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와 벌>, 추천사 쓰다가 요런 문장이 생각났다. 건물주 자식들이 금수저 놀이하는 경제, 재미없다... 우리가 만드는 경제, 사실 너무 재미가 없다. 이걸 정의로 접근하는 것도 한 시각이지만, 재미로 생각하는 한 시각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꿈꾸는 경제 - 과연 꿈이나 제대로 꾸는지도 모르겠지만 - , 그거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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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초기 소설에 관한 인터뷰를 보면 한국 독자들에 대한 각별한 감사의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자신이 전업작가로 살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한국 독자들 덕분이라는 거다. 그리고 주인공급 캐릭터들에 한국인이 등장한다. 절박함과 절절함의 표현이다.

 

나에게 사석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책으로 먹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첫 책이 2005년에 나왔으니까 대충 13년 정도 된 것 같다. 그 동안 먹고 살았으니 가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2년 정도는 당대표 되기 이전부터 문재인을 돕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썼고, 그 때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책과 함께 살아온 것 같다. 나나 아내나 돈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라서, 아주 넉넉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 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애 둘 키우다 보니, 밥 먹을 때만큼은 우리 집도 중산층처럼 먹는다.

 

내가 처음 데뷔할 때 출판사 md들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정말 처음인지는 잘 모른다. 내 앞에 박현채 선생, 정운영 선생, 이런 분들이 계셨다. 이 분들은 딱히 직함이 애매하니까 경제평론가라는 말을 썼다. 나는 평론가라는 말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경제학자라고 했다. 그 시절에는 다들 대학 교수 이름을 앞에 걸었었다. 정운찬 선생이 나중에 총장 그만두신 다음에 호칭이 애매하니까 경제학자라는 호칭을 썼다. 이제는 그냥 경제학자가 사회적으로 호칭이 되었다. 학자에 가까울 것인가 작가에 가까울 것인가, 가끔 나도 해보는 질문이기는 했다. 지금 와서는 별 의미는 없다.

 

어쨌든 선진국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에서 책 써서 먹고 사는, 소위 전업작가의 숫자는 매우 드물다. 한국에서도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버는 사람은 벌고, 아닌 사람은 못 버는, 그런 건 아니다. 그 숫자 자체가 워낙 적다. 거의 없고, 아주 일부가 베르베르처럼 전업작가가 되는 데 성공한 정도, 그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회과학의 경우는, 아직은 나 말고 못봤다. 강준만 선생이 교수를 그만두고 글을 쓰는 경우 같은 건데, 우리나라에도 드물고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글을 쓰기 위해서 교수를 그만둔 사람으로 가장 유명해진 경우는 아이작 아시모프 정도 될 것이다. SF만이 아니라 과학책들도 꽤 썼다. 결국 글을 쓰기 위해서 전업작가가 된 경우다.

 

2.

엉청난 대박을 생각하면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하면서 대박을 낸 사람도 가끔은 보았는데, 그걸로 행복해진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10년을 버티기는 불가능하다. 나보다 앞 순위에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오래 버티지를 못한 것 같다. 10년 전에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서 아직도 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버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냥 기계적으로만 계산을 하면, 1년에 2~3권을 내면 사는 건 가능하다. 그냥 회사 다닌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 쓰거나 분석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더 편하다. 그 정도는 일해야 구박받지 않고 회사 다닐 듯 싶다.

 

책은 크게 판매 수익과 부가수익으로 나눌 수 있다. 인세와 인세 아닌 것,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인세는 판매 부수에 따라서 결정된다.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다. 부가수익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책과 관련해서 올릴 수 있는 소득이 존재한다. 인기 개그맨처럼 행사 뛰는 건 아니니까 책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기고 등 원고 수입과 강연 수입이 있다. 그리고 드물지만 방송 출연으로 생기는 소득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10년 넘게 사회과학 전업작가로 버텨온 내 나름의 원칙이 있다.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물지만 성공한 경우니까 참고는 될 것 같다.

 

3.

먼저 방송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시민단체의 현장 싸움을 오래 하면서 새만금이나 골프장, 생태계 보호와 같이 방송에 사회적 이유로 나가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꽤 일찍 방송을 한 경우이기는 한다. 물론 방송 안 느는 대표적인 지진아이기도 하고.

