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일정을 못 잡고 헤매던 농업 경제학이 내년 초로 출간 일정을 잡았다. 3월에 맞춰 낼 수 있으면 제일 깔끔한데, 모르겠다. 아이 둘 보고, 다른 일도 하면서 쉬엄쉬엄 하는 거라서, 앞의 책들이 제 때 나갈 수 있을지 잘 몰라서. 그래도 나중에 미루더라도 일단은 그렇게 잡기로 출판사랑 얘기를 했다. 민음사에서 나간다.

 

제목도 정했다. '농업 경제학 2019'...

 

요즘 출판계가 진짜로 힘들다고 난리다. 내 책들도 헤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워낙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니, 나는 힘든 티도 못 낸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니까, 책 제목은 너무 딱딱하고 고루한 것만 피해서 정직하게 하는 편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정직하게 제목을 단 책들이, 초반에는 엄청나게 힘을 쓰지는 못해도 꾸준히 버티는 것 같다. 나도 점점 더 정직하고 직설적인 제목을 달게 되고, 책 내용도 기교 같은 것들을 줄이고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누가 독자가 될 것인가? 농업 경제학의 경우는, 비교적 쉽다.

 

올해는 농업경제학을 어떻게든 정리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연락 온 곳이 한살림과 몇 개의 생협이었다. 지금은 손 놓은 지 오래지만 한 때 한살림 등 생협의 기본 전략을 내가 짜던 시절이 있었다. 전설 같은 시절이었다.

 

생협에 가입할지 말지, 혹은 막 생협에 가입한 조합원들이 왜 생협이고 왜 농업인가, 그런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면, 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 이런 내용들이다. 여기에 푸드 플랜에 해당하는 내용들까지.

 

이번에 송파을에 출마하는 송기호 변호사, 자살한 수의사 박상표, 이런 사람들과 함께 농업의 최전선을 형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인으로는 강기갑 의원 정도가 같이 했다. 그 때는 농림부 장관 바뀌면 장관실에서 연락 와서 밥도 먹고 그랬다. 그 시절에 같이 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윤석원 교수였다. 그 팀이 몇 년 더 움직였으면 어쩌면 한국 농업의 양상이 지금과는 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상표는 벌써 자살했다. 윤석원 선생은 후보 시절의 MB 농업특보가 되었다. 나한테도 상의를 하셨는데, 그냥 하시라고 그랬다. 그 때 우리가 그렸던 한국 농업의 밑그림이 상당 부분 MB한테 갔다. 우리는 그 때 다 윤석원 선생이 농림부 장관 되는 줄 알았다. 결국 키위 정운천이 장관이 되었고, 촛불 집회 터지고, 기타 등등 생난리가 한 번 났다. 다 옛날 일이다.

 

그 후로도 내가 농업에서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내가 하던 많은 활동들이 뒤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처럼, 농업도 그렇게 했다.

 

그렇다고 내가 농업 경제학에서 한국 농업 운동사를 정리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이제 막 생협 조합원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알려주는 형태로 정리하려고 한다.

 

나한테는 이 책이 기념비적인 책이 될 것 같다.

 

대학원 시절, 국제자원 분야에서 석사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 때는, 분야를 학교에서 정해주었다. 올해는 이거, 내년에는 저거, 이런 식으로 논문들을 집중시켰다. 나 때에는 국제자원 쪽이었다.

 

한동안 난감해하다가 국제 쌀 시장을 잡았다. 부활절 휴가 때 집중적으로 작업을 해서, 나는 겨우겨우 날짜 맞춰 내느라고 죽는 동 사는 동 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는데, 이 논문이 평가를 엄청 잘 받았다. 진짜로 잘 받았다. 초기 시험을 잘 못 봐서 유급을 하게 될지, 겨우겨우 통과하게 될지 그냥 악전고투로 버티던 중이었다. 논문 점수가 무지막지하게 잘 나온 데다가 워낙 논문이 비중이 크니까, 전체 1등은 아니고 분과 1등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점수가, 그 친구들 표현으로, fantastic...

