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을 처음 본 건 생전의 노회찬이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으로 2004년 총선을 준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선거에서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을 했었습니다. 그 시절에 박용진을 처음 봤었습니다. 같이 일을 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 시절에는 박용진이 참 젊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얄쌍하고 냘랍했습니다. 진보 정당에서는 아주 살이 찌거나, 아주 마른 두 유형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박용진은 요즘 말로 핏이 멋졌습니다.
2004년 총선이 끝나고 원내에 진출한 다음에 노회찬, 심상정 같은 사람들은 원내 활동에 집중을 하고, 박용진이나 김종철 같은 젊은 리더들을 좀 더 전진 배치하고 당을 개혁하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내 세력 분포 등 여러가지 문제로 그런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도 박용진은 혼자 묵묵히 출무하고 묵묵히 낙선하고, 다시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당의 일을 하고는 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참 빛나 보이던 존재였던 기억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온국민행복정치연구소’라는 걸 만들려고 하는데, 소장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박용진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이번 대선에서 너무 나이 많은 사람들만 나서는 것은 좀 보기에 그렇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박용진이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주자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그래도 전체적인 틀을 보기에 더 부드럽게 할 것 같았습니다.
연구소는 아주 작습니다. 상근 직원은 몇 명 안 되고, 여러 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조금씩 시간을 내서 도와주는 형태가 되어 있습니다. 열악하지요. 저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에 조금씩 살을 보태거나 조율하는 정도의 역할을 주로 합니다. 캠프와는 별도로, 여러 정책들을 검토하고 새로운 대안들을 만드는 작업은 선거와는 별도로 좀 오래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같이 일해본 박용진의 가장 큰 특징은, 그는 자기가 할 얘기의 초고를 직접 쓴다는 것입니다. 정책의 경우에도 그가 이미 책으로 정리할 정도로 어느 정도의 이해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초안을 만들면, 그 다음에 보좌진들이나 전문가들이 그야말로 콩 내라, 감 내라, 온갖 시어머니 노릇을 다 합니다. 때때로 자기들끼리 논의하다가, 말 되냐, 안 되냐, 치고받고 하기도 합니다. 그걸 다 지켜보고, 나중에 자신의 판단을 내릴 때, 그때는 인간이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다른 정치인들은 보통 보좌진이 초안을 만들고, 그 다음에 시어머니 노릇을 합니다. 자기가 할 얘기, 자기가 할 정책, 그걸 자기 손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합니다. 우린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 않나요? 높은 자리에 가고 중요한 사람이 되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게 박용진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스타일과 가끔 박용진을 비교해보게 됩니다. 뭘 할 사람, 그렇게 물으면 저는 언제나 뒤에 숨고, 혹시라도 손 들까봐 두 손 깍지 끼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뒤에서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 안 만나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걸 좋아합니다. 박용진은 저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입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나서서 반장하겠다, 내가 그거 하고 싶다, 그런 스타일었다고 하더군요. 문제가 있으면 저는 지켜보면서 해법을 찾거나 대안을 찾는 스타일이지만, 박용진은 주저하지 않고 방향을 정해서 돌파하는 스타일입니다. 하나하나 해결한 ‘해결 리스트’가 커져가면 박용진은 더 큰 정치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는데 입 다물고 있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더군요. 박용진은 언제나 큰 문제 앞에 서 있는 스타일로 살아갈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구요.
그래도 박용진 주변에서는 제가 박용진을 꽤 오랜 시간 본 편인데, 그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믿을 만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 본 것부터 따지면 저도 작지 않은 시간을 보아온 것인데, 크게 변한 거 없이 그 시절에 하던 말 거의 그대로 지금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용진이 하는 일이라면, 저는 우선 믿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거나 복안이 있다, 그렇게 늘 생각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박용진의 단점도 하나 말하겠습니다. 그는 약간 밉상입니다. 가만 있으면 중간을 갈 때, 가만 있지 않고, 나서지 않으면 본전은 챙길 수 있을 때 그러지 못 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정치든 시민단체든 싸움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싸우고 나면 상처가 남습니다. 삼성 문제에서 유치원 3법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작지만 ‘박용진 리스트’라는 게 생겼습니다. 이긴 싸움이 많지만, 그래도 상처가 남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는 웃어도 정말 환하게 웃지를 못합니다. 얼굴 한 구석에 어둠이 있습니다. 사회 한 구석에서 정말로 열심히 싸운 사람들이 갖는 미소 속의 어두움이 그에게는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가끔 박용진이 변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민단체 혹은 노조의 연장선에서 싸우던 그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전체 국민들과 공감하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 만들어야 하는 또 다른 정치의 장에 그가 서 있을 뿐입니다. ‘온국민’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우리 모두 언젠가 이 시간을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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