 

처음 시작하는 경우라면 방송 소득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워낙 작고, 불규칙하다. 그리고 신경이 분산된다. 혹시 자신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대중들에게 더 알리는 것이 책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예외적이고 효과가 있더라도 한시적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와 같다. 자신이 나가서 다른 사람의 책을 파는 건 도와줄 수 있는데, 자기가 자기 책을 파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책을 사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즌제 등 많은 돌발 변수가 있어서 그걸로 삶을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 10년을 해보고, 나는 방송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가지 않는다고 원칙을 정했다. 특히 지금, 사람들은 책이 좋으니까 사지 TV에서 얼굴 봤다고 사지 않는다. 그럴 사람은 한국에 한 명도 없다. 방송이 체질이고 카메라나 마이크 앞에 서는 게 좋으면 하는 거지, 책과 관련해서는 방송은 잊는 게 좋다. 자기 책 자기가 팔자고 하면, 흉해 보인다. 그 사람이 공적으로 옳은 일을 할 때 지지하는 것이지, 지지해달라는 말만 듣고 지지할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 정권에서는 반대 진영의 방송 출연이 워낙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채널이 열리면 무조건 나가라고 주위에서들 권했었다. 나도 그리 내키지 않는 것을 참고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 선의로 나온다고 생각할 사람 별로 없고, 돈이나 인기를 위해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얘기 들어서 좋을 것 같다.

 

방송 다음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칼럼 등 매체 기고다. 내 경우만 놓고 보면, 매체 기고와 책 판매는 통계적으로 무관하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책을 더 사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경우라면, 그런 이유로 쓸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특a급 소설 작가들이 정기 기고를 하지 않는다. 그게 도움이 되었으면 그들이 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하고 쓰는 것은 원고료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건 좀 슬프다. 지난 10년 동안 신문 등 원고료는 거의 오르지 않았고, 어떤 경우는 줄기도 했다. 게다가 보통은 6개월 정도 하고 필진 교체를 한다. 생활비 때문에 기고를 하는 경우, 교체되지 않기 위해서 좀 더 상관들에게 부탁을 해야할 것 같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런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신문 등 매체의 칼럼은 정말로 공익적 목적, 무엇인가 꼭 알려야 하는 것 혹은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서 새로운 것들을 소개하기 위한 원래의 목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낫다. 원고료를 놓고 생활비 구성을 꾸리면 나중에 아주 곤란한 상황이 온다. 진짜,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 독서도 하고 취재도 해야 하는데, 결국은 원고비 보다 돈이 더 든다. 안 그러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데, 속에 든 걸 빼먹기만 하거나 맹탕으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결국 정기적인 칼럼 기고는 그만두었다. 생활에 크게 도움되지는 않는다.

 

3.

연예인급으로 방송만 할 거 아니라면 방송이나 원고료가 아주 단기적인 급전 해결 이상은 안된다. 그래서 이런 소득을 기본으로 놓고 10년 정도의 생활을 계산하면 진짜 황망한 경우를 당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이러면 안되지만, 아직은 이런 데는 현실과 거리가 좀 있다. 최저임금을 몇 년 동안 올리자고 죽어라고 외친 작가들의 원고료는 최저임금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강연은 좀 다르다. 1~2권 나왔을 때에는 강연 요청도 별 게 없고, 단가도 아주 약하다. 그렇지만 몇 권이 나오면 판매와는 상관 없이 강연시장에서는 인기 강연자가 될 수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강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생겨났다. 이런 데랑 연계되면 충분히 생활을 할 수 있고, 조금만 더 말랑말랑한 얘기를 할 수 있으면 몇 년 바짝 일해서 집도 살 수 있다. 강연만 가지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능하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경우는 운전수 딸린 차도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직업이 경제학자다. -방송, -원고료, 이 조합은 경제적으로는 무의미한 조합이고, -강연, 이 조합은 가능만 하다면 어지간한 회사 부장 자리 정도는 던지고 나와도 될 정도로 의미 있는 조합이기는 하다. 물론 지속적으로 좋은 책을 낸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얘기다. 회사 직원 연수, 지자체 공무원 교육 등 수요는 아직도 무한히 많다.

 

여기서부터가 정신 바짝 차릴 대목이다. 내가 강연에 대해서 정한 제일 큰 원칙은, 유료강연은 안 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파는데, 내가 하는 강연까지 독자에게 돈을 받는 건 내 양심상 안 맞는다. 일종의 2중 판매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유료 강연은 안한다. 그리고 좀 미안한 얘기지만, 차비도 안 되는 재능기부급 강연도 안한다. 친한 사람들 도와줄 일 있으면 차라리 그냥 해주지, 재능기부, 이렇게는 안한다. 아직 나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다.