 

그 논문 덕분에 박사 과정 들어갈 때에는, 이름, 주소 정도 간단하게 적은 진짜 조그만 등록증 하나 적고 행정절차 끝이었다. 이게 참, 이래도 되나 싶게, 전체 1등이 박사과정에 진학을 안 하는 바람에, 박사과정에 1등으로 들어갔다. 시험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이게 뭔 1등이냐... 싶은데, 하여간 행정이 그랬다. 그래서 박사 과정 들어갈 때부터 요란버쩍지근해져서, 사실 받을 수 있는 특혜라는 특혜는 거의 다 받고 지냈다. 박사 논문도, 그냥 쓰고, 내고 싶을 때 내라고 했다. 그래서 다 쓰고 냈고, 그냥 쟤가 냈으니까 끝났겠지, 그렇게 진짜 간단하게 학위 심사가 끝났다.

 

그 출발이 쌀시장에 대한 국제 분석이었다. 내가 농업을 심각하게 고민한 첫 순간이었다. 논문 쓸 때는 고통스러웠는데, 그 결과물이 진짜로 달콤했다.

 

농업경제학은, 나한테는 양심 같은 것이다. 이거 한다고 나한테 생기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더 많이 팔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봐야 할 것, 정리해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다. 지금부터 해서, 그렇게는 책이 안 되고, 15년 정도의 경험에 기반해서 최근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라...

 

소위 진보는 농업에서는 좀 다를까?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 이게 보수 쪽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다.

 

2008년의 일이다.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이번에 한살림도 깃발 듭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는 한살림이 단체로 집회에서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첫 깃발을 든 것이 2008년 촛불집회 때의 일이다. 그 때 가슴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촛불을 든 한살림의 조합원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진심을 전달하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농업 경제학이다.

 

아쉬운 것은, 내 뒤를 이을 사람이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공들여서 쓰고 싶다.

 

부제는 아직 생각 못했다. '과일방'을 넣을 것, 그 정도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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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인터뷰 녹화가 있어서 정말로 간만에 여의도 갔다. 온 김에 친구 만나서 밥 먹고 수다를 드립다... 50대 아저씨들이 얼마나 수다쟁이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눈이 내렸다. 돌아오는 길에서 잠시 다음에 쓸 책 생각을. 생각이 잘 난다.

살면서 요즘처럼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이 얼마나 될까 싶다. 몇 년 전에 응급실로 둘째 들쳐업고 뛰어다니던 순간에는, 아이만 안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요즘 둘째는 별로 안 아프다. 먹고 살 걱정도 없다. 물론 이것저것 살 생각하면 갑자기 지갑이 좀 빠듯해지기는 하지만, 모든 중요한 결정은 전부 8월로 미루어놓아서, 당장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아이 태어나고 한동안 이래저래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이젠 그것도 지나갔다.

책 몇 권 쓰고 나니까, 요즘에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다. 2~3년 후에 하고 싶은 작업들이 조금씩 생각이 난다. 나만 이렇게 속편하게 살아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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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는 이제 일곱 살이다. 그냥 어린이집 다니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아빠를 그려왔다. 내년이면 이제 학교 가야 한다. 남은 시간이라도 더 많이 놀아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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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카메라를 들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내 카메라에 어떤 기능들이 있었는지도 희미하고, 게다가 노안이 와서 펑션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일일이 수동으로 촛점 잡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눈이 그렇게 따라가지 못해서 기계에 그냥 의존한다.

이제 나도 50이다. 내 감과 내 느낌을, 나도 잘 믿지 못하겠다.

딱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나 혼자 무작정 끌고 갈 수도 없어서 포기했다. 작가들 취향이나 일정상 맡기기가 어려워서, 검토 중인 작품 하나를 일단 펜딩시키는 결정을 한 것이 한 달 전의 일이다. 마음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 일이 많다.

