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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5.17 유시민... 19
  3. 2009.05.10 김규항, <예수전> 24

나는 니체를 불어로 읽었다. 물론... 일부는 불어 공부 삼아서 읽은 것이고, 몇 권은 사 놓고 들쳐보다가 다 못 읽은 것도 많다.

 

아마 내 독서 역사에서 어른이 된 후 가장 재밌게, 그리고 가장 충격적으로 혹은 가장 몰두해서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니체의 Aurore, 서광이라는 책을 꼽아야 할 것 같다. 프랑스에 가서 불어 공부하다가 아마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90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참 열심히 읽고 충격도 많이 받았다.

 

왜 이 서광이라는 책을 읽었나... 이유는, 니체칸에 꼽혀있던 책 중에서 가장 쌌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얇았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언젠가 꼭 한 번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아직도 못 읽은 책... gai savoir, 우리 말로는 아마 '즐거운 지식'이라고 번역되었나?

 

gaite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는데, 아마 게떼 정도 발음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게이라는 말이 나는 20대 때부터 그렇게 좋았다. 이유는 없다. 게이, 게떼 등으로 활용되는 그 이미지가 그렇게 좋았고, 내가 생각하는 명랑이라는 단어는 한 편으로는 이 게이라는 말과 연동되어 있다. 기계적인 이미지를 조금은 가지고 있는 유머와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그러나 Aurore라는 책은, 아주 우울한 책이다. 바울 서신에 대한 체계에 대해서 아주 불만을 가지고 있던 니체 얘기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얼마나 우리가 속고 살아가는가... 맥락만 가지고 오면, 지금 명박 시대의 우리 얘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클라이막스를 지나 한풀 꺾이는 듯 싶다. 이 시대가 오기는 올 것 같다고 몇 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 시기가 오니까 아직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모르던 시절, 그 때 읽은 책들이 다시 기억나기도 하고, 잘 생각하보면 막상 이 시기에 뭘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 때는 나도,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뭔가 읽는 것 자체가 좋아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의 열망이나 열정 같은 것들을, aurore나 gai savoir 같은 단어를 접하면서 다시 생각해냈다.

 

뜻도 잘 모르면서 aurore를 읽던 시기, 꼭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가 간절했다.

 

(그러나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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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독서감상문 2009. 5. 17. 03:00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 감상문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리 봐도 가엾은 사나이라서 도대체 요즘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살펴보고 싶어서 책을 들기는 했는데, 어지간해서 책이 진도가 안 나간다. (아직 다 못 읽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하기는 하는데, 조선일보 식의 쌩까는 건 그렇게 좋은 자세가 아닌 것 같아서, 어쨌든 비판을 하더라도 읽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읽기는 하는데, 우와, 전혀 진도가 안 나간다.

 

잠깐 이 불쌍한 사내를 위해서 살짝 눈물을 흘렸다.

 

다음 달이 되면, 나도 약간 시간적 여유가 나서, 좀 꼼꼼히 읽어볼 수 있을 시간이 날 것 같다.

 

(참고로, 김규항의 예수전은 몇 시간 안 걸려서 다 읽었다. 그는 크리스탈처럼 맑고 투명한 사람이다. 이와 비교하면, 유시민은 진흙탕 같다. 너무 어려운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것일까? 그의 글에는 함정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읽히지가 않는다.)

 

하여간 다 읽고 할 얘기지만... 유시민, 안됐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한 때는 민주주의의 맨 앞에 섰던 사나이다.

 

그도 언젠가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데, 도통 페이지가 나가지가 않는다. 책이, 온통 지뢰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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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에 관해서 내가 직접 언급하는 일은 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침례를 받은 교인이었던 적이 있었다. 교회 다니기를 그만둔 것은, 내 주변의 교회쟁이들이 나의 삶을 너무 피폐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아주 괴로워졌고, 교회를 그만두면서 나는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았다.