 

시민단체, 고등학교와 대학교, 가능하면 지역단체와 도서관, 이런 데가 우선 순위다. 사회적 경제 책 같은 경우는 특별히 더 알리고 싶은 생각이 많아서, 이런 건 좀 무리해서 강연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는 안 한다. 그러면 내가 돈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강연자 입장에서 보면 강연은 좋은 시장인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강연도 비즈니스가 된 상황에서 기획자의 시선이라는 것도 있다. 보통 강연자의 수명을 2년에서 길면 2년 반 정도 본다. 물론 고르바쵸프나 클린턴처럼 영원한 인기 강사도 있는데, 그건 그 사람들이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이 시효성이 2년 정도 될 것이다. 그 정도 되면 인기도 시들해지고, 하는 얘기도 유행하고 안 맞는다. 2년 동안 바짝 벌 것이냐, 장기전으로 갈 것이냐, 사실은 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내린 선택은, 공익적 이유 아니면 강연은 가급적 안 한다

 

강연은 소모성이다. 가진 것을 소모할 것이냐,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것이냐, 그 중간에서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강연이 사회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걸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작가에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닐 뿐더러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나중에 미사리에서 노래 부르기 위해서는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 두 곡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작할 때 하나, 마무리할 때 하나, 이래야 미사리에서 쇼를 할 수 있다. 히트곡이 하나만 있는 가수는 미사리에도 서기 어렵다. 강연 시장이 그것과 비슷하다.

 

문화시장의 경제 법칙 그대로다. 문화 시장은 본원 시장이 튼튼해야 파생상품도 커진다. 영화로 치면 극장 관객수, 드라마로 치면 본방 시청률, 이런 거다. 책 시장도 마찬가지다. 본원 상품이 튼튼한 것, 이게 가늘지만 오래가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4.

좋은 책을 쓰는 것, 이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책을 처음에 쓰면 팔리고 싶은 책을 먼저 쓰고, 안 팔릴 얘기는 나중에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출판사에서도 대부분 그렇게 권한다. 잘 팔릴 책 먼저, 안 팔릴 책 나중에, 이렇게 시도한 사람들이 한 권도 못 내거나 한 권 내고 사라져갔다. 첫 책에 빅히트,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좋은 전략은 아니다. 그게 되면 대졸자 절반은 전업작가를 할 것이다. 좋은 책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잘 파는 건 더 어렵다.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게 존재한다. 생각 보다 특수 영역이다. 

책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양서를 쓰는 것이다. 양서는 도서관에서 사주고 싶어하는 책이다. 도서관의 각종 위원회나 사서들은 책을 고르는 것이 직업이다. 팔기 위해서 쓴 책을 그들은 얄팍하다고 얘기하고, 읽기는 쉽지 않거나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그 도서관에 오는 분들에게 꼭 읽히거나 추천하고 싶은 책을 양서라고 한다. 양서를 쓰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도서관에서 사준다. 물론 그게 엄청난 권수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이다. 그리고 일단 양서를 썼으면, 그 정도 수준에서의 최소한의 품질 관리를 해야 한다. 순서를 바꾸어서, 팔릴 것 같은 책을 먼저 쓰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뒤에 쓰려고 한다면, 도서관 사서들이 보기에는 없는 예산에 먼저 사줘야 할 양서 작가로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품과 책이 다른 결정적 이유다. 보통 상품에는 도서관이 없다.

 

어떤 책이 양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얘기다. 사회에 꼭 필요한 얘기, 더 나왔으면 하는 책, 다양성에 기야하는 책, 이런 책들이다. 물론 기준은 좀 보수적이다. 도서관이 원래 좀 보수적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양서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쟝르별 구분과는 달리, 도서관에서 책을 사는,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암묵적인 기준이 하나 있다. 팔리는 책을 먼저 써서 일단 생활을 안정시키고, 그 다음에 진짜 얘기를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소기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 개념을 이해한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부탁이 오면 정말 시간이 안 맞는 경우 아니면 어지간하면 간다. 책과 도서관, 끊을 수 없는 관계다. 도서관에서 별로 관심이 없는 책을 쓰면서 오래 버티려면 이제는 절대로 일반화될 수 없는 본인만의 기술과 장점이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못 본 것 같다.

 

책을 파는 것과 좋은 책을 쓰는 것, 둘 중의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좋은 책을 쓰는 것이 길게 가는 길이다.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것과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중에 고르라고 하면 역시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순전히 이론적인 계산이지만, 정말로 좋은 책을 쓰고 운대와 흐름이 잘 맞으면 지속적으로 1억 원 정도의 소득을 인세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민 평균 소득 정도를 인세로 올리는 것은, 이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는 학위나 전공,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본 출판시장이 그렇게 움직이는데, 한국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18년 도서 시장, 교수라고 더 사주고, 박사라고 더 사주는 그런 독자는 이제 없다. 점점 더 전문가 타이틀이 책 판매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시장으로 가고 있다. 규모가 줄어들어서 그렇지, 우리의 출판 시장의 흐름이 건전한 방향으로 가고는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는 고민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과 독자들이 읽고 싶은 것, 그 두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그건 모든 작가들에게 영원한 질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제 한 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서 책을 쓰면 오래 못 갈 뿐더러 정신 건강에 안 좋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 책을 쓰면, 한국의 독자들이 최소한의 삶은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게 한국을 믿고 한국의 독자들을 믿고 가는 편이 낫다. 정신건강에도 그게 좋을 뿐더러, 현실적으로도 그게 유효하다.