그래도 40대와 비교해서 한 가지 변한 것은 있다. 이제 나는 시간이 많다. 안되면 될 때까지.

사진은 중학교 때 찍기 시작했다. 학교 사진반을 했다. 근데, 이걸 좀 열심히 했다. 너무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열심히 사진 찍었다. 집에다 암실을 만들까 막 고민을 하다가, 사진 그만 찍기로 어느 날 결정을 했다. 대학 내내 카메라 한 번도 집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내가 카메라를 두 번 사주었다. 지금 쓰는 카메라는 두 번째 히로시마 갈 때 공항에서 사 준 거다. 물론 그 뒤로 렌즈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기는 했는데, 렌즈도 전부 아내가 사주었다. 아내는 내가 찍는 사진을 좋아했다. 물론 나는 잘 나온 사진만 아내에게 보여준다. 가끔씩 삥 나간 사진 중에도 느낌 좋은 것들이 있기는 하다.

아내는 술 마실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싫어한다. 그리고 사진 찍을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카메라에 돈 쓰는 걸, 진짜로 죽기 보다 싫어한다. 기능적으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바디와 그보다 더 최소한의 렌즈를 사용한다. 그리고 성실하게 설계한다. 렌즈 2개 이상 가지고 나가는 날은 없다. 그리고 찍기로 마음 먹은 것을 찍기로 미리 설정한 화각에서 딱 찍고, 되면 다해, 아니면 그만, 바로 포기한다. 과잉이 없고, 욕심도 없다. 아내가 가끔 좀 더 찍어보라고 해도, 생각한 빛과 각이 안 나오면 그냥 포기.

술 마실 때의 내 모습은 그와 정반대다. 최대한의 량을 마신다. 그리고 이유도 없다. 술 마실 때에도 미리 설계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보다 몇 곱을 더 마신다. 그리고 포기하는 법도 없다. 그 모습을 아내는 제일 싫어한다.

필름 시절에 사진을 배워서, 지금도 최소 분량만 찍는다. 한 때 최고 성능의 연사 기능을 가졌던 바디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 장 한 장 숨죽여 누른다. 그리고 가끔 느낌이 왔다 싶을 때, 몇 장 정도 더 찍는다. 필카 시절에, 손 가는 대로 막 누르다가는, 정작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어쩔 수가 없을 수 있다.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오늘 다시 집어든 것은, 50대 에세이에 마지막으로 넣을 글과 뺄 글을 결정하기 위해서다. 짧은 열흘 사이에 넣다 뺐다 하니까, 마음 속에 맺힌 상이 다 흐트러져 버렸다. 심지어는, 이걸 내야 하는 건지, 왜 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친구가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면, 안 냈을 것 같다. 삥이 딱 맞지 않은 것 같은 상태에서 책을 낸 적은 없다. 지금처럼 삥이 왔다갔다 하면, 이걸 지금 내야 하나, 그런 생각을 며칠 동안 했다.

사진은, 찍어놓고 보면 사실 별 거 아니지만, 그 과정까지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집에서 나가기 전 렌즈 집어드는 순간, 빛이나 화각은 물론이고, 색감까지도 어느 정도는 결정을 하고 나가게 된다. 렌즈마다 약간씩 색감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설계치보다 덜 나온다. 얻어걸리는 날도 가끔 있지만, 그건 진짜 드물다.

오늘은 색감의 일관성,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나는 집중을 너무 많이 한다. 그 생각을 흐뜨러트리는 것이 내가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술 마시는 것과 사진 찍는 것과, 사실 나에게는 같은 효과다. 술 마시기 전 생각이 흐트러지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나면 그 전에 했던 생각들이 흐트러진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잠시 생각을 했다.

