으러 온 학생으로 처리되어서 쪼르르. 그런 거에 비하면, 그냥 수업 듣고, 시험 보고, 논문 쓰는 건 덜 위험하고, 맘고생도 훨씬 적은 일이었다. 남들은 감옥도 가는데, 이 정도도 못해?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공산당 선언문 다시 읽으니까, 처음 이거 읽던 그 시절의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그 시절에는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 삶은 그냥 그랬다. 그걸 진작에 깨닫고, 얌전하게 처박혀서 애들 보고, 글이나 조금씩 쓰는 걸로 나의 노년이 시작되었다. 

손에 가슴을 얹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잠시 눈을 감았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타노이 미니, 북쉘프 스피커! 며칠 전부터 이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진짜 원하는 것도 별 거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아무 것도 없는 삶을 몇 년째 살아간다. 아마도 이 상태를 눈을 감는 순간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고스트의 속삭임'이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문은 '고스트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좌파 에세이에서 청년 좌파에 대해서 얘기하는 3장은 '고스트의 속삼임'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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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좌파가 젊은 좌파에게', 좌파 에세이 새로 잡은 제목이다. '젊은 좌파들에게 보내는 연가' 정도 생각했었는데, 연가가 너무 올드한 느낌이라고 원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몇 개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고민을 하다가, 2장 끝나갈 때쯤.. 늙은 사람들 얘기가 한참 이어지다 보니까, '늘은 좌파'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서. 

요 며칠 사이 은퇴하고도 한참 지난 할아버지들하고 문자 메시지 오고 갈 일들이 좀 있었다. 종이책은 노안이 와서 잘 못 보고, 전자책 없냐고 물어봤더니.. 노안 오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 아니냐는 얘기가 왔다. 이래저래 나보고 젊다고 하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젊기는.. 나도 낼 모래면 환갑이다. 둘째 초등학교 정문 보안관실에서는 얄짤 없이 '할아버님' 애기 듣는다. 

'늙은 좌파'라고 쓰고 나니까, 내가 속이 다 시원하다. 원래 늙으면 말이 많아지는 법.. 괜히 젊고 발랄한 척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아예 마빡에다가 '늙은 좌파'라고 하고 가는 게 더 경쾌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 먹으면 폼도 좀 잡고, 우아하고 품위있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난 그런 건 버렸다. 원래도 폼 나는 스타일 아니다. 그냥 머리 박고, db 뒤적뒤적거리고, 가끔 엑셀 작업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아마 내 인생의 뒷부분도 별 폼 나는 일은 안 하고, 적당히 고생하고, 밥이나 먹고 살아가는, 그렇게 살 게 될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뭐라도 더 쥐어잡고 살겠다는 모습을 보면서, 꼭 그렇게까지 할 게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의미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에 대한 얘기들을 정리하면서, 나도 살아온 삶을 한 번 크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뭐, 나쁜 일을 꼭 안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별로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격도 지랄 맞고, 이상한 거 보면 꼭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어쨌든 3장 시작에는 다시 한 번 크게 나에게 질문을 한다. 내가 지금 다시 대학생이라도 나는 좌파의 삶을 살까?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지금의 청년 좌파에 대한 얘기로 넘어간다. 나도 내 선택에 대해서 깊이 한 번 고민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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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일으킨다고 정부부처를 없애야 한다고 하면.. 모든 경제갈등의 원천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재벌 등 기득권 위주로 경제를 파행시킨 기재부는 벌써 없앴어야 했다. 실제로 일본은 고이즈미 개혁할 때 우리의 기재부에 해당하는 대장성을 없앴다.

부처가 갈등유발한다고 해서 없애야 한다면, 환경영향평가 같은 것을 해서 모든 지역에서 찬반 갈등을 일으키는 환경부는 벌써 없애야했다.

젠더 문제 국제평가에서 아직 바닥권을 못 벗어나는 나라에서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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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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