 

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대학원 정도의 기본 훈련과 몇 가지의 간단한 원칙만 이해하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되면, 인생을 조금은 더 즐겁게 그리고 의미있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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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촛불집회 이후 처음 지방선거가 열린다. 거대한 흐름 이후, 과연 우리에게 변화가 생겼을까? 지금까지 지방선거는 토건의 향연장이었다. 간선도로, 광역철도, 다리, 여야 상관없이 토건과 더 큰 토건이 맞붙었다. 그리고 결국 복지와 문화에 들어갈 돈을 토건이 빨아갔다.

전북에서는 노태우 이후로 변함없는 숙원사업이었던 새만금에 신공항을 본격 추진한다. 광주에서는 5·18을 기념하여 518미터짜리 초대형 타워를 신설한다고 한다. 광역 단위로 주요한 것만 그렇고, 기초 단위의 토건도 이제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미 서울시장 후보에서 사퇴한 정봉주는 출마의 변으로 서울 주요 간선도로의 지하화를 제시한 적이 있다. 이미 주택 시장의 제일 큰 변수는 지하화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0813.html#csidx4fe9c61827398b7bfc74c53071cc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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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좀 힘든 일은 지나가서 그런지, 이제는 글을 편안하게 쓰고 싶지가 않다. 물론 내 입장에서 쓰기에 불편한 글에 관한 생각이다.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읽는 사람은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생긴다고, 쓴 책이 대충 스무 권 정도 넘어가면 나름대로 틀을 잡고 정형화시키는 요령이 생긴다. 이걸 틀이라고 얘기하면, 그냥 공장 같은 게 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오븐에 빵을 굽는 것과 제빵 믹스를 사다가 제빵기에 굽는 것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제빵기에 빵을 구우면, 반은 인스턴트다. 그리고 많이 하다 보면 나름 요령이 생겨서, 쉽게도 하지만 맛도 최소한은 넘어간다. 그렇지만 재미는 없다. 개성도 없다.

어지간한 주제도, 이미 성공했던 틀 몇 개 중에 하나를 골라서 집어넣고 대충 돌리면 글 비슷한 게 나온다. 판매로만 생각하면, 그 편이 더 안전하다. 과거의 책들을 보면, 틀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친 것들이 신통치 않다. 그리고 좀 더 안전한 방식으로 간 것들이 기본 이상은 한다.

주제와 양식이라는 두 가지 눈으로 보면, 위험한 주제를 선택하는 방식과, 더 새로운 양식을 선택하는 방식의 결합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문체도 중간에 개입을 한다. 톤앤매너라고 부르는 표현 양식을 이끄는 주된 수단 중의 하나가 문체다.

50이 넘으면서, 나는 이제는 쉬운 주제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건 할 이유도 없고. <솔로 계급의 경제학> 이후로 내가 선택하는 주제들은 다루기 까다롭거나, 시대에 너무 앞 선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농업 경제학>처럼 너무 시대에 뒤늦거나. 하여간 사람들이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주제야 그렇다 치더라도, 양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양식이라는 게, 사실 엄청난 것은 없다. 가끔 전위적 시도를 하는데, 출판사랑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결국은 평범한 방식으로 틀을 변형시키고는 만다. 가장 전위적인 것은 여전히 <아픈 아이들의 세대>였다. 그 시절에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이나 쓰고 싶은 얘기들에 대한 설계도를 은유적으로 담아놓았었다. 기자들이, 아주 학을 떼었다. 그 시절의 전위적인 느낌을 아직도 나는 잘 못따라간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 때보다 용기가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아니다 싶으면, 그 때는 원고 바로 들고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속으로, 나는 언제나 이렇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지나간  시절의 얘기다. 그 때는 내가 30대였다. 지금 그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너무 상처 받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본다. 좀 아니다 싶어도, 적당히 하고 마는, 그런 타협적인 자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2.
다음 달부터는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책 작업을 시작힌다. 한겨레 신문사에 부탁을 받고, 한 달 정도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하기로 한 주제다. 이론 작업도 좀 더 정리를 해야 하고, 통계도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분석 작업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 한 가지만 안다. 예전에 썼던 <조직의 재발견>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어서 쓰는 책이라는 정도. 그래서 이 주제가 나에게 오게 된 것이기도 하고.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다.

지금 주저하는 것은. 스타일에 관한 문제다.