다른 글 여덟 개 정도를 버리고, 앞 부분에 있던, 그리고 맨 처음에 버렸던 '센치멘탈 블루스'를 다시 넣기로 했다. 제목은 중간에 썼던 '궁상주의 미학'으로. 초반에 설정치를 날려버리고 나니까, 중간에 다시 기둥을 세울 수가 없었다. 다른 기둥을 세우더라도, '센치'라는 아래 쪽 기반을 빼니까 위가 세워지지 않는다.

그 기둥을 세우고, 다른 얘기들을 흐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 카메라 견적을 이리저리 뽑아보니, 바디랑 몇 개 렌즈 합쳐서 800만원에서 천 만원 정도 들 것 같다. 아내에게 물어봤다. 벌써 몇 년 전에 사라고 한 건데, 내가 괜히 후달려서 아직 못사고 있었다. 사라고 한다. 8월에 사기로 했다. 이유는? 없다.

올 8월 전에는 중요한 결정은 하나도 안하겠다는 결정을 지난 달에 했다. 8월까지는 그냥 머리 박고, 조용히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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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몇 권의 책을 내고 가지게 된 생각을 잠시 정리해보았다.

1. 책 제목은 정직하게. 기교나 은유 같은 것을 너무 많이 쓰는 것보다는 그래도 정직하게 제목을 잡는 게 나은 것 같다. 엄청나게 팔리지는 않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편이, 진짜로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좀 더 버티는 힘을 주는 것 같다.

2. 너무 얕게 쓰지는 않는다. 최근 출간 트렌드상, 덜어내고, 슬림하게 하고, 그리고 가능하면 얕게 하는 게 유리하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렇지는 나는 그렇게는 안 하고 싶다. 그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극한이라고 할 정도로 최전선에 서 있고 싶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책을 쓰고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최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그게 늘 최전선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우리 시대의 얘기를 극한까지 끌고 가고 싶다.

책 마무리 작업하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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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대 에세이는 원래 서문을 쓸 계획이 없었다. 워낙 첫 글의 도입부가 좋았고, 정서적으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느낌이라, 좀 다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좀 고치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30대 장관, 40대 총리'에 관한 얘기가 사실상 전체 결론인데, 뒷부분에 김구 패로디를 하다 보니까 어딘가 쑤셔 넣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결론에 첨가를 하려니까 흐름이 깨질 것 같다. 어딘가 밀어 넣으면 되기는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때우는 방식으로 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이 얘기를 서문에 넣기로. 책의 결론이 앞에 나오는, 흔히 쓰지 않는 방식이 되었지만, 에세이집에 무슨 형식이. 효과만 있으면 되는 거지.

 

주위 사람들에게 서문에 들어갈 얘기를 가지고 좀 상의를 해봤는데,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가장 강조하는 형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다.

 

요즘, 청와대가 나이 너무 따진다는 조언들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그렇게까지 안 했는데, 요즘은 너무 심하다는 얘기들을 나에게 해주었다.

 

2.

책을 쓰면, 내가 변한다. 생각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진짜로 할 수 있는 한 극한까지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안 변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번 책은, 내가 가장 많이 변한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책 쓰기 시작할 때의 나랑, 지금의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인가 생각할 정도로 내가 많이 변했다. 더 가벼워졌고, 더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가슴에 담긴 무거움 같은 게 사라졌다. 진짜로, 내가 가진 것들 다 털어낸 기분이다. 탈탈 털고 나면, 가벼워진다. 더 원하는 것도 없고, 더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책 쓰기 전에는 가슴 한 구석에 뭔가 힘들고 아픔 같은 게 남아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 그런 건 없다.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그런 게 좀 선명해졌다. 정리가 끝나면 산뜻해진다. 그런 느낌이다. 이제는 좀 더 명랑해질 수 있을 것 같다.

 

3.

