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요즘 신드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짜 잘 팔리는 책이다.
내가 확인해본 바로는, 한 달 남짓한 시기에 5만부 가량 팔렸으니, 와... 그야말로 신드롬이다.
한국에는 그런 책이 별로 없었는데, 정상적인 시민이라면, 이 정도 책은 읽어줘야...
아무리 생각해도 '명박 현상'과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강의로 생각하면 재밌는 강의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사람들이 재밌게 읽는 책과는 좀 결이 다른데, 신드롬이 아닐 수 없다.
하버드 대학이라는 이름 탓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버드 대학의 교수들이 쓴 딱딱한 다른 책들은 다 그냥 처 박힌다.
마케팅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마케팅으로도 책을 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건 그 한계 바깥의 일이니까, 신드롬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2.
'정의'라는 단어를 나도 한 번도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정의를 중심에 놓고 분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이클 샌델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롤스에 대해서 다른 식으로 반박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나의 독서는 롤스에서 끝났고, 그의 맥스민 원칙을 이해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보통 '정의'라는 질문은, 우파들의 질문이고, 또한 지극히 미국식 질문이기도 한 셈이다.
물론 just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유래한 개념은 나도 종종 쓰고, 무엇보다도 <자본론> 1권의 1장 1절이 이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justice라고 이름을 붙이면, 약간 맥락이 복잡해진다.
3.
그러나 이런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읽더라도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정치철학 수업은, 나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 정치철학에서는 이렇게 수업을 하고, 필자들을 이렇게 나열하는구나...
4.
읽으면서 매리 더글라스의 "How institutions think?"라는 책이 떠올랐다. 제도학파 혹은 인지심리학적 제도학파의 한 길을 열게 만든 계기가 된 인류학 책인데, 박사 후반기에 그 책을 읽으면서 뭔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질문에 대답해보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 시절의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약간 다른 사례이지만, 조난자들이 동료를 잡아먹는 사례가, 이 책에도 같이 나와있다. 매번, 머리를 터지게 만드는 종류의 질문이다.
지난 겨울, 호주에 갔다가 <Rabbit-Proof Fence>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실화였고, aborigin이라고 부르는 문제에 대해서,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던... 나는 그 때 이렇게 정부에 의한 원주민 납치 사례가 오랫동안 공공연히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 그 문제가 영미권에서는 종종 논쟁 거리가 되었었군...
기타 재밌고 생각해볼 사례들이 꽤 있다.
5.
남들 다 읽는 책이 하나 등장하면, 기분 나빠서 안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대개는 그런 경우이고, 뭔가 유행할 때 괜히 심통이 나서 안 읽을 때가 많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최소한 한국에서는, 남들 다 읽는 책이 된 셈이지만, 이 책은 읽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누구에게나.
칸트를 읽은 적이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 사람, 존 스튜아트 밀을 읽을려고만 했는데 정작 읽지는 못했던 사람, 그리고 롤스는 교과서에서 정식화된 설명만 보고 정작 롤스를 읽지는 못했던 사람,
만약 지금 그렇다면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죽을 때까지 이런 책을 손에 잡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럴 때에는, 학부 수준의 강의를 재구성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약간 고급스러운 논란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명박 시대라는 이 정국에서, 정의는 정말 최소한의 질문이지만, 그 최소한의 질문도 황당하게 전개되는 이 상황에서,
봐, 하버드에서도 이런 고민하쟎아, 그렇게 기준을 세우기에는 딱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