이것도 어지간히 슬픈 얘기고, 눈물 몇 번은 찔끔 나는 주제다. 회사도 좀 그래요, 그런 얘기다. 그리고 좀 잘 해보자, 그렇게 결론을 낼까? 일단 나부터도, 그런 얘기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겠지만 그걸 굳이 책으로 읽어야 하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분석을 해서, 아무도 몰랐던 얘기들을 '턱'하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분석의 성공으로는 <국가의 사기>를 뛰어넘기 어렵다. 그건, 그렇게 구성된 책이었다.

그래도 왠만하기는 할텐데, 내가 읽고 싶지 않은 책이 될 위험이 높다. 저자로서, 나도 모르는 결과가 분석을 통해서 나오기를 바라고, 서술 과정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요소들을 발견하거나, 생각지 못했던 결론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게 아니면, 그냥 식빵 믹스 넣고 제빵기에서 빵 만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냥 이제는 세보는 것도 귀찮은 출간 목록에 한 줄 더 넣는 일에 불과하다. 그렇게 기록세울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낭비하기에는 내 인생도 아깝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거기서부터 내 고민이 시작된다. 안해본 방식, 더 힘든 방식, 그런 걸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러면, 내가 재미가 없다. 이미 수없이 했던 일을 약간의 변형만 가지고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일을, 내가 왜 해야하느냐? 그렇게 할 거면, 나는 굳이 책을 쓸 이유가 없다.

하여 지금 고민 중인 것은...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팍 깨게 웃기는 구조를 잡을 수 있느냐는 것. <농업경제학>은 나이를 먹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잡기로 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소한 이 정도에 해당하는 형식이나 양식 실험을 해볼 수 있을까, 그런 게 지금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 앞에서 내가 하는 고민이다.

회사, 그거 겁나게 드럽고 치사한 거야...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책을 쓰는 것은 미친 짓이다. 자, 우리 같이 손잡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 보..아..요.. 내 나이가 50이다. 이런 말랑말랑하고 무의미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 300페이지가 넘는 글을 쓸 이유는 없지 않은가.

웃으면서 읽기에 좀 더 편안한 양식이 없나, 지금 고민 중이다. '사장님 나빠요', 요거 보다는 좀 더 나가야 할 것 같은. 근데, 생소한 작업이라서, 나도 선뜻 뭐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여전히 고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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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tv판을 굉장히 재밌게 봤다. 워낙 오래된 일이었는데, 극장판 1, 2를 안 본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주말을 맞아, 아직 안 본 극장판 1, 2를.

오시이 마모루 작품은 대체적으로 다 재밌다. 공각기동대는 TV용 dvd는 파는 건 다 샀다. 극장용도 재밌고, 최근에 다시 시작한 시리즈도 보는 중이다. 내가 최고로 생각하는 캐릭터인 다치코마는 패트레이버와 공각기동대를 연결하는 메인 테마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봐도, 패트러이버는 역시 다층적이다. 조직론에 대한 얘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직론으로 보니까 역시 재밌다. 2편은 특히 그렇다. 일본 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고민이 많기는 한 것 같다. 자위대와 경찰 사이의 전면적 대립 그리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작은 조직들의 독자행동. 특차 2과의 움직임, 이런 것들의 개별적 동기… 역시 재밌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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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몇 년 전에 치매로 쓰러지셨다가, 큰 애 4살 때 놀러간 어느 날 기적과 같이 그냥 일어나셨다. 치매판정도 받으셨고, 도우미도 집에. 아직 이유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지내신다. 요 몇 달 건강도 많이 나아지셔서, 얼마 전에는 여의도에 벚꽃 보러 갔다오셨다는.

어머니 쓰러지시기 전에 모 공중파에서 어머니 얘기로 휴먼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그래도 정정하실 때 마지막 기억일 것 같아서 나는 한다고 그랬는데, 어머님이 우울증이 심해지시면서 다 귀찮다고... 그래서 안 한 적이 있었다. 

일어나시고 난 다음 사진이 너무 없어서, 겸사겸사 애들 데리고 놀러갔다. 

렌즈는 50미리. 이게, 사실 겁나게 싼 렌즈다. 오늘 확인해보니까 신품가로 26만원 정도 한다. 프로들은 안 쓰는 렌즈고, 왠만한 사람들도 렌즈 축에 끼어주지 않을. 밝은 게 특징이기는 한데, 밝은 것 빼고는 다 단점이다. 극단적으로 느리다. 화각도 애매하고, 렌즈도 느리고,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런 싸구리 쓰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렌즈다. 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가끔은 기가 막힌 사진을 뽑아주기는 한다.

어머니 웃는 모습은 잘 보기 어렵다. 그리고 둘째랑 같이 웃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어렵다. 웃을 수 있는 날이 잘 없다. 그렇게 자주 뵙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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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 이래저래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될 기회가 되었다.

