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이라는 사람이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라는 책을 썼다. 이 책 얘기 전에, 나와 이계안의 관계를 밝히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가끔 얘기하는데, 우석훈이라는 인생은 이계안과 오영호 작품이라는 사실. 이계안은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던 그 이계안을 얘기하고, 오영호는 지금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인 그 오영호를 말한다. 내가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 일하는 법 심지어는 숨쉬는 법까지, 이 두 사람한테 배운 셈이고, 취향과 감성 혹은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까지 상당 부분을 이 두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우석훈이라는 인생을 키운 것은 좌파는 결코 아니고, 우파 중의 우파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당신은 커서 자랑스러운 우파의 기수가 되라고, 그야말로 공들여서 한국의 우파로 키워놨더니...
아, 미안해요, 아시다시피 전 원래 빨갱이쟎아요?
이렇게 된 셈이다.
오영호와의 관계부터 얘기하자. 오영호는 전형적인 관료이고, 관료 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내가 총리실에서 일하게 된 것 그리고 청와대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한국 사회의 이곳저곳에 일종의 기획자로서 관여하게 된 것은 국장 시절의 오영호의 보좌관으로서 일했던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작동하고, 관료 조직이 어떤 곳이고, 또 그 안에서 정말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장치가 어떤 것인지, 구석구석 나를 안내하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것은 오영호 국장이었다. 그는 나를 전문협상가로 키우고 싶어했고, 국내 산업정책과 통상 협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전문가로 양성하고 싶어했다. 살면서 먹고 사는 데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는데, 몇 년 전 정말로 통장에 10만원 밖에 남지 않아서 대략 난감하던 위기에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리 집에 쌀을 보내준 사람이 오영호였다. <88만원 세대>를 한참 쓰고 있던 시절, 나는 정말로 도니가 매말라붙은 상태였는데, 그 때 딱 한 번 오영호의 후원을 받아서 살림을 꾸려나갔던 시절이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은 것은 딱 한 번, 오영호로부터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러면 교수라도 하라고 그랬을 때... 남 도움은 안 받는다고 거절했다.
나는 자존심이 강해서 남의 도움은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오영호에게는 한 번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그를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그 고마움은 잊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계안은...
나를 사회로 끌어낸 사람이다.
96년도 가을학기에 연세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앞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시간을 떼우던 시절이 있었다. 전부 얘기하면 긴 스토리이지만, 간략하면, 이계안이 현대환경연구원이라는 조그만 조직을 현대그룹 내에 만들었고, 시간강사에서 공채 박사 1호로 현대그룹에 들어가면서 나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공무원 사회라면 있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계안 전무시절이었고, 나는 과장시절이었는데, 1년 정도 지난 다음에 나는 이계안에게 직접 지시를 받고 움직이게 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 일을 시키던 사람은 공식 조직과는 별도로,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원장, 상무,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기타 등등 사장, 그런 몇 사람이 있었다. 왕회장에게 직접 지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에게 일을 시킨 사람들은 상당수 왕회장 지시라고 하면서 일을 시켰다.
현대 시절은 즐거움과 슬픔이 동시에 있던 시절이었는데, 이계안과 일을 하던 것은 즐거움에 속한 것이었고, 학계의 동료들과의 관계는 슬픔에 속한 것들이었다.
아마 IMF 경제위기가 없었다면 훨씬 더 즐거운 시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에서 나도 종합기획실의 약자였던 종기실의 지시를 받아, 이것저것 구조조정 작업에 같이 참여하면서 정말 못할 일도 많이 했다. 짜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 작업에 나도 참여를 했었다.
나중에 이계안은 현대자동차 CEO로 갔는데, 그 당시 나에게 그룹이 제시한 것은 3가지 선택이었다.
이계안을 따라 현대자동차로 가는 것, 현대건설 기획실로 옮기는 것, 그 두 가지 전부 싫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선택이 지금은 현정은이 끌고가고 있는 대북기획단으로 옮기는 것.
그들은 연구원을 계속 둘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괴로운 시기였는데, 마침 정부기관에서 특채를 해주는 덕분에,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사람들이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공기업 팀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게 대체적으로 내가 "너무 오래 회사에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사직서를 낼 때까지 살아온 인생의 경로이다.
가끔 요즘 대학생들과 격의없는 얘기를 할 때...
