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출간 일정이 거의 확정된 것 같다. 예전에는 3년치씩 미리 확정을 지었는데, 그 때만 해도 내가 30대였고, 에너지도 넘쳤다. 뒤로 넘기거나 취소한 것들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거의 소화를 했다.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앞으로는 딱 1년치씩만 확정을 하려고 한다. 권수도 2~3권 정도로 좀 낮추고. 그리고 정말 쓰고 싶은 책만 쓰기로.

50이 넘어가니까, 이제 돈도 필요없고, 명예도 필요없고, 심지어는 실속도 필요없다. 하면서 재미 없을 건 안한다. 의무감으로, 이런 것도 필요없다. 나말고도 할 사람 많다. 가벼운 것도 안 할 생각이다. 굳이 그런 것까지 내가 해야할까, 동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가끔 돈 되는 책 하자고 연락하는 분들이 있다. 고마운 얘기기는 한데, 돈 되는 책도 별로 안 하고 싶다. 지금 와서 그런 걸 하면,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이 너무 불쌍해진다. 그리고 나는 씀씀이가 워낙 작아서,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한 삶도 아니다. 적당히, 그걸로도 충분하다.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일, 그게 내가 정의한 책을 비롯해서 뭔가 만드는 일이다. 태풍을 쫓아다니는 일은 또 하고 싶은 사람들 많다. 조용한 곳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뭐가 태풍으로 자라날지 모른다. 진짜로 모르겠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 씨앗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크게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는 책 쓰면서 이게 팔릴까, 저게 팔릴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가끔은 그런 생각도 좀 한 게 사실인데, 이게 별로 재미없는 방식이다. 이게 의미있을까, 저게 의미있을까, 이게 태풍이 될까, 저게 태풍이 될까, 그렇게 상상하는 게 더 재밌는 방식이다.

하여 나는... 책을 준비하면서 돈과는 아무런 연관을 짓지 않고, 의미와 재미, 이런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진작에 이렇게 생각을 했더라면, 한 권 한 권 준비하면서 더 그 과정을 즐겼을 것 같다. 별로 그렇게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지난 10년을 참 바보처럼 살았다.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였을텐데, 팔릴지 안팔릴지, 매번 나도 가슴을 좀 졸이기는 했다.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을 하면서, 술만 처먹고, 결국 살만 쪘다. 이게 뭐냐, 애들한테 돼지 소리 듣게 생겼다.

이제부터라도 나도 과정을 좀 즐겨야겠다. 박민규가 말했다. 칠 수 있는 공만 치고, 잡을 수 있는 공만 잡고. 원래 인생이 그렇다. 열심히 하면 어려운 것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 착각이다. 괜히 힘만 들고, 살만 찐다. 그거 아닌 것 같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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