결정을 내릴 때 난 주변 사람들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한다. 특히나 중요한 결정일수록, 중론을 따른다. 고집은 거의 안 부리는 편인데, 가끔 하지 말자는 것에 대해서는 좀 고집을 부린다. 하자는 것에 대해서 고집을 부린 적은 별로 없다.

살면서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기는 하다. 경제학 전공인데 프랑스로 유학 간다고 할 때, 진짜로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또 한 번은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에너지관리공단 부장에서 그만둘 때. 두 번 다 나는 한 가지 답변을 했다.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거 아니면 관심 끄시라고. 참, 싸가지 없이 말했다.

나머지 결정들은, 찬반이 분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랬거나 저랬거나, 그 때는 중요한 것 같았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별 상관이 없었을 것 같다. 인생에서 하나하나의 선택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 같지만, 지나와서 돌아보면 별 상관도 없었을 것 같다. 그 순간 순간, 결정이 어려워서 술을 많이 마셨다. 돌아보면, 술 마시려고 억지로 핑계를 만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 전제로 이것저것 생각을 하는 게, 그게 너무 도구적 사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을 중요한 결정을 중심으로 보는 것, 간단하고 편하기는 한데, 결정이 그게 뭐 그렇게 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몇 년 전까지는 내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게 내 정체성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50이 되고 보니까, 그건 하나도 안 중요한 일이다. 내가 박사인 것이 중요할까? 지금 와서 보면,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하고 학위가 있는 것,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기분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 이건 아무 상관도 없다. 학위도 그런데, 그게 프랑스일지, 독일일지, 영국일지, 아니면 미국일지, 이런 게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허상인 것 같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지, 나머지는 사실 다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하나하나의 결정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매 순간 좋은 결정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면… 암 걸린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적당히 생각하고, 되는대로 결정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 나는 그렇게 잘 못살았다. 앞으로는 그냥 대충 살 거다. 그럼 인생 개판 될까? 그렇지 않다. 매일매일매일이 즐겁고. 오늘이 영원히 붙잡고 싶은 바로 그 순간인 삶이 왜 개판일까? 뭔가 엄청난 것을 하거나 자기 희생 속에 엄청난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는 삶이 개판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얼굴은 엄청 진지한데 삼구삼진 당하는 타자들… 요렇게 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그래서 나는 마치 오늘만 있는 사람처럼 살 꺼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 내가 행복할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엄청나게 중요한 결정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 요것도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의 삶, 긴장도가 너무 높다. 그것을 낮추기 위해서 조금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편안해진다. 괜히 인상 쓰지 말고, 괜히 배 내밀지 말고. 그냥 담백하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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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출간 일정이 거의 확정된 것 같다. 예전에는 3년치씩 미리 확정을 지었는데, 그 때만 해도 내가 30대였고, 에너지도 넘쳤다. 뒤로 넘기거나 취소한 것들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거의 소화를 했다.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앞으로는 딱 1년치씩만 확정을 하려고 한다. 권수도 2~3권 정도로 좀 낮추고. 그리고 정말 쓰고 싶은 책만 쓰기로.

50이 넘어가니까, 이제 돈도 필요없고, 명예도 필요없고, 심지어는 실속도 필요없다. 하면서 재미 없을 건 안한다. 의무감으로, 이런 것도 필요없다. 나말고도 할 사람 많다. 가벼운 것도 안 할 생각이다. 굳이 그런 것까지 내가 해야할까, 동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가끔 돈 되는 책 하자고 연락하는 분들이 있다. 고마운 얘기기는 한데, 돈 되는 책도 별로 안 하고 싶다. 지금 와서 그런 걸 하면,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이 너무 불쌍해진다. 그리고 나는 씀씀이가 워낙 작아서,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한 삶도 아니다. 적당히, 그걸로도 충분하다.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일, 그게 내가 정의한 책을 비롯해서 뭔가 만드는 일이다. 태풍을 쫓아다니는 일은 또 하고 싶은 사람들 많다. 조용한 곳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뭐가 태풍으로 자라날지 모른다. 진짜로 모르겠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 씨앗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크게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는 책 쓰면서 이게 팔릴까, 저게 팔릴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가끔은 그런 생각도 좀 한 게 사실인데, 이게 별로 재미없는 방식이다. 이게 의미있을까, 저게 의미있을까, 이게 태풍이 될까, 저게 태풍이 될까, 그렇게 상상하는 게 더 재밌는 방식이다.

하여 나는... 책을 준비하면서 돈과는 아무런 연관을 짓지 않고, 의미와 재미, 이런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진작에 이렇게 생각을 했더라면, 한 권 한 권 준비하면서 더 그 과정을 즐겼을 것 같다. 별로 그렇게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지난 10년을 참 바보처럼 살았다.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였을텐데, 팔릴지 안팔릴지, 매번 나도 가슴을 좀 졸이기는 했다.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을 하면서, 술만 처먹고, 결국 살만 쪘다. 이게 뭐냐, 애들한테 돼지 소리 듣게 생겼다.