삼성 과장이 되는 삶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아마 지금 대학생이 평생을 회사에서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있던 위치까지 진급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개별적 조언을 해주기가 어렵지만, 지금이 어렵더라도 삼성 과정말고도 재밌는 삶이 한국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실험은 몇 명이 학생들과 지금도 계속해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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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은 여러가지로 재밌는 사람이다. 물론 옛날 사람이라서 좀 답답하기도 하고, 여전히 왕자병 중증이기도 하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왕자병 중증들이기는 한데, 지독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이계안에게도 그런 왕자병이 있다.
게다가 완전 교수님이다... 나한테도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옛날부터 그랬다. 계동 현대본사에서 지나가는 길에 마주치면 점심이나 먹자고, 도시락 하나 사주면서 전날 청와대 사람들과 싸우면서 울화통이 터진 얘기 등등, 대단한 강의를 하고 나야 직성이 풀리는.
지금도 생각하면 이계안한테 정말 고마웠던 한 가지가 있다.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에서 나는 현대그룹 과장이라는 신분과는 별도로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재발개혁을 담당하는 연구위원이기도 했는데, 그 때 나는 현대그룹을 담당하고 있었다. 박변이라고 우리가 불렀던 박원순 변호사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고, 장하성 교수가 막 소액주주 운동을 하면서 유명해지던 시절, 그 때의 연구그룹에 나도 끼어있었다. 환경운동연합과 일을 하기 전에 나는 참여연대와 먼저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참여사회연구소도 운영비가 부족했었는데, 조정래 선생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팔아서 연구비를 대주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서, 어지간해서 조정래 선생에게 비판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도 한 번은 더 생각해보게 되기는 한다.
하여간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누군가 일러주었고, 그게 종합기획실 실장인 이계안에까지 갔다. 그래서 종기실장실로 불려갔다.
나는 퇴직을 각오하고 있었다.
한 10분 정도 얘기했던 것 같다.
누가 하더라도 할텐데, 그래도 니가 담당하는 게 낫겠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계안이 참여연대 후원회원인가 아니면 회원인가, 하여간 자신도 참여하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고 그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학회 발표만 하고, 게을러서 등재를 안했던 논문 중의 하나인 YS 시절의 산업정책 비판이라는 논문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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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이계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좌파 쪽으로 훨씬 더 많이 와 있었다. 자연스럽게 토론을 하거나 논의할 기회가 많아졌고, 만날 일도 많아졌다.
이계안은 지난 1년 동안 보스톤의 하버드에 연구원으로 가 있었다. 그 동안에 부쩍 생각이 늘어났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아졌다.
후일담이지만, 이계안이 있던 연구 프로그램이 나쁘지는 않은 것이라서, 그 후속 자리로 나를 추천해주었었다. 아마 진중권이 별 이유없이 학교에서 밀려나는 일과 같은 일련의 일만 벌어지지 않았으면, 나도 올 가을에는 그냥 보스톤에서 띵가띵가 놀면서 한국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좀 멀리서 바라보는 척만 하면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아내와 쉬면서 그렇게 지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사건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것이라서, 보스톤행을 포기하고, 명박 시대, 내가 문제를 풀지는 못하더라도 고통받는 사람들과 한 가운데에서 같이 고통을 받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라는 책은, 내가 이계안에게 써보라고 한 책이다. 물론 책 구성이나 문장에 대해서 내가 관여한 바는 없고, 제목에 대해서도 '칼레의 시민'은 표절이니까 패로디 형태로 구성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준 것이 다이다.
보나마나 재미없는 얘기들을 잔뜩 늘어놓았을 것이 뻔해서 중간에 원고를 잘 안 봤는데, 출간되고 보니, 생각보다는 재밌는 얘기들도 많고, 그동안 무슨 고민을 했었는지, 약간 개선되기는 한 것 같다. 천하의 이계안의 글이 도대체 왜 이 모양이야라는 생각만 하지 않고 보면, 전직 CEO치고는 그런대로 읽을 만한 책이다.
내가 정말로 이계안을 위해서 준비해 준 프로그램은, 어쩌면 이 책과 쌍둥이 책이 될지도 모르는 인터뷰집이다. 인터뷰집으로 할지, 대담집으로 할지, 아니면 주제를 정하고 찬반 격론의 형태로 할지 고민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인터뷰집으로 결정된 책이 있다.