프랑스에서 참 인상적으로 본 게, 저녁마다 뉴스 만평처럼 해주는 인형극이었다. 기뇰, 손가락 넣고 하는 간단한 인형극이다. 여기에 별의별 놈 다 나온다. 대통령과 총리는 맨날 나와서 치고 받고, 축구 선수도 나오고, 하여간 그날 웃겼던 놈은 다 나온다. 그렇게 서로 조롱하고 웃고, 그러다 보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역시 몰리에르의 나라답다고 생각했다. 몰리에르의 연극은 귀족들을 골려 먹는 내용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귀족들이 왕에게 고자질을 했다.

 

"쟤가, 아저씨 욕한대요."

 

그래서 결국 왕이 몰리에르의 연극을 보러 갔다. 잠시 후면 몰리에르의 목이 날라갈 순간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던 왕이 너무 웃겨서 진짜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게 왕을 웃겨서 목숨을 건진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왕도 귀족들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 골려 먹은 게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귀족들도 같이 골려먹었으니까, 그도 통쾌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기편이든 상대편이든, 높든, 낮든, 마음껏 조롱하면서 같이 웃는 게 프랑스식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세계에, 우리 편 남의 편이 어딨냐. 오늘은 얘가 괜찮고, 내일은 쟤가 괜찮고. 오늘은 이놈이 웃겼고, 내일은 저놈이 웃겼고. 그런 시각으로 보면, 지금 한국에서 웃기는 사람은 딱 홍준표 하나다.

 

나는 한국이 너무 경건하다가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군바리들 시대라고 그런가 보다 했다. 그 뒤에도 너무 경건했다. 그리고 다시 더 경건해졌다. 명박이가 오고, 순실이가 오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도 너무 경건하다. 지금은 왜? 알 수 없다.

 

하여간 한국 TV에 인형극이 나오고, 거기에 대통령부터 그날의 맹활약, 그날의 큰 웃음, 그런 인형들이 너스레를 떠는 걸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너무 경건하다. 이재용 인형도 TV에 나와서, "제가 좀 바보 연기를 해서 드디어 집에 오게 되었답니다, 여러분", 요렇게 사람들도 좀 웃기는 사회적 기여라도 좀 하면 좋겠다.

 

한국은 여전히 너무 무섭고, 너무 경건하다. 잘 못 웃겼다가는 토마호크 날라올 분위기다.

 

4.

한국 코미디, 사실 코미디도 아니다. 포 떼고, 마 떼고, 상 떼고, 직진만 하는 병졸 가지고 하는 코미디가 웃길 리가 있겠나? 좀 저질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나가는 폭스 티비만도 못하다.

 

우리는 웃고, 웃기는 것을 두려워했다. 대통령 소재의 코미디, 옛날에도 무서워서 못했지만, 지금도 무서워서 못한다. , 무섭다. 우리는 웃기는 것이 무섭고, 웃는 것도 무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

 

상전을 비웃기면, 아예 가루를 만들어버리는 조선 시대의 마름 문화가 하나의 전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좀 웃고, 웃기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유머로 승화시켜야 논쟁이 부드러워진다.

 

웃는 게 무섭고, 웃기는 게 무섭다. 잘못 웃기다가 목 날아가는 수가 있다. 몰리에르 같은 천재가 다시 등장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걸 크게 웃은 왕의 기립박수로 넘어가주는 그 시대가 한 번 와야 하는 것일까?

 

줄 잘 못 서면, 너 날라가? 우리가 지금 만드는 나라는, 그런 숨막히는 나라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간신 나라 충신들이 충신 행세하는 나라가 된다. 순실이가 나라 주인 행세하던 시기가 그랬는데, 지금은 뭐 좀 많이 바뀌었을까?

 

경건 또 경건, 바뀐 게 별로 없다. 그리고 엄청들 심각하다. 그러면 일 좀 제대로? 절대 안 그렇다.