이제부터라도 나도 과정을 좀 즐겨야겠다. 박민규가 말했다. 칠 수 있는 공만 치고, 잡을 수 있는 공만 잡고. 원래 인생이 그렇다. 열심히 하면 어려운 것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 착각이다. 괜히 힘만 들고, 살만 찐다. 그거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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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시절

책에 대한 단상 2018. 4. 13. 11:14

(나의 습작은 '생태요괴전'보다 더 기괴한 얘기들의 연속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가끔 나에게 물어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을 처음 쓴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라디오 듣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라디오 DJ가 말하는 대본 같은 것을 써보기 시작한 게 맨 처음 쓴 글이다. 별 생각 없이 써본 건데, 쓰면서 재밌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백일장 같은 데에서 상을 막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평생 시간 나면 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었다.

 

내 경우는 글을 쓰고 공부를 한 건 아니고, 글을 쓰다가 공부를 하게 된 경우다. 그래서 무슨 할 얘기가 있어서 글을 쓴다, 이건 사실 뻥이고, 글 쓸 거리를 찾아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습작을 한다. 그것도 아주 길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읽고 필사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거꾸로 했다. 책을 읽고, 그런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성질이 지랄 맞아서 그런 것 같다. 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어했던 것 같다. 진짜 지랄 맞은 성격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 이제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하여간 내가 이해한 한국 사회는, 겁나게 드럽고 아주 지랄이 끝까지 간 사회다. 나는 그 얘기를 잘 못했다. 얘기해봐야, 너만 그렇게 생각한다거나, 사회부적응자라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 얘기가 더 많아졌다. 진짜로 많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에게 죽어라고 글 쓰기를 시켰다. 그리고 자기들은 술 마시러 갔다. 나도 빨리 글을 끝내고 술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밤을 새서 글 쓰기를 마치고, 진짜로 술마셨다.

 

처음에는 기관장들만 따로 보는 글을 썼는데, 나중에는 장관만 보는 글을 쓰거나, 장관의 글을 대신 써주는 일을 했다. 좀 지나니까 대통령 보고서를 쓰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총리가 보는 보고서를 쓰는 게 일이 되었다. DJ를 먼발치 말고 직접 본 일은 없다. 어쨌든 그가 내가 쓴 글을 좋아하신다는 얘기는 건네 들었다. 대통령 보고서는 워낙 여러 사람이 관여하니까 사실 누구 글이라고 할 것도 없다. 나는 동료들하고 초안을 잡았을 뿐이고, 그 중의 일부만 내가 썼다. 한 번은 청와대에서 별 의미도 없는 보고서 하나를 나보러 가지고 오라고 했다. 지가 청와대만 청와대지, 뭘 오라가라해, 툴툴거렸지만 상사들은 군말 말고 가라고 그랬다. 용인에서 청와대까지, 그 날이 안 잊혀지는 게, 주차장이 너무 좁아서 돌아 나오다가 차 긁었다. 그 후로는 청와대 갈 때에는 다시는 차 안 가지고 간다. 겁나 툴툴 거리면ㅅ너 갔는데, 보고서랑 자료 주니까, 담당 과장이 내 얼굴 뻔히 한 번 보더니 두고 가라는 거다. 이런 된장, 지가 청와대면 청와대지, 용인에서 광화문까지 심부름을 시켜, 그냥 메일로 보내준다는데아주 나중에 건네들었다. 담당자가 글 쓴 사람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했다고. 어쨌든 그 시절의 그 사건이 큰 사건이기는 했다. 그 후로 대통령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탄성치 개념을 알고 싶어하고 그걸 이해한 유일한 사람은 DJ였을 것 같다.

 

그럼 그 시절에 내가 글을 잘 썼느냐? 나중에 그 시절처럼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 몇 년을 고생을 했다. 이런 된장, 뭘 좀 써 보려니까 영 보고서체 아니면 찍땡체다. 뭐야 이거? ‘오염된 글이라는 표현을 쓰면, 그 시절에 내 글이 오염되어 있었다. 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그야말로 뭔소리인지만 알겠지, 아무 감흥이 없는 글들을 쓰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스케치를 하는데, 내 글은 스케치로 끝이 난다. 공식 보고서 치고는 그래도 여운이 있는 글이기는 한데, 진짜 바짝 메말라 습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글을 쓰고 있었다.