(원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돌고 돌아 결국 내 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칼레의 시민은 이계안이 자신을 드러내서 보인 책이고, 내가 만드는 책은 우석훈이 한국 독자들에게 이계안을 드러내기 위한 책, 그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같은 사람의 두 면을 보이게 되는 셈이다.
지난 2달 동안 매주 두 번씩 한나절 동안이나 이계안을 만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많이 끌어냈다. 이 책은, 아직 내 손에서 주무르고 있는 중이고, 인터뷰 작업도 아직 한 번이 더 남기는 했는데, 메카톤급 비밀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원래는 이계안의 인생을 사는 팁을 모티브로 해서, 한국 우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들이라는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현대 그룹의 비사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정보집으로서도 꽤 재밌는 얘기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출간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수위를 조절할 것인지, 나에게도 어려운 질문이기는 한데, 예를 들면 명박의 도곡동 땅에 대하여 이계안이 이해하고 있는 진실... 이런 것들이 있다.
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경제라인이 최강라인이라고 불렀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하여간 그 뒤의 숨겨진 얘기들... (그러나 보좌진들이, 이 얘기는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한 얘기라서, 조금 수위를 낮추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나도 그럴 생각이기는 하다. 그러나 진실... 그 진실은 때때로 너무 잔인한 것이다.)
<이계안, 돈을 말하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인터뷰집은 아마 1월말 정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진기한 경험을 하기는 했는데, 한국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밤에는 그걸 원고로 쓰고, 나는 인터뷰에서 "그딴 두리뭉실한 얘기로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저잣거리의 용어로 얘기하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라고 욱박지르면서.
나중에 인터뷰집이 나오게 되면, CEO의 젊잖은 표현으로 두루뭉실하게 표현된 것들이, 내 책에서는 어떻게 직설법으로 바뀌었는지, 그걸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기는 할 것 같다.
그외에 경제정책에 관해서만 그의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전문가 그룹과 내는, 약간은 딱딱하고 기술적인 분석이 주로 되는 그런 책이 한 권 더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해서 3권이 나름대로는 '이계안 3부작'인 셈이다.
이계안 주변에서 기술적 자문을 해주는 학자 중에서 아마 일반인이 이름들어도 알만한 사람이 나하고 최재천 선생이 있을 것이다. 최재천 선생하고 내가 이렇게 자주 볼 일이 있을지는 올해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했던 경제 콜로키움에 최재천 선생을 초청하면서도 그와 이렇게 자주 볼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보고, 그야말로 인연이 있는 사람이 또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해 마흔 한살이 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 내가 후원하는 정치인들의 리스트도 싹 정리를 해서, 정말로 탈토건이라는 정치에 걸맞는 사람들만 도움을 주기로 확 좁혔다.
노회찬, 심상정, 이계안, 천정배, 이 네 사람이 그동안 살았던 인생의 도리상 도와주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을이고, 다음 단계의 정치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초록정치연대의 정책실장이었던 내가 녹색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노회찬을 위해서는 별도로 두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정배와는 올해 공저로 만화책 한 권을 같이 쓰자고 했었는데, 미디어법 사태가 터지고 나나 천정배나 몹시 바빠지면서, 당분간은 뭔가 돕기가 쉽지 않다.
심상정은 도와주고는 싶은데, 적절하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아직도 잘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계안은, 책 한권을 내는데 자문을 해주고, 인터뷰집 한 권을 만들어주는 걸로 일단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갚은 셈이다.
노회찬도 인터뷰집에 대한 부탁이 있었는데, 이계안 쪽이 먼저였고, 그래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못했다.
<칼레의 시민>이라는 책을 내가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가 끝나고 다시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간 것은, 그 원고를 미리 못 읽어서가 아니라 가끔은 아주 시간을 많이 들여서 곰곰히 읽어보고 싶은 책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과 <이계안, 돈을 말하다>라는 인터뷰집을 두 권의 하이퍼링크된 텍스트로 만들어보는 실험, 이것도 약간은 진기한 실험이기는 하다.
칼레의 시민은, 나에게는 지금의 삶과 예전에 현대그룹 과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삶이 오버랩되면서 나에게도 "나는 누군인가?"라는 질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여간 이계안, 정치는 지독하게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날탕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왜 내가 그가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도 전혀 몰랐던 젊은 날의 비사들, 그게 요즘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나의 기준처럼 제시될 수 있는지, 내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