 

아주, 경건 지대로다. '시골 사또'에 관한 얘기를 사람들하고 같이 준비해보자는 얘기만 한 적이 있다. 지금 권력 상층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똑같이 카피해서, 네네, 이게 지금 얘기는 아니구요, 옛날 옛적에 어느 시골 관아에서 사또님과 함께 벌어지는 일이랍니다... 이렇게 해도 싱크로율 95% 나올 것 같다.

 

무섭다.

 

5.

나는 87년이 싫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니미럴. 요즘은 87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아주 거대한 87년 같다.

 

그 때 그 사람들을 이제는 집회가 아니라 TV에서 맨날맨날 보고, 그 때 그 톤으로 '우리의 미래' 얘기를 하는데, 문득 87년으로 돌아온 것 같은 공포가.

 

지금은 21세기다. 21세기 다웠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87년스럽다.

 

나는 이 경건함이 숨막힐 것 같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최루탄이 있어서, 왜 숨막힐 것 같은지, 설명이 쉬웠다. 논리적으로 도망가기도 쉬웠다.

 

지금 대학생이나 20대의 눈으로 한국을 한 번 보시라. 87년이나 지금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웃음의 역할이, 그 때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그렇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못 웃었다가는 죽는 수가 있는 나라다. 그래서 서로 눈치 보면서 숨죽이고 있는 것, 왜 이래야 하나 싶다.

 

에세이집을 쓰고 나서 잠시 뒤돌아보니, 도대체 우리는 뭘 바꾼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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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예전 어린이집 가보고 싶다고 해서,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들렀다 들어왔다. 좋아한다. 친구들과 이별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삶에는 이별이 많다. 근대화 이전 농업 사회보다, 지금은 이별이 더 많다. 학교 다니면서 매년 이별하고, 회사에서도 계속 이별한다. 그 때마다 늘 좋은 기억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별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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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책상 이렇게 놔줬다. 좋아한다. 참, 짠하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책상이 생겼다. 그걸 대학교 때 집 나올 때까지 썼다. 책상이란 게, 먹고 살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떤 때는 권위의 상징이라, 책상 종류와 책상 위치 때문에 어깨 싸움을 하기도 한다. 나는 몇 년째 아내가 쓰다버린 책상을 쓴다. 방 옮길 때 새 거 사준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되었다고 했다. 잠시 쓰고 말 거다. 좋은 거 필요없다. 별 이유 없는 욕심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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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쓰다 보면 팔리는 책도 있고 안 팔리는 책도 있다. 내 경우는 그 편차가 더 크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이다. 내 책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나쁜 놈에 대한 책과 불쌍한 놈에 대한 책들로 나뉘어진다. 예전에 박경철 선생이 방송에서 내 책을 추천하면서, 그래도 이 책만 '불쌍한 사람'에 대한 책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 해에 대상을 탔다. 나쁜 놈이든, 불쌍한 놈이든, 무거운 얘기인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좀 가벼운 거, 팔릴만한 거 하면 안돼?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 책을 내가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게 나빠서가 아니다. 그런 얘기 쓰고 싶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많다. 엄청나게 많다. 안 팔릴 것 같은 내용만 고르고 골라서 쓰는 것, 그게 내 일이다.

 

책을 쓰는 사람을 저자라고도 부르고 작가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는 author writer라는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10년 넘어가다 보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엎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다. 큰 차이 없다.

 

나는 책 쓰는 일을, 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업적으로 책을 쓰고 싶지도 않고, 이게 내 직업이라고 어디에 쓰고 싶지도 않다. 공식적으로도 내 직업은 책 쓰는 사람은 아니다. 내 명함에는 프로듀서라고 되어 있고, 실제로 하는 일도 그게 기본이다. 그것도 올해로 9년째, 그 일을 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책을 쓴다. 이건 형식적인 논리이고.