 

2003년 여름부터 새로 습작을 시작했다. 워낙 무식하게 살아온 인생이라서, 습작도 단순 무식했다. 하루에 A4 10. 딱 그 기준에 맞추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필명이 비나리였다. 주제를 바꾸어가면서 A4 3~4장 정도 되는 글을 매일 발표했고, 그것 말고도 발표 안 하는 글을 1~2개 정도 썼다. 그 습작 기간이 그 후 10년 정도 되는 책들의 원형들이 만들어지는 시기였다. 그 글들을 그냥 자기들이 실을 수 있게 해달라고 브레이크 뉴스와 대자보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가난했다. 오후 3시에 만났는데, 아무래도 소주라도 한 잔 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골을 시켰던 것 같고, 나는 소주 한 병 정도 마셨던 것 같다. 같이 온 사람 중에 유달리 기뻐하며 소주 두 병을 마신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변희재였다. , 사람 인생 모른다. 그가 태극기 앞에 저렇게 서있을 줄, 나는 진짜 몰랐다.

 

그 습작기가 1년 정도 간 것 같다. 물론 그 뒤에도 습작 연습은 계속 했고, 아직도 하는 중이다. 2004년 여름에는 책 계약을 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에 두 권의 책을 냈다. 블로그는 책을 내고 나서 열었다. 지금도 나는 습작을 계속 한다. 아직도 나는 어딘가 있는 것, 어쩐지 본 것 같은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뭐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같은 것을 계속해서는 내가 견딜 수가 없다.

 

그 시절의 몸부림이 극한까지 간 책이 <생태요괴전>이다. 생태경제학을 요괴와 흡혈귀 은유를 가지고 쓴 책은 없다. 내가 아는 것을 다 녹여낸다는 마음으로 썼다. 좀 팔렸다. 그렇지만 이 책이 그 후 10년의 내 삶을 결정하는 책이 될 줄은, 그 때는 몰랐다. 이 책을 본 사람들이, 쟤는 영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그 후에 시나리오를 정말로 직업으로 쓰거나 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그와는 별도로 영화제에도 초청받아서 가게 되었다. 나중에 내 삶을 돌아보면, 결국 내가 먹고 사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준 책으로 이 책이 기억날 것 같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88만원 세대>로 받은 인세는 청년단체나 시민단체에 기부할 생각이다. 그 생각은 진작에 했는데, 아이들이 연거푸 태어나면서 아직도 실행을그래도 꼭 할 거다. 그것도 내 양심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 삶의 대부분은 혼자 앉아서 몸부림을 치면서 만들었던 습작들에 있다. 내 습작들은 기괴한 상상, 끔찍한 환상 혹은 전혀 구조화되지 않은 단편,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도 나는 몸부림을 친다. 같은 것을 또 하거나, 익숙한 것을 다시 하지 않는 것, 그게 내 습작의 원칙이다.

 

내년에 낼 책 중에 농업경제학이 있다. 생태요괴전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을 했는데,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있는. 이제 겨우 한 것은, 일정을 잡은 것이다.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이건 편지글로 해야겠다는 정도다. 아빠와 아들의 대화는 이미 쟝 지글러가 <세상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에서 했다. 편지글 습작은 꽤 전에 한 적이 있다. 이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딸을 설정하고 아빠가 편지보내는 것이었는데, 된장딸은 결국 태어나지 않았다.

 

아직 정확히 아이의 나이를 정하지는 않았는데, 대학교 1학년 정도로 할까 싶다. 내가 사랑하는 둘째가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아빠가 농업에 대해서 해주는 편지들, 그런 정도로. 진짜 나도, 몸부림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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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기자한테 전화와서 통화하다가, 애 키우는 얘기가 나왔다. 큰 애 보는 아빠 중에서는 최고령일 거라고. 나는 오랫동안 최연소에 익숙해 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최고령 기록들을 세우기 시작한다. 나이가 뭔 의미가 있겠냐, 그냥 할 일 없으니까 잠시 웃자고 하는 얘기들이지. 내가 하는 일들을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40대에는 그러지를 못했다. 좀 더 나은 게 있는데 사정상 이렇게 밀려 있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들의 어깨 싸움, 거기에서 한 발, 아니 여러 발 비껴 서 있다. 이제는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멍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지니까. 또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냥 하루하루, 삶을 보낼 뿐이다. 거기에 좋은 것, 나쁜 것, 그런 건 없다. 산다는 건, 거기서 거기다. 거기에 의미를 찾고, 즐길 것인가, 아닌가, 그런 차이만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아내 출근하고,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멍하고 잠시 있는다. 그래도 밀린 일들이 있다. 다시 컴을 켜고, 뭔가를 한다. 이렇게 살면 억울하지 않느냐고, 가끔 전화해서 염장질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 나이에 귀향 갔던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느냐, 웃으면서 말한다. 남자들은 너무 높은 곳을 보고 살도록 훈련 받는다. 자기도 불행하고, 주변도 불행하다.

우리는 생활을 음미하는 훈련을 너무 못받았다. 내가 만난 유럽 사람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은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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