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의 <100℃>는 일단 재밌는 만화이다.

 

경적을 사측에서 떼어낸 택시의 운전기사가 경적을 누르는 장면에서, 나도 별 수 없이 울었다. 워낙 울음이 헤프기는 하지만...

 

얘기는 일단은 앙상하다. 그러나 만약 87년을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이 이 만화를 만들었다면, 얘기가 풍부한 게 아니라 떼부장처럼 살집만 두툼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87년 얘기를 하는데, 누구도 넣어야 하고, 누구도 넣어야 하고,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그런 두툼함을 포기한 대신, 얘기의 선은 얇아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담백한 얘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치밀하지는 않다.

 

읽으면서 문득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연상했는데, 고리끼의 어머니는 맨 마지막 장면에서 일어나는데, 그 앞에 얘기들을 치밀하게 많이 깔아놓는다. 그런 것과 비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막심 고리끼와 비교하면 전개가 치밀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막심 고리끼이고, 이건 최규석이다. 최규석을 어머니를 내세울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87년의 주역들을 20년 후 갑자기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최규석의 그림풍은 스케치를 곁들인 리얼리즘풍이다. 이런 그림을 가지고도 풍성한 상상을 곁들일 수 있는 것은, 아마 최규석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최규석의 <100℃>는 스토리 라인이나 전개과정 혹은 그림풍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년부터 한국에도 프로 문학이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가설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첫 테입을 끊은 것이 바로 이 <100℃>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배경은 먼 옛날이 아닌, 바로 20년 전, 명박 2년차, 이제는 너무도 먼 곳의 시간으로 느껴지는, 그 박제화된 얘기들을 감동적으로 꺼집어낸 최규석, 그가 <100℃>와 함께 한국의 프로 문학의 맨 앞에 서게 된 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의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명박은, 이제 한국 현대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듯한 프로문학을 다시 호명하고, 그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준 셈이다.

 

이제 다시 시작된 한국의 프로 문학, 그 상이 얼마나 풍성해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상에 첫 번째 음식을 차려년 사람은 단연 최규석이다.

 

그야말로, 명박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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