 

가끔 나는 대인기피증의 증상으로 괴로워하기는 하는데, 이 대인기피증을 나에게 심어준 사람들이 바로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교회를 다니던 시절, 나는 늘 자살의 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살다보면 자신을 지키는 지혜가 조금은 생기는 법, 난 교회쟁이들을 시작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끊었다.

 

교회에 대해서 누군가 물어보거나, 기독교에 대해서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답변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정색을 하고 더 물어보면...

 

일요일날 쉬어야 하는데, 교회까지 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안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위를 받고 나서, 신학대학원 같은 데에 다시 가서 공부를 좀 더 해볼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제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다. 그래도 종교 현상에 대해서 종종 관심을 갖기는 한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불교에 관심을 갖고, 선불교의 역사 같은 데 대해서 좀 돌아다보면서, 불교와 경제학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 좀 있기도 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불교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칼럼도 연재를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접었다.

 

한국 불교, 기독교가 황당한 것만큼 불교도 그 안이 복잡하고 황당했다.

 

코란 공부를 좀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진지하게 코란을 공부해볼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하여간 종교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생각하기로 한지, 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갔던 교회가 바로 소망교회였다. 명박 장로 시절의 바로 그 교회였다.

 

나한테도 강력한 트라우마가 남은 악몽과 같은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보았던 소망교회의 내부는, 아마 지옥을 보았다는 느낌이 맞을 것 같다.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갔다가 르완다 국제 재판소를 들렀던 적이 있었다. 직접 르완다에 갔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본 것 중에서는 지옥의 느낌에 가장 비슷하게 경험한 것이 르완다 사태였다. 그러나 정말로 내 마음 속에 지옥으로 남은 것은 소망교회 시절이 기억이다. 그 악몽들을 떨쳐내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음... 더 무서운 곳이 있기는 했다. 횃불선교회의 예배에 참가해본 적이 있었는데, 여기는 정말 무서웠다.

 

요즘도 가끔 악몽을 꿀 때면, 그 시절의 기억들이 꿈에서 떠오르면, 땀이 범벅이 되어서 깨어나고는 한다.

 

2.

가끔은 예수가 얘기한 것이 그런 게 아니었고, 지금의 '예수귀신'들에 대해서 뭔가 고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런 건 나보다는 더 똑똑하고 강직한 사람들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나니, 정말 마음이 편해졌다.

 

김규항이 아마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가 예수전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는 꽤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어떤 종류의 내용일지, 무슨 얘기를 중심으로 끌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하여간 김규항의 <예수전>은 꽤 오래 전에 내가 생각하던 것들을 다시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보통 해방신학 계열이나 아니면 저항의 의미로 기독교를 생각한 많은 사람들은 정본으로 간주되는 마태복음이 아니라,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얘기를 구성하고, 여기에 누가복음을 보조로 해석하게 된다.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면, 히브리 전통에 희랍 전통을 가지고 온 바울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 어쨌든 불어공부 한다고, 처음 유학가서 집었던 책들이 니체 책들이라서, 나도 그런 점에서는 니체의 시각을 상당히 공유하는 편이다.

 

('어딕션'이라는 영화에 보면, 니체가 그렇게 갑자기 깨달은 것은 그가 흡혈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흔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가난한 자가 천국에 든다"라는 구절에서 마태복음에는 '마음이'라는 말이 살짝 끼워진다. 전혀 뜻이 다르다.

 

김규항의 예수전은 이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를 재해석한 것이다. 익숙한 얘기이기는 하다.

 

그래도 요즘 같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공화국에 사는 지금, 김규항의 예수전은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또 용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소망교회의 천국도, 벌써 쇠락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세상이라는 것은 묘해서, 절정에 달한 것 같은 힘도, 또 다른 기운에 의해서 균형을 잡게 마련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3.

김규항의 <예수전>이라는 책은, 어딘지 모르게 빌헬름 딜타이를 연상하게 하고, 역시 해석학이라는 생각 속으로 다시 우리를 인도해준다.

 

텍스트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원전의 텍스트 혹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징체계를 사용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독해자의 목소리와 그 속에 숨어있는 장치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이 책은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일종의 해석학 연습풀이집과 비슷하다.