 

실질적으로도 책을 쓰는 건 내 직업이 아니다. 연구를 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 그건 내 일이다. 요즘은 아이들 키우느라 단체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지만, 좀 짬이 생기면 적당한 단체로 복귀해서 내 여건상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는 있다. 그런 연구나 활동의 부산물로 책이 나오는 것이지, 책을 쓰겠다고만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책에 대해서 생각하는 판매의 기준은 단순하다. 책을 쓰기 위해서 들이는 내 돈이 환수될 수 있으면 좋겠고, 출판사가 약간의 도움을 받는, 체면치레 정도다.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꼭 많이 파는 것을 목표로 책을 쓰지는 않는다. 그냥 운에 맡긴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 대부분 정말 책 안 팔릴 것 같은 주제들이다. 농업경제학 같은 것은 쓴다고 생각한지 거의 10년 만에 쓸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좀 안 팔리는 것은 괜찮은데, 너무 안 팔리는 것이 뻔할 것을 준비하기가 출판사에 미안하다. 출판사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안 괜찮다. 어차피 평생에 한 번 쓰는 것인데, 너무 민망하게 팔리면 속상해진다. 나도 사람이다. 내년 초에 농업경제학을 쓰기로 한 것은, 바뀐 것은 다른 게 아무 것도 없지만, 내가 용기가 났다는 게 바뀌었다. 여전히 무섭다. 그렇지만 용기를 냈다.

 

내가 농업 경제학 공부를 책 쓸려고 했나? 절대 아니다. 필요해서 공부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싸움이 벌어지니까 그 싸움을 한 거고. 다른 것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책 쓰는 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이 내 주전공도 아니고, 주로 하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을 계속해서 내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는데, 그래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더 좋고 더 편한 매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2.

내가 책 판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준은 매우 단순하다. 우리 집 생활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로 불러준 것에 대한 약간의 답변이다. 책으로 먹고 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다음에 이 길을 걸을 사람을 위해서 보여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계산을 해보니까, 고맙게도 지난 10년간 우리집 생활비 보다는 많이 벌었다. 나는 그것을 진짜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은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가깝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독자에 대한 생각도 일부 있다. 내 책을 사주는 사람들은 10대부터 대학생까지, 젊은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나보다 훨씬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서 읽어주는 것이, 내가 저자로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이유로 알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비싼 거 사고, 외제차 타고, 이런 거는 아직도 잘 못하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워낙 안 쓴다. 그래서 책 인세로 충분히 생활이 된다. 물론 매년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 내면 그것보다는 많이 번다. 사람들에게 눈물 나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 다루기 어려운 주제들로 간다. 이제 나는 출판사 너무 어렵게 하는 경우만 아니면, 더 어렵고, 더 안 팔릴 것 같은 얘기들을 해도 된다. 나까지 말랑말랑한 얘기하고 있고, 하나마나한 소리하면 안 될 것 같다.

 

책이라는 게 비밀이 하나 있다. 쓰는 사람이 가장 실력이 는다는 사실.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사람의 키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역시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이 키가 큰다. 책 한 권을 쓰면, 생각은 물론이고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엄청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약간이라도, 변하게 된다.

 

초기에 날 보고서 사람들이 강준만 선생을 넘을 거라는 둥, 다산보다 넘어갈 거라는 둥, 그런 얘기들을 했었다. 그 때도 그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내가 살았던 시대가 행복해지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이 쓰는지, 얼마나 좋은 책을 쓰는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나. 좋은 시대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 외에는 나는 아무 관심 없다. 거기에 기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내 삶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진짜로 행복해졌다. 나는 내 삶에 더 바라는 게 없다. 내게 남은 유일한 관심은, 내가 살았던 시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유명해질 필요도 없고, 더 인기 있을 필요도 없다. 이미 누릴 만큼 충분히 누렸다.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얼마 전부터 인사를 하시기 시작했다. 망했다. 밤 늦게 술 사던 집인데, 창피해서 이제는 술도 다른 동네 가서 사와야 할 것 같다.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시도한다.

