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일정을 못 잡고 헤매던 농업 경제학이 내년 초로 출간 일정을 잡았다. 3월에 맞춰 낼 수 있으면 제일 깔끔한데, 모르겠다. 아이 둘 보고, 다른 일도 하면서 쉬엄쉬엄 하는 거라서, 앞의 책들이 제 때 나갈 수 있을지 잘 몰라서. 그래도 나중에 미루더라도 일단은 그렇게 잡기로 출판사랑 얘기를 했다. 민음사에서 나간다.

 

제목도 정했다. '농업 경제학 2019'...

 

요즘 출판계가 진짜로 힘들다고 난리다. 내 책들도 헤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워낙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니, 나는 힘든 티도 못 낸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니까, 책 제목은 너무 딱딱하고 고루한 것만 피해서 정직하게 하는 편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정직하게 제목을 단 책들이, 초반에는 엄청나게 힘을 쓰지는 못해도 꾸준히 버티는 것 같다. 나도 점점 더 정직하고 직설적인 제목을 달게 되고, 책 내용도 기교 같은 것들을 줄이고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누가 독자가 될 것인가? 농업 경제학의 경우는, 비교적 쉽다.

 

올해는 농업경제학을 어떻게든 정리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연락 온 곳이 한살림과 몇 개의 생협이었다. 지금은 손 놓은 지 오래지만 한 때 한살림 등 생협의 기본 전략을 내가 짜던 시절이 있었다. 전설 같은 시절이었다.

 

생협에 가입할지 말지, 혹은 막 생협에 가입한 조합원들이 왜 생협이고 왜 농업인가, 그런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면, 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 이런 내용들이다. 여기에 푸드 플랜에 해당하는 내용들까지.

 

이번에 송파을에 출마하는 송기호 변호사, 자살한 수의사 박상표, 이런 사람들과 함께 농업의 최전선을 형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인으로는 강기갑 의원 정도가 같이 했다. 그 때는 농림부 장관 바뀌면 장관실에서 연락 와서 밥도 먹고 그랬다. 그 시절에 같이 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윤석원 교수였다. 그 팀이 몇 년 더 움직였으면 어쩌면 한국 농업의 양상이 지금과는 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상표는 벌써 자살했다. 윤석원 선생은 후보 시절의 MB 농업특보가 되었다. 나한테도 상의를 하셨는데, 그냥 하시라고 그랬다. 그 때 우리가 그렸던 한국 농업의 밑그림이 상당 부분 MB한테 갔다. 우리는 그 때 다 윤석원 선생이 농림부 장관 되는 줄 알았다. 결국 키위 정운천이 장관이 되었고, 촛불 집회 터지고, 기타 등등 생난리가 한 번 났다. 다 옛날 일이다.

 

그 후로도 내가 농업에서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내가 하던 많은 활동들이 뒤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처럼, 농업도 그렇게 했다.

 

그렇다고 내가 농업 경제학에서 한국 농업 운동사를 정리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이제 막 생협 조합원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알려주는 형태로 정리하려고 한다.

 

나한테는 이 책이 기념비적인 책이 될 것 같다.

 

대학원 시절, 국제자원 분야에서 석사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 때는, 분야를 학교에서 정해주었다. 올해는 이거, 내년에는 저거, 이런 식으로 논문들을 집중시켰다. 나 때에는 국제자원 쪽이었다.

 

한동안 난감해하다가 국제 쌀 시장을 잡았다. 부활절 휴가 때 집중적으로 작업을 해서, 나는 겨우겨우 날짜 맞춰 내느라고 죽는 동 사는 동 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는데, 이 논문이 평가를 엄청 잘 받았다. 진짜로 잘 받았다. 초기 시험을 잘 못 봐서 유급을 하게 될지, 겨우겨우 통과하게 될지 그냥 악전고투로 버티던 중이었다. 논문 점수가 무지막지하게 잘 나온 데다가 워낙 논문이 비중이 크니까, 전체 1등은 아니고 분과 1등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점수가, 그 친구들 표현으로, fantastic...

 

그 논문 덕분에 박사 과정 들어갈 때에는, 이름, 주소 정도 간단하게 적은 진짜 조그만 등록증 하나 적고 행정절차 끝이었다. 이게 참, 이래도 되나 싶게, 전체 1등이 박사과정에 진학을 안 하는 바람에, 박사과정에 1등으로 들어갔다. 시험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이게 뭔 1등이냐... 싶은데, 하여간 행정이 그랬다. 그래서 박사 과정 들어갈 때부터 요란버쩍지근해져서, 사실 받을 수 있는 특혜라는 특혜는 거의 다 받고 지냈다. 박사 논문도, 그냥 쓰고, 내고 싶을 때 내라고 했다. 그래서 다 쓰고 냈고, 그냥 쟤가 냈으니까 끝났겠지, 그렇게 진짜 간단하게 학위 심사가 끝났다.

 

그 출발이 쌀시장에 대한 국제 분석이었다. 내가 농업을 심각하게 고민한 첫 순간이었다. 논문 쓸 때는 고통스러웠는데, 그 결과물이 진짜로 달콤했다.

 

농업경제학은, 나한테는 양심 같은 것이다. 이거 한다고 나한테 생기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더 많이 팔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봐야 할 것, 정리해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다. 지금부터 해서, 그렇게는 책이 안 되고, 15년 정도의 경험에 기반해서 최근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라...

 

소위 진보는 농업에서는 좀 다를까?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 이게 보수 쪽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다.

 

2008년의 일이다.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이번에 한살림도 깃발 듭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는 한살림이 단체로 집회에서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첫 깃발을 든 것이 2008년 촛불집회 때의 일이다. 그 때 가슴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촛불을 든 한살림의 조합원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진심을 전달하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농업 경제학이다.

 

아쉬운 것은, 내 뒤를 이을 사람이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공들여서 쓰고 싶다.

 

부제는 아직 생각 못했다. '과일방'을 넣을 것, 그 정도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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