 

그것이 공동체의 저작인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마가라는 저자가 있고, 그뒤에 윤색된 부분이 있고, 그러한 텍스트가 지시하는 예수라는 한 상장이 있다.

 

한편으로는 마가를 재구성하면서 예수사건을 재해석하는 김규항이라는 진짜 저자가 있다. 책은 전형적인 세 개의 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구조이다.

 

김규항이 마가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예수 사건의 진실은 또 다른 면에서 스테레오 타입화되어 있는 가난한 자들의 예수이고, 처형된 어느 정치 지도자의 사건에 관한 종합적 실체에 대한 재구성이다.

 

어떤 점에서는 익숙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지금 여기' 즉 장로 대통령의 권세의 시대라는 콘텍스트 즉 아주 특별한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지게 되고, 그것이 나처럼 예수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신자의 목소리로 나왔다는 점에서 중첩점 맥락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상상해보자. 명박이 소망 교회의 장로 출신이 아니라, 조계종의 어느 한 열성 신도 출신이었다면?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김규항의 <예수전>이 불온한 책이 되는 셈이다. 동일한 예수 현상을 해석하면서, 지금 소위 강남의 대형교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이 책은 사실상 한국의 권력의 한 축에 대해서 균열을 내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김규항이 사회주의자이든, 아니든,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불온서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읽는 재미도 꽤 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썼다면 마몬에 대한 얘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을 것 같고, 교회 경영학에 나온 황당스런 문구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에 좀 더 많은 해석을 더했을 것 같지만... 어쨌든 교회 얘기야, 김규항이 오죽 잘 알겠나.

 

어쨌든 책 내에서는 교리에 관한 얘기와 현실에 관한 얘기가 긴장을 하고 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저자로서의 김규항의 목소리가 더 들어가도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건 저자의 몫이고, 예수 사건을 새로운 상상의 매개체로 갑자기 2009년이라는 공간으로 끌고 들어오려는 의도가 이런 형식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4.

어쨌든 3개의 레이어를 가진 텍스트지만, 저자의 최근 생각 혹은 기본 입장 같은 것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현실의 동구 사회주의와 최근의 신좌파의 흐름 그리고 젠더 문제들에 대해서 김규항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고래가 그랬어"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이런저런 수다들을 부지런히 떨고 있다. 그 수다가 상당히 재밌다.

 

나는 김규항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수다꾼 기질은 다분해보인다. 예수 얘기를 하면서도 부지런히 자기 얘기를 하는데,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30대, 40대 여성들의 이야기하는 법, 일종의 나선형식 소통 구조와 상당히 비슷해보이기도 해서, 신기했다.

 

어쩌면 그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그 스스로도 예수의 분신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꽤 여러 번 생각하지 않앆을까? 어쨌든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예수는 꽤나 수다쟁이이고, 얘기들을 잘 만들어내는 그런 여성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너무 내가 코카서스인 모델을 한 예수 얼굴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게 상상하는 것일까?

 

5.

시간이라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교회 다니던 시절,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도 이제 몇 년이 지나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천연덕스럽게 지낼 수 있게 되다니 말이다.

 

지금의 명박 현상을 만든 것이 꼭 보수계 교회들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악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한 가운데 그런 신학적 현상들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똥은 똥 눈 사람이 치우는 게 맞기는 한 것 같다. 하여간 이 번 똥은 김규항이 자기가 치우겠다고 나선 것 같다. 예수전이 그 첫 번째 일인 것 같다.

 

교회의 위기가 한국 사회의 위기를 불러 일으킨 지금의 상황에서, 김규항의 <예수전>은 그 흐름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나는 교회쟁이와 말 섞는 것도 무섭다. 내가 지금도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것은, 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 중에 어느 근본주의자가 섞여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나의 마음의 평화가 좋고, 내가 즐기는 명랑이 좋고, 괜히 교회쟁이와 만나서 이 불안한 평화를 깨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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