 

3.

에세이집을 몇 년 전부터 내기 시작했다. 잘 된 책도 있고, 잘 안 된 책도 있다. 사회과학책과 굳이 구분해서 에세이집을 내는 것은, 나에게는 작동 원리가 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을 잘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어린이 백일장에서 상 타는 정도, 그렇지만 쓰기는 진짜 많이 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평생 글을 썼다. 형식 실험도 해보고, 내용 시험도 하면서 죽어라고 글을 썼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공부는 학기 중에만 했다. 방학 때는 책 읽고, 글 쓰고, 그런 것만 했다. 방학 때에도 시험 보는 공부하면, 진짜 바보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이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은 아닌데, 나는 우리 집이 아주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봐야 그걸로 먹고 사는 거 아니라는 것은 진짜 일찍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나에게 가장 큰 놀이는 글 쓰는 것이었다. 평생 그랬고, 여전히 그랬다. 그렇게 글을 많이 쓰면 글이 좀 늘까? 잘 안 는다. 냉정한 세계다.

 

어차피 쓰는 글이라서, 주제를 정하고 고민을 한 것이 에세이집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계속해서 해보려고 한다. 50대 에세이는 그런 시도 중의 하나다.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멀리 왔다. 멀리 온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멀리 온 것은 사실이다.

 

오늘 50대 에세이 에필로그의 마지막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글은, 삶을 바꾸는 글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내 삶은 바꾸었다. 나도 바꾸지 못하는 글은, 가짜 글이거나 함량 미달의 글이다. 쓴 사람의 삶과 생각도 바꾸지 못하는데, 그게 글이냐? 글자 모음이지.

 

50대 에세이는 결국 나를 위한 글이 되었다. 그래서 부제는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라고 달 생각이다. 원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니까 나는 진짜로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훈련받은 것 같다.

 

, 이제 다음 에세이집으로 넘어가야 할 때래서, 그 동안 블로그 맨 앞에 있던 '50대 에세이' 폴더는, '옛날 글들'로 옮겨질 것이다. 몇 달 동안, 이 글들을 쓰면서 진짜로 나는 행복했다. 행복이 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50, 이제야 그걸 알았냐? 지금이라도 안 게 다행이다. 평생 모르고 미움만 갖고 살다가 죽을 뻔했다.

 

폴더 하나가 닫히면, 생각의 흐름 하나가 바뀌게 된다.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죽기 보다 싫어한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매듭을 짓고, 다음 길을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나는 '50대 에세이' 폴더의 마지막 글을 쓰고, 그 폴더를 닫는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글의 주제는 아름다움이 될 것 같다. 아름다움, 51세에 찾아봄직한 주제다. 그 전에, 뱃살부터 좀 빼야겠다. 바지가 안 맞는다.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해보니까, 에세이집이 좋은 점이 있다. 삶을 조금씩이라고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아날로그 사랑법'이라는 겁나게 안 팔린 에세이집이 있다. 아마도 내 책 중에서 안 팔린 책 기록을 세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되었다.

 

내 삶을 바꾸었다. 그 이전의 내 삶과 그 이후의 내 삶이 다르다. 나는 진정으로,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진짜로 나는 책이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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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초고는 끝났다. 제목은 '달달한 50대'로 하기로 했다. 경합 중인 부제목이 '개수작과의 결별', '우리는 이제 21세기로 간다' 그리고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 요렇게 세 개가 있다. 셋 다 의미있는 부제이기는 하다. 감정적으로는 개수작과의 결별이 맞다. 논리적으르는 21세기로 간다가 맞고, 또 정직하다. 그렇지만 여운은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가 길다. 크게 잘 팔린 책은 아니지만 '아날로그 사랑법'이 중간에 있던 포토 에세이집이다. 거기에서 다시 이어가는 데에도 사랑 얘기가 더 나은 것 같고. 이 세 가지를 놓고 마지막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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